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트레크<화장분> 1887~88년경, 캔버스에 유채, 56x46cm,
암스테르담, 빈센트 반 고흐 미술관
 
그림 속의 여인이 되고 싶을 때 - 쉬잔 발라동

세상은 불공평합니다.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날 때부터 목구멍에 거미줄을 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잘 생기고 건강할 뿐 아니라 온갖 재능을 다 지닌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본의 아니게 장애를 입어 사회활동 자체가 힘겨운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보람은 그 사람이 얼마나 가졌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조건에서 얼마나 열심히 살았느냐에 있다고 하지요. 주어진 환경이 아무리 열악하다 하더라도 그것을 딛고 나름의 성취를 이룬 사람을 우리는 존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록 그것이 다른 어떤 이의 눈에는 미미하게 보일지라도 말입니다.


쉬잔 발라동(1865-1938)은 그녀 스스로 한 사람의 화가였지만, 화가로서보다는 몽마르트르의 여신으로서 오래 기억되었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기억된 것은 출신 배경과 삶이 모두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에 싸여 있었기 때문이지요. 설령 ‘악의 꽃’처럼 여겨졌다 하더라도, 쉬잔은 쓰레기 더미 위에 핀 아름다운 꽃이었습니다. 그녀는 예술의 이름으로 자신의 자존과 영혼을 꿋꿋이 지켜낸 위대한 인간이었습니다.


본 이름이 마리 클레망틴인 쉬잔은 리모주 근방의 한 마을에서 세탁부의 사생아로 태어났습니다. 헤어나기 어려운 빈곤 속에서 쉬잔은 10살, 11살 무렵부터 밥벌이를 위해 상점 점원 보조에서부터 공장 노동자, 그네 곡예사 따위의 일을 해야 했습니다. 물론 이런 일만으로는 생계 유지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이 계층의 일부 젊은 여성들이 그랬듯 쉬잔도 모델 일에 나섰습니다. 모델 수입 또한 그리 변변한 것은 못 됐으나 그래도 이런 부수입을 얻는다는 것은 가난한 젊은 여성들에게 적지 않은 행운이었습니다. 쉬잔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 가운데서도 화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모델의 한 사람으로 떠올랐습니다.


쉬잔은 그리 키가 크지 않았습니다. 1m54cm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크고 푸른 눈, 뚜렷한 눈썹 등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는 얼굴과 그의 누드가 지닌 뛰어난 아름다움은 화가들이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는 장점이었습니다. 게다가 쉬잔은 화가들의 다양한 요구에 적절히 부응할 줄 아는 모델로서의 타고난 재능이 있었습니다. 흔히 모델은 가만히 서 있거나 앉아 있으면 되는 줄 알지만, 고정된 포즈를 통해 나름의 연기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연기력과 표현력이 요구되는 직업입니다. 쉬잔은 그런 능력이 탁월했고, 그에 따라 보수적인 아카데미 미술가들뿐 아니라 퓌비 드 샤반, 르누아르, 로트레크 같은 당시의 전위예술가 모두가 그녀를 찾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퓌비 드 샤반의 정부가 되는 등 여러 화가들과 숱한 염문을 뿌린 것은 불가피한 운명의 행로였다 하겠습니다.


‘몽마르트르의 연인’ 쉬잔의 애정 전선에 가장 심각한 먹구름이 끼었던 때는 로트레크와 열정적인 사랑에 빠졌을 때였습니다. 그녀는 어떻게 해서든지 로트레크와 결혼하고 싶었으나 로트레크는 결혼에 전혀 뜻이 없었지요. 좌절감을 느낀 쉬잔은 거짓 자살 소동을 벌여 그를 압박하기에 이르렀고, 이에 환멸을 느낀 로트레크는 쉬잔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쉬잔이 심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을 얻은 것은 1896년 부유한 은행가 폴 모리스와 결혼하면서부터입니다. 1883년부터 화가들 어깨 너머로 배워 그리던 그림도 결혼 이후 다소 멀리 할 만큼 쉬잔은 한동안 일상의 행복에 푹 빠졌습니다. 하지만 이 결혼도 1909년에 깨지게 되는데, 그 파국은 쉬잔의 예술을 위해서는 오히려 다행인 점도 있었습니다. 작품 제작에 몰입할 환경을 조성해 주었기 때문이지요. 특히 아들인 화가 모리스 위트릴로의 친구 앙드레 위테와의 동거는 쉬잔에게 창작의 열정을 뜨겁게 불살라 주었습니다. 위테는 그보다 무려 21살 아래였으므로 쉬잔의 행실은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지 않을 수 없었지요. 사생아이자 알코올 중독자인 아들 위트릴로와 싸잡아 세 사람을 세인들은 ‘저주받은 삼위일체’라고 불렀습니다.


