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자유인을 기르는 학교
하니 게이꼬 외 / 내일을여는책 / 1999년 2월
품절


매사에 열심히 생각할 것이며, 그렇게 생각한 결과라면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삶을 살 것이며, 늘 기도하라.-19쪽

생각하며, 생활하며, 기도하며...-1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사회 교육신화 비판
이철호 외 지음 / 메이데이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교육은 한강의 기적을 이룬 원동력이다.'

'한국인의 교육열은 경제개발의 성공을 가져왔다.'

'많이 배운 사람은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부도 거머쥘 수 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상당한 신뢰도를 가진 '신화'의 요소들로, 진실인 양 믿어오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1.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적어도 출발점도 같고, 부정행위는 없어야...

 

토끼처럼 육상 달리기 능력이 뛰어난 사람과 거북이처럼 처지는 사람이 있더라도,

경쟁은 피할 수 없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경쟁을 피하는 일은 요원하다.

그렇다면, 교육이 희망하는 지점에서 아이들은 출발점도 같으면 좋겠고, 도중에 부정행위도 없으면 좋겠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마치 세상의 모든 경주는 육상이 다인 것처럼 오인되고 있다.

물 속에서 경주를 벌인다면, 토끼는 잠을 자지 않더라도 이길 수 없는 것인데...

 

2. 교육이란 신화, 성공의 기대...

 

신화는 '자신의 이해, 계층의 요구'에 기반을 둔 이야기로,

이야기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결속하고 동질성을 확보하는 역할을 한다.

대부분 지배계급의 의도를 유지, 강화하는 경향이 짙다.

 

사람들이 왈가왈부하는 평준화, 대입 문제, 수월성 교육, 본고사, 영어 몰입 등의 문제의 핵심은,

자신의 이해에 따라 지지하고 반대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밥을 서로 먹여주느냐, 서로 먹으려다 못 먹느냐로 천국과 지옥을 가른다면,

그런 밥먹기 급급한 천국 따위 무슨 가치가 있겠냐던 사람도 있었는데,

밥그릇 싸움인 '제로-섬' 게임으로 교육 문제를 따진다면, 어떤 기대도 물거품이 되기 십상...

 

3. 다각적 측면에서 바라본 허구적 신화

 

이 책은 신자유주의가 발호하던 2007년 한미 FTA 시점에 쓰인 책이다.

대학 입시라는 거대한 걸림돌을 치워야 한다.

그 걸림돌에 학교는 걸려 허우적거리고, 학부모는 사교육에 영어에 갈피를 잡지 못한다.

학생은 오를 수 없는 끝을 바라보며 좌절하며 울고 있고, 그 틈새 시장에서 이권을 잡은 자들만 희희낙낙이다.

문제는 '사학'이란 이름의 대학들 역시 '교육자'보다는 '장사치'로 서있다는 것.

 

이 책의 장점은 학교, 제도, 학생, 학부모, 국제관계 등 다각적인 측면에서 문제를 조망하는 것이다.

그래서 문제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고, 한 측면의 해결을 모색하는 것은 다른 측면의 이욺을 반드시 야기한다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한계는, 모든 문제점의 총합이 문제 해결과 관련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 해결의 출발점으로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4. 쾌도난마... 외부의 개혁과 내부의 개혁

 

단칼에 난맥상으로 얽힌 교육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까?

이런 사고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가장 큰 핵심은 '장기적이면서 미래를 생각한 관점'에서 교육을 내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적어도 어느 시점 이후로는 현재의 학벌 사회를 완화해 나간다는 비전이 보여야 한다.

학벌이 아니어도 성실한 사람은 먹고 살 수 있음을 정치로 보여주어야 한다.

 

교육은 '사회 공공성 강화'의 기능을 할 때라야 '공교육'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현재처럼 개인의 영달을 위한 교육은 '사교육'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대학의 85%, 고등학교의 49%가 사립인 구조, OECD 국가들에 턱도없이 적은 국가 지원금.

