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방공호 안에서 죽을 뻔했던 때로부터 5년 전쯤, ‘혁신 관료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일본을 크게 바꾸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지향한 바는 제2차 세계대전 수행을 위해 국가의 총력을 전쟁에 전용하는 ‘국가총동원 체제 확립이었습니다. 그들이 수립한 경제제도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거의 그대로의 형태로 살아남아 전후 일본의 기본을 형성하게 됩니다. - P21

그들의 이념은 ‘산업의 국가 통제입니다. 기업은 공익에 봉사해야지 사익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불로소득으로 생활하는 특권계급의 존재를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사고방식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회주의 사상에 가깝습니다. 사실 기시 노부스케가 목표로 한 것은 ‘일본형 사회주의경제‘ 건설이었습니다. 때문에 한큐전철의 창업자이자 대표적인 전경영자였던 고바야시 이치조는 상공대신에 취임했을 당시에 차관이었던 기시를 ‘아카츠(적색분자·빨갱이)‘라고 부르며 비난했습니다. - P22

전시에 만들어진 이러한 경제체제는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의일본 경제 형태와는 이질적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저는 그 체제를 ‘1940년 체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결국 총력전을 위한 국가 총동원 체제로 만들어진 ‘1940년 체제‘는 종전에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않은 채 살아남아 전후 일본 경제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 P27

1940년 체제 사관‘이라는 ‘새의 눈‘으로 조망하면, 1980년대의 거품 경기는 일본 경제가 ‘1940년 체제‘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음에도 그 체제가 생존을 도모한 데서 생긴 사건입니다. 더욱이 1940년 체제 사관에서 보면, 아베 신조 내각이 실시하고있는 경제정책은 ‘전후 레짐(체제)으로부터의 탈피‘가 아닙니다. 완전히 반대로 ‘전시 · 전후체제로의 복귀‘입니다. 그 기본적인 방향은 시장의 기능을 부정하고 경제활동에 대한 국가 관여를 강화하자는것입니다. 1940년 체제의 사고방식 그 자체입니다.  - P29

군수 관련 기업을 관리하면서 항공기를 비롯한 공업 생산 물자의 조달을 통제하던 군수관리들은 미 점령군 진주 직전에관공서 간판을 상공성‘으로 바꿔 달았죠. 점령되면 당연히 전범 색출이 시작되기에 군수라는 명패를 달고서는 도저히 조직으로서 살아남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군수성은 1943년에 상공성과 기획원이 통합되면서 생긴 관청이기 때문에 원래의 이름으로 되돌린 것입니다. - P39

자금을 배분하는 데 있어서는 전시에 형성된 간접금융 중심 시스템과 정부의 금융기관 대출 통제 시스템이 전면적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이러한 구조를 바탕으로 정부는 자원배분을 완전하게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 P59

일본에게 이 전쟁은 하늘에서 내려준 선물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미국이 한국을 지원하기 위해 일본을 ‘한반도 전쟁의 전략물자보급기지로 삼은 덕분에 일본의 시장 수요가 크게 증가하는 ‘한국전쟁 특수‘가 발생한 것입니다. 1949년 말 2억 달러에 불과했던 외화는 1950년 말 9억4000만 달러로 4.5배 급증했습니다. ‘도지 라인‘에 의해 경기 침체에 빠졌던 일본 경제가 이로 인해 단번에 불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 P75

즉, 엔화는 날로 강세를 보였습니다. 변동환율제로 이행하자, 일본 민관이 두려워한 것은 엔고가 진행되면서 수출이 줄고 일본 경제가 타격을 입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우려했던 일은 실제로 터지지 않았고, 일본 경제는 엔고가 계속 유지되었음에도 고성장을 이어갔죠. 오히려 1980년대 들어와 무역흑자가 증가하고 주가도 상승하는 등 일본 경제는 엔고에 의해 오히려 더 강해졌습니다. - P167

한편, 일본의 인구가 고령화되는 추세가 두드러졌습니다. 이는 장차 사회보장비를 급증시킬 게 분명했죠. 하지만 사회보장비에 대한 장기 전망은 전혀 없었습니다.일본의 예산은 ‘연도주의‘로, 보통 1년 치의 예측밖에 세우지 않았습니다. 장기적인 전망이 없는 구조였던 셈이죠. ‘이러면 앞으로 문제가 불거진다‘라는 게 나가오카 차장의 생각이었고 저도 똑같이느끼고 있었습니다. - P172

‘1940년 체제‘는 1950년대, 1960년대의 자원·자금 부족 국면에서 전략적인 산업 부문에 자원이 우선적으로 배분될 수 있게 해전후 부흥과 공업화를 촉진했습니다. 그리고 1970년대에 석유파동이라는 외부 위기에 일본 경제 전체가 최적으로 대응하도록 크나큰 기능을 발휘했습니다. - P195

