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전 (문고판) 네버엔딩스토리 17
강숙인 지음 / 네버엔딩스토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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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못에 든 고기들아 뉘라서 너를 몰아서 넣거늘 든다
북해 청소를 어디두고 이 못에 와 든다
들고도 못 나는 정은 네오 늬오 다르랴.

조선의 어느 궁녀가 쓴 시조라고 한다. 

조선의 궁녀들은 왕족들을 보필하고 사는 여인들이었다고 하는데...
재주가 뛰어난 궁녀들도 많았다지만, 세상에서 잊혀진 존재들이 되고 말았다. 

저 시조처럼...
연못에 든 물고기들아... 누가 너희를 몰아서 넣어 들어있느냐.
북해 맑은 못을 어디 두고, 이 작은 못에 와 들었느냐.
들어오고는 못 나가는 사정은 너나 내나 다르랴... 

연못에 든 물고기처럼 갑갑한 심사를 어찌 말로 다 헤아릴까. 

운영전은 조선 소설로는 드문 <비극>이다.
보통 해피엔딩이라는 구조를 갖지만, 이 소설은 도무지 해피한 엔딩이 나올 수 없는 구조다. 

궁녀는 닫힌 사회다.
그 닫힌 사회의 일원을 사랑했던 김진사는 운영의 죽음을 당하고, 같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
퇴락한 수성궁에서 퇴락한 양반인 유영과 만나게 되는 김진사와 운영의 영혼...
그리고 펼쳐지는 슬픈 운영과 김진사의 사랑 이야기들... 

강숙인 선생님이 다시 쓴 운영전은 쉬운 말로 풀이를 잘 해 놓았으면서도 줄거리가 부드럽게 이어지도록 되어있다. 

고전 소설은 일반인들에게 낯선 장르다.
그렇지만, 고전 소설을 통하여 조선의 모습을 더 풍부하게 알 수 있게 된다. 
조선 사람들의 다양한 계층이 겪는 고충을 고전 소설을 통해 느낄 수 있게 되는 일은,
역지사지의 깊은 마음을 심어주는 일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이런 고전을 접하게 해주는 일도 의미있는 일이고,
고전을 아이들에게 맞는 눈높이로 새로 쓰는 일도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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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 대신 마음을 여는 공감 글쓰기
이강룡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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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다섯 개가 최고다. 근데 그 다섯으론 부족하단 생각이 들 때가 있는 법.
좀 괜찮다~라고 생각되는 것들에 다섯을 붙였는데, 이 책은 좀 많이 괜찮다. 그래서 별을 일곱 주고 싶다. 

내 마이페이퍼에 <글쓰기 멘토링>이라고 이 작가의 전작을 옮겨놓은 곳이 있는데,
이강룡은 <쉽게> 글쓰기 잘하는 멘토링을 들려 준다. 

이 책은 한 두세 시간이면 충분히 읽을 수도 있고,
글쓰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조목조목 아홉 시간을 들여 읽을 수도 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하여 7교시의 수업이 진행되니 아홉 시간이다. 

작가의 글을 감상만 하던 시대가 있었다.
이제 블로그 하나 없는 사람은 드물 정도로 자기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 자리가 많게 된다.
나야, 알라딘에 둥지를 틀고 '리뷰' 올리기를 본류로 삼은지 10년이 가까워오니 제멋대로 리뷰가 제법 쌓인 셈이지만,
요즘 '시 특강'을 올리는 일에 신경이 조금 쓰인다.
그건 제멋대로 리뷰와는 좀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내 특강을 읽고는, 오래 걸릴 거 같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도 않다.
구상이야 며칠 걸릴 수도 있고 하지만, 꼭지를 잡으면 주루룩 한 시간 남짓이면 쓸 수 있다. 
다만, 독자의 수준이 다종다양하여, 그 긴 그의 길이에 눈총을 주는 이도 있을 수 있겠지만, 길이는 내 맘이다. ㅎㅎ 

