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 자폐는 어떻게 질병에서 축복이 되었나
존 돈반.캐런 저커 지음, 강병철 옮김 / 꿈꿀자유 / 2021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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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두께에 놀랐다. 서문과 1장에서 1935년 처음 보고된 자폐아 도널드의 이야기와 자폐연구의 초기의 이야기를 읽어 본 소감은 두께만큼 읽는데 오래걸리지 않을것 같다는 것. 문장이 쉽고 내용도 충실해서 이 두께가 부담스럽지 않다. 왜 이제야 번역이 되었을까 의문이 든다. 꼭 읽어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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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퀼로스의 극을 보던 청중들이 복수의 여신의 등장에 기절할 정도의 공포를 느꼈다는 것은유명하다. 시인 이비코스 죽음 후, 복수의 여신의 등장과 때마침 두루미의 출현은 청중이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고 살인자들은 그 공포에 못이겨 소리를 지름으로 발각된 기록도 신화와 함께 전해진다.
고대의 시가 가진 디오니소스적인 힘은 지워지고, 시는 얌전히 길들여졌다.






시가 불러일으키는 격렬한 정서적 반응을 아리스토텔레스는 ‘공포phobos와 연민‘이라 부른다. 원어에 따르면 ‘공포란 급작스런 놀라움, 즉 ‘경악‘에 가깝다고 한다. 연극을 보며 ‘경악‘을 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될지 모르겠다. 온갖 허구에 익숙한 우리야 공포영화를 봐도 눈 하나 깜짝 않지만, 그리스인들에게는 재현과 현실 사이의 존재론적 틈이 그리 넓지 않았다. 가령 눈앞으로 열차가 달려드는 영화를보고 경악하는 뤼미에르 형제의 관객들과 비슷했다고 할까.
‘연민‘ 역시 그저 불행을 당한 이웃을 향한 동정 이상의 것이었다.
우리는 남의 불행을 느낄 때조차도 감정이입을 통해 간접적으로 해야 한다. 하지만 개인들 사이에 아직 높은 벽이 없었던 그리스인들은남의 불행을 거의 직접적으로 느꼈던 모양이다. 말하자면 타인의 불행을 언제라도 내게 떨어질 수 있는 내 불행으로 느끼는 것. 그게 바로 ‘연민이었다. 따라서 이 역시 우리의 ‘동정‘과 달리 매우 강렬한 감정 상태였음에 틀림없다.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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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모리스 찿다가 도서관에서 데려온 책.
ㅠㅠ 읽을건 많은데 이런 책 걸리면 그냥 못 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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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6-10 16: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거
저 미니북 원서로 갖고 있는데
소장 가치 !1000배

scott 2021-06-10 23:54   좋아요 1 | URL
한국 번역본이 더 비싸네요
사악한 가격 책정!
구매욕을 화악 떨어뜨리다니 !

그레이스 2021-06-10 16: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지고 계신 것은 크리스토퍼 드 하멜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일것 같네요
저도 번역된거 탐을 냈으나 책값이 비싸서 입맛만 다시고 있습니다.
당장 필요한 책은 아니고, 소장가치가 있는 책이라 언젠가는 사려고요.^^

그레이스 2021-06-10 16:12   좋아요 1 | URL
원서 제목이
meetings with remarkable manuscripts 네요

그레이스 2021-06-10 16: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이광주의 <아름다운 책 이야기>.
이 책도 좋긴 한데 , 그 책만은 못할듯요^^
 

우연히도 창문 밑에서 자라던 월계수 관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그는 더 이상 글을쓸 수 없었다. 자연의 초록색과 문학의 초록색은 전혀 별개이기 때문이다. 자연과 문학은 본래 서로 적대적인 듯하다.
이 둘을 붙여 놓으면 서로를 산산이 찢어발긴다. 지금 올랜도의 눈에 들어온 초록색은 그의 운을 망쳐 놓고 운율을 쪼개 놓았다. 더욱이 자연은 그 나름의 술수를 부린다. 일단 창밖의 꽃들 사이를 날아다니는 꿀벌이나 하품하는 개, 지는태양을 바라보면서 앞으로 내가 석양을 얼마나 많이 볼 수있을까 등등의 생각을 하게 되면 (이런 생각은 너무 잘 알려져 있어서 자세히 쓸 만한 가치도 없다) 펜을 내려놓고 망토를 걸친 뒤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 나가게 되고, 그러다가 페인트를 칠한 궤에 발을 부딪힌다. 올랜도는 약간 재바르지못했으니까.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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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6-08 01: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앗 저 다음 버지니아 울프 책으로 사놓은게 올랜도인데 먼저 시작하셨군요. 응원! 응원! 열심히 하겠습니다. ^^

그레이스 2021-06-08 08:23   좋아요 1 | URL
예~
같이 읽어요~
 

다시 천천히 중간부분부터 읽었다.
별점을 하나 더 올려야겠다는 생각이든다.
도입부분이 평이해서 아쉽긴 하지만 뒷부분으로 갈수록 깊어지고
, 길에 대한 책들과 사람들 역사 이야기들이 좋다.

나는 헤라클레이토스가 이 유명한 문구로 도대체 정말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누군가 그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늘 알아들은 척 고개를 끄덕이며 가능한 한 빨리 대화의 주제를 바꾸려고 애썼다. 강이 늘 새로운 것은 강을 통해 새로운 물이 끊임없이 흐르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너무 명명백백해 보인다. 그런데 그 말이 도대체 뭐가 그리 대단하단 말인가?
헤라클레이토스는 역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한 수 위에 있었다. 오솔길이 시작되는 지점 근처에 앉아 있을 때, 문득 헤라클레이토스가 그 문구를 통해 말하려고 하는 의미가 내게 새롭게다가왔다. 변하는 것은 강이 아니다. 그 강에 발을 담그는 사람이바뀌는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하고 있는 것은 강과 물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똑같은 장소를 두 번 방문할 수없는 것은 그곳에 가는 사람에 의해서 영향을 받아 그곳이 바뀌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똑같은 존재일 수 없다. 그렇다면 누구든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말은 "누구든 같은 길을 두 번 걸을 수 없다"로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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