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르 - 전3권 세트
이지환 지음 / 청어람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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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집어들만한 소설이었다. 사실, 내가 볼 때 화홍 이후 그만한 작품은 없는 듯 하다. 시대를 고대 쪽으로 잡는 게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 항상 카리스마 넘치고 제멋대로 하는 남주는 더 이상 별로다. 막무가내도 어느 정도여야지. 아무리 여주가 당차고 강단있다 한들 권력과 재력 앞에서 얌전한 고양이가 되어버리는 걸 어쩌나. 화홍의 경우 시대가 그러했기에 그게 먹혔다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남자만 바라보고 살라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각자의 삶은 각자가 꾸려나가는 거다. 사랑하는 사람만 바라보며 행복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사람도 있다. 나의 입장에서 타인의 행복을 평가할 수는 없을 뿐더러 강요할 수도 없다. 이 작품에서 남주는 항상 여주에게 무언가를 강요한다. 그게 그녀의 행복을 위함이라는 핑계로.

남주의 행복을 위한다는 게 더 맞지 않을까. 남주는 여주에게 집착하고 있을 뿐이다. 사랑의 어두운 면인 집착과 질투. 타인에 대한 배려는 어디로 갔는지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거기에 점점 끌려가는 여주.. 사건이 터지고 어느샌가 해피엔드다.

약간 지루하다는 느낌도 들었고, 지나치게 인도를 설명하는 것도 힘들었다. 뭐랄까.. 인도라는 공간이 가진 신비함이 사라져 버린다고나 할까. 우리와 다른 세계를 사는 인도인들의 이미지를 너무 가깝고도 약간은 진실에서 벗어나게 각인시켰다고나 할까.

3권.. 분량이 너무 많다는 것도 단점.. 흡입력이 부족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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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백의 신부 4
윤미경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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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가 좋아하는 소재다. 신과 인간의 사랑. 예전에 흠뻑 빠졌던 유시진 님의 '마니'나 '신명기'와 같은 우리네 전통 신들을 다루었다. 하백.. 주몽의 어머니인 유화부인의 아버지가 바로 강의 신 하백이 아니던가.

홍수나 가뭄이 모두 신의 조화라고 생각했던 시절, 재난이 닥치면 마을에서는 처녀를 제물로 바친다. 흠.. 근데 어째서 처녀였을까.. 신이 남자라고 단정짓는 이유는 뭘까..? 사실, 강의 신이 여자일 수도 있지 않나.. 게다가 여신에게는 남자 제물을 바치는 사례가 별로 없는 듯 한데.. 왜일까... 어쨌든 한 사람을 희생하여 잘 먹고 잘 살자는 심보가 아닐 수 없지만, 연약한 인간이 자연을 경외하고 있던 시절의 일이기도 하다. 여기 주인공 소아 역시 그런 희생양이었다.

심청이처럼 바다에 폭 빠졌는데 용궁에 다다랐다. 용왕이 사는 게 아니니 용궁은 아니지만, 그곳은 인간세상과는 달리 고요하고 아늑하며 아름답다. 그러나 그 곳에도 애증과 번민, 욕망은 존재하니 신이나 인간이나 다를 게 없다.

소아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무이와 후예, 낙빈의 사연은 무엇일까...

월하빙인의 빨간 실은 어떤 인연을 만들어가는 걸까...

이야기 전개는 괜찮은데, 가끔 비약도 있고, 뭔가 부족한 느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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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회였나..

공유가 뉴욕에 있는 장난감 회사의 수석 디자이너로 갈지 말지 고민하는 장면.

커피 프린스 일도 재밌고, 할머니 아프시고, 그동안 안고 있던 출생의 앙금도 씻어냈고, 윤은혜도 좋고... 결국 안 가기로 결정하는데..

그 사이 윤은혜는 잡지 않는다. 공유가 떠나지 않길 바라면서도 사랑 때문에 잡을 수는 없다나..

게다가 같은 커피숍에서 일하는.. 이름 생각 안나는 뺀질이.. 왈

사랑 때문에 남자의 야망을 꺾는 일은 하지 말아라..고?

그럼, 최한결의 삶이 고은찬의 삶보다 가치 있다는 거냐?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 언제나 사랑으로 무장한 여자는 남자의 걸림돌이다. 그게 왜 걸림돌인가? 남자의 성공이 중요하다면 똑같은 크기로 여자의 사랑 역시 중요하다. 각자의 삶에서 뭘 더 중요하게 여기는가는 개인차이 아닌가. 그런데 그걸 절대적인 기준으로 사랑보다는 성공에 무게를 더 두는 이유는 뭘까? 남자든 여자든..

사랑은 동등한 거다. 공유가 떠나고 싶다고 한다면 윤은혜는 가지 말라고 말 할 수 있다. 다만 선택은 각자가 하는 거지. 그 말 하는 게 어째서 잘못인가. 가지 말라는 말을 하는게 야망을 꺾니 마니 잘못이니 이런 생각 자체가 우습다. 최한성과 한유주 커플은 다르잖아. 최한성은 말로는 유주를 존중하니 머니 말해도 결혼하고 나서 일 하지 말라고 당당하게 말 하잖아... 그건 되고, 이건 안 되고..??

그래놓고서는 나중에 나이 들어서 후회한다. 일 한다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것..

