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권정생 유언장 

 

유언장

 

내가 죽은 뒤에 다음 세 사람에게 부탁하노라.

1. 최완택 목사 민들레 교회

이 사람은 술을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

2. 정호경 신부 봉화군 명호면 비나리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

3. 박연철 변호사

이 사람은 민주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고 애쓰는 보통사람이다. 우리 집에도 두세 번쯤 다녀갔다. 나는 대접 한 번 못했다.

 

위 세 사람은 내가 쓴 모든 저작물을 함께 잘 관리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만약에 관리하기 귀찮으면 한겨레신문사에서 하고 있는 남북어린이 어깨동무에 맡기면 된다. 맡겨놓고 뒤에서 보살피면 될 것이다.

유언장이란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게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 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저기 뿌려주기 바란다.

유언장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2005년 5월1일 쓴 사람 권정생  

 


 

2. 장영희 유서 

 

엄마 미안해, 이렇게 엄마를 먼저 떠나게 돼서.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 찾아서 기다리고 있을게.  

엄마 딸로 태어나서 지지리 속도 썩였는데 그래도 난 엄마 딸이라서 참 좋았어.  

엄마, 엄마는 이 아름다운 세상 더 보고 오래오래 더 기다리면서 나중에 다시 만나.

 

 

3. 노무현 유서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I've been in debt to too many people.

The suffering caused by me is too great to too many people.

I can't imagine the countless agonies down the road.

The rest of my life would only be a burden for others.

I can't do anything because I'm not healthy.

I can't read books, nor can I write.

 

Don't be too sad.

Isn't life and death all part of nature?

Don't be sorry.

Don't blame anybody.

It's fate. 
 


Please cremate me.

And please leave a small tombstone near home.

I've long thought about that.  

 


  

 

4. 시인 오규원이 마지막으로 남긴 시...죽기 전 제자의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쓴 시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

 

 

 

5. 하이타니 겐지로 유언장

 

가깝게 지내던 분들께

아무래도 명이 다할 때가 가까워진 듯합니다.

가족과 친지들에게 내 마음을 전해 두려 합니다.

들판의 나비나 잠자리처럼 살다 죽고 싶습니다.

삶은 그렇지 못했지만 죽음은 자연에 맡기고 싶습니다.

긴 인생을 살면서 배운 것은 무집착의 사상,

다시 말해서 사물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배워 온 그대로 생을 마치고 싶습니다.

최선을 다해 살았고, 사람들을 사랑하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삶에 아무런 후회도 없습니다(조금은 있을지도).

죽음을 무턱대고 멀리하지 않고 일상으로 받아들이며

때로는 죽음도 축하할 일이라는 생각이 나는 더없이 좋습니다.

나의 단 한 가지 바람이라면, 머잖아 찾아올 나의 죽음을

그런 마음으로 받아들여 준다면 고맙겠다는 것입니다.

한마디 덧붙이면, 어떤 혹독한 현실에서든 자신과 타자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고 있으며 희망을 잃은 채 이 시간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한 발 먼저 갑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장례식이나 추모회 등은 하지 않기 바랍니다.

그럼 언젠가 저세상에서 만나 뵙지요.

 


2006년 11월 23일 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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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5년 만에 돌아가신 시아버지 때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나는 독한 년이었다. 당신의 무능과 비겁함, 무엇보다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모습 앞에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릴 수 없었다.

그런데 자꾸 눈물이 난다.

울컥 울컥 눈물이 나와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교실에서 수업을 하다가도 보이지 않는 눈물이 고인다.

2002년 대선 때, 나는 투표도 하지 않았다. 투표 종사 요원으로 차출되어 새벽부터 투표장에서 유권자들에게 표를 나눠주는 일을 거들며 사전에 하는 부재자 투표도 귀찮아서 하지 않았다. 내가 그 분을 위해서 한 일이라곤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누군가가 비난의 말을 던질 때 나도 슬쩍 한마디씩 거들곤 했다.

그런데도 자꾸 눈물이 난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이 비겁하고 뻔뻔한 나라에서 살아가야 할 일에 눈물이 고인다.

