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인근에 다가서자 흐린 하늘이 짙어지더니 비가 내린다. 행사시간에 지나가면 좋으련만 챙긴 우산이 비바람에 뒤집어 질 정도다. 쌀쌀한 날. 토닥토닥 천막에 국화빵을 만드는 냄새가 향기롭다. 하나를 베어문다.


열 번째이다.  첫 해에도 비가 왔고, 그 마라톤 소식은 <꽃피는 봄이오면>이란  동화책으로도 접할 수 있기도 하다. 표지화, 삽화, 그림책을 그리면서 몇 번씩 울컥할 때가 많기도 했다.  감정이 이입될 수록 난감한 현실 앞에 먼 하늘을 쳐다보게 된다. 예산이 잡히면 어김없이 취소되기를 반복하는 현실도 매몰차다. 여전히 진행형이다.


지인과 함께 달린다. 자원활동을 하는 응원단들이 이백여미터 마다 빼곡하다. 화이팅이 넘치고 힘을 외치고 주고 받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대회를 위해 처음으로 마라톤 준비를 했다는 강선생님은 천천히 자기 페이스대로 잘 달려나간다. 헛, 시인님은 아이들을 챙긴다더니 치고 나가신다. 어딜 그렇게 쏜살처럼 달려나가는 폼이 초교 육상선수 출신이 맞다싶다. 그렇게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몸이 배여있는 갑천변, 늘푸른축구장이 있던 곳의 반환점을 돌아, 조금 빠르게 달려준다. 어라 저기 건우동생 선우, 그림책의 우산공주님이 열심히 달려나간다.  이름을 불러주자 정말 대단하세요란 멘트를 날려준다.


그렇게 빗속을 달린다. 장애나 어려움들은 다 또다른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사회를 또 다른 시선으로 보게하기도 한다. 5.3k 32:19


볕뉘


행사장의 메인무대 주로 안내팝업 모두 여울 그림으로 채워서 남다른 느낌이기도, 무언가 기여를 한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한 대회장이다.  지인들과 올라간 김에 파면뒤풀이를 즐기다오다.


함하세 700인분의 짜장을 준비해주시다. 사회민주당봉사팀 멋지다. 대장님 인사를 건네지 못해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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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90년대 산업사회의 올드노멀과 그 이후 급속한 뉴노멀에서 구조적으로 바뀐 것은 무엇인가. 바뀔 것을 제대로 예측했는가. 학자나 사상가들이 말한 대안은 증상의 일부만 서술했던 것은 아닌가. 무엇을에 집착해 어떻게 다른 시선으로 볼 생각들이 모자란 것은 아닐까 하지만 세월은 흘렀고 시간은 지났고 조금만 둘러보면 누구나 경험해냈다. 지난 과거를 본 이론이 과연 합당했는가? 그렇지 않다면 이론을 되돌아보고 정정할 것은 정정하고 폐기할 것은 폐기하고 보탤 것은 보태야 하는 것은 아닌가?




데카르트가 육체와 영혼, 신체와 정신을 나누어 진리나 궁극을 위해 탐구했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이런 데카르트의 분류에 못마땅해했다. 스피노자는 삶과 죽음, 삶의 지복에 관해서만 모든 탐색을 지속했다. 운명이란 무엇인가, 코나투스란 덧셈이란 곱셈이란....그래서 그는 육체와 정신을 빙빙 돌려 서로 나가떨어지게 하지 않는다. 그의 사유엔 늘 그 둘을 잇는 감각, 감정, 정서, 정동으로 살아숨쉰다. 관념과 물질로 나눠서 따로 따로 놀지 않는다. 심상을 매개로 실제 나에게로 흔들리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짚어내게 만든다. 


올드노멀에 뿌리내린 학자나 사상가들. 아감벤, 바디우 액체근대 벌거벗은 생명 등등은 버려지고 황폐해지는 증상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보았지만 그 사이사이를 살아숨쉬게 느끼게 만들지는 못했다. 지끔까지의 이론들은 관념이나 물질의 한 면만 종합적으로 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 한계를 넘지는 못한다. 정서, 정동은 과연 어떻게 세상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표류하는 우리들을 제대로 살펴볼 수는 있을까 극우의 선동에 30-40%가 쓸려가는 지금을 어떻게 설명해낼 수 있을까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친밀함을 원한다. 호혜성도 그 방편이기도 하다. 세상이 예측가능하고 안정적이라면, 변화가 느리고 한 세대이후 안정성 있는 삶이 보장된다면 느긋하고 한가롭고 사교가 예측가능하고 삶도 그러하다. 올드노멀을 그렇게 살아낸다. 굳이 맞벌이가 필요없다. 연애하고 결혼하고 하면 되는 것이다. 이런 삶들은 압축적 근대화란 명명처럼 우리는 전지구인들은 몸소 겪고 있다. 일자리는 줄어들고 올드노멀의 쓰레기더미을 뒤지는 것이 지금의 세대다. 아니 뒤질 것조차 없어 히키꼬모리다. 우울이다.


