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도 평전 - 정쟁의 격랑 속에서 강호미학을 꽃피운 조선의 풍류객 한겨레역사인물평전
고미숙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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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시간이면 으레 고전도 등장하는데,

개중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것들이 '연시조'다.

말투가 옛스러워 이해하기 힘든 것도 있고,

그 놓인 상황 안에서 읽지 못하면 이해가 어려운 것들이 많아 그렇다.

 

윤선도의 '견회요', '만흥', '어부사시사' 등을 가르치면서

그 말맛의 아름다움과는 다르게,

스트레스의 강도를 가르쳐야 하는데,

이 책을 읽음으로써 수업에도 도움이 많이 된다.

 

견회요~는 함경도로 유배를 가서 완전 고생하던 시절 쓴 시조다.

그러니, '임금님, 싸랑해요~ 알라뷰'가 5연에 절절하다.

 

그렇지만 '만흥'이나 '어부사시사'는 고향인 해남에 가서 쓴 것들이라,

'흥이 넘쳐 흐르고' '어부의 생애'가 만족스럽다.

 

물론, '인간'이 멀수록 좋다거나,

'파돗소리'가 '세상 잡소리'를 가려준다고 해서 속세의 이물감을 쓰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견회요의 '스트레스'에 비하긴 어렵다.

 

시조의 달인 윤선도.

그의 시를 설명하려면 이 책이 도움이 된다.

 

금쇄동은 평범한 산자락에 불과하다.

하지만 풍경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라 했던가,

심신이 모두 지쳐있던 고산에게 금쇄동은 온갖 시름을 잊기에 충분한,

나아가 마치 자신을 위해 숨겨둔 '시크릿 가든'처럼 다가왔다.(144)

 

윤선도와 보길도의 만남은 운명적이라고 할까,

암튼 고미숙이 읽어주는 윤선도의 삶은 신산한 속에서 얻어진 결정으로

'시조'를 청태낀 옥돌 닦아내듯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본문에서 보완해야할 곳 하나...

 

160쪽. 오우가의 본문을 제5수까지만 실어 두었다.

오우가는 원래 서장 + 5우 = 총 6수의 연시조이다. 마지막 '달'에 대한 시조가 더 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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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한글로 세상을 바꾸다 - 소통과 어울림의 글자 한글 이야기, 제3회 창비 청소년 도서상 학습 기획 부문 수상작
김슬옹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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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옹 님의 이 책은 훈민정음에 대한 쉬운 학습서로 참 좋다.

 

초등학교 고학년~ 고등학생 정도가 학습서로 읽기에 좋고,

성인들도 훈민정음에 대한 지식을 얻기엔 이 정도가 적당하다.

 

너무 많이 알면, ㅋ~ 다친다.

좀 복잡하게 들어가면 조선의 성리학 내지는 음양오행을 이해하려 들어야 하므로,

거기까지는 들어가기 힘들지만,

암튼, 훈민정음의 제자 원리, 풀이와 예를 든 '해례' 같은 설명도 좋다.

 

훈민정음이 왜 뛰어난 글자인지를 설명하는 부분은,

성인이 읽어도 좋을 부분이다.

어떤 점이 뛰어난지를 이해하는 것은 훈민정음을 사랑하고 올바르게 쓰려는 지름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훈민정음이 지금 우리에게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 것과,

창제 목적이 '애민 정신' 에만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잘못이라 생각한다.

 

세종의 정치적 입장(4대 임금으로서의 불안한 지위, 자기 자식들- 세자 문종, 세손 단종의 불안한 지위와 차남 수양대군의 위세)를 고려한다면, 훈민정음이 오로지 백성을 위하여 만든 글자라고,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일은,

이명박 대통령께서 '강물을 정화하기 위하여' 4대강 공사를 하신 것이라고 그대로 믿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우리가 훈민정음으로 문맹을 벗어나게 된 것은 일제 강점기의 '부작용'이다.

일제 강점기 이후 조선의 멸망이 한자 문화권에서 지식인의 활동을 훈민정음으로 옮겨오게 된 것이다.

만약 조선이 아직 이어진다면, 훈민정음을 사용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지 않았을까?

 

물론, 한자음을 통일하려는 목적도 있었고,

여러 가지 실용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삼강행실도>나 <두시언해> 같은 책을 집중 간행한 일이나,

<용비어천가>를 간행하여 신하들에게 배포한 것들로 미루어 보아, 그 창제 목적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훈민정음이 과학적이고 우수성이 공인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문자여서, 이전의 문자들의 장점을 흡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며,

구형 휴대폰에 적합한 문자였던 점 등을 홍보하는 일은 좀 안쓰럽다.

