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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세계 - 무기산업을 둘러싼 부패의 내막과 전쟁 기획자들
앤드루 파인스타인 지음, 조아영 외 옮김 / 오월의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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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기거래에 관여하는 기업과 개인은 '국가에 대한 전략적 기여'와 전혀 관계없는 범죄를 저질러도 좀처럼 법의 심판을 받지 않는다. 정치적 개입은 많은 경우 국가안보라는 명목으로 정당화되는데, 이로써 무기거래는 자기만의 어둠의 세계에서 이뤄진다. _ 앤드루 파인스타인, <어둠의 세계> , p726


 앤드루 파인스타인 (Andrew Feinstein, 1964 ~ )의 <어둠의 세계 The Shadow World>는 '안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군수산업과 무기교역의 어두운 면을 고발한 책이다. <어둠의 세계>에서 그려지는 무기산업은 말 그대로 '복마전 伏魔殿'이다. '자유'와 '평화'라는 인류 공통의 가치를 지킨다는 명복으로 큰 금액의 돈들이 '군사보안'이라는 이유로 별다른 감사를 받지 않고 오가는 교역구조, 전쟁이 자주 일어나지 않기에 일정 기간마다 재고청산(inventory liquidation)이 필요하지만, 일회성 소모품이기에 재활용이 어렵고 검증받기도 어려운 상품의 특성 등은 군수산업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었으며, 이러한 점은 권력을 가진 자들과 자본가들의 결탁이 다른 어느 산업보다 쉽게 그리고 강하게 이루어지게 만들었다.


 BAE의 대부 바실 자하로프 Basil Zaharoff는 그리스의 원수라고 할 수 있는 터키 해군에 잠수함을 파는 것이 애국적이지 못하며 다소 부도덕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그에게는 이러한 고민을 이겨내는 힘이 있었다. 언론에 군사적 프로파간다를 퍼뜨리고 뇌물로 주요 인사를 매수하는 자하로프의 대표적 수법은 무기거래에 몸담은 초창기에 시작된 것이다(p51)... 자하로프는 경쟁사들보다 두 배나 비싼 가격에 무기를 판매했고, 구매를 결정하는 정치인들에게는 뇌물을 세 배 더 주었다. 그는 무기를 더 많이 팔기 위해 언제나 기꺼이 분쟁을 조장했다. _ 앤드루 파인스타인, <어둠의 세계> , p52


 무기는 전쟁에서만 사용되지 않는다. 핵(核)무기를 보유했다는 사실 하나가 이미 하나의 강력한 외교카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무기는 외교협상에서 유리한 자리를 보장해주는 역할도 함께 수행한다. 때문에, 국가는 자국의 안보를 위해 최첨단 무기를 확보해야 할 필요에 쫓기게 되며, 무기상들은 이 점을 놓치지 않는다. 야구에서 좌완 파이어볼러(Left-handed fireballer)는 지옥에서라도 데려온다고 하지만, 무기상들은 그야말로 다 팔아치운다. 자신의 조국까지도. 철저하게 이윤에 따라 움직이는 이들의 행태는 자본의 전형이다. 비용을 최소화를 위해 여러 수단을 사용하려는 이들이 뇌물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 점이 더 이상할 것이다. 때문에, 무기 거래는 항상 정치적 스캔들이라는 오명에서 자유롭지 않은 현실이 상세하게 본문에서 그려진다.


 무기산업은 정부로부터 독특한 대우를 받는다. 많은 기업이 국영기업으로 시작했으며, 일부는 아직도 그렇게 운영되고 있다. 민영화된 기업들도 여러 면에서 공공 부문에 속한 기업처럼 대우받는다. 이들이 국방부에 물리적 접근권을 갖고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도 매우 흔하다. 정부 관료들이나 장관들은 마치 민간 방산업체가 국영기업인 것처럼 이들의 열정적인 세일즈맨이 된다. 이는 방산업체들이 국가안보와 대외정책에 기여하는 동시에 국가경제에 상당한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무기업체들과 딜러들은 첩보 수집과 비밀작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각국 정부, 무기업체, 첩보기관, 로비업체 사이에서 지속적인 인사이동이 이뤄지면서 이러한 특별대우는 더욱 강화된다. 무기 구매국과 판매국에서 정당들에 제공되는 기부금과 자원도 마찬가지 역할을 한다. _ 앤드루 파인스타인, <어둠의 세계> , p725


 사람들은 사례금, 의심스러운 자금, 강탈금, 윤활유, 혹은 뇌물이라는 표현을 쓴다. 나는 이러한 자금이 '커미션'이라 생각하며, 제품 판매를 위한 필수 요소라 생각한다.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다.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방산업계에서 뇌물수수가 일반적 관행으로 여겨진 것은 맞지만, 그겋다고 그것이 도덕적이거나 올바른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_ 앤드루 파인스타인, <어둠의 세계> , p403


 최첨단 무기를 도입하기 위한 움직임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최신예 전투기를 도입하기 위해 석유판매대금을 달러로 받고, 저렴하게 석유를 판매하는 중동국가 사우디, 떨어지고 있는 대통령 지지율 방어를 위해 터무니 없는 방어 시스템을 구상하고, 실험결과까지 조작하는 록히드 마틴 등. <어둠의 세계>에서는 군수산업과 자본들이 만들어낸 구조가 오늘날 세계체제의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국제유가가 상승하는 가운데 1979년 카터 대통령의 재선 도전이 시작되었다. 카터를 돕기 위해 사우디는 다른 산유국보다 4~5달러 낮은 가격에 석유를 판매했고, 그로 인해 매일 3,000만~4,000만 달러의 손해를 보았다. 감사의 표시로 카터는 1979년 12월 초 반드리를 백악관에 초대해 중동 정치 및 미국과 사우디 간의 관계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_ 앤드루 파인스타인, <어둠의 세계> , p108


