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명의 백인 신부
짐 퍼커스 지음, 고정아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저자는 분명 모든 것이 허구임을 밝히고 시작한다.

하지만 글을 읽는 내내 그 사실은 잊고 만다.

책속에 빠져든다는 표현이 정확하게 어울리는 책이다.

 

백인들이 미국 개척시대. 백인들은 인디언 족들과의 마찰을 피하고 그들을 인디언 보호소로 거주지를 옮기도록 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중이다. 그 과정에서 샤이엔 족의 대부족장 리틀 울프는 당시 미국 대통령에서 다소 황당한(?) 제안을 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자신들의 말 천마리와 천명의 백인 신부를 맞교환하자는 것이다.

처음 리틀 울프의 제안을 어처구니 없다고만 생각했지만 정치권에서는 자발적(?) 지원이라는 묘안으로 미개인(백인들은 인디언족을 이렇게 부른다. 과연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며 자신의 땅에서 살겠다는 원주민을 침략자인 그들이 이렇게 부를 자격이 있는가는 모르겠지만)과 결혼을 원하는 사람들을 모집하게 된다.

여기에는 실로 다양한 사연을 가진 백인 여성들이 지원한다.

대외적인 그녀들의 역할은 미개인들의 삶을 문명인으로 교화시킴과 동시에 기독교를 전파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디언 신부 계획(BFI, Brides for Indians)'이다.

이렇게 모인 1차 지원단의 여성은 47명이다.

부모를 모두 잃은 여인, 신랑이 될 사람으로 될 사람으로 부터 퇴짜맞은 여인, 자신의 학문적 목적으로 참가한 여인, 진정한 자유를 찾아 지원한 여인까지 그 외모와 출신만큼 사연도 다양하다.

그리고 이 지원단 속에는 자신들의 신분과 맞지 않는 낮은 신분의 남자인 해리와 사랑에 빠지고 그 사이에서 두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도덕적 문란'이라는 명목으로 정신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정신병원에 감금된 메이 도드도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은 바로 메이 도드라는 여인의 자손이 그녀의 삶을 역추척하다가 그녀가 해리와의 사이에서 낳은 두 자녀에게 보낸 편지와 일기를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내용의 대부분은 그녀가 정신병원에 감금되기 직전 해리와의 만남과 동거부터 시작해서 감옥같은 정신병원을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인 인디언 신부 계획에 참가하게된 경위, 그리고 그곳에 가는 도중에 만난 존 대위와의 만남과 사랑, 인디언 마을에서 리틀 울프 대족장의 3번째 부인으로서 삶과 인디언들의 삶과 인생등을 직접 겪고 느낀 점들을 마치 역사가와 같은 지극히 사실적인 묘사로 그려내고 있다.

처음 리틀 울프와의 약속과 달리 샤이엔 족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땅에서 금맥이 발견되면서 백인들은 인디언 신부 계획을 철회하게 되고, 이미 출발한 47명의 신부들에게 샤이엔 족을 회유해서 기한 내에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들어와 살도록 명한다.

겉으로 보면 그들을 보호하고자 한다는 명목이지만 실상은 인디언 신부 계획처럼 그들의 실용주의에 맞기에, 그리고 그들이 정복 목적에 가장 적합하기에 평화주의를 가장한 군사작전을 벌이는 것이다.

 

"우리는 늘 남의 일에 끼어 일을 망치고 있어."(p.274)

 

메이와 백인 여성들은 그사이 인디언들의 삶에 동화되고 그들의 아이를 갖게 된다. 하지만 예견된 비극은 여기서 시작된다. 샤이엔 족의 친족이자 먼저 백인에 투항한 줄스 세미놀이 샤이엔 족의 주거지를 백인들의 적인 부족으로 의도적으로 매도함으로써 샤이엔 족의 평화는 마침내 막을 내리게 된다.

마지막 죽음의 순간까지 메이는 삶의 순간을 일기로 기록한다.

 

"그냥 살아 있기 위해서 쓰는 것 같아. 우리 모두 살아 있게 하려고."

"그래. 네 펜은 너의 주술이고, 네가 그걸 움직이는 한 너에게는 할 일이 있고 또 살아 있는 거야."(p.310)

 

결국 그녀의 일기는 미완성인채로 끝나고 그 뒷이야기는 그녀들과 함께 생활했던 수도사가 마지막을 채우게 된다.