그래도 살아내야 한다. 지금이 원하는 것은, 하루하루 살아내더라도 친밀함의 한끼 밥이 필요하다. 카페인 없는 커피, 연애와 결혼은 말도 못해 썸타기와 어장관리, 쿨함, 무관심, 체념하는 것 자체가 삶의 성취이자 목적이 되지 않으면 위태로운 하루를 견딜 수 없다. 우리는 딱딱 떨어지는 고체같은 주체와 개인이 아니게 된 것이다. 디딤돌이라고 여겼던 생각이 지표들은 다 녹아가며 그 토대가 흔들리고, 떠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상황은 통제할 수 없다. 나를 제대로 바라보기 어렵다. 다 내탓이다. 이생망 탕진잼 이런 극단의 두모습으로 하루하루를 죽어간다. 나를 두드려주는 타인은 없다. 온통 내탓내탓하다가 앓는다. 앓다가 먹고 마시고 도박하고 포르닉하고 중독들을 하나씩 가지고 살아낸다. 모두 아Q이자 거의 좀비다.


바틀비는 계속하지 않겠습니다.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하면서 체제에 저항했지만 그 또한 올드노멀이다. 


아이들에게 꿈이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정작 어른도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꿈이 무언지 모른다. 그것을 찾아내기가 무척 어렵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원할 수 없다. 망막함과 위태로운 간두에 서서는 그저 나를 구제해줄 느낌적느낌을 부여잡을 수밖에 없다. 정동의 지능은 애착을 갖는 것을 찾기 마련이다. 유동하는 주체, 유동하는 계급, 정동적 계급은 순응과 저항의 이분법적 시선으로 묘사해낼 수 없다. 


이 책은 이런 것들을 흔든다. 뿌리채. 그러니 읽어내려 노력해야 한다.


볕뉘


4.4 세계헌법 수호의 날. 작은 책방에 모여 큰 소리내서 기뻐하지도 못하는 동네에서 맘껏 기쁨을 나누며 일상과 대안을 짚어봅니다. 백색소음의 시대에서 뭔가 다른 소음을 만들어가는 존재들. 그 사이에 에너지를 느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여기가 로도스다. 뛰어보라. 여기가 이타카다. 저기가 아니라 지금여기. 뭔가를 시도하는 맛. 삶에서 제일 진한 맛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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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다. 상처나 난다. 흉터가 생긴다. 누구나 갖고 있다. 아픈 기억과 나와 다른 환경은 나를 가만두지 않는다. 몸이 감당하지 못하는 충격들은 나와 섞이지 못하고 동거한다. 불쑥불쑥. 트라우마다. 한가롭고 싶지만, 정작 한가한 시간들이 주어지면 못참는다. 지루한 것이다. 인간은 그렇다. 좋다가도 말고, 나쁘다가도 좋아진다. 생명은 그렇다. 그렇게 자신을 지워내며 남을 이겨내며 면역이 생기며 살아가는 존재다. 


능동태와 수동태. 지금을 살아내고 있는 존재들은 이렇게 언어에 의해서도 갇혀있다. 그들에게는 나 위주로 세상이 돌아가줘야 한다. 주어와 가끔 명사만 반짝거리고 그렇게 반짝여야 한다. 대명사의 사소한 그것을 돌아볼 시간이 없다. 지금을 살아내는 존재는 그래서 경계가 없다. 심문의 언어, 자책의 언어만이 있어, 정작 자신이 어디에 처해 있는지 볼 수 없는 환경이다.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은 교과서에나 있다. 역사와 기억을 가진 존재는 말과 환경이라는 폭력에 끊임없이 자가교정을 하는 존재다. 그러니 교과서 밖에는 운명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만성통증이라는 것은 신경에도 기억이 있다는 것이다.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도 있지만 기억이 끊임없이 지금의 나를 다스리는 것이기도 하다. 


윤과 국힘 정권의 삼년은 이런 배제와 이분의 늪과 같은 과정이었다. 끊임없이 혐오와 수치심과 자극으로 한편을 적으로 몰라내고 폐기시키려는 것이 본질이었다. 한 번도 품으로 하지 않은 실수를 저질렀다. 언론과 미디어의 지난 십년의 수사를 보라. 심문과 자책의 단어, 그 구렁텅이에서 어떻게 남을 사랑할 수 있는가. 그 늪에서 누군들 온전하겠는가. 지금 우리는 어쩌면 내상을 입었을 것이다. 트라우마다.


당사자연구라는 것이 이 책들 사이 여러 번 나온다. 정신병, 우울. 나의 서사를 타인에게 말하게 하는 것이다. 내가 내 병을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섞여나가면서 알아지며 달라지는 관계, 그러면서 정작 갇힌 나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 쯤에서야 달라지고 낫는다 한다. 