그럼 왜 일본에서 토지 문제가 심각해진 것일까요?
도시의 토지 이용도가 낮기 때문입니다. 즉, 도시지역의 토지를집약적으로 이용하지 않는 거죠. 높은 빌딩을 지어 토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지 않았고, 도심의 일등지도 방치된 채였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 P247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금융 영역에서의 1940년 체제‘는 일본의 금융시장을 국제금융시장에서 분리해 쇄국하는 것을 밑바탕으로 성립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야만 금리 통제가 가능했던 거죠. 그러나 경제의 국제화와 자유화가 일본에도 영향을 미쳐, 이른바 ‘전시戰時 (1940년)‘ 금융체제가 사명을 마칠 때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적 원인이 있었기 때문에 전대미문의 거품 경제가 발생했던 거죠. - P253

‘이차원 금융완화‘라는 명분 아래, 일본은행이 비정상적으로 대량의 국채를 구입하고 있습니다. 그 국채는 장차 가격이 하락해 일본은행에 손실을 안겨줄 가능성이 매우 높죠. 손실액은 국민의 부담이 됩니다. 그런데도 ‘문제‘로 논의되고 있지 않습니다. 국민이 큰 부담을 지는 국가정책은 명료한 형태로 공개되어야 하며 옳고 그름이 논의되어야 합니다. 그런 정책을 표면화하지 않고실시해 흐지부지하게 처리해버리고 있습니다. 이때의 ‘거품 경제 처리 방식‘이 현재의 금융완화정책으로 이어진 악습의 원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P277

좀더 본질적인 원인은 독일의 산업구조가 이후 크게 달라진 세계경제 환경에 부합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일본이 안고 있던 것과 같은 문제였습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강했던 경제체제가 1980~1990년대에 생긴 세계경제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일본도, 독일도 새로운 세계경제의 환경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것입니다. 당시에는 그 사실을 확실하게 알 수 없었습니다. 확실해진 것은 더 나중의 일이지요. - P294

중국이 공업화하여 일본과 같은 생산활동을 하면 일본의 임금 수준은 장기적으로 중국 수준으로 감소하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1990년대 이후 현실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의 본질입니다. 임금 하락을 벗어나고 싶다면 중국에서 할 수 없는 경제활동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즉, 생산성이 높은 신산업이 탄생해야만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지금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이 일본 경제의 문제는금융완화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장기 정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기본 원인은 여기에도 있습니다. - P317

앞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 "말이 안 될 정도로 불가능한 일"이란 어떤 사정일까요? 사실 대답은 매우 간단합니다. 저는 ‘풍요로워지려면 성실하게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대원칙이 무너져버린 상태입니다. 즉, 성실하게 일하지 않아도 풍요롭게 잘살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고있는 것입니다.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 상황은 적어도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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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의 길 -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진실, 자유주의시리즈 60 나남신서 1157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지음, 김이석 옮김 / 나남출판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구해야 하는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지난 70년 동안 특정한 유형의 사상들이 급성장하여 궁극적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한 상황들은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왜 최종적으로 특정한 사상 가운데 가장 사악한 요소가 가장 지배적이 될 수 있었는가? _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노예의 길> , p42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Friedrich Augustvon Hayek, 1899 ~ 1992)의 <노예의 길 The Road to Serfdom>은 저자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答)이다. 간략하게 저자의 결론을 요약하자면, 공산주의나 파시즘(fascism)으로 대표되는 국가사회주의 등 집단주의 사상의 만연되고 이로 인해 과도한 계획으로 인해 자유가 억압되고 통제되면서 '경제적 자유 -> 정치 자유 -> 과학 발전 -> 진보'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가 끊어졌기에 이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유럽 현대사의 전 기간에 걸쳐 사회발전의 일반적 방향은 각 개인들이 일상적 활동을 할 때 관습이나 정해진 방식을 따르게 한 속박으로부터 그들을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개인들의 노력이 자생적이고 통제되지 않더라도 '경제활동의 복잡한 질서'가 형성될 수 있다는 의식적 자각은 이런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이후가 되어서야 나타날 수 있었다. 정치적 자유가 주어지자 의도치 않았고 예상치 못했던 부산물인 경제활동의 자유로운 성장을 가져왔고, 그 결과 경제적 자유를 지지하는 일관된 주장이 보다 정교해졌다. 개인의 에너지가 족쇄로부터 해방되자 나타난 가장 큰 결과는 아마도 과학의 경이로운 성장일 것이다. _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노예의 길> , p53


 <노예의 길>에서 인상 깊은 부문은 하이에크가 바라보는 정치 스펙트럼(spectrum)이다. '극좌-좌-중도-우-극우'라는 일반적인 구분법에 따르면 공산주의는 '극좌(極左)'에, 국가사회주의(파시즘)은 '극우(極右)'에 놓인다. 하이에크는 이러한 일반적인 구분 대신 과감하게 '집단주의'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극좌-극우'의 하나로 묶는 통합을 실현한다. 물론 이들 사상간의 조금의 차이는 인정하지만. 좌파가 강조하는 '계급'과 우파가 강조하는 '민족'의 개념은 무시되고 개인을 억압하는 정체(政體)로 뭉뚱그려버린다. 하이에크의 이론 안에서 히틀러와 스탈린은 1939년 독소 불가침 조약과 1941년 파기 이후 오랫만에 강제로(?) 손을 잡는 셈이다. 


