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중간 중간 차를 멈추고 일자리가 있는지 물어보면서 이동을 하였다. 마침내 어렵게 일꾼이필요한 목화농장 주인을 만날 수 있었다. 주인은 목화 따는 일과 살 곳을 마련해 주었다. 앞으로 우리가살 곳은 일렬로 줄지어져 있는 여러 개의 암갈색 텐트 중 하나였다. 일꾼들의 숙소는 마치 군대 막사 같았다. 우리는 차에서 짐을 내리고 더러운 바닥에 두꺼운 마분지를 깔아 그 위에 넓은 매트리스를 놓았다. 밤만 되면 텐트 안으로 찬바람이 스며들어서 너무 추웠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아빠, 엄마, 로베르토, 트램피타, 토리토, 루벤, 그리고 나는 매트리스 위에서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잠을 잤다
- P97

새벽에 우리 형제들은 신발 옆에 놓여있는 선물을빨리 보려고 서로 앞다투어 일어났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선물 포장지를 천천히 뜯었다. 거기에는사탕 한 봉지가 들어 있었다. 로베르토 형과 트램피타, 토리토 그리고 나는 슬픈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우리 형제 모두 사탕 한 봉지를 선물로 받은것이다. 나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엄마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엄마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가득 고여 있었다. 그 때 엄마 옆에서 담배 연기만 길게 내뿜고 계시던 아빠가 담뱃불을 끄고 일어나셨다.
아빠는 매트리스 한 쪽 귀퉁이를 들어올리시더니 그밑에서 자수가 놓인 흰 손수건을 꺼내셨다. 그리고 엄마에게 건네 주시면서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메리 크리스마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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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은 제목도 깊은 사유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푸코의 마그리트의 그림에 부친 철학적 사유도 인상적이었다.
부유하는 화가의 시선을 포획하는 텍스트!
새로 출간된 마그리트 관련 책을 구매할까 고민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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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7-09 2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거실 벽면이 도서관!

그레이스 2021-07-09 22:42   좋아요 1 | URL
^^;; 책상도 지저분하고 그나마 정돈된 배경이어서 찍었어요;;;;

scott 2021-07-09 23:43   좋아요 0 | URL
진정으로 그레이스님 집이
광활한 우주점인것 같습니다.

혹쉬 천장 꼭대기를 지탱하고 있는 주황색은 미술사 전집???

그레이스 2021-07-10 07:09   좋아요 0 | URL
올제 시리즈예요^^

서니데이 2021-07-10 02: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도 소장도서 많으시군요. 서가가 빽빽하게 꽃혀있어요. 르네 마그리트 책 사진도 잘 봤습니다. 그레이스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1-07-10 07:1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서니데이님도 ~

다락방 2021-07-14 1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 님 배경이 너무 근사합니다! ㅜㅜ

그레이스 2021-07-14 11:00   좋아요 0 | URL
사는 사람은 가끔 숨막혀요
덜어내야 하는데 책마다 다 사연과 이유가 있어서...ㅎㅎ
 

"...단어는 마치매우 지적인 듯이 자네에게 말을 걸고 있는 듯하지만, 더 많은 것을 알려는 욕망에서 뭘 말하고 있는지 글에게 물어 보면 되풀이해서, 아니영원히 똑같은 것만을 이야기할 뿐이야."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 읽혀지는 텍스트는 기호와 의미가 당혹스러울 만큼 정확하게 포개지는 단어들의 나열에 지나지 않았다. 해석, 주석, 주해, 요지 설명, 연상, 반론, 그리고 상징적 · 우화적 의미 등은 텍스트 자체에서가 아니라 독서가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텍스트는 화가에 의해 그려진 그림처럼 ‘아테네의 달 만 말할 뿐이다. 그 달을 상앗빛 얼굴과 시커먼 하늘, 소크라테스가 한때 걷기도 했던 길에 널브러진 고대의 폐허 따위로 장식하는 것은 독서가의 몫이었다.
- P91

읽혀지고 기억되는 하나의 텍스트는, 구원이라 이름할 수 있는 그런반복 독서에서는 마치 내가 오래 전에 기억했던 그 시에 등장하는 얼어붙은 호수 대지만큼이나 단단해서 독서가의 횡단을 받쳐 줄 수 있다 같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 텍스트의 유일한 존재의 터가 마음 속이기 때문에 글자들은 마치 호수의 물 위에 쓰여진 것처럼 늘 불안정하고 유동적이다.
- P100

