부활 2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7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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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 톨스토이는 도스토옙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을 읽고 문학사 전체를 통해 이보다 더 훌륭한 작품은 없다고 봐요. 서사도 물론 좋지만, 나는 이게 교육적인 책이라 생각해요. 도스토옙스키 씨에게 사랑한다고 전해 줘요라고 지인에게 편지를 썼다. 1899년 출판된 부활에서 재판과 유형지의 모습은 도스토옙스키를 떠올리게 한다.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는 서로를 배제하는 통찰자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으며 오히려 그들의 영혼과 육체라는 관념을 상호일체감 속에서 풍요롭게 호흡하고 있었다”(러시아의 문학과 혁명71-73p)고 이케타 사다요시는 말한다. 죄와 벌, 백치, 악령,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등에 자신의 유형지 경험을 담았던 도스토옙스키와 동시대 작가인 톨스토이 역시 유형지가 서사를 퍼 올릴 수 있는 러시아 문학의 중요한 원천임에 동의했음을 알 수 있다.

 

남편 없는 하녀의 딸로 축사에서 태어난 마슬로바의 애칭들은 태생과 삶을 시사하고 있다. 지주인 마님들은 그녀의 대모가 되어주고 이 아이를 구원받은 아이라는 뜻의 스파숀나야라고 불렀다. 반은 하녀, 반은 양딸이 된 그녀는 낮춰 부르는 카티카도, 사랑스럽게 부르는 카텐카도 아닌 그 중간인 카튜샤로 불렸다. 이 이름들에서 어떤 자의식이 생겨날지는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시골 영지에 잠시 들른 귀족 청년이 하녀와 사랑을 나누고 떠나버리는 이야기는 흔한 사건이었던 듯하다. 러시아 문학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로 푸쉬킨, 체호프, 부닌 등 많은 작가의 소설에 등장한다. 지주 마님들의 조카 네흘류도프와 사랑하고 버림받은 마슬로바는 이 사건으로 삶이 나락에 빠진다. 그녀는 그 집을 나와 다른 주인들을 거치고 결국은 유곽을 향한다. “천한 하녀라는 굴욕적 처지에서 달라붙는 남자들과 은밀하고 일시적인 간음을 할지, 아니면 생계가 보장되고 정당한 처지에서 법적으로 허용된, 벌이가 좋은 일상적인 간음을 할지사이에서 후자를 선택한다. 그 선택이 첫 남자와 다른 모든 남자들에 대한 복수라고 생각하는 데서 그녀와 같은 처지의 여성들의 불행을 본다.

 

네흘류도프는 배심원으로 재판정에서 살인죄로 기소된 마슬로바를 만나고 변해버린 그녀의 모습에 죄의식을 느낀다. 재판의 부조리를 목격한 그는 그녀의 무죄 판결과 석방을 위해 힘을 쓴다. 그녀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결심을 하고 유형지를 향하는 그녀를 따라 간다.

 

네흘류도프는 카튜샤에게 속죄하기로 마음을 먹은 후, 스스로에게서 다른 모순, 죄악들을 발견한다. 그것들을 해결하기로 생각은 확장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차츰 그의 시선은 타인을 향한다. 정직한 자기성찰이 불러온 파장이다. 마치 둑의 한 부분이 무너지자 그 주변이 허물어지는 것처럼 삶의 전 영역에서 전복과 회복이 이루어진다. 신념을 되찾고 삶이 변화하는 원리는 무엇일까? 그 과정이 너무 쉽게 보여서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사과하는 것조차 몇날 며칠을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는 게 인간인데! 자신의 깊은 내면 안에 깊이 가라앉아 있던 죄의식을 마주하고 잘못을 정직하게 바로잡는 것은 삶을 전적으로 뒤바꿀 동력이 생기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의 윤리와 사회정의라는 과제의 실현에 있어 둘 사이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과거의 잘못에 대한 죄책감이나 수치심이 현재 정의를 실천하려는 자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기에 사회 개혁에 참여하려 한다면 비록 도덕적 완성에 직접 반하는 수단이라도 모든 수단을 써야 한다는 위험한 유혹을 믿어서는 안 된다. 그 목적이 선의 원리에 등을 돌리게 한다면 그것은 허위이다.”(인생이란 무엇인가톨스토이)라는 말의 울림이 크다.

