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을 발견한 베르크손은 이제 모든 것을 진정한 존재인 <지속의 상하>에서 볼 것을 권한다. 그리하여 <<시론>>은 자유의 문제를, <<물질과 기억>>은 심신관계를, <<창조적 진화>>는 우주와 생명을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은 행동의 문제를 지속으로부터 해결하려는 시도들이다. 그 결과 전통적 형이상학은 완전히 뒤집힌다. 본질에서 기능으로, 형상에서 지속으로, 공간에서 시간으로, 닫힌 우주에서 열린 우주로, 형태에서 유전으로, 성년 중심에서 연속성의 담지자인 씨앗 중심으로, 도덕률에서 상황으로, 무감동에서 참여로...그것은 서양철학사가 겪은 가장 큰 지각변동이었다. 311
그의 운동은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바로 지속인데, 지속한다는 것은 자기 동일성을 잃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떤 것이 운동하여 자기동일성을 잃고 변해 버렸으면 그것은 더 이상 지속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지속이란 운동하면서도 동시에 자기자신임을 잃지 않는 운동을 말한다. 사실 모든 운동은 항상 필연적으로 타자화하는 과정을 수반한다. 운동을 했는데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운동을 하지 않았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속은 그러한 타자화에도 불구하고 자기동일성을 잃지 않는 운동이다./ 설탕이 물에 들어가 녹아들어가기까지 시간, 그 <뜸> 자체가 시간이다./타자화의 필연적 법칙이 지배하는 물질을 극복하고 거기에 비결정성을 부여하는 것이 생명 또는 순수지속이라 부른 것이다. 비결정성 자체의 자기동일성은 한사코 유지하는 비결정성이다. 필연의 거대한 수레바퀴에 대항하여 자신의 비결정성을 어떤 일이 있더라도 지켜낼 뿐만 아니라 가능하다면 더 큰 비결정성을 구현하려는 비결정성이다. 비결정적인 것은 비약한다/베르크손은 그것을 <생의 비약>이라부른다. 비약은 비약이지만 <생>이라는 자기동일성은 유지하는 비약이라는 것이다./생은 결국 끊임없이 자신임을 떠맡으면서, 이미 자신을 넘어서 있는 존재자이다 313-315
시론의 배경
내가 출발한 것은 과학적 시간 개념이었지 절대로 심리학이 아니었다. 심리학에 도달한 것이지, 거기서 출발한 것이 아니다. 요약하자면 지속을 의식하기 전까지 나는 내 자신의 밖에서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다......순수 지속을 살고 거기에 다시 잠기는 것이 나에게만큼 모든 사람에게도 쉽지는 않다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몇 해가 걸렸다. 322
<<물질과 기억>>에서 몇 쪽에 지나지 않는 실어증에 관한 부분을 쓰기 위해 5년간 실어증에 관한 책을 읽었다는 사실이다/그가 운이 좋았던 것은 제논의 역설로부터 출발했다는 것이었는데 그 역설을 깰 수 있는 길을 발견했다는 것은 바로 인간 지성의 가장 근본적인 착각을 깨는 길을 발견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철학사 전체를 뒤집을 수 있는 방도도 그의 손에 쥐어졌음을 의미한다. 324-325
모든 과학적 발견과 철학적 탐구의 중요한 걸음걸음마다 우연이 개입한다. 아니, 그런 발견을 한 사람들의 탄생 자체가 우연이 아닌가. 오묘한 것은 그러한 우연이 아무에게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사람에게만 온다는 것이다. 326
시론의 내용
제1장 <심리상태들의 강도에 관하여>
이 장 전체는 깊은 감정들, 미적 감정, 도덕감, 근육의 힘쓰기, 주의, 격렬한 감정들, 정조적 감각들, 표상적 감각들, 정신물리학의 순으로 의식의 심리상태들을 하나씩 분석해 가면서, 의식의 각 상태가 모두 질적으로 다른 것임을 보여줌으로써 양적으로 계산할 수 없음을 밝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왜 질과 양을 혼동하는지를 구명한다. 329
1. 우선 깊은 감정의 부분에서는 욕망, 희망, 기쁨, 슬픔 등을 분석한다.
2. 미적 감정에서는 우아함의 느낌과 아름다움의 느낌을 분석한다. - 하나의 감동은 수많은 사실들이 녹아 있는 유일무이한 어떤 상태이며, 예술가는 그렇게도 풍부하고 개인적이며 새로운 세계 속으로 우리를 단번에 끌어들인다. 그것의 풍부함에 의해 우리는 예술의 깊이를 말하며, 그러한 각성상태들은 또한 질적으로 다른 상태들이다.
