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애가 제로가 되었다 시네마틱 노블 1
오누이 외 지음 / 스토리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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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인류애가 사라져 본 적이 있는가? 적어도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단 한 번이라도 그런 순간을 맞이한 적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자신이 나이가 많다고, 자신이 돈이 많다고, 자신이 덩치가 크다고 등등의 이유로 자신이 옳다며 상대를 눌러버리는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당연히 그 사람이 잘못한 것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내 주위의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 그냥 우리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비인간적이고 몰상식한 행위에 동조하거나, 방관한다면 인류애가 과자 부스러지듯 바사삭 사라지지 않을까. 우리는 분명 지난 시간들 속에서 그런 순간을 한 번 이상 만났을 것이다. 


이 책은 유래 없는 팬데믹이 세계를 휩쓸고 간, 계속 발전해 온 과학 기술이 더 이상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는 이 세상과 인간을 연결시켜 주던 '인류애'란 가치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미래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가치를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것일까?


첫 번째 이야기는 오누이 작가의 D - 1 이다. 2024년 세상은 '라섹(라스트 세컨드)'을 맞이한다. 2024년 7월 2일 한국 시각 오전 4시 37분 13초. 이 시각은 인류가 경험한 마지막 시각이며 이를 '라섹'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때가 되면 세상은 정확히 하루 전으로 돌아간다. 이 현상을 '프리즈'라고 한다. 프리즈는 공전, 자전, 생명체의 생사여부까지 모두 하루 전으로 되돌린다. 하지만 인간의 기억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 라섹을 맞이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축적되는 것은 인간의 기억 뿐이다.


수미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자기계발서 그 자체라고 할만큼 자기를 '계발'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파이어족 그러니까 조기은퇴가 목적이었기에 통장 잔고가 늘어나는 것만을 목표로 돈을 벌었다. 연애? 그런 건 사치이자 돈 버는 데 도움이 안 되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갑자기 라섹이라니? 더 이상 통장엔 잔고가 늘지 않는다. 아니, 은행 자체가 쓸모가 없어진다. 사람들은 폭음, 마약, 폭력, 절도 등의 행동을 거침없이 하고, 심지어 프리즈가 일어나기 직전에 몸에 불을 붙인다든지 하는 극단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수미는 새벽에 조깅을 하다가 프리즈를 맞이했다. 온전한 하루를 살 수 있는 수미는 이 시대의 금수저가 되었다. 수미와 같은 회사에 다녔던 기훈은 슬프게도 라섹이 일어나기 하루 전 아파트 창문 사이에 끼인다. 그러니까 그는 매일 창문에 끼인 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그를 수미가 발견하고 꺼내준다. 하지만 프리즈가 일어나면 다시 창문에 끼이게 되는 기훈은 수미가 오지 않을까 겁이 난다.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만약 이 프리즈가 끝이 나고 라섹 이후의 시간이 흐르게 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이제 세상은 프리즈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프리즈를 끝내고 싶어하는 디프로스터로 나뉜다. 디프로스터가 이 프리즈를 끝내면 직전에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은 죽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디프로스터는 이 프리즈를 끝낼 '냉장고'를 끄겠다고 선언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냉장고'를 끌 수 없도록 디프로스터를 방해한다. 자, 시간이란 무엇인가? 흐르지 않는 시간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영원을 꿈꾸던 인간에게 내려진 이 영원 아닌 영원 같은 이 시간은 행운일까? 과연 무엇이 옳은가?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우리 안의 '인류애'는 휴머니즘은 어떤 선택을 하라고 할까?


