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장면을 끝으로 책날개를 접어두었다. 크네히트의 유고를 읽지 않은 셈인데, 기회가 되어 시와 기우사, 고해사, 인도 경전을 다룬 세 부분을 마저 읽다. 그리고 그날 저녁은 헤세와 잔술로 꽃그늘을 채운다.










인도 경전을 사두고 책장에 모셔두고 있다. 한번 짬내어서 통독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완결을 짓지 못하고 있단 말이다. 정현종 시인의 시집에서 인용도 많이 되고 김혜순 시인도....종종 불교보다 더 깊은 곳을 건드린다는 말에 넘어가 이렇게 배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헤세님이 이렇게 친절하게 정리해주지 않았더라면 이런 기회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봄이 매번 찾아온다. 좀더 어릴 때에는 보이지도 않은 꽃이었지만 져가는 꽃이 되고나서야, 나도 꽃이고 젊음 자체가 꽃이라는 걸 눈치챈다. 그제서야 꽃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걸으면서 꽃들을 렌즈로 남겨둔다. 그러다가 떨어지는 꽃잎들을 보고 마냥 섭섭해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폰이나 사진기를 그 앞에 들이밀지는 않는다. 마음의 책장에 음미한 느낌을 옮겨심는 중이다. 하나 하나 환해지는 기분이란.  어제는 일부러 국밥집 별목련나무 안부가 궁금하여 곁을 지나간다. 오늘은 양동마을 어느 한옥 마루 곁은 꽃들이 궁금해져 저절로 몸이 향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몸은 찬연하고 물밀듯이 몰려오는데, 세상은 참 그저 유고에 나온 유희처럼 허황하다. 잘못 다루면 깨지거나 금이 갈 듯 말이다. 유고의 유희와 본 작품의 유희는 다르다. 그렇게 유희는 서로 손을 뻗고 있다. 


지금은 늘 지면서피고 있고 피면서지고 있다. 여기를 가꾸는 것은 내몫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스피 2026-03-28 0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두꺼운 인도 고전 혹운 경전인 마하바라타 5권인가 사놓았는데 읽을 엄두가 안나 책박스에 잠겨있어요ㅜㅜ
 





1. 대회


아저씨만 쫓아갈래요. 중3 남학생이 내 뒤에 서있다. 10k도 달려봤다하고 부모하고 같이 온 것도 아닌 걸로 봐서 달리기에 재미를 붙인 듯하다. 아저씨 잘 달리게 생기셨다고..열심히 따라오겠다고 한다. 살짝 부담스럽긴 한데, 모를 일이다. 출발 카운트 다운과 함께 달려나가는데 낯설다. 리듬과 호흡이 잡혀야 하는데 이것은 아니다. 언제나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앞에 주자들이 많지 않아 그래도 반환점까지 잘 온 듯 싶다. 유턴을 하고 호흡이 잡히고 부담을 덜면서 오는데 반대편의 중삼 친구가 엄지 척을 해준다. 역쉬!!! 


청주 무심천 대회와 서울 여의도공원 대회를 연이어 다녀오다. 서울 대회는 전일 여파가 있어 힘들게 달린 셈이다. 오랜만에 어머니와 동생을 만나 막걸리 한잔 기울인다. 


2. 읽거나 읽은 책들


 












앎의 편린들은 유투브를 통하게 되면 증발해버리는 듯하다. <인체생리학>은 오래두다가 읽혔는데 그 편린들이 중력이나 자기를 띠는 듯, 말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이 좋다. 두 책 모두 바닷물의 단세포에서 시작한다. 생명의 기원으로부

터 말이다. <아더마인즈>는 <후생동물><생명의 여정>과 함께 삼부작이다. 2부 <후생동물>를 막 시작했는데, 루크레티우스를 인용하지 않지만 닮은 시선이 바람직하다. 물질과 정신의 이원론을 극복하는 방법과 방향도 비슷하다. 이렇게 또 다른 앎의 편린도 겹쳐읽기로 정리될 듯하다. 여기서도 베르그송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들기도 하다.


3. SF


 





















복도훈의 작품을 모아서 본다. 이십여년의 역사와 결과물들이 많이 궁금해졌기도 해서다. 