예술가로서 쉬잔의 탁월성은 모델 경험을 통해 회화 예술에 있어 누드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다른 어떤 소재보다 누드에 관심을 갖고 누드화를 많이 제작했습니다. 위테와는 서로 모델을 서주며 예술적 도움과 영감을 주고받았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매우 흥미로운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데, 널리 알려져 있듯 서양미술사에서 누드화는 성차별적인 이분법의 역사를 유지해왔습니다. ‘화가=남자=옷 입은 사람=사용자’라는 한 축과 ‘모델=여자=옷 벗은 사람=피고용인’이라는 다른 한 축이 비대칭의 이분법적 관계를 형성해온 것이지요. 모델인 쉬잔이 화가인 위테를 벌거벗겨놓고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은 이 관계의 역전을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쉬잔이 서양 누드화 분야의 주요 화가 가운데 최초의 여성화가로 평가받는 것은 이런 시대적 한계를 초월한 그의 성취 덕분입니다. 미술사적으로뿐 아니라 페미니즘 운동 차원에서도 중요한 선구적 발자취를 남긴 것이지요.


한때의 연인이었던 로트레크가 쉬잔을 모델로 그린 <화장분>은 빈센트 반 고흐의 동생인 화상 테오가 개인적인 컬렉션으로 구입해 현재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 소장돼 있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나 얼굴에 그늘이 져 있지만, 예술가다운 강인한 의지와 내적 확신 같은 것이 엿보입니다.


그림을 보면, 쉬잔은 화장을 하는 중이었던 듯합니다. 뭔가 데카당한 인상이 강하게 풍겨 나옵니다. 로트레크와 쉬잔의 근거지였던 몽마르트르는 당시 파리 밤 생활의 중심이었지요. 보헤미안들과 멋쟁이들, 화류계 사람들이 다 이곳으로 집결했습니다. 주말이면 파리의 중산층들이 몽마르트르의 카페를 찾아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춤을 추었습니다. 그렇게 몽마르트르는 성매매와 마약, 알코올 남용의 온상이 되었습니다. 사생아로 태어나 사생아를 낳은(은행가 폴 모리스와 결혼하기 전에 쉬잔은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아들 위트릴로를 낳았습니다. 위트릴로라는 이름은 스페인 출신의 화가이자 비평가인 미구엘 위트릴로가 쉬잔의 요청에 동의해 그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쉬잔으로부터 로트레크가 몽마르트르의 이 어두운 그림자를 진하게 보았던 것 같습니다. 더불어 어떤 환경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는 꿋꿋한 영혼을 함께 보았던 것 같습니다.


일차 대전 직후 한동안 화가로서 널리 인정을 받은 쉬잔은 1938년 빈곤과 세인들의 망각 속에 뇌졸중으로 사망했습니다.


이주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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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와 함께라면
린다 하워드 지음, 정성희 옮김 / 신영미디어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그리스 역시 가부장적인 요소가 상당히 강한 나라이다. 결혼 같은 큰 일은 반드시 집안의 허락이 있어야 하고, 아버지의 권위는 막강하기 그지없다. 그래서인지 니콜라스 콘스탄티누스는 상당히 권위적이고 오만한 남자이다. 그래도 뭐, 자신이 사랑 따위는 하지 않는다고 뻗대는 남주들과는 달리 사랑에 대해 진지한 면이 있으니 봐 주기로 하자. 그런데 문제는 그 '사랑'을 표현할 줄 모른다는거. 지 딴에는 사랑한답시고 온갖 소유욕을 불사르는데, 여주는 말 할 것도 없이 읽는 내가 보기에도 그건 욕망으로밖에 안 보인다. 게다가 사랑한다더니. 세상에, 사랑하는 여자를 정부로 둘 생각을 해? 미친 X. 욕이 절로 튀어나온다.