그런데 계속 젊을 때는 성공이 더 높은 가치라고 주장하고, 나이 들어서는 후회하고..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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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라푼첼
야마모토 후미오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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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늘 낮에 책이 왔다.  책이 참 이쁘다는 생각을 했다. 작은 크기에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을 담은 라푼첼이 고양이의 시선을 받으며 자고 있다. 언뜻 보면 평화롭지만, 사실 이건 아직 깨어나지 못한 채 성 안에서만 살고 있는 한 여인의 무료함을 나타낸다.

어떻게 6년을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말이다.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 남편에게 잔소리도 안 하고, 아이도 없고, 일도 안 한다. 무료할 때면 파친코에 가서 성인 오락을 하는 정도.. 그런 그녀의 일상이 소름끼쳤다. 하루 이틀 정도 뒹굴거리는 거야 누구나 즐긴다지만, 6년의 시간은 좀 너무하지 않을까.

그림동화 속 라푼첼은 왕자를 만나기 전까지 성 안에서 마녀만을 바라보며 산다. 젊은 나이에 사랑에 실패한 마녀는 라푼첼만은 그런 사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탑 안에 가두어 놓고 자신이 원하는 세상만을 보여준다. 라푼첼은 그게 전부인 줄 알지만, 결국 왕자를 만나 탈출을 시도한다. 여기서 왕자는 라푼첼과 마녀의 세상에서 금단의 열매다. 마찬가지로 시오미에게 로미는 자신이 갇힌 탑을 탈출하도록 유인하는 금단의 열매다. 그녀의 탈출이 라푼첼처럼 시련을 통과하여 해피엔드로 갈 지는 모르겠지만...

힘이 없다. 책을 읽는데 역동적인 느낌도 없고 긴장감도 없다. 그저 흐르듯이 섬세하게 감정과 감정을 연결하고 사건을 이야기 한다. 다 읽고 나서 느낀 것은 그저 무료하구나...

시오미는 진작에 정신과 상담을 받았어야 했다. 하는 일도 없고 꿈도 없고 의지도 없고 사는 데로 살아가니 불면증에 시달리고, 애정을 바라면서 애정을 주지도, 요구하지도 않으니 서로가 무관심하게 되는 거지.. 여하튼 이제서야 정신을 차리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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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깨어난 자 붓다 푸른숲 비오스(Prun Soop Bios) 1
카렌 암스트롱 지음, 정영목 옮김 / 푸른숲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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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과연 리뷰를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가진 종교를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과연 내가 말 하는 게 부처님 말씀과 맞는 걸까.. 이런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책을 읽고 리뷰를 쓰듯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쓰면 되는데 말이다. 어쩐지 꺼려져서 다 읽고 감명받고 혼자 소중하게 간직한 채 있었다.

나는 내가 가진 종교를 내 의지로 선택했다. 엄마가 절에 다녀서 불교를 선택한 게 아니다. 우리집은 그저 니가 선택해라.. 이런 주의기에 아빠랑 막내는 아예 무교다. 사춘기 시절엔 교회도 다니고 성경공부도 하고 그랬다. 다만 내가 불교를 선택한 건 내 의문에 답을 주는 게 불교였기 때문이다. 알면 알수록 빠져들어갔다. 너무 매력적이었다. 그렇기에 누가 옆에서 뭐라한들 상관하지 않았다. 거리에 나서면 개신교를 비롯하여 몰몬교, 증산도, 여호와의 증인... 알 수 없는 종교인들까지 다 나한테 말을 걸며 전도해도 나는 그들에게 그저 내가 생각하는 바대로 말했다.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 사상을 천주교를 가진 외국인 종교학자가 쓰고 개신교 신자인 옮긴이가 번역한 이 책을 읽으며 기묘한 낯섦을 느꼈다. 내가 아는 것이지만 뭔가 다른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새롭게 붓다를 접한다는 느낌이랄까...

붓다의 생애야 워낙 많이 듣고 읽어서 알고 있다지만,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과연 나는 붓다가 말씀하신 법을 제대로 알고 있는걸까.

내가 애초에 이 종교를 선택한 건 마음의 평화가 이유였다. 미워하고 싶지 않은데 왜 '저' 사람을 미워하게 되는 걸까... 좀 더 너그러운 마음을 갖고 싶은데 왜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못하는 걸까.. 착하게 살던 친구인데 왜 저런 고통을 겪는걸까... 이런 의문들과 생생하게 전해져오는 내 마음과 남의 고통 때문에 힘들었다. 그래서 이리저리 찾다 결국 붓다의 가르침 안에서 평화를 찾았다. (개인적인 선택입니다. 다른 종교가 나쁘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저에게 맞는 종교를 찾은 거죠)

좀 편해지고 나니, 다시 이기적으로 변하는 건가.. 아님 나이가 들어 사회에 적응하면서 담담해진건가.. 어느새 나는 붓다의 가르침을 머리로만 새기고 있었다. 실천이 빠진 믿음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을.

이 책은 붓다의 생애와 말씀을 담았다. 종교적인 모습이 아닌 객관적인 시선으로. 덕분에 나는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왠지 살아숨쉬는 붓다의 모습이 그려질 것만 같다.

모두가 깨달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말이 아닌 실천으로 인간이지만 스스로 깨어나신 분이 된 붓다께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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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18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상천하유아독존'..
젊은 시절 상기 석가모니의 말씀을 한동안 마음속의 화두로 삼았었지요.


꼬마요정 2007-08-18 21:00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
한 때는 불교가 세상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삶을 더 치열하게 살 수 있는 말씀들이 가득하더라구요.. 삶 속에 진리가 있고 내 옆에 깨달음이 있다고 하는 말을 조금은 알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