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14 - 그리스도의 승리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4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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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황제도 단 몇 줄로 끝이 날 정도로 간단하게 처리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몇 페이지로 소개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로마사라는 역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데 이번 14권에서는 기독교라는 종교를 선대에 이어 충실히 심은 콘스탄티우스황제를 뒤이은 율리아누스 황제같은 경우에는 그의 치세기간은 겨우 3년이라는 기간 밖에 안되었지만 상당히 비중있게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가 로마를 지배하는 지배 이데올로기로 된지도 이미 반세기가 지날 정도로 도도한 강물이 되어 그 흐름을 막거나 변경시키기는 힘들다고 볼 때 짧은 3년이라는 시간동안 잠시 조약돌과 같은 둑으로 막은 것에 지나지 않는 율리아누스 황제의 치세를 꽤 길게 소개한 것은 아마도 로마라는 위대한 제국이 기독교라는 이데올로기기(종교)에 의해 결국 망하고 만 것에 대한 반발이 조금은 있지 않을까 싶다.

 

시오노 나나미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로마사에 대해 서술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기독교에 대해서는 긍정과 부정이라는 시선에서 긍정보다는 부정적으로 좀 더 치우쳐져 서술하고 있다고 본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나도 기독교라는 종교를 갖고 있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객관적인 시선으로 판단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로마라는 체계를 볼 때 기독교 국가로 변하면서 절대왕정으로 변하고 원로원과 시민들을 의식하며 통치를 했던 것에 비해 거대한 궁으로 둘러쌓여 외부와는 차단되어 그들만의 리그로 변질되어 황제의 측근들의 입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로마로 변한 것은 무척 아쉽고 제국이였던 로마가 그립다고 느끼며 책을 읽게 되었다.

 

로마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로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이제 로마는 국가의 이름이 되었을 뿐이고 로마라는 수도로써의 도시 기능은 완전히 사라지고 로마 도시가 책에서 언급되는 것도 점점 사라졌다. 오죽하면 황제로 등극하여 국가를 다스리면서도 로마를 방문하지도 않고 몇 년이라는 기간이 지나 겨우 로마를 방문하고 오랜 세월동안 로마에 황제가 방문하지도 않아 로마에 사는 시민들이 로마로 입성하는 황제를 보는 것이 낯설을 정도면 로마라는 국가로 불리울 수 없지 않을까 한다.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되니 로마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한 역사학자들이 로마의 연구를 콘스탄티누스 시대부터는 하지 않고 접었다고 하는 겻도 이해가 된다. 지속적으로 황제와 대립각을 세우기도 하고 견제기능으로 로마라는 국가를 이끌던 원로원은 이제 존재자체가 희미해졌고 아직까지 그 기능을 유지하고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로마인 이야기 14권에서는 언급자체가 거의 없다.

 

실제로 이런 궁금증을 갖게 되었을 쯔음에 원로원에 대해 언급하는 문구를 읽고는 시오노 나나미도 쓰다보니 '아,, 원로원에 대해 책에서 이제 거의 쓰지 않는구나'하며 원로원에 대해 굳이 언급한 것이 아닐까한다. 이제 원로원이라는 조직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가 되어 로마라는 절대왕정으로 변한 시대에는 그 용도가 폐기되었기 때문이다. 과연, 이 당시에 원로원들은 도대체 모여서 무엇을 하였는지 무척 궁금하다.

 

그래도 원로원이라는 이름은 모여 국가와 사회에 대해 토론을 하든지 잡담을 나누던지 했을 텐데 말이다. 로마에 대한 사료가 엄청나게 많은 것을 볼 때 이 당시 원로원들이 어떤 이야기들을 모이면 하고 토론했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을 텐데 황제와 중요인물 중심으로 서술하다보니 제외시킨 듯 하여 좀 아쉽다.

 

마지막 단락의 암브로시우스주교를 타이틀로 삼은 것은 이전까지 황제중심으로 서술되어 로마에 대해 이야기가 진행된 것에 비추면 당시의 황제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인물로 로마의 중심이 황제에서 주교로 변한 것을 알리는 것이 아닐까 한다. 다만, 철저하게 인물과 정치라는 관점에서 이야기하다 보니 주교라는 관점보다는 정치적이고 자신이 속한 단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물론, 현재도 주교라는 지위가 단순한 종교적 지도자이기 보다는 어느 정도 정치적 인물인 것은 맞지만 말이다.

