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210 복식부기

자산=부채+자본 

 

-1. 회계원리로 검색해본다. 회계의 역사라고 하니 나오는 것이 없다. 부기의 역사하는 해피캠퍼스 유료자료만 나온다.

 

-2.

 

회계란 "기업실체의 경제적 활동과 관련된 거래나 사건을 화폐액으로 측정*기록*분류*요약*정리하고 그것을 해석하는 기술이다."라는 회계정보의 생산자 측면과 "기업실체의 경제적 활동에 관심을 갖는 여러 이해관계자가 합리적 판단과 경제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회사의 경제적 활동의 흐름과 결과를 추적, 기록하여 유용한 정보를 적시에 제공하는 것이다."라는 정보 이용자 측면을 동시에 의미한다고 한다.

 

복식 부기의 역사는 15세기 이탈리아 루카 파치올리 Lucas Pacioli 로 거슬러 올라간다. 500년이 지났으며 우리나라에서 고려시대 [사개송도치부법]이란 자료로 200년이나 앞서 있다고 하나 그 내용은 살펴보아야 하겠다.

 

-3. 궁금증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사회단체의 활동들이 기금의 운영에만 맞춰진 것은 아닐까? 회계가 여기에 머무는 것이 제대로 된 것일까 하는 의문때문이다. 칼 폴라니가 토지와 사람, 자본을 발라낸 결과 자본주의가 성립되었다고 주장한 것 같이, 기업의 역사와 자본의 역사는 자본을 독립된 실체로 다루고 이렇게 운영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회계는 대차 평균의 원리, 계정과목 설정의 원칙, 회계의 기본원리에 맞춰 과학화되었다고 하자.

 

-4.

 

거래가 발생하면 자산, 부재, 자본에 변동이 일어난다. 이 경우 각 요소의 변동내용을 명확히 기록, 계산하기 위해서는 가 항목별로 구체적인 장소가 필요한데 이렇게 특정하게 기록, 계산하는 장소적 단위를 계정이라고 하며, 계정의 명칭을 계정과목, 계정기입의 장소를 계정계좌라고 한다. 또한 계정계좌는 좌우 2개의 계산장소가 있는데 계정의 왼쪽을 차변 Debit. Dr 오른쪽을 대변 Credit Cr이라고 한다.

 

-5. 계정과목을 들여다본다. 계정과목 설정의 원칙들이 나열되어 있다.  단일성의 원칙, 명료성의 원칙, 계속성의 원칙, 중요성의 원칙이라고 적혀있다.

 

-6. 거래라? 부기상의 거래인 것과 부기상 거래가 아닌 것이 나열되어 있다. 헤아리지 말아보자. 그냥 가만히 둔다. 거래의 8요소도 함께 본다. 자산, 부채, 자본의 증감과 손익의 발생이라고 말한다. 일정한 원리와 원칙들로 거래도 부기도 이루어져왔다.

 

-7.

 

삶자산 = 삶부채 +삶자본

 

-8. 돈을 벌고 이윤을 남긴다는 것은 인류역사에서 치욕스러운 것이었다. 하물며 고리대금업은 더 그러했다고 한다.  기업에 사람의 권한을 부여한 것도 그러하다.

 

-9. 1:1만남에서, 1:모임의 만남에서, 사회단체의 성원의 관계에서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런 것들을 복식 부기로 기록되고, 정리될 수는 없는 것일까?  아무 것도 몰라 답답하다.

 

-10. 일단 부기상의 거래로 인정하자. 책 한권을 만나 전과 후의 시차가 거래할 수 있는 결과물이라고 한다면, 모임의 성원을 만나 공부하고 토론하고, 논의하면서 달라진 생각들, 음 그것을 일단 질문이라고 한다면, 그 질문도 거래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자. 다른 단체나 모임에서 빌려온 질문의 맥락과 운영의 잡히는 맥락을 부채라고 하자.  모임에 축적되거나 활용할 수 있는 시차의 목록과 새로생겨난 질문들을 자산이라고 하자.