 

그가 한 자기 개혁 중 하나가 자신의 영지와 관련된 일이었다. 네흘류도프는 젊은 시절 헨리 조지의 사상에 품었던 열정을 깡그리 잊었다는 사실에 놀란다. ‘토지는 사유의 대산이 될 수 없고, 물이나 공기나 햇빛처럼 사고 파는 대상이 될 수 없다. 땅이 인간에게 베푸는 모든 혜택을 인간은 똑같이 누려야 한다는 개념이다. 그는 급기야 자신의 영지를 소작인들에게 나누어 준다. 그의 개혁은 소작인들의 삶을 목격하는 충격을 통과하면서 급진적으로 나아간다. 그는 영지와 관련된 결정을 하자 모든 것이 단순해져서 놀란다. 우리는 복잡하고 망설여지던 일들을 한 단계 실행하자 단순하고 명료해지는 현상을 종종 경험한다. 삶이 복잡하게 보이는 것은 머뭇거림과 실천이 없기 때문 아닐까?

 

유형지를 향한 여정에서 네흘류도프는 죄수들의 비참한 행렬을 본다. 그들을 대하는 공무원들의 태도에 대해 비판한다. 사람에 대한 사랑에 대해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된다. 열차에서 농부들과 같은 자리에 앉아있는 네흘류도프에게서 자유로움과 기쁨을 느낀다. 마슬로바 역시 네흘류도프의 도움으로 정치범들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여정과 유형지에서의 생활 동안 그녀는 새로운 유형의 사람들에게 경이로움을 느끼고 그들에게 동화된다. 사면이 된 후에 유형지를 떠나 도시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것은 더 이상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결심으로 보인다.

 

제목 부활(Воскресение)’그리스도의 부활(Resurrection)’을 뜻한다. 단순히 죽었다가 살아난다는 의미가 아니다. 새로운 존재로 살아남을 의미한다. 네흘류도프와 마슬로바는 유형지를 향하는 여정을 통과하며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타인을 향한 사랑으로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다.

 

그날 밤 이후 네흘류도프에게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그가 삶의 새로운 조건으로 들어가서가 아니라, 그때 이후 그에게 일어난 모든 것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기의 그의 삶이 어떻게 매듭지어질지는 오직 미래가 보여줄 것이다.” (부활2, 338p)

 

톨스토이의 다른 작품들이 그렇듯이 그의 철학과 실천이 담겨 있는 소설이다. 이케타 사다요시가 말했듯 작가의 메시지는 의외로 단순한 것일지도 모른다.

영혼과 육체가 포함된 온전한 인간 존재로서 살아가라, 고뇌하고 고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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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루쉰의 첫 번째 소설집 납함(吶喊)과 두 번째 소설집 방황(彷徨)이 담겨 있다. ‘납함(吶喊)’적진을 향하여 돌진할 때 군사가 일제히 고함을 지름을 뜻한다. 그는 이 소설집 자서(自序)에서 젊은 시절 자신이 가졌던 적막한 비애를 잊을 수가 없고 그 적막함을 젊은이들에게 전염시키고 싶지 않기에 몇 마디 더듬거리는 고함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적고 있다. 소설집을 펴내는 이유다.

 

신해혁명의 실패는 루쉰에게 대단히 깊은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광인일기에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분열을 일으키는 청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가슴 속에 타오르던 열정은 혁명의 실패와 냉랭한 현실 속에서 식어가고 혁명을 이끌 동력을 찾지 못한 채 현실과의 괴리 속에서 불안에 잠식당한다. 일찍이 신해혁명의 실패와 환멸,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즉위, 장쉰(張勛)의 복귀 등을 목격한 작가 자신이 경험한 심리 상태를 그린 것으로 보인다. 식인(食人)의 위협을 느끼는 청년의 정신증은 그만큼 시대가 야만성을 띄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책에는 두 번째 소설집 방황(彷徨)의 소설들도 담겨있다. 납함의 소설들처럼 슬픔과 분노 같은 감정들이 담겨 있다. 방황에 담겨있는 Q정전에서는 혁명으로 밤사이 세상이 바뀌어 버리고, 혁명의 대상이었던 자들이 야합하여 권력을 유지하고 혁명을 일으킨 자들의 본질은 도둑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생존을 위해 굽실거리는 군중들의 무지함, 사형제도의 잔인함 등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다. ‘Q’뿐 아니라 많은 등장인물들이 작가의 시선에 포획된다.

