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세상


남을 위해 웃을 수 있고
남을 위해 눈물 흘릴 수 있는
내가 사는 곳은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누구를 위해 말할 수 있고
누군가를 위해 침묵할 수 있는
내가 사는 곳은 따뜻한 세상입니다

너는 나에게 나를 너에게 보내는
우리 모여 하나가 되는 세상은
가득 찬 기쁨입니다

남을 위해 행할 수 있고
남을 위해 그칠 수 있는
그대가 사는 곳은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누구를 위해 채울 수 있고
누군가를 위해 비울 수 있는
그대가 사는 곳은 눈부신 세상입니다

우리라 부를 수 있고
우리가 함께 가질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은 빛나는 우리들의 꿈입니다



[아름다운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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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 속에 넣고 싶은 사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가슴속에
넣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잊혀질 수 없는 사람입니다..

자신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사랑해준 사람입니다..

자신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여준 사람입니다..

가장 기억하고 싶지 않는
사람도 존재합니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입니다.
자신에게 피해를 준 사람입니다.
자신에게 아픔을 준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오늘도
당신을 기억합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가슴에 새기고 싶은 사람인지
아니면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인지를..

잠시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스치고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한결같이 대해주세요..


이기적인 동기를 가지고
그들을 대하지 마세요..

할 수만 있다면 그냥
베풀기로 작정하세요..

나를 잘해주는 사람에게만
선대하는 일에 머물지 마세요..

나를 잘 대해주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선대하세요..

훗날 그들은 당신의 호의와
사랑을 기억해낼 것입니다..

당신을 가슴에 꼭 새기고 싶은
사람으로 기억하겠지요..

다른 사람의 가슴 속에
새겨질 수 있는
사람으로 남으십시오.,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유독 향기나는 꽃처럼 기억되는
사람으로 남으십시오...*^^*

  [좋은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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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운은 우연히 찾아오는 거래요. ^^ ♡


클로버 이파리 하나하나에는 이런 뜻이 담겨 있습니다.

첫 번째 이파리에는 희망.
두 번째는 믿음,
세 번째는 사랑.
그리고, 네잎클로버의 마지막 이파리에 신은 행운을 끼워두었답니다...

우리 삶에서...
희망, 믿음, 사랑은 꼭 있어야 하지만, '행운'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것이지요.
물론, '행운'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닌 아주 특별한 것이라는 뜻도 숨어 있습니다.

어릴 적 잔디밭에서 네잎클로버를 찾으려고 두 눈이 붉어 지도록 땅을 훑어보았던 기억, 아마 누구에게나 있는 추억일 겁니다.
나 역시 오랜 세월동안 잔디밭에만 앉으면 버릇처럼 네잎클로버를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못찾는 때가 항시 많았었다고 기억됩니다.

네잎클로버를 찾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무심코 잔디밭에 앉았다가 발견했다고 합니다.
우연히 풀밭에서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무심코와 우연히...

행복도 그런것이 아닐까요?
느릿느릿한 일상 어딘가에 숨어 있으면서 어느 날 갑자기 등을 두드리며, "이봐, 이런게 행복이야"라고 속삭이며 우연히 다가오는 것 말입니다.


- 좋은생각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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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어진 집에 비나 바람이 새어들지 않듯이, 웃는 얼굴과 고운 말씨로 벽을 만들고 성실과 노력으로 든든한 기둥을 삼고, 겸손과 인내로 따뜻한 바닥을 삼고, 베품과 나눔으로 창문을 널찍하게 내고, 지혜와 사랑으로 마음의 지붕을 잘 이은 사람은 어떤 번뇌나 어려움도 그 마음에 머무르지 못할 것입니다. 한정되고 유한한 공간에 집을 크게 짓고 어리석은 부자로 살기보다 무한정의 공간에 영원한 마음의 집을 튼튼히 지을 줄 아는 사람이 진정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요?