 

-11. 칼 폴라니가 말하는 사람과 토지를 다시 붙여낼 수 있을까? 삶의 수지를 맞출 수 있을까? 자본에 기대어 사는 삶의 미로가 꿈적거릴 수 있는 것일까?  늦봄 괜한 생각으로 자료를 들낙거린다. 뜬금없는 의견도 고프다. 거래의 기본원칙에 어긋나므로 애초에 가정이 잘못된 것이라고....아님은 재미삼아 학문은 정합성만 목표로 하는 것이니 주섬주섬 챙겨보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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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뜬금없기(2) - 거래의 8요소
    from 木筆 2014-04-16 08:13 
    일단 부기상의 거래로 인정하자. 책 한권을 만나 전과 후의 시차가 거래할 수 있는 결과물이라고 한다면, 모임의 성원을 만나 공부하고 토론하고, 논의하면서 달라진 생각들, 음 그것을 일단 질문이라고 한다면, 그 질문도 거래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자. 다른 단체나 모임에서 빌려온 질문의 맥락과 운영의 잡히는 맥락을 부채라고 하자. 모임에 축적되거나 활용할 수 있는 시차의 목록과 새로 생겨난 질문들을 자산이라고 하자. 글과 자료를 오가다가 진도를 하나도
 
 
 

 

시차는 반복한다

 

딴 생각은 시차를 두고 전염된다. 전염된 생각은 그릇을 가득 채우고 넘친다. 차고 넘친 생각은 시도를 낳는다. 시도는 시차를 두고 생각을 낳는다.  그러니 시도도 번진다. 생각보다 시도가 낫다. 시도를 받는 그릇마다 다른 맛을 풍긴다. 다른 멋은 구미를 남긴다. 배인 구미는 다른 실험을 당긴다. 다른 실험은 생각도 낳고 시도도 낳는다. 그러니 시도와 생각도 실험을 낳는다. 실험은 시차도 낳는다. 낳은 시차는 스민다. 햇살과 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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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걸자


나는 퇴색할 대로 퇴색한, 그리고 반쯤 벌거벗은 높다란 담벼락을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먼지로 뒤범벅된 송진 가루가 발뒤꿈치에 따라붙었다. 길에는 나 말고도 몇 명이 제 갈 길을 향해 걷고 있었다. 산들바람이 불어오자 담장 너머 길가로 삐죽이 나와 있는 높다란 나뭇가지에 아직도 매달려 있는 촉촉한 나뭇잎들이 내 머리 위에서 일렁거렸다.


산들 바람이 불어오자 온 세상이 흙먼지투성이다.


한 아이가 나에게 구걸을 했다. 그 아이는 두 겹으로 된 옷을 입고 있었고, 불쌍해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는 머리를 조아리고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면서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의 목소리와 태도가 싫었다. 나는 그 아이가 결코 슬프지 않고 단지 어린아이의 장난기가 서려 있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쫓아오면서 애원하는 듯한 그의 처량한 목소리도 가증스러웠다.


나는 길을 따라 걸었다. 다른 사람들도 자기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산들바람이 불어온다. 온 세상이 흙먼지투성이다. 한 아이가 나에게 구걸을 했다. 그 아이는 두 겹으로 된 옷을 입고 있었고, 불쌍해 보이지도 않았다. 단지 벙어리처럼 두 손을 활짝 펴고 억지를 부리는 손짓을 했다.


나는 그 아이의 이런 손짓을 증오한다. 더구나 그 아이는 혹 벙어리가 아닐지도 모르고, 그것은 구걸하는 한 방법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고, 베풀려는 마음도 없었다. 단지 나는 베푸는 자의 자리에 서서 그에게 성가심과 의심, 그리고 증오를 주었을 뿐이다.


나는 무너질 대로 무너진 토담을 따라 걷고 있었다. 이가 빠진 돌담 사이로 담장 안이 보인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산들바람이 불어온다. 쌀쌀한 가을바람이 내 두 겹옷을 뚫고 들어온다. 온 세상은 흙먼지투성이일 뿐이다.


