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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통 - 제5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이희주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8월
평점 :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젝스키스'에 대해 '여전히',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팬과 멤버들이 나와 '젝스키스'에 대한 문제를 맞추는 프로그램을 봤다. 거기서 열정적으로 애정을 드러내고, '놀랍게도' 답을 하나도 틀리지 않은 그 '팬'을 보며, 그 '팬'의 표정을 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그 무엇이든간에, 그런 열정을 가지던 때가 떠오르면서.
'저 사람은 참 행복하겠다.'
희망을 잔뜩 안고 시작한 일을 좋든 싫든 끝냈을 때 느꼈던 후련함과 서운함, 길을 잃은 것 같은 느낌, 갖고 싶은 물건을 간신히 손에 넣었을 때의 허무함, 사랑이 끝났을 때의 현실감을 기억한다. 세상이 장미빛으로 가득하고, 어떤 것을 봐도 까르르 웃음이 나다가도, 이제 모든 것이 무채색으로 보이던 그 때.
죽어도 좋을만큼 좋은 것이 있는가. 곱씹어보게 된다.
보통 죽음은 부정의 의미를 가진다. 좋아서 죽는다기보다 힘들어서, 아파서, 괴로워서... 죽는다. 그런데 죽어도 좋을만큼 좋은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짝사랑 하는 상대를 멀리서나마 보고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이 들면 죽어도 좋은걸까. 가 보고 싶던 여행지에 가서 보고 싶던 유적지를 보고나면 죽어도 좋다는 느낌이 들까. 죽어도 좋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 이런 느낌이 들 만큼 무언가를 갈망하고 사랑하는 것은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 나는 그렇게 느껴본 적이 있는가.
그래서 나는 만옥의 이야기 보다는 m과 민규의 이야기가 더 와닿았다. 어느 정도 현실을 안고 있는 사랑. 나를 온전히 던지지 못하는 사랑. 내가 있어야 사랑하든, 미워하든 할 거 아닌가..라고 나를 합리화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때로는 모든 것을 내던지는 만옥이 부럽기도 하다. 저렇게 맹목적으로 단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는지.
만옥의 친구가 묻는다. 너는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것 같다고.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이란 감정은 긍정의 뜻만 가지는 게 아니라 부정의 뜻도 가지고 있다. 사랑을 하면 기쁘고, 사랑을 하면 아프다. 이런 이중적인 면을 만옥은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만옥은 사랑을 하는 게 아니라 집착 내지는 현실회피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세상이 품고 있는, 이전 세상도 품고 있던, 앞으로의 세상에도 있을 것만 같은 부조리와 지금 세상이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아픔 때문에 말이다. 아니면 그런 상태에 '중독'이 된 것일지도.
기쁘지만 아픈 것. 어떤 때는 죽어도 좋을만큼 환희에 차서 떨다가 어떤 때는 사랑의 대상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아파하는 것. 그런 극단적인 감정들이 주는 열락은 사랑이 끝나는 순간 사라진다. 마치 사랑을 하지 않은 것마냥. 그래서 그 사랑을 끝내지 못하고 끊임없이 사랑의 대상을 찾아다니며 끊임없이 자신을 학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이 단순히 아이돌을 향한 팬심을 그렸다면 중간에 덮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m, 만옥, 민규를 단순히 빠순이 내지는 짝사랑 하는 사람으로 치부할 수 없었다.
가끔 집착하는 것처럼 살 책을 장바구니에 담는 나의 모습, 우연히 튼 골프 채널에서 본 우리나라 골프 선수를 따라 프랑스까지 가서 4시간 넘게 필드를 걸어다니는 중년층의 팬들, 얼마 전에 간 콘서트에서 본 한국까지 온 중국, 일본 팬들, 권력을 놓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정치인들, 독재자를 어버이라 칭하는 사람들....
다시 한 번... 사랑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도대체 사랑이란 무엇인가. 나를 다 던질만큼 빠지는 것? 갖고 싶어 미치는 것? 단 한번이라도 보고 만지고 가지면 죽어도 좋을만한 것? 하지만 때론 죽여버리고 싶은 것? 파괴하고 싶은 것?
신에 대한 사랑, 자식에 대한 사랑, 이성에 대한 사랑, 지구에 대한 사랑, 인류에 대한 사랑... 온갖 종류의 사랑이 넘쳐나는 때.. 정작 그 사랑이란 무엇인지, 그 사랑이 무조건적으로 좋기만 한 것인지 다시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