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스 앨머-테디머 경<사포와 알카이우스> 1881, 캔버스에 유채, 66x122cm,
볼티모어, 월터스 아트 갤러리
 
그림 속의 여인이 되고 싶을 때 - 사포

용모가 빼어나고, 재능도 뛰어나며, 인간적인 매력으로 뭇사람들로부터 상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모든 여성들의 꿈이요 바램일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최고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인 사포(기원전 610년경-580년경)가 그런 여성이었습니다.


그 이름을 Sappho 또는 Psappho로 쓰는 사포는 그리스 레스보스 섬의 미틸레네 태생입니다. 명망 있는 귀족 집안 출신인 그녀는 역시 안드로스 섬 출신의 부유한 남자 케르콜라스와 결혼했습니다. 사포가 한때 다른 귀족들과 더불어 레스보스 섬에서 추방돼 시칠리아에서 살았다는 기록이 사실일 것으로 여기지지만, 어쨌든 그는 생애의 대부분을 자신의 고향에서 시를 지으며 지냈습니다.


무척 아름다운 시어로 누대에 걸쳐 칭송을 받았던 사포. 그녀는 아르킬로쿠스와 알카이우스를 제외하면 고대 그리스 시인 중 독자로 하여금 사적인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데 가장 뛰어났던 시인으로 꼽힙니다. 그녀의 시어는 문학적이라기보다는 세속적이었고, 시구는 간결하고도 직접적이면서 회화적이었습니다. 마치 저 하늘 높이 떠서 자신의 사적인 환희와 고통을 비판적으로 내려다보는 것 같은 차분함이 엿보이지만, 그 차분함 속에서도 원초적인 감정의 힘을 결코 잃지 않는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고 평가됩니다. 방대한 작품을 쓴 것으로 추정되나, 완전한 형태로 지금까지 전해지는 시는 28행 짜리 한 편뿐이고, 모두 합해서 700여 행에 이르는 인용이나 단편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녀의 시 주제는 주로 가까운 여성들과의 우정이나 증오 등을 표현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그가 여성 동성애자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이유가 이와 관련이 있지요. 당시 레스보스 섬의 부유층 여성들은 사교 모임을 통해 한가롭고 우아한 여가 문화를 즐기곤 했는데, 특히 시를 짓고 낭송회를 갖는 것이 큰 유행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모임의 주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사포는 남다른 카리스마로 멀리 떨어진 곳으로부터도 예찬자가 찾아올 만큼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이 사교 모임이 갖는 성격상 안팎으로 넘쳐나는 사랑과 우정, 질투, 미움, 경쟁의 드라마는 사포에게 중요한 시적 영감의 원천이 되어주었지요.

사포는 다른 여성들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부드러운 흠모에서 열정적인 사랑까지 다채롭게 표현했습니다. 이런 자료들을 오늘에 비해 세세히 살필 수 있었던 고대의 평자들은 사포가 레즈비언이었다고 단언했습니다. 물론 시로 표현한 감정이 단순한 우정을 넘어서는 부분이 있음은 분명해 보이지만, 현존하는 자료만으로 사포와 그녀의 동료들이 본격적인 동성애행위를 했었는지는 명확히 확인할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사포를 포함해 레스보스 섬 여성들의 이런 문화가 오늘날 레즈비언이라는 말을 낳았다는 사실이지요.


이처럼 레즈비언으로 그려진 사포는 그 시적 재능에 대한 찬미와 더불어 회화에서 매우 낭만적인 미인상으로 표현되곤 했습니다. 이를테면 수금을 든 비너스의 이미지 같은 것이 그것이지요. 특히 누드의 경우 수금이 옆에 있어서 그녀인지 알 수 있지 그 모습 자체는 여느 비너스나 님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사포 주제는 이런 낭만적인 미인상보다 투신자살하는 그녀의 모습입니다. 절벽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는 바로 그 파괴적인 결말로 자신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를 신화로 승격시켰습니다. 어떤 예술가라도 뜨거운 심장으로 형상화하지 않을 수 없는 주제로 삶을 마감한 것입니다.