 레이건이 큰 관심을 쏟은 사업은 미사일 방어 프로그램이었다. 1983년 3월 레이건의 지지율은 폭락했고 국민의 57%가 레이건으로 인해 미국이 핵전쟁에 개입하게 될까 우려된다고 답했다. 그러자 레이건은 이른바 '스타워즈 Star Wars 구상'이라 알려진 연설을 통해 핵무기를 '완전히 무력화'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약속했다. 록히드마틴은 전략방위구상 Strategic Defense Initiative이라고도 알려진 이 계획에 포함된 다양한 기술 중 하나를 담당했으며, 금전적 이익도 얻었다. 록히드마틴은 요격체에 우산살 형태로 펼쳐지는 탄두를 장착한 호밍오버레이실험 Homing overlay Experiment을 실시했다. 세 차례나 실패하며 전략방위구상의 미래를 위협하던 이 실험은 마침내 1984년 6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록히드마틴의 자랑으로 여겨지는 이 실험 결과는 조작되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_ 앤드루 파인스타인, <어둠의 세계> , p412


 이러한 세계체제 안에서 군수산업은 국가로부터 생존을 보장받고, 무기구입을 원하는 국가는 자신들이 원하는 최첨단 무기를 손에 넣게 된다. 그렇지만, 만약 이들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없는 국가는 어떻게 되는가? <어둠의 세계>에서 2002년 우리나라 FX사업(차기전투기사업)은 무기수입국의 처지를 잘 보여준다. 당시 F-15K와 라팔, 유로파이터, 수호이-35 등이 경합한 이 사업의 뒷면에는 '한미군사동맹'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과연, 한미군사동맹은 우리의 안전을 위한 혈맹 미국의 일방의 퍼주기일까. 

 

 특정 무기의 장점이 아니라 무기제조업체의 재정적 상황에 따라 계약을 배분하는 것은 군산복합체의 오랜 관행이다. 공장이 현대적인 무기를 즉시 생산할 수 있는 상태로 운영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국방부 및 국방부 주요 방산업체들은 서로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공생하는 관계가 되었다. _ 앤드루 파인스타인, <어둠의 세계> , p379


 반다르가 말했듯 대처 총리는 사우디의 무기판매 요청을 매우 잘 수용해주었다. 미국은 사우디에 무기를 판매하는 것을 꺼렸고, 프랑스는 이란산 석유 수입을 늘리며 자충수를 두었다. 하지만 이러한 요인들 외에 영국에서 무기를 수입한다는 사우디의 결정에 영향을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바로 돈이었다. 역사상 가장 부정한 무기거래로 남을 이 거래로 반다르와 대처 총리의 아들을 비롯해 거래에 연루된 수많은 사람들은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_ 앤드루 파인스타인, <어둠의 세계> , p119


 무기판매를 확정 짓기 위해 국방부와 백악관이 직접적인 압박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2002년 미국 정부는 한국에 프랑스 업체 대신 보잉과 45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하라고 요구했다. 한국 국방부에서 유출된 정보에 따르면 프랑스 업체의 기종은 모든 항목에서 보잉의 기종보다 우수했고, 가격도 3억 5,000만 달러 저렴했다. 그러나 폴 월포위츠 Paul Wolfowitz 국방부 부장관은 한국 측에 "만약 프랑스 업체를 선택할 경우 미국은 정치적 지지를 철회할 뿐만 아니라 군 차원에서 항공기 피아 식별에 사용되는 암호 체계나 해당 기종이 사용하는 미국제 공대공 미사일 제공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했다. 계약은 결국 보잉에 돌아갔다. _ 앤드루 파인스타인, <어둠의 세계> , p492


 무기수출국과 수입국 그리고 이들을 중개하는 무기상들. 어둠의 세계를 구성하는 3대 축으로 이들 사이에는 무기와 돈이 움직인다. 그들 사이에 오고가는 자금은 조세 회피처(Tax Haven)에서 페이퍼 컴퍼니 형태로 운영되고, 거래되는 무기는 언제나 추가되는 작은 옵션 사양으로 초기 금액보다 매우 큰 규모로 증액된다. 그리고,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인적 네트워크는 '국경없는의사회'가 아닌 '국경없는엘리트집단'을 형성하고 있음을 <어둠의 세계>는 잘 보여준다. 이들의 인맥은 아마 Ivy Castle을 통해 여러 겹으로 통해있겠지. <어둠의 세계>는 세계의 정치권력과 자본들이 어둠 뒤에 거래되는 자금과 무기를 통해 세계질서를 유지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들 모두가 게임의 승자들이다. 그리고, 패자들은 여기에 있지 않다.


