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맞선 1 - 개정판
해화 지음 / 연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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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원하는 것을, 자신의 감정을 잘 아는 주인공들은 참으로 보기 좋다. 응원하고 싶어진다. 이제는 부모가 헤어지라 해도 안 된다고 할 수 있을만큼 당당한 이들이 주인공이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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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신화 마로 시리즈 (Maro Series) 6
김보영 지음, 김홍림 그림 / 에디토리얼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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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나온 기이한 생명체를 만났다는 내용 몇 줄이 이렇게 환상적인 소설로 태어났다. 고구려 6대왕 태조왕은 오래 살기도 했지만 욕심 많은 동생 ‘수성’에게 왕위를 물려 준 왕이기도 하다. 부자세습이 아직 확고하지 않은 때 태조왕의 선택은 많은 피를 불렀다. 당연히 태조왕의 아들이자 태자였던 막근은 살해 당했고, 부덕을 논하던 사무(천기와 일기를 잠차며 왕을 수행하던 사람)는 목이 베였다.

어딘가 분위기가 <바람의 나라>를 떠올리게 한다. 왠지 차대왕은 <바람의 나라> 속 유리왕을 닮았고, 한 생에서 인류 전체가 겪었던 진화를 몽땅 다 겪고도 계속 진화하는 막근은 아직 왕이 되기 전 무휼을 닮았다. 작가가 <바람의 나라>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데 정말 천재인 듯. 누군가에게 그 영향력은 천재성을 발휘하게 하는 훌륭한 작품인가보다. (나도 <바람의 나라> 좋아하는데ㅠㅠ)

진화의 마지막은 결국 탈인간인걸까. 돈과 권력이 덕지덕지 묻은 탐욕스런 왕은 다시 동생이라고도 하고 조카라고도 하는 신대왕(혹은 명림답부)에게 살해 당한다.

비를 뿌리며 하늘로 오른 그는 어디까지 갔을까.

"뭐가 그리 가여우냐."
"네가 인간의 말을 하는 것은 본디 인간의 지각이 있다는 의미요, 인간의 지각이 있다는 것은 네가 지금은 축생의 모습이지만 한때는 인간이었음을 뜻하리라. 무슨 연유가 있어 그런 모습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부모님이 물려주신 본연의몸을 잃고 말았으니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느냐."
"본연의 모습이란 것이 무엇이냐."
호랑이가 되물었다.
"네 말대로라면 모든 생물은 일평생 갓난아기의 형상으로 살아야 하겠구나. 너는 자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났다고 말하지만 네 선조는 한때 곰이었고 호랑이였고, 뱀이었고 물고기였고, 새였으며 식물이었다. 네가 지금은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려 애쓰지만 하나 의미 없는 일임을 알게 되리라. 태어난 그대로의 모습으로 죽는 것이 무슨 가치가 있는 일이냐. 내가 축생의 모습을 택했다지만 내 의지가 섞이지 않은 일은 아니다. 나는 내 손으로 내 배를 채울 것을 구하며 살기를 원했고 이런 모습을 갖게 되었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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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터
김호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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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괴테의 <파우스트>를 처음 읽은 건 고등학생 때였다. 그 때 책장을 덮으며 든 생각은 ‘이게 왜 고전이지?’ 였다. 모르는 게 없다는 학자가 젊어지자 하는 일이라고는 그레트헨을 꼬셔서 임신시키고 죽음에 이르게 하질 않나, 저승에 가서 제일 예쁘다는 헬레네를 꼬셔서 놀아나질 않나, 사기꾼처럼 속여서 한 나라의 부를 갈취하지 않나… 그런데 어떻게 구원을 받는거지? 난봉꾼에게 관대한 신이라… 세상 참 불공평하다 느꼈다.

그리고 한참 힘들 때, 서른이 넘어 다시 읽었다. 너무 새로웠고, 놀라웠다. 여전히 이해가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지만, 많은 것을 알고 있는 파우스트조차 모르는 것이 많고 부족하다 여긴다는 것이, 그리고 그가 하는 선택들이 어리석기까지 하다는 점이 마음에 와 닿았다. 그래,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고 방황하는 존재이고 가지지 못한 것을 욕망하는 존재지. ‘완벽’은 환상일 뿐이다. 의인화 된 ‘메피스토펠레스’나 ‘신’은 다름아닌 자신의 모습들일 것이다.

<파우스트>하면 그 불굴의 의지를 빼 놓을 수가 없다. 그리고 난 또 한 명의 파우스트인 ‘하우케’가 떠오른다. 슈토름의 <백마의 기사> 속 그 ‘하우케’ 말이다. 죽어서까지 이루고자 하는 무엇에 대한 열망, 집착… 그런 것을 ‘의지’라고 한다면 괴테의 파우스트와 슈토름의 하우케는 정말 의지가 대단한 인물들이다. 내 눈엔 오만함과 통제하려는 욕망으로 보이지만.

그리고 이 책, <파우스터>. 굉장히 재미있고 즐겁게 읽었다. 사실 지금도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이지 않은가. 소설, 영화, 드라마보다 더 뻔뻔하고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이니까.