 

현실주의 작가 루쉰이 묘사한 인물들, 특히 그가 심혈을 기울여 부각시킨 근로 민중들의 형상은 대단히 진실하다. 그들의 고통과 수난, 염원 등 이 모든 것들은 깊은 감동을 준다.”(루쉰전魯迅傳왕스징 150p)

 

인상적인 내용은 작가 자신의 단발과 관련된 경험인 듯 보이는 서술이다. 단발을 비난했던 자들이 변발을 틀어 올리고 혁명에 앞장서는 것이다. 차마 변발을 자르지 못하고 틀어올리는 위선과 비겁함을 비판하고 있다. 여러 계층과 다양한 입장의 사람들을 다각적 방향에서 여러 가지 주제로 바라보고 문제를 인식할 수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형제도에 대한 작가의 잡문이 있다. 죽는 순간까지 공포와 고통을 오랜 시간 동안 느끼게 하는 참형을 총살과 비교하는 글에는 루쉰의 인권 감수성을 볼 수 있다.

 

두 소설집에 담겨 있는 쿵이지, , 고향, 복을 비는 제사, 장명등, 조리돌리기, 까오 선생등은 봉건사회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개혁을 실패한 채 비관에 빠져 비판만 일삼는 중국을 개탄하고 있다. 구습에 갇힌 구경꾼으로만 존재하는 군중의 냉혹함, 신분과 재산의 차이가 만들어낸 삶의 격차 등 봉건 제도의 부조리와 민중으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군중을 그리고 있다.

 

고향은 서정적이고 조리돌리기는 현실적이고, 복을 비는 제사는 깊은 교훈을 전한다. 매년 복을 비는 제사를 지내는 절기와 샹린댁의 죽음이 대비된다. 그녀의 불행한 삶은 그 시대 여성의 비참한 삶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은 복을 비는 입으로 불행한 여성을 향해서는 연민이 없는 냉정한 말과 태도를 보인다. 주지하고 있듯 타자를 향한 말은 죽음에 이르게도 한다.

 

그의 소설에 담겨 있는 비유와 상징, 그리고 그가 당시 중국에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는 데 루쉰전과 루쉰전집에 담겨있는 일기와 평론 등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는 소설뿐 아니라 잡문에 날카로운 비판과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잘 담고 있다.


“‘무엇 때문에소설을 쓰게 되었는가를 말하라면 나는 여전히 10여 년 전의 계몽주의에 대하여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반드시 인생을 위하여야 하고 또 그 인생을 개량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전에 소설을 소일거리라고 하거나 예술을 위한 예술소일거리의 병적인 신식별명으로 부르는 것을 대단히 싫어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병적인 사회의 불행한 사람들 가운데서 제재를 많이 취하였는데 그 목적은 병의 원인을 드러내어 치료에 주의하도록 각성시키기 위해서였다.”(南腔北調集』 「나는 어떻게 소설을 쓰기 시작하였나)


 

물에 빠진 개는 두들겨 패라

1925북경여자사범대학투쟁에서 교육당국에 대해 승리를 거두고 더 이상 물에 빠진 개를 때릴 필요가 없다는 저우쭈오런(周作人) 주장에 대해 한 말이다. 페어플레이는 뒤로 미루어야 한다라는 글에서 그는 사람들은 를 불쌍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참여했던 신해혁명의 실패 경험에서 얻은 교훈이다.


개의 성질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 오늘날의 관료들과 지방신사나 외국신사들은 저희들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은 적화니 공산이니 하여 매도한다. 민국원년 이전에는 다소 달랐지만 처음에는 캉여우웨이(康有爲) 당이라고 하였고 후에는 혁명당이라고 하였으며 심한 경우에는 관청에 밀고까지 하였다.……그러나 마침내 혁명은 일어나고 말았다.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에 대하여)


혁명과 함께 새로운 풍조가 나타나고 새롭게 되는 과정 중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말고 그것들이 제멋대로 기어 올라오도록 내버려두었기에”, 민국2년 하반기 위엔스카이(遠世凱)를 도와 숱한 혁명가들을 물어 죽였다.”고 루쉰은 말한다.


