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아키아, 이야기가 남았다 (레드케이스 포함) - 이동진이 사랑한 모든 시간의 기록
이동진 지음, 김흥구 사진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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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견뎌낸 모든 것에 갈채를‘... 이동진

끝까지 파고들어 내 것으로 만드는 집요한 수집가에게 갈채를.

오묘한 열정과 생에 대한 애착을 느끼게 해주는 묘한 매력을 발산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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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0-10-12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사진집인가요?

nama 2020-10-13 08:19   좋아요 1 | URL
사진 반 글 반쯤 될까요? 글도 재밌어요.

막시무스 2020-10-13 15:2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알라딘 책 정보만 봐서는 애매했었어요!ㅎ
즐건 하루되십시요!
 

 

물건을 쉽게 버리지는 않지만 물건 수집하는 것을 즐기지는 않는다. 그나마 책은 약간 있지만 구색을 맞춰 구입한다거나 희귀본을 소장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다 읽은 책에 대한 미련도 별로 없어서 친구에게 주어버리기도 한다. 물론 아끼는 책은 아끼지만 점점 아까운 책이 줄어든다고나 할까. 그래도 버리지 못하는 물건이 몇 개 있긴 하다. 바로 재봉틀이다.

 

 

 

 

1950년대 후반쯤에 결혼한 작은 어머니가 사용하던 재봉틀로 1970년대 초반에 우리 어머니가 물려 받았다.초등학교 고학년일 때 나는 어깨 너머로 저 재봉틀 사용법을 익혔다. 중학교 가정 시간에 선생님이 '자기 집에 재봉틀 있는 사람?'하고 물을 때 손을 들었는데 '무슨 재봉틀이니?' 물으셔서 '싱거 재봉틀이요.' 했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가 시집올 때 해오신 건 아니지만 하여튼 집에 재봉틀이 있었으니 자못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몇 차례 수리를 했지만 끝내 작동하지 않는 저 손재봉틀을 버리지 못하고 소장한 지 몇년쯤 지났을 때 재봉틀 몸체에 써있는 DRESS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어? 싱거가 아니었나?

 

 

 

 

트레이드 마크가 드레스였다. 그럴리가.... 검색해보니 드레스 재봉틀을 70년대에 대우에서 인수해서 그 이후로는 저 자리에 '대우'라는 글자가 들어가게 되었다 한다. 그러니까 저 재봉틀은 대우에서 인수하기 전인 60년대나 50년대에 나온 제품이었다. 그건그렇고 왜 싱거로 기억하고 있었지?

 

 

 

바로 이 박스 때문이었다. 아담한 나무 상자에 당당하게 쓰여있는 '싱거', 나는 이 글자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싱거에서 나온 드레스인가? 검색해보니 싱거는 싱거고 드레스는 드레스이지 같은 회사 제품이 아니었다. 이걸 노쇠하신 작은 어머니께 여쭤보나? 우린 그런 살가운 사이가 아닌데...

 

 

 

요즘은 보기 힘든 손재봉틀. 근대사박물관에나 있을법한 물건이다. 주물로 만든 거라서 무게도 꽤 나간다. 고쳐서 사용할 날이 올까?

 

 

 

 

20여 년 전에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삼베 베겟잇. 삼베 수세미를 만들면서 찾아본 이 베겟잇을 보고서야 며칠 전에 작업을 끝낸 삼베수세미가 떠올랐다. 국산 삼베는 구하기도 어렵고 가격도 만만찮은데 이런 값진 것을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년 전 삼베로 만든 홑청을 쓰레기로 버린 것을 떠올리니 가슴이 쓰려왔다.

 

그나저나 이미 만들어놓은 50여 개나 되는 삼베 수세미는 어찌하나? 아무래도 진짜 삼베가 아닌 것 같은데....여기저기 주겠다고 말씨도 뿌려놨는데.... 수세미 하나에 고민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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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0-10-11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에도 오래된 드레스가 있어요. 그런데 다들 싱거인줄 알고 있었어요. 지금은 최근에 나온 싱거를 쓰고 집에 보관중입니다. 지금은 살 수 없는 제품이라서요.

nama 2020-10-11 19:29   좋아요 1 | URL
저만 착각한 게 아니었군요. 맞아요. 고장났지만 지금은 살 수 없는 귀한 것이라서 내내 겨안고 있나봐요.^^

막시무스 2020-10-11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상하게 재봉틀이라는 단어보다, 미싱이라는 단어가 더 친숙한것 같아요! 어릴때 할머니 미싱을 기름으로 닦던 기억 나네요!ㅎ 미싱기계를 접으면 저런 나무상자속으로 들어가는게 참 신기했었어요!ㅎ 즐건 한주되십시요!

nama 2020-10-12 13:37   좋아요 0 | URL
지금 나오는 미싱은 뚜껑(박스)마저 플라스틱이라 정감이 가지 않아요. 마치 회색아파트 건물처럼요. 오래된 옛집 같은 저 나무상자 때문에 낡은 미싱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오래된 옛집에서는 살 수 없지만.