 자금세탁 시스템의 중심에는 '포세이돈트레이딩 인베스트먼트'와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등록된 무명의 업체, '레드다이아몬드 트레이딩'이 있었다. 카리브해의 제도 버진 아일랜드는 60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2000년 기준으로 전 세계 페이퍼컴퍼니의 41%(약 82만 개)가 등록된 버진아일랜드는 '순결'과는 거리가 멀다. 에이전트와 사우디 왕족에게 지급되는 막대한 불법자금과 비자금을 감추기 위해, BAE가 버진 아일랜드에 여러 회사를 설립한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_ 앤드루 파인스타인, <어둠의 세계> , p159


 당시 공군은 전투기 339대를 620억 달러에 구매하고자 했다. 당초 750대를 250억 달러에 구매한다는 계획과 비교하면 총액은 두 배가 넘고 도입 대수는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은 애초에 록히드마틴이 실제로는 비용이 훨씬 많이 들어갈 줄 알면서도 입찰 서류에 낮은 가격을 적어 냈기 때문이다. 기업체들은 이러한 관행을 통해 일단 계약을 따낸 다음 나중에 가격을 올린다. 여기에 공군의 불필요한 '금칠'이 더해진다. 이미 개발 단계에 들어간 전투기에 대해 까다로운 성능 기준을 추가하는 것이다. _ 앤드루 파인스타인, <어둠의 세계> , p486


 많은 논란을 일으킨 칼라일그룹 또한 부시 가문과 사우드 가문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다. 1987년 설립 당시 칼라일그룹은 사모펀드 투자분야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했는데, 그 그룹은 처음부터 각국 정부의 회전문 메커니즘을 이용하는 것을 설립 목표로 삼았다. 칼라일그룹은 미군, 대기업, 큰 영향력을 가진 정치 세력이 한 회사에 모두 모여 탄생한 군산정복합체의 전형적인 예다. 칼라일그룹은 정부활동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기업들을 투자 대상으로 삼았다. 정부로부터 계약을 수주하기 때문에 법규 개정에 크게 영향을 받거나, 칼라일그룹과 관계된 정치권 거물들을 통해 세계 곳곳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업들이 타깃이 되었다. 정치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미리 파악하거나 이를 바꿀 수 있었던 칼라일그룹은 '인맥 자본주의'에 통달한 세계 최대의 사모펀드 회사가 되었다. _ 앤드루 파인스타인, <어둠의 세계> , p421


 저자는 이러한 부패한 산업과 거래에 희생된 이들을 잊지 않는다. 이들은 게임의 패자이자 희생자다. 이러한 점은 저자가 만든 다큐멘터리 <어둠의 세계 shadow world>에 보다 잘 묘사되는데, 특히 1:07:22~1:08:18 사이 장면은 매우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무차별 살포된 지뢰, 불발탄들에게 위협받는 어린이들의 생명. 국가와 안보, 자유와 평화를 명분으로 벌이는 죽음의 거래가 합리화될 수 없음을 다큐멘터리를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진정한 피해자들은 땀 흠려 번 돈을 무기거래의 낭비, 부패, 남용에 빼앗기는 각국의 납세자들이며, 예멘 사나에서 멕시코 시우다드후아레스까지, 알바니아 게르데츠에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까지, 소말리아 모가디슈에서 스리랑카 몰라티부까지, 미얀마 양곤에서 팔레스타인 라말라까지, 콩고민주공화국 키부에서 아프가니스탄 카불에 이르기까지 죽음의 상인들과 함께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분쟁, 사회경제적 쇠퇴, 궁핍으로 고통받는 이들이다. _ 앤드루 파인스타인, <어둠의 세계> , p724


 앤드루 파인스타인의 <어둠의 세계>는 이처럼 막연하게 부패한 죽음의 산업으로 인식한 군수산업의 실체를 직접적으로 고발한다. 부국강병(富國强兵)이라는 쉽게 부정할 수 없는 명분으로 행해지는 합법적인 어둠의 세계. 달의 뒷면처럼 일반의 눈에 쉽게 띄지 않는 어둠의 세계는 생각보다 깊고 넓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공식적 무기산업과 어둠의 무기산업은 이들이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자주, 정기적으로 교류하며 교차한다. 이들의 상호의존은 매우 뿌리 깊으며, 사실상 어둠의 세계를 구성하는 두 날개에 해당한다. 공식적 무기산업이 런던증권거래소라면 비공식적 무기산업은 규모가 작고 규제가 약한 '대체거래소'라고 할 수있다. 또한 그레이마켓과 블랙마켓은 제품의 실질적 수명을 연장하고, 이를 통해 제품의 초기 가치를 높여주는 기능을 한다. 공식적 무기산업에서 취급되기에는 품질이 낮은 제품이나 불량품을 거래할 시장을 형성하기도 한다. 결정적으로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보았듯 이러한 시장에서는 대형 방산업체나 국가가 법적/정치적/외교적 이유로 무기를 판매할 수 없는 개인, 집단, 국가가 고객이 된다. 어둠의 세계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공식적 무기업체의 에이전트, 브로커, 중개인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어둠의 세계는 공식적 무기산업에 비해 작은 규모이지만, 어둠의 세계가 있기 때문에 공식적 무기산업에서 무기 가격이 높게 유지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또한 어둠의 세계가 분쟁을 부추기고, 확대하고, 장기화함에 따라 공식적 무기산업의 새로운 시장이 창출된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_ 앤드루 파인스타인, <어둠의 세계> , p727