블로그에 올리는 글들 중에서, 맛있는 글도 있고 매력이 떨어지는 글도 있다.
읽고 나면 가슴이 따스해지는 글도 있고, 왠지 모를 이물감에 퍼뜩 그 화면에서 벗어나고 싶은 글도 있다.
좋은 글, 친절하고 부드러운 글, 읽는 이에게 감칠맛을 느끼게 해주는 글.
누구나 이런 글을 쓰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강룡을 만나시라고 권하고 싶다. 먼젓번의 <글쓰기 멘토링>이나 이 책이나 내용이 그닥 다르진 않다.
전자가 좀 단편적이라면, 후자가 제법 체계적인 차이가 있겠다.
전자는 블로그 땜빵용이라면, 후자는 제법 책 한 권의 무게를 가진 정도의 차이다. 

이 책은 우선 표지부터 깬다! 쩐다 쩔어~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의 복제판 같다. 70년대 풍이랄까.
제목도 그렇다. <뚜껑 대신 마음을 여는 공감 글쓰기>, 햐.
뚜껑열리는 글 쓰는 자들이여, 펜을 버려라! 이런 똥침 한 방! ㅋㅋ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하는 일 : 형상화

이런 구절은 내가 시 특강하면서 맨날 써먹던 말이라 새로울 것도 없다. 하지만, 형상화에 성공한 글 만나기 참 쉽지 않다.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자. : 닫힌 표현과 열린 표현
구체적 대상에서 보편성을 보여줘라

자꾸 설명하려는 글을 퇴고해야 한다. 닫은 표현을 쓰고있는 자기를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공감할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려면 구체적 대상을 제시해야 한다. 거기서 보편성이 나오도록...

진화란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

이 말은 멋있어서 한 번 남겨 놔 봤다.

모래알에서 세계를 보고
들꽃 한 송이에서 천국을 보려면
그대 손바닥에 무한을 쥐고
찰나 속에 영원을 쥐어라

모래알과 들꽃은 구체적 대상이다. 그러나 블로거가 그리고 싶은 것은 세계고, 천국이다.
손바닥에 바로 현실에서, 찰나, 짧은 이 순간에, 무한과 영원을 쥐려면... 구체적 대상을 열린 표현으로 그릴 밖에...

부분은 작은 전체. 결정적 한 장면은 작품 전체를 압축하여 보여준다.

글의 한 부분만 가지고도 '프랙탈' 구조처럼 전체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다.
세상은 뭐, 다 고만고만한 거니깐. 그 유추의 능력은 작가마다 다르지만, 부분으로 전체를 '조금' 표현하는 일, 이게 관건이다.

덜 중요한 부분을 지우니 중요한 것만 남더라... 짜파게티 봉지의 희망 (소비자 가격) (김씨표류기)
나 여기 있어, 너 거기 있지?(왕의 남자)

영화를 보면서도 그는 멋진 구절들을 기록해 둔다. 역시 기록은 글쓰기의 필수 요건이다.
머리가 나쁘면 기록해야 한다.  

순서 바꾸기도 멋진 글을 만드는 한 방법.

내가 했어야 하는 말인데 당신이 하게 해서 미안해

가령,은 실제에 없는 상황을 그려볼 때 쓰는 말. 그냥 예시라고 써선 안 되는 말. 첨 들었다. ^^ 맞다. 

기다리시기 지루하면 제가 탱고를 가르쳐 드릴게요.
스텝이 엉길까 두려워요.
그게 바로 탱곱니다. 인생과 마찬가지죠. (여인의 향기)

캬, 이렇게 작업을 거는 거구나.
작가는 또 이렇게 작업걸면 망한다... 이런 말도 한다. 

 훈계하면 지는 거예요.   
시간을 낭비하라!!(에밀)

아, 에밀에 이런 멋진 말이 있었나? 기막힌 말이다. 시간을 낭비하라!!!

