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주의 *
임조령 작가의 『나으리』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어느 고을의 제일가는 부잣집의 고명딸로, 다섯
명의 오라비와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난 금지옥엽 은강이라는 아가씨가 나라의 개국이래 최초의 최연소 자원 급제자인 유준엽을 만나 진정한
부부의 애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앞서 이야기 한대로 은강은 고을 최고의 부잣집인데다가 그 나이 열여섯이 된 후에는 미모가
꽃처럼 아름다운 규수로 자라나자 주변에 있는 약관의 내노라하는 사내들이 죄 그녀에게 혼담을 넣는 지경에 이른다.
은강 자신은 그중에서도 호남아로 소문난 박 진사의 차남인 박무진을 마음에 두지만 정작 그녀와
백년해로하게 된 이는 바로 이 고을에 새로 부임해 온 원님, 유준엽이라는 장원급제자였던 것이다.
위로 다섯 아들이 죄다 시험에 낙방해 출세에 한이 있던 은강의 부모님은 비록 양반이기는하나
집안이 가난하고 조실부모한 준엽이지만 열하나에 소과 복시에 합격하고 열넷에 대과에 합격한 준엽의 청혼에 처음엔 의아해 하지만 곧 그의 진심이
통해 혼례는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제대로된 두 사람은 초야도 치르지 못한다. 열여섯의 꼬마
신랑이 처음 고을에 부임한 후 이를 얕잡아 보던 아전들을 제대로 혼쭐을 내준 이후 나랏일에 몰두하지만 평소 적서를 읽는 것이 취미였던 은강이
바라던 신랑감은 육척을 훨씬 넘기는 말 그대로 외양이 사내다운 남자였지만 정작 그녀의 남편인 준엽은 미소년이였기에 데면데면한 가운데 시간이
흘렀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 준엽은 은강이 기억하지 못하던 그때 수수밭에서 우연히 은강이 몸종이 꽃분이와
나누던 대화를 듣고 그녀에게 반했고 그녀의 집에 혼담을 넣었으며 비록 어리기는 하나 그녀에 대한 마음만큼은 여느 남자와 다르지 않았다.
은강은 준엽이 아직 덜 자랐다 생각해 다가서지 못하고 준엽은 자신이 은강이 바라던 육척의
신장을 가진 호남형의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다가가지 못하지만 자신들 사이에 끼어든 호방인 강인지와 얽히는 사건을 통해서 점차 서로의 진심을
알아가며 어느덧 부부로서의 애정을 이루는 이야기다.
본권 이외에도 함께 수록된 외전에는 7년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그가 여전히 부부의 정이
남다른 두 사람의 알콩달콩한 모습과 함께 임관 이후 남들은 모두 마다하는 외관직만 임기를 꽉 채워 돌고 있는 그의 능력을 아까워하고 그 상황을
이상하게 생각한 새로운 임금이 암행어사를 보내 준엽에 대해 조사를 하는데 그 암행어사가 바로 10년 전 은강과의 혼담이 나왔던 박무진이였던
것이다.
과거에 번번이 낙방하고 거렁뱅이가 되어 나타나 작정이라도 한듯 준엽을 괴롭히던 그가 사실은
준엽이 처음 장원급제했던 것과는 달리 저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은밀히 박무진을 보내 조사케하고 그 지역의 비리 관찰사를 파직케 하기
위해서 온 것임이 밝혀진다.
남녀 주인공이 서로의 진심을 알아가는 과정도 흥미롭고 둘의 계속되는 사랑과 함께 외전에 나오는
박무진의 정체도 나름의 반전과 재미를 선사하는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준엽이 새로운 임금의 부름을 받고 도성으로 가 활약하는 모습도 왠지
궁금해져서 후속작에 그 이야기를 담아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