 민족사회주의(국가사회주의)가 급성장한 것은 사회주의 견해의 만연 때문이었지,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러시아가 공유하던 프러시아주의 때문은 아니었다. 민족사회주의의 발흥은 일반대중으로부터 나온 것이었지 프러시아 전통 속에 젖은 계급으로부터 나온 것은 아니었다.  _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노예의 길> , p45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공산주의와 파시즘이 본질적으로 똑같다는 것이 아니다. 파시즘은 공산주의가 환상이었다는 것이 밝혀진 후 도달한 단계이다. 그리고 공산주의가 환상이라는 것은 히틀러 이전의 독일에서만큼이나 스탈린 치하의 러시아에서도 밝혀졌다. _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노예의 길> , p69


 집단주의 철학의 내재된 모순 가운데 하나는 집단주의가 개인주의가 발전시킨 인본주의적(humanistic) 도덕들에 근거를 두는 반면, 비교적 소규모 집단에서만 실천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론에 머무는 한 사회주의는 국제적이지만, 실제로 적용되는 순간 러시아에서이건 독일에서이건 사회주의는 과격한 민족주의가 된다. 집단주의는 자유주의의 광범한 인본주의를 수용할 여지가 없으며, 다만 전제추의의 비좁은 배타주의를 담고 있을 뿐이다. _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노예의 길> , p211


 하이에크가 이처럼 정치사상간의 차이를 무시하는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본질적으로 논의하려는 바가 정치사상이 아니라 경제학이고, 비판지점이 '국가'와 '독점'이기에 가능했다. 사회주의 정체에서 경제는 중앙권력에 의해 계획되고 계획에 맞춰 통제된다. 독점은 개인을 억압하는 비효율성으로, 국가는 거대한 독점 기구로서 하이에크에 의해 비판된다. 


 독점은 담합에 의한 합의를 통해 형성되고 공공정책들에 의해 촉진되었다. 이들 합의가 무효화될 때, 이런 공공정책들이 역전될 때, 경쟁적 조건은 회복될 수 있다(p89)... 누구라도 독점자들이 정규적으로, 그리고 자주 자신들의 통제를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해 국가권력의 도움을 얻고자 얼마나 열망하는지 관찰하였다면, 이런 독점화로의 발전이 결코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는 데 대해 별로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_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노예의 길> , p90


 만약 우리가 산업체제의 성장을 위해 의식적인 중앙집권적 계획에 의존했어야 했더라면, 경쟁을 통해 실제로 도달했던 수주의 다양성과 복잡성, 그리고 유연성은 결코 실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의사결정의 분권화와 자동적 조정을 통해 경제문제를 해결하려는 방법과 비교해 볼 때, 중앙지시(central direction)라는 더 명백한 방법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서툴고, 원시적이며 그 범위가 제한되어 있다. _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노예의 길> , p95


 그렇다면, 서구에 감돌고 있는 사회주의라는 불온한 사상을 대신할 대안은 무엇인가? <노예의 길>에서 하이에크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분리한다. 최종적인 목적은 자유주의, 과정적 수단은 민주주의라는 것이 하이에크의 '자유민주주의' 본질이다. 민주주의 자체로는 완성에 이를 수 없다. 국가권력을 통제하고 개인의 자유를 완전히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최종 완성형은 '자유민주주의' 이른바 '신(新)자유주의'가 되어야 할 것이다. 


 민주정부는 광범하게 수용된 신조 덕분에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다수의 동의가 형성될 수 있었던 분야들에 정부의 기능을 한정시킨 경우에 한해 성공적으로 작동하였다. 자유주의 신조의 커다란 장점은 바로 자유주의가 동의가 필요한 주제의 범위를 자유인들의 사회에서 동의가 존재할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한정시킨 것이다. _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노예의 길> , p120


 자유는 그 자체로 가장 높은 정치적 이상이다. 훌륭한 행정을 위해 자유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와 사적 삶에서 최고로 가치 있게 여기는 대상들을 추구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 자유가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수단이다. 즉, 민주주의는 내적 평화와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실용적 도구(a utilitarian device)이다. _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노예의 길> , p121


 하이에크는 <노예의 길>에서 오직 한 경우에만 통제를 허용한다. 바로 국가권력에 대해서다. 하이에크는 국가는 최대한 개입하지 않고, 정 개입해야 한다면 '돈 되지 않는 사업'에만 투자해야 한다고 본다. 국가의 과도한 개입이 특권층을 낳고, 특권층의 탄생은 독점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러한 구도 속에서 '국가'은 손발을 묶는다면 하이에크가 말한 악(evil)은 소멸될 것인가?


