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삶이 만나는 글, 누드 글쓰기
고미숙 외 지음 / 북드라망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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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친한 선배가 나를 크레믈린이라고 불렀다.

그 선배는 유독 나를 잘 챙겨 주었는데,

친하다는 것 이상으로 나를 알고 싶었는지 모른다.

나는 나를 감추는 크레믈린이 아니었는데... 다만, 어떻게 내보여야할지 모르는 것들이 많았고,

또 내보이기 싫은 것들로 가득한 내 삶에 대하여 떠벌이지 않았을 뿐인데 말이다.

 

<당신>이 누구인지 소개해 보시오~

이런 물음에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내 이름, 내 학력, 내 나이, 내 사는 곳, 내 가족 관계, 내 직업, 내가 읽고 있는 책...

어떤 것도 '나'에 가까이 다가서지 못한다.

 

그런데, 나만 크레믈린이었던 건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 살던 시대엔, 누구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없는, 억압의 시대에 짓눌려 있었을 것이다.

가난한 가족, 가부장적 문화, 거기서 대화의 광장이 펼쳐지긴 힘들었을 게다.

친구 문화 역시 삐뚤어진 방향으로 나가기 쉬웠을 게고,

어른이 되어서도 술기운을 빌리지 않으면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다.

분노의 게이지가 높아갈수록 2차, 3차, 차수만 높아갔을 게다.

그렇게 건강을 잃고, 가족을 잃고... 낙오된 삶에 눈물지었을 게다.

 

이 책은 첫부분에서 '사주 명리학 기초'가 논의되고 있다.

그래서 사주 명리학의 기본 개념을 통하여...

자신의 속성에 가까운 것들이 어떻게 자신에게 발현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렇게 자신의 속성을 알게 되면, 자기를 드러내기 쉬워진다.

가족의 가난도, 가족의 불화도,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불협화음으로 일삼는 자신의 일상도,

답답하기 그지없는 자신의 정신 세계도... 모두 '내 탓'이 아니라, '사주'의 영향임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주명리학'은 우리가 무의식중에 뒤집어쓰고 있던 원죄를 사하여 준다.

무의식 속에서 '내 잘못, 내 탓'이라고 가슴을 치던 것들이, '네 잘못이 아니야~' 하는 한마디로 위안을 받게 된다.

그 다음엔, 누드 글쓰기가 가능해 지는 것이다.

그래. 나는 이런 환경에서 이렇게 살아 왔어.

근데, 이제껏 그걸 부끄러워해서 드러내지 않았지만, 이제보니 그게 나였더라~

근데 중요한 건, 그런 '명'보다 그걸 어떻게 살아가는지 하는 '운'이란 걸 이제 아니깐,

난 앞으로 잘 살거야~

그런 걸 '용신 用神'이라고 한다.

결국 '운 運'은 '움직이다, move'의 뜻이니 그 주체는 '나'가 되겠다.

 

용신이란 팔자를 잘 순환시키기 위한 매개항에 해당한다.

만약 금과 수로 가득차서 목기가 결핍된 사주가 있다면, 목이 곧 용신이다.(20)

 

운때가 찾아올 때까지 입벌리고 가만히 기다리자는 말이 아니다.

미리부터 나는 미래에서 나를 찾아오고 있는 뜨거운 불덩이를 쥐기 위한 훈련에 돌입해야 한다.

사주명리학에서는 이를 용신이라 한다.

용신은 치우친 사주의 균형을 잡아주는 무게추와 같은 것이다.(77)

 

내 사주에는 금과 토가 결핍이다.

그걸 채우기 위해서... 금의 기운, 토의 기운을 애써 가져야 한다.

몸을 쓰고, 재물과 재능을 베풀고, 마음을 비우는 게 용신의 기본이라고 했다.

몸이 움직이도록 노력하고, 재물이 없다면 재능이라도 열심히 쓰고, 욕심내지 말고,

그렇게 금과 토를 찾아야 하는 거...