두 번째 이야기는 정현욱 작가의 유어라이프이다. 2080년대에 사는 예연은 기자이며 피임을 하는 중이다. 하지만 이 시대 젊은이들은 아이를 갖고 싶어해서 출산율은 제법 높은 편이었고, 인구절벽도 없다. 그런 시대 예연은 우연히 '유어라이프'라는 2045년에 유행했던 게임에 대해 알게 되었고 자신의 할아버지 및 노인 세대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 시대 자료를 찾으면 찾을수록 뭔가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2040년대에 노인 인구가 급격히 늘자 젊은 세대들은 자신들의 부양 의무가 지나치게 무겁다는 사실에 노인 세대를 경멸하고 비난한다. 거의 배설 수준으로 욕을 하던 어느 순간, 정부에서는 복지 차원에서 영양제를 지급하고, 유어라이프라는 게임이 유행하고, 그리고 인구는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여기에 무슨 음모론이 있는 것일까? 노인들에게 지급하는 영양제에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는 '악나스트로마이센'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청년 세대에게 지급하는 영양제에는 '스트루모릭아펜'이 들어있다. 향정신성 약물로 의욕을 고취시켜 주어 개발 초기에는 우울증 치료제로도 쓰였다는 그 약물 주입 이후 출산율은 올라갔다. '유어라이프'라는 게임은 어떤 식으로 작동해서 이 게임에 빠진 노인들을 자연스럽게 죽음을 생각하도록 했을까.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은 모두 뇌에서 일어나니까 호르몬을 조절하면 인간을 조종할 수 있는가? 우리와 로봇의 차이는 무엇일까? 과연 이런 인구 조절 계획이 타당한 것일까? 누구를 위한 것일까? 


세 번째 이야기는 김지원 작가의 사람도 아닌데이다. 이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내가 어떤 물건을 검색하면 내가 사용하는 sns든 유튜브든 곳곳에서 그와 관련된 광고를 보여준다. 나의 성향에 맞춰진 알고리즘... 음악도 무작위로 재생한 후 마음에 안 드는 음악을 넘기다보면 어느새 재생목록에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로 채워진다. 만약 사람도 그럴 수 있다면...? 내가 좋아하는 성격들로 이루어진, 내가 반할만한 외모와 성격으로 이루어진 안드로이드가 나를 유혹한다면 나는 흔들리지 않을까?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W>를 보면 여주인공은 말 그대로 만화 속 주인공인 '강철'과 사랑에 빠진다. 그가 현실 세계의 사람이 아님을 알면서도. 이 이야기 역시 유사하다. 해주는 남편인 김진오와 이혼 소송 중이다. 김진오는 바람을 폈고, 이혼을 요구한다. 김진오가 바람을 피운 상대는 다름 아닌 그의 성향에 맞춰진 안드로이드... 나를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존중해주고, 내 단점을 보듬어주고, 대화가 통하고... 이런 사람이 나에게 다가오면 나는 뿌리칠 수 있을까? 나중에 그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더라도? 


'사랑'이란 무엇일까. 나에게 맞춰진 존재가 사람이든 안드로이드든 과연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력하지 않는 관계가 노력해도 안 맞아서 파국을 맞이하는 관계보다 나은 것인지, 애초에 내게 맞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네 번째 이야기는 황모과 작가의 배내똥 거래소이다. 이 이야기 역시 정말 가슴이 시리다. 인간 세상은 거듭해도 강자와 약자 간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나 보다. 인분을 에너지원으로 쓰는 '친환경 바이오' 회사들은 늘 인분을 찾았다. 회사들이 동네마다 '배내똥 거래소'를 설치했고, '배내똥'으로 판명나면 비싼 값을 쳐 줬다. '배내똥'은 메탄가스 발생 비율이 높은 고품질 똥을 일컫는 말이다. 식용으로 재가공한 폐휴지 조각으로 만든 파스타를 먹고 닷새나 묵혀 만든 똥은 급식이 없는 겨울 방학을 나게 할 훌륭한 돈벌이었다. 다만 이 똥을 만든 예율은 아직 어리고 영양가가 있는 음식을 먹어야 할 나이라는 게 문제랄까. 최저임금이 낮아도 일할 사람은 많다는 '유연한' 시대에 예율의 아빠는 직장을 구하지 못했고, 우연히 길에서 만난 유민과 유민의 엄마와 의기투합하게 된다. 유민의 엄마가 소개시켜 준 직장은 무인편의점이다. 무인편의점에서 사람이 무슨 일을 할까 싶지만, 고장이 난 기계를 고치려면 시간이 걸리기에 그동안 사람이 기계 안에서 기계인척 기계의 일을 대신하는 것이다. 사람을 대신해 일하는 기계를 대신해 일하는 사람이라... 커서 돌고래가 되고 싶다는 유민의 소원 역시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거대한 수족관에서 돌고래 인형 속에 사람이 들어가 헤엄치는 세상... 예율이 바라는 모든 이가 바나나똥을 누고, 모든 사람이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은 가능할까?