 경쟁이 최대한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을 창출하는 일, 경쟁이 유효하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을 때에만 비로소 경쟁을 대체하는 일, 그리고 아담 스미스의 말을 인용하자면, "거대 사회에 가장 유익하지만 어떤 개인이나 소수의 개인들이 그 비용을 보상할 수 있을 만큼 이윤이 나지 않는 성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 이 일들은 확실히 국가가 해야 할 광범위한 분야들이다. _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노예의 길> , p81


 특정한 물건들을 생산하거나 팔 권리가 당국에 의해 지정된 특정한 사람들에게 유보되었다면, 이것은 특권이다. 그러나 동일한 규칙 아래에서 모두가 획득할 수 있는 사적 재산권 자체를 단지 일부의 사람만이 실제로 획득에 성공한다고 해서 특권이라고 부르는 것은 특권이라는 용어로부터 그 의미를 박탈하는 것이다. _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노예의 길> , p134


 옛 말에 '호랑이 없는 곳에 토끼가 왕노릇한다'고 했다. 국가 권력을 묶은 결과 이제는 기득권 계층이 탄생하여 독점보다 나쁜 과점(寡占) 상태로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본문에서 하이에크는 계획에 비해 자유가 우수한 이유는 불만족스러운 결과가 주어졌을 때 그것이 필연(必然)이 아니라 우연(遇然)인 경우 사람들이 더 납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렇지만, 소득불균형과 교육불평등으로 인해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사회구조가 고착화되고있는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에 대해 <노예의 길>저자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경제학 논리로는 신고전학파에 기반한 신자유주의 정책이 전세계를 뒤덮고 있지만 점점 암울해지고 있는 독점의 폐해가 국가가 아닌 자유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특권을 가진 사람의 수가 증가하고 이들의 안정과 다른 사람들의 불안의 대비가 더욱 확연해지면서, 점차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사회적 가치가 형성될 것이다. 더 이상 사회적 지위와 신분에 위신을 세워주는 것은 강인한 독립심이 아니라 보장이다. 젊은이의 결혼 적합성은 스스로 성공할 수 있는 자신감보다는 연금을 탈 확실한 권리가 될 것이다. 한편 젊은 시절에 봉급을 받는 지위의 도피처에 입장을 거절당한다는 것은 최하층 천민의 소름끼치는 상태가 평생 지속된다는 것을 뜻하게 될 것이다. _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노예의 길> , p197


 세상에는 불평등, 결과에 대한 실망, 불운과 같은 것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통제되는 사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사람들의 반응은 이런 일이 그 눈군가가 의도적으로 선택한 결과로 인한 것이 아니었을 때와는 사뭇 다를 것이다. 불평등은 의도적 설계에 의한 것일 때보다 비인적 힘들에 의해 결정되었을 때 훨씬 더 기꺼이 용납될 것이며, 그 사람의 존엄성에 덜 영향을 미칠 것이다. _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노예의 길> , p167


  페르낭 브로델( Fernand Braudel, 1902 ~1985)은 그의 저작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의 3층 구도안에서 자본주의의 뿌리는 기본적으로 독점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힌다. 자유주의의 경제적 조건이 자본주의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결국 <노예의 길>에서 거부하는 독점은 국가 대신 힘있는 소수가 대신하겠다는 의도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의 현실이 잘 증명해준다.


 이제는 신자유주의의 고전이 된 <노예의 길>이고, 전체 결론에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모든 내용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아래와 같이 자본과 노동의 독점 폐해를 지적하는 저자의 글 속에서 오늘날 정규직 이익만을 대표하는 노동조합의 한계를 볼 수 있다.


 독점은 최근 성장은 대개 조직화된 자본과 노동 사이의 의도적 협력에 따른 결과이며, 이런 의도적 협력을 통해 노동의 특권집단들은 사회의 희생 아래, 특히 가장 빈곤한 계층, 보다 덜 조직화된 산업들과 실업자들의 희생 아래 독점이윤을 공유하고 있다. _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노예의 길> , p280 


 ' ~로부터의 자유(free from)'와 함께 '누구'의 자유인가에 대한 답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하이에크의 신자유주의에 대해 동의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신자유주의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노예의 길>은 현대 경제에 관심있는 이들은 읽을 필요가 있는 책이라 생각하며 글을 갈무리한다...