신해혁명을 실패에 이르게 한 군벌 위안스카이의 칭제(稱帝)와 같은 반혁명적 태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의 글은 자신이 고백하듯 날카롭고 사정이 없다하지만 공정한 도리와 정의라는 미명으로, 도덕군자의 간판으로, 부드럽고 후한 체하는 가면으로, 유언비어와 공론을 무기로, 어물어물하면서 빙빙 돌리는 글로 자신의 배를 채우고, 세력도 문필도 없는 약자들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게 하는사람들이 있기에 붓을 멈출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신해혁명과 이후 혁명들의 실패로부터 얻은 이러한 깨달음들을 그의 일기와 잡문집, 소설에서 전한다. 미신과 구습의 노예가 되어 변하지 않는 군중, 사욕에 사로잡혀 추락하는 혁명가들, 허무와 무기력감에 사로잡혀 분열을 일으키는 지식인들을 상징과 비유의 언어에 담아 계몽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작가의 좌절감과 분노, 그럼에도 굽히지 않는 의지와 용기가 배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의 소설과 평론들은 이런 답답함과 분노의 감정이 짙다.

 

사람들이 과거의 오래된 습관으로부터 벗어나 변화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아는 사실이다. 혁명으로 큰 변화를 일으키고 민중을 깨울 것이라는 꿈은 곧 사위어 버린다. 루쉰은 그 원인을 완전히 결별하지 못한 구습, 적폐, 사욕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을 그는 물에 빠진 개로 비유하고 있다.


대선을 치르고 있는 상황에서 루쉰의 글들은 새삼 많은 메시지로 다가왔다. 조금의 관대함도 없이 대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인정으로 대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오래된 노신소설전집, 루쉰전, 노신문집』2,4권을 갖고 있다. 한겨레 출판 노신소설전집』인데 을유에서  다시 출간되었다. 을유의 노신소설전집』은 같은 번역자이지만, 말을 조금 더 부드럽게 다듬었다. 그런데 나에겐 거칠고 강한 표현들이 더 다가온다. 당시의 역사적 배경과 내가 겪고 있는 현재의 상황때문인가 싶다. 루쉰전』은 공동번역자인 신영복의 글체가 보인다.


루쉰 전집1-20권은 로망이다.

더구나 전집을 다 읽는다는 것은 꿈일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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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소민아 2025-05-31 2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가장 좋아하고 아파하는 소설인물..아Q..루쉰이여

그레이스 2025-05-31 22:29   좋아요 0 | URL
네, 아Q 마음아픈 인물이예요
루쉰의 삶을 읽고, 그의 일기나 시론을 읽으면 여러가지 감정들이 교차해요. 그에게는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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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는 원제“Tyranny of the Minority(소수의 독재)”를 번역한 것이다. 소수가 권력을 갖게 되고 한 집단을 지배하게 되는 과정과 폭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대부분 마이너리티는 지배 의지 보다는 한 공동체 안에서 권리를 보장받고 평등한 지위에 대한 소망을 갖는다. 그러나 극단적 소수는 특정한 이념과 폭력적 행동으로 그 집단을 지배하려 갈등을 일으킨다.

 

극단은 그들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쪽으로 치우쳐 있기에 그들에게는 결여되어 있는 것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상식이다. 그들 지도층은 그 결여를 정치 행위나 법, 언론 등으로 호도한다. 그러나 그들을 따르는 군중에게서는 비상식, 불법, 허위, 비논리, 폭력 등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그들 안에 고립되고 응축된 에너지는 권력 획득을 위해 이용된다.

 

이들이 지배세력이 되려 한다면 무엇인가를 넘어서야 한다. 그것이 법이든 상식이든 여론이든. 그 집단의 양심에서 일어나는 회의를 걷어내기 위해 합법적인 전략을 세운다. 히틀러를 앞세운 나치당이 소수였지만 독일의 지배 권력이 되는 과정에서 법률가들이 정당성을 제공해주었다는 사실은 알려진 바다.