객관적 정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자 한 글, 자기 말에 책임지는 글, 고정관념을 뒤집어 더 나은 것을 제안하고자 하는 글, 독자의 눈높이에 맞추어 적절한 예와 비유를 드는 글이 좋은 글...(204)

좋은 글은 여러 결이 차곡차곡 겹쳐있기에 아주 두껍습니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결이 드러납니다. 늘 아는 만큼만 보이고 이해한 만큼만 들리는 법이니까요. 초급자에겐 좋은 태도를 심어주고, 중급자에겐 텍스트 읽는 맛을 주고, 고급자에겐 스스로 겸손함을 깨우치게끔한다면 그 글은 무척 훌륭한 글(206) 

좋은 글에 대한 그의 정리인데, 뭐, 이 책을 요약한 것이다.
이것만 읽고 이 책을 안 읽는 사람은 바보다.
이 말에는 구체성이 없기 때문에 하나도 훌륭한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이지만, 이강룡씨의 이런 책이 왕창, 팔려서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싸구려 커피 풍의 표지를 볼 때, 많이 팔릴 거 같진 않다.
강유원 샘이 강의다니면서 홍보를 좀 해 주시겠지만, 나도 홍보 좀 하자!  
글 좀 쓴다는 블로거들이여!
이강룡의 <글쓰기 멘토링>이랑 이 책 좀 사서 읽어라! 홍보 문구가, 훈계다. ㅋㅋ

166쪽. '라벨'의 <부활>을 지휘한 카플란... 이야기...
   이야기는 멋진데, 나이들어 지휘를 왜 하냐고? 쪽팔리니깐,  하나는 지휘하면서 쪽팔림, 아니면 지휘 안 한 스스로 쪽팔림... 히야... 자기한테 안 쪽팔릴라고 지휘를 하다니... 친구의 유오성의 '쪽팔린다 아입니꺼'보다 고수다.
   라벨이 아니라 구스타프 말러...인 거 같은데...(이거 쓰실 때 술이 덜 깨셨을 듯. ㅋㅋ 퇴고하실 때도, 이 부분 읽을 땐, 그래도 지구가 돈다던 갈릴레이를 이해하고 계셨을 듯... 온 몸으로 지구의 자전을 느낀다는...) 

170쪽. 기학 원리...기하학이겠지 (귀여운 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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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7-30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린 표현을 위하여!
아자아자!!

글샘 2010-07-30 15:58   좋아요 0 | URL
구체적으로 형상화하여 제시하는 걸 열린 표현이라 한대요. 저는 닫힌 표현 잘 쓰는 사람인데.ㅋㅋ
마기 님처럼 시를 쓰시는 분은 열린 표현을 할 수밖에 없죠.
근데 너무 열려버리면... 독자가 뚜껑열린다는... ㅋㅋ
재미있는 책입니다.

세실 2010-07-30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케이 저도 장바구니에 담아야지.

글샘 2010-07-30 16:08   좋아요 0 | URL
네. 이 책은 사서 보세요~ 엄청 잼있습니다. ^^
근데, 세실님. 저도...와 담아야지...는 호응하지 않아요. ㅋㅋ
나도가 되든지, 담겠어요...가 되어야죠.
맨날 세실님 놀리는 재미로 사는 1인 ㅎㅎㅎ

순오기 2010-07-30 16:51   좋아요 0 | URL
하하~ 못 말리는 선생님!ㅋㅋ

나는 천천히 담을래요, 는 맞나요?^^

글샘 2010-07-30 17:47   좋아요 0 | URL
저 좀 말려 줘요~ ㅋㅋ
네. 우등생님은 맞습니다.

세실 2010-07-30 18:02   좋아요 0 | URL

저보다 두 살 많으니 반말 할수도 없구,
맨날 저 구박하니 존댓말 하긴 왠지 싫구. 메롱^*^
그래서 그랬시요. 왜? 꼬우세요? (눈 치껴 뜨면서, 입으로는 눈쪽으로 바람을 날린다)

글샘 2010-07-30 20:03   좋아요 0 | URL
오, 세실님... 예전에 껌 좀 씹었던 포스가... ㅎㅎㅎ
우리 친하게 지냅시다. 아까 신문에 나신 거 보고 안 놀리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ㅎㅎㅎ

2010-07-30 16: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0-07-30 17:47   좋아요 0 | URL
말러 맞죠. ㅋㅋ
이강룡 샘께는 꼭 전해 주세요. 별 일곱 개라고... 글쓰기 멘토링도 잘 읽었다구요.