다섯 번째 이야기는 배명은 작가의 선샤인은 저 너머에이다. 이 시대의 결혼 정보 회사는 정말 어마어마하다. 어디 접속하면 아바타처럼 내기 좋아할 만한 장소에서 조건이나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게 해 준다. 이를테면 운동을 좋아한다고 하면 등산을 하면서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만난다든지, 미술을 좋아하면 전시회가 만남의 장소가 된다든지 말이다. 혜주는 우연히 이 회사의 이용권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하필 그녀는 0과 1 사이의 어떤 오류로 인해 프로그램에 갇히게 된다. 혜주는 계속해서 장소가 바뀌며 사람들을 만나는데 문득 자신의 포장 가격은 얼마인지 궁금해진다. 이 흐릿한 선을 넘으면 어떻게 될까. 현실 세계나 가상 세계나 인간을 상품화하고 서열을 매기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일까. 그렇게까지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일까.


살면서 인류애가 바스러지는 순간이 있다면 인류애로 가득 차 세상이 아름다워보이는 순간들도 있다. 우리의 삶은 그런 것이리라. 내가 기대하는 것과 실제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는 것. 그 사이 추악한 것들도 보지만 아름다운 것도 보겠지. 그래서 세상은 균형을 맞춰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아름답다면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테니까. 하지만 아름다움을 모르게 된다 하더라도 끔찍하고 추악한 일은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다. 모두가 인류애로 가득 찬 세상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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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1-15 2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개해주신 이야기들이 전부 참신하네요. 읽어보고싶게 기발한 아이디어로 출발하는 책이 내용 전체도 어떨지 막 궁금해져요.

꼬마요정 2022-11-15 23:13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정말 참신하다 생각하고 읽었답니다. 우리나라 작가라서 그런지 과학소설이 좀 더 현실에 더 가깝게 느껴진달까요. 많은 생각을 했어요^^
 
만만한 철학 -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12가지 이야기
미하엘 쾰마이어.콘라드 파울 리스만 지음, 이지윤 옮김 / 재승출판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예전에 미하엘 쾰마이어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었다. 이 책은 토마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가 아니어서 새로운 기분으로 읽을 수 있었고 재미있게 읽었다. 그 때 아트리덴 가문의 저주도 알게 되었다. 그 덕에 괴테의 <이피게네이아>를 읽을 때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을 만났을 때 반가웠다. 또 얼마나 새롭고 흥미로운 관점을 알려줄까 기대했다. 


이 책은 동화, 신화, 성경 등에 나오는 이야기들 중 모두 12가지의 이야기로 인간이란 무엇인지,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게 한다. 호기심, 노동, 폭력, 복수,욕망, 비밀, 자아, 아름다움, 장인정신, 권력, 경계, 운명 각각의 이야기들은 모두 짧지만 강렬하다. 


첫 번째 이야기는 천지를 창조한 신이 여차저차한 이유로 아담과 이브를 낙원에서 쫓아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금기는 두려움과 호기심이란 모순된 감정을 불러 일으켰고, 거기엔 복종하거나 반항하거나 두 길 뿐이다. 뱀의 유혹은 어쩌면 인간 내면에 깊이 잠들어 있던 어떤 욕구와 맞아떨어졌던 것일지도 모른다. 최초의 죄는 무엇일까? 금기를 어긴 것이 최초의 죄일까? 그렇다면 인간은 금기를 어겼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있게 된 것인가, 아니면 죄란 씨앗이 애초에 인간에게 있었기에 금기를 어길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금기는 알지 못하는 세상을 향한 문이고, 인간은 그 문을 열 능력이 있으나 열어서는 안 되며, 결과는 그 문을 열어야만 알 수 있다. 모든 공포 영화가 호기심에서 시작하듯, 인류의 타락 역시 호기심에서 비롯됐다. 저 문을 열고 싶다, 궁금하니까. 이것은 인간의 자유의지일까? 키에르케고르는 선악과 사건의 주된 의미가 먹으면 죽는다고 말한 신은 처음부터 인간이 선악과를 따 먹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두려움과 동시에 끝을 알 수 없는 어떤 가능성을 선택함으로써 인간은 처음으로 자유를 깨닫게 되었다고.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혼란에 빠트린 질문이 '인간성이란 본디 죄를 짓고자 하는 의지를 포함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저지른 죄악은 신의 뜻이 아닌 인간의 뜻이고, 금기를 지키고자 하는 것은 외부의 규범에 기준을 맞춘 것이라고. 신은 자유와 자아, 책임과 같이 죄를 짓지 않았다면 몰랐을 개념으로부터 인간을 지키기 위해 금기를 만들었고, 그래서 도덕은 깨달음을 완강히 부정했다.(p.23) 그래서 니체는 모든 도덕의 첫째 계명으로 '깨닫지 마라'를 꼽았다고 한다. 


