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마리아 신부의 생각」은 몬드라곤 협동조합 창시자인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Jose Maria Arizmendiarrieta(1915 ~ 1976)의 사상이 담긴 말모음집이다.

인간으로부터 시작해서 협동조합, 나아가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이 책 속에서 우리는 「대학」의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의 사상을 발견하게 된다.

개인에게 소중한 가치는 ‘자유‘이며, 이를 지키기 위해 개인 단계에서는 ‘책임‘이 필요하고, 공동체 단계에서는 ‘연대‘가 필요하다는 호세 마리아 신부의 말과 생각은 인간 가치, 노동의 가치가 홀대당하는 우리 시대에 의미하는 바가 크다 여겨진다.

인간은 모든 것의 바탕이다. 따라서 인간의 모습이 끝회의 모습이다. 사람들이 공정하고 곧고 관대하고 품위 있고 정의롭다면, 사회도 공정하고 곧고 품위 있고 정의로울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회, 사회적인 것이야말로 인간 내면에 진정한 미덕이 존재하는지를  측정하는 최상의 척도라는 것이다.(p34)


남성과 여성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인간 생활과 활동의 모든 영역에서 남성과 여성은 서로 필요하다. 따라서 여성의 협력 없이 생활의 진보를 이루려는 것은 마치 한 발로달리려고 하는 것과 같다.(p51)

연대한다는 것은 타인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뿐 아니라 그들이 되어야 하는 모습까지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그들의 결함과 한계에 관대하면서도 동시에도움으로 그들 스스로 자신의 약점을 극복할 수 있도록 그들의 변화를 환영하는 데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 (p167)

인간은 자신의 한계와 의존성을 깨달아야 한다. 가치의 위계를 인식하고, 본능에 비해 이성이 우월하다는 것도 인식해야 한다. 자연 전체와 그 자연의 일부인 인간 모두를 연결시켜주는 자연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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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부론 -상 - 경제학고전선 애덤 스미스, 개역판 국부론 시리즈
아담 스미스 지음, 김수행 옮김 / 비봉출판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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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利己的 selfish)인 존재라 하더라도, 그 천성(天性 nature)에는 분명히 몇 가지 행동원리(principles)가 존재한다... 연민(憐憫 pity)이나 동정심(同精心 compassion) 또한 이와 같은 종류의 것인데, 이것은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보거나 또는 그것을 아주 생생하게 느낄 때 느끼게 되는 종류의 감정이다.(p3)... 우리는 그가 기뻐하는 것에 대한 동감을 통하여 기뻐하게 되는데, 우리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이 동감(同感)인 것이다... 그러나 비록 이것은 전자로부터 얻는 기쁨과 후자로부터 얻는 고통에 일정한 작용을 할 수는 있지만, 이것은 결코 기쁨과 고통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이러나 이러한 방식으로 모든 기쁨과 고통이 생겨나는 원인을 설명할 수는 없다.(p15) <도덕감정론> 中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 ~ 1790)은 <도덕감정론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에서 인간행동의 원리를 탐구하고 있다. <도덕감정론>에 의하면 인간의 본성 중에서 우리가 '동감'이라고 부르는 감정은 우리 사회를 이끄는 동력이 된다. 이  '동감'이 어떻게 사회를 움직이는가를 설명하는 지점부터 <국부론 An Inquir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은 시작된다.


 1. 거래의 의미 : 보이지 않는 손


  저자가 <도덕감정론>에서 말했듯이, '동감'만으로는 인간의 행동원리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추가적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자애심'이 등장한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행동하고자,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동감'에 호소하게 된다. 그리고, 이로부터 분업이 시작되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에 의하면 '거래'란 자신을 위해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다. 개인의 '자애심'과 타인에 대한 '동감'의 조정. 그것이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하는 일이다. 


 인간은 항상 다른 동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데, 단지 그들의 선심에만 기대해서는 그 도움을 얻을 수가 없다. 그가 만약 그들 자신의 자애심(自愛心, self-love)이 자기에게 유리하게 발휘되도록 할 수 있다면, 그래서 자기가 그들에게 해주기를 요구하는 일을 그들이 자기에게 해주는 것이 그들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설득할 수 있다면, 그들의 도움을 얻으려는 그의 목적은 더 효과적으로 달성될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나에게 주시오. 그러면 당신이 원하는 것을 가지게 될 것이오." 이것이 거래에 담겨진 의미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상호간 도움의 대부분이 유무상통, 물물교환, 구매를 통해 획득되는 것처럼 당초 분업을 야기시키는 것도 이러한 교환의 성향이다.(p19) <국부론 상> 中

 

 외국 노동보다 본국 노동의 유지를 선호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안전(security)을 위해서고, 노동생산물이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 그 노동을 이끈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이익(gain)을 위해서다. 이 경우 그는, 다른 많은 경우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손(an invisible hand)에 이끌려서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p552) <국부론 상> 中 


2.  분업 : 분업을 일으키는 원인과 제한 


 인간의 교환성향으로부터 발생되는 분업은 여러 장점을 가지고 있다. 분업을 통해 대량 생산이 가능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전문적인 직업을 갖게 되었다. 우리가 자아실현(自我實現)이라고 부르는 동기 또한 전문화된 사회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생산 및 교환의 확대는 사회 유지를 위해 매우 중요한 문제다. 저자는 <국부론>을 통해 분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시장의 확대와 재고의 축적이 필요하다고 전제한다. 그리고, 분업을 통해 대량생산된 물건은 교환되어야 한다. 이때 교환의 기준은 무엇인가? 이제 교환가치에 대해 살펴볼 차례다. 


 노동생산력을 최대로 개선, 증진시키는 것은, 그리고 노동을 할 때 발휘되는 대부분의 기능, 숙련, 판단은 분업(分業, division of labour)의 결과인 것 같다.(p7)... 분업은 그와 같은 폭넓은 효용을 예상하지 못한 인간성의 어떤 성향으로부터, 비록 매우 천천히 그리고 점진적이긴 하지만, 필연적으로 생긴 결과이다. 그 성향이란 곧 하나의 물건을 다른 물건과 바꿔 갖고, 거래하고, 교환하는 성향(propensity to exchange)이다.(p17) <국부론 상> 中


 교환능력이 분업을 야기하기 때문에, 분업의 정도는 언제나 이 교환능력의 크기, 또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시장의 크기에 의해 제한을 받는다. 시장이 매우 작을 때는 어느 누구에게도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도록 장려할 수 없다.(p22) <국부론 상> 中


 사물의 본성상, 재고의 축적은 분업에 앞서 이루어져야 하며, 따라서 재고가 미리 더 많이 축적되면 될수록 그것에 비례해서 분업은 더욱 세분된다.(p334)... 노동생산력의 커다란 개선을 이루기 위해서는 미리 재고가 축적되어 있을 필요가 있기 때문에, 재고의 축적은 자연히 이러한 개선을 가져온다.(p335) <국부론 상> 中



3. 교환가치


 어떤 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것을 자신이 사용하거나 소비하려 하지 않고 다른 상품과 교환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그 상품이 그로 하여금 구매하거나 지배할 수 있게 해 주는 노동의 양(量)과 같다. 따라서 노동은 모든 상품의 교환가치를 측정하는 진실한 척도(尺度)이다.(p37)... 비록 노동이 모든 상품의 교환가치의 진실한 척도이지만, 상품의 가치는 보통 노동에 의해 측량(測量)되지 않는다.(p39)... 상품의 교환가치를, 그 상품이 구매할 수 있는 노동량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상품이 구매할 수 있는 다른 상품의 양에 의해서 평가하는 것이 좀더 자연스럽다.(p40) <국부론 상> 中


 애덤 스미스에게 상품의 가치는 생산에 투여된 노동(labour)의 양과 같다. (노동가치설 labor theory of value , 勞動價値理論) 그러나, 노동은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객관적 측정의 수단으로 화폐가 도입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이 상품의 진실된 가격이라는 것이 애덤 스미스의 입장이다. 


