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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벌레가 애벌레를 먹어요 - 웅진 푸른교실 4 ㅣ 웅진 푸른교실 4
이상권 지음, 윤정주 그림 / 웅진주니어 / 2002년 7월
평점 :
"엄마, 정말 애벌레가 애벌레를 먹어?”
“글쎄.잘 모르겠는데...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좀 더 눈치가 있었다면 이 책 제목이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작가는 애벌레를 키운 경험을 통해, 애벌레가 애벌레는 먹는다는 사실을 보고 거기서 힌트를 얻어 이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애벌레를 키우는 자폐아 승준이와 친구가 되어 가는 용감한 소녀 고재의 이야기를 통해 나도 떠오르는 아이가 있다.
반 아이 중에 자폐아가 있었다. 4학년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무척 인정받고 싶어하는 나이란다. 학년 초, 이 아이를 도와 줄 도우미가 필요했다. 3학년 때 같은 반을 한 아이 하나가 먼저 자신있게 자신이 돕겠노라 자청해 준 덕에 이후에도 한 달 간 당번을 바꾸어 돌아가며 도우미를 해 나가는 것이 순조로웠다. 도우미는 집에 갈 때 조금 먼 거리에서 오는 그 아이를 학원 차에 태워주는 일을 했는데 마침 그 친구는 서로 집도 가까웠다. 제일 처음 도우미를 했던 아이가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라고 해 주어 그 다음 아이들도 보람을 느끼며 자원해서 그 일을 해 나갔다. 우리 반 봉사위원이기도 했던 아이는 일 년을 그렇게 옆에서 그 친구를 도와주면서 정말 잘 지내 주었다.
학년이 바뀌면서 그 동네에 새 학교가 생겼다. 특수학급이 없는 그 학교에 아이를 보내자니 걱정이 많으셨던 아버지(어머니도 안 계셨다.)는 우리 학교에 보내고 싶어 하셨지만, 아이 하나를 위해서는 학원차가 움직일 수 없다고 했나 보다. 내게 어렵게 부탁하신 건, 딸 아이를 위해 잘 돌보아 주었던 그 친구를 같은 반에 편성 해 달라는 거였다. 친구를 잘 돌보아 주었던 그 아이라면 같은 반이 되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반 편성을 하던 날 아이가 펑펑 우는 거였다. 학년말로 갈수록 자기를 돌보아 주는 친구들을 때리기도 했기에 일 년의 고통이 다시 연장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 같다. 그 순간 일 년동안 아이에게 가졌던 고마운 마음이 다 사라져 버렸다. 그 아이의 마음은 거짓이었단 말인가! 더군다나 5학년이 되어 다시 만난 아이가 전해주는 이야기는 아이가 학교생활이 어려워져 특수학교로 전학을 갔다는 것, 그 이야기를 전해주는 말에 안타까움이라든지, 가슴 아파하는 모습이 없었다는 것에 나는 약간의 배신감이 느껴졌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어쩜 그게 아이의 솔직한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자폐아랑 함께 지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니까!
이 책의 고재도 모든 아이들이 싫어하는 승준이를 친구로 받아들이면서 이런 심리적 갈등을 겪는다. 자신을 좋아하는 힘찬이의 비겁한 행동은 고재를 승준이와 더 가까워지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야기의 결말은 힘찬이도 승준이의 친구가 되어주리라는 여운을 남겨 주어 정말 다행이다. 애벌레가 애벌레를 먹는 걸 본 고재가 그 사실을 승준이를 대신 해 이야기 해 주어도 아무도 안 믿었는데 이제 그렇게 승준이를 괴롭히던 힘찬이가 자기도 애벌레를 키우면서 그 사실을 확인했다고 하니 말이다.
3학년이니까, 4학년 정도까지는 아이들이 마음을 열고 승준이를 받아주겠지? 공을 들여서 아이들을 올려 보내도 5, 6학년 때는 아이들이 그렇게 잘 지내지 못 하는 것 같았다. 발달 특성상 약한 친구들을 이해하는 힘이 5, 6학년 때는 딸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아니면, 아이들이 조금 더 솔직해 지는 건가? 승준이는 고재랑 힘찬이랑 함께 계속 잘 지낼 수 있었으면...
그래도 그 아이들이 자라서 이런 아이들이랑 함께 겪었던 시간을 돌이켜 볼 때 그 일 년은 참으로 귀한 선물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비록 잘 해 주지 못한 나를 생각하며 가슴이 아플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특수교육에서도 통합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대빵 이마, 고재야, 힘내! 승준이를 위해 고재도 애벌레를 좀 더 사랑할 수 있기 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