라로 2020-10-23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로 저 재봉틀이군요!! 그 옛날에는 얼마나 귀한 물건이었을지 상상이 갑니다. 저희는 집에 미싱은 없었지만, 엄마의 가게에는 재봉틀이 2대가 있었어요. 한가한 날에는 엄마 혼자 이불 홑청을 박으시지만 바쁜 날에는 엄마와 일하는 언니나 아버지가 교대로 박으시던 모습이 기억이 나요. 아버지가 박으신 것은 정말 너무 허접해도 너무 바쁘니가 아쉬운 대로 쓰시기도 하고 다시 뜯어서 만들기도 하셨는데,,,그러셨던 엄마의 속이 속이 아니었겠다는 생각을 이제서야 하게 되네요. 이것 말고도 재봉틀에 얽힌 추억이 제겐 참 많아요,,,그러고 보면. ^^;;

nama 2020-10-23 09:13   좋아요 0 | URL
그러시군요. 재봉틀과 가족을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추억거리가 많군요. 재봉틀도 가족이었겠어요.
사실은 저것말고 또 한 대 있어요. 동네에 들어선 알뜰시장에서 몇년 전에 중고 손재봉틀을 구입했는데, 이걸로는 현수막을 재활용하여 장바구니를 몇개 만들었지요. 그러고는 고장나고 말았어요. 이것도 어쩌지 못하고 껴안고 있는데 좁은 집안에 재봉틀만 3대가 되었어요.
 

 

어쩌다 문화센터의 홈패션 강의에 참여하게 되었다. 여러 원인이 있겠는데 단연 코로나 탓이라고 해야겠다. 여느 여름처럼 한창 들떠서 여행 사이트를 들락거릴 수도 없고, 늘 읽을 책은 차고 넘쳤지만 책도 읽히지 않았다. 일상의 리듬이, 한여름의 리듬이 깨져버린 것이다. 급기야 거금을 주고 재봉틀을 구입하는 만용도 부렸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진도가 빨리 나가지 않았을 텐데. 흠. 백수의 삶도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법.

 

 

 

재봉틀 기능도 채 익히지 않은 상태에서 겁도 없이 만든 커튼. 요즘은 유튜브가 선생이라 만들기는 어렵지 않았다. 힘 좋은 남편이 거들어줘서 아일렛링(커튼 고리)도 끼웠다. 커튼을 달기 전에는 책장이 도드라졌는데 개성 강한 커튼 때문에 책이 희미하게 보인다. 책 대신 커튼을 감상하시라구요.

 

 

 

알음알음으로 소창이 유행인 것 같아서 일단 몇 마 끊어서 박아봤다. 고운 행주가 탄생했다.

 

 

 

 

행주 몇 장 가지고는 성에 차지 않아서 아예 무광택 강화소창 한 필(30마)을 구입했다. 한 마가 90cm이니 꽤 길다. 많이 배운다. 강화도가 직물 산업으로 유명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책으로만 읽었던 '한 필'이 얼마만한 크기와 부피를 가졌는 지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한 필을 얻기 위해 우리 조상들이 쏟은 노동의 강도도 생각해보고.

 

소창 스카프라고...천연섬유이니 이 스카프를 닳고 닳도록 사용한다면 쓰레기가 거의 남지 않고 남더라도 곧 썩어서 흙으로 돌아가리라. 스카프로서의 생명이 다하면 행주로 사용해도 된다. 이름하여 제로 웨이스트 제품. 친구들에게 주려고 여러 장 만들었다.

 

 

 

 

가장자리 자수는 재봉틀로 드르륵드르륵 박으면 되는데 모서리에서 프로와 아마추어의 솜씨가 갈린다. 아직은 매우 매우 헤맨다. 소창 한 필을 다 썼는데도 솜씨가 그닥 늘지 않는다. 우리가 평소 입는 매끈하게 바느질된 옷을 새삼스런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아, 이 세상에는 솜씨 좋은 일꾼들이 얼마나 많은가. 내 손으로 옷 한 벌 지어 입을 줄 모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곰곰 생각해본다.