(OECD 평균 공공 : 민간 = 80:20인 반면, 한국은 15:85의 열악한 구조)

족벌과 세습으로 영리, 치부의 수단으로 전락한 조직으로서의 사학을 지키려는 자들은 공고하다.

 

한국 사회에서 '높은 삶의 가치'는 <돈과 권력>으로 집약되고 있다.

인삿말조차 '부자되세요~'가 되는 사회.

학벌은 혜택으로 가는 가장 쉬운 길이었다.

 

 

5. 학교는 공공 기관이 되어야...

 

그야말로 공화국의 이념에 맞게, public한 교육이 정착되도록 오래 노력해야 한다.

교육 개혁이란 이름으로 뜯어고칠 수 없는 것이 현재의 학교다.

 

전문 대학원들(법학, 의,약,치,한의학)이 주장하는 바는 전문성 신장이지만,

그 대학원에 다녀본 이들이나, 교수들의 의견은 한결같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들어온 순순한 아이들의 눈빛은 없고, 오로지 돈과 권력만을 위한 어른들로 그득"한 곳임을...

어른이 되면 돈냄새를 따르는 의사, 법률가가 될지라도,

적어도 의대생이라면, 법대생이라면 고민해야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 '공공성'을 위한 가치 아닐까?

 

이렇게 말하면, "왜 그래? 아마추어같이?" 하면서 비아냥거릴지 모른다.

세상이 워낙 헝클어져 있으니...

그렇지만, 헝클어져 있다고 미치지 않은 사람이 미친 척 하며 살 수 없는 노릇.

그래서 시대가 지났더라도, 이런 책을 읽는 건지도 모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립간 2012-09-28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정상적인 세상에 정상적으로 사는 사람은 특이하다 또는 비정상이라는 평가를 받죠. 앞으로의 제 인생은 변동성이 적지만, 아이 살 세상은 어떻게 변화할지 걱정입니다.

글샘 2012-09-28 14:18   좋아요 0 | URL
오늘 인터넷에, 전교조 교사가 10%다~ 어느 지방이 많다~ 이런 걸 죄선일보가 썼더군요.
그런 사람들이랑 같은 세상에 산다는게 신기하고 피곤하죠.
아이 살아갈 세상은 조금씩 나아지리라 믿어 봐야죠~ ^^
 
학교를 넘어서 - 2010년 개정증보판
이한 지음 / 민들레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나도 작년까지, 고등학교 학부모였다.

올해 아이가 대학생이 되어,

자율적으로 일어나서 학교로 가고(가까운 중고교는 늘 지각이었는데, 먼 대학교는 잘 간다.)

여름방학도 반납하면서 동아리 활동에 땀을 흘리고,

스스로 시험준비와 영어 공부를 하는 것을 보면 든든하다.(스스로보다는 여자친구가 시키는 거 같음)

 

학교를 아니 보낼 수 없었던 것은,

학교를 아니 보내고 아이를 보람있게 재미나게 지낼 수 있도록 해줄 공간이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대안학교는 이미 '여기' 중심의 학교가 있고, '저기'에 존재하는 학교이니 크게 다를 것도 없다.

 

고딩을 졸업하고 바로 이 책을 썼다 하니, 작가가 대단하기도 하고,

그 분노가 이해가기도 한데, 쓰여진 시기가 10년도 전이어서 그간의 변화가 반영되지 못해 아쉽다.

 

1. 학교의 본질

 

학교는 사회 계층화 기구이며, 억압적 통제기구로서 근대국가의 산물이란 그의 의견에 나도 동감이다.

기능론적 학자라고 해도 같은 말을 조금 미화하여 둘러 말할 수 있을 뿐이다.

한국의 학교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가진 수업시간, 담임선생님과의 이야기를 가진 학생은 얼마나 될까?

특히 남학교를 다닌 사람들이라면 지긋지긋한 글쓴이의 추억에 침튀기며 공감할 것이다.