 

이런 글쓰기가 이 책의 소명이다.

뒷부분에 오행의 각각에 배치된 팔자 중에 집중된 항목, 강화된 항목이 두드러진 이들의 글쓰기를 보여준다.

 

늑대는 아무리 일촉즉발의 위기의 순간에도 늘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고 한다.

이를 통해 자기를 쫓고 있는 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된다.

눈앞의 위험을 직시하고 거기서 의미를 발견해 내려 노력할 때 위험은 오히려 그의 미래를 힘껏 열어 젖히는 힘으로 찾아올지 모른다.(72)

 

개는 낯선 물체가 달려오면 무조건 도망가고 본다.

고양이(늑대)는 그걸 주시한다. 그러다 '로드 킬' 당한단다.

사주 공부 역시 그런 거란다.

세상을 직시하고, 원망하지 말고, 자기를 인정하고,

그 자리에서 의미를 도출하려 한다면, 개운 開運 의 때가 도래한단 것...

 

왜 나만? 왜 나에게 이런 불행이?

이렇게 되묻기만 한다면 어떤 고통에서도 배울 수 있는 건 없다.

오히려 세상과 사람을 향한 증오심만 키우거나 극단적인 자기 비하에 빠진다.

사실 인간은 고통 속에서 삶의 깊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고통은 나쁜 것이 아니라,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매 순간 다가오는 고통과 갈등을 내 공부로 삼는다면, 그는 진정 너그러운 사람이다.(101)

 

오행은 상생과 상극의 꼬리물기로 이뤄져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이익과 손해로 볼 수만은 없다.

 

생과 극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기운이다.

고정된 명사가 아니라 변화하는 동사인 것이다.

불규칙한 동사의 용법을 체득하기 위해선 많이 입으로 내뱉어 보아야 하듯이,

생각의 원리 또한 몸과 마음으로 직접 익혀야 한다.

정녕 극이 극에 달하면 생이 된다. 그렇다면 극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극 많은 내 사주를 하늘의 선물로 여길 수 있으리라.(104)

 

그렇지만, 사주 공부를 한다고 해서 '정답'이 보이는 것은 아니다.

삶은 주어진 길을 그대로 걸어가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때로 선택하고, 때로 포기하는 것이 삶이기 때문.

 

사주를 공부하다 보면 애매한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전부 내 얘기같고, 그럴듯하게 끼워 맞출 수도 있을 법하다.

사주 팔자고 이 바쁜 세상에 '한 큐'에 정답을 찾고 싶을지 모르나,

변수가 많고 애매모호한 것이야말로 사주명리학의 미덕이라 주장하고 싶다.

애매하기때문에 보다 찬찬히 자신의 삶을 뜯어봐야 하고,

그 과정을 거쳐야 복잡하게 얽힌 인과의 고리를 비로소 엮을 수 있기 때문이다.(108)

 

내 사주는 '물'이다. 그것도 큰 바닷물이 아니라 '골짜기 물' 계수다.

그래서 스케일이 작고 좁다. 좁쌀도 이런 좁쌀이 없다.

그렇지만, 그래서 섬세할 수 있다. 차근차근 하는 일을 답답해하지 않고 차근차근 할 수 있다.

쉽게 열받지 않고 천천히 갈 수 있다.

아이디어나 창의성이 그럭저럭 사주에서 받쳐주고 있으며,

물처럼 유연한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물이 극하는 '불'이 내 사주엔 가득하다. 넘친다.

그런데다, 내 이름에도 불 화가 네 번이나 들어간다. 아주 죽이는 팔자다. ㅋ~

그래서 내 삶에서 '일복'은 차고도 넘친다.

내가 가는 학교는 어디나 무슨 '연구학교'를 해야 한다.

아주 배타적이었던 학교라도, 내가 가면 반드시 뭔가가 큰 덤터기로 몰려든다.