3. 도덕감으로서 연민의 감정을 분석한다.
4. 근육의 힘쓰기로 단번에 옮겨간다. 그렇게 함으로써 깊은 감정과 표면적 노력의 강도에서 공통적인 정의를 찾기 위해서이다.
5. 주의는 단지 정신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신체의 운동을 동반한다. 긴장이 더해감에 따라 압작, 피로, 고통 등으로 면적을 넓혀가거나 성질을 바꾸는 근육 수축의 느낌이 된다.
6. 격렬한 감정들(격렬한 욕망, 분노, 사랑, 증오 등)은 영혼의 긴장성 노력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그것은 어떤 한 관념에 따라 전체가 조정되는 근육 수축의 체계라는 점에서 주의의 노력과 본성상 차이가 없다. 이는 비반성적 관념인 것만이 다르다.
7. 감각은 쾌락과 고통의 감각인 정조적 감각과 표상적 감각으로 나눌 수 있다.-감각은 자유의 시작이다. 그것은 미래 행동의 선택지를 밑그림으로 그려 보여줌으로써 자유로운 행동을 가능하게 한다. 쾌락과 고통의 감각은 미래로 향하는 행위의 자유로운 선택의 가능성에 의해 설명되어야 한다. 고통이 증가한다는 것은 더 많은 종류의 악기 소리가 들려오는 교향악에 비견될 수 있다. 고통의 크기는 바로 그 고통에 동조하는 신체 부분들의 수와 범위다....고통이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행동하라는 명령이라면, 쾌락은 운동하지 못하게 사로잡힌 무기력이다.
8. 정조적 감각이 거기에 수반되는 신체적 반응 운동에 따라 강도가 평가된다면, 표상적 감각도 정도 차이는 있을지언정 항상 정조적 요소를 지니며 따라서 거기에 동원되는 신체적 반응에 의해 그 강도가 평가된다.
9. 정신물리학......1장에서는 결국 의식의 상태들이 모두 질적으로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질에 양을 집어넣거나 결과에 원인을 집어넣어 해석한 결과일 뿐임을 밝히고 있다.
제2장 <의식상태들의 다수성에 관하여: 지속의 관념>
1. 수적 다수성과 공간: 수는 단위들의 집합이지만, 그 단위들은 모두 동질적이며, 동시에 동일한 공간 위에서 장소만을 달리하여 병치되어야 한다. 수를 시간 속에서 셀 때도 하나하나 세어 갈 때마다 항상 지금까지 센 것을 공간 속에 병치시켜야 한다. 결국 수의 관념에는 항상 공간의 관념이 들어간다. 수의 단일성은 이미 다수성을 내포하는 단일성이다. 또 각 단위들의 단일성도 이미 그 단위들이 무한히 나뉠 수 있다는 관념을 내표하고 있다.(분수가 될 수 있다.)
2. 공간과 동질적인 것: 텅 빈 동질적 장소를 개념화할 수 있는 것은 정신, 또는 지성의 활동에 의해서이다. 공간이 모두 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보이는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공간을 동질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공간 속의 사물들은 불가입적이며 상호 회재적이지만, 의식의 사실들은 상호 침투적이며 하나 속에 전체가 들어 있다. 따라서 동질적 장소로 생각된 시간은 진정한 시간이 아니라, 순수 의식의 영역에 공간 관념이 침투한 사생아적 개념이다.
3. 동질적 시간과 구체적 지속: 순수한 지속은 우리 자아의 각 상태들이 서로로부터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한 선율의 음들처럼 서로 속에 녹아들어가 상호 침투하여 내적, 유기적으로 결합한 전체를 이룰 때를 말한다. 그때인 자아의 상태들은 모두 질적으로 다른 순수 이질성이며, 부분은 전체로부터 고립되지 않는다.
4. 지속의 측정 가능성: 순수 지속의 <질적 다수성> 또는 <구별되지 않는 다수성>은 수적 다수성이나 동질적 장소 또는 측정 가능한 양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순수 이질성이며, 따라서 측정할 수 없다.