 분업이 처음 발생하기 시작했을 때, 이러한 교환능력의 작용은 흔히 여러 가지 장애와 곤란에 부딪힌다.(p28)... 이러한 곤란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어느 시기에나, 분업이 처음으로 확립된 뒤, 분별있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노동의 특수한 생산물 이외에, 타인들의 상품과 교환할 때 타인들이 받기를 거절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는 어떤 종류의 상품 일정량을 항상 가지고 있으려고 노력했음에 틀림없다.(p29) <국부론 상> 中


노동은 상품의 진실 가격이고, 화폐는 상품의 명목가격일 뿐이다.(p42) <국부론 상> 中



4. 가치를 이루는 세 요소 : 이윤, 지대, 임금


 애덤 스미스는 상품의 가치를 이루는 요소를 자본 사용 비용인 이윤(利潤), 토지 사용 비용인 지대(地代), 노동의 비용인 임금(賃金)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 중 지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미미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이윤과 임금이다. 교환으로부터 얻어진 가치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애덤 스미스는 이윤율과 이자율은 사회가 진보될 수록 점차 하락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자연가격'이 있다.


 이윤은 전적으로 투자한 자본의 가치에 의해 지배되며, 그 크기는 투자한 자본의 크기에 비례한다.(p62)... 자본의 소유자는 거의 아무런 노동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이윤이 자기 자본에 정비례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므로 상품가격에서 자본이윤은 노동임금과는 전혀 상이하고 전혀 다른 원리에 의해 규제되는 구성부분을 이룬다.(p63)<국부론 상> 中


 가장 진보된 사회에는 그 가격이 두 부분, 즉 노동의 임금과 자본의 이윤으로만 분해되는 소수의 상품들이 존재하며, 노동임금으로만 구성되는 상품들도 그 수는 더욱 적지만 존재한다... 지대는 가격을 구성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p64) <국부론 상> 中


 노동임금의 상승은 필연적으로, 상품가격 중 임금으로 분해되는 부분을 증가시킴으로써, 많은 상품들의 가격을 인상시키며, 그리고 인상된 만큼 그 상품들의 국내외 소비를 감소시키는 경향이 있다.(p113)... 그러나 노동임금을 상승시킨 바로 그 원인, 즉 자본의 증가는 노동생산력을 증가시켜서 더 적은 노동량으로 더 많은 생산물을 만들게 하는 경향이 있다.(p114) <국부론 상> 中


 5. 자연가격과 실제가격


 애덤 스미스에 의하면 모든 상품들의 가격은 자연가격으로 회귀(回歸)된다. 비록, 일시적인 장애등으로 현실 가격이 자연가격과 차이를 나타낼 수 있지만, 결국은 현실가격은 자연가격으로 돌아가게 된다. 단, 여기에는 '규제나  장벽이 없다면'이라는 전제가 붙는다. 그렇다면, 애덤 스미스가 '시장의 자유'를 통해 주장하고자 한 바는 무엇일까. 


 자연가격은 모든 상품들의 가격이 끊임없이 그것을 향해 끌려가는 중심가격(central price)이다. 각종 우연한 사건에 의해 상품의 가격이 이 중심가격보다 상당히 높게 유지될 수도 있고, 또 때로는 그것보다 상당히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가격이 이 안정(安定) 및 지속의 중심에 정착하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무엇이든, 가격은 끊임없이 자연가격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p76)  <국부론 상> 中


 한 업종으로부터 다른 업종으로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을 방해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도 방해한다. 왜냐하면, 어떤 사업에 사용될 수 있는 자본량은 그 사업에 고용될 수 있는 노동량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이다.(p176) <국부론 상> 中


 애덤 스미스는 국가가 최대의 부(富)를 축적한 후에는 낮은 이자율, 낮은 이윤율의 상태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했다. 풍요로운 자산(資産)만큼 그 가치는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애덤 스미스에 의하면 사람들은 자산에 의존하지 않고, 소득(所得)을 얻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사회는 활기차게 돌아갈 수 있게 된다. 


 최대의 부를 이미 획득한 나라, 각 사업분야마다 사용될 수 있는 최대의 자본량이 이미 사용된 나라에서는 통상의 순이익률이 매우 낮을 뿐만 아니라, 거기로부터 지불될 수 있는 통상의 시장이자율도 너무 낮으므로, 매우 부유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자기의 화폐이자로 살아가기가 불가능하다.(p125) <국부론 상> 中


 그렇지만, 현실은 <국부론>의 예측과는 다르게 진행되었다. 국가가 부유해질 수록 자본이 가져가는 이윤의 몫은 점차 커지게 되었고, 부동산 임대 수익이 근로 소득보다 더 선호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국부론>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국부론>의 한계일까?


 많은 경우 우리는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만을 알고 있다. 시장 자율에 맡겨둔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는 논리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이 말은 규제 철폐를 주장할 때 활용되는 용어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국부론>에 대해 오해하고 있지만, <국부론>에서 말하는 규제는 조금 다른 성격을 가진다. 


 도시 안의 각 집단 상호간의 거래에서 그들은 누구도 그 규정에 의해 손실을 보지 않았다. 그러나 농촌과의 거래에서 그들은 모두 큰 이익을 보았고, 도시를 유지하고 부유하게 한 거래 모두는 농촌과의 거래였다.(p162)... 임금, 이윤이 일반적 수준을 초과하도록 하는 규정들은 모두 도시로 하여금 자기의 더 적은 노동의 생산물로 시골의 더 많은 노동의 생산물을 구매할 수 있게 해준다.(p163) <국부론 상> 中



 '도시 -  농촌' 간 거래를 통해 불평등한 거래가 지속된 결과, 농촌은 점차 가난해졌다는 농촌 문제는 21세기 한국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그리고, 애덤 스미스는 농촌문제의 원인을 불공정한 거래로 보았다. <국부론>에서 말하는 규제는 약자를 보호하는 보호정책이 아닌, 불공정한 거래 관행이었다. 이런  애덤 스미스의 관점과 시장의 자유만을 강조사는 신자유주의(新自由主義)의 관점은 분명 차이가 있다 여겨진다. 


 많은 경우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의 주장이 상호 배타적이라고 오해되고 있지만, 그것은 <국부론>의 단면을 크게 부각시켰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인간의 '동감'을 강조한 <도적감정론>과 연결시켜 본다면 우리는 <국부론>속에서 애덤 스미스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사회 이슈가 되고 있는 '최저임금제'와 관련한 <국부론>의 일부 내용을 소개하며, 이번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 


 한 주일 중 나흘동안 지나치게 일에 몰두한 것이 나머지 사흘을 빈둥거리는 것의 진정한 원인인데도 이를 심하게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p107)... 고용주가 항상 이성과 인도주의 정신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는 흔히 다수의 노동자들에게 지나치게 열심히 일을 하도록 고무하기보다는 그것을 누그려뜨려 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p107)  <국부론 상> 中

 

 사람이 항상 자신의 노동에 의해 생활을 유지해야 한다면, 그의 임금은 적어도 그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충분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임금은 이것보다 좀 더 많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자기 가족을 부양할 수 없을 것이며, 노동자 종족은 제1세대를 넘어 존속할 수 없을 것이다.(p89) <국부론 상> 中



