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기계 시대 - 인간과 기계의 공생이 시작된다
에릭 브린욜프슨 & 앤드루 맥아피 지음, 이한음 옮김 / 청림출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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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과 사진을 보면 어딘지 윌 스미스가 주연한 영화 '아이, 로봇'이 떠오른다. 책의 내용은 로봇의 미래에 대한 통찰이라는 판단이 든다. 정작 책은 로봇이 언급되지만 그 보다는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인간이 어떻게 될 것인지 예측한다. 기계라는 것을 통해 변한 미래에 인간은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지를 예측하고 알아본다. 미래 예측은 유토피아가 아니면 디스토피아다. 책은 유토피아적인 미래를 예측한다.

 

인류의 역사를 어느 시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길이기 달라지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지금과 같이 엄청난 문명이 발달하고 과학이 발달하여 인류의 삶이 극적으로 변한 것은 몇 년이 되지 않는다는 합의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첫번째 가장 중요한 것은 증기 기관의 발명이다. 인간은 늘 힘 센 짐승을 이길 수 없었다. 다양한 도구로 지구를 정복했지만 여전히 인간보다 힘이 센 짐승은 피해야 했고 인간이 갖고 있는 능력을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가 명백했다.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인간은 자신의 능력 이상을 할 수 있는 엄청난 도구를 갖게 되었다.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게 되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옮겨야 하는 무거운 짐을 기계를 통해 옮길 수 있고 하루 종일 걸어야 가능했던 거리를 몇 시간이면 갈 수 있게 되었다. 이 외에도 증기기관을 통해 인류를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최초로 증기기관이 나온 후에도 인류는 딱히 변한 것은 없었다. 그 이유는 티핑 포인트를 만들 때까지 변화의 흐름은 미미하고 느끼지 못한다. 어느 날 갑자기 쌓이고 누적된 기술이 폭발적으로 우리 눈 앞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럴 때 부터 우리가 피부로 느낄 정도로 엄청난 변화를 목도하게 된다.

 

제1의 기계 시대는 이처럼 증기 기관을 통해 인간의 육체적 한계를 극복하며 인류를 새롭게 변화 시켰다. 육체의 한계를 정복한 인간은 다음으로 정신적인 한계 부분으로 넘어갔다. 이 부분이 바로 제2의 기계 시대다. 이 부분을 기계라고 표현하는 것이 무척 어색하다. 제2의 기계는 디지털 기술이다. 이걸 기계로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너무 친숙하고 익숙하고 생활 깊숙히 들어와 기계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기계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다르다.

 

제1의 기계에 따라 인류가 엄청나게 발전한 것처럼 충분히 제2의 기계인 디지털 기술로 인류는 엄청나게 발전했다고 생각되는데 책에서는 이제 막 시작단계이지 증기기관을 통해 인류가 변한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다소 고개를 갸웃할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하루 하루가 달라지고 있는 생활을 목도하는데도 말이다. 한 마디로 이건 새발의 피라고 본다. 향후 변화될 미래에 비하면 어림도 없다는 뜻이다.

아직까지 인류가 만든 기계는 인간을 필적하는 능력을 선 보이지 못한다. 인간이 갖고 있는 여러 능력중에 몇몇을 흉내내는 정도이다. 이를테면, 별 생각없이 올라가고 내려가는 계단을 로봇은 아직까지 힘들어 한다. 겨우 계단 오르 내리는 것을! 인간의 육체적인 힘은 기계가 정복했지만 인간이 갖고 있는 인지능력을 비롯한 많은 부분에서 기계는 흉내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부분이 여러 분야에서 조금씩 조금씩 개선되고 따라잡기 위한 실험과 발전이 진행중이다.

인간과 컴퓨터의 체스 게임이 결국 컴퓨터의 승리로 끝이 났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이제 누구도 인간과 컴퓨터의 시합에는 관심이 없다. 결과가 뻔하니. 그런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노트북을 갖고 있는 인간이 슈퍼 컴퓨터를 이겼다. 게다가 노트북을 갖고 있는 체스 마스터가 노트북 여러대를 갖고 있는 아마추어에게 졌다. 슈퍼컴퓨터는 가장 최선의 수를 파악해 둘 수 있지만 인간이 컴퓨터를 이용해 두는 수를 따라잡지 못했다.