19년 전, 우리 아버지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 1~2년 뇌졸중 후유증으로 고생하시다가 가족 고생시킨다며 홀연 선택한 죽음이었다. 자살한 사람은 큰 죄를 지은 것이라며 미사조차 매몰차게 거절당하는 것을 보고 종교라는 게 인간이 만든 작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통렬히 깨달았다. 그때 나는 깊게 깨달았다. 나의 한 시절이 끝났다는 것을.

아버지 생각에 다시 눈물이 고인다.

아버지 돌아가신 다음 해에 32살 나이로 직장다운 직장에 들어갔다.

아버지 살아계실 때 나는 처치 곤란한 백수의 모습만 보여드렸다. 아프다.

"대통령이 말을 저렇게 밖에 못하나"라고 누군가 비난을 할 때 "그러게" 밖에 맞장구 친 일 밖에 없는데도 가슴이 아프다. 이승만 시절 끝 무렵에 태어난 나는 그분을 통해서 비로소 바른 세상을 만나고 정치라는 것이 그래도 희망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금 통렬히 깨닫는다. 이제 한 시대가 가는가?

눈물이 마른자리에 분노가 고인다.

세계 어느 나라에, 소위 민주국가라는 한 나라의 수도에 국민의 집회가 두려워 멀쩡한 광장에 전경버스로 바리케이드 치고 겹겹이 전투경찰로 에워싸는 나라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시원하게 잘 다듬어진 그 광장의 잔디밭 한 번 밟으며 마지막 가시는 분 분향 한 번 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이 옹졸함이 판치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게 눈물겹다.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이 비겁하고 뻔뻔한 나라에서 새삼 길을 묻는다.

어디로 가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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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올해 내가 담임을 맡은 아이들 얘기다. 

학생1. 한부모 자녀. 남학생. 중학교 2학년인데 아직까지 알파벳을 외우지 못한다. 한글도 그럴까싶어 테스트해봤더니 다행히 한글은 깨쳤는데.....학기초. 겁이 없는 것인지 혹은 물색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생각이 없는지 "저 영어 몰라요. 선생님, 개인 지도 좀 해주세요." 보통 이렇게 드러내놓고 개인 지도를 요구하는 녀석은 없다. 그런데 이 녀석은 대담하다 싶었다. 그런데 그뿐이었다. 내가 진지하게 공부하자하면 말없이 수그러들고 조용해진다....해서 엄마에게 알렸다. 이 아이만 붙들고 하나하나 가르치기에는 기초학력이 너무 부족하다고...엄마는 나중에야 말했다. 내 말이 너무 야속했노라고... 하루에 내가 가르치는 학생이 200 여명이다. 하루 중 겨우 두어 시간 비어있는데 그 시간에 여러가지 잡무 처리를 하고 나면 겨우 숨돌릴 시간이다. 아시는지...어느날은 교복 단추가 떨어졌다며 내게 도움을 청해왔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 10시에 들어오는 엄마에게 단추 달아달라고 말하지 못하는 모양인지 아니면 학교와서야 단추 떨어진게 생각나는 건지 모르겠다. 한번은 별 것 아닌 일로 다른 아이와 싸워서 머리에 상처를 입혔다. 다친 아이 부모가 함께 와서 담임인 나도 곤욕을 치렀다. 당장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방치했다며 그냥 두지 않겠다며 어름장을 놓고 갔다. 두어 바늘 꿰맸는데 CT촬영도 했다. 그 다음은 양쪽 부모에게 맡겼다.

학생2. 한부모 자녀. 여학생. 예쁘고 말 잘하고 잘 따지고 야무지게 생겼다. 이 아이와 말씨름하면 백전백패하기 십상, 한마디도 지지 않는다. 말 잘하는 선생도 이 아이와 말 섞기를 꺼려한다. 얼마전,16,000원이 채 안되는 방과후 수강료를 납부하지 못해 행정실에서 쪽지가 왔다. 두세번 독려를 하고 엄마한테 문자도 넣었다. 보다못한 방과후 담당 교사가 엄마한테 전화를 넣었다가 큰 말다툼으로 번졌다. 듣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큰소리가 오고가고 욕지거리만 없었지 내용은 욕과 진배 없었다. 50대 중반의 담당교사에게 무지 죄송한 일이었다. 몇 푼 안되는 그 돈을 내지 못하는 그 엄마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 싶다. 그 엄마는 학비지원 신청도 하지 않았고 일정한 직업도 없다. 몇차례 전화를 해보았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고 문자를 넣어도 답신 한번 없었다.