'작은 군대'로서의 학교는 해체되었다.

남성 교관들이 물러간 자리에 여교사들이 들어와 군대적 규율은 무의미해졌다.

학교는 마지못해 등교하는 아이들로 가득하다.

산업화 시대의 '화이트 칼라'에 대한 욕구는 이미 무의미하다.

'전문직'을 가지기 위한 몇몇 아이들에게는 졸업장이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졸업장 역시 무의미하다.

 

2. 공교육의 신기루

 

이름만 공교육, 내용은 사교육.

공교육은 세금으로, 사교육은 내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공교육은 '공적 인간'을 기르는 것이고, 사교육은 '내 욕심'을 위해서 배우는 것이다.

'시민'을 기르는 것은 '공교육'이고, '기예, 재주'를 기르는 것은 '사교육'이다.

한국 사회의 학교는 개인의 영달을 위한 공부를 가르친다.

서울대, 의대 몇 명 진학을 플래카드로 내건다. 이건 공교육이 아니다.

그렇지만, 어디 갈 데를 찾지 못한 아이들, 보낼 데를 찾지 못한 부모들은,

학교를 제대로 다니면 훌륭한 어른이 될 것이란 착각을 하며 오늘도 아이들을 학교로 몰아 넣는다.

공교육기관에서, 아이들은 패배의 경험, 좌절의 경험을 배우면서 눈치보고 줄 잘서는 훈련을 하게 된다.

<명시적 교육과정>은 아이들에게서 거부당하고,

<암시적 교육과정>은 아이들에게 체계적으로 체화된다.

그래서 수업 시간엔 엎어져 자고,

쉬는 시간엔 학교 폭력이 만연하게 된다.

 

3. 자율교육 시스템은 가능한가?

 

글쓴이는 고교생 달리기에서 최우수 그룹에 들어 서울 법대를 들어갔다.

그래서 세상 아이들이 자기처럼 지적 욕구가 클 것이라고 착각한다.

사실은 세상 사람들은 지적 욕구가 거의 없다.

그래서 '최소 요소'만 반복해서 가르치고, 갈등 조정 과정을 가르치는 곳이 공교육 기관이어야 한다.

다양한 자율적 교육 시스템은 있다면 좋지만, 없어도 어쩔 수 없다.

다만, 학생들이 재미있게 학교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시스템을 연구할 필요는 있다.

창의적 체험활동이란 것이 '일률적으로' 제시되어 전혀 창의적이지 못하게 학교에서 돌아간다.

역시 학교의 시스템은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란 시스템을 부정하지 못한다면... 학교를 넘어서, 보다는 학교 안에서... 가 중요하다.

 

4. 학교 안에서... 그리고 사회적 측면에서...

 

분노를 넘어서 실천으로!란 제목으로 맺음말을 쓰고 있다.

그 분노에는 같이 머리를 주억거리면서도, 실천에 있어서는 내 생각도 있다.

실천은 김예슬 선언~ 그리고 탈 학교~ 로 이뤄질 순 없다.

국가의 가장 중요한 테제로 <학교 살리기>를 정하고,

초중고생의 학업 내용을 과감하게 줄일 필요가 있다.

물론 대학 나와야 먹고 살던 시대를 넘어, 대학 나와도 먹고 살기 힘든 시대를 맞은,

글로벌 호구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공부는 하나의 썩은 동앗줄이기도 하므로, 쉽지 않은 노릇이지만,

사회라는 '상자'가 썩었음을 과감히 인정하고,

사과가 썩는 것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

사회를 정화하지 않고서는 어떤 방안을 만들어도 학생이란 사과는 썩고 곯게 마련인 것.

학교 안에서 할 일을 하는 일은 그래서 힘겨운 몸짓이다.

정치를 바꾸는 일, 그래서 중요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교육 불가능의 시대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회 기획, 엮음 / 교육공동체벗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현실

 

출산율은 최저, 자살률은 최고... 한국의 삶의 질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두 가지 지표.