'제퍼디!'라는 퀴즈 프로에서 몇 십회 우승에 빛나는 우승자를 컴퓨터가 이겼다. 더이상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기계가 만들어졌다고 봐야 할까? 단순히 상식 문제를 푸는 퀴즈 프로가 아니라 다양한 조합을 풀어야 하는 지능을 갖고 있어야 하는 컴퓨터는 여전히 다른 퀴즈 프로그램에 나가서는 아무런 실적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 컴퓨터는 현재 의료쪽으로 나아가서 의사대신 처방을 내려주는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은 아직까지 인간이 갖고 있는 여러 능력중에 아주 일부만 능숙하게 할 뿐이다. 인간이 의식하지 않고 하는 많은 행동을 기계는 못한다. 구글에서 현재 무인 자동차를 만들어 시행중에 있다. 실제로 그 차에 탄 저자들은 초반에 두려워했지만 자동차에 탄 직원들은 신경쓰지 않고 떠들기 바쁠 정도로 무인 자동차는 알아서 서고 가고를 자동으로 했다. 하지만, 무인 자동차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경찰이 등장하면 인식하지 못하고 예측할 수 없는 일에 대응하지 못한다.

저비용을 위해 선진국에서는 공장을 후발국가에 세웠지만 자동화가 되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인간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각종 편익을 계산할 때 차라리 선진국에서 기계를 활용하는 것이 낫다. 점점 인간은 기계에게 자신의 자리를 빼앗긴다. 하지만 과거에는 없었던 새로운 직종이 수없이 생겨났다. 컴퓨터로 하는 모든 직업들은 몇 십년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직업들이였던 것처럼.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은 아니다. 

이 책 '제2의 기계 시대'에서는 유토피아적인 미래를 그린다. 기계 자체로는 별 의미가 없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기계는 점점 인간을 추격할 수 있을지언정 인간을 정복할 수 는 없다. 그보다는 인간이 어떻게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느냐에 따라 인류의 미래는 변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간에는 기계와는 상관이 없을 것 같은 현재의 경제상황에 대해 분석에 많은 부분을 활애하는데 그런 부분이 기계를 통해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를 결부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써져있다.

증기기관을 시작된 제1의 기계시대는 오랜 시간을 거쳐 인간의 육체적 능력을 완전히 정복했다. 이제 제2의 기계시대로 접어든 현재 우리는 인간의 정신적 능력을 디지털 기술이 변화시키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 부분은 당대에 될 것인지 후대에 될 것인지 여부는 시간이 지나야 알겠지만. 정말로, 기계가 인간과 구별되기 힘들정도가 될 수 있을까? 현재로써는 불가능할 것 같은데. 우리는 상상이 현실이 되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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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신 국부론
이찬우 지음 / 스마트북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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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접했을 때 깜짝 놀랐다. 무척 사소한 부분인데 캐리컬처에 등장한 인물들이 저눕 알고 있다는 사실때문이 아니라 그 와중에 보도 섀퍼가 포함된 점 때문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책의 내용을 정확하 알지 못해도 주로 주식과 관련되어 있고 투자에서도 일반인 대상이 아닌 기관이 대상이라 개인이 참고할 수는 있어도 따라하기는 다소 무리라 보는데 보도 섀퍼가 있어 책을 읽기 전에 괜히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나오지 않아 약간 실망했다. 저자와 상관없이 들어간 그림이겠지만.

 

책의 구성과 내용이 괜찮다. 책의 저자는 기관에서 활동을 했던 인물이고 국민연금에서도 중요한 위치에서 중요한 투자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었고 현재는 국민대학교에서 교수로 활동중이라고 한다. 신기하게도 이 정도의 스펙과 능력과 경험이 있는 인물들이 펴 내는 책은 딱딱하고 지루하기 쉽상이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현장경험을 책으로 녹여 펴 낼때 현장감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지루하게 학문적으로 접근해서 풀어내는지 솔직히 나같은 일반인은 이해를 하기 힘들다.

 

아마도 그렇게 글을 써야 어딘지 학식있어 보이고 교수로써 체면이 선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다행히도 '대한민국 신국부론'은 책의 제목과 달리 엄숙하지도 학술적이지도 않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게 구성을 했다. 그렇다고 책 내용이 쉬운 것은 분명히 아니다. 투자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일반인이 선뜻 이 책을 읽기에는 용어에 대해 익숙하지 않아 다소 딱딱할 수 있지만 그런 부분은 많지 않다. 