콘트라 반군을 지원하기 위해 CIA와 협력하던 바로 그 시기, 게르하르트 메르틴스 Gerhard Mertins는 중국과의 관계 또한 발전시키고 있었다. 메렉스는 1972년 이미 중국 준국영 무기업체 중국북방공업과 인연을 맺고 서방 국가의 무기 및 정보 네트워크에 접근할 매우 유용한 기회를 제공했다. 당시 중국은 독일의 대형무기제조업체 라인메탈 Reinmetal의 120mm 구경 박격포를 탐내고 있었다. 메르틴스는 강한 화력과 정밀도로 잘 알려진 이 박격포의 설계도를 구해 중국북방공업에 넘겼다. 메르틴스의 윤리 관념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독일 정보기관이 비밀스러운 거래를 위해 길러내고 육성한 무기딜러 메르틴스가 불과 10년 뒤 공산국가인 중국을 지원하기 위해 조국 독일의 군사능력에 기꺼이 해를 입힌 것이다. - P86

석유 개발 이후 사우디에 만연한 부정부패는 주로 세 가지 방식으로 자행되었다. 가장 흔한 방식은 공급자가 에이전트에게 직접 뇌물을 주는 것이다. 두 번째는 무기와 석유를 맞교환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간단하면서도 신뢰성 높은 방식인, 모든 거래대금을 부풀려 청구하는 방법이 있다. - P146

연계무역 또는 절충교역은 공급업체가 거래로 인한 경제적 영향을 상쇄하기 위한 구매국의 산업에 투자하는 조건으로 거래하는 방식이다. 여러 사례 연구 및 논문에 따르면 절충교역은 경제적 궤변에 불과하다. 무기수입에 수십억 달러를 쓰는 정치인들에게는 그럴듯한 변명거리가 되지만 공급업체가 약속한 경제적 이득이 그대로 실현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특히 개도국의 경우 더더욱 그렇다. 또한 절충교역은 주요 결정권자들에게 뇌물 및 특혜를 전달하는 교묘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논란의 여지가 많기에 WTO는 무기거래를 제외한 다른 교역에서는 절충교역 항목을 계약업체 선정 기준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 P282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 이후 전 세계 무기딜러들의 사업 방식은 크게 바뀌었다. 시장경제에 기반한 미국식 민주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는 가운데 탈냉전에 접어든 세계는 ‘역사의 종언‘과 함께 분쟁에 종언을 고하는 대신, 어느 때보다 복잡한 무력분쟁에 시달렸다. 불안정한 상태에서도 전 세계 많은 국가들이 하나의 국가로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양쪽 진영에 대한 소속감 덕이었다... 이러한 세계질서가 무너지면서 민족 간, 국가 내의 집단 간, 비국가 세력 간의 분쟁이 대규모로 발생했다. 한 국가 안에서 생겨난 서로 다른 집단들이 민족적 유토피아, 경제적 이익, 종교적 이상 실현 같은 다양한 명목으로 권력을 추구하거나 엄청난 혼란을 일으켰다. 이러한 세력들은 어둠의 세계에서 활동하는 소규모 무기딜러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안겨줄 새로운 고객이 되었다. - P121

사건들과 예상치 못한 재판 결과를 보면 크고 작은 무기업체들과 무기딜러들, 에이전트들은 엄청난 규모의 부정부패 및 뇌물수수, 반인도 범죄, 심지어는 살인에 연루되고도 처벌을 피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안타까운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어둠의 세계에서 활동하며 국제법 체계의 틈새를 이용하고, 영향력 있는 정치인과 정보기관 뒤에 숨는다. 그러면서 독재자들과 무책임한 정권들을 지원해 분쟁과 대규모 인권침해를 심화시킨다. 그 결과 세계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더 위험한 곳이 되고, 타인의 불행을 통해 엄청난 부를 거머쥔 소수의 범죄자들과 그들을 보호해주는 세력에게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었다. - P273

미국은 단연 세계 최대의 무기 제조국이자 판매국, 구매국이다. 미국의 무기판매량은 세계 판매량의 약 40%를 차지하며, 2008년에는 61%로 최고치를 기룩했다. 2001년 이후 81% 증가한 미국의 군비 지출은 2011년 기준 전 세계 군비 지출의 43%를 차지한다. 따라서 유럽의 경우와 달리 미국 무기업체들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수출이 아니라 미 정부의 군비 지출이다. 관련 법규 강화로 무기수출 관련 비리는 줄어들었으나, 국내 시장의 중요성, 그리고 자신의 지역구에 일자리를 창출하고 2년에 한 번 치러지는 선거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의원들로 인해 미국 내의 군비 지출은 조직적으로 자행되는 합법적 뇌물수수의 온상이 되었다. - P375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직후 몇 년간 보인 조심스러운 태도에서 벗어나 대선후보 시절처럼 개혁의 대변자로 돌아보려면 과장된 안보위협에 기반한 수십억 달러의 예산, 근거 없는 경제적 주장, 고질적인 예산 낭비에 취해 있는 군산정복합체에 맞서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중요한 것은 국방예산 삭감뿐만 아니라 조달, 로비, 무기 성능 면에서 투명성을 대폭 강화하는 일이다. 분명한 것은 무기산업이 의회에 합법화된 뇌물을 퍼뜨림으로써 미국의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저해한다는 사실이다. 통치의 책임성과 투명성 확보를 가로막는 비밀주의가 이러한 문제를 가리고 있다. 오바마가 내세운 ‘정치개혁‘의 성패는 그가 무기산업과 무기거래에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 P536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했다. 미국 헌법 체계의 핵심이 개악되고 폐기되고 무시됐다. 권력은 행정부로 더욱 집중되었고, 군은 전반적으로 민영화됐음에도 낭비가 심해지고 효율성은 떨어졌다. 감독체계는 의도적으로 약화되거나 주변화됐다. 비밀 구금시설, 특별송환, ‘고문‘의 재정의 등은 국제법 체계를 무력화했고, 이로써 미국의 적들은 국제적으로 감시받지 않으며 대규모 인권침해가 일어나는 법적 사각지대로 내몰리게 됐다. 애국법을 통해 정부가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을 들춰볼 막대한 권한을 얻으면서 미국 내의 개인적 자유 역시 위협을 받았다.... 신보수주의 세력은 어떤 의미에서 옳았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세계와 중동을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화된 세계는 더욱 불안하고 위험하며 빈곤해졌다. - P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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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7-08 12: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제 ‘공포장사하는 언론‘이란 주제의 방송을 봤는데 연결되는 지점이 있네요. 미디어와 정치는 공포를 조장해 대중을 현혹하고
그로인해 무기산업은 음지에서
마음껏 막대한 수익을 쌓아올리니까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