 정치적 자유의 위대한 사도(使徒)들에게 이 용어는 강제(coercion)로부터의 자유, 다른 사람의 자의적 권력(arbitrary power of other men)로부터의 자유, 자신이 소속된 상사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도록 하는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약속된 새로운 자유는, 필요로부터의 자유, 불가피하게 우리 모두의 선택범위를 제약하는 상황들의 강제(compulsion)로부터의 해방을 말한다. 인간이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기 이전에 '물리적 필요의 압제'(despotism of physical want)가 분쇄되어야 하며, '경제체제의 제약들'(restraints of the economic system)이 느슨해져야 한다. _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노예의 길> , p65

경제적 관심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이란 필요와 선택의 자유,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개인으로부터 제거해버릴 때에만 획득될 수 있다. 따라서 진정한 경제적 자유란 선택의 권리를 가진 상태에서 그 권리에 불가피하게 따르는 위험과 책임을 함께 동반하는, 우리의 경제활동의 자유를 의미할 따름이다. - P160

정신의 성장을 통제하려고 시도함으로써 우리는 단지 그 성장을 제한할 뿐이며, 조만간 생각의 정체와 이성의 쇠퇴를 초래할 것이다. 집단주의 사상의 비극은 이것이 이성을 숭고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출발하였지만, 이성의 성장이 의존하는 과정을 잘못 이해함으로써 이성을 파괴하는 것으로 종결된다는 점이다. 사회현상에 대한 개인주의적 접근만이 우리가 이성의 성장을 이끄는 초(超)개인적 힘을 인식하도록 만드는 반면, 집단주의 교리는 필연적으로 어떤 한 개인의 정신이 숭고하게 지배하여야 한다는 요구로 귀착되게 한다. - P240

물질적 상황이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분야에서 우리 자신의 행위를 결정할 ‘자유‘, 그리고 우리 자신의 삶을 우리 자신의 양심에 따라 꾸려간 결과에 대한 ‘책임‘, 이 두 가지가 그 속에서 도덕적 감성이 자라날 수 있고, 도덕적 가치들이 개인의 자유로운 결정 속에서 날마다 재창출되는 토양이다. 자신의 양심에 대한 책임, 강제에 의해 강요되지 않은 의무에 대한 인식, 가치 있게 여기는 것 중 다른 사람을 위해 어느 것을 희생할지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정에 따른 결과의 감수와 같은 것들이야말로 바로 도덕이란 이름에 어울리는 도덕의 본질 바로 그것이다. -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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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전기차 시대가 온다 - 세계가 주목하는 대한민국 수소전기차 기술 개발 풀 스토리
권순우 지음 / 가나출판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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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전기자동차와 배터리전기자동차는 단순히 기술 논쟁이 아니라 자동차의 심장을 둔 패권 경쟁이다. _ 권순우, <수소전기차 시대가 온다>, p57/314

권순우 기자의 <수소전기차 시대가 온다>는 한국 수소 자동차 역사를 다룬 책으로 특히 한국 수소차 개발이 주로 이뤄진 현대 수소차의 간이 백서와 같은 느낌을 준다. 책의 결론은 당연히 짐작하다시피,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청정 에너지인 수소 에너지를 향한 노력은 지속되어왔고 계속될 것이라는 것으로 귀결된다. 책에 담긴 내용이 불굴의 신념으로 척박한 시장을 개척해나간 기업사(史)만이라면 별도의 리뷰로 정리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 책에서 수소차와 배터리를 사용한 전기차와 비교한 한 장(章)은 여러 면에서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수력이나 풍력, 태양광 발전소처럼 재생에너지를 사용해 만든 전기를 이용한다면 배터리전기자동차는 친환경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에너지를 이용해 만든 것인지 전기에 꼬리표가 붙어 있지 않기에 어떤 방식으로 발전한 전기인지 일일이 알 수는 없다. 결국 한 국가에서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 방식의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에 따라 배터리전기자동차의 친환경성이 달라진다. _ 권순우, <수소전기차 시대가 온다>, p88/314

수소차와 전기차. 어느 차가 과연 미래의 차가 될 것인가? 환경오염과 이로 인한 기후변화가 이슈가 된 현실에서 친환경성은 필수다. 생산된 전기를 배터리에 충전하는 방식의 전기차와 수소를 생산하기 위해 전력을 사용하는 수소차 모두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여야 친환경성이 획득된다는 점에서는 중립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수소차는 백금을, 전기차는 리튬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희토류 자원을 확보해야하는 과제을 안겨준다는 점에서도 공통된 과제를 제시한다.