 

굳이 모르는 용어가 나오는 것에 집착해서 멈추지 말고 책의 내용에 집중해서 읽게 된다면 책에서 언급하는 세계 경제의 역사에 대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세계 경제의 역사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책은 꽤 많다. 서양에서 넘어온 책은 상당하고 국내 저자가 쓴 책들도 몇 권이 있는데 책 내용이 다소 무겁다. 조금은 말랑 말랑하게 읽고 싶어도 너무 진지해서 부담없이 책을 펴 읽기 힘든데 반해 '대한민국 신국부론'은 그런 면에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이게 엄청나게 힘든 일이다. 경제, 경영서적에서 쉽게 책을 읽을 수 있게 만드는 능력은 단순히 투자를 잘 한다고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990년 일본 버블부터 책은 시작한다. 버블의 역사에 대해 알려주는 책들이 튜울립이나 미시시피같은 아주 오래된 과거부터 출발하는데 반해 '대한민국 신국부론'은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시대부터 출발한다.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진행되는 일본의 사례부터 알려주고 있어 읽는 독자가 보다 생생한 간접경험을 하게 된다.

일본의 사례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특수한 사례이다. 무조건 조금만 잘못되면 일본 사례를 들먹이면서 이야기하는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경우가 많아 이제는 다소 그런 주장 하는 사람은 오히려 의심의 눈초리로 본다. 책에서는 일본의 사례가 벌어진 이유와 그렇게 된 과정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준다. 또한, 그 당시 일본에서 행했던 정책과 제도적인 문제점에 대해 말한다. 역사의 가정은 없지만 일본이 이렇게 했으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고 단순히 버블에 대해 알려주기만 하는 다른 책과의 차별성으로 보인다.

 

그 이후 세계 경제는 LTCM를 비롯한 경제 위기와 효율적 시장 가설에 따른 금융 위기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런 경제 위기들이 발생한 원인에 대해 알려주고 그 처방전까지 알려준다. 역사는 지나고 나면 누구든지 훈수를 둘 수 있다는 한계는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단순히 우리가 버블이 나왔던 당시를 알려주기만 하면 솔직히 나같이 아둔한 사람은 그 처방을 깨닫지 못하는데 그런 면에서 도움이 된다. 특히, 자신의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라 다른 경제학자나 경제연구소의 자료와 책과 말을 통해 알려주고 있어 주장의 객관성과 설득력도 제시하고 있다.

 

책 제목이 '대한민국 신국부론'이다. 도대체 무엇때문에 책의 반을 할애해서 버블에 대해 알려주고 있는지 궁금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대체투자를 권하고 있어서다. 흔히 말하는 기관들이 투자를 한다는 것은 거의 대부분 금융이다. 채권이 아니면 주식이다. 그 외에 투자는 별로 활용하고 있지 않았다. 금융 선진국들이 한계를 느끼고 시작한 것이 바로 대체투자다. 한계를 느낀 이유는 명확하다. 채권과 주식은 서로 보완의 관계를 갖고 있었지만 이제는 비슷하게 움직인다. 주식과 채권이 수익률이 좋을 때와 나쁠 때가 같아졌다.

 

투자할 때 무조건 수익이 좋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안정적으로 수익이 좋아야 한다. 개인이 할 때는 모 아니면 도의 투자가 투자 초기에는 할 만하지만 개인도 어느정도 자본이 된 후에는 수익보다는 안정성에 치중하는 것처럼 거대 자본을 운영하는 기관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위험이 제거된 중위험 중수익이다. 이런 면에서 대체투자가 필요한 것은 바로 주식과 채권이 갖고 있는 위험을 완충작용해주는 역할이다. 실제로 상관관계를 볼 때 인프라나 부동산 임대와 같은 대체투자는 주식과 채권과는 다른 수익 레코딩을 보여주면서 보완관계로 수익률이 널뛰기하는 위험을 제거해준다.

 

다양한 대체투자에 대해 설명하고 이에 대한 상품과 펀드에 대해 설명해 준다. 실제 현장에서 직접 자산을 운영하고 투자 협상을 했던 내용은 재미도 있다. 국민 연금이 의외로 상당히 다양한 곳에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책은 개인을 위한 용도보다는 보다 큰 차원에 있는 사람들이 볼 책으로도 볼 수 있다. 개인이 투자하기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그런 이유로 책 말미에는 개인들이 투자할 수 있는 다양한 대체투자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아쉽게도 국내에 있는 투자처가 아니라 외국에 있는 펀드라 소개에 그친다는 한계는 있다.

