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때 처럼 쇼파에 누워서 (너브러져서) 책 표지를 열었다가 책날개의 저자 약력을 보고 바로 일어나 앉아서 읽었다. 어려운 조건들을 극복하고 소방고위직으로 승진하고 위험 순간의 선택 과정에 대한 심리학 연구로 박사 학위도 딴 사람. 저자의 드라마틱한 인생 이야기려니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왠걸. 첫장 부터 재난 영화 한 장면 처럼 세세한 묘사로 화재 현장으로 독자들을 끌고 간다. 캄캄하고 뜨거운 집 안, 피해자를 남겨두지 않으려 애쓰는 소방관들. 하지만 산소통의 숫자는 줄어들고 아직 어린 아기는 찾을 수 없다. 과연 계속 현장에 있어야 하는가, 아니면 포기하고 밖으로 나가야 하는가. 


이렇게 매 장마다 위험한 화재, 재난 현장의 시나리오가 펼쳐지고 소방관 구조 팀 내의 위계 속에서 벌어지는 긴장과 갈등, 착오와 실수가 묘사되는 중에 지휘관 및 구원대원들은 어떻게 해야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책 중반까지 훈련과 심리학 연구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이어진다. 그러다 그녀의 인생 이야기가 조금씩(이지만 화재 만큼이나 강렬하고 뜨겁게) 펼쳐지며 - 15살에 노숙자로 버텨야 했던 길 위의 삶과 미래를 향한 희망, 성차별적 발언과 무시를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직장 상사와 동료들, 인명 사고를 겪은 후 맞는 PTSD, 직장과 가정 생활의 균형잡기 등 - 생명을 버리거나 구할 수 있는 결정의 무거운 순간과 만난다. 현장에서 대원들의 결정 80%는 경험과 지식에서 생기는 직관으로 만들어 진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 직관에 따라 그 자리에서 바로 결정이 내려진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만 기준을 두는 결정을 미래를 예측하여 내리도록 유도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한다. 촌각을 다투는 구조의 현장에서 스트레스와 위계 질서는 오류를 불러올 수도 있기에 그를 예방하는 지속적인 연구와 훈련이 이루어지고 있다. 심리학적 연구자의 시선으로 현장을 사후 검토하고 재난 예비 훈련장에서 냉정을 유지하려 애쓰는 저자가 인상적이다. (특히 여성 지휘관의 말을 단호하고 위엄있게 옮긴 번역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실수나 후회는 피할 수 없다. 그러니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최악의 하루를 잘 지나가게 하기 위해서, 다른이를 '자신의 목숨을 걸고' 도우려는 이들은 계속 노력할 뿐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an22598 2021-01-26 0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면, 직관이라는 것도 이면에 지속적인 훈련과 배움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일명, 실전은 연습처럼되기까지. ^^ 표지 사진이 저자인것 같은데, 먼가 멋짐이 폭발하네요 ^^

유부만두 2021-01-26 08:46   좋아요 0 | URL
네. 바로 그 점을 저자가 이야기 하더라고요. 긴급한 상황일수록 직관의 역할이 크다고요. 그러니 더 훈련이 중요하다고요. 폭발하는 멋짐과 강인함, 바로 저자에요.

psyche 2021-01-28 04: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장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페이퍼입니다!!

유부만두 2021-01-28 09:30   좋아요 0 | URL
추천해요. 위기 상황의 결정에 대한 책이지만 사람 관계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유퀴즈에서 정세랑 작가가 추천한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을 읽었다.


여러 겹으로 정성스레 포장한 선물을 끌러가면서, 그 안에 든 복잡한 문양의 퍼즐을 푸는 기분이었다. 문제 풀이 보다 장식과 설정에 자주 눈을 빼앗겼다. 


소설 초반에 세 겹 이상의 준비 단계가 있다. 


살인 사건의 시작은 시체 발견이 아니라 그 범죄의 설계와 주변 인물들이 한 자리, 범행 현장으로 모여드는 것 부터 시작이다, 라는 '새로운 범죄/추리 소설의 정의'를 준다. 인생이 꼬여서 벼랑에서 몸을 던졌지만 목숨을 건진 한 남자가 있고, 주위 상황에 치여서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를 고백해버리는 심약한 소녀도 나온다. 그리고 차분하게 범죄를 설계해서 시나리오를 써 검토하고 외운 다음 태워버리는 범인이 나온다. 물론, 계획에는 차질이 생긴다. 


