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지를 지키는 사람들
반조 클라크 지음, 류시화 옮김 / 오래된미래 / 2004년 5월
평점 :
백인들은 원주민들이 호주의 아웃백(오지)에서 사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싶어했다. 그러나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숲을 지켜냈다.
이 책은 반조 클라크라는 호주 원주민이 구술한 것을 책으로 만든 것이다.
세상의 원주민들은 모두 평화롭고 고요함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늘 말타고, 배타고 쳐들어온 이주민들이 문제였다. 이주민들은 언제나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강간하고 멸시하고 억압했다.
호주의 원주민 문제는 시드니 올림픽을 계기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물론 최근 몇 년의 문제가 아닌, 신대륙 개발 붐이 일어난 18세기 이후 부터의 문제지만, 그들의 생활이 삶의 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일면 신비화되기도 하는 추세다.
아웃백 스테이크 하우스엘 자주 간 적이 있다. 패밀리 레스토랑치고 음식이 튀지 않고 할인카드로 할인도 받을 수 있어서 자주 이용했는데, 그 벽에 치장된 부메랑이니 악어니 하는 것들은 호주의 아웃백에서 사는 원주민들을 상품화한 것에 불과할 따름이다. 어차피 그 돈은 모두 얼굴 흰 사람들에게로 가고 말 것이다.
반조 아저씨의 말을 듣고 있다 보면, 참 바보같다. 그렇게 멸시를 당했으면서도, 그렇게 학살을 당하고 처참한 과거를 기억하면서도, 얼굴 흰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보면 기꺼이 도와준다. 그분의 가장 큰 매력은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금강경에서 읽은 <인욕함으로써만 원한은 소멸되는 이치>를 반조 아저씨는 알고 있는 듯 하다.
그들과 지내다 간 흰 얼굴들은 '원주민들로부터 분노에 호소하거나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배웠다.'고 한다. 적이 당신에게 무슨 짓을 했는가를 잊어 버려라. 누군가 어려움에 처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면 그런 기억일랑 지워버리고 편견 없이 그들을 도우라. 이것이 원주민의 철학이었다.
그는 일꾼들이 여자들 이야기를 하면서 추잡하고 성적인 농담을 비롯해 온갖 저속한 이야기를 늘어 놓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기 민족에 대해 왜 저런 식으로 말하는 거지? 그래서 그는 동료들과 떨어져서 식사를 한다. 동료들이 같이 식사를 권유하자, "나는 당신들은 좋지만, 여자들에 대해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싫어. 여자들을 마치 하찮은 존재처럼 말하잖아. 나는 우리 부족의 여자들을 그런 식으로 저속하게 말하는 건 싫어. 당신네들 대부분도 아내와 딸이 있어. 그런데 왜 다른 사람의 딸들을 그런 식으로 말하지? 난 그런 게 싫어서 당신들과 함께 점심을 먹지 않는거야." 이런 가르침으로 동료들을 감화시키는 분.
최대한 원주민들을 무시하고, 위축시키고,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이 얼굴 흰 사람들의 정책이었지만, 오리려 그는 원주민임을 일깨우고, 원주민의 생각, 원주민의 방식대로 살기를 계몽한다.
삶을 신성하게 여기고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며, 화를 내거나 욕설을 퍼붓는 일로 망쳐 버려서는 안된다는 간단한 삶의 원칙. 그들은 말한다.
"삶에서 힘들고 고통스런 일이 생기면, 잠시 멈추고 생각할 시간을 가져라. 그런 다음 앞으로 다가올 문제들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생각하라. 바위를 만났을 때 돌아가는 물처럼 행동하라. 그것이 삶이다. 그리고 힘닿는 데까지 사람들을 도우라. 네가 가장 미워하는 사람일지라도 말이다. 사람에게 도움이 필요한 순간, 그가 과거에 너에게 어떻게 행동했는가는 잊어 버려라."
노자의 상선약수와도 같은 이야기들은, 과연 누가 문명인이고 누가 미개인인지를 돌이켜 생각케 하는 대목이다.
오늘도 대지의 흙땅을 밟아보지 못한 내 발에게, 어딘가에서 폭신한 흙땅을 느껴보게 해 주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