 

 

 

이건 삼베 한 필(22마)이다.  소창 한 필을 모두 소진, 이번엔 삼베 수세미에 도전한다.

 

 

 

 

삼베 수세미를 사용하면 달걀프라이 담은 접시 같은 가벼운 기름기는 주방세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게 무척 신기하다. 아크릴 수세미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나온다니 이 삼베 수세미를 적극 사용해야겠다.

 

두어 개 만들어 써보니 조금씩 감도 잡힌다. 형광색 색실로 약간의 변화를 주니 단조로운 재봉질이 재밌다. 커튼을 새로 만들며 먼젓번에 사용했던 장식용 커튼을 잘라내어 고리로 재활용하니 그런대로 잘 어울린다.

 

재봉질은 생각보다 고된 작업이다. 잠자기 전 운동이 수면을 방해하듯 몇 시간씩 재봉을 하다 잠자리에 누우면 쉽게 잠이 들지 못한다.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써 놓은 책 읽기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준 옷을 입는 것만큼이나 편하고 감사한 일이다. 다시 책을 집어들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저 삼베 한 필을 다 소진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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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0-10-08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a님, 추석 연휴 잘 보내셨나요.
사진 속의 책장이 있는 공간도 예쁘고 커튼도 좋아보여요. 아일렛으로 하시면 펀칭하는 것이 힘든데, 커튼에는 숫자가 많아서 고생하셨겠어요. 바느질이 해보면 어려운 점이 많은데, 올리신 사진 보니 손재주 좋으신 분 같아요.
요즘 아침 저녁 기온이 많이 내려가고 일교차가 큰 시기예요.
감기 조심하시고,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nama 2020-10-09 10:58   좋아요 1 | URL
전 이번에 아일렛을 처음 알았어요. 플라스틱 재질로 먼저 천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가위로 잘라내니까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어요.
바깥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가을 날씨를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ebond 2020-10-08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삼베한필 가격도 만만찮을 것 같은데요. 사람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뭔가 해내는걸
즐거워하는 사람과 그렇지않은 사람으로 구별이 되더라구요.
조금만 더지나면 아마도 전문가 수준이 될것 같군요.
주변에 마구 나눠주고 하다보면 알게모르게 돈도 꽤나가요. ㅎㅎ

nama 2020-10-09 11:00   좋아요 0 | URL
국산 삼베는 구하기도 힘들다고 하네요.
다행히 삼베 한 필 가격은 책 한 권 값밖에 안돼요. 아직은 마구 나눠주고 싶어요~~

라로 2020-10-09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저는 저 대범한 색상 대비 패턴의 커튼을 보고 나마 님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어요.
2. 저는 아무리 그래도 온통 나무로 된 님의 집안이 더 눈에 들어오는 걸요!!
3. 제 친정어머니가 포목집을 오래 하셨어서 강화도니 한산도니 그런 곳으로 삼베, 모시 등등을 사러 가셨던 기억이 나네요. 이 글 읽고 엄마가 보고 싶어지다니..^^;;
4. 저는 의상학과를 나왔는데도 제 손으로 옷을 만들어 입은 적은 학교 다닐 때 뿐이었어요...저도 요즘 바느질이 다시 하고 싶어졌더랬는데..
5. 삼베 수세미가 그렇군요!! 저도 나중에 한국에 가면 천연섬유를 광장시장에 가서 좀 사다가 이것저것 만들어봐야겠어요.
6. 제 친정 엄마가 명주로 스카프를 만들어 주셨는데 지금도 곱게 잘 쓰고 있어요. 다음엔 실크에도 도전을 해보세요.

nama 2020-10-09 11:10   좋아요 0 | URL
1. 저 집이 있는 동네는 말 그대로 자연이 살아있는 곳이라서 강한 심장이 필요해요. 저도 모르게 심장이 두꺼워졌지 싶어요.
2. 12평짜리 날림(?) 주택인데 내부만 그럴듯해 보여요.
3. 포목집을 하셨군요. 한산도라.... 추억이 많으시겠어요.
4. 의상학과를 나오셨다니 뜻밖인데요.^^ 바느질을 접하다보니 온통 세상이 바느질로 되어 있더라구요. 옷, 신발, 가방...재봉틀 만든 사람은 천재같구요.
5. 가능하다면 삼베수세미 몇 개 보내드리고 싶어요.
6. 와우...감히 실크에 도전을...명주는 또 뭔가요? 직물 세계도 재밌어요.