이 일기는 샤이엔 족에게는 신성한 보물 그 자체인 셈이다.

그녀의 삶이 곧 그들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끝에서 그녀의 일기는 그녀의 백인 후손에게 닿으면서 진정한 막을 내린다.

누군가 자신의 삶을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자신과 나머지 백인 신부들의 삶을 기록했던 그녀의 일기는 이제는  자신들의 땅을 잃어버리고 보호구역에서 살고 있는 인디언들의 삶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허구임에도 더 진실같은 그래서 역사가 됨직한 소설같지 않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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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랑 - 왕을 움직인 소녀
이수광 지음 / 네오픽션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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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저자가 먼저 밝히는 것과 같이 이 소설은 문랑과 차랑의 산송(山訟) 문제와『유연전』에서 모티브를 빌려 왔다고 했다.『유연전』에 실린 이 사건은 실제 대구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기록한 것으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만큼 읽는 내내 기묘하면서도 요즘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그 당시에도 있었다는 것에 흥미롭기도 했다.

재산을 탐내고 그 재산가의 자식노릇을 한다는 설정은 드라마에서도 익히 많이 보여졌고, 실제 외국의 사건에서도 간간이 들어 본 것이다.

그런 일이 조선시대에 있었다는 것은 인간의 탐욕이라는 것은 시대에 상관없는 것이구나 싶기도 했다.

 

아버지 박수하의 공부에 대한 기대와 강압적인 태도에 10여년 전에 집을 나간 아들 박제구. 박수하는 성주 땅의 유지이다. 박수하 딸이자 박제구의 여동생들인 문랑과 차랑. 그리고 박제구의 처 이숙영, 그녀의 오라비 이창래. 그들 두 오누이는 몰락한 양반 가문의 자제이다. 어릴적 박제구는 총명하였으나 학질을 앓은 이후 치인(癡人:어리석은 사람)이 되어 버렸고, 이와 달리 그의 막내 동생 차랑은 오히려 학질을 앓은 후 한번 본 것은 잊어버리지않는 실로 대단한 총기를 가지게 된다.

어쩌면 이때부터 두 사람의 운명은 달라졌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10년 넘게 박제구가 돌아오지 않자 박수하가 죽으면 모든 재산이 두 딸에게 돌아갈 것으로 짐작한 이창래는 동생 숙영과 모의하여 한양 남산골의 조석술을 박제구로 위장하고자 한다.

조석술 또한 그 인물이 사기꾼이라 이에 흔쾌이 응하고 그들은 이창래의 첩인 옥년이와 조석술의 아이를 박제구의 첩과 아들인 것처럼 꾸며서 박제구를 찾아 온다.

그렇게해서 박경여 집안과 박수하 집안의 산송문제가 막을 올리는 것이다.

 

처음 의심하던 박수하도 며느리가 인정하자 어쩔수 없이 일단 받아 들이게 되고, 그 사이 차랑이 절에 가던 도중 화적을 만나 봉변 당할 뻔할 때 그녀를 구해준 박원규와 두 집안의 인연이 닿게 된다.

차랑은 아버지를 설득에 그와 혼담이 오가도록 하고, 이창래와 옥년의 관계를 눈치 챈 차랑의 지혜로 옥년은 모든 사실을 이실직고 하지만 오히려 이창래 일당은 박수하가 재산을 오빠로부터 가로채려는 두딸에게 속아서 아들을 부인한다는 실로 웃지 못할 송사가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이 아니라 하고, 아들은 아버지라 하고, 며느리는 남편이라 하는 판국이라 이 일은 흥미진진한 사건이 되고, 결국 재판은 이창래 일당의 편을 들어 준다.

 

그 뒤에 이창래 일당은 박경여의 부친이 묘자리로 박수하의 선산이 길지라는 것을 미끼로 내밀고 가짜 박제구(조석술)를 내세워 묘를 쓰도록 허락한다. 이 일로 결국 두 집안은 산송문제로 재판까지 하게 되고, 앞서 가짜 박제구가 아닌 이유가 없다는 것을 판결로 내렸던 판례를 들어 박경여에 유리하게 판결이 난다. 이에 격분한 박수하가 항의를 하다 곤장을 맞고 죽고 이에 두 집안은 걷잡을 수 없는 사태에 이른다.

서로의 체면과 자존심 때문에 두 집안은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이 과정에서 문랑과 박경여 집안의 어른도 죽게 된다.