 

실질적으로 14권에서 로마라는 통일된 이름의 국가는 사라진다. 15권부터는 동로마, 서로마라는 이름으로 불릴테니 말이다. 역사에 가정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지만 기독교라는 종교가 로마에 침투하지 않았다고 해도 로마가 지속적으로 존재하지는 않았을 것이본다. 결국, 로마는 야민족의 침입으로 -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대대적인 이민이겠지만 - 멸망하는데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야만족들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존재하여 나타난 것일까?

 

동양의 한 나라에 속한 곳에 살고 있어 서양 세계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무넹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그 야만족이라는 민족에 대한 정보는 무척 적다. 분명히 유럽의 역사에서는 그에 관련된 정보가 많을텐 데 이에 대해서도 한 번 관련 자료나 책을 읽어 보고 싶다. 이런 야만족들의 침입으로 인해 멸망한 것인데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를 볼때면 선진문화를 갖고 있는 선진국이라 불리우지만 지금 유럽의 선조들인 야만족에 의해 멸망했다는 것을 보면 중국,한국,일본은 참으로 대단한 역사를 갖고 있는 나라가 아닐까 한다. 그 오랜 기간동안 자신의 역사와 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보존한 것을 보면 말이다.

 

로마인 이야기는 이제 딱 한권으로 끝을 맺는다. 아니, 실제로 로마인 이야기는 14권에서 끝났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한다. 15권에서는 로마라는 국가의 멸망과 에필로그에 해당된다고 하는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을까 예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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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버핏의 실전 주식투자
메리 버펫.데이비드 클라크 지음, 최준철 옮김 / 이콘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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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렌 버핏의 책을 꽤 많이 읽었다고 자부하지만 여전히 읽지 않은 워렌 버핏의 책은 무궁무진하다. 정작, 본인이 직접 저술한 책은 없고 유일하고 구술했다고 할 수 있는 '스노우볼'을 읽었기에 더이상 워렌 버핏에 대한 책은 읽지 않아도 된다고 보지만 워렌 버핏의 책을 다시 읽는 것은 초심을 잃지 않고 다시 한 번 내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서가 아닐까 한다.

 

 실전 주식투자라는 제목으로 예전에 읽었던 책이 있는데 이 책은 그 후속편이라고 하는데 정확하게 저자가 증보판 낸 것을 번역한 것인지 완전히 새롭게 펴 낸 것을 번역하여 출판한 것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워낙 예전에 출판된 것이였고 읽었던 것도 무척 오래된 기억 저편이기는 해도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읽었던 내용이 다시 기억되었고, 무엇보다 책에 나온 내용이 이제는 보편적으로 가치투자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쓰이고 있는 방법이다.

 

다만, 가치투자를 하는  사람들에게 쓰이는 방법이라고는 하지만 사업을 보는 내용이나 사업의 미래를 보는 혜안이 아니라 회사의 가치중에 저평가인지 고평가인지에 대한 부분은 숫자놀음이라고 할 수 있지만 처음 주식 투자를 하는 사람들에게 - 차트 투자가 아닌 재무제표로 투자를 하는 - 책에 나온 내용을 참고한다면 최소한 좋은 기업을 발견하여 연구하고 언제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원하는데 어렴풋이나마 도움이 된다.

 

물론, 이런 부분은 무척이나 답이 없는 숫자놀음이다. 투자라는 것 자체가 과학이라기보다는 예술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래서이다. 책에 나온 국채 수익률은 분명히 누구나 쉽게 적용할 수 있는 절대 수익률이 될 수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해에 국채 수익률이 3%대라면 3%로 하고 이 수익률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저축은행 금리를 갖고 할 수도 있고, 아님, 본인이 생각하는 절대 수익률을 근거로 매수하려는 회사에 들어갈지 말지에 대해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책에 나온 방법 말고도 워렌 버핏이 쓰고 있다고 하는 여러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그런 방법들이 대부분 회사의 본연의 가치와 미래에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방법이 아니라 숫자상으로 현재 시장에서 사람들이 그 회사에 매기고 있는 주가를 근거로 이 주가가 고평가인지 저평가인지에 대해 논하는 방법이다.