학생3. 한부모 자녀. 남학생. 부모 둘 다 재혼을 해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누나와 단 둘이 살고있다. 손버릇이 약간 나쁘고 금방 들어나는 거짓말을 가끔씩 한다. 아이들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있고 이따금씩 이 아이와 시비가 붙는다. 재혼한 엄마는 새엄마가 이 아이를 돌봐주기를 바라는 눈치다. 어쩌다 오는 아빠는 모처럼와서는 혼만 내고 간단다. 하기야 이 아빠는 학교에 와서도 당당하게 할 말을 다하고 갔다. 자식 맡긴 부모가 죄인이 아니라 학생 맡은 담임이 죄인이다...얼마전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점심 시간에 잠깐 아이를 외출시켜줄 수 있겠느냐고. 점심 시간에 집에 갔다온 아이에게 물어보았더니, 엄마가 맛있는 걸 해주셨단다. 이런 엄마 마음이야 또 오죽 아플까만은... 

학생4. 한부모 자녀. 여학생. 초등학교 1학년 때 부모가 이혼하여 아빠와 언니와 살고있다.툭하면 아프다하여 참아보라며 조퇴시켜주지 않고 기다려보면 다시 멀쩡해지는 아이다. 반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며 눈물을 펑펑 쏟는다. 나한테 와서는 여러가지 하소연을 많이하는데 막상 친구들한테는 제 속 표현을 제대로 하지못해 사이만 벌어진다. 학급 친구를 만들어줘야하는 게 내 숙제다. 점심 시간에 함께 밥 먹을 친구를 만들어주는 게 당장의 급선무이다. 친구문제로 아이의 엄마는 내게 전화를 걸어, 엄마 없다고 무시하는 거 아니냐,며 서운한 감정을 드러낸다. 이혼한 아이 아빠가 두려워 말을 많이 아끼는데 아이에 대한 정성은 다른 엄마와 다르지않아 내 마음을 약하게한다. 원격 조종할 수 밖에 없는 이 엄마의 처지가 눈물겹다.에고... 

학생5,6,7,8 한부모 자녀.여학생 2, 남학생 2. 

이 아이들의 성적은 한 둘을 제외하고는 모두 바닥권이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알고있다. 어떤 선생님이 무슨 문제를 낼지를. 시험을 앞두고 던지는 질문은 쪽집게 저리가라일 때가 많다. 교사의 생각을 읽을 줄 안다. 생각을 읽을 줄 안다는 건 세상을 살아가는 요령을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세상이 그렇게 가혹하지 않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인 위와 같은 아이들에게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이 아이들에게 공부는 무엇일까. 바닥을 깔아주는 이 아이들에게 이런 세상 사는 요령을 가르쳐줄 사람은 누구인가. 이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꿈을 심어주는 일...누구의 몫인가.  

자립고, 특목고 얘기가 나오면 속이 울컥 거린다. 진정 화가나면 말이 안나오듯 정말 말이 안나온다. 빌어먹을 세상.... 

어제, 진로특강이라고 외부강사의 강연을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이 외부강사는 공부에 대한 세간의 명언들을 결론삼아 제시했는데 그중의 한 구절이 내 폐부를 찌른다. 

"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지만, 성공은 성적순이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도 구분하지 못하는 강사의 질이야 이미 알아본 바이지만 이건 아니지 않은가.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진로라는 게 있는가.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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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잘한 일(잘했다고 생각되는 일) 두 가지이다.

1. 인도여행 

2. 해피토마토 요리를 개발한 것 

2년 전 감자 한 박스를 얻었다. 평소에 요리다운 요리와는 전혀 거리가 먼 자취생같은 살림살이를 꾸려나가다보니 몇 알도 아닌 감자 한 박스는 내게는 정말 언감생심, 안절부절, 대략난감이었다. 미역국에도 넣어보고, 간장조림도 해보고, 채 썰어 볶아먹기도하고(이건 몸에 안좋다고 해서 이내 그만두었다) 삶아 먹기도 해보았지만 그래도 감자가 남아돌아서 썩어나갈 지경이었다. 때마침 토마토까지 박스로 들여놨더니 15 여년 전에 들여놓은 금성 냉장고가 미어터질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둘 다 해치울 작정으로 토마토감자조림을 해보았다. 고추장 감자 조림에 그저 토마토 몇 알, 설탕 대신 매실 엑기스를 넣었을 뿐인데 맛이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식구들이 이것만 먹었다.감자를 한 상자 더 샀는데 금방 다 먹었다. 한 상자 더 들여놓고 먹었더니 겨울이 왔다. 