 

먹고 사는 일이 당면 과제인 자본의 세상으로 치닫는 현실은 학교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학부모는 자기 자식의 영달에만 관심이 있고, 학생을 인적 자원으로 치부하기 시작했다.

자원만 캐내는 곳, 학교.

햇볕이 부족한 곳에서 응달은 깊어만 갔고, 응달에서 시들어가는 아이들은 교육불가능을 야기했다.

 

2. 절망

 

'교육불가능'이란 말을 발설하는 일은 발칙한 일이다.

해리포터 이야기에서 함부로 이름을 입에 올리기 힘든 '보보보... 볼드모트'처럼 말이다.

그래도, '다시 교육이 희망이다'라는 이야기를 교육부 관료도 하고,

전교조를 비롯한 교육 개혁을 희망하는 사람들도 이야기하지만,

날마다 뉴스에서 등장하는 단어들은 '학교폭력', '입시 부담으로 자살' 이런 것들이고,

아이들 눈빛에서도 학교를 '희망'으로 여기지 않는 빛이 역력하다.

전인교육이란 말조차 들먹이지 않는 '사교육으로 전락한 공교육 기관' 학교에서,

아이들은 다만 버티고 앉아 있을 뿐이다.

아니, 잘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다 퇴학의 절망을 맛보는 아이들도 있다.

 

3. 소통

 

이 책의 가치는, '교육불가능'의 시대, 학교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데 있다.

호부호형하지 못하는 문제에서 홍길동전이 시작되듯, 소통되지 않는 곳에서 문제는 풀어야 하는 것이니...

불통즉 통... 不通卽 痛

교육의 병통도 소통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

세계화 또는 신자유주의란 이름으로 온 세계가 돈놓고 돈먹기의 야바위판으로 변한 현실.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천천히 올라가는 아이들을 향해 부모와 학교는 채찍질이 한창이다.

교육이란 이름으로 더 정교하게 조여오는 쇠사슬이 얽어매는 아이들의 성장기...

성장하지 못하고 통증과 아우성이 가득하다.

명문대 입학조차도 먹고 사는 보증수표가 되지 못하는 현실에서

드디어 '밀실'의 고민을 박차고 '광장'의 소통의 공간으로 담론은 뛰쳐나온다.

 

4. 다시 희망...

 

지금 학교는 말라 죽어가고 있다.

난초나 선인장은 말라 죽어갈 때 마지막 생존 본능으로 꽃을 피운다고 하듯이,

아이들의 몸짓은 찬란하게 눈물겹다.

이렇게나마 '교육불가능'의 지점을 눈물겹게 증언하는 이야기들이 있어,

바닥을 차고 오를 수 있는 힘을 모을 수도 있을 거란 희망을 힘겹게 가져 본다.

'꽃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오르고 또 올라서 그곳이 최고의 경지가 아니라,

누구나 힘든 고치의 시기를 지나면 나비의 삶을 누릴 수 있음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세상을 만나는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다.

 

이런 담론이 널리 이야기될 수 있는 지점,

그곳이 '변곡점'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속도가 점점 느려지던 위로 볼록한 곡선이 그 지점을 넘고 나면 속도가 차츰 붙기 시작하는 그런 지점 말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재는재로 2012-09-26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공감갑니다 예전 입시위주의 교육을 없앤다 하던 그 사람들 역시 똑같은 방법으로 똑같은 일을 반복해서 하고 있죠
학생을 공부하는 기계로 만드는 일말입니다

글샘 2012-09-27 23:14   좋아요 0 | URL
진보 교육감의 변화를 향한 발걸음을 저렇게 다리거는 세력이 많으니 갈길이 멉니다.
 
