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오전부터 내리는 비가 추적추적 계속 내리고 있다. 혼자였다면 그냥 집으로 곧장 가련만 옆에는 늘 걸어 다니는 민선생이 있다. 1/3 정도만 같은 길을 걷다가 나머지는 각자 방향이 남북으로 갈리는 반쪽짜리 길동무이다.  

까짓거. 우산도 있겠다, 바람막이 옷도 입었겠다, 비 맞으며 걸어보는 것도 오랜만이네, 하며 호기있게 생태공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왠걸. 비바람이 만만치가 않다. 우산살이 거칠게 휘어지며 바람에 저항한다. 여기서 방향을 틀면 곧장 집으로 갈 수 있는데, 마음이 약간 흔들린다. 그러나 길동무 덕에 다시 걷기에 충실해진다. 이 못말리는, 그러나 좀 미련한 착실성! 

얼마 후 낚시터로 향하는 언덕 길. 저 앞에 하얀개 한 마리가 서 있다. 평소 개를 몹시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민선생은 벌써부터 안색이 불편해 보인다. 걸죽한 입담으로 사람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그녀도 개에게는 한없이 약한 존재다. 혼자 보기 아까운 얼굴이다. 

개가 우리 옆으로 오더니 우리 얼굴을 바라보며 종종 거리며 따라 붙는다. 우리를 향한 적의는 없어 보인다. 여느 집에서 기르는 개처럼 우리를 향해 짖어대지도 않는다.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우리 가까이에서 그리 빠르지않게 왔다갔다하며 무언가 요구하고 있는 듯하다. 왜 그러니, 개야. 우리 좀 그냥 가게 해주라, 제발.  

그리 위협적이지 않아서 그냥 가던 길 계속 가는데 어디선가 깨갱거리는 강아지 소리가 들린다. 자세히 보니 폭이 60~70여 센티미터되는 수로에 어린 강아지 한 마리가 빠져서 발이 물에 잠긴 채 오도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 그랬었구나. 새끼 구해달라고 어미개가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었던 거구나.  

새끼를 도로 위에 올려 놓는다. 자, 됐다. 엄마랑 함께 가거라. 그런데 새끼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고 어미개는 계속 우리를 따라온다. 왜, 따라와? 새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란 말이야. 20여 미터를 멈칫 멈칫 따라오던 어미개는 계속 끙끙대는 새끼 때문에 우리 뒤를 따라오기를 그만둔다. 그러나 새끼에게 곧장 달려 가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어쩔줄 몰라한다. 저 어미개도 어디가 아픈가. 아니면 가문이 있는 개인가. 행동이 신중하고 매우 점잖다. 

더 이상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어미개야. 개들은 물을 몹시 싫어하는 데 비마저 맞고 떨고 있으니, 어쩐다니. 새끼가 아무래도 다친 모양인데....무정한 인간들 같으니라구.... 

 

오늘은 작정하고 한 학부모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아빠의 이혼과 각자의 재혼으로 누나와 함께 단둘이 살고 있는 녀석의 엄마에게 그동안 벼르고 있던 말을 했다. 학교에서의 아이의 모습을 제대로 본다면 아마도 억장이 무너지실거라고. 의기소침, 거짓말, 무력감, 학습의욕 바닥. 쾡한 눈망울. 특히 그 무력감을 어머니도 보셔야한다고 했다. 공부에서 손을 놓은 모습입니다, 어머니. 아직은 절대적으로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입니다. 혼자 밥 해 먹을 수 있다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지 않습니까. 전화기 저 너머로 엄마되는 사람의 억장이 무너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책임을 지시란 말입니다, 까지는 말하지 못했다. 

다시 퇴근길. 60여만 평이 넘는 생태공원에는 사람이라고는 나 혼자다. 허기사 이런 날 누가 비 맞으며 운동하러 나오나. 시베리아를 걸어서 횡단하는 사람을 인터뷰한 텔레비전 장면이 떠올랐다. 가장 무서운 게 무엇입니까. 야생 동물보다도 사람과 맞닥뜨리는 게 더 두렵습니다. 장비와 비상 식량을 탈취해가면 제 횡단 여행을 불가능하게 할 수도 있거든요. 

끙끙대는 새끼에게도 선뜻 달려 가지 못하고, 혹시나 도움을 받지 않을까 인간에게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저 어미개의 머뭇거림이 긴 여운을 남긴다. 전화기 너머의 한 어머니의 숨죽인 흐느낌이 또 긴 여운을 남긴다. 

비바람 쯤이야 바람막이 쟈켓과 우산으로 가리면 된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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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 독자서평단 활동 종료 설문

 •  서평단 도서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과 그 이유:<맛살라 인디아> 서평단 활동을 하다보니 서평단의 책은 (나 자신에게)크게 두 가지로 분류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책과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되는 분야의 책. 이 책은 후자에 속한 책이었다. 그래서 읽기도 전에 자신감 먼저 생겼는데 결과적으로는 이런 책이 서평을 하기에는 더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설프게 알고 있는 지식은 오히려 선입견이나 편견이 될 수 있으며, 책에 대한 진지함보다는 어설픈 비판이 앞설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  서평단 도서의 문장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한 구절: "느긋한 시간 감각은 그 자체가 부의 한 형태다" <타임패러독스>중에서... 