인간이 금기를 깨트리고 얻은 것은 인류와 세상이다. 이제 낙원은 사라졌다. 그 낙원이란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헤겔은 원죄 사건의 결과로 인간이 비로소 영혼을 획득했으며 어울리지 않던 에덴 동산을 떠나게 되었다고 했다. 또한 원죄 사건을 통해 얻게 된 지각 덕분에 오직 그 지각 덕분에 인간은 사실상 신과 같아지게 되었다고 말한다.(p.24) 낙원을 버리고 자유를 얻은 인간은 그 호기심의 대가를 치를만큼 자유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을까? 


두 번째 이야기 노동에서는 다이달로스의 이야기가 나온다. 파시파에의 의뢰를 받아 나무로 아름다운 암소를 만들고, 미다스 왕의 의뢰로 미로를 만들고, 아리아드네에게 그 미로를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아들 이카로스와 미로에 갇히자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어 그 곳을 탈출하는 그 다이달로스 말이다. 다이달로스는 선악이나 도덕에 구애 받지 않고 오로지 의뢰인의 요구에만 맞춰 무언가를 만든다. (자신이 이만큼 잘 만들 수 있다는 허영과 이기심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는 없다며 테오도어 아도르노와 막스 호르크하이머가 <계몽의 변증법>에서 제시하고 비판한 도구적 이성의 예시라고 말한다.(p.39) 또한 이카로스의 추락에서 볼 수 있듯이 기술에 대한 오만과 맹신은 재앙을 불러 올 수 있다. 임무가 맡겨지면 기술적 해법을 찾지만, 경고를 무시한 채 명령만을 따르는 것은 엄청나게 위험할 수 있다. 시스템은 있을 때 지키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세 번째 이야기는 폭력이다. 슬픈 소녀는 그 슬픈 눈을 들어 사람들을 쳐다보는 것만으로 원하는 것을 얻었다. 슬픈 눈망울로도 얻을 수 없다면 눈물을 흘리며 울어 버린다. 결국 그녀는 원하는 모든 것을 얻었다. 주위가 황폐해지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다. 슬픈 소녀가 흘린 눈물은 연민, 관심, 공감, 호기심 등을 불러일으켰고, 사람들은 나쁜 사람이 되기 싫어 소녀의 부탁을 들어준다. 하지만 슬픈 소녀가 원하는 것은 타인의 고통이었다. 소녀는 자신이 악하다는 것도 알고 악함을 다스리려고 하지도 않았다. 악의로 가득 찬 슬픔은 폭력적이었다. 연민이라는 선의가 악의에게 잡히면 결과는 무참하다. 단지 선한 일을 하려 했을 뿐인데 집을 불태우고,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연민은 어떤 감정보다도 기만적일 수 있으며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을 수 있다. 과연 우리는 그 연민 밑에 깔려 있는 악의를 찾아낼 수 있을까?