내 마음의 보석상자 / 박강성
출처 : 어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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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뤼동<죄를 쫓는 정의와 신성한 복수> 1808, 캔버스에 유채, 244x294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아이에게 양심과 공의에 대해 가르쳐줄 때

히브리 속담에 “한 가지 거짓말도 거짓말이고 두 가지 거짓말도 거짓말이나 세 가지 거짓말은 정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치가들이 얼마나 거짓말을 잘하는 존재들인가 하는 점을 일깨워주는 속담인데요, 우리 정치판도 예외는 아니라는 점에서 씁쓸한 뒷맛을 남깁니다.


그런데 정치가 잘못 돌아가면 흔히 정치인만을 탓하지만 사실 그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정치가 부패한 것은 부패한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선출했기 때문이요, 부패한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선출한 것은 국민이 부패한 까닭이다”라는 영국 속담이 이를 잘 말해주지요. 사실 우리 사회는 아직 부패하고 비합리적인 구석이 많습니다. 식민지 경험과 동족 상잔 등 불행했던 근대의 경험에 압축 성장 과정에서 발생한 갖가지 부작용이 더해져 원칙과 상식이 통하지 않거나 심지어 양심을 저버리고 공의를 외면하는 사태까지 심심찮게 발생하지요.


이런 사회에서 자녀를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인간, 정의 관념과 이타적인 희생정신이 충만한 인간으로 키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편법과 탈법이 판을 치고, 극단적인 경쟁심과 이기심이 옹호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자칫 양심이나 정의 관념 같은 것은 고리타분하고 무기력한 가치로 내침을 당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삶이 양심적이고 정의로운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지요. 우리의 많은 선조들이 그런 삶을 살았고 또 돌아보면 지금도 우리 주위의 적지 않은 이웃들이 그렇게 살아갑니다.


프랑스 화가 피에르 폴 프뤼동은 인간 사회가 어떻게 변하든, 사람들의 가치관이 어떻게 바뀌든 정의는 지켜져야 하며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믿음을 지녔던 화가입니다. <죄를 쫓는 정의와 신성한 복수>는 그의 그런 믿음을 인상적으로 표현한 걸작입니다.


달이 구름에 걸터앉은 깊은 밤, 한 남자가 다른 남자를 쓰러뜨리고 옷과 귀중품을 빼앗아 달아나고 있습니다. 그의 손에 칼이 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쓰러진 남자는 지금 치명상을 입고 생사가 경각에 달린 것 같습니다. 작은 이득을 위해 다른 인간의 생명조차 아무렇지 않게 해치는 범죄자는 희생자의 그런 처지에 전혀 동정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음험한 어둠의 지배를 받고 있고 죄 없는 희생자는 밝은 빛에 처연히 몸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공중에는 이 살인자의 행위를 목격하고 그를 잡으려는 두 명의 여인이 떠 있습니다. 왼쪽의, 횃불을 들고 있는 여인이 정의입니다. 그녀가 든 횃불은 진실의 횃불이지요. 죄를 지은 사람이 아무리 어둠 속에 죄를 숨기려 해도 그녀가 끝내 드러내 놓고 말 것입니다. 정의의 손이 벌써 범죄자의 머리 위에 올라와 있습니다. 그 옆의 여인은 신성한 복수입니다. 오른손에 든 것이 검, 왼손에 든 것이 저울입니다. 신성한 복수는 죄인의 죄를 저울에 매달아 그 정도를 따져 거기에 맞게 칼을 들어 심판할 것입니다. 결코 봐주거나 속아넘어가지 않고 양심을 판 대가를 철저히 캐물을 것입니다.