작년. 고추장감자조림은 이제 약발이 약해졌다. 요리라는 건, 인기에 연연하는 연예인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물리기 시작하면 찬란했던 한 순간은 그저 과거의 추억으로 남을 뿐이다. 수명 다한 감자는 사지 않으면 그만인데 토마토는 감자와는 다르다. 안먹을 수가 없어 구입은 하는데 먹는 방법이 별로였다. 그전에는 토마토를 썰어서 설탕만 뿌려도 맛있게 먹었는데 알고보니 설탕은 단거(danger ㅋㅋ)란다. 백해무익이라는 사실을 책에서 읽고나니 이것도 옳은 방법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때 떠오른 것이 영국 여행 때 먹어본 토마토 구이였다. 영국식 민박인 b&b에서는 아침식사로 꼭 작은 토마토 구이가 딸려나왔었다. 처음엔 이걸 보고 속으로 비웃었었다. 아니 토마토도 구워먹네...이걸 먹으라고라...그런데 의외로 맛있었던 기억이 났다. 

처음엔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휘휘 돌려가며 구웠는데 물과 기름이 불과 만나더니 성질이 고약해지는것이었다. 사방으로 튀더니 팔뚝, 손잔등마저 따끔거렸다. 그래도 맛은 괜찮았다. 얼마간 계속 그렇게 먹다가 가스레인지에 붙어있는 생선 그릴이 어느날 눈에 들어왔다. 구입한지 8년 동안 딱 한번 사용했던 생선그릴은 그간 쓸 수도 버릴 수도 없는 계륵같은 것이었다. 토마토를 통놈으로 넣을 수가 없어 횡으로 반을 잘라 넣어보니 겨우 들어갔다. 구이판에 호일을 깔아보니 좀 더 쓸만했다. 그렇게 구운 토마토는 한결 요리하기 편하고(뭐 요리라고 할 것도 없겠지만) 맛도 괜찮았다.  

그럭저럭 먹을 만했지만 피자치즈를 뿌려보면 어떨까 싶었다. 맛이 놀라웠다. 이 맛은 생각만으로는 혹은 귀로만 들어서는 절대 모를 맛이다. 직접 먹어봐야 알 수 있는 맛이다. 처음 두세번은 잘 모른다. 꾸준히 먹다보면 "먹는 것이 이렇게 행복감을 줄 수도 있구나"를 몸으로 깨닫게된다. 평소 먹는 것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나도 이 구운 토마토 앞에서는 늘 침을 질질 흘린다, 매번. 이렇게 토마토 구이를 아침 식사때마다 후식으로 해먹은지 만 1년이 되어간다. 그래서 냉장고에 토마토가 바닥을 드러내면 내 일상은 침체 모드로 바뀐다. 

이름하여 "해피토마토" 

더욱 맛있게 먹는 방법은, 1)익혀서 바로 먹을 것, 2)토마토를 먼저 먹고 치즈는 나중에 먹을 것, 그래야 토마토와 치즈맛을 제각기 즐길 수 있다. 

요리할 때의 포인트. 온도조절이 관건이다. 치즈를 약간 노릇하게 익혀야 제 맛이 나는데 전자레인지로는 약간 맛이 덜 난다. 내가 사용하는 가스레인지의 생선그릴을 예로 들면, 토마토를 넣은 후 얼마쯤되면 유리뚜껑에 김이 서리는데 그것이 다 증발되어서 유리뚜껑이 건조가 되면 처음의 중불에서 제일 낮은 불로 줄여 3분 정도 가열한 후 불을 끄고 2분정도 두었다가 꺼내면된다. 이 방법은 가열기구에 따라 다른 것이므로 각자 나름대로의 노하우를 개발해야한다. 