사포가 레우카스 절벽의 ‘연인들의 투신 바위(Lover's leap)’에서 뛰어내린 것은 그렇게 하면 죽지도 않고 상사병도 낫는다는 속설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포는 미틸레네의 선원 파온을 열렬히 사랑했으나 끝내 그 사랑을 이룰 수 없어 투신을 감행했다는 것인데, 이 이야기는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사포는 상사병의 감정을 잘 알고 있었지요. 다음 시구에 그 감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저는
더 이상 베 짜기를 할 수 없어요
차라리 아프로디테를 탓하세요

그녀처럼 부드럽게

저 소년에 대한 사랑으로 나를 거의 죽게 만들었으니까요

(사포, ‘아무 소용이 없어요’)

<사포와 알카이우스>는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시절 영국 화단을 풍미했던 대가 앨머-테디머가 그린 그림입니다. 지중해의 푸른 물결과 소나무가 시원한 배경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당대 최고의 시인인 사포와 알카이우스가 서로 시를 교환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단순히 화가의 상상에서 나온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두 사람은 이처럼 즐겨 시를 나눴다고 합니다. 사포의 주위에는 아리땁고 순수해 보이는 소녀들이 앉아 있는데, 이는 레즈비언으로서 사포의 존재를 과시하기 위한 화가의 연출이라 하겠습니다. 강독대 위에 턱을 괸 사포는 알카이우스의 시가 얼마나 감동적인지 깊이 매료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네요. 클리스모스라고 하는 고대 그리스 의자에 앉아 있는 알카이우스는 수금, 엄밀히 말해 키타라를 연주하고 있는데, 그 악기에는 음악의 신인 아폴로와 그의 누이 아르테미스가 조각돼 있습니다. 시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이 부드러운 노래처럼 다가오는 그림입니다. 그 정점에 꽃처럼 피어 있는 사포의 모습이 무척 아름답습니다.


이주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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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캉탱 드 라 투르<퐁파두르 부인> 1755, 종이에 파스텔, 178x131cm ,
파리, 루브르 박물관
 
그림 속의 여자가 되고 싶을 때 4 - 퐁파두르 부인

의자에 앉은 여인이 악보를 읽다가 고개를 돌려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화려한 의상과 값비싼 가구, 멋진 실내 장식이 아니더라도 매우 기품이 있고 우아한 여성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우윳빛 피부와 단정한 이목구비, 그윽한 눈길, 지적인 인상이 그녀의 고귀한 신분을 앞장서 대변하고 있습니다.


그림 속의 여인은 그 유명한 퐁파두르 부인입니다. 프랑스 왕 루이 15세의 정부로서 매우 아름다웠고 교양도 풍부했으며 국정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알려진 인물이지요. 그 명성답게 책과 악보, 그림들에 둘러싸여 지적인 후광을 드러내는 이 여성은 지금 자신을 찾아온 누군가를 반가이 맞이할 태세입니다. 이 여성을 찾아온 사람은 아마도 십중팔구 루이 15세이겠지요.


국사에 바쁜 틈을 내 루이 15세가 그녀를 찾은 것은 단순히 그녀의 성적 매력에 취해 그녀를 한번 더 안아보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부인과 대립할 수밖에 없는 왕비의 측근조차 “퐁파두르 부인은 내가 본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의 하나”라고 토로할 만큼 외모가 뛰어났지만, 그보다 그녀의 사려 깊은 마음씨와 교양, 사고의 깊이가 왕의 발걸음이 그녀에게 잦아지도록 한 중요한 원인이었습니다. 정부라는 지위에도 불구하고 퐁파두르 부인은 후기에는 왕과 거의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죽는 날까지 왕의 뜨거운 총애를 받았습니다. 왕은 그녀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지경이었으니까요.