[사진] 최저임금 딜레마(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25/2017072501740.html)


PS. 우리가 언제까지 '최저임금'만을 이야기 해야하는지 의문이 든다. 최저임금이 임금지급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면, 이제는 '최저이윤'이 기업이윤의 기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최저이윤'에 대해 말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관련기사 : 30대 기업 사내유보율, 2년 새 두 배 증가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73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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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8-07-10 17: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연의 어린이 진짜 많이 컸네요.
노랑 원피스에 가방까지 노랑으로 들어주는 패션 룩의 종결자네요~^^

겨울호랑이 2018-07-10 21:04   좋아요 2 | URL
정말 연의가 여자아이어서인지 요즘 패션에 관심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패션센스는 엄마유전인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2018-07-10 1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10 2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10 2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10 2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10 2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10 2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10 1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10 2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7-10 1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혹시 자아실현이란 동기는 전문성에 의해 가능하다는 건 스미스 주장인가요?^^
마르크스 의견과는 정반대라서요...ㅎㅎ

북다이제스터 2018-07-10 20:17   좋아요 2 | URL
정말 개인적 생각인데요, 우리는 엄밀하게 봐야 할 때도 있지만 때에 따라서 대체적으로 봐야 할 때도 있는 거 같습니다. ^^
제 주장이 옳다면 스미스는 후자라고 생각됩니다. 스미스가 죽어야 우리가 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7-10 21:08   좋아요 3 | URL
^^:) ‘자아실현‘이라는 용어를 아담 스미스가 직접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분업의 장점에 대해 <국부론>에서 자세히 언급을 하고 있네요. 아담 스미스 당대에는 공장제 수공업이 대부분이었기에, 오늘날의 ‘자아실현‘같은 개념을 직업면에서 생각하지는 못했을 듯 합니다... 그렇군요. 아담 스미스가 만든 정치경제학체계로부터 경제학이 자유롭지 못한 면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또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아담 스미스가 오늘날의 관점에서 비판받을 측면도 있다 여겨집니다. 그리고, 북다이제스터님께서는 그 부분을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7-10 21:32   좋아요 2 | URL
분업의 장점은 명확하죠.
근데 누가 돈벌고 그에따라 누가 손해 본다면 분업의 장점은 곧 폐해가 될 것 같습니다. ㅠ
그러한 점에서 말씀하신 ‘최저이윤’은 극하게 공감합니다. ㅎㅎ

겨울호랑이 2018-07-10 21:50   좋아요 2 | URL
경제학에서 생산-교환-분배의 단계 중에서 가장 논점이 갈리는 부분이 ‘분배‘라는 점은 다수가 동의할 것입니다. ‘분배 정의의 실현‘이 우리의 과제인 것은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는 말이 가장 잘 설명하는 것 같네요. 그만큼 어렵기도 하겠지만,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들어선만큼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과제라 여겨집니다. 북다이제스터님,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7-10 22:02   좋아요 2 | URL
네 저도 근래 월드컵 때 우리나라와 독일 축구 경기 보고 처음 알았는데요,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라는 독일 속담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 근데... 맞는 말인지는...
갑자기 얘기가 축구로 흐르는데요... 죄송합니다... 우리가 이번 마지막에 독일에 이긴 것이 좋은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ㅠㅠ
세상은 넘 어려운 것 같습니다. ㅠㅠ 혹시 모든 과정을 봐야 하는 건 아닌지 생각도 들고요. 과정이 결과를 만드는 거 같기도 해서요. .. 넘 어렵습니다. ㅠㅠ

겨울호랑이 2018-07-10 23:32   좋아요 2 | URL
축구에서 독일을 이긴 것은 작은 위안이 되니 좋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안 그랬으면 더 안좋았겠지요. 고3 마칠 때 대학교에 바로 진학한다면 수험생활 전체가 추억이 되겠지만, 떨어지면 붙을 때까지 고통의 시간으로 기억되는 것을 보면 결과가 다는 아니어도 중요한 부분인 것은 분명한 것 같네요...

베텔게우스 2018-07-10 19: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애덤 스미스가 규제라는 말을 ‘불공정한 거래 관행‘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했다는 사실은 정말 몰랐습니다. 적어도 지금까지 이야기되어 오던 ˝정부의 규제를 철폐해야 자원배분의 효율성이 달성될 수 있다˝는 주장의 뿌리가 국부론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네요. 겨울호랑이님, 리뷰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7-10 20:57   좋아요 3 | URL
<국부론>에서는 사회가 발달하게 될 수록 자본이 풍부해져 자본의 이윤이 낮아진다고 해석하고 있네요. 그래서, 결국에는 상품가치의 대부분이 노동에 귀속된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아담 스미스는 자본주의자라기 보다 인본주의자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베텔게우스님 감사합니다.^^:)

cyrus 2018-07-10 1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애덤 스미스의 고전경제학도 한계가 있지만, 자유주의에 대한 오해 때문인지 그의 이론의 참된 가치가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7-10 21:01   좋아요 1 | URL
cyrus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아담 스미스가 오늘날의 경제학이라는 ‘판‘을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정받을 만하다 생각됩니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오늘날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면도 있습니다만, 그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경제학자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생각합니다.^^:)

kokoro 2018-07-12 1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동 가치설‘은 데이비드 흄이 이븐 칼둔을 인용하고, 그것을 스미스가 인용한 것 같습니다. 이미 14세기에 이븐 칼둔은 수요와 공급의 원리와 분업 문제, 노동 가치설을 정립해 놨다고 하던데, 아담 스미스보다 350여년 전에 그런 이론이 나왔다는 게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7-12 13:20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이븐 칼둔이라면 「역사서설」저자로만 알고 있는데 관련 내용을 자세히 읽지 못했습니다. 이슬람 문명이 유럽에 미친 영향은 생각보다 큰 것 같습니다. kokoro님 덕분에 독서 목록에 저작 하나 추가하네요. 감사합니다^^:)
 
꿀벌의 우화 - 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
버나드 맨더빌 지음, 최윤재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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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나드 맨더빌(Bernald Mandeville, 1670 ~ 1733)은 <꿀벌의 우화 The Fable of the bees>를 통해 개인의 악덕이 사회의 이익과 연결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맨더빌은 먼저, 우화 속에서 비록 개인적으로는 사악하지만 경제적으로는 풍요롭고, 법과 치안이 잘 유지되는 꿀벌들의 사회를 제시한다. 이러한 사악함 때문에 결국 꿀벌들은 신(神)의 노여움을 사서 미덕(美德)이라 불리는 '정직'을 사회 질서로 받아들이게 되고 이후 꿀벌 사회의 풍요는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 전체 줄거리다.


 이리하여 모든 구석이 다 악으로 가득한데

그래도 전체를 보면 낙원이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들을 존경하여

평화로울 땐 아첨하고 전쟁을 하면 두려워하니

돈과 삶이 풍족한 그곳은

모든 벌집의 으뜸이었다.

이것이 이 나라의 축복이니

저들의 죄악이 저들을 위대하게 만든 것이었다.(155 - 162) (p104) <꿀벌의 우화> 中


 악의 뿌리가 되는 탐욕은

비뚤어지고 해로운 몹쓸 악덕으로서

방탕이라고 하는 고상한 죄악에

종노릇을 하게 되었으니

사치는 가난뱅이 백만에 일자리를 주었고 

얄미운 오만은 또 다른 백만을 먹여 살렸다. (177 - 182) (p106) <꿀벌의 우화> 中


 이렇게 악덕은 교모하게 재주 부려

시간과 일이 더해지면서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 놓았다.

