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롱베이 1박 2일 투어는 현지 여행사에서 진행하는 관광 프로그램이다. 대부분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로 팀이 조성된다. 우리팀은 프랑스인, 이탈리아인, 우리, 중국인, 독일 사람들로 이루어진 13명이었다. 베트남 여자를 대동한 바람기 있어보이는 이탈리아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같은 국적의 두세 명이 함께 신청했다. 우리 가족은 세 명, 중국인 가족도 세 명. 부부 내외와 딸로 구성된 것까지는 같은데 우리 딸아이는 10대, 그집 딸은 30대이고 그들 부부는 우리보다 딸들의 나이차 만큼이나  나이가 많아 보였다. 2인 1실의 선상 숙박이라 어떻게 하다보니 중국인 아저씨와 남편이 같은 방을 쓰게 되었기에 아무련 미련없이 그들에게 두 개의 방을 다 쓰라고 양보를 했더니 너무 너무 미안해하며 고마워한다. 조용하고 점잖은 중국인 일가족이다.  

  여행하기에 딱 좋은 신체조건은 무엇인지 아시는지...특히 동남아나 인도 여행시 비행기나 버스의 좁은 좌석에도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싱글 침대를 어린 자녀와 함께 써도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이상적인(?) 체구는 바로 나와 같은 평균 이하의 신장을 갖고 있는 경우이다. 여행하기에 좋은 천혜의 조건이라고나 할까나. 비웃거나 말거나.

  프로그램 중에는 카약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림 같은 한 폭 동양화 속에서 노니는 카약이라...두 명이 한 조가 되어 노를 젓는 기분이 어떨지 궁금했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카약 비슷한 것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음은 물론 기본적인 수영에도 젬병이었다. 대학 신입생일 때 체육 시간에 겨우 벽 차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까지 배우고 막 호흡을 배울 무렵 박정희대통령 시해 사건이 일어나 휴교 조치로 들어가는 바람에 나의 수영 경험은 딱 거기에서 멈춰버렸다. 그러고도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 난 도대체 뭘하느라 수영 하나 제대로 못배웠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나는 중국인 아저씨와 한 카약을 타게 되었다. 다정한 중국인 모녀의 카약과  우리 남편과 딸아이의 사랑스러운 부녀의 카약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카약에 올랐다. 남들은 쉽게도 앞으로 나아간건만 내가 탄 카약은 방향을 잃고는 섬 가장자리에 곤두박칠 치기가 일쑤, 겨우 타는 방법을 익혀 앞으로 앞으로 노를 저어가니 그럭저럭 탈 만했다. 와중에 중국인 아저씨(내가 보기에 아저씨지 실제로는 할아버지에 해당하는 연세)와 몇마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알고보니 이 아저씨는 대학에서 영어학을 가르치는 교수님이셨다. 어쩐지 연세에 비해 영어를 좀 하신다했더니.. 

  그림 같은 1박 2일의 하롱베이가 끝나갈 무렵 마지막 점심을 이 중국인 가족과 한 식탁에서 하게 되었다. 그사이 정이 든 이 한중 가족은 아쉬움으로 전화번호와 이메일주소를 나누어 갖으며 한국에 오게 되면, 반대로 상해(이 중국부부의 딸이 상해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단다)에 오게 되면 서로 연락하자며 헤어졌다. 글쎄 또 만날 수 있으려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Hoa Dao. D자는 왼쪽 직선 가운데에 - 선을 그어주고 o 자는 위에 -선을 눈썹 긋듯이 그어 넣어야 베트남 사람들이 쓰는 글자가 되는데 도저히 그렇게 쓸 재간이 없어 말로 풀어 쓰는 수 밖에 없다.  매화를 가리키는 베트남 단어다. "화 다오" 비슷하게 읽는단다.

  사군자. 매난국죽. 이 중에서 매화를 노래한 시 한 편 딱 떠올라줘야 글에 폼이 날텐데 시험지 앞에두고 머리가 창백해지는 학생 꼴이 되어버린다. 봄에 흔하게 보는 개나리나 진달래보다 더 접하기가 힘든 tv 화면에서나 보는 먼 동네의  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리라.