 

작가는 19-20세기, 프랑스나 스페인 등 여러 나라에서 소수가 권력을 잡거나- 때로 실패하면서- 정치 지형이 변화되는 역사들을 기술하고 있다. 그들은 사법부가 정권의 꼭두각시가 되고, 언론에 대한 규제법을 만들어 합법적 탄압을 하면서 장악하고 지배를 넓혀간다. 헌법적 수단을 통해 성숙한 민주주의를 허물어뜨리는 모습은 오래된 각본이고 오늘날도 유효하다. 다양한 방식으로 민주주의는 위협받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현실과 유사하고, 그 해법이 오래 걸리고 때로 무력해서 답답하다.

 

작가는 남북전쟁 이후부터 트럼프 집권 시기까지 소수집단이 권력을 획득하고 다수를 지배한 미국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재건시대 이후 미국 남부에서 흑인들의 투표권을 박탈하기 위해 아직은 소수당이었던 민주당이 취한 전략들이 그것이다. 헌법이 보장한 정치 활동과 소수 집단의 폭력은 미국이 다인종 민주주의를 향해 가는 첫 출발을 지체하게 했다. 이후 남부에서는 한 세기 동안 민주당 독재가 이어졌다. 이런 양상은 더욱 교묘해졌지만 지속적으로 반복되어 왔다. 정치적 지형 변화에 따라 그 스탠스는 공화당에게 넘어갔을 뿐이다.

 

극단적 소수의 집권은 독재나 압제로 흐르고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파괴시킨다. 다수는 민주주의라고 알고 있던 많은 규칙들이 와해되는 것들을 바라보면서도 그 규범들 때문에 속수무책이 된다. 민주주의 위기 앞에서 그 시스템이 스스로를 지킬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는 교훈을 배웠다. 작가는 투표권 확립과 선거 제도의 보완과 지배하는 다수의 힘을 강화하는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미국에 적용된 것이지만 그 맥락에 있어 우리도 다르지 않다.

 

오랜만에 간 동네 미용실에서 원장님과 서로 안부를 묻고 자연스럽게 내란과 조기대선으로 이어지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계엄 당일 날 밤, 코인 때문에 잠을 못 잤다는 그분은 계엄이 잘못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은 야당이라고 비판하기 시작했다. 논리와 상식이 없는 말들에 당황해서 듣고만 있었다. 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하는 말에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근거를 묻자 잘 모르고 계시네!”라는 말과 함께 격앙된 말들이 돌아왔다. 동네 이웃인데다 나는 머리를 맡기고 있는 상황이라 논쟁하지 않고 대화 주제를 바꾸려고 했다. 통신사 명의 도용 뉴스를 이야기하며 원장님은 괜찮으시냐고 했더니 마침 그 통신사라고 했다. 걱정하는 말끝에, 내가 이용하는 다른 통신사가 거론되고, 그 통신사가 중국 부품을 사용한다고 하며, 다시 중국을 비난하는 말로 이어졌다. 이후의 대화에서 나는 거의 침묵으로 대응했다. 대화는 잘 마무리하고 웃으면서 돌아오긴 했지만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다. 왠지 머리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만난 극단적 소수가 된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라고 여기는 사람의 생각이다. 아마 그분은 그 대화에서 승리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를 입 다물게 한 것은 비논리와 비상식인데, 내 침묵은 상대를 의기양양하게 한다. 합법적 전략과 정치 행위로 포장된 허위와 폭력을 수용하는 대중을 보았다. 그들은 사법과 언론을 이용해 권력을 지키려는 방식을 의심하지도 않고 받아들인다. 그들은 증오와 혐오의 대상에게 분노를 돌림으로 더욱 결집한다.


그들 내부에 힘을 응축시키는 것은 극단이라는 메커니즘이다. 고립은 그것을 더욱 강하게 하기에 봉쇄와 배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상대를 적으로 여기는 것은 서로를 극단으로 밀어놓고 고립시킨다. 패배를 받아들이고 권력을 평화롭게 넘겨주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세우는데 방해하는 정신이다.