소나무집 2010-07-30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들어 글 잘 쓰고 싶은 한 사람...
9시간 동안 읽기 위해 장바구니로 데려갑니다.

글샘 2010-07-30 20:04   좋아요 0 | URL
글쓰기 멘토링도 좋아요. 제가 스크랩해 놓은 글 한번 읽어 보세요~~

양철나무꾼 2010-08-02 0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쓰기 멘토링>은 저도 가지고 있는데...
이 책 장바구니에 넣었어요~^^
뿌리와 이파리는 좋은 책을 하찮아 보이게 하는 묘한 재주를 가지고 있어요.
책 표지,편집,교정에도 좀 신경을 써야할 듯~^^

글샘 2010-08-02 23:41   좋아요 0 | URL
맞아요. 글쓰기 멘토링도 좋은 책을 하찮아 보이게 했던... ㅋㅋ 그거도 뿌리와 이파리였나요?
표지가 거의 장기하 버전이라니깐요. ^^ 내용 좋다고 너무 자신감이 있는 건지...
암튼, 책 팔아서 돈벌기는 하늘의 별 주워모으기보다 어렵다지만, 많이들 사 주세요.
이런 게 인문학적 토대를 쌓는 거 아닐까 합니다.(이래 놓고 정작 본인은 안 사 본다는 ㅍㅎㅎ, 그래도 도서관에 사 놓고 본다구요.)
 
생각하며 읽는 시 - 언어능력 향상 프로젝트, 고급 중3~고3 수준 생각하며 읽는 시리즈
김주환 외 엮음 / 우리학교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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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로 읽는 시, 마음으로 읽는 시'에 이어 '생각하며 읽는 시'가 나왔다. 

이 책은 고딩 수준으로 되어있으며, 몇 편의 시 뒤에 생각할 거리들이 붙어있어 수업용으로도 괜찮다. 

수능 시문학 영역의 1번 문항은 언제나 시들의 공통점을 찾아내는 것이었는데, 

이 시들은 대부분 주제들이 유사한 것들을 모아 두었기때문에 학습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공부라는 것은 알게 모르게 경험했던 것들이 쌓이고 쌓여 결과로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고등학생 자녀들에게 한번 권해주면 좋을 책이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공부하라고 건네기 전에,
정말 오랜만에 어른들도 시를 한 번,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시란,
절절한 할 말이 가슴 속 샘터에 고여 넘칠 때
혼자서 터져나오는 언어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풀어내는 것들이 많기때문에 
고딩들보다는 어른들에게 더 다가감이 큰 것일 터이기에...  

요즘, 세상이 거꾸로 돌고 있는데, 한심하기만 한 정부를 비판할 수 없는 유신시대가 돌아와,
최승호의 <북어>같은 시가 시심을 찌르르하게 한다.
노무현을 죽이고도 거짓으로 횡설수설하던 놈들은, 지금 천안함의 파손에 대해서도 입을 막고 있다. 더러운 시대.
북어같은 썩은 눈깔의 세상.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
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
막대기 같은 생각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느닷없이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최승호, 북어 부분>
 

 

장석남의 '번짐'은 아름답고, 아련하다.
이런 시를 만날 수 있는 시집을 만나는 일은 삶에서 잠깐, 말줄임표를 찍어 두고,......
쉼표를 크게 만나 한 호흡 길게 쉬는 일이 되기도 할 터.  

날마다 바뀌어가는 세상을, 그러나 그 바뀜은 연속적이어서 감각에 포착되기 어려운 바뀜인 것을
분절적인 시어를 사용하는 시인이면서도 장석남은 <번짐>이란 용어를 찾아내서 연속적 세상을 그리는 데 성공하고 있다.