•  서평단 도서 중 내맘대로 좋은 책 베스트 5 :<탐욕의 시대>,<타임 패러독스>,<과학이 광우병을 말하다>,<맛살라 인디아>, <지도로 보는 세계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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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베트남에 간다니까 주위의 몇몇 사람들이 우려를 나타냈다. 


“베트남에 간다고요? 그곳 위험하지 않아요?”  


“글쎄요. 우리나라가 더 위험한 것 같은데요.”
 

모두들 내 말에 웃었다.
 


  돌아와 보니 용산철거민참사사건과 부녀자 연쇄살인사건으로 온 나라가 들끓었다. 글쎄, 어디가 더 위험한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여행하는 동안만큼은 베트남 TV를 장식하는 들끓는 사건은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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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베트남 중부 지방의 호이안의 구시가지는 말 그대로 현지인 반 외국인 반이다. 단체 관광버스가 쉴 새 없이 사람들을 부려놓으면 이들은 여기저기서 온 거리를 휩쓸고 다닌다. 단체 여행객들을 태운 시클로 부대가 열을 맞추어 행진하는 모습은 카 퍼레이드마냥 장관을 이룬다. 그러나 넋이 나간 듯 쳐다보는 사람들은 우리 같은 이방인들뿐이다. 

  구시가지의 골목을 걷다보면 그림이나 공예품, 옷 등을 제작하거나 판매하는 가게들이 죽 늘어서있어 걷는 것이 즐겁고 마음도 따라서 아기자기해진다.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로컬 요리를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식당도 많고, 웬만한 카페는 가이드북에 그 이름이 올라가있어 카페 순례라도 할 작정이라면 주머니 사정을 잘 따져봐야 한다. 


  그러나 이곳은 여행객이 수업료를 치러야 하는 곳이다. 여행을 다니다보면 늘 같은 일을 겪으면서도 면역체가 형성이 안 되어, 그 경험이 늘 새로운 게 있는데 바로 택시 타는 일이다. 이곳에서도 멀쩡히 눈 뜨고 당했는데 칼만 들지 않았을 뿐, 속이겠다고 작심한 택시 기사에게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혹시 다낭에서 택시로 호이안에 갈 계획이신 분은 다음 용모를 가진 택시기사를 조심하도록. 평균보다 훌쩍 큰 키에 건장한 체구로 여러 명의 택시기사가 호객을 할 경우 단연 돋보이며 나름 성실성을 겸비한 인상을 갖고 있다. 사기 수법은 간단하다. 13달러라고 흥정해 놓고는 나중에 17달러라고 말했다고 끝까지 우기는 거다. 세상에 내가 thirteen 과 seventeen 을 구분하지 못하겠냐고. 지가 나보다 영어를 더 잘하겠냐고. 적선하는 셈 치자고 생각해도 내내 불쾌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종이쪽지에라도 써 놓을 것을.

  두 번째 수업료는 이렇다. 우리가 이틀 묵은 게스트하우스는 대부분의 숙소들이 그렇듯 간단한 여행업무도 함께 하는 곳으로 투어 신청이나 비행기표, 버스표, 기차표 예약도 해주는 곳이었다. 유명한 신카페를 찾아갈까 하다가 그곳이 그곳이겠지 하는 생각에 미선유적지 투어 신청과 호이안→후에, 후에→하노이 간 오픈투어버스티켓을 끊었다. 두 구간의 버스 요금을 처음에는 일인당 15달러라고 쓰더니 이내 25달러라고 고쳐 말하는 데 어수룩한 우리는 그때 그의 눈빛과 생각을 읽었어야했다. ‘내가 지금 장난치고 있는데 하려면 해봐. 굳이 강요하는 건 아냐.’ 이런 여유로운 표정에 우리가 넘어간 것이다. 침대 시트는 정리해주면서 베갯잇 없는 베개는 나몰라하는 무신경과 불친절을 진작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사실 바가지 전혀 안 쓰고 제 값 주고 산 게 하나라도 있을까 싶은 동네다. 조그마한 동네에서 마음만 잔뜩 상하다보니 느닷없이 중국 운남성의 리장이 그리워진다. 맑은 물이 흐르는 수로들, 밤에는 온 동네에 불이 난 것 같은 빨간 등의 행렬, 광장에서 춤추는 소수민족의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곳은 늘 축제 분위기였다. 같은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려놓은 곳인데 왜 이렇게 다르게 느껴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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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 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 

   

p.75 학교에서 우리가 배우는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다'라는 진리이다. 

p.116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 '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p.128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글 쓰는 것의)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p.150 참으로 불건전한 것을 다루기 위해서는 사람들은 되도록 건강하지 않으면 안 된다......때때로 건전함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건전한 것만을 생각하고, 불건전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불건전한 것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편향은 인생을 진정으로 내실 있는 것으로 만들기는 어렵다. 

p.185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다수의 사람들이 아마도 그렇듯이 나는 쓰면서 사물을 생각한다. 생각한 것을 문장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문장을 지어 나가면서 사물을 생각한다. 쓴다고 하는 작업을 통해서 사고를 형셩해간다. 다시 고쳐 씀으로써 사색을 깊게 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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