 

그래서……며칠 후 나는 지나는 길에 미용실 문을 열고 간식을 드리면서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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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05-10 11: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미용실에서 잘 대처하고 오셨네요. 저도 그런 경우엔 침묵합니다. 정치에 관한 한, 그리고 종교에 관한 한, 의견이 다르면 해법은 없어요. 잘못하다간 마찰이 생기죠.
이 책이 요즘 잘 팔리는 것 같은데 책 제목을 보면 뭘 말하려는지 그림이 그려집니다.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그레이스 2025-05-11 10:17   좋아요 1 | URL
^^
네~
감사해요 ~~
빨리 상황이 안정되었으면 좋겠네요3

고양이라디오 2025-05-30 15: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치, 사회과학 책이 이렇게 인기가 있다니 의외네요. 책 제목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마지막 그레이스님의 포용력에 감탄하게 됩니다^^

그레이스 2025-05-30 15:24   좋아요 0 | URL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언론이 걱정입니다. ㅠㅠ
 
루쉰전 - 기꺼이 아이들의 소가 되리라, 개정판
왕스징 지음, 신영복.유세종 옮김 / 다섯수레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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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문득 이 말이 떠오른다.
그 의미가 실감나는 어제 오늘이다.


‘물에 빠진 개는 두들겨 패라‘
「페어 플레이는 뒤로 미루어야 한다」라는 글에서 루쉰은 물에 빠진개, 특히 자신이 직접 때려서 물에 빠진 개에 대해서는 몽둥이로 물 속에서 호되게 때려야 하며, 모든 악한 세력과는 비타협적인 투쟁을 벌여반드시 지구적인 투쟁을 견지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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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05-04 13: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루쉰 책을 보니 제가 읽은 루쉰 단편집이 생각나는데 꽤 두꺼운 책을 5분의 4쯤 읽은 것 같아요. 내용이 혁명적일 것만 같은데 소소한 이야기도 있고 재밌어요. 얼른 완독해서 독서 노트에 써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그레이스 2025-05-04 14:06   좋아요 1 | URL
저도 루쉰단편 읽고 있어요 ~~
 

작가의 색채 이미지들은 감각적이고 서정적이다. 노랑무늬 영원이나 내 여자의 열매에서도 희랍어 시간에서도 빛과 색채 표현의 예민함은 마음을 시리게 한다. 그녀의 회화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엿보인다. 바람이 분다, 가라에서 화가가 흰 종이 위에 먹과 색이 번지고 스며들게 하는 등의 작업 묘사는 더욱 그렇다.

 

작가의 색은 특정한 상징과 정서를 갖고 있다.

바람이 분다, 가라에서 정희의 꿈에 등장하는 흰 새, 빽빽하게 내리던 미시령의 폭설, 먹이 번져가던 흰 종이 등 모두 죽음을 연상시킨다. 소년이 온다에서 시체들을 덮는 무명천, 머리에 감겨져 있는 하얗게 빛나던 붕대 등은 보다 구체적이고 직설적이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검은 통나무들 위로 흩어지던 눈발, 흰 새들로 착시를 일으키는 폭설, 주검 위에 쌓여 녹지 않는 눈, 흰 뼈들, 하얀 앵무새 등으로 밀도 있게 다가오는 흰 색의 이미지에 숨이 막힌다.

 

흰색은 죽음을 상징한다. 차갑고 투명하고 무겁고 두렵다. 이 흰색의 이미지들로 작가는 초혼(招魂) 혹은 진혼(鎭魂)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분위기나 정서 때문에 낯설고 불편한 순간들이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죽음들의 상황과 증언을 은폐했기에, 이렇게 쓸 수밖에 없다. 반복되는 초혼과 진혼은 어두운 현실과 역사를 반증하는 것이다.

 

빛과 따스함의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소설을 쓰겠다고”, “그 소설을 눈부시게 투명한 감각들로 충전하겠다고생각한 작가 앞에 막아선 것은 아직 따스하고 투명해 질 수 없는 빽빽한 흰색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망월동 묘지에 내리던 눈, 꿈속에서 벌판을 채우던 성근 눈. 그것들은 작가를 추적하고 써야할 숙명처럼 다가온다. 꿈은 파도에 휩쓸려 쓸려가기 전에 아직 뼈들이 무사할 때 쓰라고 한다. 거대하고 육중한 칼이 허공에서 나를 겨눈 것 같은 전율 속에서(작별하지 않는다26p)” 작가는 생각한다. 시간이 없다고, 써야한다고.

