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도서관에서 책을 쌓아놓고 읽었다. 게중에는 영운학의 기초가 되는 책도 있어서 매우 반가웠는데 알고보니 임용고시수험서였다. 정말 알찬 영문학 개론서였는데...아쉽다.

 

 

1.

 

 

 

 

 

 

 

 

 

 

 

 

 

나는 단아하고 세련되고 매끄러운 글을 참지 못한다. 예전에는 분명 이런 스타일의 글발에 감동하고는 한숨 짓거나 베껴쓰거나 그랬을 텐데 지금은 심기가 불편해진다. 이런 책은 도저히 끝까지 읽지 못하고 도중 하차하고 만다. 계속 읽다보면 동어 반복에 질리고 만다. 소위 말하는 매너리즘이 감지되면서 글의 내용이 마음의 밑바닥을 흔들지 못하고 겉돌고 만다.

 

그래도 한 문장은 건졌다고 생각했다.

 

'지도로 무장하면 여행자의 세계는 축소된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여행의 기술>에서 인용했다 함.

 

 

그럴수도 있을 수 있겠지만, 여행이 낭만적일 수만은 없다. 지도로 무장해도 길을 잃고 방황하게 마련인 게 여행이다. 표현은 멋져보이지만 현실성 떨어지는 이런 문장에 이내 식상해지고 만다. 세련된 문장을 그냥 즐기면 되는 데 나는 그게 왜 안될까? 차라리 저 말을 인용하는 대신 지도 없이 길을 헤맨 경험을 이야기했다면 훨씬 이야기에 빠져들 텐데 말이다.

 

 

 

2.

 

 

 

 

 

 

 

 

 

 

 

 

 

 

착한 행동이라도 남을 위할 때는 몰래 해야 하거늘, 내가 옳다고 남의 잘못을 호되게 꾸짖으면 그 사람이 올바를 길로 들어설 것인가?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순간 사람들은 대개 모욕을 느껴서 오히려 반항한다. '그래 나는 나쁜 사람이다. 그런 너는 얼마나 착하냐?' 그는 결국 마음으로 승복하지 않는다.

 

 

 

 

3.

 

 

 

 

 

 

 

 

 

 

 

 

 

 

 

 

나는 더 이상 앞에서도 뒤에서도,

희망이나 두려움을 보지 않는다. 

그저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가 발견하는 좋은 것을 취한다.

지금, 여기서 가장 좋은 것을.

 

-존 그린리프 휘티어(미국 시인, 노에 폐지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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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염전이었던 곳에 깔았던 타일 모양이 멀리 보이는 아파트 단지처럼 가지런하다. 언젠가는 저 아파트도 타일 조각처럼 바닥에 깔리게 되겠지. 크게 보면 한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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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역사 - History of Writing History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8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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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손도 못대볼 역사책들을 꼭꼭 씹어서 입에 넣어준 덕분에 꿀꺽꿀꺽 잘 삼켰다. 소화도 잘 되어서 그간 눈도 가지 않던 역사책들을 슬쩍 건드려볼 참이다. 옆에 쌓아둔 다른 책들이 허접해서 손도 대기 싫어지는 후유증은 어찌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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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천에 위치한 애관극장은 여러 면에서 놀라운 곳이다.

 

우선 이름이다. 제일극장, 중앙극장,...전국적으로 이런 개성 없는 이름이 난무하던 시절에 이 극장은 '애관'이라는 상호를 달고 있었다. 한번 들으면 쉽게 잊혀질 수 있는 이름이 아니었다. 약간 에로틱한 이름이 당시 유행하던 동시상영 극장같은 모호한 분위기를 풍기기도 했으나 어디까지나 개봉관이었다.

 

어제 신포동 일대를 산책하다가 '지금쯤 애관극장 자리엔 뭐가 들어섰을까?' 궁금해하며 이 근처를 지나가게 되었다. 익숙한 건물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는 일쯤은 우리가 늘 일상으로 겪는 일이라 마음의 준비라고 할 것도 없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었다.' 뻔하겠지 뭐.' 하던 순간 모퉁이를 돌자 '애관극장'이란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놀라웠다.

아직도 그 자리를 당당하게 지키고 있는 것도 놀라웠고 다른 개봉관가 다름없는 영화를 상영하고 있는 것도 놀라웠다. 사실 놀라운 건 이 극장이 아니라 나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옛 것이 이미 사라졌으리라는 생각을 품고 있는 나 말이다.

 

하나 더 놀라운 건 가격이었다. 남편의 제안에 따라 이미 상영이 시작된 <안시성>을 보게 되었는데 가격이 7,000원이다. 물론 극장 건물은 많이 낡은 편이다. 언제적 건물인가. 낡을 수밖에 없지 싶다. 계단을 오르며 잠시 떠오른 생각. 지난번 런던의 웨스트 엔드의 뮤지컬 공연극장은 이곳보다 훨씬 열악햇다. 열악한 곳이었지만 세계적인 뮤지컬을 보기 위해 많은 지구촌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이름도 정겨운 애관극장. 부디 세파에 흔들리지 말고 꿋꿋이 지금의 자리를 지켜나가기 빌어본다. 프랜차이즈 전성시대에 개성없는 cgv, 메가박스 대신 사랑스러운 '애관'이라는 이름을 계속 입가에 올리고 싶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놀랄 준비가 되어 있다.

