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적은 문장들이 나에게 환기시키는 감각, 나는 그것에 일찌감치 매료되었다. 문장은 작가의 것이었지만 감각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으니까.”_ 역자 배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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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자서전 수필이라고 듣기 전에 이미 그 표지에 낚여서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다. 친구 책을 먼저 보고 훑었더니 여백이 너무 넓고 글은 얼마 없는데다, 얇아서 흥미를 잃었다. 그때 작가 이름을 들었다.

 

저자와 역자의 소개글이 특이했다. 작고한 저자에게는 현재형 문장을, 반면 역자에게는 과거형 문장이다. 책 중간 중간에도 현재형 문장이 과거의 이야기 속에서 나타나는데 억지 스럽거나 실수 같지는 않다. 원문은 어떨지, 저자처럼 외국어로 불어를 배운 처지에 '원서'를 읽어보고 싶다.

 

 

어린시절의 고생과 기숙사 학교의 외로움과 가난, 그리고 책과 글에 대한 사랑. 그후 망명으로 그 모든 정체성을 잃고 지붕과 옷, 그리고 비누를 받아들었을 때의 참담함을 적어놓았다. 이제 막 백일을 넘긴 아기를 안고 11월의 숲을 밤에 넘었다고 했다. 자유를 찾아서. 그런데 그 자유로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문맹이 되었다. 넉넉한 여백에는 저자가 모국어로 넘치듯 채울 많은 문장을 상상했다. 입에 붙어도 겉도는 불어로 이 책을 쓰고 교정 받고 그 과정에서 여러번 모국어롤 되뇌었을 문장들이 사라지지 않고 아직 현재형으로 저자의 책 주위를 떠돌고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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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2018-06-04 1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늘 주문했는데. ^^

유부만두 2018-06-04 13:13   좋아요 0 | URL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전 좋았어요. 맘 속에서 울컥, 하는 느낌도 들었고요.
 

섬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민속춤을 추는 여자. 다만 그녀의 얼굴은 섬의 원주민 보다는 본토 사람에 가까워서 섬사람들에게도 관광객들에게도 호기심 혹은 이질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녀의 이름은 애슐리.

 

아무런 정보 없이 작가 이름으로만 주문하고 받아본 책은 얇고 작고 그림이 많다. 하루키의 버스데이걸, 생각 났고요. 이 책도 읽어가면서 장소가 어딜까, 외국어와 우리말의 자리바꿈을 의식하다보면 천명관의 '유쾌한 하녀 마리사'도 떠오릅니다.

 

본토와 섬 사이에 공식으로 존재하는 경제, 사회 구별과 차별. 그걸로 먹고 사는 사람들. 그 안전한 구별 혹은 가짜 전통을 흔드는 것 처럼 보이는 존재 애슐리, 하지만 정작 본인은 아무런 저항도 혹은 변화도 꾀하지 않는다. 다만 하루 하루를 살아갈 뿐. 커다란 재앙으로 망가진 본토 그리고 그곳 사람들이 몰려오는 섬의 변화. 그 후의 추이는 평범한 영화를 한 편 보는 기분이 들기도 하다. 문단으로 찬 페이지들 사이사이에 만나는 한예롤의 그림은 잠시 이 평이한 이야기를 애슐리의 이야기로 감싸안는다. 마지막, 애슐리의 행동이 진짜 소설의 시작이다. 그 소설은 평이하지 않고 아픈 곳을 헤집는다. 오늘도 섬은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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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상상, 과학과 전설, 돌연변이와 생명을 뒤섞고 만화를 읽는 기분이 들게하는 단편집. 이게 뭐야, 하지만 어느새 설득당하는 칼비노 우주. 유치한데 멋지다면 이런걸까.