그의 박사학위가 <교양소설/청춘>이란 키워드다. 목록이 흥미롭다. 최인훈부터 4.19를 겪은 작가들과 괴테부터 시작하는 교양소설이라는 맥락은 흥미롭다. 그렇게 장중단편을 다시 읽는 맛도 괜찮을 듯싶다. 이 내용은 <자폭하는 속물>에 담겨 있다. 2019년 작품인 국내 최초 SF 평론집의 서문을 보면서 킬킬댈 수 밖에 없어진다. 그 발랄함에도 웃게되는데, 이어질 다른 책들이나 SF가 담을 수 밖에 없는 미래. 그 구원의 손길들을 재기넘치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깊고 탄탄한 역작들에 먼저 존경을 보내고 싶다. 어서 읽자.


4. 전쟁
















작은 책방에 들렀더니, 매대가 전쟁관련도서로 꾸며졌다. 읽고 싶어 조물락거리던 <미국은...못하는가>를 펼쳐들자, 아래에 익숙한 사진의 저자 책이 있다. 아 삼프로TV에서 쭉 다뤄왔구나 싶다. 책을 살펴보니 장마다 어디서든지 읽을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책상 위에 두고 어디에서나 어디로나 읽으면서 앎과 현실 사이 간극을 메워보자. 전범급 트럼프의 전쟁놀이 역시 군산복합체의 익숙한 버전이지만 다시 살펴보자. 추측이 아니라 일상의 되어버린 스스로 목숨을 노리는 자멸의 악수를 두지 않는 방법들은 없는 것인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스피 2026-03-27 0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속적으로 마라톤 대회 출전하시는 모습을 보니 한펴으론 부러우면서도 대단하신단 생각이 듭니다.
SF독서를 좋아하는데 추천하시는 SF평론집도 한번 읽어 봐야 될 듯 싶네요.

여울 2026-03-27 11:25   좋아요 0 | URL
뒤 늦게 몸에 관심이 생겨서...하체보다는 상체....헌데 모르겠어요. 유연하게 잘 풀릴지 선무당 사람잡듯 더 아프게 될지. 여튼 완급조절하면서 좀더 유연안정성을 가져보려해요.

덕분에 흥미로운 SF작품들 접하게 될 것 같아 기분 좋은 봄날입니다. 감사해요^^
 
















1. 삶들


 밝게 읽으려는 마음때문이었을까. 시인의 말과 시집의 문틀말들을 새겨둔다.  전시작품들을 시로 새겨놓은 것들까지 읽다보니, 모두 시에 있는 새김말들이다. 어쩌면 우리는 죽음을 경멸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지나치도록 경멸해서 거꾸로 삶에 대한 집착을 너머서서 건강함과 강함에 경도된 세상에 살아지는 군상들인지도. 젊은이들이 젊지 않다. 노숙하다는 말도 아니고, 어떤 말로도 그들을 에워쌓을 수 없다. 우울과 신음에 겹쳐 살 수 밖에 없고 그 그늘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이들도 거의 없다. 시대와 세상의 결핍이란 모서리에 짓이겨져 사는 것이 우리 젊은 군상의 소묘일른지도 모르겠다. 나이든 사람들이 죽음을 직접 대면하거나 강도를 강하게 느끼는 것도 아니다. 삶에 대한 맥락을 잡지못하는 만큼 주검에 대한 맥도 잡을 수 없다. 오히려 주검의 결을 느끼거나 죽음의 현실적인 체감력이 높은 청년의 아이러니가 세상이다. 세상이란 다행은 없다. 거꾸로 그 결들을 느끼거나 좀더 나은 대면을 바라는 확장은 거꾸로 삶의 결들을 더 살피게 할 수도 있다. 뭉쳐진 세상은 결코 도망가는 법은 없다. 이렇게 트여진 시야는 어느 삶들의 곁으로 번질 수밖에 없지는 않을까. 그래서 강한 작품일 것이다. 뜨거운 작품이라고 말이다.

















2. 중년


 중년 여성작가 이름을 빼곡히 적어둔 작품을 만난다. 젊은 청년은 말한다. 외삼촌의 죽음과 자신의 위태로움을 겹쳐 말하며, 그가 삶의 방편으로 삶는 책들과 저자들의 시대넘음을 다시 한번 굵은 글씨체로 모아둔다. 뜨거운 것들은 중심도 아닌 가장자리로 밀려나며 그 많은 것들은 감싸안는다. 아픔들이 보자기 안에 들끓는다. 아무 것도 아닌 것엔 늘 좋은 것들이 불쑥 솟는다. 삶의 거름이자 비료, 윤기나는 흙빛이다. 누구나 그 토양안에서 한 점의 씨앗들은 볕을 찾아낸다.싶다. 건필하기를 바란다. 안작가.























