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는 ‘바다는 포르투갈의 눈물‘이라고 했다. - P9

1494년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토르데시야스Tordesillas라는 도시에서 만나 다시 협상을 했다. 카보베르데 섬에서 서쪽으로 370레구아, 즉 1,770 킬로미터 되는 지점에 가상의 선을 그었다. 그리고 이미 발견되었고, 곧 발견될 땅‘에 대해 이 선의 동쪽은 포르투갈이, 서쪽은 스페인이 소유권을 가지게 된것이다. […] 지도를 보면, 토르데시야스 조약으로 그어진 가상의 선은 남미의 브라질 위를 지난다. 물론 그때 (공식적으로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브라질의 존재를 몰랐다. 브라질의 존재를 모른 채 그은 가상의 선 동쪽에 운 좋게도 거대한 땅덩어리가 있었고, 토르데시야스 조약대로 포르투갈인들이 이곳을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 P59

본국의 크기보다 백 배가 훨씬 넘는 넓이의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던 포르투갈 제국은 1822년 브라질이 독립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1961년엔고아가 인도에 귀속되고, 아프리카의 식민지들은 1974년에서 1976년 사이에 모두 독립한다. 동티모르 역시 1975년에 독립하고 마지막으로 마카오가1999년에 중국으로 귀속되면서 포르투갈 제국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그러나 제국이 사라진 뒤에 메아리처럼 남아 있는 것이 포르투갈어 세계이다.
현재 포르투갈어는 세계 아홉 나라 에서 공식 언어로 지정되어 있고 사용인구는 2억 5천만 명 이상이다. - P64

16세기 초 이베리아 반도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은 개종의 진위를 증명하기 위해 돼지고기를 대중 앞에서 먹어야만 했다. - P162

파두에서 노래하는 내용은 대부분 ‘사우다드saudade‘다. 사우다드는 세계의 여러 언어들 중 번역이 어려운 단어 중 하나라고 할 정도로, 포르투갈만의 정서가 담긴 단어다. 우리말로 표현하면 ‘그리움‘이 가장 가까운 말일 것같다. 한때 소유했거나 가까이 있었던, 그러나 지금은 멀리 있는 사람, 장소, 혹은 그 어떤 것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감, 슬픔과 사랑이 모두 버무려진 말이 사우다드다. - P183

주제 사라마구는 포르투갈에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영광을 가져다주기도 했지만, 반유대인 발언이라든지 포르투갈은 스페인에 통합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기 때문에 포르투갈인들 사이에서는 논쟁거리를 제공하는 작가 중 하나다. - P220

리스보아 사람들을 ‘알파시뉴스‘(배추들, 밭이 많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라고 부르는 반면, 포르투 사람들을 부르는 별명은 ‘트리페이루스 (내장을 먹는 사람들)이다. 1415년 포르투갈 군대가 북아프리카의 세우타로 원정을 떠날 때, 도시의 모든 고기를 군대에 내놓았다고 한다. 그래서 한참 동안가축의 내장을 먹으며 연명했기 때문에 포르투인들의 별명이 트리페이루스가 되었다.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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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11-03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르투갈 너무 가고 싶은 곳이에용~ 코로나 끝나면 1번으로 찜!!ㅎㅎ

유부만두 2021-11-03 23:17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을 읽고 포루투갈 여행을 꿈꾸고 있습니다. ^^
 



전쟁 내내 철도 종점 너머의 수송은 압도적으로 말이 담당했다. 일단 열차에서 내리면 군대는 여전히 나폴레옹 시대, 사실 율리우스카이사르 시대의 군대보다 더 빨리 움직일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무선 통신 그리고 통신 도청의 중요성이 널리 인식되고 있었고 특히 해전에서 중요했다. - P36

<1914년> 영국군은 전선에 정규군을 사실상 모조리 쏟아부었고 자질이 우수한 이 정규군은 영국군의 보잘것없는 규모를 충분히 상쇄할 만큼 선전했다.
팔켄하인은 새로 편성된 4개 군단을 투입했는데 일부 부대는 대부분 징집 연령 이하의 훈련받지 않은 학도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은 결사적으로 용감하게 공격했지만 랑게마르크 마을 외곽에서 영국군의 라이플과 기관총 앞에 수천명씩 우수수 스러졌고 이들의 희생은 독일에서 킨더모르트(Kindermord), 즉 ‘유아 학살‘로 알려지게 된다. - P58