 

누군가 워렌 버핏은 이런 방법으로 그 회사의 숫자상 가치를 평가한다고 이야기할때 워렌 버핏은 자신의 연례보고서를 통해 공식적으로 부인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 어떤 방법도 자신은 그 방법을 쓰고 있다고 말하기보다는 자신은 그런 방법을 쓰지 않는다고 하거나 그 방법에 대해 오히려 반박하고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러니, 워렌 버핏이 어떤 방법을 쓰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그나마, 이 책에 나온 국채 수익률을 근거로 미래 가치와 현재 가치를 측정하여 하는 방법이 가장 쉽고 계산하기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PER라는 것 자체가 현재 시장에서 그 회사에 투자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담긴 것이라 그 회사의 평균 PER를 근거로 하는 방법도 어느 정도는 타당성을 갖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다만, 이런 모든 방법이 절대적인 방법도 아니고 아주 조금의 숫자 놀음으로도 현재의 주가가 고평가인지 저평가인지에 대해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처음 주식투자를 가치투자라는 개념으로 출발하는 사람들에게는 숫자 놀음에 불과한 이런 방법이라도 이 방법으로 시작하여 투자를 한다면 최소한 투자의 제 1원칙이라고 하는 잃지 않는다는 법칙을 잘 지킬수 있다고 본다. 말도 안되는 개념으로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회사가 갖고 있는 모든 자산이 100억인데 현재 이 회사가 시장에서 90억에 거래되고 있다면 분명히 싸게 거래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또는 현재 매년 10억을 벌고 있는 회사가 현재 시장에서 50억에 거래되고 있다면 이 회사 역시 싸게 거래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건 부동산 시장에서도 상가 거래를 할 때 그 상가에서 1년 안에 10억을 벌 수 있는데 보증금과 월세와 권리금까지 포함하여 50억에 살 수 있다면 분명히 20%의 수익이 날 수 있는 상가이기 때문에 엄청난 수익률이 나는 상가라고 엄청난 광고로 신문에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분명히 책에 나온 방법으로 투자를 한다면 최소한 잃지 않는 투자를 할 수 있다. 문제는 바로 투자는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투자를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조급한 마음을 갖고 조금이라도 더 빨리 돈을 벌고 싶어 하고 내가 투자하지 않은 회사가 수익을 낸다고 하고 자신이 투자하지 않은 말도 안되는 회사가 얼마 되지 않아 10% 수익을 올렸다고 하는데 내가 투자한 회사는 비록 손해는 나지 않았지만 몇 달째 수익도 나지 않고 답보 상태를 보이면 스스로 이런 답답한 심리 상태에서 초연하고 초월할 수 없다는 것이 주식 투자의 가장 큰 어려움이다.

 

이렇게 엉덩이도 무겁게 주가가 별로 변하지도 않고 움직이지 않는 회사들도 주식 시장에서는 꽤 많다. 분명히 언젠가는 그 주가라는 것이 오를 수 있지만 이때 중요한 것이 바로 숫자상으로 저평가인가의 여부는 기본이 될 수 밖에 없고 - 이 기본을 꼭 지켜야만 잃지 않는다 - 과거의 행동에 기초하고 투자하려는 회사의 미래에 대해 예측하고 예상하여 미래를 보는 혜안을 통해 회사에 투자하는 예술의 부분이다. 더구나, 이 예술의 영역은 성공해야 예술이 되는 것이고 실패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재무제표와 같은 과거를 통해 기본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이 책에는 워렌 버핏이 각 회사를 어떻게 평가하고 투자 시기의 주가에 대해 어떻게 평가했는지에 대해 유추했는지에 대해 저자들이 책에 나온 평가툴로 알려주고 있다. 뭐, 워렌 버핏의 전 며느리라는 타이틀로 이야기되고 있지만 솔직히 며느리라고 워렌 버핏이 어떻게 투자했는지 알 수는 없었을 것이고 그저 광고하기 위해 내세운 멘트일 것이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어떻게 생각했고 어떤 근거로 투자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으리라고는 절대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ㅋㅋ

 

