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에는 여자 작가의 작품이 없었다. 작가의 이름이 숙, 혹은 희, 로 끝나고 남자 작가였다. 5권으로 넘어가서 '생존의 상처', 70 80년대 부정부패 시대의 소설을 만났다. 처음 실려있는 것은 박완서 작가의 '조그만 체험기'. 황석영 작가의 해설에 의하면 박 작가의 실제 체험을 살려 쓴 소설이라 했다.

 

화자의 사십대 후반 부인, 작가라는 언급 때문인지 얼핏 엣세이처럼도 읽힌다. 어느날 갑자기 사업을 하는 남편이 '사기죄'로 체포된다.  작가의 목소리가 자신과 다른 여인들을 '여편네'라고 칭하면서 주눅들던지 악에 받쳐 으르렁 거리는 모습으로 그렸다. 자유를 이리 저리 빼앗기고 없이 살면서 '억울해서' 가슴에 맺힌 사연들을 남에게 표현하느라 용을 쓰는 여자들. 자신의 자유의 근간이 되는 '남편'이 '아들'이 감옥에 갇혀버린 여자들. 그 여자들의 공포와 무지를 후려쳐서 돈을 빼앗는 형사와 변호사 등 국가의 얼굴을 한 남자들. 법이 없이도 살려면 법을 손에 쥐고 있거나 빽이 있어야 하는가.

 

 

70년대에 쓰인 소설이라 통행금지와 오백원 지폐 이야기가 나오고 변호사 선임비용이 삼십만 원 이었지만 꽤 공감을 하면서 읽었는데, 소설 말미 두 쪽에 걸쳐서 갑자기 교훈 혹은 깨달음을 펼쳐 놓는 부분 때문에 깼다. 실생활에서 겪고 엮어 내놓았지만 문학으로 취급받지 못할까 박완서 작가의 염려 때문이었을까. 실은 황석영 작가의 해설 장면은 은근히 '아줌마 글'을 깔보는 느낌이 든다. '깍쟁이 '서울내기' 아낙네로서의 박완서의 '수다'는 이른바 한국적 중산층의 감수성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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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근대화' 라는 부제가 달려있는 4권은 해방이후 근대화 시절의 무지하고 폭력적인 노동의 현장들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소설들이 담겨있다. 한승원의 등단작 '목선'을 읽었다. 꾸역 꾸역 읽었다.

 

겨울 동안 과부 양산댁의 김 채취를 도우며 머슴을 사는 석주는 서른이 다되어서 미루고 피했던 군대를 다녀오는 새에 부인이 배를 팔고 도망간 아픈 과거를 갖고 있다. 야무지게 일하며 아들 하나를 키우는 양산댁과 김채취를 하던 어느 날, 양산댁의 소변 누는 것을 (배 위에서 작업 하다 보니 자연스럽다고 할 수도 있을 수도 있을 것이나) 보고 맘이 동한다. (아니 왜!) 어느새 슬금슬금 양산댁의 말투가 명령조에서 청유형으로, 그 자신도 말을 놓고 있었다. 석주는 멋대로 양산댁을 범하려 든다.

 

 

불법 카메라 영상을 찍고 돌리는 범죄자들의 논리가 이것이다. 육체를 보아버린 피고용인 그가 어느새 고용주 양산댁의 육체에 권력을 가진 '남자'가 되어있다. '홀로 사는 여자를 홀로 사는 남자가 한 번쯤 만져주었다고 죄가 되면 얼마나 되랴 싶었다.' (409)

 

하지만 양산댁은 강렬하게 저항한다. 강간에 실패하는 강간미수범 석주. 의외의 '정조' 관념으로 자책하며 양산댁 집을 몰래 떠나려고 한다.