결국 철천지 원수가 된 두 집안으로 차랑과 박원규의 혼담도 물건너 가고, 차랑은 억울함에 한양까지 걸어가서 신문고를 울려 진상을 밝혀 줄 것은 읍소한다.

 

암행어사까지 출동하는 등의 여러 우여곡절 끝에 이창래 일당이 잡히고, 진짜 박제구를 소환해 옴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된다.

그리고 성주 목사 이일경은 두 집안을 화해시키고자 차랑과 원규의 혼담을 주선하고 둘은 결혼해서 아이 넷을 낳고 잘 산다는 결말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읽고 난 마지막 감상평은 "도대체 얜 뭐야?" 라는 것이다. 부제를 왕을 움직인 소녀라고 하기보다는 세상을 쥐락펴락한 것 같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창래 일당이 그런 계략을 생각한 것도 차랑이 『탁씨일가전(卓氏一家傳)』을 필사해서 이창래가 훔쳐가도록 유도했고 이 책을 통해서 책의 내용처럼 이창래가 일을 꾸미도록 했기 때문이다. 차랑은 이창래가 평소에도 자신의 고서적을 훔쳐다 판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이를 계기로 더 큰 일을 도모한 것처럼 비춰지기 때문이다.

 

실제 산송 문제로 언니가 죽은 내막에서도 차랑의 보이지 않는 조종이 있는 듯한 느낌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그리고 원규와의 결혼도 그 시대의 사대부가 여인같지 않은 적극성으로 그녀가 언니의 혼담을 가로챈 셈이 되며, 원규를 자신에게 빠져들도록 한 요부의 면모까지 보이니 말이다.

 

그녀는 아버지와 언니의 죽음을 알리고자 성주에서 한양까지 걸어서 간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효심에 탄복한 많은 유생과 학자, 아낙네들이 그 뒤를 따르기까지 하고, 상소문을 임금께 올리기도 한다. 그녀는 혹시 그런 파급효과를 노린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가장 미스터리한 부분이자 그녀의 의도가 의심스러운 것은 바로 진짜 박제구의 소재지를 그녀가 이미 수년전에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박제구가 함구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가짜 박제구의 출현으로 집안이 혼란스러울 때 그녀는 왜 진실을 말하지 않았고, 결국 산송 문제로 번질 때 조차도 말하지 않다가 모두 죽고, 사건을 일단락하게 만드는 결정적 순간에 박제구의 소재지를 말했는가 말이다.

이창래가 박수하의 재산을 가로채려고  했던 것처럼 차랑 역시 아버지의 재산을 모두 갖고, 원규까지 차지하려던 계산된 행동이 아니였을까?

 

실제 소설에서는 아버지 박수하와 문랑이 산송문제로 죽임을 당하게 되고, 그 사건을 관할했던 성주 목사(이 사람은 박수하 일가에 불리한 판결을 했고, 박수하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었다.)는 파면되고, 재산상속자인 오빠 역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 뒤 부모를 봉양하지 않고 유랑했다는 죄목으로 곤장을 맞다 죽었다. 그녀가 흠모하던 박원규와 언니의 혼인을 아버지가 생각할 때 자진(자결)이라는 다소 협박적인 언행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돌려 결국 원규와 결혼도 한다.

세상으로부터는 아버지와 언니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고자 한 효녀처럼 비치면서 의인이 된 셈이다.

결국 모든 것은 차랑이 가지게 된 셈이니 말이다.

표지에서 보여지는 살짝 내린 듯한 눈빛이지만 동시에 살짝 치켜 뜬 눈에서 그녀의 야심과 계략이 비치는 듯 한 반전 추리 소설 같다.

영원히 미결로 끝난 미스터리 사건 같기도 하다.

한편으로 섬뜩했던 부분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저자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지 간에 진정한 요부이자 지략가이자 모사꾼은 바로 차랑 그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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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감동이었어
정경하 지음 / 조은세상(북두)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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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남동생의 병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수녀원에 있는 안젤라 고모(수녀다)의 손에서 자란 우경이다.

위로 오빠와 아래로 남동생까지.

보통의 집에서 엄마와 딸은 아기자기한 멋이 있기 마련인데, 어릴 때부터 떨어서 자랐기에 둘 사이는 여전히 데면데면하다.