엎치락 뒤치락 사랑하고 배신하고 속땅해하고, 범인이 얘, 쟤, 걔로 화살표를 바꾸다가, 갑툭튀, 아니 아까 아까 설정들의 그 상황이 재연되면서 '나쁜넘'이 밝혀진다. 신체 특징을 가지고 이런 저런 유사과학 썰들이 나오고 '심리학'이 어쩌고 하는 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살인 사건이 지독한 건, 피해자가 미운 게 아니었다니?! 얼마나 증오가 크면, 얼마나 자기애가 크면 사람 목숨을, 그것도 '철퇴'를 써가며 앗을 수 있을까. 


자 이렇게 끝나도 되잖아요?! 그런데 그토록 정성스레 포장하고 차곡차곡 겹쳐서 쌓아 놓고는 (섬세하기 보다는 그냥 습관 같긴 했지만) 마지막에?!!! 으으잉? 스럽게 커플 만들기라니요? 아이고 촌시려요. 


---


덧: 그런데 말입니다, 

    그 '금사빠' 여성이 마지막에 그를 만나서 아마도 함께 타국으로 떠난다면 그 후에도 사건이 날 것 같은데요? 허... 이거 애거서 크리스티 님께서 만드신 또 한겹의 이야기 입니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syche 2021-01-23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옛날에 0시간으로 라는 제목이었던듯??

유부만두 2021-01-23 23:08   좋아요 0 | URL
아, 언닌 안 읽은 애거서 크리스티가 없을 거 같더라!
 















완독했다. 상권과 하권은 전자책으로, 중권은 오디오 북으로 들었다. 오디오 북은 처음엔 낯간지러운 기분이 들기도 했는데 (특히 레트 버틀러의 느끼한 목소리나 교태 부리는 스칼렛의 대사) 이야기의 생생함을 전달하기에는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듣기 보다는 눈으로 더 빨리 읽어나갈 수 있다. 집안일을 할 때 오디오북이 효율성을 높인다 싶다가도 그만큼 집중을 하지는 않으니 어쩐지 반칙을 하는 기분도 들었다. 


처음부터 불편하게 표현되는 인종 차별 표현/문장 등은 중권에서 극에 달하며 남군의 패배, 북군의 지배와 새 체제의 설립 부분에 이르러서는 거의 정치적 선동이 되고 노골적인 흑인 멸시와 혐오 대사가 계속된다. 북부가 남부를 지배해서 선거권도 빼앗고 '자격없는' 흑인이 남부의 부와 재산, 전통과 정신을 파괴했다는 주장이 반복되며 KKK를 자구책으로 설명하는데 (지난주 미국의 수도에서 벌어진 일이 더 섬찟하게 느껴졌다) 차마 들을 수가 없어서 몇번이나 책의 문장을 확인해보니 더 심한 욕설과 비속어 문장은 건너뛰고 녹음했더라. 확실히 눈으로 읽는 것 보다 혐오 대사를 귀로 들을 때 그 충격과 불쾌감은 더 크다. 소설의 흑인들의 말은 어리숙하고 비문 투성이라 읽기에도 듣기에도 불편하다. (영화에서는 - 그러하다. 영화 까지 보고 말았다. - 흑인들이 그럭저럭 제대로 된 대사를 한다. 멍청한 행동을 해서 매를 맞기도 하고. '사람'이 아닌 비러비드가 어눌한 대사를 하지만 우아한 문장으로 번역된 모리슨의 소설은 또 다른 의미로 상황을 변질시키기도 했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반복되는 흑인의 '짐승 취급'은 역했다.)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아 이름이 아예 '돼지'(porc)인 노예도 있다. 그의 '충성심'을 치하하느라 금시계를 내리는 스칼렛은 북부에서 이주해온 양키들이 흑인 보모를 꺼려하자 자신들이 얼마나 흑인들을 잘 대접해왔는지 역설한다. (이 책이 왜 금서가 아닌거야???) 