라 투르가 그린 이 초상화는 바로 왕에 대한 그녀의 진정한 매력이 무엇인지 생생히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여러 연극의 대본을 다 암송했고 악기 클라비코드를 수준급으로 연주했으며 아마추어로서는 뛰어난 그림 실력에 보석을 디자인할 줄 아는 능력도 갖췄고 원예에도 조예가 깊었다니 그녀는 참으로 다재다능한 여성이었던 것 같습니다. 유머도 풍부해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능력 또한 뛰어났다고 하지요. 화가는 그녀의 그 모든 장점을 다양한 지적, 예술적 소품들로 풍성하면서도 짜임새 있게 표현했습니다.


사실 정부라는 지위는 사람들에게 그리 존경을 받는 지위는 아니지요. 과거 왕과 귀족들의 정부는 설령 퐁파두르 부인처럼 왕의 총애를 받고 공공연히 국정에 간여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교회로부터 공식적인 배우자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존재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첩은 사회적 평판이야 어떻든 우리 문화의 공식적인 규범을 어긴 사람이 아니었지만, 유럽의 정부는 교회의 규범, 곧 유럽 문화의 최고 공식 규범을 어긴 사람이었습니다. 정부와 정부를 둔 사람은 교회에서 고해성사조차 받을 수 없었지요. 그럼에도 왕의 정부라는 위치는 뭇 여성들이 크게 부러워할 만한 위치였고, 더구나 퐁파두르 부인처럼 정부 여러 요직에 자신의 친인척을 심고 외교와 국방에까지 간여할 만한 권력을 갖는다는 것은 그 규범적 비판의 경계를 넘어 엄청난 입신출세를 의미했습니다.


퐁파두르 부인이 그렇게 권력의 정점에 서는 데는 어릴 때의 경험이 큰 작용을 한 것 같습니다. 1721년 파리에서 부유한 상인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금융 사고로 아버지가 파산하는 바람에 가족과 함께 독일로 피신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 그녀의 어머니는 아름다운 미모로 부유한 사업가 르 노르망 드 투르넴의 애정을 얻어 온 가족을 파탄의 위기에서 구해냅니다. 트루넴은 퐁파두르 부인(어릴 적 이름은 잔 앙투아네트 푸아송)의 가족을 다 먹여 살릴 뿐 아니라 퐁파두르 부인이 훌륭한 지적, 예술적 교육을 받으며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어머니의 외도로 아버지를 포함해 온 식구가 위기에서 벗어나 계속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경험은 그녀가 후일 결혼을 한 몸임에도 왕의 정부가 되어 영광과 부의 정점을 향하여 물불 가리지 않고 치닫는데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물론 엄연히 왕비가 존재하므로 그녀는 왕비에 대해서만큼은 철저히 예의를 갖추었습니다. 왕의 이전 정부들이 왕비를 비난하고 싫어했던 것과 달리 그녀는 왕비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습니다. 왕에게도 왕비에게 잘해줄 것을 누누이 당부하고 왕비가 좋아할 만한 선물을 마련해 왕이 직접 가져다주도록 하는 등 많은 배려를 합니다. 그런가 하면 또 왕의 잠자리에 필요한 여성을 직접 주선해 왕에게 자신의 ‘너그러움’을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또 그것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퐁파두르 부인에게 왕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더욱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없었지요. 마침내 부인이 40대 초반에 결핵으로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을 때 왕은 그녀의 곁을 결코 떠나지 않으려 했고, 장례식 때는 정식부인이 아니어서 참석할 수 없자 외투와 모자도 쓰지 않은 채 발코니에 서서 계속 찬바람을 맞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가히 한 시대를 그 정점에서 풍미한 여성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라 투르의 그림에 나타난 그녀의 그 모든 아름다움과 뛰어난 재주에 대해 경탄하고 부러워하다가도 그런 조건에도 불구하고 꼭 정부로서의 삶을 살아야 했을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치면 씁쓸한 뒷맛이 남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얻는 부와 권력, 영광이 그리도 단 것이었을까요? 그녀가 만약 오늘날 태어났다면 그렇게 한 남자에 기대 그 모든 걸 추구하지 않고 스스로의 노력과 도전으로 나름의 성취를 했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런 점에서 그녀의 삶도 결국 시대의 한계가 만들어낸 시대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아무리 뛰어난 여성이라도 시대의 한계를 넘어서기는 어려웠나 봅니다.