  운이 좋거나 아니면 평소에 덕을 쌓아야만 볼 수 있는 이 매화를 이번 베트남 여행에서 원없이 보았다. 집집마다 상점마다 마치 크리스마스트리마냥 화분에 심거나 화병에 담아서 눈에 잘띄는 곳에 모셔놓고 있었다. 우리가 머문 호텔이나 우연히 들어간 식당, 기차역 대합실...매화가 없던 곳이 있었던가를 생각해내기 힘들 정도다.  

  사파의 Mountain View Hotel 에 머물며 영어가 시원찮은 종업원에게 겨우 물어서 꽃이름까지는 알 수 있었으나 이 꽃이 왜 베트남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우리의 의사소통 영역 밖의 일이었다.  

  긴 가지에 어쩌다 한두 송이 피어있는 매화를 보면 어렸을 적-아마 7~8살 무렵- 산너머 공동묘지로 가는 한겨울 눈덮인 오솔길을 보며 가슴이 아려왔던 기억이 더듬어지기도 하고, 지금은 연락없는 옛 친구와 함께 한 어느해 5월의 덕유산 등산 길에 발 밑으로 흩날리던 꽃잎이 새삼 생각이 나기도 한다. 음, 그 꽃은 산벗꽃이었지, 아마.  

  한겨울 나목의 긴 가지에 듬성듬성 피어있는 이 매화를 사랑하는 베트남 사람들. 집집마다 모시며 기복을 기원하는 지극히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그네들의 신과 더불어 그네들의 마음에 피어오르는 매화 한송이는 이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가슴 속에 핀 매화를 더듬어보게한다. 참 아련하지만 아름다운 모습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기간: 2009년 1월 18일 ~ 1월 29일   

일정 1월   18일 밤 하노이 도착(아시아나항공)
               19일 하노이출발(국내항공편)-다낭 도착해서 호이안으로 이동
               20일 호이안
               21일 후에로 이동
               22일 후에. 오픈버스로 하노이로 이동(야간)
               23일 오후 사파행(라오까이) 열차 탑승
               24일 사파
               25일 오후 하노이행 열차 탑승
               26일 하노이
               27일 하롱베이 1박 2일 투어
               28일 하롱베이, 하노이
               29일 하노이. 야간에 인천행
               30일 오전5:35 인천도착 

환율: 미화 1$ = 1,372원, 1$=약 17,000 VTD(동), 10,000VTD= 약 800원, 예를 들어 거리의 쌀국수 한그릇에 15,000동이라면 15,000 * 8=120,000 인데 뒷자리 영 두 개를 지우고 원으로 생각하면 1,200원이 됨. 여행 내내 계산하느라 머리가 아팠음.
 

  꼬박 만 3년만에 이룬 또 하나의 쾌거. 이번엔 아시아나 보너스항공권을 얻었다. 3식구 총 108,000 마일(한사람 혹은 가족합산 마일리지로 2인 이상 신청할 경우 10%의 할인 혜택이 있음)을 필요로 하는 동남아행 보너스 항공권을 얻어보려고 참 열심히 신용카드를 긁었다. 마일리지 적립을 제일 많이 해주는 카드사 선정은 말할 것도 없다. 불안정한 기름값으로 작년말까지도 80만원 이상(3인기준)이었던 유류할증료 및 세금이 올 1월 1일부터는 30여만 원으로 떨어져 제대로 된 공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여행의 들뜸, 설레임은 별로 없었다. 해야 할 일상의 일들이 힘겨웠고 만성위염의 재발로 심할 때는 수업에도 지장을 주는 경우가 생겼고, 무엇보다도 여행지로 잡은 베트남은 그리 새로운 곳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6년 전 앙코르와트를 보는 길에 잠시 들렀던 호치민에서의 며칠을 두고 이런 말을 하고 있다니...보다는 내 깊은 곳에자리잡은 인도가 역시 만만치 않기 때문이리라. 이번 베트남 여행중에도 시시때때로 내 입에서 나온 말도 그랬다. " 역시 인도만한 나라가 없구먼." 