 

이제는 멸종되어서 사라진 '공룡들'. 그 중 하나가 숨어서 생명을 부지하다가 긴 부리와 꼬리를 어색하게 휘저으며 지구의 '새 주민'들 무리를 만난다. 새 주민들은 낯선 공룡이 공룡인줄 몰라본다. 그들에겐 공룡에 대한 전설과 증언들 (대부분 틀린것들)만 남아있다. 새 주민들과 다른 외모의 공룡은 '못난이'라 불리며 날품을 팔며 그들 사이에 섞여 산다. 하지만 의사소통의 차이는 '양치류 꽃'이라는 상대와 연인 사이로 발전하는 데 발목을 잡는다. 그의 정체는 의심도 받지만, 그의 강한 신체와 엇박자 나는 몸짓은 의도와는 다른 식으로 받아들여진다. 가끔씩 새 주민들이 말하는 '야 공룡아' 라는 표현에 움찔 놀라는 공룡. 실재가 언어에 먹혀버렸다.

 

공룡이 쳐들어오는 상황도 진짜를 본 적이 없는 새 주민들의 착각이고 공룡의 뼈와 잔재가 발견되어도 그들에겐 별 의미가 없다. 그들이 원하는 공룡은 언어와 이야기, 그리고 상상과 꿈 속에서 강한 침략자 혹은 유혹자, 그도 아니면 덤덤한 배경으로 등장하고 사라졌다. 공룡은 멸종되었구나. 공룡의 흔적을 알아본 진짜 공룡은 떠돌이 무리 속의 공룡과 새 주민의 혼혈 여인과 하룻밤을 보내고 자신의 핏줄을 지상에 남기고 ... 자신은 .... ( 마지막 세 문장은 정말 벙찌는 상황이지만 정답같은 결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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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의 유령들'을 드디어 다 읽었다.

 

네 남녀가, 자세히는 두 부부가, 서로 20 대부터 친구로, 학우로, 연인으로 가깝게 지내던 네 사람과 그들의 아들 징, 딸 율, 그리고 오수, 라는 사람과 철수와 영희와 다른 많은 사람들이 '알제리의 유령들'이라는 희곡을 혹은 소설을 읽고 쓰고 그때문에 다치고 털고 일어서는 이야기다.

 

네 개의 장으로 나뉘고 인물 하나씩 부제로 달고 있지만 지목되는 그 인물 보다는 다른 이(들)이 쏟아져나와 건조한 문제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이야기. 대화문도 많이 쓰이지만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기 보다는 작가의 메마름과 소설 전체의 불친절함, 다가오지마, 날 재밌게 읽지마, 난 내 할 말을 하겠어, 하는 긴장감을 느낄 뿐이다. 그렇다. 이 소설은 알제리의 유령이라는 거창한 떼제, 혹은 밀란 쿤데라의 농담, 보르헤스적 진실과 거짓, 아픈 시대와 저항, 그리고 모든 것을 감싸안는 예술, 아니면 헛발질에 대해서 생각하게 했다.

 

도대체. 왜? 이 네 인물이 저런 행동을 하는지. 이런 행동이나 전개, 인생이 과연 앞뒤가 맞는건지. 화가 나도 참고 참으며 읽다보면 마지막 장의 '설명'으로 이해는 가고 뭔가 근사하게 포장할 수는 있겠지만. 친구에게 이 책을 선뜻 읽으라고 추천하지는 않겠다. 많은 소설가님들이 추천하셨으니 뭐 나 따위가 감히.... 중단편 두께지만 인물의 뜬금없음과 온갖 트라우마와 연극과 자기 아빠 얘기부터 하는 소설을 꾸역꾸역 읽다보면 장편 읽는 기분도 들면서 어쩌면 이 '세련되고 아름다운' 소설의 의미를 발견할 수도 있겠지.

 

그래서 알제리의 유령이란 무엇이냐?!... 알제리에 네 명의 유령들이, 아니 ABCD가, 아니 연극에 말이지, 소설이 뭐라고 생각하니, 문학상 일뜽이라매, 제주도에 실은 .... (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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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5-07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지지지지지지직 ㅋㅋㅋㅋㅋㅋㅋ
참신하다....

유부만두 2018-05-08 08:38   좋아요 0 | URL
스포를 피하고 싶었어요...지지지지직...

2018-05-08 0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08 08: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09 2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0 0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