 

지금 읽고 있는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를 차근차근 더 읽어보고 누드 글쓰기를 해야할 노릇이지만,

뭐, 어떤 점괘로도 내 운명은 확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 정도는 이제 알겠다.

 

내가 움직이는 것에 따라 운세도 바뀌어 갈 것임을...

지금, 여기서 내가 잘 사는 데 따라 미래도 복된 것으로 돌아올 것임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과 '나의 운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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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2012-10-31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 글 읽고 바로 주문해서 오늘 책 받았습니다.
그런데 땡스투를 깜빡! +.=;;;


글샘 2012-10-31 17:17   좋아요 0 | URL
이런, 중요한 땡스투를~~~ 제 통장으로 100원 입금해 주세요~ ㅋ~

Mephistopheles 2012-10-31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크레믈린이라고 불렸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무려 부모님에게요.

글샘 2012-11-02 18:57   좋아요 0 | URL
한국 사회의 중년들은 어린 시절, 크레믈린 많았을 거예요.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다만... 자수하기 전까진 표나지 않죠. ㅋ

깐따삐야 2012-11-02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어요, 글샘님. 꼭 그런 선생님이 있죠. 어딜 가나 일복이 차고 넘치는. 글샘님이셨군요. 저는 그 반대인 경우랍니다. 팔자도 그렇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제 능력이 모자라서.^^ 저는 주로 능력있는 선생님들이 인내심을 갖고 곁에서 도와줘야 하는 타입의 선생. 갑자기 글샘님께 죄송스러워지네요.

글샘 2012-11-02 18:59   좋아요 0 | URL
팔자를 풀어 보면... 도와주는 '인성'이 가득 차 있을 거예요. ㅋ~
저는 일복이라는 '재성'이 무려 5글자나 되더라는... ㅠㅠ
능력있는 게 아니라, 일을 많이 하니깐... 능력있다고 옆에서 꾀면 넘어가요... ㅠㅜ
 
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 - 김별아, 공감과 치유의 산행 에세이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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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종주를 통하여 마음 치유도 겸했다던 1권에 이은 2권이다.

1권과 대동소이하다.

산이 달라졌다고는 하나, 산이야 어느 산이든 오르고 내리는 것 뿐.

실제 걸어본 사람은 온갖 감동을 느껴서 이렇게 책을 쓸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이런 걸 책으로 만드는 일은 ... 글쎄?다...

 

오로지 내 발로 내 온몸을 밀어야만 떠나듯 벗어나든 할 수가 있다.

그때까지는 이 고립과 한계를 기꺼이 흠뻑 즐기는 수밖에 없다.

그조차 산의 품에 깊이 안긴 이의 운명이자 축복이라 여기며.(252)

 

산행에 달인은 없다.

숙달되어 다른이보다 빨리 갈 수는 있지만, 그러면 많이 보고 느끼질 못한다.

아무리 훈련이 된 사람도 오르막길에서 숨차지 않은 사람은 없다.

누구나 자기 페이스대로 뚜벅뚜벅 걸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산행은 삶과 흔히 비유되는 것이고, 산행을 유의미하다고 하는 것이다.

 

무엇을 하든 무언가를 반드시 얻어야 한다는

결과주의와 성취지상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어느 누구도 제대로 산을, 삶을 즐기지 못한다.(244)

 

산행에는 어떤 결과도 없다. 성취도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내 발걸음이 나를 옮기고 있음을 순간순간 깨닫는 일보다 소중한 건 없다.

 

산에서는 불평불만을 터뜨려도 소용없다.

오르막이 힘들고 내리막이 미끄럽다고 투덜대봤자 제 입만 아프다.

비가 온다고 욕을 해도 비가 그치지 않는다. 덥다고 짜증을 부려도 갑자기 시원해지는 게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한계란 엄연히 정해져 있다.(215)

 

산이 가르치는 것. 겸손이다.

이번 책에서는 단조로움을 피하고자 한 꼭지에 하나씩 시를 덧붙였다.

