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삶에 대한 욕망>은 앤소니 퀸이 연기한 ‘고갱‘ 의 배역을 통해 현대미술과 그 제작과정의 젠더화 작용(gendering)을 극화(劇化)하고 있다. 고갱을 포함해서 플로베르와 반 고흐에 이르는 19세기 후반에 예술가라는 직업관과 남권적 성에 대한 개념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는 증거는 충분하다. 캐롤 던컨(Carol Duncan)이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모더니즘은
‘도시의, 그리고 도시 안의 여성‘ 에 대한 예술가 남성‘ 의 관계를 통해 문자로, 또 상징적으로 나타났던 남성성의 선언이었다.
미넬리는 모더니즘이 형성되는 순간에 영화라는 대중문화를 통해 현대미술의 신화 속에서 남성성의 상징적 중요성을 피력하는데 고갱이라는 인물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미술사와 같이 상위문화의 담론은 표현에 있어 한층 조심스럽고 애매하고 그러므로더 함축적이다. 미술사는 젠더(gender), 성(sexuality), 그리고 성적차이의 문제를 억압하면서, 동시에 후기 인상주의라는 아성에서성전화(聖典化)한 예술과 예술가들의 성에 대한 거장들의 무비판적 축하의식과 대리적인 자기동일시를 통해 위의 세 가지 모두의 가부장적인 체제들과 연합하였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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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07-20 19: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고갱이 타히티에 갔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그게 화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소설 속 이야기 같았어요. 물론 비슷한 이야기도 있을 것 같지만.
오늘은 많이 더운 화요일이이예요.
그레이스님, 시원하고 좋은 저녁시간 보내세요.^^
 

재개발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동네에 돌기 시작한 것은 이듬해 봄품이었다. 소문이 구체화될수록 동네의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져갔다. 부모님은 우리가 살던 동네가 하루빨리 허물어져버리길 바랐고, 그것이 순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부모님은 골목을 쓸었고, 골목에서 누군가를 마주치면 묵례를 했다. 나는 우리 중학고 졸업생 중 소수만 진학할 수 있었던, 강 건너의 사립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말수가 조금 더 줄었다. 우리 동네까지는 스쿨버스가 오지 않아서 다른 아이들보다 더 일찍 일어나 스쿨버스가 다니는 곳까지 일반 버스를 타고 가야만 했는데, 그래서 나는 몇 배나더 피곤했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친 뒤 버스를 갈아타고 밤늦게집에 오는 날들이 많았기 때문에 해지와 만날 수 있는 시간도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간혹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조퇴를 하기도 했지만 그럴 때는 해지가 집에 없기 일쑤였다. 그렇게 일찍 집에 돌아와봤자 혼자 있게 되는 날들에는 처음 이사왔던 날 아버지가 내게 아파트 단지를 보여주었던 옥상에 쭈그려앉아, 사라져가는 태양의 빛줄기가 쇠락한 골목과 남루한 벽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풍경을 바라보았다. 마치 검버섯 핀 노인의 얼굴을 쓰다듬듯이..
그러면 그 손길을 따라, 동네는 쪽잠을 청하는 고단한 노인처럼 - P93

주름이 깊게 팬 눈꺼풀을 천천히 감았다. 해가 지고 나면 대기에남아 있던 온기도 노인의 마지막 숨결처럼 느리게 흩어져갔다. 몸에 한기가 깃들어 더이상 앉아 있기가 힘들어지면 그제야 나는 쭈그렸던 다리를 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초라한 골목이 어째서 해가 지기 직전의 그 잠시 동안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워지는지, 그때 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다만 그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는동안 내 안에 깃드는 적요가, 영문을 알 수 없는 고독이 달콤하고또 괴로워 울고 싶었을 뿐.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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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7-18 1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구 문장이 이렇게 좋은가 검색해 봤더니 백수린 작이군요. 어느 소설집에서 그의 단편을 읽을 적이 있어요. 우울한 사춘기 시절이 느껴지는군요. 때로는 달콤하고 때로는 쓴 맛이 느껴지는...
누구나 느껴봤음직한.

