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치디, 에서도 첫 문장의 엘레인에서도, 나는 화자의 성별과 국적 그리고 언어에 대해서 상상할 수 없었다. 조금씩 그가 한국인이 아님은 물론 영어가 모국어도 아닌 브라질 남자라는 것을 알게되면서 찰흙이나 지점토를 빚어서 만들듯 조금씩 상상의 얼굴을 만들...다가 말았다. 그가 하는 이야기는 자신의 경험, 아치디라는 작은 마을의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하민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하민은 내가 아는 사람 같았다. 권여선 작가의 '이모' 생각도 났고, 속없이 고생만 했다던 먼 친척 고모님 댁 큰언니 같기도 했다. 다들 떠나는 방식은 달랐고 살아내는 식도 달랐지만 어쩐지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랄도, 그의 고통스러운 마음도 전혀 낯설지 않았다. 그런데....이런 멀고도 가까운 이야기를 여러 겹의 언어와 시간, 더해서 국적을 바꿔 포장해 놓은 것을 읽으려니 피곤하다. 최은영 작가의 전작 '한지와 영주'를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했던 기억이 났다. 내가 너무 늙었기 때문인가. 왜 이 나이 먹도록 젊은 작가와 그들의 젊은, 너무나 어리고 풋풋한 이야기에 이리 매달려 집착하는가. 아치디에서, 먼 이국에서 다른 언어로 지내다 보면 인생의 고민은 매듭을 풀고 새로운 삶을 살아낼 용기와 기회가 생긴다고, 그 때는 믿었었지. 만. 위안을 얻지 못하고 책을 덮는 내 늙은 마음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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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0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20 1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패피들을 존경한다. 내 동생 같은.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패션 아이템들을 기억하고 활용하며 멋지게 조화시켜 입는다. 명품도 사랑하고, 잘 알며 동대문 시장도 자주 간다. 나는 동생의 옷이 명품인지 아닌지, 지난주 만났을 때 본 옷이 새 옷인지 아닌지, 잘 모른다. 난 보통 교복삼아 같은 옷을 줄창 입고 다닌다. (요즘은 동생이 골라준 민소매 회색 원피스) 안목도 없고 귀찮다. 그런데 가끔 패션에 대한 궁금증이 동할 때 이런 책을 산다.

 

 사고 늘 후회한다.

 

여전히 난 패피가 아니고, 패피들을 위한 옷 입기 가이드였으니 내가 볼 책은 아니었나 보다, 생각한다. 이 책은 옷 잘 입기 책이 아니고 현대의 의류 산업이 환경을 해치고 있다는 점, 조금이라도 지구를 위하고 멋지게 옷을 입고자 한다면 이 책에 실린 많은 패피들 처럼 옷장 정리, 옷 제대로 관리, 버리는 대신 중고로 팔거나 기부하기, 헤진 옷 리모델링해서 재활용하기, 등을 하라고 소개한다. 엣세이도 하니고 짧은 토막토막으로 각 방법들을 나열하는데 너무나 일반적이고 대략적이라 (주석 번호가 달려있지만 원문에 해당되는 영문기사들 웹주소 등이라 큰 도움이 안된다) 미장원에 있는 여성잡지의 특색 없는 특별 기사를 보는 기분이 든다. 사이사이 들어있는 멋진 인물들의 사진이 그나마 위안이다. 이렇게 예쁜 몸매의 사람들이라면 뭘 입어도 패피겠다.

 

이 책에서 선행과 함께 하는 예로 드는 톰스 신발 기부에는 좀 거부감이 든다. 톰스 신발 한 컬레에 한 두 컬레 기부하게 하는 시스템은 그 기업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었지만 정작 아프리카의 산업/취업 구조를 망가뜨린다는 기사를 읽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를 늘 원조와 기부를 기다리는 곳으로 만드는 것도 불편하다.

http://miainafrica.tistory.com/entry/TOMS-Shoes

 

또한 이 책은 화학약품 사용 (세탁, 특히 드라이크리닝)을 경고하며 천연, 친환경 제품으로 대체할 것을 권하는데 자세한 정보는 없이 두루뭉실 넘어간다. 환경과 미래를 생각하는 서로 돕는 멋진 패피!!! 라는 것은 좋지만 내용도 없고 엣세이도 아니라 읽는 맛도 없고 (차라리 언급된 사람들에 대한 자세한 기사였다면 더 흥미로웠겠지) 반복은 많아서 실망이었다. 결론은 이 책은 나처럼 패피 아닌 사람이 낚여서 사기 쉬운 책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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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8-08-14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지금껏 유부만두가 멋쟁이라고 생각했는데!