처음엔 신선했지만, 뒤로 갈수록 뒷심이 빠지는 기분이랄까? 암튼 그랬다.

 

대안학교 아이들과 부모들의 산행에서 빠질 수 없는 이야기가 나와서 반가웠다.

 

부모들이 목적의식적으로 체벌과 사교육이 없는 민주적인 대안학교라는 온실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아이들이 잡초처럼 치열하게 자신과 사회에 대해 고민하기를 바라는 욕심을 부리는 것은 아닌가?(183)

 

대안학교는 학교의 대안이 아니다. 아직 실험이지만, 한국처럼 획일적인 사회에서 대안학교는 좀더 광범위한 실험을 요한다.

그것도 공교육 안에서 실험학교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뭐, 산에 가면, 오로지 걷는 일만이 중요하다.

숨쉬는 일만이 중요하다.

시인 이성선은 그래서 '문답법을 버리다'를 썼다.

 

산에 와서 문답법을

버리다

 

나무를 가만히

바라보는 것

구름을 조용히 쳐다보는 것

 

그렇게 길을 가는 것

 

이제는 이것 뿐

 

여기 들면

말은 똥이다(이성선, 문답법을 버리다)

 

두타산의 '두타'는 두산타워의 준말이 아니라, 산스크리트어로 '버리다, 비우다, 씻다'의 뜻이란다.

염화시중의 가섭 존자가 '두타 제일'로 불리웠다고...

산행이 고행에 가까운 것은 '버리고, 비우고, 씻는' 과정이 함께하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 몇이냐고

쉰일곱이라고

그중 한 사람이 말하기를

조오흘 때다

 

당골집 귀때기 새파란 그 계집만

괜스레 나를 보고

늙었다 한다(정희성, 태백산행, 부분)

 

나이는 상대적이다. 쉰일곱도 조오흘 때다~하는 소릴 들을 수 있다.

나이 탓하지 말고 걸을 일이다. 사는 일 역시 같다.

 

저 어린 꽃망울들 좀 보세요, 조것들

솜털 보송보송한 이마에 분들을 바르고

아휴, 조것들이 어디 있었을까요.

어떻게 나왔을까요?

대관절 무슨 힘으로 저렇게

푸른 하늘 향해

솟구쳤을까요? (윤제림, 어린 날의 사랑, 부분)

 

이런 걸 볼 줄 아는 게 산행의 묘미다.

 

산행은 덜고 빼기만 하는 '빼기의 게임'이고,

'고스톱'처럼 패를 받으면, 끝까지 달려야 하는 게임이다.

산행기를 읽는 일은 그래서 한편 허전함을 가질 수밖에 없는 필연을 안고 있다.

이 책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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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수업 - 나이에 지지 않고 진짜 인생을 사는 법
가와기타 요시노리 지음, 장은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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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내가 '중년'이라 생각하고 이 책을 주워들었는데,

읽어보니, 이 책은 퇴직 후의 삶에 대한 지침서 비스름한 거였다.

이 책에서의 중년은 내가 생각하는 노년의 모습이었다.

 

암튼, 읽노라니,

지금 내 삶에 큰 위안을 주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퇴직하게 되는 17년 후...

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활발하게 노년의 새 삶을 만들어 나가고 있을까?

몸은 건강할까?

아내랑 친구랑 다들 건강하게 나랑 잘 놀아줄까?

책도 잘 읽고 그림도 잘 그릴 수 있을까?

손자 손녀들이랑 신 나게 뛰어노는 발랄한 할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동화책 읽어주고, 틈나면 과자도 구워주는 멋쟁이 할아버지가 되어 있을까?

....... 아니면... 어느 것도 못하는 왕따가 되어 우울하게 살고 있는 연금생활자가 되어있을까?

 

저자는 퇴직 후가 <알짜배기 시간>이라고 한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이야기다.

퇴직하고 5년~10년 살다가 세상을 하직한다면 대충 마무리해도 별무이상일 게다.

