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니아 반란의 주동자 밀레토스의 아리스타고라스는 자신이 일으킨 전쟁을 이오니아에 있는 도시들과 사모스나 키프로스 같은 섬들과 스파르타나 아테네에 까지 확산시킨다. 아리스타고라스의 배후에는 페르시아로 끌려간 밀레토스의 참주 히스티아이오스가 있었다. 히스티아이오스는 밀레토스를 공격해온 다레이오스에게 일찌감치 항복하고 그의 수하에 들어가 페르시아에 봉사하고 있었다. 그는 밀레토스를 다시 차지하고자 자신을 대리하고 있는 사위 아리스타고라스에게 페르시아에 항거하라고 비밀리에 메시지를 전한다. 이 메시지를 받기 전 아리스타고라스는 페르시아에 공적을 세우고자 군대를 동원해 낙소스를 공격했다. 낙소스 원정은 실패하고 막대한 경제적 손실만을 입었다. 아리스타고라스는 다레이오스에게 받을 문책이 두려워 오히려 페르시아에 대항해 전쟁을 일으켰다. 그는 스파르타와 아테네에 원병을 요청하고,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이오니아 지역 도시들을 선동했다. 각 도시국가들은 셈법과 정치적 상황에 따라 전쟁에 참전했다. 이것이 Ionian revolt, 헤로도토스가 말하는 이오니아 반란이다.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 전쟁의 원인을 연구하며 이오니아와 아프리카 흑해주변 도시 등의 역사와 문화, 인종 등을 조사하고 직접 다니며 탐사했다. 그러면서 마라톤 전쟁 직전에 일어난 이오니아 지역 헬라스 도시들의 페르시아에 대한 전쟁에 주목한다. 페르시아의 그리스 침공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서술해간다. 이 이오니아 전쟁을 통해 많은 도시들의 시민들이 희생됐다. 나름의 전쟁을 일으킬만한 이유들과 열망들이 있기도 했다. 노예 상태로 이주한 민족들과 혈육이 몰살당한 사람들의 분노와 복수심 등.

 

주목할 만한 것은 지도자들의 욕망과 무책임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빼앗긴 권력의 자리를 회복하기 위해 시민들의 복수심과 불안감을 이용한다. 페르시아가 시민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켜 노예로 삼을지도 모른다는 거짓을 전파하며 선동한다. 아리스타고라스는 이오니아의 많은 도시들이 다 일어난 것처럼 호도하여 다른 도시들의 참전하게 한다. 그리고 패색이 짙어지자 도주하기를 반복하는 것을 볼 수 있다.(5~6) 헤로도토스는 이 역사를 기록하며 페르시아 전쟁의 원인들에 집중한다. 지도자들의 욕망에 의해 전쟁에 끌려 나온 시민들과 노예들의 희생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다.

 

전쟁의 승패가 기울면 지도자들은 항복과 결사 항전을 고민하고, 협정을 맺기도 하지만, 합의에 이르는 마지막까지 이익을 앞에 놓고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싸운다. 그 와중 협상과 지체와 결렬과 재개 사이를 오가며 사람들의 희생을 키우는 것을 보게 된다. 이들 고대 국가들은 전쟁 중 서로가 적이 되기도, 연합군을 이루기도, 중재자로서 개입하기도 한다. 구원(舊怨)을 따라 혹은 이익을 따라 합종연횡을 일삼는 모습을 보여준다. 고대에 일어난 전쟁의 발단과 전개, 그리고 결론으로 가는 과정이 현대 전쟁과 다르지 않은 것을 보게 된다.

 

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 에서는 휴전시간 15분을 앞두고 지휘관의 자존심 때문에 신병들을 적의 참호로 보내 육탄전을 벌이는 비인도적 장면이 있다. 종전 협정 내용이 독일에 수치스러운 것이었기에 지도자는 프랑스군을 그대로 보낼 수 없다고 울분을 토한다. 적의 참호에서 끔찍한 육탄전을 벌이던 파울 보이머는 칼에 찔리고, 그가 숨을 거두기 직전 휴전 나팔이 울리고 사격중지 명령이 내려진다. 그 소리를 들으며 파울은 죽는다. 전쟁의 허망함을 전하려는 극적 연출 장면이다. 그리고 지도층의 몇 사람의 공로 의식이나 욕심에 의해 많은 생명이 부질없이 죽어가는 전쟁에 대한 분노를 느끼게 한다.

 

원작을 각색한 이 영화는 2023년 미국과 영국 아카데미에서 많은 부분 수상을 했다. 영화는 아름다운 풍경과 전장의 잔인함을 대비시킨다. 인물들의 대화는 때로 즐거운 상상을 하게 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공포와 불안으로 가득하다. 굶주린 병사들의 열악한 식사와 후방에 있는 고관들의 정갈하고 고급스러운 식사 장면을 대비시킨다. 조국을 위해 참전하는 십대 청년들의 낭만과 첫 전투의 공포와 참혹함이 급격하게 대립한다. 그들의 패기와 열정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절망으로 변해버린다. 나 역시 저들이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고, 돌아간다 한들 희망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아름다운 풍경과 참담한 풍경이 반복되면서 나도 모르게 남아 있는 러닝 타임을 확인했다.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빗발치는 총탄과 화염 방사기 앞에서 떨어지지 않는 발을 달리는 그들의 둔한 몸짓이 나를 숨막히게 했다. 전쟁이 끝나기 전에는 끝나지 않는 이 비참한 시간을 버티고 있는 그들의 심정이 화면 건너편으로 전해졌다.