유부만두 2018-08-16 09:27   좋아요 1 | URL
실은 언니 만날 땐 옷을 신경 써서 입었어요. 언니는 제게 소중한 사람이라서! ^^

라로 2018-08-14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패피가 뭐에요??

유부만두 2018-08-16 09:28   좋아요 0 | URL
줄임말이에요. 옷 잘 입는 ,패션 피플, 에서 첫 글자만요.
영어를 우리말 식으로 쓰고 줄이기 까지 하니까 영어가 아닌 셈이네요.
 

각자의 '보통'과 상식, 그리고 기준은 다르다. 내 입맛과 취향, 그 날의 기분에 맞추어 반찬을 주문하면 성심껏 맛있게 만들어 주는 식당이 있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지나치게 묻거나 간섭하지 않는다. 얼핏 '심야식당' 생각도 나는 '미래식당'.

 

점심 시간엔 매일 바뀌는 단 한 가지 정식만 저렴한 가격에 팔고, 한 시간 식당일을 도우면 한끼 무료 식사 쿠폰을 주며, 그 쿠폰을 필요한 다른 사람이 쓰도록 할 수도 있고, 음료를 반입할 땐 동량을 내 놓도록 해서 다른 손님이 즐기도록 하는 동네 사랑방 같아 보이는 식당. 하지만 너무 끈끈한 모임이 되지 않도록 선을 지키고 입을 다물고 질척대지 않는 주인장. 많은 방송과 sns에서 유명세를 치뤘지만 (이렇게 책도 나오고) 흔들리지 않고 자기 길을 걸으며 다른이들 돕기를 계속 한다. 계획과 실천, 그리고 실수를 기록하고 개선해 나아가면서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이다. 다른이들에 대해 배려하고 자신이 '착하게 기분 좋음'에 중독되지 않도록 경계한다. 귀찮을 법한 자잘한 일거리들을 즐기면서 귀엽게 산다. 단순한 메뉴로 손님 접대를 하지만 그 심플함 속에 많은 예의와 조심성, 그리고 선한 의지가 담겨 있다.

 

작은 식당 성공기, 혹은 마을 공동체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시선, 다른 방향을 상상하게 해 준 책이다. 한끼 식당밥을 사 먹는 입장이었다가 반대편의 이야기, 주방과 계산대 안쪽의 반복되는 그 많은 경험과 긴장감. 인생도 그렇겠지. 강요하지 않는다. 착하게 돕고 자기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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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8-08-11 1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유부만두 님의 요점정리 완전 짱이에요!! 어제 달았던 댓글에 대한 답글을 여기다 달래요. ^^;; 암튼, 저도 읽으면서 앞뒤가 안 맞는 느낌이 들고 하고자 하는 얘기가 뭐지? 이런 부분이 있었는데 저는 그것을 번역자 탓으로 돌렸;;; 그래서 제가 언젠가 일본어를 잘해서 직접 읽어 볼테야, 뭐 이런 결심을 했다지요. ㅎㅎㅎㅎ 저는 이 책이 선하거나 선의를 나눈다거나 뭐 그래서 좋았던 것은 아니에요. 제가 이 책을 제 인생 책이라고 한 이유는 저는 그녀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배웠어요. 어떻게 설명을 할까,, 너무 많아서;;; ㅎㅎㅎㅎ 일단은 간섭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이겠죠. 무심한 것. 저는 그런 거 죽었다 깨어나도 못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작은 것부터 저에게 많은 깨달음(?)을 줬어요. 물론 그런 책을 엄청 많이 읽었는데도 불구하고 왜그런지 모르지만 저에게 더 사적으로 다가오더군요. 암튼 그녀의 자세와 삶을 향한 태도는 저도 앞으로 공부를 하면서 적용하고 실천하려고 다짐하고 있어요. 작고 어린 여자 사람에게 거인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요?? 왜 더 훌륭한 사람들이 많겠지만 고바야시 세카이씨가 순수하게 느껴졌을까요? 타성에 젖은 저를 깨우쳐 줬다고 해야할지?? 암튼, 북플로 댓글을 길게 달면 딱 두줄만 보이니까 횡설수설. ㅎㅎㅎㅎ 암튼 유부만두 님도 짱 멋져요!!!!