이것이 참된 기쁨이요 즐거움이요 넉넉함이어서

그 높이로 치자면 아주 못하는 놈조차도

예전에 잘살던 놈보다 더 잘살게 되었으니 

여기에 더 보탤 것은 없을 것이다. (197 - 203) (p106) <꿀벌의 우화> 中

 

  <꿀벌의 우화>의 부제는 '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이다. 저자는 어떤 이유로 이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명제를 제시한 것일까. 저자 맨더빌은 <꿀벌의 우화>를 통해 개인의 방탕, 사치, 명예욕, 뽐내는 마음 pride, 이기심, 탐욕, 쾌락 등의 악덕 vice이 미덕  virtue보다 사회를 끌어갈 더 큰 동력을 제공하는 요인으로 해석한다. 이는 사람들은 본래 욕망에 이끌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고서는 힘을 다하지 않는다. 잠자는 욕망을 깨워주는 것이 없다면 사람이 지닌 탁월함과 능력은 언제까지나 드러나지 않을 것이고, 열정이 빠진 몸뚱이는 바람 한 줄기 없는 가운데 육중하게 서 있는 풍차나 매한가지다.(p158)... 그러나 검소하고 정직한 사회를 갖고 싶다면 가장 좋은 정책은 사람을 단순한 자연 상태 그대로 두고 사람 수가 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이나 없어도 되는 물건은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고, 욕망을 불러일으키거나 지식을 높일만한 것은 다 치워서 손대지 못하게 해야 한다.(p160)  <꿀벌의 우화> 中 

  

 위와 같은 맨더빌의 주장은 "개인의 악덕은, 솜씨 좋은 정치인이 잘 다룬다면(by the dextrous management of a skillful politician), 사회의 이득이 될수 있다" - 해제 中 - 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맨더빌은 모든 개인이 악해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악덕을 행하는 주체는 지도층으로 한정된다. 지도층들은 '사치'를 하더라도 언제든 자신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의 사치(소비)를 통해 돈이 돌기 때문에, 지도층들의 악덕은 사회의 미덕으로 연결된다. 그렇다면, 가난한 이들에게 적용되는 덕목은 무엇일까?


 사치가 가장 지나치게 나타나는 것은 건물, 가구, 마차 그리고 옷이다. 그러나 깨끗한 옥양목을 입었다고 해서 무명을 입었을 때보다 사람이 약해지지는 않는다.(p150)... 전쟁의 고생과 피로를 몸으로 견뎌내는 일은 앞장설 사람들 몫인데, 이들은 나라에서 가장 천하고 가난한, 죽어라고 일만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전쟁에 휘말린 사람들로서 사치가 말썽 부릴까봐 걱정해야 한다면, 그 걱정은 기껏해야 장교를 넘어서지 않는다.(p151)... 제 할 일을 하고 명예심을 충분히 갖춘 사람은 위험에 익숙해지기만 하면 언제나 능력있는 장교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사치는, 남의 돈을 쓰는 게 아니라 제 돈을 쓰는 한, 절대로 나라에 해가 되지 않는다.(p155) <꿀벌의 우화> 中


 반면, 가난한 이들- 노동을 제공하는 이들-에게 사치는 허용되지 않는 덕목이다. 이들은 평소 궂은 일을 하는 집단이며, 이들에게 높은 임금을 제공할 경우 일할 의욕이 감퇴되어 사회가 필요하는 노동이 제공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노동계급에게는 검약이라는 사회적 미덕을 강조하고, 극한 상황에서 생활하도록 유지하는 것이 사회 전체의 이익으로 연결된다.


 꾸준히 손을 써서 게으름을 줄여주면 강제하지 않고서도 가난한 이들을 일하게 만들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을 무식하게 키우면 고생을 고생으로 느끼지 않도록 단련시킬 수 있다. 그들을 무식하게 키운다는 것은 앞서 이야기 했듯이 그들의 지식이 그들 하는 일 언저리를 넘어서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며, 적어도 그 한계를 넘도록 일부러 애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수단으로 채비하여 노동을 싸게 만들면, 틀림없이 다른 나라보다 싸게 팔 수 있으며, 우리 인구를 늘릴 수 있다. 이것이 무역에서 상대에 맞서는 멋지고 당당한 길이며, 다른 나라 사징에서 우리가 실력으로 이기는 길이다.(p207) <꿀벌의 우화> 中


 결국, 우리는 <꿀벌의 우화>에서 그려지고 있는 '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의 모습은 결국 '지배층의 악덕과 기득권의 이익'임을 확인하게 된다. 지배층의 사악한 행위가 사회에 유익한 반면, 기존의 미덕인 금욕 self- denial, 겸손, 연민, 자선, 자기희생, 공공심 등은 이제 가난한 이들이 지켜야 하는 덕목이라는 맨더빌의 도발적인 물음에 대해 누군가는 대답을 해야했다. 그리고, 두 학자가 다른 분야에서 각각 응답하게 된다.


 경제학적으로는 아담 스미스(Adam Smith, 1723 ~ 1790)가 <도덕감정론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1759)와 <국부론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1776)을 통해서, 철학적으로는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가 <순수이성비판 純粹理性批判, Kritik der reinen Vernunft>(1781)에서 맨더빌의 주장을 반박한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을 통해 개인의 이기심이 아닌 타인에 대한 연민이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과 이러한 사회가 어떻게 스스로를 통제하며 부강해질 수 있는가를 <국부론>을 통해 말하고 있다. 그리고,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을 통해 감성 뿐 아니라 오성(지성)의 역할을 제시하며, 맨더빌의 본능(욕망)에 대한 반론을 펼치고 있다. 이후에도 여러 학자들이 <꿀벌의 우화>의 내용을 계승하거나 또는 비판하는 등 이 책은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


 <꿀벌의 우화>가 당대에 출판되었을 때, '사악한 책'이라 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아마도 이는 누구나 알지만 결코 입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가 아닐까. 그리고, 그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꿀벌의 우화> 가 과거가 아닌 지금도 유효하다는 점이 현대 우리 사회의 비극이라 여겨진다. 


 과거 감춰졌던 수많은 사회문제가 드러나고 있는 요즘이다.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과거의 문제에 대한 해결을 위해서 당대의 석학(碩學)들의 물음과 대답을 살펴보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이라 여겨진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꿀벌의 우화>를 다시 읽어봐야 하는 이유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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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7 16: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27 17: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8-06-27 2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도덕감정론을 밑줄을 치며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저의 서재와 배경이 같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오래 사용해 왔는데 싫증이 나지 않고 여전히 좋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6-27 20:30   좋아요 1 | URL
^^:) 아 그러셨군요. 여름에 잘 어울리는 배경이라 이번에 바꿨습니다. 배경색이 옅지만 질리지 않아 좋네요. 페크님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6-27 2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별 다섯 개는 절대, 쌍수를 들고 반대합니다. ^^

겨울호랑이 2018-06-27 22:27   좋아요 1 | URL
북다이제스터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도는 충분히 이해되고 저 또한 공감합니다. 책 내용에는 저도 반대합니다만, 후대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높게 평가가 되네요.. 「다크 나이트」에서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같은 느낌이랄까요 ㅋ 제 별점은 그런 의미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6-27 22:32   좋아요 1 | URL
히스 레저 연기에 별 다섯 개는 격하게 찬성합니다. ㅎ 연기가 정말 대단했구요. 하지만 이 책은 정말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칸트나 스미스가 반론을 내도록 자극하기도 했지만 거의 대부분이 이 책의 논리가 당연하다고 받아들였단 점에서 전 이 책에 반대합니다. ^^

겨울호랑이 2018-06-27 22:38   좋아요 0 | URL
네. 주류경제학계통인 신고전학파, 케인즈학파 모두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을 보면, 매우 나쁜 영향을 미친 사상가임이 분명합니다^^:)

서니데이 2018-06-30 2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일부터 7월이 시작됩니다. 7월에는 기분 좋은 일들 가득한 시간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겨울호랑이님,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8-06-30 21:42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장마와 태풍이 함께 오는 비로 7월이 시작될 것 같네요. 서니데이님도 건강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반기 여시기 바랍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도덕감정론 - 개역판
아담 스미스 지음, 박세일 옮김 / 비봉출판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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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 ~ 1790)의 대표작은 <국부론 The Wealth of Nations>이다. 그렇지만 그는 죽어서 자신의 묘비병으로 "도덕감정론의 저자, 여기 잠들다"라고 써 놓을 정도로 <도덕감정론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에 대한 애착이 있었다. 애덤 스미스가 애착을 가졌던 <도덕감정론>에 대해 이번 리뷰에서는 살펴보도록 하자.