2020-10-09 2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10 1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11 07: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11 16: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13 0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13 08: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14 0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14 1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베카 (초판 출간 80주년 기념판)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이상원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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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재밌게 읽고 있다. 레이먼드 카버, 페소아, 페르메이르, 아리스토텔레스, 카뮈, 가와바타 야스나리 등을 완독했거나 읽고 있는 중이다.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이 되거나 딱히 눈에 들어오는 책이 없을 때 제격인 시리즈이다. 한 인물에 빠진 저자를 따라 책에 몰입하다보면 이 유명하신 분들의 인생에 좀 더 밀착된 느낌이랄까. 진한 국물맛 같은 거.

 

 

 

 

 

 

 

 

 

 

 

 

 

 

 

 

 

여름이면 떠오르는 <설국>. 이 소설을 쓴 가와바타 야스나리. 이 책을 읽고서야 내가 <설국>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여름이 가기 전에 다시 읽어보고 싶지만 내 마음 나도 모를 일.

 

 

 

 

 

 

 

 

 

 

 

 

 

 

 

 

 

<설국> 대신 읽은 <이즈의 무희>. 위의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쓰인 줄거리를 옮겨보면,

 

  스무 살의 주인공 '나'는 이즈반도로 여행을 떠난다. 고아 기질 때문에 뒤틀린 성격을 고치고, 태생적인 우울감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떠난 여행이었다. 이 여행에서 '나'는 우연히 유랑 극단 일행을 만나 동행하게 된다.

  가족 중심으로 구성된 유랑 극단에는 열네 살 무희 가오루가 있었다. '나'는 가오루를 지켜보면서 자신이 정화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처음에는 이 소녀가 몸을 파는 여자가 아닌지 의심을 하기도 했지만 소녀의 티 없이 맑은 성정을 느끼면서 '나'의 의심과 우울감도 사라진다.

   순간순간 가오루가 보여주는 '나'에 대한 작은 관심은 '나'의 일그러진 성격을 밝게 만들어주는 묘한 힘을 지니고 있다. 가오루가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네"라고 '나'를 평하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어른과 어린이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둘 사이의 애틋함은 오래가지 않는다. '나'가 도쿄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일행이 시모다 항구에 도착한 날 '나'는 도쿄행 배에 오른다. 소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만 끄덕이면서 서 있고 '나'는 선실에 누워 눈물을 흘린다.                         -168~169쪽

 

이런 줄거리 때문에 '일본판 소나기'로 부르기도 한단다.  다른 점이 있다면 <소나기>에서는 주인공들이 죽어서 이별을 하고, <이즈의 무희>에서는 살아서 이별을 한다는 것.

 

누구나 일생에서 한번쯤 이 <소나기> 같은 시절이 있지 않을까. 내 눈 빛과 내 마음을 읽어주는 누군가가 있어 분노와 우울로 버무려진 절박했던 시절의 강물을 가까스로 건널 수 있었던 경험 같은 거 말이다. 이 단편을 읽고나면 한동안 잠자고 있던 옛 일이 떠올라 며칠 밤 잠을 뒤척일지도 모른다. 내가 그랬다. 내 얘기도 소설감인데....엉뚱한 상상에 빠져서... 한달 넘게 이어지는 장맛비도 일조를 하고 있다.

 

그래도 소설이니 어떤 맛인지 맛은 봐야겠지요?

 

 잠시 동안 낮은 목소리가 계속되고 나서 무희의 말소리가 들렸다.

"좋은 사람이야."

"그래 맞아. 좋은 사람 같아."

"정말로 좋은 사람이야. 좋은 사람이라서 좋겠어."

이 말투는 단순하고도 솔직한 울림을 지니고 있었다. 감정의 치우침을 휙 하고 순진하게 담아 던진 목소리였다. 나 스스로도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순순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상쾌하게 눈을 들어 밝은 산들을 바라보았다. 눈꺼풀 속이 희미하게 아팠다. 스무 살의 나는 자신의 성질이 고아 근성으로 비뚤어져 있다고 심한 반성을 거듭한 끝에, 그 숨 막히는 우울을 견디지 못하고 이즈로 여행을 온 것이었다. 그러니까 세상의 보편적인 의미로 자신이 좋은 사람으로 보인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것이었다.                  -37~38쪽

 

'눈꺼풀 속이 희미하게 아팠다.' 내 심장이 희미하게 아파오는 문장이었다. 원문으로 읽을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번역문으로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섬세한 글맛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책이다. 인상 깊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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