 

카프카의 경우처럼 꿈은 작가에게 고통이기도 하다. 쓰기 위해서는 생각해야 하고, 지속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꿈과 같은 무의식의 문을 여는 고통의 행위이다. 그 책을 마치면 그 꿈으로부터 해방되리라는 기대는 오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곧 다른 꿈들로 이어지고, 다시 다른 문을 열어야 하는 숙명 앞에 서게 된다. 그렇게 소년이 온다』 『』 『작별하지 않는다진혼곡들이 탄생한다.

 

“2012년 겨울, 그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읽으면서부터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직접적인 폭력이 담긴 꿈들이었다.(작별하지 않는다17p)

학살과 고문에 대해 쓰기로 마음먹었으면서, 언젠가 고통을 뿌리칠 수 있을 거라고, 모든 흔적들을 손쉽게 여읠 수 있을 거라고, 어떻게 나는 그토록 순진하게뻔뻔스럽게바라고 있었던 것일까?(작별하지 않는다23p)“

 

처음 두 책을 읽는 동안 중단하고 싶었던 순간들이 있었다. 두 번째 독서에서 나는 작가의 고통에 대해 생각했다. 쓰기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과정을 보는 듯 했다. 사람을 향한 사랑이 없고서야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에서 작가는 무엇으로도 결코 파괴될 수 없는 우리 안의 어떤 부분을 들여다보고 싶었다.(빛과 실)“고 한다.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와 형식은 다르지만 주제로는 연결되는 작품이다.

 

출간 순서와는 다르게 을 나중에 읽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두 소설과 차별되는 지점이 있고, 이 지점은 두 소설을 아우르는 어떤 메시지를 향한다고 생각했다. 두 소설에서 해결되지 않는 고통과는 다른 어떤 밝음이나 따뜻함을 느꼈다. 에서 흰은 나의 흰과 그녀의 흰으로 나뉘어진다. 그녀는 세상에 나온 지 두 시간 만에 떠난 언니다. 화자(작가)는 그녀에게 자신의 삶을 내어준다. ’-강보, 배내옷, 소금, 얼음, , , 파도, 백목련, 흰 새, 하얗게 웃다, 백지, 흰 개, 백발, 수의-그녀’-성에, 서리, 날개, 주먹, , 눈송이들, 만년설, 파도, 진눈깨비, 흰 개, 눈보라, , 소금, , 레이스 커튼, 입김, 흰 새들, 손수건 등-과 댓구와 평행을 이룬다. 이들은 모든 에서 통합된다. 각각의 흰 것들이 서로 어우러지고 대응하면서 한 편의 긴 시를 만들어간다.

 

오래 전 세를 얻어 이사했던 집의 철문에 날카로운 무엇으로 함부로 새겨놓은 녹슨 ‘301’호라는 글자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 문을 하얀 페인트를 칠하는 행위로부터 나는 사람의 안으로 들어가기 전 그 사람의 밖에 보이는 상처를 떠올렸다. 돌보지 않고 함부로 대했던 자기 자신의 외부로 나타나는 상처의 흔적, 성격이나 습관으로 나타나는, 때로 연고를 바르고 붕대로 감싸주면 낫게 될, 아니 나은 것처럼 보이는 상처다. 2차 대전 당시 폭격으로 완전히 재가 되었었던 흰 도시라 불리는 바르샤바에서, 그녀는 자신 안에 그리고 도시의 타인들 안에 있는 상처들과 고통의 기억들을 흰 것들의 이미지를 통해 찾는다. 그것은 기억에 남은 언어의 파편일 수 있고, 사물이기도 하다. 그것들을 통해 자신과 타인을 포함한 사람들의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 배추의 속살 같은 연한 부분을 들여다본다.