 

학교 교사, 탄광의 광부, 은행원, 양계장 주인, 시골 지주, 도시 중간계급, 노동자, 농민 등 그들이 격렬한 전화(戰火)의 한복판에서 계속 참호를 지키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무인지대 언저리 저 냉혹한 죽음이 다스리는 그 자투리 땅에서 그들을 버티게 한 것은 무엇일까? 병사들이 참호 밖으로 나와 공격에 나서도록 한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그들을 버티게 했을까?”(봄의 제전289p)

 

원작인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는 작가의 체험이 담겨 있는 작품으로 상상된다. 그가 16살 때 전쟁이 났고, 2년 뒤 191611월에 사범학교를 다니던 중 징집되었고, 1917년 플랑드르에서 처음으로 최전선의 전투를 경험했다고 한다.(봄의 제전467p)

 

레마르크의 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에는 영화의 대비적 이미지 보다는 화자인 파울의 마음에 집중한다. 그의 심상에 떠오르는 문장들은 아름답다. 아름다워서 잔인하고 허무하다. 17살인 파울과 그의 동기들 7명은 전선으로 보내져 흩어져 배치되고 죽음을 경험한다. 파울은 자신들이 기대한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파울은 우리는 길을 잃은 것 같다고 고백한다. 학생이 아닌 전우들은 구두 수선공, 농부 등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다. 이들 모두는 똑같이 총탄, 장갑차, 화염방사기, 화학전 독가스로 인해 죽음의 공포를 경험한다. 1918년 종전 소식이 들려오는 가운데 파울은 끝나지 않는 전쟁에 조바심 낸다. 그 초조함과 실망이 나의 마음을 울린다.

 

“1918년 여름 불타 버린 전쟁터 위로 부는 희망의 바람, 초조함과 실망의 미칠 것 같은 열병, 두렵기 짝이 없는 죽음의 공포, 이해할 수 없는 물음. ? 왜 전쟁이 끝나지 않는가? 그런데 왜 끝난다는 소문이 솔솔 나도는가?”(11)

 

기다리는 동안 그들은 더욱 전쟁에 나가는 것이 힘들어지고, 여전히 어쩌면 더 많은 죽음들을 경험한다. 희망과 실망을 반복하는 파울 보이머에게서 우울과 당혹감을 엿보게 된다. 반면 그의 눈에 비친 나무들, 빨간 마가목 열매는 아름답기만 해서 처절하고 더욱 허무하다.

 

하지만 1918년 여름에 출정은 계속되고 죽음도 그치지 않는다. 비록 초라한 모습이긴 하지만 이곳 생활이 지금처럼 우리에게 간절히 여겨진 적은 없었다. 우리의 숙소 주변 초원에 피어난 붉은 양귀비꽃, 풀줄기에 달라붙은 매끈매끈한 닥정벌레, 어스름하고 서늘한 방 안에 스며드는 따스한 저녁노을, 해 질 녘의 신비스러운 검은 나무들, 하늘에 떠 있는 별들과 흐르는 물, 꿈들과 오랜 수면-, 이런 생활, 생활, 생활!”(서부 전선 이상 없다11)

 

그리고 온 전선이 쥐 죽은 듯 조용하고 평온하던 191810월 어느 날 우리의 파울 보이머는 전사하고 말았다.”고 작가는 쓰고 있다. “그러나 사령부 보고서에는 이날 <서부 전선 이상 없음>이라고만 적혀 있을 따름이었다.”로 마치며, 자고 있는 것처럼 땅에 쓰러져 있는 파울의 몸을 조명한다.

 

종전 소식을 기다리는 전쟁 지역의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대피 사이렌과 폭탄 터지는 소리로 시끄러웠던 도시의 밤이 당분간 조용하려나? 죽음의 공포를 겪고 있는 사람들과 달리 국가의 권력자들은 수많은 셈법과 경우의 수를 따져 이익이 되는 조항들을 매일 갱신하고 있다. 이 전쟁을 외부에서 바라보는 사람들도 나름의 예측과 전망을 통해 종전의 때를 점치고 있다.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소문만 무성하고 그 시간이 언제 올지 불안한 가운데 어디선가 적막을 깨는 폭격 소리에 실망하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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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모노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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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서 작가는 글을 쓸 때 두려움을 느낀다면서, ‘잘 쓰고 있나’ ‘인물이 윤리적인가’ ‘고증이 확실한가와 같은 자기 검열을 자주 한다고 고백했다. 이번 작품에서는 이런 인물도 있어야 하지 않는가’ ‘불편한 것을 애써 감추는 건 기만이고, 시대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이런 질문들을 오래 논했다는 작가의 말이 맴돌았다.(시사In) 인물들과 이야기에서 작가의 고민에 공감되는 지점들이 있다. 나 역시 다 읽고 나서도 그 이유 때문에 오랫동안 리뷰를 할 방향을 찾지 못했었다.