유부만두 2018-08-13 08:15   좋아요 0 | URL
라로님은 늘 칭찬만 해주십니다. ^^
 

라로님의 추천에 읽기 시작한 책이다. 작은 밥집 경영자의 철학과 세세한 실행 방법에 대한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단순한듯 보여도 단단한 결심 없이는 불가능한 일들을 읽었다. 손님을 상대하며 타인의 '보통', 혹은 사정을 가늠해서 맞추려 노력하는 게 가능할까. 절망적인 누군가를 위해서 공짜 식사를 마련하는 사람들도, 남을 믿고 자신의 공간에 들이는 사람도 모두 경이롭다.

 

기존 시스템도 작은 틈만 보이만 '뽑아 먹을' 궁리에 빠른 사람이 얼마나 많나. 유학 시절, 고급 차를 몰고 한국서 월급도 보내주는 공무원 연수생들이 미국 사회보장 제도를 이용해서 매달 무료급식 쿠폰을 받아서 슈퍼에서 사용한다며, 그걸 자랑하는 걸 여러 번 봤다. 미국 내의 수입/세금 기록이 없는 것을 이용해 자발적으로 미국의 극빈층으로 자신들의 이름을 올린 그 사람들, 요즘 불 잘 난다는 그 자동차 타고 주말엔 골프 치러 다는 것 기억난다. 우리 나라 세금으로 월급 받던 아무개는 빠리 어학 연수 기관에는 툭하면 결석하고 놀던 것도 생각난다. 좋은 시스템과 제도를 망가뜨리고 불신을 조장하는 사람들, 그러면서 자신이 '뽑아' 먹은 것을 자랑하며 염치와 지능 없음을 드러내던 것들. 선한 의도를 악용하는 버러지들.

 

사방으로 뻗는 생각 탓에 마음이 어지럽다. 이렇게 애쓰고 살피며 부지런히 사는 사람들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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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8-08-10 16: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고 또다시 이 책에 대해서 생각해 봤어요. 책을 추천한다고 하는 일은 어쩐지 내가 드러나는 것 같아서 조심스러운데 이 책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저는 이 책이 정말 좋아요. 아침에 걸으면서 이 책에 대해서 거의 매일 생각을 합니다.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에 대해서. 식당이 아니라,, 제가 하는 일을 어떻게 하면 누구나에게 이익이 될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여기는 의료보험에 문제가 많잖아요. 암튼 아직 제 머릿속에 있는 생각이 실타래처럼 얽혀있지만 세카이씨처럼 차근차근 풀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요. 제가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ㅎㅎㅎㅎ 암튼 유부만두 님도 이 책이 맘에 드셨기를 바라며 좋아요를 백개를 누르는 마음이 오늘 좋아요를 누르는 제 손에 들어가네요. ^^;;; 아 물론 그렇게 이기적이고 이용만 하고 불신을 조장하고 좋은 제도를 망가뜨리고 자기 이익만 취하는 그런 염치와 지능없는 인간들은 안 좋고요.(저도 많이 봤구요. 원정 출산인가? 그런거 해서 여기서 공짜로 애기 낳고 간 사람들 자식 시민권 그렇게 얻으니 좋은지? 등등 화나요)

유부만두 2018-08-11 10:44   좋아요 0 | URL
여러 면에서 예상을 벗어나는 책이었어요. 단골 손님들과 끈끈한 모임을 싫어하고 착하고 기분 좋은 이미지를 경계하고, 이윤을 추구하는 것의 정당성을 알고, 또 어려운 사람을 배려하고요. 계속 자신이 나아갈 바를 고민하는 주인/저자의 태도가 감탄스러웠어요.
다만 책의 구성에서 이 사람이 하고자 하는 말이 잘 와닿지 않고 억지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었어요. ....는 ...이렇지만....아니다... 라면서 뭘 원하는 거지? 라고 갸웃 거렸거든요. 전 고객/손님을 상대한 경험이 없어서 이 책 저자의 관점이 새로웠어요. 그리고 제가 위에도 썼지만 선의를 악용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서 이미 선의를 믿지 않게되버렸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자는 뚝심 있네요. 그리고 뭣보다 부지런 하고요. 읽으면서 라로님 생각을 했어요. 어쩌면 이런 선의를 높이 사셨을까.