책 본문은 전기차와 수소차의 장단점을 보여준다. 승용차 등 중형차 이하에서 강점을 갖는 배터리 전기차와 버스, 트럭 등 대형차에서 경쟁력을 갖춘 수소차. 이렇게 경쟁력을 갖춘 부분이 다르다면 향후 전기차와 수소차는 한동안 서로 다른 시장에서 각각 주력 제품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주행 거리가 짧고 출력이 낮은 도심 주행에는 배터리전기자동차, 주행 거리가 길고 높은 출력이 필요한 버스나 트럭 등 대형차에는 수소전기자동차가 유리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p79)... 소형, 중형 승용차는 트럭에 비해 가볍기 때문에 배터리전기자동차가 경쟁력을 갖는 구간이 더 길다. 승용차를 기준으로 배터리 시스템과 수소 연료전지 시스템의 재료 원가는 주행 거리 350~700km 구간에서는 비슷하다. 주행거리가 그보다 짧으면 배터리전기자동차가, 그보다 길면 수소전기자동차의 원가가 더 저렴하다. _ 권순우, <수소전기차 시대가 온다>, p81/314

<수소전기차 시대가 온다>를 통해 현대의 수소차 개발은 현대차 뿐 아니라 현대모비스를 비롯한 납품업체들과의 연계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사용되는 내연기관에서 친환경차로의 전환이 강제된다면, 기존 완성차 입장에서는 협력업체들과의 상생을 위해 수소차 전환이 우선 시 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수소차가 경쟁력이 있는 부문, 상용차 시장은 자가용 시장에 비해 (판매대수 기준) 약 3:7 정도 비율로 적기에 전기차가 강세인 자가용 시장을 완전히 포기할 수도 없을 것이다. 다만, 전기차 원가에서 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40%이고, 자동차 구조도 훨씬 간단하다는 점에서 기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 업체들이 비집고 들어가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넥쏘는 99% 국내 기술로 만들어졌다. 특히 수소전기자동차 원가의 40%를 차지하는 연료전지 발전기에서도 가장 큰 비용이 들어가는 금속분리판과 MEA의 원가를 독자 개발한 국내 기술로 현저하게 낮춰 수소전기자동차의 대중화 가능성을 보여줬다. 기체확산층이라는 1개 부품만 외국 부품이 들어갔는데, 이마저도 한국의 JNTG라는 회사가 개발에 성공해 상용화했다. 현대자동차와 20년 가까이 함께 수소전기자동차를 만들어온 협력업체들이 있기에 한국은 수소전기자동차 부품을 A~Z까지 모두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갖추게 된 것이다. _ 권순우, <수소전기차 시대가 온다>, p272/314

결국, 자동차 시장에서 내연기관을 대신할 친환경 차량이 무엇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전기차의 배터리를 제조하는 화학업체들과 수소차의 제조업체와 협력업체, 석유화학공업, 비철금속 업체들 간의 헤게모니 쟁탈전이 아닌가를 생각하게 된다. 주식시장이 시장 상황을 선반영한다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요즘 이차전지 관련주와 관련된 치열한 논쟁 중 일부의 요인도 이와 관련있지 않을까를 잠시 생각하게 된다. 아래의 경우만 놓고 보더라도 결코 정치와 경제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정권이 바뀌면서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도 수소와 태양광의 희비가 엇갈렸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는 수소 연료전지사업단이 태양광, 풍력 사업단을 압도했으나, 정권이 바뀌면서 태양광 분야에 수소 연료전지의 두세 배 예산이 투입됐고, 배터리팩 연구에도 엄청난 예산이 배정됐다. 당시 수소 연료전지 분야에 참여했던 한 전문가는 "배터리 진영은 자신들의 강점으로 비전을 제시해 정부를 설득한 게 아니라 수소전기자동차를 비판해 주도권을 쥐었다"고 회고했다. _ 권순우, <수소전기차 시대가 온다>, p246/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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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세계 질서
레이 달리오 지음, 송이루.조용빈 옮김 / 한빛비즈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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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고 싶은 말은 혁명/전쟁 같은 고난이 고통을 주기는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에게는 잘 헤쳐나갈 능력이 있으며, 이를 극복해서 보다 높은 수준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닥친 모든 비참한 상황을 이겨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인류의 적응력과 창조력을 믿고 투자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가까운 미래에 당신과 나, 그리고 세계 질서는 커다란 도전과 변화에 직면하겠지만 인류는 보다 영리해지고 강인해져 어려운 시간을 극복하고 새로운 차원의 번영으로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_ 레이 달리오. <변화하는 세계 질서>, p60/760