 

책에서 대체투자로 여러 가지 중에 부동산 쪽으로 언급하는 것을 보니 개인은 주식 투자를 하고 부동산 투자를 통해 보완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차피 개인이 책에서 언급한 투자 방법을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일정 자산의 부동산 투입은 주식 투자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대체투자가 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주식 투자하는 사람은 결코 그렇게 여기지 않겠지만.

 

딱딱할 것이라 생각했던 책이 의외로 쉽게 버블역사에 대해 다양한 사례와 자료와 다른 저자의 책을 통해 알려주고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이런 책이 보통 읽는데 오래 걸리기 마련인데 금방 읽을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책이 어렵지 않다는 뜻이다. 대체투자뿐만 아니라 버블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 선택해서 읽으면 좋을 책으로 보인다. 투자하는 사람은 늘 버블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대처는 해야 하니 말이다.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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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티의 <21세기 자본> 바로읽기
안재욱.현진권 엮음 / 백년동안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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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것은 정보를 얻기 위한 측면도 있다. 정보라는 것은 모르는 것을 알게되는 것도 있고 알고 있는 것을 다시 돼새김질하는 것도 있다. 어떤 사람의 주장을 안 후에 그 반대의 주장을 듣는 것은 균형잡힌 시선을 위해 필요하다. 이 세상에는 창작물에서 나오는 절대악도 절대선도 있을 수 없다. 누구나 다 적당하게 선하고 악하다. 똑같이 어떤 사상이나 주장이 무조건 옳거나 틀릴 수는 없다.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있을 것이다.

 

좀 곤란했다. 아직 읽지도 못하고 어떤 내용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피케티라는 저자의 '21세기 자본'에 대해 반론을 펼치는 '피케티 21세기 자본 바로 읽기'를 읽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반론을 펼치는 책을 읽으려면 최소한 피케티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알아야 하는데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책을 읽었으면 그나마 알지는 못해도 읽어 봤으니 다른 의견도 듣는 것이 혹시나 도움이 될 수 있으련만 그것도 아니다.

 

분명히 조목 조목 반론을 펼치는 내용이 전개될텐데 우습게도 정작 내용은 모르면서 반론만 받아들인다는 상황이 우습게 보였다. 이 책은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출시 되기도 전에 출판이 되었다. 이런 경우도 있을까? 엄청나게 열풍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나도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지만 이 책을 꼭 읽을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다. 읽게 되면 읽게 되는 것이지 정도다. 그것은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을까? 현재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는데 다들 제대로 읽는 걸까? 난 그렇게 보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경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자신만의 뷰로 바라본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거의 대부분은 유행하고 있으니 일단 구입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본다. 책의 내용은 다른 경제학자들의 방대한 데이터에 비해 훨씬 더 충실할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읽지 않았으니 무슨 말인듯 못할까마는. 그렇게 이 책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바로읽기'를 읽게 되었다. 도대체, 알지도 못하는 내용을 반론한다는 내용을 읽는다는 상황이 우습게 생각되면서. 더구나, 책이 번역되어 나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반론을 펼치는 책이 나왔으니. 물론 지금은 책이 나와 직접 비교가 가능하다.

 

먼저, 든 생각은 얼마나 두렵고 현 상황을 타개해야한다는 강박감에 이렇게 서둘러서 책을 펴 내게 되었는지에 대한 궁금증과 절박함(??)도 느껴졌다. 그냥 '그런 책이 나왔구나' 정도로 넘어갈수도 있는데 반론의 책이 서둘러 나온 것을 보면 말이다. 원문의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충실하게 각장의 서두에 원문의 내용에 대한 언급을 한다. 총 7명의 발췌자(?)가 나오는데 그들이 전부 서두에 원문의 내용을 간략하게 언급하며 반론이 시작된다.