3. 문어


ph. D 박사. 실력보다는 학위를 선호하는 하버드. 미국대학의 문제를 문어권력처럼 묘사한 글이다. <아더 마인즈>의 실제 문어와 다른 문어다. 이자벨 스탱게르스는 <다른과학은 가능하다>를 읽어내자 곳곳에 출현한다. 황수영의 의학사를 짚는 대목이거나 도나 해러웨이 책에서도 자주 출몰한다. 번역자인 이유선작가는 로티와 제임스의 실용주의 계보를 친절히 설명해주고, 이 작품이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에 관련지어 덧붙인다. 랑시에르는 알튀세로 <자본의 읽자>의 멤버이기도 하고 현재도 엄청난 저작을 쏟아내고 있는 듯하다. <미학적 무의식>은 프로이트의 무의식이 19세기 예술, 미학의 무의식에 빚지고 있음을 밝혀낸 책이기도 하다. 빠른 과학. <닦달>하는 과학의 세기는 경도되기 때문에 많은 문제를 안고가는 폭탄과 같다. 정치인 한명이 얼마나 세계사를 갈지자로 쓰게되는 지, 우리는 여기저기서 목도하고 있다. 핵폭탄 자체를 제거하거나 제거하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면 공멸한다는 더 이상 위협이 아니다. 에이아이. 현실이다. 곳곳에 괴물로 출현하는 가장 약한 곳을 골라 찾아다니는...아니 우리는 목도했다. 매일 식사하며 에이아이 트레이로 감원된 식당과 레스토랑과 자영업자들과 등등등....마치 못본 것 처럼 확대해서 보지 않으려고 할 뿐은 아닌가.


















4. SF


SF. 한 때 학위를 하는 친구가 있어 덩달아 읽어낸 적이 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보았지만 모임과 일반인의 관심과 격차는 가늠할 수 없었다. 또한 그렇게 까지 관심사들을 확장하고 있지는 못했다. <로빈슨 연대기>, <기가메시>와 서평 서문을 보면서 그야말로 빨려드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보르헤스를 넘어선 기획과 작품이라니...기대된다  고인이 된 김한수의 쿠옹의 재림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SF를 철학과 사상의 전개 방편으로 보는 해러웨이도 겹치고,  전설의 작품인 <빼앗긴 자들>까지 여러 편이 동시에 몰려오며 읽어낼 수밖에 없구나하는 감정까지 생긴다. 잘이겨내며 쾌차를 기원해본다.


볕뉘


죽음은 없다. 죽음은 모른다. 거기서부터가 0이다. 이제 살아낼 수 있다. 이천년 삼천년도 더 된 얘기다. 기본으로 돌아가도 괜찮다. 삶이란.


한 중년여성작가가 서울 전시에 다녀갔다. 한 젊은 청년작가도 어머니와 여동생과 다녀간다. 그렇게 같은 시공간이 겹친다. 아마 다른 언제 같이 만나게 되는 날도 없으란 법이 없다.  우연이란 이렇게 강렬한 선물투성이다. 미래란 폭죽처럼 터지는...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스피 2026-03-18 1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른바 비주류 문학인 B급 문학을 좋아해서 상당히 많은 책을 읽고 수집했는데 실제 미스터리,무협,공포판타지,SF소설중에서 SF소설이 제일 매니악한 편인 것 같으며 실제 애독자들도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국내에서도 이천년대 이전까지만해도 국내 작가들의 SF소설들은 전무하다시피 했고 해외 번역 작품들도 손을 꼽을 정도였지요.실제 한국에서는 SF소설은 어린이들이나 읽는 책으로 취급받았고 그래서 SF소설은 공상과학소설(현재 일부 매체에서도 아직까지 이 표현을 사용중)이라고 할 정도니까요.
사실 이천년대 초반까지도 한국에서 SF소설을 번역 출간한다는 것은 출판사 입장에서는 매우 리스크가 큰 사업이었습니다.당시 SF소설을 구매할 이들이 대략 3천명 내외라고 출판계에서 생각할 정도였으니까요.그리고 이 당시 간행한 SF책들은 간행 부수도 적고 또 판매 부진으로 절판된 책도 많아서 현재는 중고시장에서 비싼 값으로 거래되는 실정이지요.
하지만 70년대 아이디어회관 SF소설을 읽고 자란 분들이 출판사 사장,편집자들이 되면서 위험을 무릎쓰고 이천년대 이후 꾸준히 SF소설을 출간하면서 국내 SF소설시장의 저변이 넓어지기 시작했고 이를 읽고 자란 MZ세대 작가들이 SF작품들을 출간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여울 2026-03-18 12:08   좋아요 0 | URL
간략사를 해주시니 이해가 잘 됩니다. 무협, 공포판타지, 미스터리까지 접근이 쉽지 않겠지만 발판 삼아 SF소설로 소프트 포커싱해보겠습니다. 유수한 작가군이 많아 기대됩니다.
 