그레이스 2021-07-18 15:20   좋아요 1 | URL
여기 작품 다 좋아요
그 중에도 <시간의 궤적>이 좋았어요
 

하지만 지금처럼 이곳으로서는 드물게 폭우가 쏟아지고, 코를 골며 잠든 브리스의 옆에서 홀로 긴 시간 뒤척이는 새벽이면 나는 오래전 비아리츠에서 내가 잃어버린 반지를 찾기 위해 언니와 식당으로 되돌아갔던 일을 떠올린다. 다행히도 화장실의 세면대 위에 그대로 놓여 있던 반지를 찾은 후 우리가 식당 밖으로 나왔을 때 거리에는 장대비가 퍼붓고 있었다. 어쩌면 좋을지망설이는 사이, 언니가 먼저 우산을 펼쳐 들고 빗속으로 걸어들어갔다. 우산을 써봤자 아무 소용도 없는 비였다. 언니는 이내 우산을 접더니 비를 쫄딱 맞은 채 나에게 빗속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그리고 우리는 폭우 속을 달렸다. 웃음을 터뜨리면서. 머지않아 거짓말같이 비가 그치고 해가 날 거라는 사실에 관심조차 없는사람들처럼, 지금도 그날을 추억하면 빗속을 뛰어가는 언니와 나의 모습은 손끝에 닿을 듯 생생하고, 그러면 나는 어김없이 울고싶어진다.
- P39

지호와 나는 어려운시기를 지나고 있었고, 일상을 벗어나서, 우리가 가난하지만 행복한 신혼부부였던 시절을 알고 있는 당신들과 함께 지내면 우리의 관계가 거짓말처럼 예전같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싶었던 거겠죠. 나는 당신 부부와 함께 보낸 그 며칠 내내 나와 지호의 관계에 골몰했어요. 그런 까닭에 그 긴 시간 동안 쌓인 침묵의 벽을 깨고 당신이 나를 만나자고 했을 때는 당신에게도 심경의 변화가 일어날 만한 사정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나는 한 번도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배낭여행을 하던 중 당신 부부를 처음 만나 함께 지냈던 시간은 고작 사흘, 그로부터 몇 년 후 지호와함께 다시 찾은 베를린에서 체류했던 시간은 오 년, 고작 오 년 사흘을 함께 보냈을 뿐인 우리는 서로와의 재회에서 무슨 기적을 바랐던 것일까요? 우리가 감당하며 살아갈 미래를 생각하면 오 년도사흘도 허망하기는 매한가지인 시간일 뿐인데요.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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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알라딘에서 최근에 산 책들입니다.
<사기>를 읽었으니 <한서>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에 한서 열전이 나왔네요!
벽돌두께로 3권! 일단 알라딘에서 리뷰 당첨 상금으로 한권 샀습니다.
나머지는 한권씩 사기로 계획중이구요
어차피 1권 읽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테니.
냐쓰메 소세키 전집은 <마음>과 <그후>를 빼고는 다 있습니다.
그 두권은 웅진이랑 민음사 걸로 있는데... 아시죠?
왠지 살것만 같은 예감!
이가 빠지것 같아서 말이죠^^
도련님과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도 갖고 있었는데 샀으니까 결국 사겠죠?^^;;
양심은 있어서 중고 기다렸다 샀습니다. ㅋ
그리고 나머지는 플친님들 추천 책들과 중고 알림 신청해놓은 것 들요.

아! 그리고 <호프만의 허기>는 다락방님 리뷰 읽고 도서관에서 빌려왔다가, 구매하려고 장바구니에 넣어 놓았었는데 집에서 발견했어요.^^

커피 마시면서 멍때리고 앉아있다가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글자를 제 눈이 자각한 순간 이 책을 발견한거죠. ‘보는것‘에 대한 감각의 역사가 기억나는 순간이었습니다!ㅋㅋ
남편이 오래전에 사다논 책이래요. 오랫동안 우리집에 있었다고 하네요;;

아침부터 에어컨 켜고 앉아 책놀이 하다가, 이 무더위에 출퇴근하고 실외에서 일하고 계시는 분들께 죄송한 생각이 듭니다.
모두 건강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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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7-14 10:57   좋아요 9 | 댓글달기 | URL
다른 사람들이 책 산 거 구경하는 게 세상 제일 재미있어요. ㅋㅋ
한서열전 다 읽으시면 꼭 알려주세요. 저 벽돌책의 위엄이 대단합니다!!

그나저나 호프만의 허기 오, 저는 모르는 아주 오래도니 버전인듯 합니다. 그레이스 님도 재미있게 읽으셨으면 좋겠어요. 아마도 리뷰는 폴스타프 님의 것이 아닌 제 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폴스타프 님은 아직 안읽으셨을걸요? ㅎㅎ)

그레이스 2021-07-14 10:59   좋아요 6 | URL
아!
그런가요?
두분이 항상 리뷰와 댓글로 함께 등장하셔서...ㅋ
제가 착각했나봅니다
위에 글 수정하겠습니다
ㅎㅎ

그레이스 2021-07-14 11:07   좋아요 3 | URL
그러네요
방금 리뷰 다시 확인했습니다.^^
죄송해요.