나는 앞으로 어떤 방법으로 구걸할 것인지를 생각했다. 내가 구걸하려고 외쳐 댄다면 어떤 목소리로 해야 할까? 벙어리 시늉을 한다면 어떻게 손짓할까? .......


다른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앞으로 베품을 얻지 못하고, 베풀어 줄 마음을 얻을 수도 없을 것이다.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스스로 베풀어 주려는 자 위에서의 성가심, 의심, 증오뿐이다.
나는 앞으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며 구걸할 것이다.....


나는 적어도 허무만은 얻게 되리라.


산들바람이 불어오자, 온 세상은 흙먼지투성이다. 이와는 별도로 다른 사람들은 각각 제 길을 걷고 있다.


흙먼지, 흙먼지........  ...........


흙먼지 ...........

 

 

뱀발. 

 

1. 루쉰의 들풀 가운데 구걸하는 자 전문이다. 나도 그러하고 사람들은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지 않는다. 빚더미에 앉고 병마가 찾아오고 늙어가는데도 말이다. 나만은 내 자식만은 내 가족만은 부자되고 좋은 성적에 잘 살거라고 말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지나친 낙관은 없어졌다. 병을 얻고 아픈 자식이 생기면서 공부를 잘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욕심을 버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벼락처럼 일터를 잃을 수 있고, 그것에 예외되는 일터에 다니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엠에프가 변화시킨 것은 정많고 사람 좋아하는 이들을 벼랑으로 더 내밀었고, 죽음의 사선에서 돈폭탄에 명멸했다는 것이다. 오늘도 여전히 돈지뢰에 밟힌다. 한번 밟히면 삶은 비참의 버전으로 바꿔야 한다. 나라고 예외가 아니다. 최악을 가정한다는 것은 삶에 대한 면역력이자 사회에 대한, 세상을 바꿔갈 희망이기도 하다. 오늘도 다시 읽는다. 루쉰이 얻는 허무를 느낀다.  온 세상은 흙먼지투성이다. 이와는 별도로 다른 사람들은 각각 제 길을 걷고 있다.....흙먼지...흙먼지....온통 흙먼지.... ....

 

2. 세모녀가 죽어나가도 수중에 주식오르는 걸 화제로 삼는다. 삶과 삶들 사이에는 휴전선이 있는게다. 삶이 울컥거렸다. 주식도 돈도 놀리지 않는 습관들인 나를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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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분

십오분

이십분만에 쓰는 글

 

 

오분

십분

이십분만에 쓰는 시

 


십분

 

십오분

이십오분에 쓰는 잡문... ...

 


이렇게 부여잡는 이유는 시간이 많다고 많이 잘 쓸 수는 것도 아니기에
시간이 없다고 생각을 소묘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기에
날 것을 푸르딩딩함을 남기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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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적인 사회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의 해방은 개인에게 득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해가 된다. 사회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들인 에너지는 개인에게서 자유를 향한 힘을 빼앗아버린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볼 경우 개인이란 아주 생생한 것이지만, 절대적인 것으로 설정할 경우 개인이란 관념은 단순한 추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개인은 사회적으로 구성되지 않는 그 어떤 내용도 갖고 있지 않다. 즉 개인이, 사회가 그 자체의 상황을 넘어서는 데 조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고 그저 사회를 넘어서려는 충동은 전혀 갖고 있지 않다. 201


 

반짝 1. 개인이 사회를 넘어서려는 충동은 전혀 갖고 있지 않다. 개인의 해방은 해가 된다. 다른 사람과 관계에서 보면 개인은 아주 생생한 것이지만 절대적으로 설정할 경우 개인은 추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막스 슈티리너는 유일자로서 개인을 상정하고 실제 그렇게 살았다. 자유라는 것이 공유-소유라는 실뿌리같은 곁을 헤아리지 않으면서 홀로 설 수 없다.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간다는 점을 깨닫는 것도 엄청난 일이 되기는 한다. 하지만 후기자본주의 삶 아래에서 자유라는 것은 살림살이의 편차와 왜곡된 삶에 대한 상상력이 뿌리내리지 않는 이상, 그 자유와 사랑은 생명력이 길지 못하다. 자본이 삶의 결을 나누며 만들어낸 그물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이들에게만 자유를 하사한다. 개인이 사회를 안을 수밖에 없고, 그 운신의 폭이 너로 인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을 인지하지 시작할 때 조금은 그 공간이 넓어지는 것이다.

