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의 사랑이 끝나자 장의 사랑은 시작됐다. 동양인, 불법체류자, 스너글러인 장은 경찰차 사이렌이 울리면 너무 불안해서 바지에 오줌을 쌀 것만 같다. 그는 그토록 불안정한 상황에서 돈을 벌기 위해 ‘스너글러’ 일을 한다. 접시닦이 일로 벌 수 있는 돈은 미국인 주급의 절반일 뿐이다. 뉴요커인 일흔 셋의 마거릿은 혼자 죽을까봐 두렵다. 죽음이 가까운 곳에 자리했다지만 여전히 살아있기에 욕망도 살아있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도 살아있다. 흘러가는 사건들이 긴박하거나 궁금하거나 하진 않지만 손에서 놓을 수 없다. 세 번째 결혼을 준비하는 마거릿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영주권을 얻기 위해 마거릿과 결혼하면서 마거릿이 바라는 대로 게리가 되어가는 장은 어떤 마음일까.임지훈 평론가의 말처럼,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이 사랑일까.
어머니의 배에 있으면서 아버지를 갈망하는 이 태아는 제우스의 허벅지에서 태어난 아테네, 어머니와 삼촌의 부정에 분노하지만 멈칫하는 햄릿, 어머니와 정부(情夫)를 처단한 엘렉트라를 떠올리게 한다. 그 와중에 클로드는 더럽고 치사하고 비열한 놈이다. 이 태아는 결국 햄릿처럼 한 번의 기회를 날리고 햄릿과 다르게 날린 기회는 정상참작이 가능했으며 마지막은 모두를 파멸로 이끌어 간다. 햄릿과 반대로 태어남으로 인해 복수를 실현하는 것인가.
깨꽃을 찾아봤다. 나는 이제까지 깨가 쌀이나 보리처럼 풀에 열매가 열리고 그 열매를 훑어서 식용화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깨꽃이 있다는 말에 놀라서 찾아보니 아주 낯이 익다. 내가 은방울꽃이나 할미꽃이라고 생각했던 꽃이 어쩌면 깨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있는지도 몰랐던(나는) 깨꽃의 존재를 알게 된 것처럼 이순자 작가님의 존재를 이제야 알게 됐다. 고통스런 삶이었다고 좌절할 수도 있는 삶 앞에서 작가님의 글 하나 하나에는 아픔이나 슬픔 뿐 아니라 살아온 세월의 기쁨과 깨달음이 가득했다. 자신의 몸이 아프고 고달픈데도 오히려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고, 사회의 불의에 행동하는 모습이 멋졌다. 고통마저도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거라 받아들였던 작가님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