하지만, 60세에 퇴직한대도, 70세까진 어영부영 일을 한대도, 90세이상 산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제대로된 직장을 갖지 못할 것이 당연지사이므로,

남는 시간을 <알짜배기>로 만드느냐, <종일재가>의 우울한 나날을 보내느냐를 미리 준비함이 옳다.

 

<오래될수록 가치를 발하는 놀이>를 개발해야 한다.

그러면 노년도 즐거울 수 있을 게다.

고스톱이 즐겁다면 그것도 좋다.

술과 담배는 글쎄다.

예전 농촌 노인들은 체력이 뒷받침되어 술담배가 가능했는지 몰라도, 난 그건 아니다.

이미 담배는 손에서 놓았고(체력 고갈이 느껴져서), 술도 용감함을 버린 지 오래다.

책은 노년이 되면 아마 시시할 거 같다.

괴테처럼 이쁜 여자친구가 생긴다면 생의 활기를 찾게될지 모르지만,

그 나이의 손녀랑 노는 게 더 재밌는 할아버지가 되어 있을 거 같다.

내 주특기가 아이들이랑 놀아주는 것이니 말이다.

 

난 퇴직하고도 아이들과 놀아줄 수 있는 무언가를 간직하고 싶다.

그래서 지금도 연구하고 있는 게, '공부하는 방법의 지도'다.

할아버지가 아이들과 상담하면서 놀아주기론 제법 괜찮은 테마 아닐까?

물론 애들은 과자로 꾀어야 하고, 내 학벌 정도면 재능기부한다고 깝쳐도 뭐 괜찮을 거다. ㅎㅎ

한국이 학벌 사회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게다.

 

무엇보다 '독립'이 중요하다.

옳다.

지금의 노인 세대는 여기서 실패한 이들이 많다.

국가는 총체적 복지 부실이다.

미래의 노인 문제는 개인의 '독립'이 최우선 과제다.

일본처럼 초고령 사회로 들어간 나라나, 한국처럼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는 사회는

모두 복지와 개인의 노력이 노년의 삶을 '독립' 시켜줘야 한다.

 

휴, 한국은 참 독립할 거 많다.

일단, 국가적으로 정치적 독립 돼야 하고~ ㅠㅜ

청소년기 끝나면 청년기 젊은이들을 가족으로부터 경제적으로도 독립시켜 줘야 하고,

가정으로부터 성인도 <개인>으로서 독립하여야 하고,

노년의 독립도 노력해야 한다.

 

LiG 생명보험에 아무리 띠링띠링 해둔대도,

그걸로 만족할 수 없을 게다.

사회 전체적 합의가 일정정도 필요하다.

개인의 독자적 책임으로 밀어붙이는 사회는 정글 그 자체일 것이므로...

 

노년엔 '직함 아닌 명함'을 가져야 한단 말도 재밌다.

직장인에겐 직함이 있다.

그러나 노년의 황혼기엔, 직장은 접었을 거고~ ㅋ~

나름대로 명함을 팔 종목을 찾아야 한다.

 

내가 어느 회사 서평단 활동에서 우연히 얻게된 명함에는

'책읽고 글쓰는게 행복한 남자'란 글귀를 넣어 두었다.

그 글귀를 보는 사람들마다, 참 색다른 명함이란 이야기들을 했다.

그저 00학교 국어 교사, 또는 00학교 생활지도부장교사~ 이런 명함은 '직함'이지 나의 특징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 거다.

그런 명함.

당신에겐 어떤 명함을 파 드릴까요? 하고 물었을 때,

하루 정도 고민하고 나면, 이러구러한 명함을 파 주세요~ 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노년기엔 몸의 변화를 준비해야 하고, 떠나고 비울 준비를 해야한다는데,

뭐, 그거야 언제 올지 모를 사자를 굳이 기다릴 필요 있겠나 싶다.