겨울호랑이 2022-07-08 13:08   좋아요 2 | URL
시민들의 눈과 귀 역할을 하는 언론이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엉뚱한 판단이 정치적으로 내려져 필요한 곳에 영양소가 공급되지 않는 문제가 우리 공동체가 당면한 현실이라 생각됩니다. 허약한 하체가 비대한 상체를 지탱하는 역피라미드를 구성하는 요인은 이밖에도 많겠지만 하나하나 문제를 찾아가는 노력을 우리 모두가 해야겠지요... 미미님 감사합니다 ^^:)
 

무한히 많은 다중우주도 이와 비슷하다. 무한히 많은 우주에 당신과 꼭 닮은 사람들이 존재하며, 이들은 단지 당신보다 머리칼이 한 가닥 많거나, 키가 0.5mm 크거나, 혹은 다른 직업(그들의 환경과 성장 과정이 당신과 다르기 때문에)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두 팔을 펄럭이며 날아갈 수 있는 당신의 분신은 어느 우주에도 없을 것이다.

인플레이션 팽창은 빛보다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빛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공간의 팽창은 물체가 공간을 ‘가로질러’ 이동하거나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이 아니기 때문에 광속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플레이션 다중우주들은 중간영역이 팽창함에 따라 꾸준히 멀어지고 있으며, 중간영역의 부피가 클수록 멀어지는 속도가 증가하여 빛보다 빠르게 멀어질 수도 있다. 제아무리 뛰어난 과학문명을 갖고 있다 해도, 이런 식으로 분리된 우주를 연결할 방법은 없다. 즉, 인플레이션 다중우주가 실제로 존재한다 해도 다른 우주를 방문하거나 통신을 교환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우주가 여러 개라는 아이디어는 인플레이션 이론의 전유물이 아니다. 양자역학의 가장 오래된 역설 중 하나인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살아 있는 고양이와 죽은 고양이가 공존하다가 관측이 실행되는 순간 각자의 세계로 갈라져 나간다는 평행우주의 개념을 낳았고, 20세기 말에 혜성처럼 등장한 끈 이론에 의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이 4차원이 아닌 10차원(또는 11차원)이며, 지극히 작은 영역에 여분차원(6, 또는 7차원)의 우주가 숨어 있다. 또한 우주 전체를 3차원의 막(3-브레인, 3-brane)으로 간주한 브레인세계 가설에 의하면 고차원 우주에는 동일한 브레인세계가 여러 개 존재할 수 있으며, 인플레이션 이론과 끈 이론을 결합하면 끈 이론의 여분차원들이 다양한 거품 우주를 양산한다. 이처럼 현대물리학과 우주론을 깊이 파고들다 보면 다중우주가 자연스럽게 도입된다.

사실상 모든 종교는 과거의 유한한 어느 시점에 신이 우리 우주를 창조하였고, 그 중심에 인간을 두었다고 가르친다. 다중우주는 이런 가르침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최선의 선택을 내리는 데는 오컴의 면도날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오컴의 면도날이란 몇 가지 가설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가장 간단한 가설의 손을 들어주는 원리다.

신앙주의를 위한 변론 중 최고의 고전은 윌리엄 제임스의 《믿음에 대한 의지The Willto Believe》이다. 제임스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만약 형이상학적인 믿음을 가지려는 강한 감정적 근거가 있다면, 그리고 그 믿음이 과학이나 논리적인 근거에 크게 반하지 않고 만족감을 충분히 제공한다면 이를 믿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상대방이 맥주를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와 같은 종류의 주제로, 논쟁할 수 없는 경우이므로 무신론자들을 분노하게 만든다. 내게는 전적으로 감정적인 문제다."

하지만 나는 절대선인 신을 믿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신은 전지전능하며 절대선인 것으로 정의되는데, 여기서 절대선이라는 말은 다시 생각해야 한다. 신은 절대선일 수 없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세상의 좋은 일뿐만 아니라 나쁜 일, 최악의 일도 신에게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무신론자들이 여기서 중요한 실수를 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신을 강력하지만 인간과 유사한 존재로 상상하고 있다. 즉 과학과 자연법칙에 지배되며, 시간과 공간, 원인과 결과, 논리, 비모순율lawofnon-contradiction등에 종속되는 존재로 여긴다. 하지만 이는 합리적인 신의 개념이 아니다. 초월적인 존재를 사실로 가정한다면 초월적 존재에 조금 못 미치는 존재를 가정해서는 안 된다. 이럴 경우 결국 자기모순에 빠지면서 신은 없다는 결론에 다다를 것이다.