워렌 버핏에 대해 엄청나게 많은 책이 나와 있지만 워렌 버핏의 며느리라는 타이틀이 없어도 메리 버핏이라는 사람이 지은 책들은 전부 쉽게 책이 써져 있고, 가치 투자의 개념에 대해 소개하고 있고,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어 처음 주식 투자를 접하고 공부하는 사람들에게게는 큰 도움이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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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3 - 최후의 노력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3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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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에 의하면 로마인 이야기 13권에 나온 황제들을 끝으로 로마사에 대해 더이상 서술하지 않는 역사학자들도 있다고 한다. 로마제국의 역사는 실제로 끝이 나고 중세로 가는 시작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실제로 시오노 나나미도 그런 역사관에 동조를 하고 있는 듯 하다. 자신은 로마라는 제국에 대해서 쓰기보다는 로마인 - 정확하게는 로마황제겠지만 - 에 대해 저술을 했기 때문에 끝내지 않고 쓴다고 하는데 실제로 이 책의 역사배경이 된 후에도 100년도 넘게 로마라는 나라는 사라지지 않고 존속했으니 좀 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14권을 읽어봐야 내 나름의 판단이 들지 않을까 한다.

 

시오노 나나미는 지속적으로 자신은 역사학자가 아니라는 애매모호한 관점으로 여러 역사학자들의 의견에 대해 반박하거나 동조를 하며 자신만의 역사관을 피력한다. 역사학자와 로마인 이야기라는 책을 집필한 시오노 나나미의 차이는 무엇일까? 내 생각에는 별 차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그에 대해 집필하고 연구하여 세상에 내 놓으면 그것으로 학자라고 불러도 상관없지 않을까 하는데 저자는 겸손해서 그렇게 이야기하는지 자신의 의견에 대해 자신이 없어 그런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자신의 의견에 대해서 자신은 역사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감히 논한다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은 아닐것이라는 판단이 든다. 그보다는 자신에게 이야기되는 반론에 대해 빠져 나갈 구멍을 찾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그저 로마에 대해 개인적으로 연구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 뿐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역사는 승자의 이야기라고 한다. 패자측의 이야기는 다루기에 재미없기도 하지만 패자에 대해 관용을 베풀고 그에 대한 기록을 문서로 남기기 보다는 제거하는 것이 대부분 승자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팩트를 갖고 객관적으로 서술한다고 해도 자신이 그동안 배운 역사관과 사회관, 가치관, 인문학등이 글에 묻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특정 역사에 대해 서술하는 사람이 가질 수 밖에 없는 한계이고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라고 본다.

 

아주 객관적으로 단순히 사건만 나열한다고 해도 자신이 원하는 사건만 나열을 해도 자신이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고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관을 전달하게 된다. 이를테면 전쟁에 대해 서술한다고 해도 내가 원하는 장군에 대해서만 서술하면 그 장군의 관점에서 그 사건을 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로마인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지속적으로 기독교에 대해 조금씩 논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종교가 없는 저자이기 때문에 더 객관적인 관점으로 서술할 수도 있고 자신이 기독교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느냐에 따라 의도하지 않아도 그 자신만이 갖고 있는 논점이 나타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기독교라는 종교를 갖고 있지만 기독교가 본격적으로 로마라는 국가의 공인을 받는 과정과 그 후의 서술에 대해서는 약간 움찔은 하지만 대체로 색다르고 재미있게 읽었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관점에서 봤다.

 

로마인 이야기 13권에서 나온 새로운 개념은 지금까자와는 달리 1명의 원톱이 아니라 4명이나 되는 사람이 로마를 다스리게 된다는 것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에 의해 실행된 이 과감한 행정은 결국 로마라는 나라를 본격적으로 해체하게 만드는 사건이 된다. 그 전부터 서서히 해체되기 시작되었다고 해도 로마라는 제국이 다스리는 모든 영토는 로마라는 구심점 아래에 뭉쳐있었는데 비록 각자 4구역으로 다스린 지도자들이 왕은 아니였어도 결국 그들이 다스린 영토는 각자 로마가 아닌 다른 영토라는 개념을 갖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완전히 분리된 개념의 영토로 살다보니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은퇴한 후에는 각 영토의 지도자가 사망한 후에 다시 하나로 통일되지 못하고 분열이라는 씨앗이 로마제국의 시민들에게 뿌려진 것이 아닐까한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현대 국가와 달리 정년이라는 개념이 없는 권력의 시대에 정말 특이하게도 자신이 사망을 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은퇴를 하게 되는데 그 사건만을 놓고 보면 참으로 훌륭하다고 할 수 있는 업적이지만 권력의 속성상 막강한 힘을 놓은 후에 오게되는 비정한 권력의 파워는 인식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한다.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쪽에서는 대제라고 불리지만 반대 진영의 역사학자들에게는 다른 논조로 바라보는 듯 한데 그 시대가 끝이 난 지 오래된 후세의 역사학자들에게 그런 의미로 다가올지 모르지만 그 시대에 최선을 다해 살았던 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이 볼 수 있는 한도내에서는 최선을 다 한 것이 아닐까 한다.