스마트폰 세대에서도 과연 영어보다 낫다고 할 것인지는 좀 그렇다.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가 고려의 <금속 활자>에 비하여 200년 뒤떨어지지만 그것을 크게 치는 것은,

그 활자가 정말 '살아서' 정신의 해방을 이끌어 오는 '종교 혁명'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조선의 금속 활자는 '권력자의 의지'를 공고히하는 데 기여하였을 뿐이다.

 

훈민정음이 세계 최고의 문자가 되려면,

그 문자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세계 최고의 문화를 누리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독재 국가에서 비루한 감방에서 '항소 이유서'를 쓰는 문자로,

'투쟁의 전선에서 선동적인 문자'로 쓰이는 문자가 가장 아름다울 수는 없는 법.

김구 선생이 제창한 '문화적인 국가'가 이뤄져야 그 문자 역시 아름다움을 더 널리 알리는 법이다.

 

결국 한글이란 훌륭한 문화유산을 이어받아서

가장 훌륭한 문화 생활을 누릴 수 있어야 한글을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 한글이 잘 돌아가는 전산 시스템을 이용해서

대통령 선거를 흐트리거나 하는 국가라면, 그건 문맹국보다 나을 게 하나도 없는 셈이 아닐까?

 

온갖 방송이나 신문에서,

현대자동차가 무얼 잘못하고 있어서, 왜 노동자들이 싸우고 있는 것인지,

왜 법적으로 지위가 보장되어야 하는 노동자들을 하청으로 미뤄버리는 것인지,

알리지 못하는 문자가,

희망버스 타고온 사람들이 술판을 벌이려고 전국에서 천여명이 모였다고만 떠드는 문자가,

국정원에서 선거에 개입한 정황은 번연히 있는데, 그것을 비판하는 모임을 알리는 힘은 없는 문자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무슨 문서가 이렇네 저렇네 말을 꾸며내는 데는 부지런히 쓰이는 문자라면,

문자가 사람을 위해 봉사하지 못한다면,

문맹이 낮은 국가라고 해서 결코 행복한 나라는 아님을 알아야 한다.

 

자기나라 축구가 이기면 선진국이 된 거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치면 축구 잘 하는 나라들이 선진국인 셈? 브라질, 아르헨, 스페인 같은 나라가?)

문자가 훌륭하면 좋은 나라라고 주장하는 것은 많은 오류를 품고 있어 보인다.

더 생각해야할 점이 많은 지점이다.

 

이 책에서 좀더 고려해야 할 점,----------------------

맨 앞의 만화 부분에서 '한글'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한글은 주시경 선생이 만든 말이라고 알려져 있다.

조선 시대가 배경이라면, 훈민정음, 언문 등으로 부르도록 고치는 게 낫지 않나 싶다.

그리고 '경상남도 상주'라는 지명도 등장한다.

경상도는 경주, 상주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지명이다.

둘 다 경북에 있는데, ㅋ~ 그리 치자면 경상남도는 어불성설이다.

경주도 상주도 없는데 웬 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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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3-07-24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의 현 상황은 사람들이 못 배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듯한 끝에서 세 번째 단의 글이 마음에 깊이 파고드네요. 좋은 문자도, 과학기술도, 머리도, 모두 어떻게 쓰이는가에 따라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고, 사람을 해치는 나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요.
 
한 접시의 시 - 나희덕의 현대시 강의
나희덕 지음 / 창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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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시는 화자의 '독백'이다.

철저하게 자기의 내면에서 울리는 두레박 출렁이는 소리를 그대로 옮긴 것이어서,

인물, 사건, 배경이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시가 어렵다고도 한다.

누구든 자기 맘 속의 고인 물을,

철버덩 두레박 드리워서 떠올리면,

그게 시가 된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라고' 쓴 글을,

또 훔쳐 읽는 재미가 쏠쏠나다.

그래서 그걸 다들 훔쳐 읽고,

흥얼흥얼 외우고 다니는 것인데,

어떤 이들은 또 그걸 분석하고 설명한다.

 

그래서 '시론'이란 게 나왔는데, 이게 영 생뚱맞다.

이 책도 그렇다.