나는 시간과 공간, 자연, 논리를 초월하는 신의 개념이 더 합당 하다고 생각한다. 무신론자는 내가 존재의 제약에서 신을 제외시켰다고 말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신이기 때문이다. 신이 존재를 창조했다면 신은 존재의 제약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이것이 가장 포괄적이고 중요한 논리다.

순수한 회의주의에는 더 심각한 결점이 하나 있다. 극단적으로 갈 경우, 이 입장은 그 자체로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는 이런 예문이 나와 있다. "모든 회의주의에는 긍정적인 태도가 깃들어 있다. 회의주의적 논변에 인류의 모든 지식을 뒤집어엎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전적인 확신 같은 것 말이다." 회의주의 그 자체는 지식을 긍정하고 있다. 따라서 회의주의를 극단적으로 주장하면 회의주의 자체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이제 흄에 대한 마지막 비판을 보자. 이것은 설명은 간결할수록 더 타당하다는 ‘오컴의 면도칼’을 오용한 경우이다. 자연법칙에 부합하지 않는 어떤 사건이 있을 때, 가장 간결한 설명은 ‘신이 하셨다’는 설명이라고 신자들은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간결하다기보다는 순진한 생각이다. 인간사에 흥미를 보이는 전능한 초자연적 실체에 대한 믿음을 간결하게 설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정말 죽은 사람이 살아날 수 있을까? ‘죽음’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임상적 사망이라는 용어는 과히 적절한 명칭은 아니다. 심장 박동과 호흡의 정지를 의미하는 임상적 사망은 그냥 ‘심장 박동 및 호흡 정지’로 부르는 게 더 적절하다. 심장 박동 정지 후 임상적으로 ‘사망한’ 환자도 15~20초 정도 더 의식이 남아 있을 수 있다. 임상적 사망으로 오진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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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지기 2022-07-07 2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켑틱 정기구독 할까말까 늘 고민인데
써주시는거 보니 구독쪽으로 마음이 가우네요 ㅎㅎ
매번 잘 읽고 갑니다

겨울호랑이 2022-07-07 23:08   좋아요 0 | URL
저도 <스켑틱>이 단순히 과학에 근거한 주장만을 전달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여러 관점에서 사안을 보려 노력한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낍니다. 등대지기님 좋은 시간 되세요! 감사합니다 ^^:)
 

BAE의 대부 바실 자하로프 Basil Zaharoff는 그리스의 원수라고 할 수 있는 터키 해군에 잠수함을 파는 것이 애국적이지 못하며 다소 부도덕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그에게는 이러한 고민을 이겨내는 힘이 있었다. 언론에 군사적 프로파간다를 퍼뜨리고뇌물로 주요 인사를 매수하는 자하로프의 대표적 수법은 무기거래에 몸담은 초창기에 시작된 것이다(p51)... 자하로프는 경쟁사들보다 두 배나 비싼 가격에 무기를 판매했고, 구매를 결정하는 정치인들에게는 뇌물을 세 배 더 주었다. 그는 무기를 더 많이팔기 위해 언제나 기꺼이 분쟁을 조장했다. - P52

반다르가 말했듯 대처 총리는 사우디의 무기판매 요청을 매우 잘 수용해주었다. 미국은 사우디에 무기를 판매하는 것을 꺼렸고, 프랑스는 이란산 석유 수입을 늘리며자충수를 두었다. 하지만 이러한 요인들 외에 영국에서 무기를 수입한다는 사우디의결정에 영향을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바로 돈이었다. 역사상 가장 부정한 무기거래로남을 이 거래로 반다르와 대처 총리의 아들을 비롯해 거래에 연루된 수많은 사람들은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 P119

역사상 가장 유명한 스웨덴인이라 할 수 있는 알프레드 노벨은 "어마어마한 대량 살상력으로 전쟁을 영원히 불가능하게 만들 물질 혹은 기계를 발명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러한 모순된 생각은 그의 생애와 가치관에도 반영되었다. 그는 시적인 이상주의자이자 반전주의자인 동시에 폭발물에 집착하는 무자비한 자본가였다. 외로운 사투 끝에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했으며, 그 이후에는 스웨덴 총기제조업체 보포스Bofords를 설립하고 노벨상을 만들었다. 알프레드 노벨의 모순은 세계 평화를 주창하면서도 매우 독창적인 무기를 제조하고 수출하는 스웨덴 및 노벨평화상을 둘러싼논란과 함께 그의 사후에도 계속 언급되고 있다. - P338

많은 논란을 일으킨 칼라일그룹 또한 부시 가문과 사우드 가문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다. 1987년 설립 당시 칼라일그룹은 사모펀드 투자분야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제시했는데, 그 그룹은 처음부터 각국 정부의 회전문 메커니즘을 이용하는 것을 설립목표로 삼았다. 칼라일그룹은 미군, 대기업, 큰 영향력을 가진 정치 세력이 한 회사에모두 모여 탄생한 군산정복합체의 전형적인 예다. 칼라일그룹은 정부활동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기업들을 투자 대상으로 삼았다. 정부로부터 계약을 수주하기 때문에 법규 개정에 크게 영향을 받거나, 칼라일그룹과 관계된 정치권 거물들을 통해 세계 곳곳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업들이 타깃이 되었다. 정치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미리 파악하거나 이를 바꿀 수 있었던 칼라일그룹은 ‘인맥 자본주의‘에 통달한 세계최대의 사모펀드 회사가 되었다.  - P421