다락방 2021-07-14 11:37   좋아요 4 | URL
어휴 무슨 말씀이세요. 죄송하실 거 전혀 없습니다!! 저는 리뷰 읽고 책 사놓고서는 왜 샀는지 완전 다 까먹어버려요 ㅎㅎ

mini74 2021-07-14 11:0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한서열전 ㅎㅎㅎ 흉긴데요. 타타르인의 사막. 현대미학강의 ㅎㅎ 반가운 책도 보이고.~ 저도 한서열전 궁금합니다 저 두께에 세권이기까지 하다는 거죠 ? ㅎㅎ

그레이스 2021-07-14 11:10   좋아요 5 | URL
사실 21세기 북스인가에서 한서 완역 10권 도서관에서 빌려 눈으로 훑기만 했는데요
민음사 저자 강의 듣고 사기로했어요

scott 2021-07-14 11:1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우와 ! 그레이스님 7월 무더위 이책들과 집콕독서의 시간을!!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서 한권씩 독파하는 스릴까지!
소세키 전집 너머로 보이는 언덕위의 구름까지
제가 읽은책 안 읽은책 손가락으로 꼽아봐여 १✌˚◡˚✌५

그레이스 2021-07-14 11:30   좋아요 6 | URL
앗 시바 료타로!
눈밝은 scott님
전 아직 못 읽었어요
그냥 배경일뿐예요
남편이 좋아하는 작가라...^^

얄라알라 2021-07-14 11:18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현암사 책을 많이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한권한권 북디자인이며^^ 그레이스님 서가에서 현암사 책들이 더 우아한 그레이스로 자리 잡았네요^^

그레이스 2021-07-14 11:31   좋아요 5 | URL
😀

붕붕툐툐 2021-07-14 12: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기 읽고 싶은데~ 어디 츨판사로 읽으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용?ㅎㅎ 진짜 한서열전의 위엄~👍👍
낯익은 책이 보이면 왤케 반가운지-읽지도 않았건만ㅋ- 그레이스님 행복한 독서 예약이네용~ 남편분이 사둔 책 발견이라니~ 로맨틱함!!^^

그레이스 2021-07-14 14:05   좋아요 4 | URL
사기는 까치 민음사 올제 세개 출판사 병행했어요
한자어가 힘드시면 민음사가 좋아요

붕붕툐툐 2021-07-15 00:20   좋아요 2 | URL
세 개 병행~ 역시... 수준이 수준이...👍👍👍👍
감사합니다. 꼭 도전해 볼게욤^^

새파랑 2021-07-14 13: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은 무려 5권이라는~!! 저도 소세키 전집 가지고 싶어요 ㅜㅜ

서재가 서점 같은 느낌이 드네요 완전 부러워요 👍👍

그레이스 2021-07-14 14:07   좋아요 3 | URL
분류해서 꽂기는 하는데 있는 책 찾는것도 하루종일 걸릴때가 있어요 ㅋ

겨울호랑이 2021-07-14 13: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서열전>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두께가 만만치 않네요. 그레이스님 덕분에 책의 대강을 짐작하고 갑니다.^^:)

그레이스 2021-07-14 14:03   좋아요 4 | URL
함께 읽어요~~

독서괭 2021-07-14 13:5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책 발견하기˝- 장서가들의 숙명인가 봅니다. 전 아직 그정도는 아닙니다. 더 많이 사야겠습니다(?) ㅋㅋ 한서열전 두께가 굉장하네요;;

그레이스 2021-07-14 14:03   좋아요 3 | URL
ㅎㅎ
망겔은 서점 피그말리온에서 책을 숨겨가기도 하더라구요
그에게서도 숙명같은 책에 대한 탐심이....!
ㅎㅎ

서니데이 2021-07-14 23: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사마천의 사기는 두꺼울 것 같았지만, 반고의 한서도 상당히 두꺼운 책이네요.
생각했던 것보다 나쓰메 소세키의 책이 크게 보이기도 하고요.
사진 잘 봤습니다. 그레이스님, 더운 하루 시원하고 좋은 밤 되세요.^^