네 번째 이야기는 복수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가장 잔인하고 폭력적인 이야기로 손꼽히지 않을까. 신을 기만한 탄탈로스로부터 내려오는 그 저주는 수많은 피를 뿌리며 오레스테스까지 이어진다. 그런데 이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이 사법제도라는 점이 의외였다. 아버지를 살해한 어머니에게 복수한 오레스테스에게 열린 법정에서 배심원 중 모든 여성은 유죄에, 모든 남성은 무죄에 투표했다. 표수는 동수, 이제 최종 판결은 아테나가 내리게 된다. 어머니 없이 아버지의 허벅지에서 태어난 아테나는 모든 아버지는 모든 어머니를 우선한다며 오레스테스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비록 법률이 부당하다 해도 그저 복수로 점철된 난폭한 부당함보다는 낫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다섯 번째 이야기는 욕망이다. 어린 시절을 아주 유복하게 보낸 에기디우스 성인은 꿈에서 베드로 성인에게 이끌려 단테의 지옥에 다녀온다. 지옥을 보고 온 에기디우스는 모든 육체의 안온함을 버리고 고통 속에서 살기를 원한다. 고통을 향한 욕망만이 에기디우스를 채우고 있는 것 같다. 에기디우스는 무엇 때문에 고통 속에 머무르기를 원하는 것일까. 고통을 극복해가는 모습에 욕망을 느끼는 것일까?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끼기 위함일까? 고통은 살아있기 때문에 느낄 수 있으니까. 에기디우스 성인이 성인의 반열에 오른 이유는 오직 신만이 알지도 모른다.


여섯 번째 이야기는 비밀이다. 이 이야기는 마치 우리네 전설과도 비슷하다. 구미호가 변신해서 막내딸 노릇을 하며 집안의 가축들을 잡아먹고, 가족들마저 도륙하는 이야기 말이다. 여기는 늑대 입을 가진 딸인데, 존재마저 감춰진 막내딸이다. 가정에 무관심한 아버지가 죽고 재산을 물려받은 아들들 중 일곱 째만이 살았는데, 그는 사랑하는 여동생을 피해 도망가서 뭔가 라푼젤 같은 여자를 만난다. 그 여자와 결혼하기 전에 가족을 만나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다가 혼자 살아남아 다시 결혼 할 여자에게로 도망치지만 묘한 상태로 남게 된다. 한 쪽은 여동생에게 잡히고 다른 한 쪽은 결혼 할 여자에게 잡힌 상태. 그 어렵고 가혹한 모습을 보던 달이 말한다. "견뎌라" 비밀은 어쩔 수 없이 견뎌야만 하는 것이다.


일곱 번째 이야기는 자아에 관한 것이다. 크리스티앙의 속내라는 이 동화는 신기하다. 크리스티앙은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사랑하는 여자를 죽이려는 남자를, 가족이 탄 비행기를 추락시키려는 바람을, 자신에게 찾아오는 두려움을 쫓아내기 위해 느끼고, 맛보고, 냄새를 맡고, 현재를 보는 능력을 허리띠와 식칼과 바람과 과거, 미래에게 줘 버린다. 그런 뒤 과연 그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오롯이 자신 안에서 자아를 찾았을까 아니면 자신만의 환상에서 사는 것일까. 그런 감각들이 없다면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


여덟 번째 이야기는 아름다움이다. 아테나 여신은 아울로스라는 관악기를 만들어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했는데 막상 연주하는 자신의 모습은 추하기 그지 없어져서 아울로스에 저주를 내린 뒤 버린다. 그런데 하필 아울로스를 주운 게 사티로스인 마르시아스였다. 원래 추하게 생겼기에 부르는 중에 추해지는 건 상관없고, 오히려 불기만 해도 아름다운 음악이 연주되니 신이 난 마르시아스는 자신이 아폴론보다 뛰어나다고 말하기에 이른다. 결국 아폴론과 시합해서 진 마르시아스는 비참한 결과를 맞이한다. 예술은 아름답지만 모든 면이 아름답지는 않다. 아름다움이 발현되기까지 들이는 노력이나, 감당해야 하는 일들은 마치 물 밑에서 백조가 발버둥치는 것과 비슷하다. 신화가 계속 나오는데 나올 때마다 신들이 너무 잔혹하다. 그래서 아름다운걸까.