2011년 브라운대학교의 경제학자 및 사회과학자 20인은 추가비용을 감안할 때2011년까지 실제 총 재정지출은 보수적으로 추정해서 3조 2,000억달러에 달한다는사실을 확인했다. 이 수치는 2051년까지 의무 적용되는 제대군인 돌봄정책 비용 등을 합한 것이다. 브라운대 연구팀은 2020년까지 전체 전쟁 비용이 4조 달러에 달하거나 이를 초과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 수치에는 여전히 기회비용이나 전쟁으로 인해 발생하는 장기적 간접비용은 제외되어 있다. 그러한 비용중 하나는 미국의 국체증가다. 스티글리츠와 빌름즈는 세계적 경기침체의 심각성과 미국의 대처능력 부족의 원인을 직간접적으로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 P607

진정한 피해자들은 땀 흘려 번 돈을 무기거래의 낭비, 부패, 남용에 빼앗기는 각국의 납세자들이며, 예멘  사나에서 멕시코  시우다드후아레스까지, 알바니아  게르데츠에서팔레스타인 가자지구까지, 소말리아 모가디슈에서 스리랑카 몰라티부까지, 미얀마양곤에서 팔레스타인 라말라까지, 콩고민주공화국 키부에서 아프가니스탄 카불에 이르기까지 죽음의 상인들과 함께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분쟁, 사회경제적 쇠퇴, 궁핍으로 고통받는 이들이다. - P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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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사이드는 더이상 ‘침묵의 범죄’가 아니다. 남반구 국가의 숲과 산, 강과 바다, 광산 등 곳곳에서 지뢰가 터지듯 점점 요란스럽게 퍼져가는 에코사이드는 오히려 노골적 범죄에 가깝다. 토착민 축출은 물론, 아마존에서 지난 십수년간 살해된 활동가들이 300명이 넘는다는 사실도 놀랍다(138면). 남반구의 환경운동은 목숨을 거는 일이며, 적의 총구 앞에 노출된 전쟁터의 병사가 되는 일이다. 생태학살 돈벌이에 나선 초국적 포식자들이 방해가 되면 무엇이든 제거 대상으로 겨냥하는 것이 에코사이드의 참혹한 정체다.

1944년 법학자 라파엘 렘킨(Raphael Lemkin)이 만든 신조어 ‘제노사이드’ 역시 초기에는 집단학살, 홀로코스트 등에 초점을 두어 인간의 생물학적 죽음을 의미했지만, 근래에는 문화·환경의 파괴 등 어떤 집단의 통합적 정체성이 해체되는 ‘사회적 죽음’으로 확장되어 쓰인다. 세계 제노사이드 연구자들은 2021년 ‘기후비상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선언’을 통해 "에코사이드와 제노사이드가 얽히면서 인간과 지구행성에 가하는 복합적 폭력을 직시"(118면)하라고 강조했다. ‘생태학살’과 ‘집단학살’의 명백한 인과성에 대한 주장은 기후·환경운동의 논리와 실천에 의미있는 영향을 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두 학살의 연계야말로 이 책이 담은 가장 독보적인 통찰이기도 하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은 산수화에는 화가 및 그림 주문자의 특정한 의도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산수화에는 이러한 의도와 관련된 당시의 문화적 코드가 내재되어 있다. 따라서 각각의 역사적 시기마다 그려진 산수화는 제작 당시에 정치·문화 권력을 쥔 인물들에 의해 산수가 어떻게 인식되고 평가되었으며 재해석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생생한 기록이다. 당시의 문화적 코드가 반영된 산수화는 사람들의 산수 인식을 변화시키는 적극적인 역할을 하였다. 즉 산수화가 세계를 다시 만든 것이다.

1960년대 세계문학계에 급부상한 ‘라틴아메리카 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까르뻰띠에르는 중남미문학의 미학을 ‘경이로운 현실’과 ‘바로크’로 규정지으며 이를 자신의 작품 속에 구현해 중남미소설의 토대를 이뤘다. 그의 대표작 『잃어버린 발자취』(Los pasos perdidos, 1953)가 올해 출간된 것은 작품과 작가의 문학사적 위치를 고려할 때 뒤늦은 감이 있지만,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궁극적으로 도올은 수운의 사유를 온전히 드러냄으로써, 서양의 초월적 신관과 실체론적 사고를 전복시키고 새로운 사유, 새로운 길을 열어 보이려고 한다.