남군의 패배 후 새로운 질서에 잘 적응한 스칼렛은 뛰어난 사업 수완을 보이고 강단 있게 활동 범위를 넓히지만 원칙과 신념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저 '돈'에 한이 맺힌 사람이 전쟁후 두팔 걷어부치고 온갖일을 다 해내는 억척 ...(1953년 한반도 아님) ... 이지만 팜므 파탈인지라 누구라도 자신의 매력으로 사로잡을 수 있다. 미국 조지아 주의 1860-70년대를 그리기 위해서 소재를 다 끌어오기 때문에 스칼렛의 성격이 오락가락한다. 그녀는 책이나 문화를 즐기지 않고 귀한집에서 컸지만 아버지의 상대적으로 덜 우아한 핏줄로 고집이 세고 거친 면이 있으며 닥치면 굳은 일도 해내고 책임감이 강하(지만 자기 애들은 내팽겨침)고 첫사랑 애슐리에게 집착한다. 그녀의 뼈가 묻힐 '타라'가 특별하지만, 그 붉은 흙 덕에 야반도주를 하지 않았고, 그 땅문서 때문에 동생과 (더욱 더) 웬수가 되었더랬지만 이야기가 전개될 수록 타라는 그저 설정으로 남는다. 소설에서 결국 타라 농장을 관리하게 될 사람들은 동생과 윌 부부가 될것 같다. 그리고 그 남자, 레트. 


스칼렛이 열여섯 살, 애슐리에게 거절당하는 그 바베큐 파티에서 처음 만나는 거무튀튀한 레트는 이미 서른네 살의 남자다. (스칼렛의 엄마와 아빠 나이 차이가 삼십쯤 되는 데 비하면 약과인가?) 그가 스칼렛을 사랑한다고 '단언' 하는 일은 소설에선 거의 후반부에 이루어지는데 영화에서는 처음부터 빙글빙글 웃는 이 늙은 남자는 대놓고 '얘, 아가야, 너 내거 하자' 라며 덤비고 있다. 발랄랄라한 영화 속 스칼렛은 (비비안 리의 화려한 표정 연기) 온몸으로 영화를 지배하고 있다. 영화는 그녀의 톡톡 튀는 대사와 걸음 덕에 전달 내용이 넘치도록 많아 정신없는 희비극이 되었다. 그래서 내가 속았지! 어릴 적 본 미쿡 영화의 이쁜 주인공 이야기가 이리 위험한 것이다! 


소설의 스칼렛은 더 복잡하고 다면적이다. 인물이 다양한 면을 보여준다는 게 아니라 겉과 속이 다르고 자기 편한대로 구는 사람이 스칼렛이다. 그녀가 주체적으로 행동을 한다기보다 그 시대의 소재들이 그녀를 이용해서 얽고 있다. 영화에선 레트와의 사이에 딸 하나 보니만을 두지만 소설에선 첫 남편 찰스와 아들 웨이드를, 둘째 남편 프랭크와 딸 엘라를 둔다. 결혼=임신 이라는 공식이라 유산=사고 이며 아이의 죽음=최고 비극이다. 그만큼 비혼여성은 (키티 고모와 인디아) 부정적으로 그려진다. 스칼렛은 처음 두 남편에게 사랑은 커녕 정도 없어서 그 두 아이들은 냉대를 당한다. 애들이 없어졌나? 싶게 이야기에서 존재감 없게 전개시키다 갑자기 애들이 구석에 쪼그리고 있는 식이다. 엘라는 자폐 증상 비슷한 행동을 보이는데 스칼렛은 그래서 엘라를 더욱 미워한다. 프랭크가 이용 당하다 ㄱ죽음을 당하는 만큼 엘라의 처지도 딱하다. 보니가 낙마해서 죽자 '하느님은 차라리 엘라를 데려가시지'라는 독백마저 스칼렛이 내뱉는다. 그렇다고 그녀가 보니를 향해서 지극한 모성애를 가진 것도 아니다. 반면 레트가 보니에게 쏟는 애정은 징그러운 집착이다. 그는 대놓고 '이제야 나 만의 사람' 이라며 소유욕을 드러내고 스칼렛에게서 못 얻은 확실성을 어린 딸에게 찾고있다. 부인 대신 딸이라니. 부인에게 화가 난 레트는 스칼렛에게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고 강제로 관계를 갖는다. 그런데 그런 밤을 열정의 밤으로 묘사하고 임신 사실을 알게된 레트는 갑자기 사랑을 외친다. 중학교 때 읽었던 로맨스 소설 속 구릿빛 피부의 츤데레 남주 원형이 레트 버틀러일지도 모르겠다. (절레절레) 