아홉 번째 이야기는 장인정신이다. 지그프리트와 미메는 훌륭한 장인들이다. 세상을 보고 싶었던 지그프리트가 대장장이 집단에 들어오게 되고 미메는 그를 가르치며 불가능한 것만 같은 과제를 내 준다. 시행착오 끝에 미메를 뛰어넘게 된 지그프리트는 대장장이로 인정받게 되지만, 다른 대장장이들의 질투로 용의 계곡에 들어서게 되고, 자신이 만든 그물로 용을 물리친다. 하지만 용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나무들을 다 베어버렸기에 홀로 살아남은 보리수 나무는 그에게 복수한다. 마치 아킬레스처럼 용의 기름으로 온 몸이 갑옷을 입은 것처럼 되었으나 보리수 나뭇잎 하나가 등에 붙어 그의 약점이 된 것이다. 화살로 심장을 꿰뚫을 수 있는 그 곳. 그건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현대에서 장인이 더 이상 대접받지 못한다고 하는데 사실 이 이야기와 잘 연결되지 않았다. 아마 계속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저 완벽한 것은 없다는 것과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교훈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열 번째 이야기는 권력이다. 욥의 이야기가 나온다. 하필 신과 루시퍼의 내기에 걸려서 온갖 고초를 당한 그는 끝까지 신을 버리지 않았기에 그는 더 큰 보상을 받는다. 하지만 그 내기로 인해 고초를 받은 건 멀쩡하던 소 떼, 양 떼, 식구들이 아닌가... 욥은 살아있지만 그를 괴롭히기 위해 나머지는 다 죽었다. 나에게 욥의 이야기는 너무 폭력적이라 좋아하지는 않지만 권력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 볼 거리가 되기는 하였다. 신이 만든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지만 신은 인간에게 그 이유를 말해 주지 않는다. 인간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니까. 절대권력은 선도 악도 없다. 그저 절대적인 힘만을 행사할 뿐이다. 하지만 신에게는 대항하지 못해도 인간이 인간에게는 대항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이 인간에게 혹은 자연에게 행사하는 권력에는 제동을 걸어야 할 것이다. 


열한 번째 이야기는 경계에 관한 것이다. 익시온과 아스클레피오스는 경계에 있는 인물들이다. 인간과 신의 경계에 있는 이들은 그 경계를 넘어도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한다. 하지만 신이 아니다. 익시온은 얼마 전에 읽은 보리스 비앙의 <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의 리와 겹쳐졌다. 복수를 위한 복수인가, 자기를 과대포장하여 생각하는 것인가. 아스클레피오스는 죽은 자를 살려냈기에 신의 지위를 얻을 수 있었으나 신을 제외한 모든 이에게 공평한 죽음이라는 것을 파괴했기에 죽을 수 밖에 없었다. 죽음은 경계인가 종점인가. 죽음이 종점이라면 아스클레피오스는 종점을 뒤로 밀어낸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대부분이 80살까지 사는데 소수의 특권층만 300살까지 산다면 어떨 것인가. 하데스가 말한 '모두가 아니면 아무도'란 원칙은 지켜져야만 하는 것이다. 모두에게 해당하는 경계를 소수에게만 개방하는 것은 무척 위험하다. 그리고 모두에게 해당하는 종점을 소수를 위해 폐지하는 것은 더욱 치명적이다.(p.199)


열두 번째 이야기는 운명이다. 운명하면 오이디푸스가 떠오르는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유다이다. 유다는 여러 면에서 오이디푸스와 닮았다. 처음에 정해진 운명은 피할 수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살면서 내가 선택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끝이 정해져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 길로 간다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선택할 자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다른 선택을 한 인생의 길을 가보지 않았기에 우리는 운명이 정해진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러면 끝이 왔을 때 조금은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제목은 만만한 철학이었으나, 어느 이야기도 만만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깨달은 자에게는 그 깨달음의 대가를 빠짐없이 받아내는 것이 세상의 법칙이다. - P25

시스템이 무너진 다음에 경고를 떠올리면 그때는 이미 늦었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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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1-07 14: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철학책이 만만하다는 말을 달고 있는 것부터 뻥치고 시작하는거죠. ㅎㅎ
그래도 꼬마요정님 소개를 보니 재밌게 읽을 수는 있을거 같아요. ^^