이주헌

왕의 정부에서 본 여자들 중 가장 불쌍해 보였고, 가장 행복해 보였으며, 가장 괜찮았던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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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수산나> 1610, 캔버스에 유채, 170x121cm,
포머스펠덴, 바이센슈타인 성
 
그림 속의 여인이 되고 싶을 때  - 수산나

돈도 좋고 권력도 좋지만 명예를 잃는다면 그 모든 것이 아무 것도 아닐 것입니다. 인간은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존경을 받으며 살고 싶어합니다. 그런 추구가 때로는 불의한 이들에 의해 위기에 처하기도 합니다. 수산나는 엄청난 위기에서도 자신의 덕과 순결을 지키고 진정한 명예심을 보여준 여성이었습니다.


수산나는 히브리어로 백합이라는 뜻입니다. 널리 알려져 있듯 백합은 순결의 상징이지요. 성서 제2경전(외경)에 등장하는 수산나는 그 이름이 시사하듯 매우 순결하고 정숙한 여인이었습니다. 용모가 빼어나게 아름다울 뿐 아니라 신을 두려워하는 경건한 여인이었다고 합니다. 남편 요아힘은 매우 부유한데다 바빌론에 사는 유대인 가운데 가장 존경을 받는 인물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집에 드나들었습니다. 이렇게 수시로 손님이 출입하는 크고 훌륭한 그의 집에는 역시 아름답고 훌륭한 정원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멋진 정원이 가증스런 음모의 현장이 될 줄은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아무도 알지 못했지요.


부모로부터 모세의 율법에 따른 엄격한 교육을 받은 수산나는 정오가 되어 손님들이 모두 집밖으로 나가면 비로소 정원에 산책을 나가곤 했습니다. 사건이 있던 날도 수산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텅 빈 정원에서 두 명의 하녀와 함께 산책을 했습니다. 그 날 따라 날이 매우 무더웠던 까닭에 수산나는 목욕을 하기로 마음먹고 정원 연못에 몸을 담갔습니다. 두 명의 하녀에게는 올리브 오일과 연고를 가져오라고 시키고 나갈 때 정원 문을 잠가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지요. 하지만 정원 안에는 두 명의 노인이 숨어 있었습니다. 재판관인 이들은 그 동안 수산나의 아름다움에 빠져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취해 보고자 하는 욕망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알몸의 수산나 앞에 갑자기 나타난 두 노인은 그녀에게 몸을 허락할 것을 요구하고 그렇지 않으면 외간 남자와 간통하는 현장을 목격했다고 거짓 신고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그 혐의가 인정된다면 죽음을 맞아야 하지만 명예와 순결을 더 중시한 수산나는 비명을 질러 사람들이 현장으로 달려나오게 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수산나는 노인들이 자신을 겁탈하는 것을 가까스로 막을 수 있었지요. 하지만 상황에 대한 설명에는 오히려 노인들이 훨씬 유리한 환경이 돼버렸습니다. 다음날 열린 재판에서 사람들은 수산나의 주장보다는 재판관이자 공동체의 존경받는 원로인 두 노인의 주장에 더 귀를 기울였습니다. 마침내 수산나에게 사형 평결이 내려졌지요. 가족들의 통곡 속에 수산나가 형장에 끌려가려는 순간 이를 제지하고 나선 사람이 소년 다니엘이었습니다.