  그렇다고 베트남 여행이 만만한 것은 절대 아니리라. 해서 좀 지름길을 택해 보았다. 하노이에 있는 한인 운영 여행사에 성가신 몇가지를 의뢰했다. 도착시 공항 픽업, 첫날 호텔 예약, 라오까이 왕복 열차 예매, 하롱베이 1박 2일 투어. 몸소 겪어야 할 고생, 일부러 시간들여 젊었을 때(?)하는 고생을 수수료 몇푼에 간단하게 처리했다. 이렇게 쉽게 하려면 여행은 왜 하는거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지난 6월부터 한 3개월 해금을 배웠다. 어렸을 때는, 내 세대가 어디 그 흔해빠진 피아노 한 번 배워볼 세대였던가. 내 친구 중에 어려서 피아노 배운 친구는 하나도 없는 것으로 보아 내가 피아노를 배우지 못한 것은 우리 세대의 평균치라는 것, 그래서 창피하지도 부끄럽지도 않다는 것. 그런데도 그게 은근히 나를 열등감에 젖게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게 작용했을 터이다. 내가 해금을 배우게 된 게. 또 하나의 이유는, 이건 분명한 이유인데, 여행 다닐 때 해금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다. 인도의 우다이푸르의 어느 게스트하우스. 밤이면 여행자들이 끼리끼리 모여 옥상에서 작은 연주회를 갖는데 나는 그 "끼리끼리"에 낄 수 없다는 단절감 내지는 절망감에 왜 그렇게 쓸쓸하고 허망한지 나는 그 순간 악기를 꼭 배우리라 마음 먹게 되었는데 그 이후 내가 생각해낸 악기가 해금이었다. 우선 부피가 작으니 배낭 옆에 끼고 다니기에도 좋고 우리 악기니까 다른 나라 여행자의 시선도 끌 수 있을테고 줄도 두 줄이니 내가 열심히만 연습하면 섭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여러모로 좋은 점만 열심히 끌어댔다. 그래서 결국은 배워봤는데....결과는 ...이미 예상하고 시작은 했지만...참혹하다. 음악성 제로, 악착같은 끈질김 제로.

그러다 김훈의 <바다의 기별>을 읽다가 해금 이야기가 나오길래 다시 해금을 켜 볼 생각을 하는 중이다.

p.60. 해금은 놀라운 악기다. 해금의 음색은 그 악기를 연주하는 인간의 몸의 질감을 느끼게 한다. 모든 국악기는 양악기에 비해 훨씬 더 진하게 연주자의 몸을 느끼게 하지만, 그중에서도 해금이 풍기는 육체의 질감은 가장 깊고 진하다. 해금의 음색이 매우 비논리적으로 들리는 까닭은 이 육체의 질감 때문일 것이다.

p.111. 내 몽상 속에서, 오치균의 화폭에서는 해금의 음색과 선율이 들려온다....모든 현악기 중에서 해금은 인간의 육체에 가장 가깝고, 육체의 떨림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는 느낌을 준다...해금 연주자는 손아귀로 줄을 쥘 때 소리의 진동을 몸 안으로 받아들이고, 다시 몸의 리듬으로 소리를 통제한다. 그래서 해금에서는 몸의 소리, 몸의 리듬에 가까운 소리가 나온다...해금의 소리는 논리적이지 않고 아정하지 않지만, 바닥을 긁어내는 소리로 아름다움에 대한 고정관념을 부순다. 손가락으로 주물러서 칠하는 오치균의 색은 시간과 뒤섞이고 시간 위에 올라타서 화폭 위를 흘러가는 것이다.몸이 그 색들을 이끌고 간다.....

이 부분을 읽어나가다가 나는 엉뚱하게도 음식을 손으로 먹던 인도에서의 경험이 떠올랐다. 밥을 손으로 떠 넘길 때에도 분명 어떤 떨림이 있었으니...

p.133. 더 나이를 먹고 내가 나의 언어를 확실히 장악할 수 있는 어느 날 나는 이 <난중일기>와 이순신이 처한 절망에 대해서 무언가를 말할 수 있게 되겠구나, 말할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것들을 느꼈죠.

나도, "내가 나의 언어를 확실히 장악할 수 있는 어느 날"을 간절히 꿈꾸었다는 것을 떠올리게 하는 이 구절을 읽고 나는 몸을 또 한 번 부르르 떨었다. 해금의 떨림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버지의 편지] 서평단 설문 & 리뷰를 올려주세요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공부의 의미에 대해 다시 곰곰히 생각하게 함.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한문 독해력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읽을 거리가 될 것 같음. 책 뒷편에 있는 부록의 원문을 제대롤 읽어낼 수 없어 안타까우므로...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큰 밭을 갈지 마라. 가라지가 무성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