나희덕의 시론은 '한 접시의 시'라고 해서,

뭐 무지 맛있어 보이는 음식처럼 달콤한 옷을 입혀 두긴 했다.

근데, 먹어 보면...

재료는 신선하고 좋은데,

요리 방식은 뭐, 구태의연하다.

 

이 책에서 그가 시론을 펼치기 위해 고른 시들을 읽는 것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그 외의 시에 대한 설명은... 뭐, 나도 모른다.

 

내 버킷리스트에는 '멋진 시 선생님 되기' 같은 게 있다.

나도 멋진 '시 해설사' 같은 사람이 되고 싶긴 하다.

그치만, 거기 시론이 얽혀드는 건 별로다.

 

사랑이 여명이라면, 연민은 일몰...

 

이런 구절들을 만날 수 있어서 이 책은 좋았다.

자기가 가르치면서 만났던 느낌들...

근데, 내 생각은 다르다.

사랑이 희망으로 가득한 새벽의 여명이고, 연민은 이제 갈앉는 해를 바라보는 일몰같은 거라고 보기엔

연민이 너무 가벼워 보인다.

내 맘 속의 연민은 여명에 가깝고, 사랑은 한낮의 태양에 가깝다.

 

발레리는 시와 산문의 차이를 춤과 보행에 비유했다.

산문이 어떤 대상이나 의미를 명료하게 전달하고 언어의 유용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보행에 가깝다면,

시는 대상의 심미적 특성이나 행위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춤에 가깝다.(87)

 

이런 문장을 만날 수 있어 좋다.

 

좋은 비유는 만물에 대한 열린 마음과 감각이 깊이 체화될 때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대상들을 원관념과 보조 관념으로 연결한다는 것 자체가

그것을 넘나드는 상상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니까요.

비유와 묘사가 단순히 수사적 새로움을 위해서만 필요한게 아니다...(153)

 

5장은 '비유와 상징', '은유와 상징'으로 혼동하며 쓰고 있다.

'비유'와 '은유'는 조금 다른데... 155, 157에서 뒤섞인다. 수정이 필요한 부분~

 

문학에 대한 사랑은 불가능한 사랑이면서 동시에 불가능에 대한 사랑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디 문학에 대한 사랑만이 불가능한 사랑이며,

또한 단지 사랑만이 불가능일까요.

모든 존재, 모든 사태는 불가능이며 그것들을 드러내는 언어 곁에는 필히 불가능이 따라붙습니다.

어쩌면 언어는 불가능을 숨기기 위해서만 존재와 사태를 보여 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170)

 

이성복의 수상 소감에 나온다는 이 말이 참 반갑다.

사랑은 불가능하다.

몸을 섞는 일이 불가능한 판국에,

마음을 섞는 사랑이 어찌 가능하랴.

다만, 그 불가능 곁에서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간절히 드러낸 것이 '시'라는 뜻이렷다.

 

심보선에게 시를 쓰는 일은,

 

타인과 맺는 비밀의 나눔

 

이라고 본다.

 

나는 시 쓰기가 사랑의 행위와 유사하다고, 아니 동일하다고 본다.(222)

 

이런 것이 내가 시를 좋아하는 이유고,

시를 읽는 이유다.

 

시의 존재 의미를 밝히는 시론 역시,

이런 비유적 언술로만 가능하다.

은유니 환유니 하는 어휘의 호명은 시의 본질에 다가가는 독자의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일일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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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3-01-23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를 읽어본적이 있는지 조차 기억이 나질 않네요.
아마도 고등학교때 원X연인가 하는 사람의 시집이라는 것이 마지막이 아니였나 싶은데...
시는 제겐 참...진짜로....정말... 너무 어렵습니다. 시도해볼 엄두가 안나요.

글샘 2013-01-23 20:42   좋아요 0 | URL
시가 어렵다구요?
사는 게 더 어렵지 않나 싶은데요. ㅎㅎ
시는 좋아서 읽으면 되는 거라 생각합니다. 그저 좋아서...

2013-01-23 17: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23 2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24 1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24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24 14: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24 2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 읽기 좋은 날 - 그날, 그 詩가 내 가슴으로 들어왔다
김경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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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오타가 났는데, 거기서 새로운 의미를 읽으며 웃기도 하는데,

행운이나 행복을 치려고 하다가 영타로 쳐지면 '행'자가 god가 되기도 하고,

오늘처럼 '아름다운'을 치려다가 '아픔다운'을 쳐 놓고...

아름다운 거와 아픔다운 거...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혼자 생각하기도 한다.

