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 : 젓가락 괴담 경연
미쓰다 신조 외 지음, 이현아 외 옮김 / 비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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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함께 쓰며, 제삿밥에는 보통 숟가락을 꽂아두기도 하기에 젓가락 괴담이라는 게 어떤 걸까 궁금했다. 내가 생각할 때 젓가락 괴담이라 하면 애기들이 콘센트 구멍에 젓가락을 찔러 넣는 위험천만한 이야기라든지, 젓가락으로 좁쌀 알갱이를 집는 괴담 같은 신기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한국을 제외한 주변 아시아 국가들에게 젓가락은 아주 중요한 도구이자 무서운 저주의 도구이기도 했다.

같은 소재를 사용하여 각 나라의 전설을 더해 5명의 작가가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흥미로웠다. 첫 번째 이야기를 풀어 낸 작가는 일본의 마쓰자 신조로 ‘젓가락님’ 이야기는 전설인 듯 도시괴담인 듯 재미있었다. 내 손을 쓰지 않고 남을 해하는 저주는 죄책감의 정도가 덜할까 궁금하기도 했다. 아마 아닐 것이다. 말실수 하나로도 마음이 따끔한데 대놓고 상대를 저주해서 죽인다면, 그건 직접 죽인 거나 다름없으니까. 하지만 힘 없는 이가 사과를 받고 싶어도 안 된다면 할 수 있는 복수라고는 저주뿐일 수도 있다. 그래서 ‘죽여달라’고는 못하고 ‘처리해달라’고 한 건 죄책감도 죄책감이지만 어떻게든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드러난 걸지도 모른다.

두 번째 주자는 타이완의 쉐시쓰로 ‘산호 뼈’ 역시 꺼림칙한 느낌이 드는 재밌는 이야기였다. 여전히 ‘저주’는 사람의 마음에 깊은 생채기를 남기나보다. 어린 시절 좋아했던 아이를 구하려는 마음과 자신이 옳다는 생각이 무서운 결과를 낳았다. 둘이 나눈 비밀은 처음엔 달콤했지만 서서히 씁쓸해지다 결국 독이 되었다. 다행이라면 ‘결자해지’가 이루어졌다는 정도일까.

세 번째로 이야기하는 작가는 홍콩의 예터우쯔로 ‘저주의 그물에 걸린 물고기’다. 이 이야기가 제일 도시괴담 같았다. 인터넷 방송이며, 노이즈 마케팅이며, 가짜 이야기를 만들어 퍼트리는 등의 소재는 실제로 도시에서 일어나고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으니까. 게다가 내 친구가, 이웃이 나를 해치려 한다니… 그것도 정말 끔찍한 이야기다. 하지만 가장 끔찍한 건 그저 화제를 만들고 인기를 끌려 만든 이야기로 인해 내 소중한 사람들이 죽었다는 사실이다.

네 번째 작가는 타이완의 샤오상선으로 ‘악어 꿈’이다. 이 이야기는 실제라 해도 믿을만큼 현실적이다. 어린 나이에 민며느니로 팔려 와 노예처럼 일하고, 나이 어린 남편과 시누이를 키우고, 교육은 받지 못하며, 사랑을 알게 되지만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했던 린진리… 그녀의 삶은 커다란 고통 겉면에 약간의 소속감과 안도감이 흔적마냥 덧칠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겨냈고 우뚝 섰으니, 이 이야기에 언급된 <가든파티>가 썩 잘 어울렸다. 죽음의 세계를 엿보고 돌아 온 페르세포네의 이야기 같은 그 소설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하는 작가는 홍콩의 찬호께이로 ‘해시노어’이다. 해시노어는 비슷한 글자라서 잘못 쓰는 일을 말하는데, <여씨춘추>에 ‘진나라 군대 돼지 세 마리(삼시)가 강을 건넜다’가 아니라 ‘진나라 군대가 ‘기해’년에 강을 건넜다’가 맞다고 자하가 말한 것과 <포박자>에 ‘책을 여러 번 베끼다 보면 ‘어’를 ‘노’로 쓰고, ‘제’를 ‘호’로 쓰기도 한다’고 말한데서 유래한다. 이 젓가락 이야기가 어떻게 내려오게 됐는지를 풀어내는 데 저 멀리 요, 순, 곤, 우 임금까지 등장한다. 우리와 다른 세계의 존재들인 그들이 어떻게 우리 삶에 끼어들고,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무서우며, 그 와중에도 순수한 사랑도 피어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인간에게 ‘양심’이란 얼마나 값지고 빛나는 것인지…