 

모 배우의 한 줄 평이 카피라이팅 슬로건(copywriting slogan)이 되었다. 그의 영향력 때문에 과장된 경향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둘째가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을 읽고 소설 넘 신박하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도, 다 읽은 책을 소장하기 위해 구입하는 것을 보고도 아이의 취향이겠거니 하고 읽어야 할 책 순서에서 뒤로 미뤄 놨었다. 막내 아이도 읽고 좋았다고 하고, 지인들도 좋은 평가를 하고, 그제서야 책을 옆에 가져다 두었다. 그리고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읽자는 의견이 나오고서야 읽기 시작했다. 확 빨려들어가고 신박한 느낌은 들었다. 계속해서 긴장시키는 부분도 있었다. 독서모임 회원들은 만난 순간부터 정말 좋았다고 감탄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나는 마음이 불편하지? 방어벽을 쌓았나?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인물들이 주는 불편함이 너무 컸다. 선과 악, 윤리적이고 비윤리적인 문제는 아니다. 인물들이 경계에서 줄을 타고 있어서, 사유라는 게 없어서, 작가가 그들을 위해 변명을 하고 있는 듯해서 무서웠다. 작가는 중립적인 자리에서 독자들에게 생각할 문제를 던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짧은 문장 안에서도 작가의 철학은 묻어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독서모임에서 회원들과 토론하면서 나는 철학 없이 재미로 읽는다면 차라리 영화를 보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미디어와 텍스트는 어떻게 다를까? 나의 경우 독자의 사유에는 텍스트가 더 선명한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에는 기이한 상상인데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주제는 무겁다. 내 경우, 망막을 통해 들어온 이미지는 사라지거나 그 세계 안에 머물거나 인상적인 몇 장면을 남기거나 하는 정도로 생각을 만든다. 반면, 텍스트 한 단어 한 문장이 그대로 들어와 각인되고 비평과 수용을 통해 사유가 된다. 그래서 더 선명하다.

 

읽은 후 몇 달 동안 작가의 펜이 향하는 방향이 어디일까 고민 했다. 권력에 복무하기보다는 항거하며 시대를 바꾸어나갈 수 있는 작은 지점을 찾아가는 게 문학의 몫이라 생각한다. 그중 하나가 기억이고, 그것을 오답 삼아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게 중요하지 않나라고 한 작가의 말에서 조금은 안심이 됐다. 여전히 누구에게나 사정이 있다는 듯한 뉘앙스에는 마음이 쿵 내려앉는 불안을 겪는다.

 

등장인물들은 나를 불안하게 했다. 그들의 경향성은 우리 시대정신이지 않을까? 특히 혼모노에서 무당이 섬기는 할멈 신이 그 정신의 극단적 상징이다. 이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들의 내용이 대부분 그렇지만 이 혼모노는 최근 내란과 그 배후 사건들과 관련하여 더욱 시의적이다.

 

혼모노(ほんもの)는 일본어로 진짜’, ‘진품을 뜻한다. 일본 문화에서 이 단어는 장인정신의 상징이다. “저 사람은 진짜 혼모노다라고 말하면, 그 분야에서 더 이상 증명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한편 집착적인 오타쿠를 뜻하는 은어로 쓰인다. 그렇게 '혼모노'는 진품에서 비정상으로, 찬사에서 조롱으로 의미가 달라진다.

 

우리가 오타쿠처럼 집착하며 욕망하는 실체는 무엇일까? ‘길티 플레져’, 죄의식을 동반하는 즐거움일까? 죄의식은 무엇에 대한 것일까? 누군가를 추앙하는 팬클럽 회원들 각자에게 숨겨진 의도에 대한, 순수하지 못함에 대한 것일까? 누군가를 추앙하는 것, 진실이 무엇이든 무조건 믿는 것이 스스로를 위한 이기적인 마음 때문이라는 것에 대한 자각 때문일까? 그들은 배타적 언어와 규칙들과 가식적인 대화와 가장된 호의로 의구심들을 덮는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 때문에 모인 가짜들이다. 그들은 마치 이빨과 발톱이 빠진 호랑이를 만지는 것과 같이, 진실이 아닌 허위의 대상을 추앙하는 아니 자신의 욕망을 추앙하는 사람들이다.

 

'구의 집'이라는 이름에는 누군가의 범죄를 은폐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감금과 고문을 위해 지어진 이 건물을 설계한 주인공은 구보승이지만, 이것을 정부로부터 의뢰받은 자는 그의 스승 여재화이다. 대학원생이던 구보승에게 설계를 맡기고, 그 설계대로 세워진 건물에 이름을 구의 집이라고 명명한 것은 자신의 죄와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이다.


이 작품에서 구보승은 이 건축물 설계에 엄청나게 집중하고 그것이 인간을 위한 건축이라는 의의를 부여한다. 재능도 의욕도 없어 보이던 대학원생 구보승이 뜻밖에 열정과 비상한 재능을 보이며 설계에 구현한 공간은 감금과 고문, 의도된 자백을 받아내기에 최적화된 건물이다. 구보승에게 결여된 것은 무엇일까? 두 사람 중 누가 혼모노이고 니세모노(가짜)일까?