꼬마요정 2022-11-07 22:36   좋아요 0 | URL
맞아요 뻥이었어요 ㅎㅎ 재미는 있는데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어요 ㅎㅎㅎ ㅠㅠ

scott 2022-11-13 2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정님 리뷰 읽다 보니 이 책은 동화, 신화, 성경 속에 나오는 호기심, 노동, 폭력, 복수,욕망, 비밀, 자아, 아름다움, 장인정신, 권력, 경계, 운명이라는 인간 세상의 모든 문제와 고민, 고난 등이 전부 들어가 있네요
절대 만만하지 않은 인생철학이 담긴 책인 것 같습니다 ^ㅎ^

꼬마요정 2022-11-14 14:06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이렇게 인간 세상 모든 문제와 고민과 고난이 다 들어있는데 심지어 두껍지도 않아요... 그러면서 만만하다네요? 저 머리 터지는 줄 알았어요 ㅎㅎㅎㅎ
 
[전자책] 알케스티스 지만지드라마
에우리피데스 지음, 김종환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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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먼 옛날, 아폴론이 키클롭스를 죽인 일이 있었다. 아폴론이 사랑한 아들인 아스클레피오스가 의술로 죽은 사람까지 살려서 하데스가 다스릴 사람이 없어지자 제우스가 아스클레피오스를 죽여버린 것이다. 아폴론은 화가 나서 벼락을 만들어 준 키클롭스를 죽여 버렸다. 제우스에게 반항하고 제우스의 아들들을 죽인 죄로 아폴론은 올림포스에서 도망쳤는데, 누군가는 아폴론이 제우스에게 벌을 받아 인간인 아드메토스 밑에서 일해야 했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아드메토스가 도망친 아폴론을 친절하게 맞아들여 자신의 목동으로 위장시켜 주었다고도 한다. 어떻게 된 것이든 아드메토스는 아폴론을 신으로 대우하였고 감동받은 아폴론은 아드메토스의 명이 짧은 것을 안타까워하며 운명의 여신에게 부탁해 죽음을 피할 방법을 알려준다. 그 방법은 아드메토스 대신에 죽을 사람만 있으면 아드메토스는 죽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드메토스는 자신 대신 죽어 줄 사람을 찾게 되는데...


이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가 이 희곡의 시작이자, 대부분이다. 나 대신 죽어 줄 사람이 있으면 내가 살 수 있다고 해서 당당하게 나 대신 죽어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세상에서 공평한 게 있다면 바로 누구나 죽는다는 것인데 그것을 엎어버린다고? 이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가 디스토피아 영화나 소설에서 보던 돈으로 생명을 사는 이야기의 최초일지도 모른다. 물론 아드메토스 대신에 죽어 줄 사람은 돈을 보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아드메토스의 부모님도, 아드메토스가 다스리는 테살리아 페라이 성의 백성들도 아무도 대신 죽겠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아내인 알케스티스는 남편 대신 죽겠다고 하는데... 도대체 왜? 자신이 죽으면 아이들은 엄마 없는 신세가 될테니 아이들을 후처에게 맡기지 말라고 하면서 말이다. 아드메토스는 아내가 대신 죽는다고 하니까 막 울면서 다시는 결혼을 안 하느니 엄마 없는 아이들은 어쩌느니 하면서 막 슬퍼한다. 


심지어 아드메토스는 부모님이 자신 대신 죽어주지 않는다고 당신들은 부모도 아니라며 막말을 하며 부모를 쫓아낸다. 이거 코메디인가? 자기가 죽기 싫으면 남도 죽기 싫은 거고, 누구도 대신 죽어 줄 의무 따윈 없는데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아드메토스 대신에 알케스티스가 죽겠다고 하자 아드메토스는 생기를 되찾고, 알케스티스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 버린다. 도대체 알케스티스는 왜 대신 죽겠다고 했을까.