 

만약, 카이사르가 이 시대에 태어나 콘스탄티누스 대신에 황제가 되었어도 시대를 초월한 역사관과 제도를 내다 본 인물이라도 하여도 그 시대의 상황에서는 특별한 대안은 없을 것이라 본다. 기독교라는 관점에서 보면 기독교가 공인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존재하지만 어차피 역사에서 만약은 존재하지 않으니 말이다.

 

로마인 이야기 10권에서부터 로마가 시들어가고 죽어간다고 지속적으로 이야기하는데도 불구하고 로마인 이야기 13권이 될 때까지 로마라는 제국은 멸망하지 않고 존속을 하고 있으며 여전히 야민족의 침략을 물리치며 제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영화를 누리고 있다. 너무 현대의 관점에서 로마가 망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후로도 무려 100년을 더 로마가 존속했다는 것을 보면.

 

로마라는 제국의 흥망성쇠에서 흥이라는 로마의 최 전성기가 화려하고 강력해서 후대의 역사학자들과 시오노 나나미가 한없이 그립고 아쉬워서 하는 투정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최소한 로마인 이야기 13권까지의 내용에서는 로마가 망할 것이라는 흔적과 조짐은 전혀 없다. 알게 모르게 많은 것들이 조금씩 영향을 미치기는 했겠지만 여전히 로마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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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대국 중국의 탄생 - 21세기 조공은 이자와 배당이다
전병서 지음 / 참돌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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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대해서는 이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있는 것은 바로 다음 세기는 중국의 시대라는 것이다. 이미 2010년이 되었으니 다음 세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번 세기라고 해야할 것이다. 몇 년전부터 중국에 대해 공부해야 하고 중국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며 투자자들이 중국으로 몰려 들어가고 있다. 그런 사실 자체는 이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대한민국에 살고있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중국에 대해 알고 있고 친숙하다. 우리가 스웨덴이나 덴마크에 대해 아는 것보다는 중국에 대해 아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우리나라와 중국은 수 천년동안 같이 국경을 맞대고 주로 우리나라가 조공을 바치고 형님의 개념을 뛰어넘는 아버지의 개념으로 중국을 받들어 모신 것이 사실이다.

 

책에서 나온 것처럼 중국과의 그런 역사중에 최근 몇 십년동안 이런 관계가 역전이 되어 우리가 잘 살고 중국은 상대적으로 못 사는 나라라는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심지어, 인터넷을 보다보면 중국에 대해 미개하다는 이야기까지 하는 댓글을 보면 현재의 중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하는지 그 일면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중국은 결코 미개한 나라도 아니고 우리보다 못산다고 치부 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다. 초 일류국가라고 하는 미국에도 우리보다 못 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 듯 중국도 아직 개발되지 않은 농촌이 그럴 뿐이지 개발되어 있는 도시들의 경제 수준은 이미 우리나라를 앞 질렀다고 봐도 지장이 없는 게 그들의 백만장자 수준은 우리나라 인구보다 더 많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를 보더라도 1980년대에 부자라고 해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의 경제수준이 앞 서 있지 못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수준이 좀 떨어진 것처럼 중국도 현재 그런 수준과 발전 속도를 겪고 있지만 부유한 층만 놓고 볼 때는 80년대의 우리나라 부유층보다 훨씬 수준 높은 삶을 살고 있고 지금의 우리나라 평균 보다는 여러가지 높은 수준으로 삶을 누리고 있다.

 

중국과 관련되어 늘 회자되는 것은 양말 한 켤레라도 중국인구 한 명에게 팔면 10억이라는 매출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이제 그 이야기는 허구에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10억이 넘는 - 이제는 13억 정도 된다고 한다 - 인구에서 단순히 부유층만 노려도 우리나라 인구보다 많으니 특정계층을 상대로 사업을 해도 충분히 승산이 있는 시장이 저 멀리도 아니고 바로 우리 옆에 존재하는 것이다.