수묵(水墨)정원 9 (번짐)- 장석남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또 한번 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

번짐,
번져야 사랑이지
산기슭의 오두막 한채 번져서
봄 나비 한마리 날아온다 



 

71쪽.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신경림, 파장 부분>

이게 맞는 시인데
이 책에서 <못된 놈들>로 되어있고, 깍고...라고 적어 두었다. 국어 공부책인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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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4-04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딩 아들은 확실히 큰딸보다 책을 덜 보더니, 2학년 돼서야 모의고사 언어 1등급 나왔어요.
권해주는 책은 책상 위에서 먼지만 뒤집어 쓰고 있어요.ㅠㅠ
마지막에 지적한 오류~ 국어 공부책이라면서 어이없네요.
 
천년습작 - 김탁환의 따듯한 글쓰기 특강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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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은 유명한 소설가이지 극작가이다.
김명민을 한 순간 명연기자로 알린 불멸의 이순신부터 황진이까지 소설로 그려냈고 극으로도 유명해진 이다. 그렇지만, 그의 열하광인을 나는 빌려다 두고 결국 조금 읽다 반납했으며, 리심이나 노서아 가비, 불명, 혜초 같은 작품들은 기회가 닿으면 읽은 생각은 있지만, 시간을 내서 찾아오지는 않을 정도의 그런 사람이다. 

아마도, 열하광인을 읽다 만 막연한 낯섦과 몇몇 편의 리뷰를 읽고 느낀 감이 그를 내 앞에 서지 못하게 막는 기제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가기 싫은 출장으로 KTX를 타야하는 일이 생겼다. 오가는 6시간동안 이 가벼운 책을 읽었다.
책은 매우 가볍고, 글쓰기 역시 가벼운 소재 아니겠는가 싶어서 들고 탔는데, 그닥 가벼운 내용만은 아니었다.(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이들은 글쓰기가 얼마나 힘겹겠는가만, 나처럼 놀이의 하나로 글쓰기를 저지르는 사람은 글쓰기가 가볍고 또 가볍다. 내게 무거운 것은 수업이나, 교직의 미래, 아이들의 삶과 생활... 같은 것이다.) 

안 그래도 요즘 오노레 발자크(자신은 '드'를 넣어 귀족 티를 내고자 했던) 평전을 읽고 있는데, 김탁환도 발자크에 필이 꽂힌 사람이라, 글이 재미있는 면도 있었다.
"좁은 책상의 오른편에는 작은 메모용 수첩이 있었다. 그곳에 그는 뒤의 장들을 위한 착상과 생각들을 기록해 두었다. 그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책도, 명령도, 산더미처럼 쌓인 자료들도 없었다. 그 모든 것은 발자크가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내면에서 완성되어 있었다."
캬, 이 대목은 평전을 읽으면서 나도 감탄해 마지않았던 대목이다. 어떻게 작품의 세부를 간단한 메모로 전부 기억할 수 있었던 것인지... 발자크의 천재성이 드러난다. 이거, 이러다가는 독자들에게서 글쓰는 힘을 확 빼는 것이나 아닌지 걱정되는 대목.  

폴 오스터(달의 궁전, 빵굽는 타자기, 뉴욕 3부작 등의 작가란다.)의 말도 의미심장.
"의사나 정치가가 되는 것은 하나의 진로 결정이지만, 작가가 되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선택하는 것이기보다 선택되는 것이다. 글 쓰는 것 말고는 어떤 일도 자기한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평생동안 멀고도 험한 길을 걸어갈 각오를 해야 한다."
빵굽는 타자기에 나온다는 이야기다. 이 대목을 읽으면 빵굽는 타자기를 읽고 싶어진다. 다른 독자들도 아마 그랬을 듯. 