 


비변증법적 사유 - 벤야민이 우리에게 유산으로 남긴 과제는, '낯설게 하는' 사유의 수수께끼 형상들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무의도적인 것을 개념의 왕국 속으로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즉 변증법적이면서 비변증법적으로 사유할 필요성이다. 203 - 벤야민이 역사는 지금까지 승자의 관점에서 씌어왔지만 이제는 패자의 관점에서 씌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여기에 무언가가 덧붙여질 수 있다면 그것은, 즉 인식은 일련의 승리와 패배로 점철된 역사의 불행한 직선적 성격을 재현해야 하지만 동시에 그런 역동적 관계에서 빠져나간 것, 길가에 제쳐둔 것, 다시 말해 변증법에서 빠져나간 눈먼 지점들이나 폐기물들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지배적인 사회를 넘어서는 것은 단지 그것이 발전시킨 잠재력뿐만 아니라 역사의 운동 법칙에 제대로 들어맞지 않는 모든 것이다. 이론은 비스듬한 것, 불투명한 것, 붙잡히지 않는 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202


반짝 2. 진보라는 것이 있기나 한지 모르겠지만, 자칭 진보의 시선에서 보면 유행의 흐름을 되짚을 이유가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힐링과 치유, 나꼼수를 비롯한 젊은층의 정치에 대한 관심, 김용옥의 동양고전에 대한 관심, 강신주의 인문의 세련된 소비....유행이 있고 그 꼬리표에 한계역시 점철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진보가 힐링과 치유를, 정치에 대한 각성을 이리 대중적으로, 인문에 대한 관심을 이렇게 앞서서 같이 못한 것도 인정을 해야한다. 소비와 세련된 소비, 개인에게 국한되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기는 하지만 다이나믹 코리아에 되풀이 되는 또 다른 시공간의 계기는 또 있지 않을까 싶다.

 


순수성이 순수하지 못한 까닭은, 교환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순수성은 자신이 되고자 하는 바로 그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렇게 될 수 없다는데서 비롯된다. 권력을 위해 봉사하는 순수성의 사제들이 이런 순환의 메커니즘을 통달하게 되자 이 순환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돈의 베일을 쓴 춤을 추게 된다. 208


반짝 3. 개인이 발라져 나온 뒤, 수많은 철학자들이 개인의 순수성을 가정하고 되짚었다고 아도르노는 말한다. 순수하다는 사유자체가 이 사회에서는 모순을 가질 수밖에 없는 말이다. 세속에 물들려고 하면 할수록 어쩌면 순수성을 확장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 진실된 사회는 발전을 식상해하면서 무언가에 쫓기듯이 낯선 별을 정복하러 돌진하기보다, 가능성들을 다 쓰지 않은 채 남겨둘 것이다. 더 이상 곤경을 모르는 인류는, 곤경에 벗어나기 위해 인류가 지금까지 만들어왔던 장치, 그렇지만 풍요로움과 함께 곤경을 확대 재생산해왔던 그 모든 장치가 미친 짓이었으며 부질없는 짓이었다는 사실에 희미하게나마 생각이 미칠 것이다 즐김자체도 이러한 정황에 따라 바뀔 것이다. 그것은 현재 존재하는 즐김의 도식이 바쁘게 쫓아다니기, 계획만들기, 의지를 세우는 것, 정복하기에서 떼어내어 생각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짐승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물위에 누워 평화롭게 하늘을 바라보는 것, '그저 존재하는 것, 그 밖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더 어떤 규정할 것이나 실현할 것도 없이...' - 해방된 사회의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질 경우 사람들은 '인간적 가능성의 실현'이나 '풍요로운 삶'과 같은 답변을 듣게 된다.....그러한 의기양양한 대답이 역겹게 느껴지는 것 또한 불가피하다. 209