 

다만, 중국은 여전히 공산당의 일 당 독재로 자본주의를 실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이 지금까지 존재했던 여타의 민주주의와 동반한 자본중의와는 다른 점이라 많은 사람들을 혼돈하고 만든다. 나 조차도 민주주의가 되어 있지 않고 일 당 독재에 의해 자유로운 자기 의지가 어느 정도 억압되어 있는 중국의 자분주의에 대해 선입견과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역사는 이제 겨우 100년을 넘을 뿐이지만 황제와 같은 인물이 혼자 국가를 다스린 역사는 수천 년을 이어온 문화다. 또한, 각 나라의 경제가 발전한 시기를 보면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는 아쉬울 수 있어도 대부분 그 나라의 뛰어난 - 이 부분은 논쟁의 여부가 크지만 - 인물이 오래도록 독재를 통해 나라를 다스리며 권력을 유지한 시기와 일치한다. 대부분 나라에서 독재는 나라의 발전과 개발보다는 부패와 내것 챙기기의 폐단이 나탔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은 안정적으로 한 명의 지도자가 대략 20년 정도의 기간동안 나라를 다스리고 그 후계자를 미리 내세워 훈련을 시킨 후 안정적으로 권력이양을 통해 국가의 미래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지도자가 선출되지만 전 지도자가 내세운 체계를 부정하고 다시 제안한 후 실행하게 되어 시행착오를 계속 거치는 폐단이 생겨 지속적인 발전을 더디게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렇게 끊임없이 정반합을 이루게 될 수 도 있는 점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중국이 이렇게 연속적으로 국가의 미래를 계획하고 그에 따라 발전하고 있지만 일당 독재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경제라는 측면만 보면 체계적으로 발전할 수 있어도 인간이 갖고 있는 자유의지에 어느 정도 한계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본인의 창의력과 관계없이 문화적인 측면에서 발전할 수 없지 않을까 한다. 책에서는 2,00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문화의 발산지 중에 망하지 않은 유일한 나라라고 하지만 이런 측면은 분명히 중국의 발전에 어느 순간부터 뒷다리를 잡고 늘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건, 우리나라에서 군사정권 시절에 자유를 가졌어도 마음껏 문화적 창의력을 발표하지 못하는 시기가 끝난 후에도 여전히 자신도 모르게 창작자들이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스스로 자기검열이라는 것을 통해 자유롭게 창작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이후 세대가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마음껏 창의력을 발산한 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의 문화가 꽃을 피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중국은 모든 땅이 국가소유이기 때문에 어떤 계획을 세우건 간에 국가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한다. 국가 땅에서 임시로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국가가 원하면 땅위에 사는 국민을 임차인으로 보고 다른 곳으로 내 보내면 된다고 하는데 이 점도 역시 우리나라도 70~80년대에는 굳이 그런 개념을 갖고 있지 않아도 국가가 지시를 내리면 알아서 이주했다. 고로, 이런 것은 굳이 중국의 장점이라기보다는 아직까지 본격적인 사유개념과 문화와 경제가 발달하지 못한 결과가 아닐까 한다.

 

국가가 땅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도 중국의 부자 순위에서 10위내에 드는 인물들이 대부분 부동산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보면 무척이나 아이러니한 사실이 아닐까 한다. 알기로는 중국의 은행이나 중공업들은 대부분 국가 소유라고한다. 당장은 문제가 되지 않을지 몰라도 우리나라 사례를 보더라도 조만간 문제가 터지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이런 점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가 없는 것을 보면 내가 중국에 직접 가 아무런 정보나 본 것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어느 나라나 역사는 반복된다고 본다. 약간의 차이나 변용은 있을 지언정 말이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나 사실들을 중국에게 들이댄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중국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나라의 알짜배기 회사들의 주식을 우리나라보다 외국인들이 더 많이 소유하고 있어 그들에게 시세차익뿐만 아니라 배당이라는 이자를 통해 배를 불리는 것처럼 우리도 중국의 주식을 소유하여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다만, 그런 주장을 펼친다는 것은 책 제목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데 본문에서는 그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심각하게 받아 들일정도로 다루고 있지는 않다. 제조업의 중국과 금융의 미국의 싸움에서 지금까지 미국은 모든 나라에 제조업은 내 주더라도 금융은 내주지 않았고 도전을 한 나라에는 처절한 응징을 통해 깨닫게 해 주었다고 한다.