노년에도 뭔가 조금은 움켜쥐고 욕심내야 몸이 건강하다는 이론도 있음을 생각한다면,

텅 비우고 다 나눠주고 나면, 삶이 재미없을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암튼, 젊으나 늙으나...

요지는 <재밌게>다.

난 노년에 명함에 이렇게 새겨 넣고 싶다.

 

한때 책에 미쳤다가 그림에 빠졌다가, 요즘엔 하냥 재밌게 사는 남자 사람

 

ㅋ~ 노인이란 말은 쓰기 싫단 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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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2-07-17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년을 준비한다는 것이 어느샌가 경제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전부인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만약 그것이 노년 준비의 전부라면 우리의 노년은 필연적으로 우울할 수밖에 없겠지요? 전 어던 노년을 준비해야할까요? 아직 30대 중반인데 쓸데없는 고민인가요? ㅎㅎ

글샘 2012-07-17 15:19   좋아요 0 | URL
40대 중반인 저한테 그걸 물으심 어쩝니까? ㅎㅎㅎ
암튼 물심양면으로 준비를 해야죠.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 운명조차 빼앗아가지 못한 '영혼의 기록'
위지안 지음, 이현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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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지안... 죽음으로 '삶의 의미'를 가르친 청춘의 이름

 

1979-2011

향년 32세...

독한 공부벌레였던 그는 노르웨이에서 숲을 공부하고 돌아와 푸단 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중,

온몸으로 전이된 암 환자가 되어 삶을 놓아버렸다.

 

그는 죽음이란 주제를 앞에 두고,

또 독하게 자기가 할 일을 찾아낸 것이다.

그것 바로 무외시... 두려움을 없애 주는 보시를 실천하려는 책이 이 책이다.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는... 죽지 못해 사는 것일 수 있다.

사람들은 행복해서 살지만은 않는다. 마지 못해 살아 있게도 되는데...

정말 죽음이 눈앞에 보이게 되면, 남은 시간을 어떻게 누릴 것인지를 골똘히 생각하게 될 것이다.

보통 사람은 골똘히 생각하다 죽음을 맞게 되지만, 위지안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삶의 의미'를 가르친 청춘이었다.

그것이 그의 삶의 이유가 되었던 것이다.

 

불리불기... 이별하지 않기, 포기하지 않기... 양말을 사다 신기는 맥도널드 남편... 눈물겹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돌아본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자기만의 촘촘한 프레임을 짜놓고 사람을 대한다.

그러나... 어느날 문득 깨닫게 된다.

예전에 집착했던 그 모든 조건들이 죄다 의미없는 고집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중요한 것은 단 하나뿐이다.

인생이라는 차가운 벌판 위에서 끝까지 손을 놓지 않는 존재.

그런 사람인가 하는 점.(86)

 

추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후회하게 된다.

당신의 추억이 우주에서 하나밖에 없는 값진 재산이라는 것을...

인생의 어느 순간 알게 된다.

 

우리는 누구나 죽는다. 그것만이 유일한 진리다.

그렇지만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어리석게 살아간다. 바보들...

 

그에게 따스하게 대해준 백정 의사를 보고 느낀 점.

 

실력의 끝마무리는 언제나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향해 진정으로 열린 마음이 없는 한, 그저 '실력자' 수준에 머무를 뿐.

 

그렇다. 진심이 담겨있지 않다면, 어떤 전문가도 냉혹한 실력자에 불과하다.

그가 필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존경할 수 없다는 것일 게다.

 

암이란 것이 그에게 남긴 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하면, 쓰나미와 같다고 한다.

 

암이 찾아와 나의 모든 것을 쓰나미처럼 휩쓸어 갔다.

그런데 묘하게도 한바탕 쓸어간 것은 모두 진흙뿐이었다.

그리고 남은 건 반짝반짝하는 금가루들.

말기 암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얼굴에서 삶의 긴장이 풀린다는 점.