인생은 야구와 비슷하다고 하던데, 야구와 파우스트를 절묘하게 엮어 매우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후원을 넘어서 한 사람의 인생을 설계하고 좌지우지 하는 프로그램이라니... 인간이 얼마나 오만하면 이런 일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날 수 있을까. 내 삶이 내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의지에 의해 만들어지는 거라면 너무 끔찍하지 않을까. 내 부모님이 나의 진로나 배우자를 결정하는 것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데, 하물며 아무 상관 없는 남이 돈이 많다는 이유로 내 삶을 결정한다는 건 정말 비인간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메이저리그가 꿈인 야구 선수 박준석은 어느 날 이상한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의 머리속에 작은 기계가 있고 그 기계를 통해 돈 많은 늙은이가 자신의 삶을 해킹한다는 이야기. 자신이 노력해서 일구었다고 생각한 일들이 사실은 누군가가 조종한 것이라는 이야기. 그 늙고 돈 많은 누군가는 파우스트라 불리고, 삶을 빨아먹히는 자신 같은 존재는 파우스터라고 불린다는 이야기.

도대체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를 들으며 준석은 최경과 함께 이 일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최경은 준석이 사랑했던 지수를 파우스터로 둔 파우스트 최회장의 딸이며, 지수와 아버지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조사하던 중 이 조직을 알게 된 것이었다. 최경은 아버지와 지수의 복수를 위해, 준석은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돈과 권력으로 자신의 삶 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까지 통제하고 시간을 거슬러 젊음을 탐하는 파우스트들을 보며 그들의 비인간성에, 오만함에, 잔인함에 치가 떨렸고, 결코 가지지 못할 것을 탐하는 모습은 가련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야기는 놀라울만큼 흡입력 있었다. 준석은 메이저리그를 갈까? 메피스토를 벗어날 수 있을까? 

여담이지만 경이가 임실장에게 주짓수를 배우는 장면은 반가웠다. 초크는 걸리기만 한다면 체구가 작아도, 힘이 약해도 상대를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기술이다. 걸기까지가 어려워서 그렇지. 요즘 읽는 책들에서 주짓수 이야기가 나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결국 유한한 인간의 몸은 온갖 부와 명예와 권력을 둘러도 서서히 시들어간다. 흐르는 시간을 부여잡고 영원을 탐한다 한들, 어딘가 망가진 채로 살아야 한다면 그것이 과연 행복일까. 오히려 <구운몽>처럼 모든 것이 한낱 꿈인 것을 깨닫고 영혼을 갈고 닦는 게 훨씬 이로울 것 같다. 욕망은 채운다 한들 채워지지 않는 것이니 밑빠진 독에 백날 천날 물을 부어봤자 콩쥐의 두꺼비가 누구나 도와주는 것은 아니니까.


"잊지 마세요. 놈들은 강합니다. 주짓수야말로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기술이에요."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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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립백 코스타리카 엘 베나도 라 로마 - 10g, 5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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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에 이어 맘에 드는 향과 맛이다. 산미가 많이 올라오는 것보단 고소하고 묵직한 맛이 가득한 게 좋아서 맘에 든다. 드립백은 양이 적어 홀랑 마셔버려서 종류별로 사두면 몇 번이고 다른 맛을 즐길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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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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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가 너무 예뻤다. 보라색도 좋고, 예전에 홍콩에서 본 야경 같은 느낌의 그림도 좋았다. 그래서 도대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궁금했다. 작가에 대해서도 이 책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지적이고 부드럽고 도시적인 이미지를 상상했으나 현실은 쓰라렸다. 부드럽긴 무슨, 지독하게 외로웠다. 읽는 내내 외롭고 외롭고 또 외로웠다. 가장 가까운 사이인 엄마는 ‘영’을 정신병원에 보내버리고, 가장 가깝다 여겼던 친구인 ‘재희’는 남편될 사람에게 ‘영’의 정체성을 밝히며 그를 조연으로 전락시킨다. ‘영’이 사랑한 띠동갑인 운동권 출신 ‘그’는 ‘영’과 함께 있는 걸 부끄러워하고 서양 국기에 질색해서 ‘영’을 비난하고 결국 떠나버린다.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영’에게서 <아비정전>의 아비가 보였다. 아비는 자신을 버린 엄마를 절대 돌아보지 않는다. 그게 아비의 마지막 자존심 같은 거니까. 그런 처절함이 뭔가 닮았다고나 할까.

전부를 내 준 것 같은 사랑도 흐르는 시간 속에 희석되고 새로운 사랑에게 자리를 내준다. ‘규호’.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인 규호랑 이름이 같다. 이름만 같다. 마치 내가 이 책을 읽기 전 상상했던 이 책의 모습처럼.

‘규호’는 아직 시간의 흐름 속에 옅어지지 않은 존재다. 대도시라는 곳이 열려 있는 듯 하지만 ‘영’과 같은 소수자에겐 편견으로 가득 찬 닫혀 있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규호’는 ‘영’을 진심으로 대하지만, ‘영’이 가진 한계로 인해 둘 사이에는 중국과 한국이라는 물리적 거리가 자리하게 된다. 차마 기다린다는 말조차 못한 채 ‘규호’를 보내고, 영화 <화양연화>의 차우가 앙코르와트 벽 구멍에 속삭인 것처럼 ‘영’은 자신의 마음을 풍등에 띄워보낸다. 여전히 그립고 애틋한, 하지만 가질 수 없는 그 이름을.

이 도시는 매우 크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산다. 다들 제각각의 사연을 안고 각자의 삶을 만들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상처 주고 상처 받는다. ‘영’을 아픈 사람 취급하던 엄마야말로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엄마를 벗어나지도 못하고, 미워하면서도 사랑하는 그런 관계를 이어나간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영’은 다른 것 같아도 결국 비슷하다. 부모와의 관계도, 연인과의 관계도 비슷하다. 사랑하고 상처주고 상처받고 위로받고 그렇게 살아간다…

잠시도 불쌍해할 틈을 주지 않는 재주가 있는 여자였다. 엄마는,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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