이런 그림을 보고 혹자는 정의와 양심에 대한 신념은 가상하지만 과연 현실이 얼마나 이런 신념과 가깝겠는가 하고 따져 물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의와 양심의 가치는 그것이 현실에서 얼마나 잘 수용되느냐로 따져지는 것은 아니지요. 모든 아름답고 숭고한 믿음처럼 그것은 무엇보다 믿음의 대상입니다. 정의와 양심은 믿음으로 지키는 것이지 그것의 현실적인 가치나 이득을 보고 지킬 것인가 말 것인가 따질 일은 아니지요. 성경은 “부정한 방법으로 얻은 재물은 아무 유익이 없어도 정직은 생명을 구한다”(잠언 10장 2절)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생명은 육체의 생명뿐 아니라 삶다운 삶을 사는 것, 곧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까지 포함하는 것이겠지요. 다른 많은 인류의 경전들도 한목소리로 이런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의 아이들에게 정의와 양심에 대한 믿음을 가르치는 일은 삶에 대한 진정한 믿음을 가르치는 일이 되겠지요. 삶을 가치 있게 사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주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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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폴 프뤼동<말메종의 조세핀> 1805년, 캔버스에 유채, 244x179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그림 속의 여인이 되고 싶을 때 - 조제핀

서양 문명은 산수 중심의 동양화와 달리 인물 중심의 회화를 발달시켰습니다. 그래서 여성을 그린 그림이 많고 그렇게 그려진 여성들 가운데는 우리에게 깊은 인상과 환영을 남긴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나폴레옹 황제의 부인이었던 조제핀도 그런 여성 가운데 한 사람이지요. 그녀의 모습을 보노라면 도대체 그녀의 무엇이 나폴레옹 같은 영웅을 사로잡았고 또 뭇사람들의 뇌리에 그녀를 그렇게 매력적인 여성으로 남게 했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렇게 뭇 남자들을, 영웅 중의 영웅을 사로잡는 여성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요? 그런 삶은 과연 어떤 삶일까요? 한편으로는 진한 동경심을 불러일으키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는 삶, 그런 삶이 바로 이런 이들의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내 머리 속은 온통 당신 생각뿐이었소. 당신의 모습, 그리고 어젯밤의 멋진 기억은 내 모든 감각을 들뜨게 만들었소. 세상에 둘도 없는 아름다운 조제핀이여, 당신은 나의 마음에 실로 이상한 마법을 걸었소.”


나폴레옹의 이 편지 글에서 알 수 있듯 조제핀 드 보아르네는 뛰어난 사랑의 전략가였습니다. 나폴레옹이 세상을 하직하며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이 “조제핀!”이었다는 데서 알 수 있듯 그는 남자의 마음을 그 뿌리까지 훔칠 줄 아는 수완가였지요. 그녀를 향한 나폴레옹의 열정은 무엇보다 조제핀이라는 이름 자체에서 가장 밝은 색채로 빛나는데, 조제핀의 원 이름 마리-조제프-로즈 타셰 드 보아르네의 조제프를 여성형인 조제핀으로 고쳐 부른 게 나폴레옹이었다고 합니다.(그 전에는 주로 로즈라는 애칭으로 불렸습니다) 바로 그 이름으로 영원히 사람들의 머리 속에 남아 있으니 ‘사랑의 여왕’으로서 조제핀의 위상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조제핀은 1763년 가난한 귀족 조제프 타셰 드 라 파제리의 맏딸로 태어났습니다. 열 여섯이 되던 해인 1779년 알렉상드르 비콩트 드 보아르네라는 젊고 부유한 육군 장교와 결혼했습니다. 젊은 날의 이 멋진 출발은 그러나 조제핀에게 행복의 시작이 아니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생각지도 못했던, 여성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에 대해 심각한 도전을 받은 시기이자 생존을 위해 사랑의 전략가로 거듭나는 투쟁의 시기였습니다.


조제핀은 알렉상드르에게 예쁜 딸 둘을 안겨 주었습니다. 하지만 허영심이 강한 알렉상드르는 시간이 흐를수록 조제핀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특히 섬 출신의 촌티 나는 매너와 부족한 교양은 알렉상드르에게 극심한 혐오감을 주었지요. 그래서 알렉상드르는 베르사유궁전에서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를 알현할 때도 아내인 조제핀을 데려가지 않았습니다. 철저한 무시와 무관심으로 조제핀의 마음에 시퍼런 멍을 들여놓았지요.