젓가락 하나로 저 먼 신화시대까지 다녀 온 기분이다. 상상력이란 정말 멋진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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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너의 다정한 우주로부터 오늘의 젊은 문학 4
이경희 지음 / 다산책방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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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소설 모두 재미있게 읽었다. ‘살아있는 조상님들의 밤’은 정말 재치있는 이야기였다. 비록 ‘잔소리’가 ‘오지랖’ 때문만은 아니지만, 그리스 시대에도 ‘요새 애들은 어쩌고’ 했던 거 보면 잔소리란 게 인간의 본능인가 싶기도 하다.

‘우리가 멈추면’은 안타깝고 짠하고 화가 나고 그랬다. ‘감정 절제’를 하지 않으면 결코 편들 수 없는 일들이 있고, 누군가의 부와 권력을 위해 다른 사람의 밥줄을 아무렇지 않게 끊어버리고, 먹고 사는 게 중요한 이들은 결국 굴복해버린다. 그럼에도 모든 것이 밝혀졌을 때 연대하는 사람들이 있어 다행이다.

‘다층구조로 감싸인 입체적 거래의 위험성에 대하여’는 마치 스릴러물을 보는 듯 주인공을 따라가게 된다. 기억을 잃은 듯한 화자를 따라가며 세상이 이렇게 된 이유나 ‘디스’를 찾는 이유를 추리해보지만 SF물은 평범하지 않으니까. 그렇다고 SF물이라 다른 건 아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욕망을 채우기 위해 다른 이의 희생 따윈 안중에도 없다. 모두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진’은 ‘자유’를 갈구한다. 누가 생성자이고 누가 감별자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벨의 도서관’은 흥미로웠다. 11차원이라니!! 나에게 세상은 3차원일 뿐이니까.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인간이라 할지라도 명령어에 행동하는 로봇이나 인공지능과 다를 바 없다. 그리고 결국 모든 것은 가장 기본부터.

‘신체강탈자의 침과 입’은 요즘 같은 시대에 어울리는 이야기다. 물이 약점이라 손도 씻지 않는 주제에 이름이 ‘순수’라니. 그동안 말하면 까탈스럽다는 둥 예민하다는 둥 했던 ‘손씻기’, ‘술잔 돌리기 거부’ 등이 이젠 당연시 되는 것이 정말 다행이다. 게다가 ‘순수’라는 종교를 선교하는 외계인들의 행태는 지구에 사는 우리와 별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저 먼 미래의 유크로니아’는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가장 마음에 와 닿았고, 진심으로 보다 다정한 우주가 탄생하길 바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당연하다 여겼던 것들이 낡아서 사라지기도 하고 더 관대해지는 것 같으면서도 더 경직되기도 한다. 결국 어떤 세상이든 인간은 서로를 멸망시키는 걸까. 외로워서 서로를 갈구하다 파괴해 버리는 걸까. 홀로 설 수 있어야 상대를 사랑할 수 있으며, 차갑고 모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도망치는 건 가슴 아픈 일이다. 하지만 결국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갔고, 그 셀 수 없는 시간의 바다를 건너며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었기에 그들의 우주를 만들 수 있었다. 끝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처음이었다, 보다 다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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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롭 데이비스 지음, 김마림 옮김,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원작 / 미메시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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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냥 2천 페이지 책을 읽는 게 좋다. 그림체도 나하고 안 맞고ㅠ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요약은 상당히 잘 되어 있어 볼 수 있었다.

어쩌면 1부에서 끝났어도 나쁘지 않았겠지만 2부 마지막에 돈 키호테가 아닌 알론조 케하나로 끝나는 것도 좋다. 지금보다 조금 어릴 때는 왜 이런 결말일까 했지만, 조금 더 나이가 드니 이 결말이 더 편하다. 일단… 이상을 추구하는 건 정말 정말 힘든 일이란 걸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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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민석의 무도 한국사 특강 - 개정판
설민석 지음 / 휴먼큐브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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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주제들을 엮었다. 모든 이야기를 한 권에 담을 수는 없을테니 주제 선정에 많은 공을 들였을 것 같다.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없지만 필요한 이야기들은 하고 있다. 제법 재미있어서 술술 읽었다.