순결? 그러는 너는 어지간히도 순결한가 보구나. 질투를 유발하기 위해 자기를 좋아하는 여자나 이용하면서... 게다가 색시감으로 찍었다는 그 순결한 엘레나가 자기랑 결혼해 준다든? 혹시 아는가? 젊음을 누릴 자유를 줬다가 딴 남자랑 결혼할지... 만사가 다 자기 뜻대로 된다는 보장이 어디있담?

여주의 진심은 몽땅 거짓으로 보이고, 악의에 찬 소문으로 너무나 힘들어 하는 그녀의 내면은 보지도 못하면서 그는 끝까지 그녀를 붙잡고 마음대로 휘두른다. 정말 끝까지! 여주가 죽을 뻔 했는데도!!! 뭐야.. 당신? 여주더러 넌 매춘부니까 너랑은 결혼 안 해. 하지만 내 애인이 된다면 경제적인 지원은 해 줄게? 거기다가 자신의 재산에 손대지 않겠다는 계약서에 사인 하란다. 여기서 또 미친 X. 더 더욱 꼴불견인 건 청혼 해 놓고 혼전계약서를 작성하는데, 가관이다. 이혼 시 남편의 재산은 한 푼도 못 받는다. 위자료도 없다. 게다가 제시카가 전남편으로부터 상속받은 재산까지 지 꺼란다.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양육권은 오로지 남자에게만! 여자는 아이에 대한 어떠한 권한도 없다. 이 제안을 받아들임으로써 제시카는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려고 했지만, 어림없지.

제시카. 불쌍한 인생을 살아왔다. 고아원에서 자라서 18살에 76살인 억만장자 로버트와 결혼한다. 다들 돈 보고 결혼했다고, 더럽다며 난리를 치지만, 막상 진실은 다른 데 있다. 누구보다 제시카를 아꼈던 로버트는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결혼을 했을 뿐, 다른 건 없었다. 그리고 늙은 그가 죽자 제시카는 사교계를 떠난다. 그리고 문제의 니콜라스를 만나서 티격태격하는데.

거기까지는 좋다 이거야. 티격태격 서로 자존심 끝까지 세우기 정말 잘 한다. 둘 다 무슨 별 희한한 자존심 대결 한다. 그러나 어째서 제시카가 니콜라스의 그 정부 제안과 청혼의 조건 앞에 굴복하는가이다. 그렇게 드높은 자존심을 휘날리더니 정작 가장 자존심이 필요할 때는 수그린다. 도대체 뭐하자는 건지... 앞에서 실컷 도도한 척 다 하더니 꼬리 내리는 강아지가 되어버렸네. 그러면서 왜 그렇게 쉽게 용서하고 유야무야 넘어가는지... 온갖 상처는 혼자 다 받더니 임신으로 모든 게 끝인가? 절대 용서 못 해. 증오해..라더니.. 니콜라스가 미안하다는 둥, 제발 부탁한다는 둥의 말을 썼다고 바로 용서!

그래 둘이 잘 살아봐라~~ 에잇!!

왜 이렇게 열이 받냐고?... 너무 가슴 아프게 읽었는데, 너무 쉽게 끝나버리니까! 너무해~~~~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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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5-27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좀 옛날 작품인가 봐요.. 저도 이 남주 때문에 속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꼬마요정 2005-05-27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안 그래도 날개님의 리뷰를 읽었다죠... 정말 가슴 아팠는데..흑흑 여주에게 보상도 안 해주고...ㅠ.ㅠ 그쵸? 하지만 재밌게 읽었어요~ 정말 감사해요. 날개님~~^^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각 다르다

-톨스토이-』

 

처음엔 이 말이 왜 명언일까... 궁금했다. 아직도 궁금하다. 완전한 답을 내지는 못했으니까. 하지만 계속 되뇌이다보면 그럴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가정 안에서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 언제나 가족을 아끼고 사랑하고, 무슨 일이 생겨도 같은 편에 설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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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로 디 코지모<라피타이족과 켄타우로스의 싸움> 1486년
런던, 내셔널 갤러리

 