그레이스 2021-07-14 23:57   좋아요 3 | URL
서니데이님도 무더운밤 안녕히 주무세요~

희선 2021-07-15 01:3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집에 있는 책을 사실 뻔했군요 그레이스 님이 사신 게 아니어서 있는지 몰랐지만, 마침 그 책이 보였군요 그렇게 찾아서 다행입니다 그레이스 님과 겹치는 건 나쓰메 소세키 책 정도네요 그렇게 많이 못 보고 잘 못 봤지만... 보이지 않는 것도 보면 좋겠지만,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는 듯합니다

사신 책을 책장에 꽂아두면 기분 좋을 것 같네요


희선

그레이스 2021-07-15 05:18   좋아요 3 | URL
택배박스 뜯을 때가 제일 좋구요
꽂아놓을때도 뿌듯하구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압박감이 오죠^^
언제 읽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하지만 예뻐요 ~♡

하나의책장 2021-07-16 01: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책들이 가득 든 택배 언박싱할 때가 제일 신나죠😚
전 벽돌책 너무 좋아해요. 거의 실패한 적이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ㅎㅎ
뭔가, 책들로 가득할 것 같은 그레이스님 책장, 문득 궁금해지네요❣
 

관광의 역할은 전쟁, 침략, 피난이라는 인간의 끝없는 행렬을 놀이로 재구성하는 것, 이주의 비극을 욕망과 지출의희극으로 재공연하는 것이다. 관광객에게서 순례자의 메아리가울리기도 한다. 물론 세속의 관광객이 찾아다니는 것은 더 다양하고 더 변덕스럽다. 예컨대 태양을 찾아다닐 수도 있고 특정한 지형이나 기후를 찾아다닐 수도 있고 축제를 찾아다닐 수도있고 과거의 흔적과 유물을 찾아다닐 수도 있다. 관광객은 묘한인종이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목적지를 찾아 헤매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여행의 진정한 목적과 묘미는 그저 집을 떠나 떠돌아다니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 P49

스위프트는 영국 성공회의 하인이자 대성당의 주인이었다. 성 패트릭 대성당의 남쪽 통로에서 바라보면, 벽면 상단에는 스위프트의 묘비명이 새겨진 검은색 대리석 패널이 걸려있고, 그 좌측 하단에는 퉁퉁한 이목구비가 강조된 흰색 반신상이 있고, 그 앞 바닥에는 그의 유골이 묻혀 있었다. 스위프트본인이 라틴어로 쓴 묘비명을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는 이렇게 옮겼다.
스위프트는 저 안식처에 닿았으니흉폭한 분노에가슴 찢길 일은 이제 없으리라이승에 취한 여행자여 용기가 있거든그가 갔던 길을 가라그는 인간의 자유를 섬기는 하인이었다.
자신의 무덤이 관광명소가 되리라는 것을 예견한 듯한 묘비명이다.
- P53

식민지에서의 사나운 탐욕스러움과 제인 오스틴의
『맨스필드 파크에서의 숨 막히는 무사안일함 사이의 인과관계를 분석해낸 것이 에드워드 사이드였다.(소설에 등장하는 나태한 젠트리 계급은 소설에 등장하지 않는 노예 농장의 수익에 기생한다.)하지만 스위프트는 18세기에 이미 이런 종류의 지도 개편 작업을 하고 있었다. 스위프트 자신이 속해 있는 우아한 사교계가뒤에서, 밑에서, 밖에서 어떻게 보이는가를 까발려주는 작업이었다. 유머 그 자체가 이중적 시야를 갖는 방법, 당위와 실상의간극을 감지하는 방법일 수 있다. 당위와 실상의 간극은 논리,
언어 등의 형식 요소에도 존재하고 사회생활, 정치생활의 위선에도 존재하는 만큼, 유미라는 동력은 단순한 농담에서도 작용할 수 있고 장문의 풍자에서도 작용할 수 있다. 스위프트의 시에서 유머가 고상함과 저속함을 끊임없이 오가는 데 있다면, 그의 겸손한 제안(A Modest Proposal)」에서 유머는 식인을 아일랜드의 빈곤에 대한 합리적 해법으로 제시함으로써 기득권 세력의 착취 방식들이 본질적으로 식인과 다르지 않음을 까발리는데 있다. 유머를 모르는 사람들은 대개 기성 질서의 수혜자들이었고, 유머는 언제나 그 간극을 간파할 수 있는 사람들의 놀이이자 연장이자 무기였다. 더블린에서 바라본 세상은 비극적, 영웅적, 감상적일 때가 많았지만, 뼈 아프게 웃긴 경우도 있었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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