어떻게 보면, 알케스티스는 고귀하고 의무를 다한 사람일테고, 아드메토스는 지극히 이기적인 사람일테다. 당시 테살리아 지방이 전쟁에 시달린 것도 아니고, 심지어 아드메토스 아버지도 살아 있고, 자식들도 있으니 왕권이 심하게 흔들린다거나 하지도 않은 듯 하다. 게다가 아폴론의 가호를 받고 있으니 굳이 아드메토스가 있지 않아도 나라가 막 망할 지경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 다른 어떤 이유를 들기 보다 아드메토스 본인이 죽기 싫어 타인을 죽음으로 몰아간다는 것이 맞겠다. 물론 아내를 대신 죽이고(?) 장례를 치르는 중에 방문한 헤라클레스를 극진히 대접한 까닭에 감동한 헤라클레스가 타나토스를 물리쳐주긴 했는데.


결국 아드메토스는 알케스티스를 돌려받아 그를 대신해 죽은 사람은 없게 되었다. 그럼 지옥의 사자는 분명 아드메토스를 방문하게 되겠지. 자, 그건 언제일까? 그 때도 과연 알케스티스는 대신 죽어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끼는 감정은 무엇인가? 처음에 아폴론은 아드메토스 뿐 아니라 알케스티스까지 구하려고 타나토스와 흥정한다. 하지만 실패하게 되고, 알케스티스는 말 그대로 '세상을 떠났다고도 할 수 있고, 살아 숨쉬고 있다고 할 수도 있는' 상태가 된다. 신의 개입으로 알케스티스가 살아돌아올까 했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원인제공자인 아드메토스의 생떼를 보며 내 마음 속에는 분노가 서서히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괜히 알케스티스는 어리석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상황은 열 두 과업 중 하나를 수행하기 위해 트라키아로 가던 헤라클레스가 등장하면서 더 어이가 없어진다. 어수선한 가운데 혼자만 흥겨운 그를 보며 아드메토스에게 또 화가 나게 된다. 일부러 헤라클레스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려는 것일까. 왜 말을 안 해서 상황에 맞지 않는 언동을 하게 하느냐 말이다. 아드메토스는 솔직히 부끄러웠던 것은 아닐까. 아내를 대신 죽게 하는 상황이 말이다.


결국은 행복한 결말이라고는 하지만 과연 행복한 결말일까. 한 번 죽음의 공포를 맛 본 알케스티스는 이제 어떻게 살아갈까. 과연 신에게 감사하며 살아갈까 아니면 이런 죽음의 공포를 자신에게 떠넘긴 남편을 증오하게 될까. 지금은 눈물을 흘리며 아내를 사랑하니 신에게 감사하니 하는 아드메토스이지만, 곧 다시 나타날 타나토스에게 누구를 떠넘기려고 하게 될까. 


내가 죽는 것은 너의 탓이다. 나약하고 비겁한 인간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최악의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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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환상기담집 : 석아산(夕?山) 콩트집 - 짧고 아찔한 이야기들
석아산 지음 / 좋은땅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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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에 폰 아우젠베르크라는 귀족이었고, 그 전생의 전생엔 우이첼족의 제사장 라몬이었던 사람이 온갖 환각 속에서 보았던 이야기들. 암시와 갖가지 이야기들이 얽히고 설켜 작게는 인간의 모순을, 크게는 우주의 신비를 살짝 엿본다. 그래서 ‘허세’와 그 허세를 실현할 ‘돈’이 있다는 건 정말 무시무시한 일이다.

번역 세탁기와 경매장 망치는 정말 웃겼고, 우리나라 아파트를 넣으면 원 노트 후크송이 나온다는 기계도 재밌었다. 하얀 아이는 불쌍했고 베르비안교의 신 베르무트는 그럴싸했다. 부두교의 저주는 진짜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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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오싹한 경고장 소원잼잼장르 1
정명섭 외 지음, 박은미 그림 / 소원나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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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이상한 물건은 함부로 사지 말고, 유혹하는 낯선 이를 조심해라! 오래된 물건은 함부로 집에 들이지 말고, 낡은 놀이터에서 말 거는 사람을 조심해라! 어린아이들이 순수하고 어른들을 믿는다고 괴롭히지 말자! 동물도 괴롭히지 말자! 천 년 묵은 지네랑 쥐는 그냥 성불 좀 하고. 신선이 되던가.

할머니가 그랬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른다고 누누이 말했다. (p.84/206) - P84

증오는 거리 같은 건 상관하지 않으니까. (p.66/206)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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