1. 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행동원리 : 동감(同感)


  인간의 기본적인 행동원리 중 하나는 '동감(同感)'이다. 동감은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해 자신의 일처럼 유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며, 우리는 다른 사람의 감정 중 특히 고통에 대해 더 생생하게 느낀다. 같은 감정이더라도 우리가 타인의 기쁨보다는 고통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利己的 : selfish)인 존재라 하더라도, 그 천성(天性 : nature)에는 분명 몇 가지 행동원리(principles)가 존재한다. 이 행동원리로 인하여 인간은 타인의 행운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단기 그 행운을 바라보는 즐거움 밖에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행운을 얻은 타인의 행복이 자기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연민(憐憫 : pity)이나 동정심(同情心 : compassion) 또한 이와 같은 종류의 것인데, 이것은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보거나 또는 그것을 아주 생생하게 느낄 때 느끼게 되는 종류의 감정이다.(p3)'


 '상상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타인이 처한 상황에 놓고 스스로 타인과 같은 고통을 겪는다고 상상한다.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인식하는 방식은 마치 우리가 타인의 몸속에 들어가서 어느 정도 그와 동일한 사람이 되고, 그럼으로써 타인의 감각에 대한 어떤 관념을 형성하며, 비록 그 정도는 약하다고 하더라도, 심지어는 타인의 것과 유사한 감각을 느끼게 되는 것과 같다.(p4)...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대하여 동류의식(同類意識 : fellow-feeling)을 느끼게 되는 원천은 바로 이것이다.(p5)'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슬픔보다는 기쁨에 더 큰 공감을 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어려움을 숨기려 한다. 그래서, 알게된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은 그에게 큰 굴욕감을 안겨 주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공감을 통해서 타인의 고통에 위로를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 태도는 매우 비인간적인 것으로 비난을 받게 되는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후천적으로 다른 이들에 대해 공감을 하게 되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기본 행동 원리가 '공감'이라면, 자기 행동의 원칙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우리의 비애(悲哀)보다는 환희(歡喜)에 대해 더 많이 동감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재부(財富)는 과시하고 빈궁(貧窮)은 숨기려는 경향이 있다. 많은 사람들의 눈에 우리가 겪는 빈곤과 고통이 폭로되는 것만큼 치욕적인 것은 없으며, 그리고 우리의 처지가 모든 인간들의 눈에 다 드러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누구도 우리가 겪고 있는 것의 반만큼도 생각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는 것보다 더 굴욕적인 일은 없다.(p91)'


 '불행한 사람들에 대하여 줄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모욕(侮辱)은 그들의 재난(災難)을 경시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친구의 기쁨에 무관심한 듯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단지 무례(無禮)한 행동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친구가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을 이야기할 때 진지한 태도로 경청하지 않는 것은 정말로 엄청나게 비인간적인 행동이다.(p16)'


2. 자기 행동의 준칙 : 공정한 방관자


[사진] 칸트(출처 : 위키백과)


 "너의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법칙 수립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그렇게 행위하라." - 칸트 -


 애덤 스미스는 자기 행동의 판단 기준은 공정한 방관자가 자신의 행동을 바라보는 것처럼 노력할 것을 <도덕감정론>에서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준칙을 지키는 것을 저자는 <도덕감정론>에서 '시인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공정한 방관자가 바라보는 것처럼 노력하라'는  애덤 스미스의 준칙은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가 <실천이성비판 實踐理性批判,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에서 말한 정언명령(定言命令, Categorical Imperative)을 연상시킨다. 이처럼 개인이 공정한 방관자의 입장에서 사회 정의에 부합될 수 있도록 행위했을 때, 사회전체적으로 애덤 스미스가 추구한 미덕(美德)이 달성될 수 있다. 그렇다면, 애덤 스미스가 추구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여기서 잠시 애덤 스미스의 미학(美學, Aesthetics)을 살펴보자.


 '우리가 우리의 감정과 동기에 대해 어떤 판단을 형성할 수 있건 간에, 그 판단은 항상, 타인의 판단은 실제로 어떠한가, 타인의 판단은 특정 상황에서는 어떠할까, 타인의 판단은 상상하건데 어떠해야할 것인가, 하는 어떤 눈에 보이지 않는 준거(準據)에 관계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행위를 우리가 상상하는 공정한 방관자가 바라보는 것처럼 바라보도록 노력한다.(p210)'


 '우리가 우리를 만족시켜 주는 모든 것들, 즉 건물의 형태나 기계의 설계나 한 접시의 고기 요리의 맛을 시인한다(approve)고 표현하는 것은 언어상으로도 적절한 표현이다.(p628)'


 '미덕은 어느 한 가지 감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감정의 적절한 정도(程度)에 있다. 나는 이 적절한 정도를 정하는 천연적 및 원시적인 척도(尺度)는 동감(同感) 또는 공정한 방관자의 상응하는 감정을 그 척도로 삼아야한다고 생각한다.(p586)'


3. 아담 스미스의 미학(美學)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애서 절대적인 아름다움과 상대적인 아름다움을 통해 미(美)에 대해 말하고 있다. 비평가들이 아름다움에 대해 말할 때 '절대미'에서 어느정도 떨어져 있는가를 비평기준을 삼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의 미덕에 대해 말할 때도 절대미덕에 얼마만큼 근접해있는가를 통해 행위에 대한 평가를 한다. 이를 경제학적으로 표현한다면 '최선(最善)을 대신한차선(次善)의 선택'이 될 것이고, 수학으로 표현한다면 극한(極限, limit)에서 '절대미에 무한 수렴'의 개념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된다. 결국 애덤 스미스는 '적절한 감정의 조화를 통해 절대적인 미에 가까워지려는 적절한 노력'이 아름다움을 향한 우리 사회가 나가야할 바로 지적한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가 어떤 행위에 대하여 그것이 어느 정도의 비난이나 갈채를 받아야만 할지를 결정할 때, 우리는 항상 서로 다른 두 가지 기준을 사용한다.  첫 번째 기운은 완전한 적정성(適正性)과 완미(完美)라는 개념이다... 두 번째 기준은, 이 진선진미(盡善盡美)한 상태로부터 접근해 있는 정도 또는 떨어져 있는 정도를 기준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p39)... 우리는 바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우리의 상상력(想像力)에 호소하는 모든 예술작품들을 판단한다...작품을 비교하는 기준은 특정 분야의 예술이 통상 도달해 있는 탁월성(卓越性)이 된다. 그리고 그가 이 새로운 척도(尺度)에 의해 판단할 때, 그 작품은 흔히, 그것과 경쟁할 수 있는 다른 작품들 대부분보다 훨씬 더 완미에 접근해 있다는 이유로, 최고의 갈채를 받을 만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p40)'


4. 애덤 스미스의 철학 체계


 이상의 논의를 정리했을 때, 우리는 일차적으로 타인의 감정에 동감을 하고, 이로 인해 그 사람으로부터 감사하는 마음을 받게 되고, 이러한 동감과 공감이 우리 개인의 일반준칙에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들이 모여서 사회전체가 보다 아름다워진다는 것을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말하고 있다. 