무려 15년을 그렇게 살았기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우경과 그녀의 엄마 조여사는 서로의 마음과 달리 그 표현의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흉부외과 레지던트 4년자 오빠와, 프리랜서 포토그래퍼인 동생을 유달리 편애한다고 생각하는 조여사 밑에서 우경은 오늘도 외롭다.

더군다나 최근 사귀던 남자가 양다리에 결혼할 사람까지 있었음을 알게 되고 어이없게 실연까지 당한 마당이다.

그녀가 근무하는 세진대학교 농과대학의 사과 과수원에서 야심한 밤 신세한탄을 했던 우경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바로 옆자리에 앉은 황금종마, 후배 하현락이 보았음을 알게 된다.

어린것이 빈틈이 없고, 차도남 그 자체이다. 어딘지 모르게 하현락에겐 거부감이 느껴지는 우경이다.

 

어릴적 부모님의 절대적인 편애로 자라는 형 덕분에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란 현락. 등반 사고로 형을 잃은 뒤 모든 것이 마치 자신의 탓이라고 치부하는 부모로 부터 철저히 버림을 받은 아픈 상처가 있다.

그런 자신을 거두어 사랑으로 보살펴 주신 분이 외삼촌이자 세진대학교의 이사장이다.

자식이 없는 외삼촌은 지속적으로 현락이 재단을 맡아 줄 것을 바라는 중이다. 모든 것에 흥미도 없고, 삶의 의미도 모르채 그저 사라져 버렸으면 하던 때에 그의 가슴속에 들어 온 사람이 바로 우경이다.

누더기 유기견에게 마치 부모에게 버림받은 자신의 모습으로 감정이입이 일어 나고 있던 현락은 버려지고 다친 떠돌이 강아지를 보고 모든 사람이 피할 때 서슴없이 다가가 안아주던 우경의 모습에서 그녀가 그 순간 자신의 마음속으로 들어와 버렸음을 알게 된다.

 

"얜 지금 얼마나 아프겠어요."

 

고작 그 한마디에 그의 겨울같은 마음에 봄이 찾아 온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우경앓이를 그는 서서히 겉으로 들어내면서 오로지 그녀만을 바라는 마음을 우경에게 보인다.

서로의 상처를 서로가 알아 본 것이라는 조여사의 말처럼 둘은 그렇게 서로의 사랑과 신뢰로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한다.

 

차도남 하현락의 무뚝뚝하지만 사랑스러운 말투와 행동이 너무 예쁜 로맨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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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바벨탑
박태엽 지음 / 북캐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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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간의 기업 합병이 더 이상의 낯설지 않은 현실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 소설은 그동안 다루어지지 않았던 은행인수, 합병, 기업부도 등에 이르기까지 금융기업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실제 20여년 간 금융계에서 종사한 저자가 심혈을 기울인 티가 난다. 물론 저자의 재직 시절과 지금의 금융계는 많이 달라졌겠지만 그 기본적인 생리는 있으리라 본다.

저자의 현장 경험이나 재직 시절 당시의 축적된 지식으로 이 소설은 상당히 탄탄한 구성과 스토리를 보여준다.

남북전쟁 직후의 할아버지 시대, 학생운동 시절의 아버지 시대, 그리고 현대의 경제 상황에서의 아들들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친 등장인물들간의 거미줄 같은 얽힘이 존재한다.

 

아버지가 빨갱이였다는 이유로 잡혀서 죽임을 당하고 연좌제로 인해서 자신의 삶이 의도한 대로 풀려가지 않자, 학생운동시절 그 중심에 있던 고향 친구 성도훈을 경찰에 넘기는 조건으로 연좌제를 푼 강필수.

강필수의 농간으로 사랑하는 여인 정요숙과 헤어지고, 경찰에 잡혀 고문을 당한 뒤 강제로 군대에 가서 결국 성불구가 된 성도훈.

강필수가 짝사랑 했고, 성도훈과 사랑하는 사이였고 결혼하고 싶었던 정요숙.

그리고 연좌제를 계기로 강필수와 운명적 거래를 시작한 백성태.

백성태의 의도된 침묵은 거짓말보다 더한 파국의 결과를 낳고, 자가증식하는 의심으로 결국 모든 사람들의 경악과 충격, 아픔 속으로 몰아 넣는 강필수다.