아득한 옛날 성 금요일에 콘스탄티누스가 발견한 것은 한 텍스트가갖는 의미는 독서가의 능력과 욕망에 따라 확대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의 텍스트를 대할 때 독자는 그 텍스트의 단어를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역사적으로 그 텍스트나 저자와는 전혀 관계 없는 의문을풀어 주는 메시지로 바꿔 버릴 수 있다. 이런 식의 의미 변질은 텍스트자체를 확장시키거나 퇴보시킬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텍스트에 독서가 자신의 환경이 스며들기 때문이다. 무지, 맹신, 지성,기만, 교활함, 그리고 계몽을 통해 책 읽는 사람은 원전과 똑같은 단어로 그 텍스트를 다시 쓰면서도 원본과는 다른 이름으로, 다시 말해 그것을 재창조해 내는 것이다.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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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한 가지 근본적인 의문은 미해결로 남았다. 유클리드와 갈레노스의 이론처럼 우리 독서가들이 책장에 적힌 문자로 다가가서 가을 포획하는 것인가, 아니면 에피쿠로스와 아리스토텔레스가 단언것처럼 문자들이 우리의 감각에 와닿는 것인가?  - P52

올리버 색스 박사는 이렇게 주장했다. "언어 구사 자연 그대로의 언어 구사는 단어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발표-단어에 의미를 충분히 실어서 입 밖으로 내뱉는 것-로 이뤄지는데,
여기에는 단순한 단어 인식 이상의 수많은 것이 포함된다."
독서에 대해서도 거의 똑같이 말할 수 있다. 텍스트를 따라가면서독서가는 이미 알고 있는 텍스트의 취지와 사회적 합의, 축적된 독서량, 개인적 경험과 개인적 취향 등으로 복잡하게 뒤얽힌 방법으로 텍스트의 의미를 파악한다.  - P60

검정과 흰색의 기호 체계에서 메시지를 뽑아내기 위해 나는 먼저 깜박거리는 눈으로 그체계를 파악하고 이어서 나의 뇌에서 뉴런들의 체인 이 체인은 내가읽는 텍스트에 따라 달라진다 을 통해 기호들의 암호 체계를 재구축하고, 내가 어떤 존재인가 그리고 어떻게 해서 그런 존재가 되었는가에 따라 그 텍스트에 뭔가 감정, 육체적 감각, 직관, 지식, 영혼 를불어넣는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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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7-08 0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책 굉장히 관심 가는군요 :-)
이런책 넘넘 좋아요!
 

서로 다른 생활조건이 맞물림으로써 초래되는 영향을 생물학에서는 가장자리 효과 edge effect라고 한다. 가장자리 효과는 ‘상반되는환경의 영향이 중첩되면서 생태계에 나타나는 효과‘를 말한다.
그리하여 기후변화의 시대에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는 방법을알아내려 하는 연구자들은 가장자리 효과에서 힌트를 얻고자 한다. 생물 다양성을 증진하는 것은 생태계 안정에 매우 중요하기때문이다. 기후변화 때문에 어떤 식물의 번식 속도가 느려지면 다른 종의 식물이 그들이 하던 과제를 떠맡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야생에서 새로운 종의 탄생을 관찰하기란 쉽지가 않다. 경계를이루는 생태계의 영향으로 새로운 생물이 탄생하는 중요한 순간은 보통 인간의 눈에 가려져 있다. 숨어 있음과 신비로움은 이런창조 행위의 본질적인 특징으로 보인다.  - P41

한나 아렌트는 매 순간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행동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행동능력이 있기에 뭔가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질적인‘ 행동이 불가능해 보일때라도 ‘정신적인‘ 행동이 가능하다. 관점을 바꾸거나 같은 삶의상황을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면서 말이다. 정신적인 행동으로도우리는 뭔가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희망은 더 나은 시간을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습관에서 한 걸음 벗어나는 것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더 유리한 시간을 기다리는 것 또한 희망이다. "삼촌이 나를 편다면, 난 삼촌을 죽일 거예요. 11 에거는 삼촌에게 그렇게 말한다. 이런 반항의 행위에서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에거의 희망이 드러난다. 에거는 다가올 미래가 어떻게전개될지 알지 못한다. 그의 행동으로 일상의 익숙한 진행을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 자신의 편이 되어준다. 이 순간 변화가 가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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