 

 

 

∼∼∼∼∼∼∼∼∼∼∼∼∼∼∼∼∼∼∼∼∼∼∼∼∼∼∼∼∼∼∼∼∼∼∼∼∼∼∼∼∼

 

 

 

마침 유시민의 <역사의 역사>를 읽고 있는데 안시성 전투에 관한 부분이 있다.

 

 

 

 

 

 

 

 

 

 

 

 

 

 

 

 

645년 6월, 당태종이 수십만 군사를 거느리고 와 성안을 향해 외치게 했다. "항복하지 않으면 성을 함락하는 날 모조리 죽이겠다." 양만춘이 성 위에서 통역을 시켜 당의 군사에게 소리쳤다. "너희가 물러나지 않으면 성에서 나가는 날 모조리 죽이겠다."

                          (196쪽. 신채호<조선상고사>에서..재인용) 

 

영화 속에 저 대사가 나왔던가? 그것보다 "이기지 못할 싸움을 왜 싸워야하느냐?"는 질문에 "싸워야 하니까 싸우는 거다."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는데 배우 조인성에게는 오히려 이 대사가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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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7 0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7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행인 2018-09-27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광주에도 광주 극장이 하나 있는데 아트시네마로 변신했어요. 인테리어는 과거를 그대로 품고 있어서 언제나 가면 따뜻한 곳이죠. 다음에 가시면 내부 사진 좀 찍어오시면 좋을 거 같아요 ^^

nama 2018-09-27 15:55   좋아요 0 | URL
하, 그 생각을 못했네요. 이미 상영이 시작된 영화를 놓칠세라 급히 들어갔고, 나올 때는 전화가 연속 걸려오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거든요. 내부 사진을 찍으러 다시 한번 가야겠어요. 고맙습니다.
 

 

며칠 사이 의도치 않게 병원 순례를 하게 되었다.

 

1. 내과: 위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꼼꼼한 젊은 의사는 식도, 위장의 문제점과는 별개로 성대용종까지 잡아냈다. 친절한 의사는 의뢰서와 함께 내시경 사진을 cd로 복사해주며 꼭 이비인후과에 가보라고 했다.

 

 

2. 이비인후과 : 동네에서 이른바 명의로 불리는 노회한 이비인후과 의사는 cd 복사물을 살펴보더니

 

 "이건 암입니다"

 

하며 서너 번에 걸쳐 내시경 검사를 했다. 서너 번 씩이나 내시경을 들이댄 건 사진 속의 용종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내시경으로 다시 콧속을 샅샅이 뒤진 후 "아래쪽으로 아주 작은 게 보이기는 것 같은데... 대학병원에 가시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3. 대학병원: 예약없이 달려갔더니 두 시간 반이 지나서야 겨우 진료를 받게 해주었다. 성격이 시원해보이는 젊은 여교수는 몇 번에 걸쳐 코내시경 검사를 했다.

 

" 아무것도 없는데요. 사진 속의 이건 가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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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9-22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번 검사하시면서 힘드셨겠어요. 그래도 결과가 좋아서 다행입니다.
nama님, 추석인사 드리러왔어요.
오늘은 추석 연휴 첫 날이었는데, 편안한 하루 보내셨나요.
가족과 함께 즐거운 추석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nama 2018-09-25 13:48   좋아요 1 | URL
유목민처럼 늘 여기저기 발도장 찍고 다니느라 댓글이 늦었습니다.
나머지 연휴,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카알벨루치 2018-09-23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당하셨겠습니다! ㅜㅜ그래고 가래 뿐이라 다행입니다 명절 잘 보내십시오 nama님!

nama 2018-09-25 13:52   좋아요 1 | URL
황당하기도 했지만 ‘안전불안증‘같은 게 아닐까 여겨졌습니다. ‘만의 하나‘ 실수를 할까봐 전전긍긍하는 것 같았습니다. 친절한 건지 조심스러운 건지 책임 회피인지...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8-09-23 0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5 1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8-09-23 0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쿠, 읽는 제가 다 가슴이 덜컹했습니다.
병원은 반드시 두군데 이상을 가서 소견을 들어봐야한다는 것이 저의 어줍잖은 주장 중의 하나랍니다. 잘 하셨어요.
그런데 어쨌든 불편하시니까 병원을 찾으셨을테니 치료 잘 받으셔요~

nama 2018-09-25 13:57   좋아요 0 | URL
속이 너무 아파서 내과 몇 군데 다니다가 내시경 검사를 하게 되었지요.
이것저곳 처방전과 처방약을 잔뜩 싸놓았는데 저와 잘 맞는 병원을 찾기가 쉽지 않네요. 마음에 드는 미용사 찾기가 어려운 것과 같네요.^^
예전엔 외과의사가 이발소를 겸했다고 하는데요, 어떤 면에서 무척 닮았어요.
맞아요, 병원은 두 군데 이상 다녀봐야 할 것 같아요.

지나 2018-09-23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다행입니다.제 동생은 이런 헤프닝으로 끝나지 않아서.정말 행운이십니다

nama 2018-09-25 13:59   좋아요 0 | URL
동생분의 쾌유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