레이 달리오 (Ray Dalio, 1949 ~ )의 <변화하는 세계 질서 The Changing World Order>의 내용을 거칠게 그리고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자본주의와 인류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 기대라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자본주의 탄생 이후 헤게모니(Hegemony)를 장악한 네덜란드, 영국, 미국이 세계사에 미친 영향과 함께 각 시기별로 적절한 투자 기회를 포착하는 관점 등을 제시한다. 이처럼 <변화하는 세계 질서>의 장점은 전업 투자자의 관점에서 세계경제사를 조망한다는 점과 이로부터 독자들은 투자자의 관점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나는 전 세계의 모든 경제 체제를 다 겪어 보았고 그 결과 돈을 벌어 저축하고 이를 자본시장에 투입하는 것(즉 자본주의)이야말로 사람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강력한 동기이며, 자원을 배분하는 수단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불공정한 빈부의 격차와 기회의 박탈을 유발하여 여러 가지 역효과를 낳고, 불경기와 호경기가 반복되어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다. 오늘날 각국의 정책입안자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평등과 안정을 해치지 않고 자본주의에 기반한 경제 체제를 구현해서 생산성과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_ 레이 달리오. <변화하는 세계 질서>, p139/760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변화하는 세계 질서>의 내용이 다소 불편하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었다. 전체적인 본문의 틀은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 1930 ~ 2019)의 <근대세계체제 The Modern World-system>의 틀을 따르고, 저자만의 데이터 분석이 주를 이룬다. 세계체제 내에서 자본주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 ~ 1985)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Civilisation materielle, economie et capitalisme>와 같은 주제라 할 수 있지만, 도출되는 결론은 사뭇 다르다. 브로델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지적한 자본주의의 본성 - 독점 monopoly - 문제에 대해 달리오는 말하지 않는다. 대신, 대자본가의 입장에서 적절한 투자 기회를 강조하며 이러한 기회와 혁신을 통해 지난 500년의 발전이 밝은 미래를 보장한다는 저자의 관점은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과연, 어제까지의 성공이 내일의 성공을 보장해줄 수있을까. 기후위기, 인간소외 등의 현대사회와 자본주의 문제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시점에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미래를 낙관할 수 있을까.

당연하면서도 역설적이지만 명나라가 멸망한 원인 중 하나는 이 압도적인 부와 권력이었다.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 명나라의 황제는 해외 원정을 중지하고 문호를 닫아버린 후 쾌락에 빠져 관료와 환관에게 정사를 맡겨버렸다. 결국 내부 권력투쟁과 부패가 만연해 국가 기반이 취약해지고 군사력도 약해졌다. 실용적인 학문 연구와 혁신은 제쳐둔 채 탁상공론에 몰두했다. 이런 이유로 유럽과 비교해서 중국의 쇠퇴가 가속화된다. _ 레이 달리오. <변화하는 세계 질서>, p335/760

저자는 이와 함께 유럽의 자본주의 체제 바깥의 다른 세계 국가들이 주변부에 위치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 다분히 유럽 중심적으로 간단하게 해석한다. 저자는 명(明)나라의 쇠망을 쇄국정책과 내부부패 문제로 돌리지만, 그것이 전부일까. 명나라 멸망 전후의 동북아시아 상황 - 만주족의 등장, 임진왜란, 왜구 문제 등 - 에 대한 고려 없이 혁신과 진취적인 정신이 없이 향락에 빠져 나라가 망했다는 분석은 저자의 분석이 과연 얼마만큼 정밀성을 갖고 있는가에 대한 의심을 품게 한다. 또한, 남아메리카의 아스텍 제국과 마야 제국의 멸망에는 유럽의 침략 이전에 이들 제국과 주변 부족간의 대립, 천연두 등 전염병의 유행 등 복합적 요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언급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저자가 ‘혁신- 비혁신‘ 이라는 단순화된 기준으로 세계사를 바라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은 책을 읽으며 드는 불편함으로 이어진다.

멕시코에 있던 아스테카제국(수도였던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은 당시 유럽의 어느 도시보다 인구가 많았다)과 남미에 있던 잉카제국이 가장 컸다. 그러나 곧 유럽의 침략이 시작되어 두 제국이 멸망한 후 새로운 식민지가 탄생하고 276년 후에 미국 건국의 씨앗이 뿌려졌다. _ 레이 달리오. <변화하는 세계 질서>, p336/760

이러한 이유로 <변화하는 세계 질서>에 서술된 세계사관련 내용에 대해 개인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지나치게 자본주의적인 단순한 기준으로 바라본 세계사. 이러한 관점의 한계는 저자 자신이 바로 성공한 투자가 때문일 것이다. 어느 상황에서도 투자적격성 여부를 판단하고자 하는 자본가의 관점에서 바라본 세계사 그리고 역사로부터 얻는 교훈. 이것이 <변화하는 세계 질서>가 담고 있는 내용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이유로 만약 독자들이 <변화하는 세계 질서>를 통해 역사적인 통찰을 얻으려 한다면 많은 한계가 있지만. 대신, 자본가, 투자자의 시각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일정 부분 성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 여기진다...