민주화 운동 기념 사업회’ 홈페이지에서 남영동 대공 분실’의 빈틈없이 용도에 최적화된 정교한 설계가 담겨진 도면을 볼 수 있다이 건물은 한국의 유명한 건축가에 의해 설계되었고 완벽하게 구현되었다.

 

왜 작가는 한 건축가의 설계가 아닌 그야말로 무기력한 무사유의 인간이 그를 대리하게 했을까? 그 유명한 건축가를 변명하는 듯 보여 오랫동안 고민했다. 두 사람 다 설계를 의뢰받는 순간부터 건물의 용도를 알고 있었다. 한 사람은 정의나 인륜 같은 것에 무심한 채 순간의 욕망과 성취감에 충실했고, 다른 한 사람은 사회적 명성, 사회적 지위때문에 거절할 수 없는 범죄에 다른 사람을 가담시키고 그에게 책임을 전가한 것이다. 결론은 그가 끌어들인 사람이 한 명 두 명 백 명으로 늘어난다 하더라도 그는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타인의 안위나 사회적 정의와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시대정신을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삶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이기적이고 어리석고 위험하다. 그 극단적인 정신의 형태가 혼모노의 할멈 신이다. 박수무당30년 간 섬기던 신은 다른 신애기에게로 옮겨간다. 그 귀신 조차 자신의 이익을 따라 옮겨다니는 것이다. 그런 신에게 자신의 안위를 의탁하고 공을 들이는 사람들이야 오죽하랴. 국가와 많은 사람들을 위해야 할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과 부를 지키기 위해 신당을 찾는 욕망이 낳을 결과가 얼마나 비윤리적이고 부도덕할지는 자명하다.

 

이것이 시대정신의 경향성이다.

단편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개인의 욕망만을 추구한다. 타자들 혹은 공동체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 아니 그런 것들을 생각할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단지 직관적인 죄의식만을 희미하게 갖고 있는 것 같다. 습관이 된 이런 경향은 죽음의 위험을 당한 혈육 앞에서도 자신의 자존심과 욕심을 우선순위에 놓는 어리석음을 낳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고 그것을 극대화하려는 욕망은 자연스럽다. 시류에 합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게 죄가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욕망만을 추구하고 이익만을 챙기는 것이 삶의 습관이 되고 경향이 된 존재가 개별자로서 혹은 집단을 이루어 괴물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상해본다. 무섭고 두렵다. 그게 내가 되지 않으란 법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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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의 구두 - 하이데거, 사르트르, 푸코, 데리다의 그림으로 철학읽기
박정자 지음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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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데리다, 사르트르, 하이데거 등 철학자들에 의해서 해석된 미술작품들과 그들의 미학을 읽게 된다. 그들의 이론서에서 미학의 액기스만 뽑아낸듯 하다. 문학, 미술, 음악을 보는 미학적 시선을 맛보게 해준다. 미학사나 미학개론서 보다 더 즐겁고 자극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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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의 멜랑콜리 - 2025 노벨문학상 수상 알마 인코그니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구소영 옮김 / 알마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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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대전 후 독립한 헝가리는 혁명과 반혁명의 혼란을 겪어왔다. 독일 점령 시절은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의 역사에서 비극적 사건들로 이루어져있다.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던 1956년 헝가리 혁명은 유혈사태를 가져왔고, 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독재와 혁명과 다시 반혁명으로의 부침이 많았던 역사의 경험 속에서 1980년대 말, 동구 공산권의 붕괴 위기는 그들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 일으켰을까? 체제 붕괴의 분위기와 국경 개방이라는 물리적 조치 등은 멀리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그렇게 희망적으로만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체제의 몰락과 함께 무질서와 혼란이 점점 확산되고, 사람들은 불안을 느꼈을 것이다. 작가 역시 불안하지 않았을까? 무질서와 혼란과 폭동이 잠잠해지고 차갑고 잔인한 질서로 회귀했던 역사의 망령이 그를 사로잡고 공포스럽게 했을지도 모른다.

 

연착되는 기차, 쓰레기로 쌓여가는 거리, 지독한 추위, 물자 부족, 무질서는 도시(국가)의 기능 상실과 피로감을 시사하고 있다. ‘붕괴의 증상들은 알아차릴 수 있더라도 그 원인은 도저히 불가해한 일로 남았기에(12P)’ 사람들은 일상을 살면서 무질서에 가담하고, 아직 실제적 위협이 나타나지 않았음에도, 생존을 위해 득달같고 악착같은 몸부림을 친다. 들려오는 참사들과 사고들, 비행(卑行)의 소문들은 플라우프 부인이 기차에서 모르는 남자로부터 당한 위협과 더불어 다가올 대재앙, 어떤 거대한 파국, 혹은 종말이 다가온다는 불길한 예감을 갖게 한다. 이것은 곧 붕괴하게 될 구체제의 종말을 앞둔 동유럽인들의 불안한 심리를 반영한다. 작가는 구체적으로 어느 나라 어느 도시인지를 밝히지 않고 모호하게 쓰고 있다. 불온한 거리를 걸어 집으로 돌아온 플라우프 부인은 집을 정돈하고 최대한 집 밖으로 나가지 않기 위한 대비를 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하게 되는 대응이다.