읽으면서 나는 이 책에 나오는 반론을 읽는 것보다는 그 반론의 반론을 생각하며 읽었다. 청개구리처럼 괜히 이런 반론책을 펴내 더 주목받게 할 필요가 없을텐데라는 심정과 더불어 이 책에서 각자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학자들의 이야기를 경제도 모르고 전공하지도 않았고 경제책도 그저 가볍게 팝콘먹으면서 읽을 수 있는 정도의 책만 읽어 감히 무엇이 옳은지도 모르는 무지렁이지만 그 정도의 경제지식을 갖고 이들의 펼치는 주장에 대해 스스로 이상하다고 생각된 측면이 있었는데 그 점이 경제적으로 맞는지 여부는 나도 모르겠다.

 

이 책의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이야기하는 것인 피케티가 엄청나게 방대한 데이터를 갖고 연구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신기하게도 데이터를 갖고 주장한 사람에게는 데이터로 반론을 펼쳐야 하는데 신기하게도 철학으로 반론을 펼친다. 피케티의 철학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세금을 높게 매기면 다른 나라로 도망간다고 하는데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같은 세금을 매기자고 했는데 그 부분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다른 학자는 전 세계적으로 세금을 매기면 의욕을 떨어뜨린다는 이야기는 차라리 맞다.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워낙 많은 부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거에 비해 전체적인 소득재분배통한 삶의 질 향상을 현재에 이룩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느냐는 주장을 펼친다. 여전히 원저를 읽지 않아 모르겟지만 이건 논점의 이탈아닌가? 지금 주장하는 것은 일부 계층의 과도한 부의 집중을 바로잡자는 이야기를 한 것인데 뜬금없이 과거보다 잘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좀 의아했다. 

 

부의 고착화로 인해 부가 계속 상습되는 것을 맞자고 이야기를 하는데 과거에는 신분사회로 날때부터 신분이 정해져 있지만 지금은 그런 세상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치는데 이또한 과거에 신분사회였다는 것을 왜 이야기할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바로 지금 이런 상황이 있으니 이를 개선하자는 이야기를 하는데 과거보다 좋아졌으니 좋은거 아닌가라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너 어릴때는 한 푼도 벌지 못했으니 지금 월급은 100만원만 받아도 엄청난거잖아? 그냥 이것만 받고 열심히 해!!"라고 하면 어떨까?

 

이외에도 읽으면서 계속 이 책에서 나오는 반론을 나도 모르게 반론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약간 삐딱한 심정으로 읽게 되어 그런지도 모르고. 정작, 원저는 읽지 않고 이렇게 반론을 읽으니 오히려 원저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줬다. 읽으면서 나도 피케티의 주장이 너무 과격하고 실현불가능하다는 인식은 했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욕망은 제거하면 안 된다. 탐욕은 적당히 제재를 해야겠지만.

 

엄청난 부자들에게 징벌적 세금을 매기면 점점 이들의 부가 사라져 가난해진다고 하는데 이것도 들여다보면 부자들이 세금을 내서 줄어든 것으로 가만히 있나? 그들이 그 돈을 가만히 냅둬도 이자가 생기고 투자를 통해 원금 이상의 수입이 생긴다. 이런 점은 모른체하고 무조건 원금이 줄어든 것만 설명하는 것은 - 이에 대한 부연설명은 없다 - 의도적인 곡해로 보이는데 나는 이 책이 전반적으로 그렇게 읽혔다. 좀더 균형잡힌 시선으로 반론을 펼치기 보다는 무조건 결론을 낸 상태에서 이에 대한 반론을 펼치는. 그리고, 피케티가 방대한 자료를 조사로 한 발표를 했다면 이에 대한 반론도 그에 준하는 자료를 갖고 반론을 펼쳐야 하는데 전혀 그러지 못했고 재미있게도 참고문헌에 자신이 쓴 논문이나 발표문이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자본수익률이 성장률보다 크다는 주장과 부자들에게 세금을 통해 공평하게 나눠주자는 주장이 현재 엄청난 관심을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키는 듯 하다. 또한, 현재 자본에 대한 정의가 없다고 책에서는 계속 언급하는데 정말로 그런지도 궁금했다. 한편으로는 현재 한국 보수주의 경제학자들의 주장을 알 수 있었다. 그냥 든 생각은 뭐가 이렇게 무서워서 서둘러 이런 책을 펴 냈을까?였다. 그런데, 책은 의외로 쉽게 써져있다. 솔직히, 반론내지 자신의 주장을 펼치려면 이 분처럼 하는 것이 훨씬 더 깔끔하고 균형잡힌 것이 아닐까 한다. 마왕의 서재 - http://blog.naver.com/pretty119/220127256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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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명, 어느 날
스티븐 에모트 지음, 박영록 옮김 / 시공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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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100억명이 된다고 하면 어떤 일이 펼쳐질지는 모든 사람들이 아직까지 경험하지 못한 상상속의 일이다. 인류는 계속해서 경험하지 못한 일을 해내고 있다. 현재 인구인 70억도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다. 그로 인하여 생각지도 못한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이를 통해 하나씩 하나씩 개선하고 방치하고 포기하고 있다. 100억 명이라는 숫자 자체가 무감각해 지는 것은 사실이다.