소설 노동자 발자크(이렇게 쓰고 나니 정말 제대로 된 직업인으로서의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의 입상을 만드는 이는 조각 노동자 로댕 뿐,
이고, 그 조각 노동자 로댕의 삶을 살피고 평할 이는 시 노동자 릴케 뿐.(72)
캬, 박경리 선생이 작가에겐 두루마리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 말이 겹쳐진다.
작가든 무어든 온전한 힘을 한 군데 쏟아야만 작품이 쏟아져 나올 수 있는 법.
먹고 살기에 허덕여서는 소설 노동자든, 조각 노동자든, 시 노동자든 실패로 가는 법. 

예술가는 테크닉과 지식의 작업과 하등의 관계가 없다고 한다.(75)
예술을 하는 자의 자세.
그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예술의 가르침과 배움이다.
아, 학문을 어떻게 할까요? 하고 물었더니...
학문하는 자세를 말할 뿐~ 멋진 구절이다. 

발자크를 창조한 로댕에 대하여, 릴케가 외친 말.
그는 발자크의 모습을 이용하여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창조 그 자체였다.
창조의 자부, 창조의 오만, 창조의 황홀과 도취!!!
예술을 아는 사람들끼리 통하는 언어 너머의 세계가 들리는 듯 하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법은 '돌리틀 선생 항해기'를 통해 들려준다.
'귀를 대고 가까이 가야해. 멀리서 수면을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는 부족하지. 물 속에 귀를 푹 넣어. 그리고 그 아득한 침묵의 소리를 듣는 거야.'
온 마음을 다하여 바라보지 않으면 세상은 아무 이야기도 던져주지 않는다. 
저녁에 송강호와 강동원 주연의 '의형제'를 보았다.
사뭇 다른 외모와 성격의 배우들의 연기였지만,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과 '인간'이 참 깊다는 생각이 들었고, 감독의 세상보는 '눈'도 눈여겨봐둘 만 했다. 핵무기나 탈북 노동자, 이주 노동자와 인신매매 결혼 등이 아무렇지도 않게 세상을 횡행할 때 여느 사람들의 눈에 그런 것들은 즉자적으로 스쳐가지만, 예리한 이의 머릿속에서는 그것들이 날줄과 씨줄이 되고, 그 새로운 세상에는 아바타처럼 새로운 '인간'이 창조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심지어는 의형제도 맺을 수 있는. 

이 책은 스토리 디자인이란 강의를 카이스트에서 한 결과물이라고 한다.
마지막의 백년 학생, 천년 습작이란 말이 인상적이다. 

마지막에 참고 도서가 아니라, 강의와 함께 읽을 작품 목록...(욕심도 크다.)
발자크는 이미 거의 다 읽어가고, 빵굽는 타자기는 꼭 읽어야겠고,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도 이미 읽었다.
아니 에르노의 글들에 대한 소개가 있는데, 부끄러움, 칼 같은 글쓰기, 집착... 같은 책들은 한번 만나고 싶기도 하다. 발자크의 소설들도 찾아 읽어야 한다. 

하지만, 인생에서 늘 그렇다고 금아 피천득 선생이 그랬듯,
만나고 싶지만 만날 수 없는 사람도 있고, 그때 만나지 말았어야 했던 만남도 있는 법이니...
백년 학생의 천년 독서는 오리무중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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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글쟁이들 - 조선의 지식인으로 산다는 것
문효 지음 / 왕의서재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글쟁이라고 하면, 문인이라고 한문으로 쓰는 데 비해 저속해 보이기도 하지만, 치열한 프로 정신이 담긴 것처럼 읽을 수도 있다. 

이 책에는 그야말로, 조선에서 찾아낸 치열한 글쟁이들이 열 네명 소개되고 있다.
주로 내가 언어영역 가르치면서 많이 다루는 작가들이라 더 흥미로웠는지 모르지만, 블로그다 뭐다 해서 자기 의견을 남기기 쉬운 오늘날 글을 쓸 때 참고로 할 만 하다. 물론 누구나 이렇게 써야할 것은 아니지만, 무릇 작가라고 뻐기는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두고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1부. 살아있는 글을 써라.에서는 박지원, 정약용, 유몽인, 신숙주가
2부. 시대를 아파하라.에서는 이달, 허균, 허난설헌의 사제지간이
3부. 깊이 생각하고 실천하라. 에서는 이이, 이황, 김시습이
4부. 진실을 담아라. 에서는 정철, 김만중, 이익, 강희맹이 다루어진다.
글쎄, 파트별 제목과 서술된 사람들간에, 1,2부는 긴밀한 연관성이 드러나지만, 3,4부는 글쎄다. 