서울은 오늘도 덥네요. 대충 치우고 슈퍼에 가려고요. 선의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주말을 보내겠습니다. 라로님도 건강하고 행복한 날 보내세요. ^^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검색하다가 얼핏 본 제목 '바클리 마라톤'은 실제 시행되는 대회라고 한다. 올 3월에도 열렸지만 완주자가 나오지 않은 악명 높은 마라톤. 에베레스트 등반 두 번에 해당한다고 일컬어지는 등산+달리기 트래킹. 영화를 보기도 전에 질려버림.

 

 

 

 

 

 

 

 

 

 

 

 

 

 

 

 

 

이 대회에 대한 기사가 '러너스 월드'에 실렸는데 하아, 읽으면서 이게 바로 호러 소설이 아닐까, 스티븐 킹 초기 소설이 생각났다. (스티븐 킹이 열아홉 시절에 썼다죠. 그러고 보니 황석영도 열아홉에 '입석 부근'이라는 산 타는 이야기를 썼고요) '롱 워크'에선 뛰지 않고 걷는데 시속 6.5km 이하로 떨어지면 경고를 받고 (아니 이건 거의 뛰는 거임) 경고 3번이면 총살 당하는 대회  (나는 예전에 죽었소). 잘 수도 용변 보러 쉴 수도 없다. 그런데 '현실의' 바클리 마라톤은 평지가 아닌 산에서 벼랑에서 비탈에서 벌어지고 gps도 못써서 참가자들이 길을 잃기 일쑤에 1코스 12시간 제한 총 5코스 60시간을 맞추지 못하며 환각증세를 보이기도 한다니. 아 이건 뭐야. 인간의 끝은 어디인가. 코스를 제대로 돌았다는 증명은 각 포스에 (13곳) 놓인 책에서 자신의 참가 번호 해당 쪽수를 찢어오는 것. 완주해도 상금은 없다.

 

'러너스 월드'는 의외로 재밌고 멋진 기사가 많았지만 오류도 있다. 파운드는 약 0.45킬로 그램으로 계산해야 한다. 그러니 120파운드는 48킬로그램이 아니라 54킬로그램이다.

 

마라톤을 인생에 비유하는데, 내가 왜 이렇게 달리기, 마라톤에 꽂혔나 했더니, 내 나이 만 50을 목전에 두고보니 헛, 하고 놀라 불안한 탓이다. 아직 늦둥이 키울 일이 한참 남아서 운동을 시작했는데 여지껏 이런 몸뚱이로 게으르게 막 먹고 막 산 벌을 받는 기분의 매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놀지도 즐기지도 못했는데? 아직 이뤄놓은 것도 없고. 결론은 건강하게 좀 더 살고 싶습니다만? 이왕이면 재미있게요? 그리하야, 그동안 생각만 하고 미뤄두었던 운동과 함께 일본어 공부도 시작했고 (이것도 속도는 너무나 슬로우 슬로우) 천성에 맞지않게 부지런을 떨며 애쓰고 있다. 쉬이 지치고 짜증 나는 여름, 누워 죽어있는 매미를 보며 나 자신을 다잡는다. (BGM 지금 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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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8-08-12 0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동도 열심히 일본어 공부도 꾸준히 하고 있는 유부만두 응원합니다!
나는 언제부터 할려나.ㅜㅜ

유부만두 2018-08-16 09:31   좋아요 0 | URL
언니의 응원을 먹고 꾸준하게 (강도는 약하지만) 운동 하겠습니다.
아마 이번 가을 부터? 이제 M군만 챙기시면 되니까요. 저도 큰애 군대 보내고 시작했쟈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