각각의 인물들은 상황을 인식하고 방법을 찾는 데 있어 차이를 보인다. 에스테르의 경우가 철학자 혹은 예술가의 것이라면, 에스테르 부인은 정치적인 방법으로 상황에 대응한다. 반면 벌루시카의 경우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에서 어떤 문제의식을 갖지 못합니다. 자신이 추종하는 에스테르와 천체에 관심을 둘 뿐이다. 그는 우체부로서 그가 다녀할 길을 걷고 달리며 하루일과가 끝나면 태양과 달과 지구의 운동을 퍼포먼스로 사색한다. 과학자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플라우프 부인, 에스테르, 에스테르 부인, 벌루시커 등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삶의 영역을 지키려하고 자신이 가치라 여기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그들의 결말은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개인은 그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두문불출하며 음악의 순정율을 연구하던 에스테르는 밖에서 시시각각으로 들려오는 소문을 들으면서 우리는 끝장이 났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 행동, 상상력에 실패했어. 심지어 우리가 왜 실패했는지 이해하려는 안쓰러운 시도조차 실패했어.(173p)’라고 하며. 그가 순정률에 천착하고 회복시키려고 하는 것은 자연으로부터 온 원래 주어진 질서가 망해가는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에스테르는 평균율을 비판하며 자연으로부터 오는 순수한 진리를 가리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순정율을 따라 조율하고 우리의 귀에는 익숙하지 않은 화성을 연주한다. 그러나 폭동의 기운이 가득한 바깥으로 외출 후, 그의 생각은 변한다. 산책 수 돌아와 창문을 판자로 가리고 바리케이트를 치는 모습은 플라우프 부인과 비슷하다. 그러나 외부로부터 소음이 들려오고 도시가 폭동에 휩싸였다는 소문을 듣고 그는 자신의 생각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벌루시커의 존재가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했는가를 생각하며, 그를 찾기 위해 나갔던 그는 돌아와 판자를 뜯어내고 창문을 열고, 스타인웨이 앞에 앉는다. 연주 전 베르크마이스터 화성계로 다시 재조율을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에게 얼마나 편안한를 느낀다. 그가 평균율에 맞춰 스타인웨이를 연주하는 것과 자신의 시계를 종탑에 맞추는 행위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는 실패한 것인가?

 

이는 그가 생각하기를 포기했다거나 지금까지 생각해낸 것들을 물린다는 게 아니라 돌림노래 같은 자기-지식적인 사변의 탐닉에서 자유로워졌다.(320p)”라고 생각한다. 이성이 세계의 균열의 메꾸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자신이 맹신했던 지성과 합리성은 세계의 고통스러운 빈틈이라기보다 부분으로 속한, 세상의 그림자라고 이해했다.(320p)” 결국 지성이란 것도 세상에 대한 반영, “들쑤시는 대화 속에 우리의 존재를 조종하는 반사작용들과 동조하여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가 평균율이라는 음악의 착각을 빠져 나오듯, 그는 지성이라는 것 자신의 연구가 그저 맴을 도는 탐닉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유로워졌다. 판자를 뜯어내고 창을 통해 보이는 종탑 시계를 보며 시계를 맞추는 행위는 그 의미의 상징이다.


그 주위의 모든 것은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그들의 원래 의미를 되찾았다. 창문은 다시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이 되었고, 난롯불은 다시 온기를 전달하는 난롯불이 되었고, 거실은 모든 흥밋거리를 앗긴 대대적인 손상에서 피난처 구실을 하기를 그만 두었고 바깥세상은 그와 유사한 방식으로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고문의 현장이 아니었다.(32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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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도시에 들어와 있는 서커스단은 수상하고 불온한 분위기를 전달하고 있다. 고래를 전시하는 서커스단 주위로 군중들은 몰려들고 이 군중을 위험스럽게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 서커스단의 대공이라 불리는 인물은 그 소문의 중심이 된다. 단장은 대공에게 상업적 차원에서 그 칭호를 부여했으나, 기형적으로 작은 키에 평범하지 않는 목소리를 내는 그의 모호한 실체는 대공(The Prince)’이라는 이름과 함께 더욱 비밀스럽고 공포감을 조성한다. 서커스단이 거쳐온 도시마다 그의 선동에 동조해서 따르는 추종자들이 생겨났다. 모여든 군중 안에는 이들도 섞여 있다. 전체주의나 파시즘이 태동할 때, 군중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폭력성을 끄집어내는 '광기의 목소리'를 상징한다. 왜인지 히틀러가 떠오른다.

 

에스테르 부인은 도시의 이 혼돈과 폭동을 이용해서 짧은 시간에 권력을 쟁취하는 인물이다. ‘청결운동 위원회를 조직하고 외부로부터 도시로 군대를 끌어들여 혼란을 수습한다. 이 과정에서 중령과의 관계는 그녀의 성적 욕망이 권력에 대한 욕망과 다르지 않은 것을 엿보게 된다. ‘청결운동은 더럽고 불온한 것들을 깨끗하고 질서있게 순정한 것으로 바꾸자는 운동이다. 하지만 이것은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하나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는 다른 것들은 제거해버리는 파시즘의 방법이다. 위원회는 폭도를 처형하고, 또한 에스테르 부인은 자신이 잡은 권력에 위해가 되는 자들을 제거할 움직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편 대공은 폭력으로서 권력을 상징하며, 에스테르 부인은 혼란 뒤에 되풀이 되었던 전체주의 독재의 역사를 상기시킨다.