 

아직까지 금융쪽에는 힘이 없는 중국이 서서히 금융의 힘을 깨닫고 서서히 그 힘을 키워 나갈 때 우리가 그 옆에서 그 과실을 따먹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음.. 맞는 말이다. 너무 당연한 말이라 반복해 이야기하면 진부하게 지겨울지 몰라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해서 우리나라가 앞으로 나갈 길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 옆에서 최대한 이용할 것은 이용해서 이익을 취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중국 회사중에 우리나라와 비교하거나 금융 발전에 따라 흥한 기업들에 대해 선점하거나 향후 미래의 먹거리라고 하는 그린에너지와 관계있는 회사들을 미리 파악하여 10~20년 정도의 시간을 갖고 선취하여 들어가 기다린다면 그 배당만으로도 과실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중국은 배당도 꽤 높은 비율을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당신이 1억을 갖고 있다면 아무 생각없이 한 2~3,000정도는 몇 년이나 몇 십년을 묻어 놓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 먹고 중국에 괜찮은 회사에 투자해 놓고 있으면 분명히 편안한 노후를 지내게 될 것이다. 당장 그 정도의 돈이 없는 나로써는 아깝지만 중국의 초일류 국가 달성이 조금만 더 더디게 올 것을 바랄 수 밖에 없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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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2 - 위기로 치닫는 제국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2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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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살고 있는 나도 하루 단위로 보면 상당히 긴 시간이지만 과거를 회상하게 될 때 1~2년은 금방 지나가게 된다.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컷 하나로 몇 십년이 지나가기도 하는 걸 보면 과거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떤 사건이 벌어지는 일들이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는 것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여러가지 사건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지 않고 꽤 시간이 걸려 지나 갔을 것이라고 판단이 된다.

 

로마인 이야기에 나오는 시대적 배경도 지금으로부터 2,000년이나 전 이야기이기 때문에 단 한줄로도 1년이나 몇 십년을 이야기하고 끝을 낼 수 있지만 동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은 어떠한 사건들이 천천히 이뤄진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인 이야기 12권에 나온 사건들은 당시에 생활한 사람들에게도 정신 차리지 못할 정도로 사건의 연속이지 않았을까 한다.

 

하나라의 최고 권력자인 황제가 즉위를 하자마자 몇 달 되지도 않아 죽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보니 나중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지 않았을까 한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 입장에서 4~5년 동안 재임하는 대통령들의 통치가 길지도 짧지도 않는 시기동안 일어난 일이지만 나중 몇 백년 후에는 찰나의 사건들로 구성될 수 있는데 이 당시의 로마에는 찰나의 사건임에는 분명하지만 로마라는 큰 덩치로 볼 때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사건들의 연속이 아닐까 한다.

 

지금도 서민들이 편안하게 살려면 권력을 갖고 있는 계층이 평화롭고 변고없이 - 그 내부에는 엄청난 권력투쟁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 나라를 다스려야 자신들의 삶이 팍팍하고 힘들어도 어느정도 참을만 하지만 이처럼 수시로 황제가 변경된다면 나라의 여론이나 인심이 흉흉해 지는 것을 막기에는 힘들지 않았을까 한다.

 

아무리 로마라는 나라가 원로원과 황제와 시민으로 구성되었고 그 사이에 군인이라는 존재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 존재들은 서로가 권력을 더 갖고 들 갖고 있는 차이는 있을 지언정 로마라는 거대한 제국을 이루고 있는 하나의 공동체인데 황제에게 변고가 계속 생기고 원로원들은 무능의 극치를 보여주니 자신의 한 목숨 건지기에 급급한 시민과 성격상 호전적인 군인들로 인해 로마라는 나라가 흔들리게 된다.

 

원로원 의원이 몇 백명이나 되는데 그 중에 지도자라고 할 만한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좀 의아하기는 하다.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나라를 다스리는 황제가 될 수 있음에도 그 자리를 노리는 인물이 많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그만큼 로마라는 나라의 황제가 매력적이지 않고 고생만 죽어라고 하는 자리가 된 것이 아닐까? 제국의 최 정점에 서는 인물이 되는 것을 주저했다는 뜻이 되는데 권력의 달콤함을 무시할 정도로 로마라는 나라의 기운이 다한것이 아닐까한다.

