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안아키 카페로 시끄러웠을 때 막내가 이미 초등 고학년이었던 나는 조금 '느긋한' 마음으로 뉴스를 봤다. 왜 과학을 불신하고 엉뚱하게 휘둘리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과학과 이성의 시대에.
이 책은 면역, 백신 주사에 대한 그러한 '일부' 사람들의 불신과 행동의 현상과 그 역사를 짚어보는 책이다. 저자가 자신의 아이를 출산하고 키우면서 숱한 불면의 밤, 숱한 고열과 병치례, 알러지 반응과 응급실 행을 함께 이야기한다. 내 경험도 소환되었다. 아이가 둘이면 곱하기 2.
그래서 이 책은 무엇이냐.
백신거부는 단순히 물질적인 문제만도 아니고, 인간의 면역계라는 개념은 언어적 철학적 비유로 고찰할 때 끝없이 심오해지며 백신의 역사는 문명과 학식 혹은 종교에서 무와 유 사이를 오갔고, '자연'이라는 것과 '화학', 혹은 '오염'이라는 개념은 전혀 반대의 이미지로 소비될 수 있으며, 의학 돌봄의 손은 여자에서 남자로 옮아 왔는데 그 속에서 세균과 바이러스 존재가 서서히 드러났으며, 침묵의 봄이 몰고온 후폭풍과 경제 불평등 속에서 질병 지도의 문제와 백신 음모론과 마녀와 어머니, 여성의 역사도 짚어보고, 드라큘라와 아킬레스, 캉디드 까지 우리가 아는 문학 예술이 실은 면역 이야기로 이해될 수 있는데 그래서 백신 주사를 맞히는 게 얼마나 중요하냐면...!!!!
이런 책이다.
나 자신은 내 몸에 대한 결정권을 가질 수 있지만 나의 경계를 신중하게 고려해야한다고. 나는 언제나 '우리' 안에 있으며 그 나, 우리, 그리고 타인에 대한 선을 긋는 것에는 더욱 그러하다고. 배웠다고, 읽었다고, 안다고, 합리적이며 이성적이라고, 아니면 낙관적이라고 '자만'하지 말라고 말한다. 과학자라고, 의사라고 그 학위를 전적으로 믿을 수도 없다고 한다.
이 책은 매우 재미있고 유려하며 설득적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읽다보면, 특히 아이 키우며 가슴을 천만 번 쥐어짰던 기억들이 되살아나고 아는 책과 역사 이야기에 반가워 하다보면, 잠깐, 나 지금 이렇게 어버버버 따라 읽어도 되는걸까? 나 이렇게 쉬운 독자였나? 하는 자기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놓을 수가 없다.
저자의 유려한 말솜씨에 끌려다니다보면 아버지가 의사고 본인은 공부 많이한 작가인 환자, 그가 보호자로 아이를 안고 (그것도 난산을 했던 첫 아이) 마주했던 소아과 의사는 얼마나 당혹스럽고 긴장될까 상상할 수 있다.
지금 코로나 시대에 이 책을 읽으니 (책 안에도 이 바이러스 이름이 나온다) 나는 어디에 서있나, 생각하게 된다. 이 바이러스의 전염성과 위험을 알고 숙주나 전파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집 안에 머문다. 양심과 선의, 신념이 무엇이라 할지라도 몸이 하는 물질의 세계에서 세균과 바이러스는 다른 원칙에 따라 움직인다. 내가 어디까지 내 의지로 결정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