 

벌루시커는 마음속에서 여러 번의 저항감과 무력감을 느낀다. 위원회와 주방장, 너더반과 그의 친구들과 달리 벌루시커는 서커스단 주위에 모여 있는 군중들을 그이 위험하게 보지 않는다. 의심하는 자들은 강박을 전염병처럼 공유하고 있고, 그것은 그들 내부에 불안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미스터리는 고래 이상은 없다.(258p)” 그들은 단지 고래라는 생물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화를 몰래 엿들은 그는 대공의 의도를 알게 된다. 그가 그 대화를 듣고서야 알게 된 것은 저항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방어했고 직감을 억눌러 서커스와 함께 도착한 그 군중과 지역민의 불길한 예감 사이의 피할 수 없는 연결(265p)”을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군중들은 원래부터 폭도였을까? 그들이 폭도가 되도록 한 힘과 계기는 응집된 분노와 불안감에 선동이라는 불을 지핀 것일까? 벌루시커의 저항은 에스테르의 우울감과 다른 것일까?

 

중요한 시기에 실패한 듯 보이고 뒷걸음치는 듯 보이는 역사가 반복될 때, 또 격변의 시기가 찾아오면 사람들은 우울함과 무기력증을 보인다. 저항의 한 모습이다. 에스테르가 창을 닫고 자신의 연구에 집중하는 것, 플라우프 부인이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 벌루시커가 심적인 저항감을 느끼는 것 모두가 그런 모습이라 생각된다. 상충하는 감정인 듯 보이지만 내 속을 들여다보면 분노나 이런 저항감이 우울감과 함께 존재하는 것을 보게 된다. 세계의 부조리와 파멸을 보며 멜랑콜리는 지식인이 갖게 되는 정서이자 저항의 모습이기 쉽다. 과연 그것만이 유일한 저항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플라우프 부인의 공포로 시작하여 그녀의 장례식과 시신의 부패로 끝을 맺는 이 소설에서 작가는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 했을까를 생각한다. 격변과 혼란과 불온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 했던 그녀의 시도는 무화 되었다. 그 누구도 자신이 속한 사회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살 수 없다. 격변의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추운 날씨에 시신은 동면의 시간을 거쳐 이내 부패를 시작하고, 그 몸에는 폭동과 같은 혼란이 시작된다. 많은 단계를 거쳐 부패가 끝나면 죽음이후 진짜 죽음과 같은 고요가 찾아온다. 그러나 그 혼돈처럼 보이는 부패에도 질서가 존재한다.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소멸의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은 헤아릴 수 없는 명령으로 이루어진다. 이 마지막 부분이 우리에게 희망적 메시지를 주는 것인지 멜랑콜리 그 자체만 전하고 마는 것인지 각자에게 맡겨진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서 그래도 긍정적인 메시지를 얻는다. 우울의 감정은 역사의 부조리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그것이 언젠가는 다른 형태의 감정인 분노가 되고 역사를 다시 앞으로 가게 할 동력이 되게 할 것이다.

 

읽기 쉬운 작품은 아니었다. 가독성이 떨어지는 것이 번역의 문제일까 생각했다. 물론 단어 선택에 있어 아쉬운 점은 있다. 그러나 원래 문장 구조를 잘 살려야만 하는 작품이기에 훼손하지 않는 것이 번역의 첫 번째 원칙이 되어야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만연체이고 호흡이 긴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고, 콤마(,)로 이어진 여러 개의 절은 주어가 서로 다른 이미지들이 중첩된다. 긴 문장에 삽입구는 마치 지문들처럼 보이기도 하고, 다른 장소에서 일어나는 일 혹은 확대시킨 이미지를 보여주기도 하면서 다층적 의미를 생산한다. 영화로 본다면 몽타주 기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의식 속에 흐르는 생각과 함께 사건이나 확대 이미지가 병행된다.

예를 들자면

그런 뒤 이번 주, 두 번째 주를 맞아-그녀는 등 뒤에서 우드득 손가랄 관절을 꺾었다- 깔끔한 정원, 말끔한 가정 운동은 들끓는 열의로 조직, 착수되었고, 그래서 끔찍한 폭동이 일어난 지 닷새가 못되어, 가게들은 문을 열고 그 안의 선반들은 상업적 활동의 징후를 내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487P)”

와 같은 문장이다. 청결운동을 주도해가는 에스테르 부인의 권력과 욕망을 손가락을 우두둑 꺾는 소리와 이미지로 더 강하게 설득한다. 서로 대립되는 의식과 장면들이 한 문장 안에 배치함으로 공포, 긴장감, 기괴함의 효과를 낸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우울감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를, 우울하지만 계속 관심을 갖게 되는 것과 그것이 희망적인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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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6-02-28 1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의 쪽 수를 찾아보니 536쪽의 두툼한 책이네요. 그 두께감을 느낄 수 없게 찍은 사진이라 무효~~ㅠ 책의 두께로 꿈뻑 죽게해주세요~

그레이스 2026-02-28 22:02   좋아요 0 | URL
ㅋㅋ
그런데 사탄탱고 나 헤르쉬트랑 비교해보아도 그리 둑껍게 느껴지지 않아오
어쨌든 주문이 있으니 올려보겠습니다.