수운의 사유에는 항상 초월과 내재, 개체와 전체, 신비와 이성, 인격성과 자연성, 인과성과 초인과성, 아(我)와 무아(無我), 불연과 기연, 인성과 신성, 유위와 무위, 이 모든 대립적 관계가 생성적 관계로 혼융되어 있다. 또 서양의 주관과 객관의 설정이 사라진다. "주관은 나만의 주관일 수 없다. (…) 수억만 개의 주관이 저마다의 세계, 저마다의 시공간을 구성하고 있"(34면)다. 도올은 동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현재적 사고를 완벽히 전복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우리 언어의 궤도를 일탈하여 신생로를 개척해야 하는데, 이때 가장 유용한 문헌이 바로 「용담유사」라는 것이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그런 세대는 없다』에서 이른바 ‘386세대의 독식’과 그 때문에 ‘미래를 박탈당하는 청년세대’라는 구도를 생산해온 담론의 허구성을 드러낸다. 그에 따르면 세대 간의 체계적인 불평등이 있어 마치 386세대가 ‘양보’를 해야만 많은 사회적 병폐가 해소될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세대 선정주의’에 불과하다. 그 선정적인 허구성은 저자가 인용하는 조사결과로도 여실히 드러난다. 한국의 34세 이하 청년들 사이에서 386이나 586이라는 용어 자체를 잘 모른다고 대답한 사람이 44%인데, 그러면서도 ‘386세대가 한국사회의 기득권 세력이다’라는 문항에 80%가 동의했다고 한다(133면). 이는 확실히 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니다.

강간은 여성의 몸에서 벌이는 전쟁이다. 성은 그 어떤 물리적 화학적 무기보다 값싸고 효율적인 파괴 무기라고, 피해자와 조력자와 관찰자 모두가 잘라 말한다.

그에게 있어서 예술작품이라는 객체야말로 이러한 특징, 즉 본질을 파악하려는 우리의 노력으로는 결코 장악할 수도 닿을 수도 없는 잉여물의 특징을 두드러지게 보여주어야 한다. 강조컨대 평평한 존재론에 의하면 물, 공기, 새, 숲, 고양이, 인간 등은 지금 바로 여기에 있는 실재이지 외부의 지각에 의해 구성된 존재가 아니다. 이들은 서로에게서 공평하게 물러나 있고 서로 간에 포착할 수 없는 무언가를 은폐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의 자율성은 "자신이 맺은 관계들과는 별개의 실재를 갖춘 무언가"(139면)를 환기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본질을 명료하게 포착하고 진술하는 것과 예술은 거리가 멀다.

『예술과 객체』는 20세기 후반 철학의 주된 흐름을 대변해온 생성·사건 철학과 거리를 두고 포스트모던 예술 경향에서도 물러서며 존재(being)의 철학 쪽에 스스로를 위치시킨다. 예를 들어 그가 반형식주의 등 비평이론을 비판할 때 자연스레 떠오르는 풍경은 이런 것이다. 십수년 전 한국에서 후기식민자본주의의 살풍경을 담은 영화(「괴물」)가 천이백만 관객을 동원한 다음 해 노골적 신자유주의 정권이 들어섰을 때 영화평론가들은 그 심상치 않은 어긋남을 불길하게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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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나폴레옹이 놓친 것은 술탄이 영국과 러시아의 군사력과 해군력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술탄은 두 나라가 프랑스보다 자신들의 위협과 야심을 무력으로 뒷받침할 능력이 더 있다고 판단했다.
알렉산드르 황제는, 새로운 러시아-오스만 동맹에 대한 술탄 셀림 3세의 헌신이 3차 대불동맹전쟁의 승패에 달려 있음을 이해했다.

곧 대규모 전쟁으로 비화할 러시아-오스만 관계에서 커져가는 긴장은 유럽에서 나폴레옹 전쟁 동안 발생한 지정학적 재배열이라는 더 넓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3차 대불동맹전쟁 이후 프랑스는 중유럽을 지배하게 되었고 발칸 지역으로 접근할 수 있는 이전 베네치아 영토들을 획득했다. 프랑스 정부의 대리인들이 러시아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아 발칸의 다양한 지역들로 파견된 한편, 몰다비아와 왈라키아의 프랑스 영사관은 반러시아 공작의 중심지가 되었다.

메테르니히가 이 주제를 나폴레옹한테 꺼냈을 때 그는 배제되기는커녕 실은 오스트리아가 발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폴레옹은 발칸반도에서 러시아의 팽창을 시기하는 오스트리아를 이용해 그 지역에서 더 이상의 팽창을 막을 수 있길 바랐다.

1813~1815년 동안 유럽이 나폴레옹을 상대하느라 여념이 없는 사이에 오스만 중앙정부는 잠시 결정적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들은 계속되는 유럽의 갈등에 중립을 선언했고, 이탈리아로 원정을 감행하도록 러시아 전함이 해협을 통과할 수 있게 허락해달라는 영국의 제의를 거절했다. 술탄 마무드는 잠깐 열린 기회의 창을 이용해 반란을 일으킨 지방들에 자신의 권위를 재확인하고 방어적 개발주의라는, 궁극적으로는 근대화로 나아가는 프로그램을 위한 토대를 다졌다. 러시아와의 전쟁 종식으로 그는 세르비아로 군사적 자원을 전환할 수 있었다.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의 패배와 나폴레옹 전쟁의 종결은 세르비아인들에게 큰 힘을 실어줬으니 이제 러시아가 오스만튀르크에 맞서 세르비아를 자유롭게 지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술탄 마무드는 러시아의 간섭 가능성을 두려워하며 신중히 처신했다. 그는 세르비아에 제한적인 자치를 허용하고 밀로시 오브레노비치를 세르비아 군주로 인정했다. 정치적인 행보였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저도 모르게 오스만 제국의 정치적 해체를 향한 첫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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