 

100억 원이라는 돈의 규모다 잘 가늠이 되지 않는데 이 정도의 자산을 갖고 있다는 사람들이 있는것처럼 어느 날 100억 이라는 인간이 지구에서 살아간다고 하면 지구는 멸망의 초입에 들어섰다고 해야 할까? '100억 명, 어느 날'의 저자인 스티븐 에모트는 그렇다고 한다. 100억 명이 아직 달성되지 않은 70억 정도의 현재도 이미 엄청난 문제에 직면했다고 이야기한다. 긍정론의 저자가 아닌 비관론의 저자라 할 수 있다.

 

대체적으로 역사를 볼 때 결국에는 긍정자들이 살아 남았다. 대책없는 긍정론자들도 죽었지만. 저자는 스스로를 과학자라고 칭한다. 과학자인 저자는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찬란한 미래에 대해 꾸며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한다고 상당히 자신있고 객관적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책을 읽어보면 객관적인 데이터를 갖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맞는데 예측이나 추측이나 가정도 상당히 많다.

 

100억 명이라는 사실 자체가 이미 사실이나 현실이 아닌 가정이다. 우리가 100억 명이 될지 안 될지는 100억 명이 되어야만 알 수 있는데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나 데이터를 근거로 이대로 진행된다면 미래는 암울한다는 추론을 한다. 그런데, 과학자가 원래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하는 의문도 든다. 과학자는 예측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명확하고도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고 아니면 반대 증거에 대해 확실하게 제거하면서 또는 증명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근거로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런 점에서는 내가 긍정론자라 너무 비관론적인 책의 내용에 큰 공감을 하지 못하고 삐딱한 시선으로 본 것은 인정한다. 게다가 바로 직전에 읽은 책인 '100억 명'이 긍정론적인 시선으로 내용이 구성된 책이라 편향된 시선을 이미 머리속에 담고 있어 어쩔 수 없는 상황인지도 모른다. 처음 습득한 교육은 그래서 중요하다. 이미 습득한 부분을 또 다른 시선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시간이 엄청 걸린다.

재미있게도 '100억 명'의 책 서두에 이 책의 저자인 스티븐 에모트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더 재미있게도 두 책이 나온 시기도 엇비슷하다. 서로 의식하고 책을 펴 냈는지 여부는 모르겠지만 대척점에 있는 두 사람이 비슷한 시기에 책을 펴 냈다는 사실은 의도적이였는지도 모르겠다. 스티븐 에모트는 비관론자의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100억 명'에서 언급되는데 직접 읽어보니 확실히 그렇다.

 