 

 

그에게 양산댁은 일을 마저 다하고 가라며 말린다. 하지만 김채취가 끝나고 배를 빌려주기로 한 약속을 깨버리는 양산댁. 화가 난 석주는 양산댁에게 뭔가를 꼬드긴 태수를 패버린다. 태수는 예전 자신의 부인과 바람 난 김장수와 겹쳐지고 그에 넘어가 약속을 깬 양산댁은 부정한 전부인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논리 낯설지가 않다. 분기탱천해 양산댁도 패버리려는 (죽일 수도 있었겠지, '욱해서' 혹은 '순정을 받아주지 않아서') 순간, 배를 포기하는 양산댁은 '나는 배와 떨어질 수 없다'고 말한다. 이를 자신을 꼬여내는 말로 받아들이며 멀리 바다를 쳐다보는 석주.

 

하아.....토가 밀려온다. 이게 한국문학의 '절창'. 다시 한 번, 폭력의 문학을 확인했다. 남은 '한국명단편' 전집을 덮어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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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을 핑계로 집에 있으려고 했다. 오후 약속을 취소하고, 병원 예약도 변경했다. 커피를 내리고 사과를 깎아 한 입 베어물자 막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 오늘 우리반 단체티 입는 날이었더라구요?;;;

실은 오전에 학교서 학부모 강연이 있는데 가기 싫어서 애 앞에서 피곤한 티를 냈는데. 애는 눈치란 없지, 절대 없지. 그러니 오는 길에 갖다달라고 얘길 하는거지. 나는 부랴부랴 준비중에 짧은 리뷰? 를 남긴다.

1990-2015년의 중고등 생활을 소재로한 단편집이다. 아는 작가가 둘 뿐이라 정세랑, 장강명 것만 골라 읽었다. 장은 (역시) 기사가 되었던 어느 사립학교의 급식 비리 이야기를 학생의 입장에서 쓰(는 흉내를 내)고 정은 (의외로) 판타지를 싹 지우고 덤덤한 범생이 이야기를 썼다. 사랑도 살짝 묻어있다. 사건과 진통이 있고 아이들은 졸업을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다니던 시절 보다 나중 일들인데 어쩌면 선생들은 그대로고 하는 멘트도 그대로일까. 발랄라라하리라 기대한 내가 머쓱하게 학창시절은 지나고 나서야 그리워... 아니, 아련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 당시엔 넘나 지겨운것. 그 학창시절 (초딩은 안쳐줌)에 들어서려는 막둥이가 글쎄 준비물로 맘고생이쟈나, 갖다줄게. 하지만 이거 버릇되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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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8-08-24 0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 엠군은 보면 꼭 내가 차 쓰는 날 뭘 안가져가더라고. 아마 누나가 운전해서 갔을때는 어짜피 연락해봤자 내가 차 없어서 못 가져다 주는 거 알아서 그냥 없는대로 있었겠지. 숙제도 안내고 그러면서 ㅜㅜ

유부만두 2018-08-24 11:57   좋아요 0 | URL
준비물 안 가져가도 냅둬야 한다던데, 우리집 얼라들은 그래봤더니 그냥 점수 깎이면서 계속 잊고 안챙기더라고요. ㅜ ㅜ 맨날 뭐 잃어버리고 흘리고 다니고.

지난번 휴가 나왔던 큰 애는 하마터면 군표 (목걸이) 집에 두고 귀대할 뻔;;;;; 아이고요. 이런 애가 나라를 지킵니다. ㅜ ㅜ

psyche 2018-08-24 12:03   좋아요 0 | URL
나도 엠군 키우기 전에 그렇게 주장했어. 준비물 안가져가더 냅둬야한다고. 누나들은 그게 먹혔는데 이녀석은... ㅜㅜ
엠군 키우면서 엄청 반성한다는...
 

어떤 직종이라도 드라마에선 연애만 한다. 회사는 두 계파로 나뉘어 이사장과 사장 사이의 암투가 벌어지고 해외 유학파 여인은 순박한 계약직 여직원의 츤데레 애인인 실땅님을 빼앗으려 든다. 실땅님은 실은 어릴적 부터 아픔이 있었....