박지원의 글쓰는 법.
글을 잘 쓰는 사람이면 병서를 알 것이다.
글자는 비유하자면 사졸이고, 뜻은 비유하자면 장수이다.
제목이라는 것은 적국이고, 고사라는 것은 전장이며, 성루다.
글자를 묶어서 구절을 만들고, 구절을 모아서 장을 이루는 것은 대오행진과 같다.
운은 소리를 내고 수식으로 빛을 내는 것은 금고 정기와 같다.
조응이라는 것은 봉화대이다. 비유라는 것은 유기 遊騎이다.
억양 반복은 서둘러 싸워 시살하는 방법이다.
쓰기 시작하고 끝을 맺음은 먼저 올라가 적을 사로잡는 것이다.
함축을 귀중하게 여기는 것은 머리가 흰 군졸은 잡지 않기 위함이다.
여음이 있는 것은 군대를 거느리고 개선하는 모습이다.(소당적치기, 25)
 

햐, 이 정도 비유라면, 누에고치에서 실이 술술 풀려나는 경지가 아닐까? 

학문이 귀한 것은 실용에 있으니, 부질없이 인간의 본성이니 운명이니 하고 떠들어대고 이과 기를 가지고 승강질하면서 제 고집만 부리는 것은 학문에 유해(27)하다는 평가는 '직지인심'의 경지다. 

정약용은 성리, 고증, 문장, 과거, 술수의 <학문>을 부정하는데,
나의 소망이 있다면 온 나라 안이 모두 양반이 되는 것이니, 곧 온 나라 안에 양반이 없어지는 것이다.(43)
아, 이런 아름다운 역설이라니... 마치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을 읽는 기분이다. 

유몽인은 '맹자, 장자, 사마천, 반고, 한유의 글을 두루 모은 다음 스스로 조화로움을 창조했다고 할 수 있다'는 평을 얻는다.(65) 그만큼 자유분방하고 또 그만큼 방황하였다는 증거겠다. 그의 글은 장자의 '차이' 속을 뒤집는 이야기와도 비슷하다.

아아, 덧없는 세상의 삶이 가련하구나.
항아리 속에서 태어났다가 거기서 죽는 초파리 무리를 장차 모두 쓸어 거두어도 한 움큼도 채우지 못 한다.
인간 세계도 이와 다르지 않은데,
구구절절 자신만 내세우며 기쁘니 슬프니 야단법석이다.
어찌 크게 껄껄껄 웃을만한 일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내가 오늘 본 것으로 생각한다면 하늘과 땅 역시 손가락으로 가리킨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
하물며 이 봉우리는 하늘 아래 작은 사물에 불과하다.
이곳에 올라 높다고 떠벌이는 것이 어찌 거듭 슬퍼할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유두류산록, 73) 

신숙주. 그는 거의 옛 전적을 인용하지 않는다. 심지어 상소문에도 그 논지를 지킨다. 조선의 문인으로 자존감을 지키며 살았다.(89)고 평한다. 숙주나물처럼 금방 맛이 가는 지조없음의 대명사가 되어버렸지만, 그의 글을 보면 딱히 그렇다고 확신하기도 어렵다. 

99.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113. 성소복부고
122. 성소복부고
125. 성소부부고
130. 성소부부고
맨 앞의 것은 '이 달' 편에 있고, 나머지 넷은 '허 균'편에 실렸다.
학자에 따라 다르게 읽고 있기는 하나, 같은 논문 안에서도 앞의 둘은 복으로 읽고 뒤의 둘은 부로 읽었으니, 저자의 실수로는 제법 큰 것이다. 