 

시.

시를 배울 때 잘못 배운 사람은,

시는 작가의 사상과 감정을 압축된 언어로 표현한 문학...이라고 외운다.

 

시.

시는 뭘까?

이창동이 영화로 만든... 시 poetry... 시라고 하는 것...

하여간 묘한 것이다.

 

암튼, 시는 '자기만의 고백'에 가까운 언어 행위다.

그래서 시를 읽고 '주인공의 처지, 환경, 상황'을 명백하게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것은 소설이 '들려주는 이야기'여서 소설을 읽고 나면, 인물, 사건, 배경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될 수 있음과 다르다 하겠다.

 

그래서 시 감상에 도움을 주는 일로,

이런저런 경험을 했을 때, 이런 시가 감각적으로 '격하게' 다가서지 않겠니?

이렇게 예를 들어가며 설명하기도 한다.

 

이 책의 작가는 국어 교사였으므로... 동일여고란 곳이 워낙 교사를 우습게 잘라내고 했던 재단이라...

아이들에게 시를 다가서게 하는 방법을 나름 고민했고,

그래서 삶에서 절절한 느낌을 짜릿~ 하게 표현한 시들을 가려 뽑으려 노력한 표가 완연하다.

 

내가 아들녀석 고3때 읽히려고 열심히 골랐던 시들과 많은 부분 겹치는 부분도 그래서 반갑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라고 뻗대는 구절이 있다.

삶은 짜여진 구도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어서,

당황스럽고 곤란한 순간부터,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난감하거나 앞이 캄캄해지는 일까지 불행해질 순간들로 점철되기도 하는 것인데,

그때, 알약 한 알로 그 순간을 잊는 것이 행복은 아닌 것이다.

 

시를 읽는 일은, 위로받는 일이다.

아~ 세상에 나만 이렇게 팍팍하게 가슴 쥐어 뜯으며 사는 건 아니구나~

내 이 미치겠는 마음을~ 이렇게 시로 써낸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내가 겪은 이 미치겠는 일이, 유일하게 내게만 일어난 불행은 아닌가부다...

이런 일 말이다.

 

진정한 위로는, 우산을 씌워주는 게 아니라 같이 비를 맞아주는 것이란 표현처럼...

예를 들면,

 

정말 마음 깊이 사랑했던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이랑 함께하는 순간은 모든 순간이 완벽했다.

완벽하게 행복했다.

이제 세상은 완벽하게 행복하고 화사한 빛으로만 넘실댈 것 같았다.

그런데... 그가, 가버렸다.

 

이런 상황이라면... 처음엔 멍~ 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의 부재를 어떻게 상상해본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음은 잊자고 잊자고... 망자를 잊으라고 절차가 있는 법...

그를 무덤에 어찌 묻을까...

그 캄캄한 곳에, 너를 어찌 두고...

거기 너를 혼자 두고... 나는 어찌 내려가라고...

 

그렇지만, 내가 너무 울면... 내가 너무 미쳐버리게 환장해서 정신을 놓아버리면,

거기 혼자 쓸쓸히 누웠을 너는... 너무 불쌍하니까... 너무 안쓰러우니까...

정말 아픈 건, 나보다... 너일테니깐...

그래, 일단, 나보다, 널 보내 줄게...

네가 원하는 건, 그걸 거야.

내가 미치는 걸 원하진 않을 거야.

그래. 알았어. 담담하게... 그렇게 널 보내 줄게...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이 그 꽃을 /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김소월, 진달래꽃)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사랑은 끝났더라도 그 사랑의 기억만큼은 누추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 자존심'으로 푸는 그녀가,

아직은 좀 어려보여서 이야길 하나 꾸며 본다.

 

내가 참으로 좋아하는 시인 이면우...

 

지방 도시의 어느 공장에서 홀로 시 쓰기를 즐기는 보일러공이 있었다.

그에게는 소박한 꿈이 있었다.

늦게 둔 어린 아들에게 '시인'이라는 아버지를 선물하고 싶었다.

그를 눈여겨본 사장은 시를 쓰라고 그에게 휴가를 선물하낟.

휴가 동안 그는 한 권 분량의 시를 쓴다.

사장이 사비 들여 오탈자 많은 붉은 시집을 묶어 준다.

이런 시집의 운명이 어떻겠는가.

창고의 비료포대 자루로 들어간 폐품이 가까스로 눈밝은 이의 눈에 띄고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서 존애에는 문단에 알려진다.