마찬가지로 더 이상 경화로 이자를 지불할 수 없게 될 때까지 부채와 채권자산이 점점 커진다는 면에서 화폐/신용/자본시장의 사이클도 기본적으로 변화가 없다. 항상 그랬듯이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채권자산을 팔고 다른 자산을 구매하려 하지만, 통화량과 자산 가치 대비 이미 너무 많은 채권자산이 시장에 풀려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상황이 되어 디폴트(Default, 채무불이행)가 발생하면 통화 공급 주체는 더욱 많은 돈을 찍어낸다. 이 사이클은 수천 년간 본질적으로 같았다. 국내 질서와 혼란, 국제 질서와 혼란의 사이클도 마찬가지다. _ 레이 달리오. <변화하는 세계 질서>, p46/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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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배터리 레볼루션 - 향후 3년, 새로운 부의 시장에서 승자가 되는 법
박순혁 지음 / 지와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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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배터리는 중국이나 일본이 따라올 수 없는 초격차의 기술력을 갖고 있다. 그 초격차 기술력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무기가 바로 ‘하이니켈 양극재 기술’이다. _ 박순혁, <K 배터리 레볼루션>, p56/232

2023년 주식시장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산업은 반도체, IT, 자동차가 아닌 2차 전지 산업분야다. 2차 전지 산업의 전망과 관련하여 애널리스트와 전문가, 유튜브 프로그램별로 바라보는 시선이 극명하게 갈리면서 투자자의 혼란도 가중되는 분위기다.

2차 전지 산업과 관련한 전문가 중에서도 ‘밧데리 아저씨‘라 불리는 박순혁 이사는 국내 2차 전지 산업과 관련하여 매우 긍정적이다. 높은 진입 장벽과 사업의 경쟁력에 비해 저평가 우량주 종목들이 2차 전지 주식 중 양극재 관련 주식이라는 것이다.

이차전지 소재와 관련된 주식은 양극재 주식만 보시라.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전기차의 심장은 배터리, 배터리의 심장은 양극재다.
② 양극재 기술의 진입장벽이 엄청나게 높다.
③ 양극재가 배터리 원가의 50% 정도를 차지한다.
④ K 양극재 4대 업체의 90%급 하이니켈은 독보적 경쟁력을 가진다. _ 박순혁, <K 배터리 레볼루션>, p40/232

현재 주식시장에서 <K 배터리 레볼루션>에 소개된 기업들의 주식은 매우 높은 가격에서 거래되고 있어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렇지만, 과거의 실적이 미래의 성장가능성을 보장할 수는 없기에 투자자들은 2차 전지 산업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와 정보를 갖추고 매일매일의 주가에 일희일비하기보다, 가능성에 투자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생산되는 K 배터리의 주력 제품은 니켈 함량이 90% 수준에 이르는 NCMA(LG에너지솔루션 생산), NCM9(SK온 생산), Gen6(삼성SDI 생산) 등이다. 이 주력 배터리들의 에너지밀도는 305Wh/kg 수준이다. 이에 비해 중국의 주력 배터리인 LFP 배터리는 165Wh/kg의 에너지밀도를 갖고 있다. _ 박순혁, <K 배터리 레볼루션>, p37/232

서두에서 언급했듯 현재 2차 전지 산업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은 매우 상이하다. 그리고, <K 배터리 레볼루션>에 언급된 의견도 여러 의견 중 하나임을 고려했을 때 본문에 언급된 특정 종목의 성장성을 의심없이 받아들이기보다 산업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는 포인트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 생각된다. 예를 들어, 국산 배터리가 중국 배터리에 비해 어떤 점에서 우수한지, 미국 시장에서 국내 배터리 산업의 향후 전망이 어떻게 될 것인지, IRA 법안의 향후 영향, 수소차 시장이 열렸을 때 배터리 산업의 변화 등등에 대한 물음과 이로부터 얻어지는 확신 없는 투자는 투기에 불과할 뿐이다...

자동차 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수소차는 전기차 대비 월등한 장점이 있다. 전기차의 핵심은 배터리이고 이 배터리는 화학 산업을 기반으로 하다 보니 배터리 업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전기차에서 자동차 회사의 입지는 껍데기를 만드는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그 지위가 줄어들 예정이지만, 수소차는 다르다. 수소차의 핵심인 수소연료전지 또한 화학 산업을 기반으로 하긴 하지만 배터리 외에 자동차 회사가 다룰 수 있는 요소들이 많다. 수소공급장치, 열관리시스템 등 자동차 회사에서 주도할 수 있는 여러 장치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정주영 회장이 현대차의 미래를 수소차에서 찾은 것이다. 또한 수소차는 대형트럭 등 장거리를 운행하는 무거운 차량을 중심으로 보급되는 장점이 있다. _ 박순혁, <K 배터리 레볼루션>, p7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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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3-05-11 2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POSCO 홀딩스. LG 화학 우선주 손실 구간이긴 하지만 조금씩 모으고 있습니다

기업의 가치를 보고 장기 투자하렵니다

겨울호랑이 2023-05-12 04:54   좋아요 1 | URL
가치투자의 길이 그렇게 재밌는 것은 아니지만 궁극적으로 이익이 되는 길이라 저도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