 

언니에게 자신의 삶을 내어준다는 의미는 타인 어쩌면 자기와는 다른 삶을 살았을지도 모를 그녀가 되어 그녀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그녀는 바르샤바의 많은 이들이 총살되었던 벽 앞에 모인 넋들을 상상한다. 그리고 그 앞에 밝혀진 초는 넋들을 위함이 아니라 초를 켜놓은 자들을 위함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살육당한 역사는 수치가 아님을 믿는 그들은 그렇게 오래 애도를 연장한다. 고국에서 일어난 일들과 죽은 자들이 받지 못한 애도를 기억한다. 그리고 자신의 재건을 생각한다. 개인이라는 작은 범주에 사용할 단어를 국가라는 큰 범주에 사용할 재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어, 부정적인 의미를 전달한다. 자신의 재건에 빠진 것이 있었다. 고국에도! 그녀 자신 안에 있는 상처들이 여전히 총알의 파편처럼 박혀 있음을 연고를 바르고 붕대로 감싸서 아문 듯 보이지만 나은 게 아님을 가리킨다.

 

총살의 벽 앞에서 고국의 애도 받지 못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녀가 할 일들을 다짐처럼 생각한다.

거짓말을 그만둘 것.

눈을 뜨고 장막을 걷을 것.

기억할 모든 죽음과 넋들에게- 자신의 것을 포함해-초를 밝힐 것.(109)”

 

바르샤바에서 흰쌀밥을 지어, 그 앞에 기도하듯 앉아있는 그녀, 그 밥은 자신을 위한 것일까, 아님 죽은 사람을 위한 것일까, 거기서 나는 생에 대한 의지, 위안을 느꼈다. 따뜻한 밥에서 흰 김이 오르는 장면에서 사랑을 생각했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뒤 작가는 이 과 형식적으로 연결되는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빛과 실」) 에서 잠깐 보여줬던 조금 더 밝고 조금 더 따뜻한 글을 기다려본다. 세상이 그런 글을 쓸 만큼 조금 더 밝고 조금 더 따뜻해지길!

 

신형철 교수는 강의에서

병든 아이의 침상 곁에서 며칠을 지새운 아버지는 아이가 죽자 촛불로 둘러싸인 시신을 잠시 놓아두고 옆방에서 잠이 든다. 그런데 꿈에 죽은 아이가 나타나 아버지에게 말한다. “아빠, 내가 불에 타는 것이 안 보여요?” 깨어나 옆방으로 달려가 보니 촛불이 넘어져 아이의 수의(壽衣)가 타고 있더라는.(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신형철)“

프로이트의 꿈 이야기를 하며 고통스런 꿈을 꾸는 또 다른 사람들을 떠올렸다고 한다. 아직도 아빠, 내가 물에 잠기는 것이 안 보이세요?”라고 말하는 아이를 오늘도 꿈에서 만나고 있을 분들을.

 

작별하지 않는, 작별할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는 생각을 했다.

제발 우리의 오늘이 미래를 살릴 수 있기를!

반복되는 초혼과 진혼이 아닌 애도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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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5-04-29 15: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한강 작가님 칸이 따로 있어요. 볼 때마다 뿌듯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죽음에 애도를 표합니다.

그레이스 2025-04-29 15:30   좋아요 2 | URL
많은 분들이 그러시리라 생각됩니다.
5월이 오네요!

페크pek0501 2025-04-30 12: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강 작가의 소설로는 세번째로 여수의 사랑, 을 읽고 있어요.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보다 더 문장력이 빼어나다고느꼈어요. 역시 노벨상을 탄 작가는 다르구나 생각했어요.

그레이스 2025-04-30 12:27   좋아요 2 | URL
잘 쓰는 작가들은 단편이 더 좋더라구요. 밀도있고 !

새파랑 2025-05-01 08: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한강작가님 책탑~!!
한강작가님의 작품을 읽다보면 좀 괴로운 부분이 있는거 같아요 ㅋ 정상적인 생활이 안됩니다~ 문장이 너무 아픕니다~ 다음번에는 <흰>을 읽어야 겠습니다~!!

그레이스 2025-05-01 09:04   좋아요 3 | URL
맞아요.
한동안 헤어나오기 힘들어요.
그래도 <흰>에는 결심 같은 것이 있어서 위안이 되었어요.
더구나 작가의 시선이 우리나라 뿐 아니라 바르샤바의 역사적 비극을 향한다는데서, 매몰되지않는 느낌, 긍정적 메시지를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