 '이상에서 논의한 철학체계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성품이나 행동을 시인(是認 : approve)할 때 느끼는 감정들은 네 가지 근원(根源)에서 나온는데, 이들은 몇 가지 점에서 서로 다르다. 첫째, 우리는 행위자의 동감(同感)에 대해 동감(同感 : sympathize)한다. 둘째, 우리는 그의 행위로부터 혜택을 받은 사람의 감사하는 마음에 공감(共感 : enter into)한다. 셋째, 우리는 그의 행위가 이상의 두 가지 동감이 그것의 행동의 근거가 되고 있는 일반준칙(一般準則)과 일치하는 것을 것을 관찰한다. 마지막으로, 그러한 행위는 개인이나 사회의 행복을 촉진시키는 경향을 가진 행위체계(行爲體系)의 일부를 구성하는 것이라고 우리가 간주할 때, 그 행위들은 이러한 효용(效用)으로부터 그 아름다움을 획득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것은 마치 우리가 설계가 잘된 기계에 일종의 아름다움을 귀속시키는 것과 같은 것이다.(p629)'


 <도덕감정론>에서는 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행동원리인 '동감'과 자기 행동의 원칙인 '공정한 방관자의 입장'을 통해 사회의 미덕(美德)에 맞는 행동을 추구하고 이를 통해 전체 사회가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을 논증하면서 애덤 스미스의 철학 체계를 완성시키고 있다. 이러한 틀 안에서 <국부론>의 이론이 이해되지 않으면, 그의 사상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흔히들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 Invisible hand'를 통해 시장경제 체제를 이야기 하지만, 그 전제는 '공감하는 인간'이 시장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감할 수 없는 인간'인 법(法)에 의해 인격(人格)이 부여된 '회사(company)' 특히, 대규모 자본이 시장의 주체가 되었을 때에도 완전경쟁의 시장의 논리가 적용되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으로 돌아가야 할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바로 <도덕감정론>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진 물음이라 생각된다. 이제는 이러한 전제 위에서 <국부론>을 읽을 차례다. 


 PS. <도덕감정론>은 1759년에 쓰여졌고, <실천이성비판>은 1788년에 쓰여졌으니, 칸트의 정언명령이 애덤 스미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PS2. <도덕감정론>을 보다 맛있게 즐기는 법


  아담 스미스의 말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 ~ 322)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Ethica Nicomachea>과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BC 106 ~ BC 43)의 <의무론 義務論>을 <도덕감정론>과 함께 읽는다면 보다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 <시학 詩學>도 곁들인다면 더 좋지 않을까도 생각되기에, 다음 기회에 페이퍼로 정리해 보려 한다...


 '비극이나 로망스의 가장 흥미 있는 주제는 유덕하고 대담한 왕(王)이나 왕자(王子)의 불행이다. 만약 그들이 지혜롭고 굴(屈)하지 않는 강인한 노력을 통해 그러한 불행에서 벗어나서 그들이 전에 누리던 우세(優勢)와 지위를 회복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들을 매우 열렬히 그리고 심지어 지나칠 정도로 찬탄하는 마음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그들의 불행에 대해 느끼는 비애와 그들의 성공에 대해 느끼는 기쁨은 함께 결합되어, 우리가 그들의 지위와 성품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가지는 편애(偏愛)에 기인한 찬탄을 고조(高潮)시키는 것으로 보인다.(p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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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7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7 16: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18-01-17 17: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서재 바탕이 흰색에 검은 글자가 되어서 읽기 편해졌습니다. 하하하하.

겨울호랑이 2018-01-17 17:03   좋아요 0 | URL
^^: 제 서재 배경이 랜덤 변환이라 이웃분들께서 가끔 읽기 어려운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서재 바탕을 고민해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AgalmA 2018-01-20 19:46   좋아요 1 | URL
잠자냥님 의견에 동감요-,-; 사실 그동안 좀....)))

북다이제스터 2018-01-17 17: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혹시 <도덕감정론>에 다음과 같은 내용은 없었나요?^^

사람들이 상호 애정으로 단결하여 서로에게 서로가 필요로 하는 지지를 ‘감사와 우정, 존중의 마음으로’ 준다면, 사회는 번영할 것이다. 하지만 스미스는 그러한 동기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사회는 합의된 노고의 금전적 교환에 의해 지지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겨울호랑이 2018-01-17 17:22   좋아요 2 | URL
^^: 아마 해당되는 문구는 <국부론>에서 인용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도덕감정론> 에서 ‘미덕(美德)의 완미(完美)함은, 우리의 모든 행동을 가능한 최대의 이익(利益)을촉진하도록 지도하고, 우리의 모든 저급한 감정을 인류공동의 행복을 추구하는 데 종속시키고, 우리 자신을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로 간주하면서 우리 자신의 번영이 전체의 번영과 일치하거나 혹은 전체의 번영에 기여하는 범위 내에서만 우리 자신의 번영을 추구하는 것에 존재한다.(p505)‘는 내용이 나오는데, 미덕과 관련한 아담 스미스의 논조와 연계시켜보면 아담 스미스가 ‘감사와 우정, 존중‘을 경시했다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혹시 제가 못 찾았을 수도 있는데, 나중에 찾게 되면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1-17 17:41   좋아요 3 | URL
스미스가 미덕을 경시했다기 보다는 미덕이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사람들은 자신 편향성을 없앨 수 없기 때문에 ‘금전적 교환’에 의존한다라는 논리로 보이더라구요.

“무언가를 하려는 욕망이 우리 판단을 편향시킨다. 또한 행동이 이루어지고 난 후에도 우리 자신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으려는 욕망이 또다시 편향을 야기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 행동에 대해 편향되지 않는 관점을 가질 수 없다.”

이런 취지는 <국부론>에 나오나 보네요. ^^

겨울호랑이 2018-01-17 18:02   좋아요 3 | URL
^^: 아마도 「도덕감정론」이 인간 감정을 다루기에 인간의 이기심이 드러나는 경제 문제를 설명하기에는 일정부분 한계가 있어 「국부론」을 집필한 것 같습니다. 북다이제스터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을 유념해서 「국부론」을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1-22 16:12   좋아요 0 | URL
북다이제스터님 관련 내용을 찾아 정리해서 먼 댓글로 달았습니다. 하루 잘 보내시고, 시간되실 때 보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많은 눈이 온다니 퇴근길 안전하게 들어가세요!