책 내용을 보면 데이터가 나오는데 '100억 명'에 나오는 데이터와 동일한 것들이 있다. 같은 데이터를 갖고도 이렇게 다른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교하는 재미도 있다. 다행히도 '100억 명, 어느 날'은 책이 얇고 글자가 적고 그림이 많아 작정하고 읽으면 1시간이면 읽을 수 있는 분량이라 보다 명확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는 점에서는 읽기에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소비 부분에 있어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데 이 책의 저자는 소비가 지금처럼 계속 폭발하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지구에 펼쳐질 것이라 한다. 소비로 인해 생기는 각종 쓰레기와 환경오염등이 지구를 파괴하고 인류를 멸명시킬 수 있다고 하는데 반대로 '100억 명'의 저자는 과거에 비해 소비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각자 소비를 줄이면서 예전보다 적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100억을 넘어 280억까지 인구가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은 저자가 펼치는 주장이 아니라 UN에서 보고한 내용이다. 그 예측은 맞지 않을 것이라는 것과 맞아 떨어질 것이라는 관점에 따라 미래를 보는 태도는 달라지고 현재를 직시하는 습관이 다르다. 어떤 관점을 택하느냐는 각자의 자유다. 자신의 평소 가치관이 결부되면 더더욱 폭발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바로 미래비전이다. 극단적인 태도와 비전은 조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서 언급하는 방향은 나와는 다소 다르다. 나는 잘 될 것이라 믿는 주의다. 하지만, 그렇다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터무니 없는 낙관론은 실패의 지름길이다. 나와는 다르다고 하여 배척하면 안 되고 그들의 이야기도 듣고 균형잡힌 시선을 갖고 있어야 한다. '100억 명, 어느날'은 인구가 늘어나 소비가 늘어나서 기후가 갈수록 나뻐져서 지구의 재앙이 올 것이라고 한다. 지금부터 노력을 해야만 재앙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조심하자는 이야기다. 그게 핵심이다. 이미, 엄청난 문제라고 저자는 주장하는데 지구를 온전히 후대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는 귀담아 들어야 할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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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명 - 전 세계 100억 인류가 만들어낼 위협과 가능성
대니 돌링 지음, 안세민 옮김 / 알키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지구 인구가 100억 명이라고 하면 깜짝 놀랄 수 있는데 사실 현재 지구에서 살고 있는 인원이 몇 명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살고 있는 바운더리내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보고 한국에서 보게 되는 사람들이나 어느정도 인식의 영역에 있을 뿐이지 몇 십억이라는 숫자는 무감각해진다. 현재 지구의 인구는 70억 정도 된다고 한다. 60억이라는 숫자를 본 기억이 있는데 벌써 70억이 되었으니 엄청난 인구 폭발이다.

 

인구가 늘어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지 인류에게 저주를 불러올 것인지의 여부는 인구학자나 경제학자에 따라 다르게 볼 것이다. 정확하게는 비관론자인가 낙관론자인가에 따라 인구 증가에 대한 관점이 달라 질 것이다. 인구가 엄청나게 폭발해도 사실 문제이고 인구가 갑자기 줄어들어도 문제이다. 인류 역사에서 이토록 폭발적인 인구 증가를 보인 것은 전적으로 최근 100년 정도 기간동안 이뤄진 놀라운 성장이다.

 

과거와 달리 이토록 인구가 폭발한 것은 과학기술의 발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확하게는 음식과 물에 대한 통제를 인간이 확실하게 했기 때문이다.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었던 과거에 비해 지금은 물과 먹는 것만 조심해도 된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공중위생만 제대로 해도 된다. 추가로 전쟁의 위협도 있지만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이 위생상태가 불량해서 창궐하는 세균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전멸되는 것이다. 청결 덕분에 유아사망이 줄어들어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었다.

 

자본주의가 성장한 배경에는 인구 폭발이 있다. 더 많은 소비가 이뤄지고 더 많은 수요가 필요하고 이에 따라 돈을 써야 하는 인구가 늘어나고 이 와중에 돈을 버는 기업과 사람이 생겨나고 이들은 더 많은 매출덕분에 더 많은 자본을 모을 수 있었고 인구가 늘어감에 따라 어떤 업종을 차려 장사를 해도 팔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돈을 벌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겼고 조금만 노력해도 남들보다 더 많은 돈을 모을 수가 있었다.

 

한 세대만 지나도 그 전 세대가 경험한 것은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다. 지난 100년 동안 인류는 인구가 늘어나는 경험만 했다. 그것도 엄청나게 한 가족당 4~5명은 기본중에서도 기본인 가족 구성원이였다. 점점, 가족 구성인원은 줄어들었다. 선진국이라 하는 곳부터 차례 차례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공중 위생 덕분에 엄청나게 인구가 늘어났지만 반대급부로 여성들의 희생은 더욱 늘어났다. 

 

어느 순간 여성들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있어 출산이 어느정도 방해가 되었는데 해결방법이 나왔다. 피임이라는 새로운 도구(??) 덕분에 여성들은 아이의 임신과 출산으로부터 자유를 얻었다. 꼭 임신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얻으면서 출산률은 점점 하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노인 인구가 많아지면서 인구의 증가 속도는 멈춰지지 않고 늘어났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에 비해 사망하는 사람의 숫자가 적은 관계로.