선진 교육을 벤치마킹하라
하준우 외 지음 / 동아일보사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교실 밖은 변했는데, 교실 안은 그대로인 것이 한국의 학교 교육

 

 

1. 문제 제기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진리를 찾는다면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것을 단 하나의 단어로 찾으라 했더니 '지나가리라'라고 했다던가.

학습 환경도 변하고, 국제 관계도 변하고, 사고 방식도 변하고, 학생과 학부모도 변했다.

심지어 교사들의 사고방식도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한국의 <획일화>된 학교 교육 제도.

벤치 마킹은 남들의 좋은 것을 보고 배우자는 의도지만, 한국의 교육으로 들어오면 귤이 탱자가 되고 만다.

더 이상 벤치마킹을 외칠 필요 없다. 탱자를 식탁에 올릴 순 없는 일이니 말이다.

 

2. 어디서 시작해야 할까?

 

첫째, 교육주체들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학부모, 학생, 교사들이 모여서 의논하고 '선택'할 수 있어야 '권리'와 '의무'가 의미있게 된다.

둘째, 자율적 학교 경영이 가능해 져야 한다. 획일적 교장 임용제도, 획일적 입시제도, 획일적 학사 업무... 도무지 자율이 살아날 틈이 없다.

셋째, 투자 등 재정 문제가 해결의 관건이다. 교사를 더 쓰고 싶어도 모든 학교에는 꼭같은 수의 교사만 있다. 특정 분야에 특화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자 해도 예산은 똑같다. 인풋 없는 아웃풋 없다.

 

3. 벤치 마킹 : 제도를 본딸 것이 아니라, 자율적 운영을 본따야...

 

이 책에서 제시한 영재 교육, 대안 교육, 장애인, 소수민족 교육, 교사의 자질 문제, 학교 평가, 학생회, 학운위, 진로 교육 등은 한두 해만에 이루어진 성과가 아니다. 교육자치가 실현된 국가들의 공교육이 수백 년 동안 좌충우돌하며 단련해온 제도들이다. 그걸 부럽다고 가져오면, 또는 모든 학교에 뿌리내리라고 하면, 탱자가 아니라 쇠구슬이 되어 학교를 상하게 할 것이다.

벤치 마킹 하여야 할 것은, 하나하나의 제도들이 아니라, 그 제도들이 지향하는 의미들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제도들의 장점을 개별 학교에서 각자 자율적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해주는 것이 교육부나 교육청이어야 한다. 단시일 내에 리드하려들면, 교육지원청으로 이름 바꾸었대도, 관료적 교육위원회 시절과 다를 바 하나 없을 것이다.

 

4. 이름만 자율화, 또다른 획일화...

 

학교에 이미 자율화 정책이란 것이 2009 개정 교육과정이란 이름으로 획일적으로 하달되었다. 그것은 자율화란 이름의 획일적 정책이었다.

학교마다 환경이 다르고, 학생들이 다르고, 교사들이 다르고, 학부모의 요구들이 다를 수 있다.

학교마다 독특한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교장을 임용할 수 있는 제도가 가장 시급하다.

<보통 학생들을 받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게 하는 학교가 최고>란 소신을 밀어붙일 교원들이 필요하다.

OECD 국가들의 교사 수준보다 한국의 교사 수준은 최상층이다.(전문성에서가 아니라, 성적 상위 분포도로)

그리고 한국의 담임교사들은 학생들을 계약된 아동으로 보기보다 자식처럼 동생처럼 여기는 장점도 살릴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굳이 건너온 귤만 좋아라 할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원래 있었던 돌배라도 척박한 토양에서 잘 자랐던 것도 살리고, 학교 나름대로 귤도 기르고 바나나도 기를 수 있다면, 자율화의 토양이 천천히 확산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논의의 핵심은, 정치가 교육을 좌지우지해온 지난 짧은 한국의 역사를 볼 때, 정치적 안정이 한국 교육의 난맥상을 쾌도난마, 단칼에 자를 수 있는 시초가 될 것임을 생각하면, 마음은 무겁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