<1915년> 러시아군 10만 명이 포로로 잡히고 전선은 130킬로미터까지 밀려났다. 이 공세 자체는 결정적‘이지않았지만 팔켄하인에게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그는 이 새로운 종류의전쟁이 지닌 특징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목표는 전장에서의 승리라기보다는 소모‘였다. 독일의 전략은 이제 자기자원은 가능한 한 소비하지 않으면서 적들로 하여금 자원을 끝없이 소모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 P88

<1915년>또한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양측이 이 전역을 수행할 때 보인 잔혹성으로, 민간인이 주된 희생양이었다. 러시아 부대는 폴란드인이나 리투아니아인들에게 동포애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퇴각시에는 그 일대를 초토화했다. 피난민의 숫자는 300만 명에서 1,000만 명으로 추정되었다. 독일군은 민간인의 안위를 러시아군보다 더 개의치 않았다. 독일군은 정복자이자 식민자로서 진격했다. 폴란드인이나 리투아니아인들이 거주하는 이곳은 루덴도르프가 더 큰 제국의 일부로서 병합하려 한 지역으로, 독일인이 정착하고 지배할 땅이었다. 그 지역을 지배한 군사 조직의 이름을 따 그곳은 단순히 오버 오스트(Ober Ost:‘상上동부‘라는 뜻으로 동부군 군정지역)로 알려지게 되었다. 독일 관리들은 주민들의 권리나 정체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그들을 야만인으로취급했다. 다른 여러 측면과 마찬가지로, 1차세계대전에서 보독일의 행위는 2차세계대전에서 보여줄 야만 행위의 불길한 전조였다. - P89

<1916년> 전쟁은 더이상 더 우월한 군사적 능력과 사기에 의해 전장에서 결판나는 무력충돌이 아니라, 산업사회 간의 지구력 싸움이었고, 여기서 병력 통제는 생산 관리 그리고 가용 자원의 배치와 매끄럽게 결합했다. 민간인은 군부만큼 전쟁 수행의 본질적 일부였고, 따라서 논리적으로는 군의 통제를 받아야 했다. - P121

<1918년> 군대가 와해 직전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정권에 대한 모든 신뢰가 사라졌다. 10월 29일, 해군 수병들은 해군의 명예를 중시하는 제독들이 계획한 ‘죽음의 질주‘에 가담해 함정을 몰고 나가는 대신에 반란을 일으켰다. 일주일 사이에 반란은 독일 전역의 모든 대도시로 퍼져나가 혁명으로 진화했다. 노동자 · 병사 평의회가 러시아의 소비에트 모델에따라 권력을 장악했다. 바이에른에서는 독립 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했다.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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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향수가 성공하는 것은 단지 2백년 전 그 위대한천재 마우리티우스 프랑지파니의 ㅡ 그는 이탈리아 사람이었다! -- 위대한 발견 덕분이었다. 즉, 그가 방향 물질은 주정(酒精) 속에 용해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던 것이다. 프랑지파니는 향신료를 알코올과 섞어서 그 향기를 휘발성의 액체로 옮기는 방법으로 원래 향기를 지니고 있던 재료에서 향기를 분리해 내고 해방시킴으로써 향기에 영혼을 부여하였다.

한마디로 말해 향기 그 자체를 발견한 사람이었다. 향수를 창조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정말획기적인 업적이 아닐 수 없었다! 앗시리아 인의 문자, 유클리트 기하학, 플라톤의 이상론, 포도주를 발명해 낸 그리스인들에 버금갈 정도로 그것은 인류의 위대한 업적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가히 프로메테우스적 업적이 아니고 무엇인가! (8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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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0-22 0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도 정말 강렬했던 기억이 납니다 ~

유부만두 2021-10-23 13:51   좋아요 1 | URL
네, 정말 그래요. 주인공의 출생 장면 부터 화면에서 악취가 풍기는 것 같았고요, 그 많은 희생자 여성들이 힘 없이 쓰러지죠. 유명 배우들의 연기가 빛을 발하지 못한듯해서 안타까웠어요.

파이버 2021-10-22 15: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정말 강렬하네요!

유부만두 2021-10-23 13:52   좋아요 2 | URL
네. 저 표지는 예전 판이고요, 쥐스킨트 전집으론 녹색 표지로 통일 되었어요.
 