 

그런 이야기 아닌 그냥 직장인 이야기다. 소설이지만 쓱쓱 읽히고 큰 얼개나 구성, 인물도 엄청 새롭지는 않다. 설레지 않는다, 고 제목에 써놓고 당당하게 직딩의 생활 이야기로 시작한다. 알람 사이의 8분 (내 시계는 9분)이 붙잡아주는 달콤함과 게으름으로 만드는 아침, 어젯밤에 놓아둔 물건을 밟고 시작하는 분주한 출근 준비, 차곡차곡 쌓이는 마켓 떨이 물건 기분이 드는 지하철, 오랜 연인과 헤어지고 느끼는 후련함과 그저 따지고 화풀이 하는 게 목적인 고객의 전화. 믿음직한 사수였던 선배의 퇴사가 불러오는 불안감, 갑자기 쎄한 느낌이 들게 구는 맞은편 직원, 등. 내가 겪지 않고 있는 일상들을 차분하게 불러와서 늘어놓는데 상상이 갑니다. 그 작은 인간 사회의 축약형, 그 안의 갈등과 서열, 그리고 초월하기 위한 나름의 비법도. 아줌마라고 모르지 않아요.

 

나카코와 시게노부, 성(姓)도 생일도 같은(!!!!) 두 남녀가 과연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될까를 생각하면 사실 조금은 설렙니다만, 그것 말고는 직장의 일이라 나처럼 비직장인이 읽어야 재밌을 책이다. 이런 매일의 풍경을 휴식 시간의 책 안에서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을테니까. 그래도 뭐랄까, 생활형 소설, 아니면 꾸준함의 글, 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매일 매일 아침에 나서고, 볶이고, 지치고, 순간순간 일탈이나 휴가를 꿈꾸고, 그리고 다시 아침, 누구나 다 그렇다고, 조금은 우겨보련다. 책 말미에 실린 이 책의 홍보 만화 (인데 왜 끝에 붙여놓았을까요) 가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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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사건은 벌어졌고, 아이들은 죽었고 피의자 보모 루이즈는 자해 후 병원에 누워 있다. 여성 경감은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었고 루이즈 대신 현장검증에 설 예정이다. 피의자의 마음 속, 그 의도를 들여다 보려 애쓰는 경감의 독백으로 소설은 끝난다. 아직 아무 것도 밝혀지지 않은채. 역자 후기에서도 '나는 루이즈를 모른다' 라는 솔직한 문장이 놓여있다. 누가 알겠는가, 그 검게 굳은 심장의 여인을.

 

소설 내내 바쁘게 '미래를 계획하는' 미리암과 폴 부부 대신 루이즈는 계속 쪼그라들고 있다. 내몰리며 현실을 부정하는 루이즈. 그녀가 딱히 미리암의 처지를, 옛 자신의 고용주들의 집과 가정을 시기했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녀는 바쁘게 매일 갈 곳과 자신을 기다릴 해맑은 아이들의 눈동자, 살뜰한 보살핌 뒤에 반짝이는 집안의 모습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녀는 늙어갔다. 아당의 동생을 기다리며 자신의 존재이유를 만들기 보다는 다른 새 가정에서 새로운 아이 돌봄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다른 '종결'을 향해 걷는다. 이제 은퇴를 생각하는 키 작은 남자, 루이즈에겐 성에 차지 않는 남자를 소개 받아서 꾸역꾸역 데이트를 이어가고 있었다. 밤엔 넋을 놓고 가게 윈도우를 구경하며 한없이 걷고, 다른 보모들 (주로 프랑스인이 아닌 유색 외국인들)과는 말을 섞지 않고 '가르치려 드는' 에너지도 서서히 잃어가는 루이즈. 아이들을 해하고 나서 그녀 자신도 정말 죽으려 했을까. 루이즈가 정말 미워한 대상은 누굴까. 끈적한 빗바람을 맞으며 읽자니 갑갑하기도 하다. 빨래도 안마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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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8-08-23 0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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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8-08-23 08:05   좋아요 0 | URL
아니요;;;;; 추리 스릴러 쪽도 아니고요, 좀 애매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