다니엘은 두 노인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공박하고는 두 노인에 대한 분리 심문을 허락해달라고 법정에 요구했습니다. 분리 심문에서 다니엘이 두 노인에게 던진 핵심적인 질문은 “수산나의 간통 현장을 어디에서 목격했는가?”였습니다. 한 노인은 “아카시아나무 아래서”라고 대답했고, 다른 한 노인은 “떡갈나무 아래서”라고 대답했습니다. 서로 다른 답변이 나온 것을 들은 유대인들은 두 노인이 수산나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웠음을 알아채고 크게 분노했습니다. 두 노인은 현장에서 처형됐지요. 순결하고 정의로운 여인 수산나는 이렇게 해서 악의 덫으로부터 빠져 나와 자신과 가족의 명예를 지키게 됩니다.


이탈리아 여성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1593-1652)가 17살에 그린 <수산나>는 목욕하는 순간의 수산나에게 두 노인이 갑자기 들이닥쳐 위협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두 노인의 표정이나 제스처는 매우 역겹고 혐오스럽습니다. 겁에 질린 수산나는 두 노인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쓰지만 우리가 알 듯 지금 그녀의 상황은 매우 어렵습니다. 노인들의 위협으로 자신의 정조를 잃거나 목숨을 잃는 두 가지의 불행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 하지요. 무섭고 혼란스러운 가운데서도 명예를 지키기 위해 결국 목숨을 포기하는 쪽을 택한 수산나. 여인의 이런 결단이 같은 여성인 화가에게도 큰 아픔과 공감으로 다가온 것 같습니다. 수산나의 고통스런 심리적 상태가 마치 화가 자신의 그것인 양 무척 생생하게 표현돼 있습니다.


의미심장한 일은, 이 그림을 그린 2년 뒤 아르테미시아가 강간 혐의로 한 남자를 법정에 고소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남자의 이름은 타시였고, 그는 그녀 아버지의 일을 돕기 위해 아버지 문하에 들어와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고소를 당한 뒤 남자는 뻔뻔스럽게도 자신은 강간은커녕 상호 합의 하에서라도 관계를 가진 적이 없으며, 그녀가 성적으로 매우 방종하고 문란한 까닭에 그녀가 처녀성을 잃었어도 이는 자신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과연 그녀가 언제 처녀성을 잃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산파가 그녀의 속을 들여다보기까지 했습니다. 온갖 비방과 중상이 아르테미시아에게 쏟아지는 가운데 7개월이나 계속된 심리. 하지만 그 끝에서 마침내 타시는 유죄가 인정돼 감옥에 갑니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자신의 존엄과 명예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겨운 일인가를 생생히 보여준 그림 속의 수산나와 화가 아르테미시아. 비록 예전과 같지는 않다고 하지만, 아직도 차별의 그림자와 여성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이들은 오늘도 자신의 존엄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모든 여성들의 영원한 영웅이자 빛이라 하겠습니다.


이주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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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5-05-26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번에 새로 나온 이주헌 씨 책인가보네요. ^^ 살까 말까 망설였는데 요정님이 올려주시는 거 보면 되겠네요! ^ㅂ^

꼬마요정 2005-05-26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책이었나요? 저한테 메일로 날아오길래, 너무 멋진 글이랑 그림이라서 여기 올렸었는데...^^ 그랬군요. 앞으로 메일 올 때마다 여기 잽싸게 올려놓을게요~^*^

panda78 2005-05-27 0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속 여인처럼 살고 싶을 때.

이 책인 거 같아서.. ^^;;

어디 잡지에 연재한 거 묶었다는데요. 아닐지도..; ;;


꼬마요정 2005-05-27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잡지 연재한 것 맞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전문은 아니지 않을까 하네요.. 보이는 족족 올릴게요~^^
 






피에르 폴 프뤼동<말메종의 조세핀> 1805년, 캔버스에 유채, 244x179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새벽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내 머리 속은 온통 당신 생각뿐이었소. 당신의 모습, 그리고 어젯밤의 멋진 기억은 내 모든 감각을 들뜨게 만들었소. 세상에 둘도 없는 아름다운 조제핀이여, 당신은 나의 마음에 실로 이상한 마법을 걸었소.”