숫한 비평과 날선 정치인들에겐 책임의 언어가 부재하다. 비난과 비판만 있지 회복적 비평이 없는 세상이다.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우리의 일상의 미세한 틈의 말들도 바꾸ㅕ야 조금씩 바꿀 수 있고, 타자의 반면도 나라는 사실을 알아채가는 과정이 있어야 바뀐다. 우리는 우리를 너무도 험하게 몰아부쳤다. 


헌법수호의 날. 민주회복의 날에 지금을 너머서는 우리를 상상해본다.


볕뉘


정정. 실수, 실패. 우리는 무수한 환경과 면역을 이루어내는 존재다. 순간순간 실수, 실패가 우리를 이겨내는 전부다. 인정한다는 전제아래. 이 암울이 비처럼 내리는 세상에는 질투가 힘이 아니라 실수을 정정해내는 힘. 실패를 인정하는 분위기. 자신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힘들이 우리를 겨우 일으켜 세울 수 있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로 회복해야 한다. 말할 기회를 변론할 기회를 인정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 줄 필요가 있다. 타인과 그릇된 자신을 함께 비추거나 봐 줄 광장도 필요하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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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쉬운 근력운동 방법을 검색하고 보다 걸려든 것이 타바타이다.  몇 번을 보고 일터 사무실 앞 뒤에 순서를 걸어둔 것이 한 달이 넘은 듯하다. 어쩌냐. 너의 무관심은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이라는 것이 한 두동작 따라하면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걸 느낀다. 그러다 다쳐 다친다구.


날개도 온전치 못하면서 어떻게 날겠다고 하는 것인지 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무리하지마.라고 나의 한편은 속삭인다. 


러닝의 준비운동에도 요즘 대세는 동적 스트레칭이구나 한다. 국민체조 방송이 옆의 제일연마 점심시간 끝날 무렵 들려오고, 신세계체조까지 연식을 가능하는 나는 정적 스트레칭밖에 할 줄 모른다. 그나마 스무 해 전 러닝은 그렇게 끌어주는 러너가 멋져보였다.  


영상으로는 쉽지만 막상 따라하려면 멋적고 힘들다. 그래 맞다. 그래서 아직도 밍그적거리고 있는거야. 바보처럼.


그래서 운동을 시작하기에 앞서 더 길게 걸어주고, 더 많이 각도를 주면서 몸을 까닥까닥해보면 빈 몸공간들의 흔적이 느껴진다.


팔을 벌리고 앞으로 손을 뻗어 8번씩 3세트 돌리고 흔들고, 손을 귀밑으로 올려서도 돌리고 흔들고....그래그래 짬짬이 빈틈을 채우는거야. 이렇게 저렇게 하다보며....타바타까지 가볼거야. 해보자.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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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싹 속았수다를 보다가 한방을 노리는 양관석의 아들, 은명이가 떡파는 장면을 본다. 그 때 유투브의 헐레벌'떡"이 겹친다. 어릴 때 사고로 한 쪽 다리를 잃은 사십대는 떡짐을 지고 식당들을 돌아다니며 이른 시간에 사전 영업을 한다. 하지만 취재진이 그를 인터뷰하고자 쫓지만 빠른 속도를 당해낼 수 없다. 그렇게 시작한 인터뷰를 보다나니 끝까지 닿게 된다.


그는 죽을 결심을 여러 번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를 살게 만든 것은 단 한 권의 책이다. 키에르케고르를 펼치면서 다시 살아낼 결심을 하였다고 한다. 헐레벌떡 사장님은 택배로 받아서 하나하나 포장을 한다. 그 무게를 감당하려는 보통사람들은 혀를 내두른다. 그것을 비가오나 눈이오나 더 빨리 팔려는 방법으로 영업의 묘가 생각해낸 듯하다.  그는 동정하는 돈은 받지 않는다. 폭싹 속았수다와 다른 결론이다.  그는 매일 목발(이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부목, 깁스를 검색하다니)을 짚고 매일 산에 오른다. 가파른 언덕을 쏜살처럼 날라다닌다. 그는 족구도 거침없다. 


우울과 실패를 우리의 시대에는 자신탓을 한다. 수면제와 불면을 지새우는 청년들이 너무도 많다. 갇혀 살고 싶지 않지만 갇혀 산다. 건강도 그런 환경으로 인해 더욱 더 좋지 않아진다. <건강을 팝니다>란 책은 이런 우울의 역사가 자본과 환경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 내탓만이 아니다. 팔할은 시대의 탓이다. 좌절과 불면은 하루 아침에 끊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상의 조금씩 다르게 만드는 기술들이 필요하다.


그대여 이불을 걷어차라. 햇볕을 쏘여야 된다. 몸을 비틀어야 된다. 중력을 거슬려야 한다. 관절에 붙은 근육을 늘려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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