귓가에 천둥이 쳐도 얼굴은 평안한 호수같은 표정...

아직 진행중인 내 인생을 관조하듯 바라보며,

작은 일에서조차 의미를 찾는 평온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거...

내 인생에는 그저 '살아 있음'이라는 목표만 남았다.(144)

 

늘 토끼처럼 이기기만 하던 그가, 거북이가 되어 깨달은 것.

 

인생이란

늘 이를 악물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보다는,

좀 늦더라도 착한 마음으로 차분하게 걷는 사람에게 지름길을 열어주는지도 모른다.

 

역시 학자구나... 인재를 놓쳐 아쉽다... 이런 생각이 들게 한 부분...

 

유방암 환자의 성격에 대한 나만의 이론...

우울증을 겪은 사람이 거의 없다.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은 매우 드물다.

명예욕과 승부욕이 강하고, 매사에 통제력을 발휘할 정도로 권력욕이 있으며, 성격이 급하고 외향적인 사람.

안정적인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었으며,

집에서나 회사에서나 여왕처럼 떠받들어져 군림하듯 살아왔다.

 

음... 우리 집에도 이런 사람 한 사람 있는데... ㅠㅜ

 

세상에서 한발 물러나자 비로소 꽃과 구름과 바람이 보였다.

하늘은 매일같이 이 아름다운 것들을 내게 주었지만,

정작 나는 그 축복을 못 받고 있었다.

선물을 받으려면 두 손을 펼쳐야 하는데

내 손은 늘 뭔가를 꽉 쥐고 있었으니...

 

후회하고 깨달을 때는 이미 늦은 법... 그래서 그는 힘겨운 몸으로 이 책을 남긴다.

청춘의 죽음을 통하여 가르침을 주기 위하여...

 

그의 남편을 관찰하고 '책을 보다가 틈틈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표현을 한다.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

 

그러나 사노라면 어쩔 수 없이 <야수처럼 잔인한 날것 그대로의 진짜 세상>과 마주치게 된다.

그런 경험은 사람을 깜놀하게도 만들지만, 성장하게 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가 어머니와 계속 서먹하여 뭔가 이야기가 숨어 있을 거 같았는데,

결국 마지막에서 어머니의 정체를 알게 된다.

교실에서 아이들 시험공부하는데 혼자 눈물 훔친다고 혼났다.

 

부모와 자식의 인연이란,

부모가 자식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바라볼 뿐,

붙잡을 수 없는 관계.

 

이렇게 삶을 냉정하게 관조하는 듯 하지만,

그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때면, 눈을 껌적이는 것 만으로는 눈물을 참을 수 없게 된다.

 

너무도 살고 싶다.

차라리 날마다 아프고,

평생을 꼼짝 못하고 산다 할지라도,

이토록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그들이 즐거워할 때 같이 웃을 수만 있다면 그 이상으로 바랄 게 없다.

 

바람이 분다.

사랑하며

살아야겠다.

사랑하는 법...

 

사랑은 구속이 아니다.

상대가 진정 원하는 일을 찾아 자유롭게 떠날 수 있게 해주어야 하고,

서로 떨어져 지내면서도 충분히 사랑을 지키고 그리움을 키워나갈 수 있어야 한다.

 

불같은 사랑도 좋지.

그렇지만 잔잔한 사랑도 괜찮을 것 같아.

서로 균형을 잡으면서 오래갈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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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쓰인 표현 하나...

 

119. 123. 임산부... 임부와 산부...

나는 그렇게 임산부가 되었다... 임부 또는 임신부가 맞다. (임부는 pregnant women, 산부는 nursing m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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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2 1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03 0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행복하기 행복전하기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3
법륜스님 지음 / 정토출판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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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마지막 권...

 

참 사소한 이야기지만, 문제도 많고 해결책도 다단하다.

 

태산 같은 기막힌 사연이 있다 하더라도 자꾸 생각하면 끝이 없어요.

그러니까 놓아버려요.