차트랑 2026-02-28 20:08   좋아요 1 | URL
저의 무리한 청을 들어주신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그레이스님~

그레이스님이 모르셔서 그렇지,
전에 읽으시고 올려주신 책들의 두께에 기가 눌려
꿈뻑 죽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닙지요~.

그렇게 엄메 기죽어~ 하고나면 상쾌한 기분이 든답니다.

(컴마를 남발하여 길게 쓰면, 전체 문장의 주술어를 교란시키는 효과가 있음은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편안한 저녁 되십시요~

오류는 수정했습니다~

그레이스 2026-02-28 20:2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yamoo 2026-03-01 0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엄청난 포슽잇! 정말 가열차게 릵으셨나봅니다. 저두 2권 갖고 있는데...아마도 읽지 못할듯해요. 수소문해 보니 가독성이 떨어진다, 재미없다는 평이 지배적이라..^^;;

그레이스 2026-03-01 10:46   좋아요 0 | URL
조금 힘들게 읽긴 했지만 읽고 나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네요. 상받을만 했다고 생각합니다.

레삭매냐 2026-03-03 1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러스너호르커이 작가의 책들은
사두기만 하고 아예 읽을 생각조차
못하고 있네요 ㅠㅠ

그래도 오늘 <죔레는 거기에> 새로
나왔다고 해서 그거 사러 갈려구요...
그랬다고 합니다.

그레이스 2026-03-03 10:41   좋아요 1 | URL
죔레... 고민중이예요
아직 헤르쉬트.. 를 못읽어서...;;
 


시대가 다르고 플롯이 다른 책들을 읽고 비슷한 감상과 결론을 내릴 때 나는 혹시 매너리즘에 빠졌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선택하는 책들이 다 비슷한 주제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무슨 책을 읽어도 같은 주제로만 결론을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동일한 주제에 갇혀있는 것은 실천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그 문제는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까? 아님 그 주제는 인간의 오래된 질문일까? 오래 전이든 현대이든 많은 작품에서 나는 같은 질문 앞에 멈추고 만다. 독자인 나는 모든 시대의 작가들과 함께 같은 질문 앞에서 돌아가기를 반복하는 타임루프 안에 갇힌 듯하다.

 

도스토옙스키의 백치와 카프카의 의 주인공들은 사회에 받아들여지지 않은 사람들이다.

백치의 미시킨 공작은 불우하게 태어났다. 좋은 후원자를 만나 간질 발작과 심리 치료를 위해 스위스에 머물다가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다. 기차 안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그는 자신을 백치라고 소개한다. 스스로를 백치라 말하는 미시킨 공작의 이 정체성은 자신으로부터 비롯되었을까? 페테르부르크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대하는가를 보면 그것이 경험을 통해 외부로부터 형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귀족들은 미시킨을 향해 정중한 태도를 보이나 그 예의를 갖춘 말에는 조롱을 가득 담고 있다. 미시킨이 자신의 간질 발작과 관련하여 사람들에게 말하는 내용은 독자에게는 연민을 자아낸다. 그러나 소설 속 청자들은 오히려 비웃음으로 대한다. 아마도 이런 반응은 도스토옙스키가 경험한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된다. 이 질병으로 인해 얼마나 고통스럽고 고독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미시낀은 무언가를 지나치게 민첩하고 섬세하게 이해하고, 또 그것을 기막히게 잘 전달할 줄 아(백치18. 141p)”는 사람이지만 사람들은 눈치 채지 못한다. 사람들의 갈등과 욕망과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선의를 발견하고 정직하게 접근한다. 그리고 자신을 희생해서 다른 사람의 곤란을 해결해주려고 한다. 그의 순수함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어야 마땅하지만 당혹감을 일으키고 반감마저 갖게 하는 듯 보인다. 그들은 욕망과 세속적 기준으로 그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치정극 같은 내용을 담은 이 소설은 러시아의 귀족계급의 몰락과 철도와 같은 문명의 발달, 자본주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외부로부터 한 사회에 들어온 인물 미시킨이 환대받지 못하고 이방인으로 배제되고 추방당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욕망이 목격되고 위선이 드러난다. 미시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탐욕이 그 사회를 이끌어가는 동력이 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백치를 스위스와 이탈리아에서 집필했다. 그 집필 기간 동안 첫딸이 태어났고 4개월 만에 죽었다. 돈에 쫓기던 시기여서 잠시 중단했던 작업도 다시 재개해야만 했다. 그는 스위스를 떠나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작품을 완성한다. 아이를 잃은 도시는 그에게 얼마나 잔인할까? 더구나 경제적 이유 때문에 글을 계속 써야만 했다. 그는 페테르부르크에서처럼 종일 벽으로 둘러싸인 방에서 글을 써야만 했을 것이다. 그는 그를 둘러싼 세계로부터 적대감을 느꼈으리라.