그리고 우아한 멜라니 .... 는 더 무섭고 더 지독한 사람인데 오늘 이 책을 다 읽고 영화 까지 보느라 내 심신이 지쳐서 다른 인물들을 언급하기가 싫다. (누가 위스키 좀?) 문득 문득 말할 거리가 생각 나긴 한다. 커튼으로 드레스 만드는 스칼렛이 '사운드 오브 뮤직' 같다던가, 시절이 바뀌는 바람에 옛 대농장 아가씨가 농장 책임자랑 결혼하는 게 서희와 길상이 같다던가 ... 하지만 작년 늦가을에 시작해서 올해 초까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고 나서 ... 많이 지친다. 옛날 책, 유명한 책이라고 해도 사람들이 안 읽을 땐 이유가 있는 거라고 깨달았다. 그런데 나 프루스트 읽고 있잖아? 하아 .... 한숨 나온다. 실은 이 책도 꽤 빻았...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21-01-11 20: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완독 축하드려요!
사실 너 내꺼하자!는 아직도 드라마 남주의 주요 대사인 관계로 레트 같은 남자는 아직도 활발히 활동 중이라 할 수 있겠지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시간을 찾게 되시면 제게 연락 좀.... 제가 시간이 좀 부족합니다 ㅎㅎ

유부만두 2021-01-11 22:13   좋아요 1 | URL
아... 지쳤어요.
레트는 정말 남자주인공의 전형 같아요. 스칼렛과의 관계도 익숙한 밀당이 많이 나오고요. 실은 그 부분이 이야기에 재미를 주고 있어요. 그래도 스칼렛 정말 이상한 인물이에요. 정치적으로도 오락가락하고 끝까지 애슐리에게 집착하다가 갑자기 깨고. 레트랑 헤어지는 건 결국 시간 문제였다고 봐요.
프루스트는 매일 조금씩 나눠서 읽으니까 이야기가 진도는 나가네요. 그런데 우와, 이 책에서도 화자랑 이웃 사람들 성격 증말 이상해요.

파이버 2021-01-12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년 늦가을에서 올해 초까지라니 완독 정말 축하드립니다 프루스트도 읽고 계시다니 대단하세요

유부만두 2021-01-12 20:01   좋아요 1 | URL
프루스트는 벌써 몇 번 째 시도인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앞부분만 자꾸 읽으니 정이 드는 기분이네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책 소개를 여러 곳에서 읽거나 들었고 채식을 시작하기 전 다큐멘터리 영상과 책에서 공장형 농장에 대한 내용을 접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건 다른 경험이었다. 힘들고 갑갑하다. 육식용 개농장이 음식 쓰레기 처리 방법이었다니, 짬밥 뉴스를 들었지만 그 문제가 제일 충격적이다. 동물들의 생명과 복지에 대한 고민 이외에도 '그런 식으로' 사육, 처리되는 동물의 고기를 사람들이 먹었을 때 과연 해가 없을까하는 생각과 여러 농장에서 나오는 폐수와 오물의 어마어마한 양에 대한 걱정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렇게혜윰 2020-12-27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기 두렵구만요ㅠㅠ

유부만두 2020-12-27 17:52   좋아요 0 | URL
아... 힘들었어요. 이미 아는 것과 상세하게 노동 현장을 옮긴 글을 읽는 건 다르네요.
열악한 노동환경과 사육환경이 맞물리고요, 이주노동자들 처우 이야기도 큰 부분이에요. 육식이냐 채식이냐가 아니라, 인간을 위한 식재료를 생산한다면 적어도 제대로 된 절차대로 유해하지 않은 고기를 다루어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육식용 개농장 이야기는 절망의 끝을 보여주더군요.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똥‘ 이에요. ㅜ ㅜ

그렇게혜윰 2021-01-01 15:28   좋아요 0 | URL
똥이라니!!!!! 전 용기가 없어서 피할게요 ㅠㅠ

단발머리 2021-01-01 14: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을 안 읽고 ㅠㅠㅠ 그냥 채식주의 실천할까봐요. 그래도 ‘읽고 싶어요’ 체크.......