5. 운동의 측정 가능성: 내 속에서는 의식적 사실들의 유기적 조직화와 상호 침투 과정이 계속되며, 그것이 진정한 지속이다. 결국 자아 속에는 상호 외재성이 없는 계기만 있으며, 자아 밖에는 계기 없는 상호 외재성만이 있다....운동은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옮아가는 것인 한 정신의 종합이자 심리적이며 불가분적인 과정이다. ..의식이 그 이외의 것을 거기서 발견한다면, 그것은 정신이 계속적인 위치를 기억해서 종합한 것이다. 그것은 질적인 종합, 즉 선율의 통일성과 흡사한 종합니다. 바로 그러한 질적 종합이 운동의 운동성 그 자체이다.
6. 엘레아 학파의 착각: 엘레아 학파의 역설은 운동이 지나간 공간적 궤적과 운동 그 자체를 혼동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아킬레스가 지나간 공간은 무한히 나뉠 수 있지만 바로 그러한 공간을 단번에 지나가는 그의 운동은 나뉠 수 없다. 그러한 운동 그 자체를 공간과 혼동하여 공간처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 제논의 역설이 생긴다.
7. 관념과 동시성: 과학은 시간에서 지속을, 운동에서 운동성을 빼고서야 그것들을 다룰 수 있다.
8. 속도와 동시성: 아무리 좁은 간격을 취하더라도 수학이 자리잡는 곳은 항상 양 끝점이므로, 그 사이의 간격 그 자체에서 일어나는 지속과 운동은 항상 방정식 밖에 있다. 지속과 운동은 정신적 종합이지 사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9. 내적 다수성: 의식의 다수성은 <질적 다수성>이며, 수와 공간과는 관계가 없으므로 도무지 셀 수가 없다.
10 실재 지속: 상징적 표상이 아니라면 동질적 장소라는 형태를 띨 수 없는 자아는 동일성과 특수성이라는 이중적 특성을 가짐으로써 수적 다수성의 형태를 띠게 되고, 특히 그 양자가 결합하는 공간 운동의 도움을 받아 동질적 시간으로 이해되기에 이른다.
11 자아의 두 측면: 의식적 삶의 두 측면을 구별해야 한다. 동질적 공간에 응고된 비인격적 자아의 이면에, 한없이 움직이고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내적이며 살아 있는 자아가 있다./유능한 소설가는 우리의 상투적인 자아의 그물을 찢고 우리를 본래적 자아 앞에 세움으로써 그 섬세한 질적 느낌을 다시 살게 해준다.
339-345
제3장 <의식상태들의 조직화에 관하여:자유>
1. 물리적 결정론: 생명현상은 비가역적이다. 물질들은 영원한 현재에만 머무르지만 의식적 존재자에게 과거는 하나의 실재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명체나 의식적 존재에게는 덧붙임(과거가 자꾸 불어나니까)이 있으며, 바로 그 사실은 그들이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벗어남을 의미한다. 347
2. 심리적 결정론: 그 이전의 의식상태가 이후의 의식상태를 결정한다는 이론이다./장미의 향기가 어린 시절의 기억을 연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기억 자체를 마시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불변하는 장미의 향기가 있고 거기에 기억이 연상된다는 것은 그것을 공간화한 것이며, 앞장에서 말한 병치의 다수성과 상호 침투의 다수성을 혼동한 것이다. 348
3. 자유로운 행위: 사실 자유로운 행위는 드물다. 우리의 일상적 행동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우리의 느낌들 자체에서 얻는다기보다는 그러한 느낌들이 붙어 있는 의식 표피의 불변의 상으로부터 얻는다. 우리의 감정, 감각, 관념들이 기억 속에 응고되어 우리 행동의 기저를 형성하며 많은 경우 우리는 자동기계처럼 행동한다./갑자기 의식의 심층으로부터 반란이 일어날 때도 있다...그것은 마치 아무 이유 없이 나온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 인격 전체로부터 나온 것이다. 350
4. 실재 지속과 우연성: 존재하는 것은 오직 하나의 망설이는 자아일 뿐이고, 자유로운 행위는 거기서부터 과일처럼 떨어지는 것이다....우리의 의식 상태를 X,Y라는 도식으로 나타낸다는 것을 시간을 공간으로, 계기를 동시성으로 환원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 도식을 제거하면, 결국 결정론은 <행위가 이루어졌다면 이루어진 것이다>라는 것을, 자유론은 <행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라는 것을 주장하는 데에 불과하다. 그것은 그러므로 자유의 문제를 건드리지도 않은 것이다. 351,352
5. 실재 지속과 예견: <모든 전건을 알면 후건이 도출된다> 이런 논의의 밑바닥에는 반성적 의식의 착각이 깔려 있다. 첫째는 강도를 고유한 질로 보는 것이 아니라 수학적 특성으로 본다는 것이다. 둘째는 구체적 실재, 즉 의식의 동적 진행을 완성된 사실의 물질적 상징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두 착각은 시간과 공간의 혼동이라는 마지막 착각에 기인한다. 353