하루를 해피토마토가 주는 작은 행복감으로 시작하는 것....내 친구들에게 해줄 수 있는 작은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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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이웃 동네에 새로 들어선 아파트 단지에는 올해도 어김없이 꽃들이 활짝 피어나고 있다. 꽃나무라고해야 얼마 전 한차례 꽃을 피운 목련 몇 그루와 벗나무 몇 그루, 서서히 기지개를 펴고 있는 넝쿨장미, 그리고 영산홍이 전부인 단촐한 화단이다. 며칠 전엔 영산홍이 일제히 꽃망울을 터트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치 출발선에 선 육상 선수들처럼 서로 질세라 바짝 긴장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출근길의 내 발걸음은 보폭이 크고 속도가 빠르다. 5층에 위치한 사무실을 단숨에 가는 것, 즉 5층에 이르는 계단을 한번도 쉬지 않고 단번에 오르기가 올해의 내 작은 목표인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걸어서 15분 정도가 걸리는 출근길을 빠른 걸음으로 걷다보면 그 모아진 동력으로 내쳐 5층까지 밀고 가는 게 내 목표에 이르는 전략이라면 전략이다. 

빠르게 걸어가며 옆으로 스쳐지나가는 듯한 여러 무리의 영산홍을 눈에 담는 다는 것은....아름답다는 느낌 이전에 눈의 피곤함이라는 물리적인 반응이 먼저 일어난다. 사방연속 무늬나 체크무늬에 잠시 눈길만 주어도 금세 난시로 변해 버리는 내 눈 탓이다. 해를 향한 꽃망울들의 종대 횡대 일정한 반복성에 금세 눈이 피곤해지곤 한다. 눈이 아른거리고 어지럽기까지 하다. 아마도 민감함 보다는 노안의 원인이 더 큰 것 같지만.... 

올 봄은 이 꽃무리들이 몹시 어지럽게만 느껴진다. 열흘 전, 내가 (담임을 맡고 있는) 교실 컴퓨터의 본체에 있는 중요부품(cpu등)을 도난당했다. 여러 선생의 설득 끝에 가져다 놓기는 했으나 본 물건이 아닌 중고품으로 기만만 당하는 꼴이었다. 다시 치밀한 필적 감정과 정공법으로 녀석을 잡아내기까지는 며칠이 더 걸렸다. 결국 범인은 학급 안에 있었다. 한 남학생의 소행이었다. 시치미 떼는 이 녀석을 잡아 내기 까지는 말 그대로 한 편의 추리극이라고나 할까. 하여튼 우여곡절 끝에 완전범죄는 없다는 교훈을 상기 시키는 데 까지는 성공했으나 문제는 이 때부터다.  

이 녀석을 어떻게 지도해야하나. 아직도 이 숙제를 끌어안고 끙끙 거리고 있는 중이다. 오늘 써 낸 녀석의 반성문에는 이런 내용의 글이 적혀있었다. 

"......아침에 학교에 들어서면서 꽃 한송이를 보았습니다. 이 꽃도 꽃을 피우기 위해서 고통과 고난을 이겨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녀석이 반성문을 쓰는 동안 집에 가지 않고 끝까지 기다려주는 두 명의 친구 녀석들 때문에 다잡았던 내 마음도 잠시 흔들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녀석과의 동조 여부를 캐는 것도 놓칠 수 없는 일이다보니 그저 어지러울 뿐이다. 

 

누나와 단 둘이 살고 있는 녀석(지난번 글<길을 걷다가 1>에서 언급했던 녀석)의 친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떤 얘기 끝에 이런 말을 했다. 

" 제가 (제 자식을)돌보기에는 제 처지가 여의치 않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요...애아빠와 함께 살고 있는 그분한테 선생님이 전화 한 번 해주시지 않으실래요? 그분도 우리 아이를 맡고 싶어하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전화번호는 우리 아이가 알고 있어요." 

뭐시라고? 남의 집 가정사까지 교통 정리를 해달라고? 선생을 믿고 의지하는 것에 감사해야되나, 제 자식 감당 못해 남한테 떠 맡기는 처사를 분통 터트리며 이해해주어야하나. 그저 어지러울 뿐이다. 

올 봄은 꽃은 꽃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어지러울 따름이다. 내일은 혈압 측정하러 병원에라도 가봐야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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