문명과 야만의 싸움을 상징하는 켄타우로마키아

그리스 사람들은 자신들을 문명인, 이웃 나라 사람들을 야만인이라고 보았습니다.
이웃 나라 사람들이 꼭 지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뒤떨어져서 그렇게 보았던 것은 아닙니다.
다른 나라에는 다 전제적인 왕이 있어 설령 귀족이라 하더라도 왕의 지배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결국 그 삶이 노예와 다름없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개인의 자유가 없는 만큼 모두 야만인이라고 보았던 거지요.
반면 그리스 사람들은 귀족 출신이든 평민 출신이든 시민이면 다 똑같은 자유와 권리를 누렸습니다.
이런 자유인들이 모여 평등한 시민사회를 형성했기에 그리스인들은 자신들만이 진정으로 문명화된 사람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과 이웃 나라 사람들과 싸움이 벌어지면 이를 인간 대 괴물, 혹은 인간 대 별종의 대결로 표현하곤 했습니다.
자신들만이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을 누리고 있다고 표현하고 싶었던 거지요.
그리스 사람들을 상징하는 라피타이족이 상반신은 사람이고 하반신은 말인 켄타우로스들과 싸우는 장면을 묘사한 ‘켄타우로마키아(‘켄타우로스와의 싸움’이라는 뜻)’ 주제도 그런 믿음을 담은 주제입니다.
이 주제는 고대에도 많이 표현됐지만, 근세에 들어와서도 적잖이 그려졌습니다.
피에로 디 코지모가 그린 <라피타이족과 켄타우로스의 싸움>은 그 대표적인 걸작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람들이 엉켜 싸우는 모습이 아수라장을 방불케 합니다.

이 싸움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라피타이족의 지도자인 페이리토스가 자신의 결혼식 날 라피타이 사람들뿐 아니라 이웃한 켄타우로스들을 같이 초대했습니다.
켄타우로스들은 원래 성질이 포악하고 욕심이 많았는데, 술이 들어가자 그만 그 본성이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에우리토스라는 켄타우로스가 갑자기 신부 히포다메이아에게 달려들어 머리채를 낚아채고 달아나려 한 것이지요.
이 행동에 자극을 받은 다른 켄타우로스들도 손님으로 온 여인들을 하나씩 훔쳐 도망치려 했습니다.
잔치 자리는 순식간에 난장판으로 변했고 라피타이 사람들과 켄타우로스들 간에는 유혈이 낭자한 싸움이 전개됐습니다.
그 인상이 생생히 잡힌 피에로 디 코지모의 그림에서 머리채가 잡히고 푸른 옷이 찢겨 맨몸이 드러난 화면 오른쪽의 여인이 신부 히포다메이아입니다.
품위고 체면이고 다 사라져 버리고 말았군요.
화가는 그림 한가운데 죽어 가는 사내 켄타우로스를 껴안고 슬퍼하는 여자 켄타우로스를 통해 이 싸움의 잔인함을 인상적으로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런 싸움 주제를 자주 형상화함으로써 그리스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명이 지닌 위대성을 노골적으로 찬양했습니다.
이후의 서양문명 역시 그리스 문명을 이은 문명으로서 이 주제에 서양 문명 전체의 위대성을 의도적으로 담아내곤 했지요.
물론 서양문명이 위대한 문명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다른 문명을 무조건 야만시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사실 모든 문명은 그 나름의 장점과 단점을 다 지니고 있지요.

세상의 모든 문제가 저런 싸움이 아니라 대화로 해결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이주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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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뛰는삶을 살아라>

가슴 뛰는 일을 하라.

 

그것이 당신이 이 세상에 온 이유이자 목적이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사는 것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당신은 깨달을 필요가 있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 나가는 힘이 누구에게나 있다.

두려움을 믿는 사람은

자신의 삶도 두려움으로 가득차게 만든다.

사랑과 빛을 믿는 사람은

오직 사랑과 빛만을 체험한다.

당신이 체험하는 물리적 현상은

당신이 무엇을 믿고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우주의 에너지는 언제나 당신을 향하고 있다.

그것을 어떤식으로 쓰는가는 당신의 자유이다.

자신의 삶을 사는 일,

충분히 자신의 모든 부분을 살아가는 일,

그리고 자기 존재가 이미 완전하다는 것을 깨닫는 일,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이다.

삶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단순하다.

진정으로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있다면

모든 것이 당신에게 주어질 것이다.

우주는 무의미한 일을 창조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이 가슴 뛰는 삶을 살 때

우주는 그 일을 최대한 도와줄 것이다.

이것이 우주의 기본 법칙이다. 좋은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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