6. 실재 지속과 인과성: 데카르트나 스피노자 그리고 근대 물리학은 모두 원인과 결과 사이에 논리적 필연성을 확립하고, 지속의 작용을 파기하여 계기의 관계를 내속의 관계로, 외면적 인과관계를 근본적 동일관계로 환원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인과관계를 필연적 결정의 관계로 만들려고 할수록 지속의 작용은 배제된다. 355 자유는 구체적 자아와 그가 수행하는 행동 사이의 관계이다. 우리가 자유롭다는 그 이유 때문에 그 관계는 정의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물은 분석되지만 진행은 분석되지 않으며 연장성은 분해되지만 지속은 분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분석하려면 그것을 고정시켜야 하지 때문에, 바로 그 사실 자체에 의해 진행은 사물로 지속은 연장으로 그리고 자발성은 타성으로, 자유는 필연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357
결론
칸트의 잘못은 시간을 동질적인 장소로 간주한 것이다. 지속과 공간을 혼동했기 때문에 자유는 더 이상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고, 자유롭고 실재하는 자아를, 지속 밖에 있기 때문에 우리 인식능력으로 접근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또 시간이 동질적이라면 동일한 사태가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이고 인과성은 필연적 결정이 될 것이므로 자유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칸트는 거기서부터 지속과 공간과는 다른 이질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대신에, 자유를 시간 밖에, 즉 우리에게 입장이 금지된 물자체의 세계로 넘겨 버렸다. 358 의식의 상태들을 서로로부터 떨어져 응고된 결정체로 보는 순간, 연상주의자와 결정론자가 출현하여 자유를 금지하거나, 칸트주의자가 출현하여 자유를 신비의 영역으로 끌고 갈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그 독특한 삶의 입장에 선다면, 즉 동적인 통일성과 질적 다수성의 구체적이고도 살아 있는 지속의 입장에 선다면, 자유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그것을 부인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 계기와 동시성, 지속과 연장성, 질과 양을 혼동하는 데에서 오는 착각일 뿐이다. 359
볕뉘
읽지 못한 해설이 삶의 이력 배경과 요약이 잘 되어 있어 옮겨놓는다.
요약 ▼
제시해주신 텍스트는 앙리 베르크손(Henri Bergson)의 철학, 특히 그의 저서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을 중심으로 **'지속(durée)'**과 **'자유'**의 개념을 탁월하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핵심 내용을 5가지 주요 포인트로 정리해 드립니다.
1. 베르크손 철학의 핵심: '지속(Duration)'
지속이란? 시간이 단순히 시계 바늘처럼 분절된 것이 아니라, 선율(멜로디)처럼 앞뒤 상태가 서로 침투하며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질적인 흐름을 의미합니다.
자기동일성의 유지: 운동하면서 변하지만, 그 변화 속에서도 '나'라는 본질을 잃지 않는 운동이 바로 지속입니다.
생의 비약(Élan Vital): 물질의 필연성(정해진 법칙)을 극복하고 비결정적이고 자유로운 생명력을 유지하려는 힘입니다.
2. 공간과 시간의 혼동 (지성의 착각)
3. 제논의 역설과 운동의 본질
역설의 원인: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추월하지 못한다는 제논의 역설은 '운동 그 자체'와 '운동이 지나간 궤적(공간)'을 혼동했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해결: 공간은 무한히 나눌 수 있지만, 운동은 심리적이고 불가분적인 하나의 도약입니다.
4. 자아의 두 가지 측면
5. 자유와 결정론
자유로운 행위: 자유는 심층적 자아에서 우러나오는 행위입니다. 이는 분석하거나 정의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분석하는 순간 '살아있는 지속'이 '고정된 공간'으로 변질되기 때문입니다.
칸트 비판: 칸트는 시간을 공간처럼 동질적인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자유를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물자체'의 영역으로 넘겨버리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결론: 우리가 구체적인 삶의 지속 속에 머문다면, 자유는 부인할 수 없는 자명한 사실입니다.
"지속은 분석되지 않으며, 자유는 정의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