유부만두 2021-01-01 21:58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식재료 고기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아주 적나라하게 쓰고 있어요. 이미 안다고 생각했는데도 계속 충격을 받았고요. ....
 

28년 경력의 오성급 호텔 조리사. 책을 읽는 것을 즐기는 그가 매달 한 권씩, 음식 주제의 신간을 읽고 엣세이 형식의 리뷰를 썼다. 이 책은 그의 독서와 음식 사랑, 또 그의 인생 철학에 대한 글 모음이다. 하지만 무게 잡고 교훈을 설파하는 아저씨의 글은 아니고 책 좋아 하는 사람이 책을 읽고 글을 써서 책으로 내는 것에 대한 감동과 흥분과 뿌듯함이 가득찬 책이다. 문장과 어휘는 소박하고 성실하다. 그에게 (거의) 모든 책은, 특히 그의 분야, 음식에 대한 책은 열정의 대상이 된다. 그는 직업인으로서, 그리고 생활인으로서 책을 대하고 그 안의 음식과 다양한 문화를 만난다. 더해서 수줍게, 때로는 흥분해서 독자에게 건넨다. '이 책을 읽어보세요. 맛있습니다.' 


재주를 부리거나, 많이 다듬고 꾸민 글이 아니라 한호흡에 읽기에는 조금 지루하기도 하다. 하지만 50대 기혼 남성,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했어도 잘난 척 안하고 '라떼'를 설교하지 (아, 물론 아주 없을 수는 없지만) 않는 착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여성 요리인에 대한 이야기와 '엄마 밥', 딸 바보에 대한 부분은 ... 그렇다. 그러하더라. 뭐, 착한 사람이에요. 남북정상 회담 뉴스를 따라가면서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상태를 염려하며 식단을 궁리하고 역사와 문화 속의 음식도 고민하는 자세도 보인다. 편집에서 응? 스러운 부분이 있었는데 그가 정색하고 싫다고 지적한 어떤 욕설을, 감탄사로 쓰이는 그 단어의 뜻까지 굳이 흉한 의미를 적어 놓었던데 바로 앞 챕터의 시작이 그 욕설이었다;;; 



요리사인 나는 고추를 다룰 때마다 계영배를 떠올린다. 계영배는 과유불급,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는 술잔이다. 잔의 3분의 2 정도까지 술을 부었을 때는 술을 온전히 담고 있지만 그 이상 담으면 아주 희한한 현상이 일어난다. 술잔 밑에 뚫린 구멍으로 모조리 새어나가 버리고 빈 잔이 된다. 고추도 그러하다. 고추는 절대 음식에 과하게 쓰면 안된다. 맛의 밸런스를 단숨에 깨버린다. (22-3)


장 앙텔름 브리야 사바랭이라는 사람이 있다 .프랑스 출신의 법관이자 미식평론가인데, 그가 1825년에 쓴 Physiologie du gout(미각의 생리학)은 한마디로 '미식담론의 경전'으로 추앙받는 책이다. 그는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다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고 했단다. (31)


요즘도 TV를 켜면 요리 관련 프로그램이 차고 넘친다. 탐식을 강요하는 연예인 먹방, 미식은 커녕 포식을 강요하는 미디어 매체들. '푸드 포르노'라는 기막힌 작명을 십분 이해한다. (172)



이 책의 저자도 강력 추천하는 음식 책은 정소영 작가의 <맛, 그 지적 유혹>이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로 2020-12-26 1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이 왜 이렇게 끝없이 나오나요!!ㅠㅠ 아참! <맛, 그 지적 유혹> 너무 좋았어요!! 👍

유부만두 2020-12-26 15:27   좋아요 0 | URL
책은 계속 계속 나오고 밀린 책도 쌓여가고 그러네요.

<맛, 그 지적 유혹> 저도 아주 재미있게 읽었어요! ^^

파이버 2020-12-26 14: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리하는 분이 책을 요리한다면 어떤 글이 나올지 궁금하네요ㅎㅎㅎ
유부만두님 프로필 사진 바꾸셨네요~!

유부만두 2020-12-26 15:28   좋아요 1 | URL
베르사이유의 장미, 제 사춘기의 기억이에요. ^^

파이버 2020-12-26 15:40   좋아요 1 | URL
오스칼이군요 멋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