80년대에는 인구폭발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학자들은 이런 속도로 인구가 늘어나면 멜서스의 예측이 현실이 되어 인구는 기아에 시달리고 엄청난 곤란함을 느낄 것이라며 경고를 했다. 인구가 늘어나며 풍족해지는 만큼 부족한 부분이 생기면서 지구의 환경이 파괴되며 재앙이 닥칠 것이라 여겼다. 이에 대한 해결책을 만들어야 한다며 지속적인 공포감을 조성했지만 인구는 그 이후로 완만하게 늘어나고 있다.

 

폭발적인 증가를 거듭하던 선진국들은 서서히 인구가 완만하게 늘어나고 있고 개발도상국들도 폭발적인 인구증가가 멈추고 있다. 머지않아 지구가 인간으로 뒤덮을 것이라는 예견은 물건너 가게 되었다. 대신, 출산 인구가 줄어들면서 미래에 대한 새로운 걱정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부양해야 할 노인 인구는 늘어나고 청년들은 예전과 달리 먹고 사는 것이 팍팍해 진 것이다. 이러한 예측을 통해 이번에는 자산시장의 대폭락을 예고하는 사람들이 득세를 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단순명료하다. 갈수록 줄어드는 인구구성을 볼 때 팔고 싶어도 팔 사람이 없어지는 시대에 쓸데없는 짓을 하지 말라고 새로운 공포감을 조성한다.

 

인구 폭발에 대한 두려움이 시간이 지나면서 인류는 예측과는 다른 변화를 맞이하게 된 것처럼 이 역시도 예측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라 본다. 누가 또 아는가? 갑자기 인구가 폭발하게 될련지도. 미래에 대한 예측은 어차피 둘 중에 하나다. 맞거나. 틀리거나. 다만 과도하게 한 쪽으로 편향된 예측은 맞은 적이 없다는 사실도 깨달아야 한다. 인간은 생각보다 영리하고 대처능력이 탁월하다. 

 

인류가 100억 명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이 책의 저자가 이야기하는 바다. 물론, UN의 예측에 의하면 최대 400억 정도 까지 인류가 늘어 날 수도 있고 최소 몇 억으로 줄어들 수도 있다고 한다. 60억 명까지는 가파른 곡선을 이루면서 폭발한 인류는 70억은 겨우 10년 만에 달성했다. 이대로 가면 인류의 증가속도는 토끼와도 같은 성장을 보일 것이라 봤지만 70억 명을 정점으로 인구증가속도는 완만하다고 한다. 

 

80억 명을 지나 90억 명을 통과하여 100억 명까지 갈 수 있다는 예측을 하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100억 명이 되지 않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실제로 저자는 100억 명이 되지 않는 선에서 인류의 증가는 멈출것이라 한다. 인구가 더 늘어나는 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아직까지 확실하지 않다. 일본경우에 1억 명 미만으로 인구를 떨어뜨리지 않는 프로젝트까지 발표할 정도로 일정 수준의 인구가 각 나라마다 필요할 것이다. 그 적정 인구가 어느정도인지는 누구도 모를 것이다.

 

책은 100억 명에 대한 예측을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한다. 과거에 이러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인류가 달성하는 인구에 따라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지를 유추하게 만든다. 비관과 낙관중에 낙관편에 속한 저자는 인구 증가에 대해 큰 걱정을 하지는 않는다. 인류가 100억 명을 달성하지 못할테니 말이다. 우리나라고 몇 년 후에 최고 인구를 달성한 후에는 서서히 숫자가 줄어든다는 통계도 있는 것을 보면 그럴 것 같다.

 

100억 명에 대한 감은 전혀 없다. 대한민국 인구가 거의 5,000만 명이라는 숫자에도 별 감각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인구가 늘어나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발달했다는 이야기에는 동의를 하게 된다. 뭐, 인구가 증가하니 뭐든 발전하고 발달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겠지만. 이제, 인류는 새로운 세계로 진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석유가 부족할 것이다. 무엇이 잘 못 될 것이다. 재앙이 올 것이다류의 이야기들은 전부 실패하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대단히 낙관적인 전망이 달성될 가능성도 쉽지 않겠지만 무조건적으로 데이터를 근거로 절망적인 미래를 소개하며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은 더더욱 희박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듯 하다. 사람들은 희망보다는 공포에 더 쉽게 반응하는 속성을 지녔다. 희망에 죽지는 않지만 공포에 죽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나저나 아무리 생각해도 100억 원은 감이 잡히는데 100억 명은 감이 전혀 잡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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