사연은 자꾸 만들면 점점 더 기구하게 만들어져요.

이왕 일어난 일이면 좋은 사연을 만드세요.

그래서 크게 마음을 내고 털어버리세요.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겁니다.(42)

 

소위 인간 극장에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 있다.

인간 극장에 1주일 방송되면 돈을 좀 준다.

 

10년 전쯤, 루게릭 병으로 중증 장애를 가진 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은 장애학생 전형으로 서울대에 입학하였는데,

그러자 인간 극장에서 돈을 몇천 줄테니 촬영을 하자고 했다.

루게릭 병은 결국 그 병으로 약해지다 죽는 것 아닌가 말이다.

그 어머니, 아이를 3년간 안고 교실을 오르내렸는데... 방송촬영을 거부했다.

자기 딸의 삶이 그렇게 방송에서 떠들어지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기가 막힌 삶이 있을 수 있다.

대부분 가난한 가정과 가족간의 불화에서 시작된다.

가난은 질병과 가족문제를 심화시키면서 각 개인의 삶을 파괴한다.

그런 기막힌 사연에 휘말린 자신의 삶을 원망하고 한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놓아버리고 사는 수밖에...

 

하느님, 왜 저를 이렇게 시련에 들게 하시나이까?

할 거 없단 말이다.

로드킬 당한 강아지 역시 마찬가지 생각으로 죽어갈 터이니 ...

 

한국 엄마들은 아이가 어릴 때 따뜻하게 보살피는 장점은 있지만,

아이를 자립시켜야 할 때 냉정함을 잃어버리고 정을 떼주지 못하기때문에

결과적으로 자식을 못 키우는 사람에 속합니다.

그래서 늙어죽을 때까지 자식 때문에 늘 근심 걱정이 많죠.(86)

 

그렇긴 하지만, 이것은 개인적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분명 사회적으로 지나친 개입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남들은 다 전세에서 시작하는데 나만 월세에서 시작하면 남들보다 삶이 훨씬 팍팍하다.

정말 숨만 쉬고 살면 10년이면 전세 구할 수 있다.

그러면 뭐하나~ 젊은 날은 다 지나가 버린 걸...

 

권위만 버리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요.

 

노년에 필요한 삶의 자세다.

무슨 일이든 하려 해야하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에게 말할 때 주의할 점,

아이가 받아들일 만한 처지에 놓였을 때 적절한 말을 해야 한다.

답답해서 도움을 주십사 하고 요청할 때 적당한 얘기를 해주면 효과가 나타난다.

본인이 묻지도 않았는데 이야기하면 좋아하지 않을 것.(154)

 

사랑에는 약간의 아픔이 있어야 한다.

일어나는 자기 감정을 억누르고 도와주고 싶은 것도 자제하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자기 하고 싶은대로 다 하는 건 욕망이지 사랑이 아니다.(156)

 

그렇다. 자식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불교의 화두는 하나다.

 

'나'란 무엇인가?

'내 마음'이란 존재가 있는가? 답은 '무'다.

그냥 없는 게 아니라, 색즉시공, 공즉시색이요, 제법무상이다...

 

수십 수백 수천 가지를 모아서 자기로 삼고 있을 뿐,

하나하나 따져보면 거기에는 나라고 할 어떤 실체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깊이 관찰하지 않습니다.(184)

 

그러니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기 위해서는,

제법무상의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늘 내 마음을 바라볼 일이다.

 

내 마음은 지금 쉬고 싶다. ㅋ

이제 월욜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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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2-06-25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낸디....이런 비슷한 경상도쪽 사투리가 있지 않나요?

글샘 님, 월욜이니까 당연히 더 쉬고 싶은 걸꺼에요.
저도 월욜엔 늘 손님들에게 평상시보다 훨씬 더 불친절해요 ^^:::::::::

글샘 2012-06-26 10:40   좋아요 0 | URL
화욜인데 안 당연히 더 쉬고 싶어요...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