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모두 정리하고 가족끼리, 부부끼리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제는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를 실행에 옮기는 사람들을 접하면 놀랍고 대단하게 느껴진다.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그 간절한
마음보다 두려움이 앞선다.
기획하는 여자와 사진 찍는 남자가 만나 결혼을 하고 보통의 신혼부부들이 의례적으로 밟아가는
절차가 아니라 집과 예단과 혼수를 하는 대신 무려 414일간의 세계여행을 떠난났다니 두 사람은 말 그대로 천생연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한쪽이라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결코 실행에 옮길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에게 처음이 아닌 유럽을 이제는 둘이 되어 떠났고 그때의 여행 기억을 모아서 펴낸 책이
바로 그들의 공동작품이자 첫 번째 여행 도서인 『함께, 다시, 유럽』이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두 사람의 첫 번째 책도 읽었고 이렇게 두 번째
책도 만났으니 그 인연이 신기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남극보다 더 낯설게 느껴지는 남미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여서 더욱 반가웠던것
같다.
며칠 동안의 여행이 아니기에 처리할 것도 많았을테고 그 이상으로 준비할 것도 많았을텐데 두
사람은 일과 집 등을 정리하고 결국 친정에서 배낭을 싸게 되는데 24시간도 채 남지 않은 때에 갑자기 여권이 없어져 한 바탕 난리가 나고
이이서는 국제운전면허증이 보이질 않아 혼동의 도가니에 빠지기도 한다.
아찔한 헤프닝 끝에 채 현실적인 걱정과 두려움을 느낄 새도 없이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중국
푸동에서 환승을 하고 또 LA로 이동해 멕시코 '과달라하라'에 도착하는 것으로 남미 여행의 대장정이 시작된다. 스페인어가 난무하는 가운데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찾기도 어려운데 다행이 만난 옆자리의 승객은 두 사람이 멕시코에 도착하기도 전에 현지의 무시무시한 공포를 생생히
전달한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남자인 자신보다 더 강단있고 결단력을 선보이는 아내와 그런 아내를
잘 만난 덕에 이렇게 떠날 수 있었다고 말하는 남편의 여행기는 한국을 떠난 지 꼬박 2박 3일만에 첫 숙소에 무사히 도착하는 것으로 서막을
연다.
숙소를 찾아가는 것부터가 고행 같았던 두 사람은 멕시코, 과테말라, 벨리즈, 쿠바,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를 거쳐 브라질에 이른다. 식민지 시대의 건축양식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거리 풍경은 마치 유럽의 어느 나라를
연상케 하지만 그속에는 남미의, 그 나라만의 매력이 살아 숨쉰다.
그곳이기에 볼 수 있는 것들을 실제로 마주한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경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 여행을 다녀 온 뒤 점차 떠나고 싶은 곳들이 생겨났고 그중에는 페루의 마추픽추도 있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도 가보고 싶었던 곳인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 사막을 담아낸 풍경은 책을 뒤집어 봐도 뒤집어 진 줄 모를 정도로 장관이다.
소금사막 위의 물에 비친 풍경, 마추픽추의 신비로운 풍경, 올드카 전시장을 연상케 하는 쿠바의
도시, 푸른 바다와 귀엽고 신비로운 동물들, 오롯이 자연과 시간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풍경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최근 발생한 바이러스로 인해 남미 여행에 대한 우려가 있는게 사실인데 상황이 괜찮아진다면 내가
꿈꾸는 남미로 가보고 싶어지는 그런 멋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