2018-01-18 0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8 08: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그만 메모수첩 2018-01-18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국부론에 대해서 편견만 잔뜩 갖고 있다가 이 책이 사실은 국가 공동체 구성원들의 모든 행복을 위한 책이었고 심지어 식민지 정책도 반대했다는 내용이 있어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에겐 국부론 보다 도덕감정론이 ‘아담 스미스’란 이름으로 먼저 알려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1-18 09:47   좋아요 1 | URL
조그만 메모수첩님 말씀처럼 고전을 요약본으로만 접하게되면, 전체 논조 속에 숨어있는 저자의 사상을 온전히 발견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저자의 대표 저작만 알려져 있는 경우도 많아 일반에 왜곡되어 알려진 사상가들이 많다는 것을 요즘 느끼고 있습니다. 아담 스미스 역시 그런 사상가 중 한 명인 것 같아요. 관심을 가지고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AgalmA 2018-01-20 1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감하는 인간‘ 상정을 이해는 하는데요. 진화론을 조금만 생각해봐도 허점이 생깁니다. 우리는 공동체 형성을 통하기도 했지만 차이와 경쟁을 통해서도 진화를 해 왔어요. 그러니 ‘공감하는 인간‘이라는 절대 요소만으로 사회를 구성할 수 없습니다. 위에 계신 북다이제스터님이 바로 그 부정성의 해결을 위해 ‘금전적 교환의 보상‘을 스미스가 전제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걸로 해석할 수 있겠네요. 결국 정치와 경제는 같이 갈 수밖에 없는^^;;

겨울호랑이 2018-01-20 20:07   좋아요 1 | URL
^^: 그렇게도 볼 수 있겠네요. 다른 한 편으로 우리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어떻게 보면 대립될 수도 있는 두 체제를 각자 정치와 경제면에서 운용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도덕감정론>은 정치적 배경을, <국부론>은 경제적 배경을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조만간(?) <국부론> 리뷰에서 북다이제스터님과 AgalmA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에 대한 내용을 함께 고려해보겠습니다.
 
정치경제학 원리 1 - 사회철학에 대한 응용을 포함하여 나남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 번역총서 서양편 276
존 스튜어트 밀 지음, 박동천 옮김 / 나남출판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정치 경제학 원리-사회철학에 대한 응용을 포함하여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 with Some of their applications to social philosophy>는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 ~ 1873)의 정치 경제학 사상을 정리한 책이다. 제1편에서는 생산, 제2편에서는 분배, 제3편에서는 교환, 제4편에서는 사회 및 정부가 생산/분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분석을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제1편은 생산과 더불어 저자가 <정치 경제학 원리>를 쓴 목적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이번 리뷰에서는  <정치 경제학 원리>를 관통하는 주제인 '부(wealth)의 생산과 분배'와 '생산'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 나는 왜 이 책을 썼는가 ? 부(富)의 생산과 분배


가. 부(富)란 무엇인가


 저자에 따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부=돈'의 공식은 잘못된 것이다. 돈의 가치는 오로지 편리함에서 비롯된 것기 때문이다. 밀에 따르면 '부'는 도구로 해석할 수 있다. 이를 자세히 풀어보면 '부'는 노동이나 대가 없이 원하는 만큼 얻을 수 있는 것을 제외한 모든 유용하거나 유익한 물건을 뜻하기 때문에, 밀에 따르면 돈은 부가 될 수 없다.


 '통상적 담론에서 부는 항상 돈으로 표현된다. 한 사람을 두고 얼마나 부자인지를 묻는다면 몇 천 파운드를 가지고 있다는 식의 대답이 돌아온다. (p30)... 누구에게든 돈의 가치란 자기에게 지금 무엇이 얼마나 들어오든지 나중에 가장 적당한 시기가 되었을 때 자기에게 유용한 형태로 전환될 수 있도록 편리한 형태로 받는다는 점에 있다. 돈을 가진 나라와 돈이 없는 나라 사이에 차이가 아무리 크더라도 그 차이는 오직 편리함의 차이일 뿐이다... 그러므로 돈을 곧 부로 혼동하는 것은 그대의 집이나 토지로 가는 지름길을 집이나 토지 자체로 혼동하는 셈과 같다.(p34)'


 '부라는 것이 "도구"를 의미한다고 정의하자는 제안이 있다. 이때 도구란 단지 연장이나 기계만이 아니라 개인이나 공동체가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소유하는 모든 수단의 총합을 뜻하는 의미라고 한다.(p37)... 밀은 밀가루를 얻는 수단이 되므로 하나의 도구이고, 밀가루는 빵을 얻는 수단이므로 하나의 도구이다. 빵은 배고픔을 채우는 수단이자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므로 하나의 도구이다. 생명에 도달해서야 무언가 다른 것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바람직한 어떤 것을 만날 수 있게 된다... 부란 교환가치를 갖는 모든 유용하거나 유익한 물건, 달리 표현하면 노동이나 대가 없이 원하는 만큼 얻을 수 있는 것을 제외한 모든 유용하거나 유익한 물건을 뜻한다고 정의할 수 있겠다.(p38)'


 나. 부의 생산과 분배


 밀은 <정치 경제학 원리>를 통해서 외부의 자원과 인간의 도구를 결합하여 '부'를 만드는 행위를 '생산'으로 정의하고, 인간의 제도를 통해 생산된 '부'를 나누는 행위를 '분배'로 정의한다. 그리고, <정치 경제학 원리>의 목적은 생산과 분배의 과정에서 적용되는 사회과학적 법칙을 도출하는 것에 있다.


 '부를 생산하는 일, 다시 말해서 지구의 물질적 자원에서 인간의 생존과 열락을 위한 도구를 추출하는 일이 마음먹기에 달린 일이 아니라는 점은 명백하다. 여기에는 필연적인 전제 조건들이 있다... 외부의 자연에 관한 사실에다 인간의 본성에 관한 진리들을 결합함으로써 정치경제학은 2차적 파생적 법칙을 추적하려고 시도한다. 그 법칙을 찾을 수 있다면 현재와 과거에 부와 빈곤이 왜 그렇게 다양한지를 설명할 수도 있게 될 것이고, 미래를 위해서 어느 정도의 부의 증가가 어떤 근거로 예비되는지도 해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생산의 법칙과는 달리 분배의 법칙은 부분적으로 인간 제도의 소산이다. 어떤 주어진 사회에서라도 부가 분배되는 방식은 성문법 또는 그 사회 안에서 자리를 잡은 관행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생산과 분배의 법칙, 그리고 그러한 법칙으로부터 연역되는 실제적 결과에 관한 법칙이 지금부터 전개되는 논의의 주제이다.(p55)'


 2. 생산(生産, production)


가. 생산의 요소 : 노동과 자연물


 저자는 생산의 요소를 노동과 자연물로 구분하고 있으며, 생산되는 것은 '부'다. 여기서 '부'는 물질적인 의미이며, 생산노동은 물질적 대상 안에 구현된 효용을 생산하는 종류의 노력을 의미한다. 


 '생산의 요소에는 두 가지가 있다. 노동과 적절한 자연물이다. 노동은 육체적일 수도 정신적일 수도 있다. 이 구분을 보다 포괄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표현으로 바꾸면 근육의 노동과 신경의 노동이라 일컬을 수 있다... 생산의 다른 요소, 즉 적절한 자연물에 관해서는, 자연물 중에는 인간의 필요에 알맞도록 스스로 존재하거나 저절로 자라는 것도 있다는 점에 유의할 만한다.(p59)'


 '통상적으로 이해할 때 생산된다는 것은 효용이 아니라 부라고 나는 생각한다. 생산노동이란 부를 생산하는 노동을 뜻한다.(p93)... 나는 이 책에서 부에 관해 이야기할 때 이른바 물질적 부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생산노동은 물질적 대상 안에 구현되는 효용을 생산하는 종류의 노력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것이다.(p98)... 생산과 비생산의 구분은 노동뿐만 아니라 소비에도 적용될 수 있다. 소비는 비생산적으로도 이뤄지고 생산적으로도 이뤄진다. 생산에 직접적으로나 간적접으로나 기여하는 바가 없는 사람은 비생산적 소비자다. 오로지 생산적 노동자만이 생산적 소비자가 될 수 있다.(p102)'


나. 생산의 요소 : 자본


 추가적으로 자본은 노동이 산물이 남겨져 축적된 결과로 형성된다. 자본은 산업의 한계를 정하는 기능을 가지고, 저축의 결과로 생겨난 것이며, 자본은 소비된다는 특징을 가진다. 상품에 대한 수요가 노동에 대한 수요가 아니라는 네 번째 명제는 생산이 고정자본과 유동자본(노동을 포함한)의 결합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많은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기계류(고정자본)를 더 많이 투입하여 생산해야 할 경우 노동(유동 자본)에 대한 수요는 이보다 작게 된다.  