1785년부터 남편과 별거에 들어간 조제핀은 이후 절치부심한 듯 파리 상류층의 관습을 열심히 익혔습니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혁명군에 가담했던 남편이 자코뱅 파의 공포정치 와중에 1794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면서 그녀 또한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나,같은 해 테미도르의 반동이 일어나 감옥에서 풀려 나오면서 사교계의 중심인물로 급부상합니다.


조제핀이 나폴레옹을 만나게 된 것은 바로 이 무렵이었습니다. 승승장구하던 야심만만한 젊은 장교와 더 이상 촌뜨기가 아닌 사교계의 여왕은 첫눈에 서로를 알아봤습니다. 첫 만남 당시 나폴레옹의 나이는 26세, 조제핀은 33세였지요. 조제핀은 그 동안 익힌 사교계의 테크닉을 활용해 밀고 당기기를 거듭함으로써 나폴레옹의 애간장을 다 녹여놓았습니다. 사실 당시 그녀로 인해 애간장을 태운 사람은 나폴레옹뿐이 아니었지요. 혁명 와중에 단두대로 보내질 뻔했던 경험을 통해 조제핀은 자신의 행복과 생존을 보장해줄 강력한 힘을 필요로 했고, 그로 인해 여러 유능한 남자들과의 사이에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런 과정 끝에 나폴레옹의 부인이 된 조제핀은 나폴레옹이 황제로 등극하자 이제 그와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나폴레옹에게 다시 결혼식을 올리자고 설득했습니다. 과거의 예식은 종교의식이 아니었으니 이번에 종교의식을 필함으로써 자신들의 사랑을 교회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는 논리였지요. 1804년 12월 1일 두 사람의 결혼식 다음날 나폴레옹은 대관식을 가졌습니다. 조제핀은 이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탄탄한 권력의 반석에 오른 듯했습니다. 하지만 조제핀의 무절제한 생활과 나폴레옹에게 아들을 안겨주지 못한 ‘흠결’은 끝내 그녀의 족쇄가 되었지요. 1810년 나폴레옹은 결혼 예식상의 사소한 종교적 미비점을 근거로 조제핀과의 결혼을 무효화했습니다.


말메종 성으로 내쫓긴 조제핀은 나폴레옹의 돈으로 계속 화려한 삶을 이어가다가 나폴레옹 퇴위 뒤 얼마 안 돼(1814년) 쓸쓸하게 죽음을 맞았습니다.


피에르 폴 프뤼동이 그린 <황후 조제핀>은 역사책에서 조제핀을 언급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그림입니다. 아직 황후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조제핀이 한적하고 쓸쓸한 정원을 배경으로 우아하게 앉아 있습니다. 무언가 깊은 상념에 잠겨 있는 듯한데, 벌써 나폴레옹과의 이별의 전조를 느껴서일까요, 얼굴에는 우수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습니다. 일단 조제핀이 늘씬하고도 매력적인 님프처럼 그려져 있는 것이 눈길을 끕니다. 성적 매력과 황후로서의 영광, 비극의 색채가 어우러져 묘한 매력을 발산합니다.


배경의 짙고 육중한 나무들은 말없이 둘러서서 이런 조제핀을, 조제핀의 추억을 지켜주고 있습니다. 아기를 지키는 어머니처럼 조제핀을 다독이며 푸근히 감싸안아 줍니다. 설령 지나온 삶의 궤적 속에 이런저런 실수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이 용서될 만큼 조제핀은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그림 속 말메종의 숲은 말하는 듯합니다.


이 한적한 숲에서 사색을 하면서 조제핀은 과연 자신의 삶을 어떤 시각으로 돌아보았을까요? 충분히 만족스럽고 행복하다고 생각했을까요? 아니면 그렇게 얻고 지키려 했던 부와 권세가 실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을까요? 조제핀과 대화를 나눴던 저 나무들은 조제핀의 진정한 속마음을 잘 알고 있겠지요.


이주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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