 재기 발랄한 그래픽 노블.  감상하는 내내 점점 초점이 맞춰진다. 드디어 탄다. 그 마음이 곱다 싶다.  아르키메데스가 어쩔 수 없이 전투무기를 발명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이 되었을 때, 그는 집광경을 이용해 적들의 선박을 태우는 무기를 발명한다.는 전설같은 일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실제로 재현실험도 해보았다.


반지하거주자의 삶으로부터 나오는 연결에 대한 사실감들도 앎들을 애태우지 않겠는가? 요지부동하지 않는 지구인들의 삶에 적반하장이라도 되지 않겠는가? 이렇게 매치나 저렇게 매치나 어쨌든 매치다보면 패대기라도 치지 않겠는가? 


이런 시작들이 지구란 막의 간절함도 읽어내리라 여긴다. 아르키메데스가 지구를 들어올 릴 수 있다고 했듯이, 이런 시작이 지구인의 마음을 다른 각도에서 활활 태워버릴 단초라고 여긴다.


볕뉘.


가족 작가집단의 번창을 꿈꾸어 본다. 재미발랄한 가족이여 그 기운 번져 스며나가길 바래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스피 2026-03-14 07: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르키에데스의 집광경은 말씀하신대로 21세기에도 수차례 실험을 했는데 곌론은 이론적으로 가능하나 반사울 낮은고대 청동기 거울을 가지고 수백명의 인원이 정확한 촛점을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단 결론을 내렸지요

여울 2026-03-14 15:46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카스피님은 관심사가 넓고 깊으시군요. 닿지 않는 곳이 없으신 듯요. 감사합니다.
 


















1.


지난 흔적을 추스릴 겸 책을 살펴보는데, 밑줄이 선명하게 그어져 있다.  초저녁에 잠들어 한밤중에 일어나 살펴보는데, 베그르송과 에머슨의 연관성 아래에서 보지 않은 연유이기도 했다.  에머슨은 피터슬로터다이커의 <인간공학>에 나오는 중요한 인물이기도 하다. 미국독립운동의 초석이기도 하며 삶의 다기성 긍정성을 내내 언급해주기도 한다. 프래그머티즘, 실용주의의 혁신성을 존듀이를 읽고서야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는데, 이렇게 뒤늦은 깨달음은 베르그송을 다시 읽고서야 그 물결들이 이어지고 있음을 눈치챈다.  기억이란 이리 중첩되면서 밀려가기도 하고, 다시 중심을 잡고 서면 더욱 선명해지기도 하는 듯싶다. 









2.


저강도 운동이 지지부진한 이유와 베르그송의 <근육의 단련> 또는 근육힘쓰기를 언급하는 부분이 있어 짚어본다. 시간의 공간화. 예를 들면 운동을 부위별로 한다든가? 시간을 양화시켜서 질적으로 달라지는 부분을 보거나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3.


신발을 사러가는 길. 이거는 공부다. 선택불안을 가중시키는 노동이기도 하다. 안정화 쿠션화 카본화와 왜 해부단어들을 알아야만 하는가? 그러고보니 아웃솔이 다 닳아 바꾸어야 한다고. 부상의 직접적인 원인이기도 하며 아치깔창으로 긴급보완을 잘했다고 해준다. 그렇게 주말 작업과 소소한 휴일일상들을 바쁘게 보내본다. 프리지어 세 단을 사서 세 네 곳을 밝혀둔다. 춘삼월. 사무실의 반려식물들도 <자태>로서 보답하는 모습이 참 좋다.  어서 어서 기분좋은 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