 

카프카의 주인공 K는 측량사로서 고용되어 성()을 찾아간다. 하지만 그가 기대하고 간 일자리는 없고 성주나 성의 일을 담당하는 관료를 만날 기회를 얻지 못한다. 그는 그 성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 한다. 자리를 찾는다는 것은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다. 성의 관청은 규칙과 절차로 운영되지만, 그 체계는 모호하고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다. K는 관청의 관리인(클람 등)과 접촉하려 하지만, 방식은 간접적이고 불확실하다. 그와의 사이에 끊임없이 나타나는 관리들은 그와 관청과의 사이를 더욱 멀어지게 한다. 그를 소외시키고 있는 이 관료사회의 부조리는 깊고 소외를 더욱 강화합니다. 사실 알고 보면 그 성의 주민들도 그 소외를 경험하고 있다. K는 그 사회에 환대받지 못하고,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밀려난다.

 

카프카에게 은 통과할 수 없도록 굳게 닫혀진, 절망적인 장애를 의미한다. 그 앞에서 존재는 기다린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다림이다. 에 나타난 이 소외의 부조리는 견고한 관료주의라는 문턱에서 발생한다. 이것은 작가 자신이 마주해야 했던, 이 세계의 닫힌 문이다.

 

K가 이 성에서 욕망하고 시도한 것은 측량사로서 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일은 학교에서 청소와 보조로서의 역할이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찾는 것이 실존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관됨을 깨닫게 된다. 사회적 요구와 개인의 욕망이 부딪히는 지점 중 하나다. 미완성인 이 소설에서 K의 기다림이 끝났는지 알 수는 없으나 부정적 전망을 지울 수가 없다.

 

인간의 실존을 부정하는 공동체의 부조리는 무엇일까? 우리는 이 세계(국가, 사회)로부터 어떤 소외의 경험을 하고 있을까? 우리 사회의 타자들이 기다림과 같은 상황에 놓인 대상은 무엇이고, 무시된 욕망은 무엇일까?

김애란의 안녕이라 그랬어는 이런 소외를 경험하는 우리 사회 타자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자본에 의해 만들어진 계급과 배제된 존재의 독백이다. 독백을 듣는 독자로서 내가 깊이 공감하고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것은 나 역시 같은 계급이고 마음속으로 같은 독백을 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인물들의 대화와 생각을 통해 우리가 느끼는 욕망과 그 욕망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독자로 하여금, 자본주의가 만드는 계급과 권력(홈파티」 「숲속 작은 집), 부동산 현상과 계급 간 격차의 심화(좋은 이웃, 빗방울처럼), 그로인한 실존의 문제와 존재의 고독(이물감, 레몬케이크, 안녕이라 그랬어)에 관해 들여다보게 한다.

 

, 아파트, 부동산으로 이제 우리는 여러 계급의 그들을 만들어 냈다. 욕망하고 기다리고 배제됨은 그들 때문이라는 원망이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의 소통할 수 없는 언어를 갖고 있다. 자본 정신에 의해 의미가 만들어지고 특정한 계급끼리만 유통되는 언어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저희들도 난장이랍니다. 서로 몰라서 그렇지, 우리는 한편이에요.”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폐지상자에 넣은 남편과 이 책을 집어올려 들춰보던 화자의 마음이 공명하며 나에게 전해져 온다. 그 감정의 실체는 치솟는 아파트 값에 의한 추방에 대한 것이 아닌 그 동안 붙들고 있던 신념을 잃어버린 상실감이다. 모두에게 떳떳한 선이라고 생각했던 신념!

 

나는 이상한 세계에 살고 있는가? 아님 내가 이상한가?

나는 자발적 타자인가, 소외당한 타자인가?

 

조금 우울했지만, 사실 다른 방법이 없기에 그 신념을 버리지 않기로 한다. 다른 방법이 없기에 같은 언어로 말하는 사람들 찾는다. 다른 방법이 없기에 기도한다. 세상이 변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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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6-02-10 1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이라면 역시 도스토옙스키를 읽어야죠. 몇년 전에 카형제들 읽고 한참 되었는데, 책소개 동영상에서 백치에 대한 소개가 있더라구요. 그래, 다음은 백치야! 했는데 그레이스님 서재에서 <백치>를 만나네요. 저의 다음 픽은 백치입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그레이스 2026-02-10 14:00   좋아요 1 | URL
우리에게 알려진 소설들 아닌 작품들 보면 훨씬 심리적이고 현대적느낌이 있어요.
더 좋은듯 해요~!
감사합니다 ~

차트랑 2026-02-23 0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시 봐도, 읽으시는 책의 두께로다가 늘 저를 압도하시네요. 올려주신 책의 두께를 보고는 껌뻑 죽습니다 ㅠ 더불어 고무적인지라 두께 좋은 책사진 환영합니다~!

그레이스 2026-02-23 09:5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압도정도는 아니예요^^
함께 읽다보면 도움이 되요.

레삭매냐 2026-03-03 1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난 주에 도끼샘의 <지하로부터의 수기>
랑 데뷔작이라는 <가난한 사람들> 조금씩 읽기
시작했답니다.

역시 도끼샘이라는.

그레이스 2026-03-03 10:40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역시 ! 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