반짝 4.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라는 말로 뭉뚱그리거나 대표해서 사회를 표현하는 것처럼 무책임한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역시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로 퉁칠 것은 어떠한 것도 없다고 가정하는 편이 낫다. 현실은 버젖이 헌법에 있는 생존권도, 노동권도 행복을 추구할 권리도 사문화시켰다. 이순간에도 죽음을 택하는 이들로 사회적 타살로 피가 흥건하다. 노동권을 주장한 합법적인 상황에도 손해배상을 들이대며 희희낙낙하는 세상이다. 우리 사회는 끼리끼리의 사회다. 그래서 삶도 들여다볼 수 없으며 보이지 않기에 아파하지도 않는다. 세상에서 10번째로 많은 돈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 격차는 상상을 초월한다. 사랑하고 자유, 올곧게 서는 살아가는 개인들이 느껴야 하는 것은 소유와 공유, 살림살이의 비교로 이어지는 형평에 대한 감각이다. 세속의 벌이와 쓰임에 대한 공유에서 비롯된 절절함이 다시 오지 않는 이상 공허한 자유, 쇼윈도우에 전시된 자유와 사랑이 될 확율이 크다.

 

 

뱀발.

 

느낌을 붙잡으려 직접 쓰다가 날라가버렸다. 임시저장이 되었다고 여겼는데 웬일인지 조급을 감지한 듯, 피시는 그렇게 응답한다. 곰곰발님이 지적한 강신주는 세련된 자본주의 사용설명서가 되었고 세련된 소비를 하고자하는 소비자들이 있어 순환된다는 말에 부분적으로 수긍하지만, 강신주현상에 대해서는 진지하지 않기 때문에 전적인 긍정이 아니다. 살림살이와 삶의 제한된 동선, 그룹핑되어 다른 삶은 생각조차 하기 싫은 우리들에 대한 고민으로 번지는 또 다른 유행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원래 유행을 믿지 않는 편이지만, 역동적으로 왜곡된 공간이라 꼭 그렇지 않다고 판단할 근거도 없다.

 

마립간님의 거시적인 자본주의의 경로를 생각해본다. 그것이 또 다른 자본주의여도 파국이어도 할말이 없다. 하지만 나를 한국, 중국, 유럽, 미국만이 아니라 동남아시아, 아프리카의 한곳에 냉혹하게 떨어뜨려보는 상상력이 오히려 지금여기를 그래도 낫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위무해본다. 자본주의도 없다. 신자유주의도 없다. 안개가 짙다. 나만이 아니라 같이 빠져나가야 한다. 만들어가야 한다. 답은 저기에 없다. 여기에서 만들어야 한다. 세속의 철학인 살림살이에 푹 적신 상처받은 말과 삶이 순수하고 예쁘기만 한 말과 사람들을 너머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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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1-22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첨언을 하자면, 과학의 큰 발전 예로 들어 뉴턴 역학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등은 매년 나올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류 전체의 사고의 축적이 충분히 되어 창발의 동력이 발생하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철학이나 사회제도도 지적 축적과 사회적 동인이 축적된 상태에서 폭발적인 창발이 가능하죠. 어쩌면 김용옥씨나 강신주씨는 그런 운이 없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연과학에서는 방향성이 있다고 추정되는데, 철학과 사회제도는 잘 모르겠습니다. 약간은 자아라는 의식meme이 확장이 있었는데, 우리가 추구하는 본질과 정확히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기대하기는 지금 여기에서 답을 찾고 싶은데,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여울 2014-01-23 08:14   좋아요 0 | URL
비코의 새로운 학문을 추천 드리고 싶군요. 인간은 자연과학과 달리 봐야한다는 관점이지요. 오늘도 즐독 되시구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