- 나폴레옹이 조제핀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

 

나폴레옹의 연인이었던 조제핀...  그렇게 예뻐 보이지는 않지만, 한 남자의 영혼을 완벽하게 소유한 그녀의 자신감과 사랑스러움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세기의 사랑으로 알려진 그들의 로맨스도, 이제는 한낱 이야기거리에 지나지 않지만, 역경과 고난, 희망의 시대를 살았던 그들이 지녔던 그 엄청난 열정은 그들이 살아있었다는 징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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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코포 틴토레토 <은하수의 기원> 1570년대, 캔버스에 유채, 148x165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틴토레토의 '은하수의 기원'

16세기 이탈리아의 대가 틴토레토가 그린 <은하수의 기원>은 제우스와 헤라 여신, 아기 헤라클레스가 등장하는 고대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한 그림입니다. 이야기는 제우스가 알크 메네라는 여인과 바람을 피우는 데서 비롯되지요. 제우스가 알크메네와 동침을 해서 낳은 아들이 바로 저 유명한 헤라클레스입니다. 제우스가 외도를 해 애까지 낳은 사실은 제우스의 부인 헤라 여신의 큰 분노를 삽니다.


미칠 듯이 화가 난 헤라 여신은 어떻게 해서든 '저주스러운' 헤라클레스를 죽이려 하지요. 그러자 알크메네는 온 가족에게 화가 미칠까 두려워 아기를 성밖에 내다 버립니다. 가여운 아기는 허기와 따가운 햇살에 지쳐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지요.


이를 더 이상 두고만 볼 수 없었던 제우스는 버려진 아기를 안고 몰래 천궁으로 올라옵니다. 우선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일이 급선무였지요. 부성애에 사로잡힌 제우스는 앞 뒤 가리지 않고 아내 헤라의 처소로 숨어들었습니다. 마침 헤라 여신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간도 크다고나 해야 할까, 제우스는 헤라가 잠든 틈을 타 아기 헤라클레스에게 여신의 젖을 물렸습니다. 아기는 여신의 젖을 있는 힘껏 빨았지요.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결코 젖을 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답니다.


가슴이 심히 불편해진 헤라 여신. 급기야 잠에서 깨어나고 말았습니다. 다급해진 제우스는 강제로 아기를 떼어놓았지요. 그러자 여신의 가슴에서 젖이 하늘로 분수 같이 솟았다고 합니다. 하늘에 점점이 박힌 젖은 무수한 별들의 군집, 곧 은하수가 됐지요. 은하수가 '젖의 길 (Milky Way)'로 불리게 된 사연이 여기에 있습니다. 한편 땅에 떨어진 젖은 백합꽃이 됐다고 합니다. 이 그림에서는 백합꽃이 보이지 않는데, 이는 원작의 밑 부분이 파손돼 보수 과정에서 잘려버렸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제우스의 부성애가 아름다운 은하수의 탄생을 야기했다는 사실이 코믹하면서도 훈훈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악명 높은 바람둥이라도 아버지로서 자식에 대한 절절한 사랑은 여느 아버지 못지 않았던 거지요. 물론 헤라 여신은 헤라클레스가 죽을 때까지 그를 갖가지 시련에 빠뜨렸습니다. 그러나 헤라 여신도 알고 있었지요. 헤라클레스는 그 어떤 시련도 이길 영웅이라는 것을. 그는 다름 아닌 헤라 여신의 젖을 먹은 유일한 인간입니다. 젖을 물린 사람은 자신의 젖을 먹은 아이를 결코 미워할 수 없지요. 비록 제우스의 외도에 대한 단죄의 표시로 헤라클레스에게 시련을 더했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젖을 먹은 헤라클레스가 끝내 이겨 위대한 영웅이 되기를 바랐을 겁니다. 헤라클레스('헤라의 영광'이라는 뜻)라는 이름에 이미 헤라 여신의 깊은 속생각이 잘 담겨 있습니다. 시련을 이긴 자는 누구나 다 이 위대한 여신의 자녀요 그녀의 영광입니다.


이주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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