문화 부분이 좀 더 많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 세시풍속은 어느 나라나 신기하고 흥겨운 것들이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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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구름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북포레스트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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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긋난 사람들의 사랑인걸까. 한 쪽은 미친듯이 집착하고, 한 쪽은 그 집착을 벗어나고 싶어하면서도 얽매여 있다. 도대체 앨런이 얼마나 매력적이길래? 조제는 또 얼마나 매력적이길래?

사강은 ‘눈부신 아침 해가 아래로 떨어지면 밤의 그림자가 비행기를 향해 돌진해오고 색색의 구름들이 비행기 옆을 지나가는 그런 하늘 풍경들이 ‘삶을 소음과 격분이 가득한 어리석은 꿈’으로 요약하게 하는 뭔가가 있다.’고 한다.(p.152) 조제는 그렇게 외부에서 밀려오는 대로 반응하다 스스로의 선택이라며 어리석은 행동들을 하고 후회한다. 그러면서 다시 회피하고 방관자로 남고 싶어하다가 다시 앨런에게서 도망치려 한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 그녀’(p.90)는 실제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 원하는 삶이 어떤 건지 아는지도 모르겠다.

겨우 스물 일곱의 조제. 내 나이가 들어서인지 그녀는 너무 어려보이고, 많은 걸 할 수 있을 용기와 체력이 있을 거라 생각하니 더 화가 난다…

다른 결이지만 문득 ‘보바리 부인’이 생각났다. 권태를 벗어나려 외도를 하는 엠마와 앨런의 뜻대로 혹은 앨런을 화나게 하기 위해 외도를 하는 조제. 조제가 생각하는 자유란 어떤 것일까.

놀랍게도 앨런에게는 부정적인 감정만 들었다. 어떻게 공감도 안 가고 이렇게 짜증날 수가 있을까. 그래서 조제가 떠나지 못하는 게 더 답답한 걸지도. 아무리 잘생겨도 저런 식이면 하루라도 견디기 힘들 듯.

그는 그녀를 세상으로부터 단절시켰다. 그가 그녀를 지나치게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가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을 자기 뒤로, 개인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현기증 속으로 제쳐놓아서였다. 그가 그녀만을 보기 때문에 그녀도 그를, 오직 그만을 보아야 했다. - P105

그렇다, 사람들은 그녀를 사랑했다. 그런데 그녀는 그 사랑을 가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다. - P90

사실 앨런의 입장은 이랬다. ‘내가 당신의 삶 전체를 공유해야 한다는 걸 당신은 받아들여야 해.’ 그리고 조제의 입장은 이랬다. ‘당신이 내 삶 전체는 아니라는 걸 당신은 받아들여야 해.’ - P113

30분 동안 비행기 안에서 눈부신 아침 해가 아래로 떨어지고,
붉어지고, 사라지는 모습을, 그러는 동안 밤의 그림자들이 비행기를 향해 돌진해오고, 둥근 창문들 밑으로 파란색과 연보라색 그리고 검은색 구름들이 열을 지어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단숨에 다시 밤이 되었다. 그때 그녀는 그구름들의 바다에, 공기·물·바람의 혼합물에 잠기고 싶은 신기한 욕구를 느꼈다. 그것이 어린 시절의 추억들처럼 그녀를 감싸면서 가볍고 부드럽게 피부에 닿는 것을 상상했다.
그 하늘 풍경에는 놀라운 뭔가가, 삶을 소음과 격분이 가득한‘ 어리석은 꿈으로 요약하는 뭔가가, 진짜 삶이어야 할 눈을 가득 채워주는 시적 평정을 희생해서 완수되는 꿈으로 요약하는 뭔가가 있었다. 이 순간 그녀는 해변에 혼자 누워 시간을 흘려보내듯이, 시간이 흘러가는 소리를 듣듯이,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주저하며 다가오는 여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삶에서 도망쳐, 사람들이 삶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도망쳐, 온갖 감정들로부터 도망쳐, 내 장점과 단점들로부터 도망쳐, 수없이 많은 은하수 중 하나의 100만분의 1 면적에서 잠시의 호흡이 되고 싶었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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