이면우 시인과 그의 시집은 이렇게 태어났다.

말 그대로 발굴이었다.(한겨레, 2009. 3. 7)

 

오솔길 가운데 낯선 거미
아침 이슬 반짝하니 거기 있음을 알겠다
허리 굽혀 갔다, 되짚어 오니 고추잠자리
망에 걸려 파닥이는 걸 보았다
작은 삶 하나, 거미줄로 숲 전체를 흔들고 있었다
함께 흔들리며 거미는 자신의 때를 엿보고 있다
순간 땀 식은 등 아프도록 시리다

  

그래, 내가 열아홉이라면 저 투명한 날개를
망에서 떼어내 바람 속으로 되돌릴 수 있겠지
적어도 스물아홉, 서른아홉이라면 짐짓
몸 전체로 망을 밀고가도 좋을게다
그러나 나는 지금 마흔 아홉
홀로 망을 짜던 거미의 마음을 엿볼 나이
지금 흔들리는 건 가을 거미의 외로움임을 안다
캄캄한 뱃속, 들끊는 열망을 바로 지금, 부신 햇살 속에
저토록 살아 꿈틀대는 걸로 바꿔놓고자
밤을 지새운 거미, 필사의 그물짜기를 나는 안다
이제 곧 겨울이 잇대어 올것이다

이윽고 파닥거림 뜸해지고
그쯤에서 거미는 궁리를 마쳤던가
슬슬 잠자리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나는 허리 굽혀, 거미줄 아래 오솔길 따라
채 해결 안된 사람의 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이면우, '거미' 전문)

 

이면우의 거미를...

마흔 아홉... 가을 거미의 외로움임을 안다...는 구절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사는 일은 늘 찌질한 순간의 연속이다.

내가 아무리 돈이 많고,

높은 지위에 올라있는 사람이라 해도,

삶의 매 순간은 참 찌질하다.

 

그 찌질함을 당당하게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시'다.

다들 소심하게 찌질함을 감추거나,

허세에 담아 내지르고 살 때,

혼자서 언어의 그물에 자신의 찌질함을 풀어내는 게 시인이다.

 

백석의 '갈매나무'가 그렇고,

육사의 '절정'이 그렇고,

황지우의 '새들'이 그렇다.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비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강, 황인숙)

 

ㅋㅋ 찌질하다.

찌질한 인간들의 삶을 이렇게 말로 해 놓으니...

서로 찌질해서 눈물날 지경이다.

그래, 그러니, 눈도 마주치지 말잔다.

 

이 책은 1 : 1.6의 황금비율을 가진 사이즈도 그렇고, 멋진 동피랑 마을 사진도 그렇고...

참 이쁘다.

시들도 참 이쁘다.

근데... 사진을 이쁘게 싣자니 그랬겠지만... 아쉽게도 종이가 넘 두껍다.

그리고 작가의 삶이 조금 더 깊었더라면... 이런 부분이 저 '진달래 꽃' 처럼 몇 군데 보여 아쉽다.

다만, 더 깊어지면, 더 좋은 책을 내 주겠지... 하는 기대가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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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7 1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7 1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국어의 정석이다
허재영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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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었지만, 한글 맞춤법에 자신이 없었다.

한 페이지 정도의 논설문(주장하는 글)을 써야 하는데, 도무지 글이 시작부터 나가지지가 않았다.

난 고등학교때까지 국어 점수가 최상위권이었는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제대로 된 '문법'을 배운 적 없고, 제대로 된 '작문' 교육을 받아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내가 졸업한 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의 고교는 어떨까?

우리때보다 더 문법에 취약하다.

수능 언어영역은 얄팍하게 읽는 습관을 들여 놔서, 독서 교육과는 상반된 길로 가고 있다.

거기다 교육부란 이상한 집단은 수행평가도 못하게 '서술형 평가'를 만들어 애들을 망치고 있다.

작문은 망쳐지고 있으며,

상위 집단의 독해 능력은 갈수록 세계 최하위로 떨어지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은 멋지다.

'정석'이란 수학 자습서를 고교 졸업생이라면 거의 알고 있듯이,

이렇게 제목 붙여두면, 국어의 여러 가지 문제 - 읽기, 쓰기,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문장 쓰기 등... 를 한 큐에 해결할 것처럼 꾀고 있기 때문인데, 천만의 말씀이다.

 

이 책을 읽어도 한글 맞춤법에 능통해지지 않는다.