 

자신의 아들임에도 최소한의 확인 조차 해보지 않고, 그저 백성태의 말만 믿은 결과는 처참했다.

강필수 그의 말처럼 그의 인생은 증오의 삶이였다. 빨갱이의 아들이라는 주홍글씨로 그는 연좌제에 묶어 제대로된 삶을 살지 못했고, 아버지의 유언이 되어 버린 "아부지는 이렇게 살다 가지만 넌 절대 사람들한테 무시 받아서는 안 돼. 알것냐." 이 한마디는 어쩌면 강필수의 인생은 자신들의 삶을 이렇게 만들어 버린 세상에 대한 증오를 싹 틔웠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증오에 진실이 감춰지고, 강필수 그가 그토록 바라던 성도훈의 파멸은 결국 자신의 파멸이 되는 형국이다. 평생을 성도훈에 대한 증오로 살아온 강필수는 자신의 큰아들인 민철이 성도훈의 자식임을 믿으면서 그 증오의 싹을 견고히 지켜냈다.

"그 증오가 애비를 지탱해 왔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이 애빈 민철이는 반드시 성도훈의 자식이어야 했다. 반드시...."

 

단 한번의 의심이 결국은 자신의 파멸로 이끈 것이다.

그가 큰아들 민철에게 밝힌 진실이라는 것이 결국엔 자신의 의심이라는, 증오의 결과라는 것을 그는 아마도 몰랐던 것이다.

인간의 부질없는 욕망이 문제가 아니라 "결국 문제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다. 우리 주위에서 서로가 믿음을 상실할 때 새겨지는 배반의 상처는 얼마나 큰가. 인생에서 서로의 믿지 못함은 결국..."(p.14) 누군가의 파멸과 모두의 불행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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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의 반란
민초선 지음 / 발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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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린은 지나치게 소심하고, 특히 성인 남자에 대한 기피증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녀와 우연히 부딪혀서 그녀를 알게 된 블리스.

그는 러시아인으로서 세계 굴지 기업의 후계자였지만 기업가가 자신과는 적성에 맞지 않음을 알고 당당히 박차고 나와서 교가 된 인물이다. 그리고 한국으로 교환교수가 되어 온 것이다.

블리스는 하린이 수강하는 교양과목의 교수가 되어 그들의 인연은 다시 시작된다.

겉으로 보면 소심하고 다소 멍청해 보이지만 정작 대화를 나누어보면서 하린의 진면목을 알게된 블리스다.

그렇게 교수와 제자의 신분으로 만나 학문적 토론을 즐기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호감으로 발전해서 사랑이라는 감정에 까지 이른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하린이 남자를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모습을 알게 된 후 그녀의 오빠 하운으로부터 그녀가 기억하지 못하는 진실을 알게 된다.

어릴적 부유한 집안으로 인해 자신의 어머니 자동차 운전기사로 부터 납치를 당하고, 그 뒤 또 한번 변태성욕자에게 납치되어 좋지 못한 일을 당한 그녀는 그때의 트라우마로 자신을 의도적으로 꾸미지 않고, 남자들을 거부하고 살았던 것이다.

비록 블리스와 가족들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결국에는 그때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두 사람은 결실을 맺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 소설은 못마땅하다.

먼저 제목. 도대체 뭐가 반란이란 말인가?

과거 자신의 아픈 상처를 치유하고 그 트라우마를 깨고 나오는 과정이 극복이지 그것이 왜 반란이란 말인가?

아무리 글자 그대로의 뜻은 아닐지라해도 소설의 내용에 부합하는 제목은 확실히 아닌 듯 하다.

그리고 하린의 오빠 하운과 그녀의 여자친구 이야기가 간간이 나오는데, 좀 생뚱맞다. 두 사람에 대한 설명이 따로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두 사람의 이야기는 이 소설의 전체적인 몰입을 방해한다.

작가가 이 이야기를 시리즈로 쓸 목적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살짝 흘려 놓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런 배경 지식없이 좀 특이한 하운의 여자친구의 등장은 확실히 소설에서 괴리되는 느낌이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그녀가 다니는 성당의 원호라는 남자가 하린에 대한 자신의 짝사랑을 납치라는 극단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이유도 원호가 부모의 강압적인 교육 속에서 자라서 그랬다는 이유 하나로 설명하기엔 너무 맥 빠지는 전개다.

인물들과의 관계, 그리고 스토리를 작가가 좀 더 많이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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