 '생산에는 일차적이고 보편적인 요소인 노동과 자연물 이외에 세 번째 요소가 있는데, 이 세 번째 요소는 바로 이전에 이뤄진 노동의 산물이 남겨져 축적된 결과다. 노동의 산물을 이렇게 축적한 결과를 자본이라고 부른다.(p107)'


 '자본에 관한 첫 번째 명제는 산업의 한계가 자본에 의해 구획된다는 점이다. 인간의 노력을 어떤 특별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행위는 그 방향의 산업으로 "자본을 적용한다"는 문구로서 서술된다.(p120)... 자본에 관한 근본적 정리 두 번째는 자본이 생기는 원천에 관한 것이다. 자본은 저축의 결과이다.(p128)... 자본에 관한 근본적 정리의 세 번째는 방금 논의한 정리와 밀접하게 연관되는 것으로서, 저축된 것이고 저축의 결과지만 그래도 자본은 소비된다는 것이다.(p130)... 자본에 관한 네 번째 명제는 생산노동을 부양하고 고용하는 것은 노동을 작업에 투여하기 위해 사용되는 자본이지, 작업이 완결되었을 때 노동으로써 생산된 물건에 대한 구매자들의 수요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상품에 대한 수요는 노동에 대한 수요가 아니다.(p143)'


 <정치 경제학 원리> 제1편에서는 이와 같이 생산 요소를 노동, 자본, 자연으로 정의하고 각 생산요소의 특징과 이들의 결합, 적용되는 법칙들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정치 경제학 원리>를 통해서 여기에서 언급된 여러 논의가 현재 주류 경제학의 기초가 됨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책을 읽어감에 따라 생산성의 향상을 위한 여러 조건과 노동과 자본의 법칙에 대한 논의를 통해 현대 경제학 원론에서는 기본 공리(公理)로 받아들여졌던 내용이 증명되기에 이 책은 고전 경제학 또는 일반적인 주류 경제학의 고전(Classics)이라 말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책을 읽는 과정에서 우리는 시대를 넘어선 밀의 통찰력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정자본의 증가를 통해 노동자의 이익이 침해될 수 있음을 지적한 다음의 단락에서는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시대 속에서 인공지능(AI)에 의해 대체되는 인간 노동의 문제가 이미 19세기에 제기되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생산과정에 종사하면서 기능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즉 한번 사용됨으로써 수행하는 자본을 유동자본이라고 한다...내구적 형태로 존재하며, 내구성에 상응한 기간동안 수익이 분산되어 돌아오는 자본을 고정자본이라고 한다.(p162)... 유동자본을 희생한 대가로 발생하는 고정자본의 증가는 모두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노동자들의 이익에 불리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 이로부터 나오게 된다.(p165)'


[그림] 4차 산업혁명과 노동 시장 문제(출처 : 중앙일보)


 그리고, <정치 경제학 원리>에서 언급된 '자본의 성장'을 통해 출산인구가 감소되고 노령화 인구가 증가되어 전체적으로는 노동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저출산 고령화' 사회속에서 주류 경제학이 과거와 같이 답을 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물음도 던지게 된다.


'시대가 바뀌는 와중에서 자본이 계속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보존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속적 재생산에 의해서다. 자본의 모든 부분은 일반적으로 생산된 후 머지 않아서 사용되고 파괴된다. 다만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그 사이에 더 많은 산물을 창조하는 생산에 고용되는 것이다. 자본의 성장은 인구의 성장과 비슷하다. 태어난 개인은 모두 죽는다. 그러나 해마다 태어나는 숫자가 죽는 숫자를 초과한다. 그러므로 비록 현재 인구를 구성하는 사람 중 누구도 비교적 가까운 과거 이전에는 살지 않았지만 인구는 항상 증가한다.(p136)'



[그림] 우리나라의 저출산 고령화 현황과 문제점(출처 :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drryuhk&logNo=220847070654&categoryNo=0&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kr%2F)


 <정치 경제학 원리>를 통해 현대 우리에게도 유용한 밀의 통찰력과 함께 주류 경제학의 한계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다. 자본주의 경제의 여러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는 요즘의 현실 속에서 고전학파 경제학의 기본 전제를 잘 정리한 이 책은 많은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모든 고전(古典)이 당대 현실의 산물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고전의 내용이 우리의 현실에 맞지 않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그보다는 <정치 경제학 원리>에 깔린 저자의 사상적 배경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며 생산적이지 않은 모든 업적을 달성할 수 있게 해주는 공동체의 능력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 그토록 많은 여분이 있어서 실제로 사용된다는 것은 축하할 일일 따름이다. 애석하게 여겨져야 할 일, 그리고 고칠 수 있는 방법도 없는 일은 이 여분의 분배와 관련하여 엄청난 불평등이 발생하고, 그 여분 중에서도 대부분이 별로 가치가 없는 쪽에 투여되며, 받는 대가에 상응하여 아무것도 되돌려주지 않는 부류의 많은 사람들에게 그 중에서 많은 부분이 돌아간다는 점이다.(p105)'


 <정치 경제학 원리>의 많은 내용이 현대 자본주의의 근간을 이루기 때문에 이러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책이 현대와는 다른 생산구조를 가진 근대 산업혁명기(期)에 당대의 현실을 진단하고 부의 불평등한 분배 등에 대한 해결책을 내리고자 했다는 저자의 의도를 생각한다면 이러한 비판은 다소 과한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고전의 내용도 중요하겠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당대의 현실 속에서 저자의 의중을 염두에 두고, 이의 현실적인 적용을 고려하는 것은 아닐런지. 이러한 생각을 <정치 경제학 원리>를 통해 해보면서 이번 리뷰를 마친다.


ps. 존 스튜어트 밀이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 ~ 1970)의 대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이 책을 통해 얻게 된 또 하나의 수확이다. 러셀의 대부인 밀이 <정치 경제학 원리>를 통해 '부가 수단'이라는 점을 명시했다면 대자인 러셀은 <행복의 정복>을 통해 행복의 의미에 대해 탐색하고 있다. 이들의 책을 통해 물질만능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부(富가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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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6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06 1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만화애니비평 2018-01-06 14: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시리즈 1,2권을 읽었는데, 밀의 엄청난 지식에 넘어갈 뻔 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1-06 14:33   좋아요 0 | URL
만화애니비평님 말씀처럼 문학작품처럼 유려하게 써내려간 밀의 글을 읽다보면 고개를 끄덕이며 읽게 되더군요^^:

AgalmA 2018-01-06 14: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단이 목적으로 전도되는 것도 인간적인 특징이겠죠^^; 돈 버는 게 유일한 재미같은 M누구, 순O 패밀리 등등 유명한 분들 많잖아요ㅎ;
당연히 부(富)는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죠. 단 행복의 질과 양태는 사람마다 매우 다르다는 것.

겨울호랑이 2018-01-06 17:50   좋아요 1 | URL
^^: 그렇겠지요. 적당한 부는 누구에게나 필요하겠지요.. 다만, 그 ‘적당한‘ 정도를 정량화할 수 없어 생기는 오해와 갈등 또한 인간적인 것이겠다는 생각도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