 

그러니, 정치에 대해 모르는 군인들이 돌아가면서 황제가 된 것이다. 책에 나오는 문구인데 정치인은 정치와 군사를 알아야 하지만 군인은 정치는 몰라도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건 맞는 말이다. 전쟁이 나 싸울 때는 군인의 전략 전술에 따라 승부를 벌이면 되지만 바로 그 전쟁을 해야 할 타이밍인지, 외교적으로 풀어야 할지는 정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어느 시기를 막론하고 사회가 혼란하면 총이라는 권력을 가진 군인들이 날 뛰게 되어있다. 싫어도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울며 겨자먹기로 그들의 제안을 찬성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렇게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너무 쉽게 죽어나간다는 것이다. 당시의 기술이나 의료체계의 문제도 있었지만 황제가 되자마자 칼에 맞아 죽고 좀 안정되었다 싶으면 병에 죽으니 나라가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다. 더구나, 로마는 당시의 패권국가로써 호시탐탐 그 지위를 노리는 나라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12권 전에는 비록 짧은 제위기간을 가진 황제들이 있었지만 어느정도의 분량을 갖고 다루어졌는데 12권에 나오는 황제들은 딱 한페이지로 소개되고 마는 황제가 있을 정도로 약간의 군사력을 갖고 있고 어느 정도의 사회 권력층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거의 돌아가면서 황제라는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이러니, 황제라는 자리가 우러러보고 존경해야 할 자리가 아니게 된다. 오죽하면 로마의 수도에서 황제의 승인이랄 수 있는 원로원과 시민들의 승낙도 받기 전에 간단한 서류로 황제로 승인해 달라고 하고 원로원에서 승인을 받은 후 전장을 누빌까?

 

말 그대로 전장에서 전투를 하다 우두머리가 사망하면 본인의 욕심에 의하든 병사들의 추천에 의하든 황제가 되는 것이다. 이러면 로마에 사는 시민들은 자신들의 황제가 누군인지 이름은 무엇인지 어디 출신이지도 모르고 지내거나 황제의 이름을 알았다 하더라도 이미 그 황제가 벌써 저 세상 사람이 된지 오래인 경우도 종종 있었을 것이다.

 

하루아침에 로마가 망한 것이 아니라 서서히 정말 피부에 확 와닿지 않을 정도로 서서히 망해가는 정책들이 나오게 된다. 인플레이션을 유발한 은 함유량의 조절이나 이탈리아에 속한 모든 시민에게 로마시민권을 준다든가, 군인에 대한 처우등이 당시에는 선한 의도로 행해진 일이지만 결국 의도하지 않게 로마를 망하게하는 시발점들이 되고 만다.

 

여러가지 정책들이 전부 결국에는 희소성이라는 것을 없애고 평등하게 주어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렇기 때문에 자신들이 어렵게 얻고 소유에 대해 남들보다 우월한 지위를 획득해야만 인간은 더욱 노력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런 점때문에 보수적인이야기를 저자가 듣게 되는데 일견 틀린 말은 아닌듯 하다. 그걸 꼭 보수와 진보로 나눌 수는 없지 않을까 한다.

 

공정하게 위로 올라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고 위로 올라가면 나도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사회가 진정으로 올바른 나라가 아닐까 한다. 모든 사람이 다 그 조건에 부합하여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는 약자에 대한 배려로 사회와 국가가 보다듬어 줘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 당시의 황제들은 자신의 영광이나 이익을 위해 황제가 되었다고 할 수 없는 것이 황제가 되자마자 전부 나라 밖의 외적들을 물리치는데 온 힘을 쏟았으니 결코 쉽지 않은 자리였다. 나라도 그런 자리를 맡고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황제가 되어 편안함과 남들로부터 우러러 받는 권력의 달콤함보다는 자신의 능력여부와 상관없이 전장에 투입되어야 하니 얼마나 난감했을까? 그렇기 때문에 어떨 때는 몇 개월동안 아무도 황제를 하고 싶다고 나서지도 않아 공석이 된 웃기는 환경도 생기게 된다.

 

환경이 영웅을 만드는지 영웅이 환경을 만드는지는 모르겠다. 두 가지가 적당히 섞여 나타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카이사르같은 경우에는 본인이 환경을 만들기도 했지만 그 당시의 환경이 카이사르와 같은 영우을 만들었다고 볼 수 도 있으니 말이다. 12권에 나오는 황제들이나 사람들 - 영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부족하니 - 은 자신의 능력여부와 상관없이 당시의 시대적 환경으로 인해 함몰된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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