다만, 국어 사전을 더 부지런히 찾아 봐야겠구나~ 이런 생각은 들 거다.

 

<이 책을 읽고 공부해야 할 점들>

 

1. 불필요한 높임법

 

이 적금은 이자율 높으시고 굉장히 안정적이세요.(이 적음은 이자율이 높고 굉장히 안정적이에요.)

이 색깔은 하나 남으셨습니다. 반응이 너무 좋으세요. ㅋ~(하나 남았습니다. 반응이 너무 좋아요.)

 

2. 불필요한 사동

 

여자 친구 소개시켜 줄게.(소개해 줄게)

국어 교육시키는 분이다.(교육하는 분)

행복한 하루 되세요.(행복한 하루 맞이하세요.)

 

3. 습관과 규범의 괴리감

 

아버지도 [아버지두], 그리고 [그리구], 하더라 [하드라]

 

서울 사투리를 쓰면 다정다감해 보이기도 하는데,

습관과 규범의 괴리감을 잘 적어 놓고 있다.

 

 

<좀 더 섬세했으면 하고 바라는 점>

 

1. '국어, 우리말, 한국말'이 이 책에선 뒤섞여 쓰인다.

 

국어/우리말 쪽이 더 일반적인 말이 아닐까 싶다.

'국어 = 한국어'라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한국어 교육이라고 하면, '외국인 대상으로 한 남한의 언어 교육'이므로...

남한(한국), 북조선, 연변조선족 등으로 이루어진 'Korean' 사용자들을 '한국인'으로 부르면 안 된다.

'고려말'이나 '조선말' 아니면 그냥 '국어'라고 불러야 한다.

통일 뒤에 다시 논의해야 할 일이나, 마구 뒤섞어 쓰는 일은 아쉽다.

 

2. 서술격 조사... ㅠㅜ Be 동사는 분명 동사라규~~~!!!

 

학교 문법에서는 '이다'를 '서술격 조사'라고 통일하였습니다.

 

-는, -을, -도, -만....이랑 어떻게 -이다, -이고, -이지, -이면서도... 가 같은 품사란 말인가... OTL

 

3. 훈민정음 서문의 오류

 

이렇게 유명한 글을... 어떻게 틀리게 표기할 수 있는지... 에혀~

 

니르고져 할배 이셔도...에서 'ㅎ+ㅗ+ㄹ+여린히읗'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ㅎ+아래아+ㄹ+여린히읗'이 들어가 있다.

그리고 스물 여덟  '자'에 'ㅉ+아래아+ㅇ'를 썼다면, 마찬가지 종성 빈자리 표시 동그라미를 '세종어제'에도 붙여 줘야 한다.

그리고 이 글의 명칭은 '훈민정음 서문'인데, 그것을 '세종어제 훈민정음'으로 부른 것도 마뜩잖다.

 

4. 문법/독해 고교 교육의 문제점

 

174쪽에서는 문법 교육을 수능의 잘못으로 돌리고 있다.

물론 그런 면이 없지 않으나, 중학교에서 문법이 형식적으로 다뤄지고 있으며,

국어 문법은 고등학생 수준에서 충분히 가르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

 

그리고 수능 지문을 읽는 시간이 부족한 것은 '독해력' 부족이 원인이 아니다.

학생의 수준은 모두 다른데 한 가지 평가 도구를 쓰다 보니 누군가에겐 늘 시간이 부족하게 마련이다.

실제로 수능은 수도권 상위 대학 입학생 정도에만 변별력을 발휘할 수 있다.

 

5. 사소한 연도 오류 : 갑오 개혁 (1895)... 갑오년은 1894년...

 

 

학교에서 '문법'은 필수과목으로 가르치도록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작문'도 실제 글쓰기를 시킬 수 있도록, 적은 학생과 적은 수업을 배려할 수 있다면 좋겠다.

국가에서 해주길 바라는 건 백년하청~

어떻게든 현장에서 방도를 찾아봐야 할 일이다.

 

국어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읽기엔 이 책은 너무 방대하고 얕은 지식을 펼치고 있고,

별로 관심을 갖지 않은 사람이 읽기엔 이 책은 좀 학구적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어느 정도 한글 맞춤법에 자신감을 갖게 되고,

5분 정도 말할 분량의 글 정도는 감동적으로 쓸 수 있는 작문 교육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런 풍토가 조성된다면 참 좋겠다. 국어 교육은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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