이달의 시 중 가장 인상적인 시는 '불일안 인운'이다.
구름 속에 절이 있는데/ 구름이라 스님은 쓸지를 않아./ 손님이 와서 비로소 문 열어 보니,/ 골짜기의 송화가 이미 진 뒤더라.
여운이 남는 시로는 으뜸이다.
정민의 '한시 이야기'에 나오는 '제총요'도 유명하다.
임란으로 자식과 아비를 잃은 조손간. 아들의 무덤가에서 술 한 잔 한 것에 그만 취해 어린 손자의 부축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촌로의 짠한 모습.  

허균은 옥하가옥 屋下架屋 이란 표현을 쓴다. 남의 집 아래 다시 제 집을 짓고는 제가 제일 잘난 줄 안다는 것.  

뒷날에 지금의 글을 봄이 어찌 지금 우리가 앞의 몇 분의 글을 봄과 같지 않겠는가.
좌씨는 절로 좌씨가 되고, 장자는 절로 장자가 되겨,
사마천과 반고는 절로 사마천과 반고가 되고,
한유 유종원 구양수 소식은 또한 절로 한유 유종원 구양수 소식이 되어,
서로 답십치 않고 각기 일가를 이루었다.
내가 원하는 바는 이것을 배우자는 것이다.
남의 집 아래에다 집을 덧 짓고서 도둑질해 끌어낸다는 나무람을 답습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119, 문설)

허난설헌. 그의 이름은 초희였다. 조선시대에 여자가 이름을 가진 경우는 드문 일이다.
5만원권에 실린 사임당신씨도 성만 전해지잖는가. 그렇게 사랑받던 허초희가 말했다는 세 가지 한.
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 태어난 것. 김성립의 아내가 된 것.
아, 나는 이 대목에서 눈물이 나려 했다. 해마다 그의 규원가를 애써 가르쳤지만, 이런 한을 품었다 생각하니 그가 마음 저리게 아프다. 복도 없이 아이도 먼저 죽어버려 '곡자'를 썼다.
눈물을 가릴 수 없다. '피눈물로 울다가 목이 메도다.' 

이이는 조선의 천재였다고 한다.
젊은이는 건강했을 때 몸이 손상되어도 혈기왕성하여 나타나지 않지만, 만년에 이르면 해로운 독이 몸이 쇠약해진 틈을 타 한꺼번에 나타나듯, 지금 상황이 이와 같으니 10년을 지나지 않아서 큰 재화와 변란이 닥칠 것(166)이라고 상소도 올리고, 임금을 가르치는 '성학집요'도 올리지만 도루묵이 되었다. 안타까운 노릇. 

잘나갔던 이이에 비해, 배움이 보잘것 없던 이황. 그는 완전 노력파의 대표주자다.
그가 앞세웠던 것은 '경'인데,
번거로움을 바로잡는 데에는 고요만한 것이 없고, 졸렬한 것을 바로 잡는 데에는 부지런만 한 것이 없다.는 말에서 스스로를 다잡는 경건함이 읽힌다.(193)
젊은 고봉과의 서신에서 이기론에 대한 4단7정논쟁이 치열했지만, 학문적인 관심은 대단한 것이었다. 비록 서신이었기에 뜬구름잡는 식의 주장들이 오고 가서 명확한 정리를 남긴 것은 아니었지만 중국의 성리학을 조선에서 집대성하려한 노력은 대단하였던 것 같다. 

마지막 챕터의 정철, 김만중, 이익, 강희맹은 앞서 치열했던 작가들에 비해 읽히기에 밍밍하다. 

이 책의 장점은 지루하지 않게 속도감을 내어 <하룻밤에 읽는 조선의 문인들>처럼 두어 시간이면 재미있게 읽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다. 이런 책이 많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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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0-01-26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두어시간이면 돼요? 우아.
쓰신 서평을 보면 엄청 오랜 시간을~

글샘 2010-01-27 18:09   좋아요 0 | URL
저처럼 휘리릭 읽으면 두어 시간이면 읽습니다. ^^
아무래도 저는 국어가 전공이니 아는 체하고 대충 읽었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