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 월요일 아침(5월3일) 다른 식구들이 모두 먼저 나가고 나도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서려고 하는데 열쇠 꾸러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동차 키 하나 없는 소박한 열쇠 꾸러미였다. 다른 열쇠는 둘째치고 당장 집을 나설 수가 없었다. 출근 시간은 시시각각 임박해오는데 문을 잠그고 나갈 수가 없었다. 등에서 식은 땀이 흐르고 가슴이 조여오면서 정신마저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끝내는 출근 시간을 넘기고야 말았다. 이미 출근한 남편이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나를 집에서 꺼내주기까지 약 한 시간이 걸렸다. 그 한 시간 동안 나는 말 그대로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열쇠가 없어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와 역시 열쇠가 없어 집에서 나올 수 없는 경우(꼭 집 밖으로 나가야 하는 다급한 상황에서) 중 어떤 것이 더 힘들까? 집에 들어갈 수 없을 때는 열쇠공을 부르면 되겠지만, 나올 수 없을 때는 도움을 청할 데가 없다. 집을 그대로 방치하거나, 아니면 누군가 집을 대신 봐주지 않는 한 집에서 나갈 방법은 없다. 문만 열면 밖인데 밖으로 도저히 나갈 수가 없다. 악몽 같은 경험이었다.
지난 월요일(5월10일). 며칠 전 집을 나갔던 한 녀석이 자살을 기도하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싸이월드에 글을 남겼다며 녀석의 친구가 담임인 내게로 달려온 것이다. 녀석의 친한 친구들을 불러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다급한 김에 직접 찾아보기로 했다. 한 친구녀석을 데리고 택시를 타고 녀석 찾기에 돌입했다. 자주 들락거린다는 피시방을 집중 공략하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의 화장실까지 살펴보고 다니자니 입은 바싹 타오르고 가슴이 계속 조여왔다. 이 일을 어쩌나....
내가 녀석의 친구와 함께 있다는 걸 눈치 챈 녀석은 끝내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나타나지 않았다. 그냥 돌아왔다. 얼마 후 학년 부장 교사와 총무를 맡은 교사가 나서서 찾아보았으나 역시 허탕을 쳤다. 학생 부장, 교감,교장 한테 보고가 되고 여러 대책 끝에 또 한 번 학년 부장과 총무 교사가 나섰다. 오후였다. 운전 면허조차 없는 내 초라함과 무능이 그대로 부각되었다.
결국 녀석을 잡아왔다. 녀석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복잡하고 착잡했다....곧이어 부모가 왔고, 간단한 진술서를 쓰게한 후, 녀석을 부모와 함께 집으로 돌려보냈다.... 눈물이 났다.
이틀을 쉬고 어제부터 등교하기 시작한 녀석은 아직도 내 얼굴을 바라보지 않는다. 나 뿐 아니라 학교 자체로부터 마음을 돌려버린 듯하다. 녀석은 싸이월드에 미리 써놓은 유서에서 "낙이 없다"라고 했다. 내가 보기에도 녀석에겐 낙이 없어 보인다. 공부, 외모, 집안 형편...뭐 하나 신통한 구석이 없다. 존재감이 없는 녀석은 '보이지 않는 인간'처럼 그저 하루 하루를 별 의미없이 흘려보낼 뿐이다.
훈계조 일색인 상담은 나도 하기 싫어서 못한다. 선생 앞에서 주눅들기 일쑤인 녀석을 상담 혹은 대화랍시고 앞에 앉혀놓고 이런저런 말을 하고 싶지도 않다. 녀석은 내게는 자폐아와 다를 바 없다. 마음을 꽉 닫은 상태에서 내가 녀석에게 늘어놓는 말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래서 그냥 눈치를 보며 기다릴 수 밖에.
열쇠를 잃어버려 집 안에 잠시 갇혔었던 열흘 전 일이 녀석과 자꾸 겹쳐진다. 녀석에겐 세상에 나올 열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에겐 '되는 게 하나도 없는' '포기'하고 싶은 세상이다. 녀석이 절감하는 절망감을 교사인 나는 도저히 알아내지 못한다. 절망감에 자살을 생각하는 녀석 앞에서 나는 무능하고 무력하다.
성과급으로 선생을 농락하는 세상에서 나는 기꺼이 C급 선생임을 인정한다. 아이들 마음 하나 열지 못하는 나는 C급도 황송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