그러니까 1913년 초에 스탈린, 히틀러, 티토가, 다시 말해서 20세기의 가장 지독한 폭군 두 사람과 가장 역겨운 독재자 한 사람이 잠시 동안 빈에같이 있었던 셈이다. 한 사람은 손님방에서 민족 문제를 연구하고, 또 한사람은 남성쉼터에서 수채화를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자동차의 커브길 승차감을 검사하기 위해 링슈트라세를 무의미하게 돌고 있었다. 거대한 연극 ‘1913년의 빈에서 이 세 사람은 대사도 없는 세 명의 엑스트라라고 할 수있을 것이다. - P47

당시 동시대인들에게 이미 프로이트와 슈니츨러는 샴쌍둥이처럼 보였다. 여기서는 『꿈의 해석』, 저기서는 『꿈의 노벨레, 여기서는 오이디푸스콤플렉스, 저기서는 『베아테 부인과 그녀의 아들.. 그러나 두 사람이 너무 비슷했기에, 두 사람은 서로 정중하게 피했다. - P71

언젠가 프로이트가 발분하여 슈니츨러에게 편지를 썼는데, 그를 만나는 것이 두렵다고, "일종의 도플갱어 공포일 거라고 했다. 슈니츨러의 단편소설들과 희곡들을 읽은 프로이트는 자신이 타인에 대해 힘들게 연구해서 발견한 것들을 슈니츨러가 "직관적으로, 사실은 섬세한 자아의식의 결과로 이미 모두 알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고백으로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비슷한 장력을 지닌 두 개의 자석처럼 그들은 서로 가까워질 수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그것을 기분좋게 받아들였다. 1913년에 슈니츨러의 병원으로 한 실업가의 아들이 조랑말에게 성기를 물려 피투성이로 실려 왔을때, 슈니츨러는 이렇게 지시했다. "그 환자는 당장 구급 병원으로 보내고, 그 조랑말은 프로이트 교수에게 보내는 것이 가장 좋겠습니다." - P72

아무튼 1913년에 ‘모더니즘’은 끝이 난다. 모더니즘은 너무나 유연한개념이어서, 동시대인과 후세대에 의해 항상 다르게 해석되고 각 세대마다시간적으로 늘 새롭게 규정되기 때문에, 특히 1913년이라는 해의 특징인엄청난 비동시적 동시성을 제대로 묘사하기에 매우 부적절하다. - P88

1913년에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는다. "모든 인간이 열네 살 적 그대로 머문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 어쩌면 오히려 그러지 않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1913년 초에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아직 열네 살이다.
그의 일기를 읽은 사람들은 그가 나중에 열네 살 때의 모습과는 다른 사람이된 것을 기뻐한다. 어쨌든 그는 게오르게의 제자로서 전혀 고려 대상이 되지못했을 것이다. 너무 못생기고, 너무 성급하고, 너무 투덜거려서. - P164

독일에 운명의 날인 11월 9일.
1848년 11월 9일: 로베르트 블룸의 처형을 기점으로 3월혁명이 실패로 돌아가고 왕정이 복고,
1918년 11월 9일: 11월혁명으로 바이마르공화국 시작,
1923년 11월 9일: 히틀러-루덴도르프 쿠데타,
1938년 11월 9일: 수정의 밤 사건,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 -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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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1-10-14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사르트르 어머니의 사촌이다.
 


실제로 아버지는 미쳤다. 소중한 외아들이 성인이 되어가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삶의 위험에 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걱정 때문에 미쳐버렸다. 어린 소년이 성장하고, 키가 크고, 부모보다 찬란하게 빛난다는 것, 그때는 아이를 가두어둘 수 없으며 아이를 세상에 내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바람에 겁에 질려 미쳐버렸다. - P20

어쩌면 이렇게 영원히 기억하는 과정은 그저 망각으로 가는 대기실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비신자로서 나는 내세가 시계, 몸, 뇌, 영혼, 신이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모양이나 형태, 내용을 가진 것이 없는 곳이라고. 절대적 해체라고. 하지만 내세는 기억이 없는 곳이 아니었다. 아니 기억이 전부인 곳이었다. 이럴줄은 미처 몰랐다. 내 평생을 돌이켜본 것이 세 시간 동안 계속된 일인지 아니면 백만 년 동안 계속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망각되는 것은 기억이 아니다. 시간이다. 휴지(休止)도 없다. 내세에는 잠도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오로지 잠뿐인지도. 그래서 영원히 사라진 과거에 대한 꿈이 죽은 사람과 영원히 함께 있는 것인지도. 그러나 꿈이건 아니건 여기에는 지나간 삶밖에 생각할 것이 없다. 이것이 ‘여기‘를 지옥으로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천국으로 만드는 것일까? 망각보다는 나은 것일까, 아니면 나쁜 것일까?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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