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헤어릴 수 없는 많은 달들과 벽 뒤에 있는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 전쟁도, 삶이 주는 그 어떤 역경도 두 사람의 우정을 가리지는 못했다. 그것은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절망적인 상황에 빛이 되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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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나는 지금 날씨와 전혀 다른 제목을 가진 책을 읽고 있다.

 

그리고 읽으면서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엿본다.

 

 

 

 

 

 

 

온 몸을 감고 눈 부분만 망사로 된 '부르카'를 입는 기분은 어떨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이도 있고, 중간 길이 치마를 입는 이도 있고, 남자 상인에게 발을 내밀며 신발 치수를 재는 이도 있지만, 대부분의 여자들은 닫힌 공간에 있었다.

 

이제 겨우 2부를 읽는데, 1부를 읽는 동안 마리암이 가여워서 어쩔 줄 몰랐다. 태어날 때부터 가여웠던 아이. 엄마를 좋아하고 아빠를 좋아하는 어린 아이였을 뿐인데, 사생아이기 때문에 마리암이 겪어야 하는 삶은 아팠다.

 

부인이 셋 이나 있는데 가정부를 임신시키고, 비겁하게 그저 가정부와 딸을 집에서 제법 먼 곳에서 살게 하고, 미안했는지 선물과 먹을 것들을 보내주지만 결국 모든 것은 다 자신을 위해서였던 나쁜 남자 잘릴.

 

열 다섯 살짜리 애를 마흔이 넘은 남자와 결혼시킬 때도 그랬다. 마리암이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잘릴에게 이러지 말라고 그랬더니 잘릴은 세상 고통 혼자 다 받은 사람처럼 마리암에게 이러지 말라고 한다. 잘릴은 그저 착하고 좋은 아빠로 남고 싶을 뿐이었고, 작은 선물 따위나 던져 주면 마음이 편해지는 그런 나쁜 놈이었다.

 

아빠를 찾아 온 애를 문 밖에 세워두고 절대 들여보내주지 않던 나쁜 놈. 자신은 한없이 좋은 사람인 척 다정한 말로 마리암의 마음을 갖고 논 나쁜 놈.

 

결혼 장면도 충격이었다. 율법학자는 말한다. "이 남자가 당신을 원합니다. 반대의 경우는 아닙니다."라고. 미친, 어쩌면 남은 삶 전체를 함께 할 사람인데 여자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고? 정말 물건 사러 온 것 같아서 기분이 싸했다.

 

게다가 아이를 유산하자(마리암은 열 아홉까지 임신과 유산을 5번이나 한다. 겨우 열 아홉에 말이다.), 마리암의 남편 라시드는 마리암을 괴롭힌다. 여자는 아이를 낳고 집안일을 하고 남편의 시중을 드는 존재 그 이상은 아니었던 거다.

 

2부는 1부만큼 아프지 않아서 약간은 안심하면서 읽는데, 여전히 삶은 버거웠다. 이념이니 신앙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힘들고 아프게 하는 지 안타까웠다.

 

이건 아프간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직 읽어야 할 페이지가 아주 많이 남아있지만 뭐라도 뱉어내지 않으면 너무 갑갑해서 힘들 것 같았다.

 

일단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 다시 책을 집어들어야겠다. 뭐라도 이야기하고 나니 좀 후련하다.

 

 

‘하라미(사생아를 비하하여 일컫는 말)‘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마리암은 다섯 살이었다. - P9

"내 딸아, 이제 이걸 알아야 한다. 잘 기억해둬라. 북쪽을 가리키는 나침반 바늘처럼, 남자는 언제나 여자를 향해 손가락질을 한단다. 언제나 말이다. 그걸 명심해라, 마리암." - P15

"나는 네가 아직 어리다는 건 안다. 하지만 나는 제가 지금 이걸 이해하고 알았으면 싶다. 결혼은 늦출 수 있지만 교육은 그럴 수 없는 거란다. 너는 아주 영리한 아이야. 정말로 그렇지. 라일라, 너는 원한다면 뭐든지 될 수 있어. 나는 알아. 그리고 또 한 가지, 전쟁이 끝나면 아프가니스탄은 남자들만큼이나 너를 필요로 할 거라는 사실도 알지. 어쩌면 더 필요로 할지도 모르지. 여자들이 교육을 받지 못하면 사회는 성공할 수가 없는 거다. 그럴 수가 없지."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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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9-06 0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5 페이지와 155 페이지의 인용문이 좋네요, 꼬마요정님.

꼬마요정 2019-09-06 14:43   좋아요 0 | URL
아프간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되는 내용이죠? ㅎㅎ 초반부터 화가 났는데 갈수록 눈물이 났어요ㅠㅠ 남녀를 떠나서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대우해주고 존중해주고 더불어 살 수는 없을까요? 이런 우정과 희생이 참담한 현실 속에서 피어났다는 게 너무 가슴 아팠어요.

이제 허랜드 읽으려구요. 다락방님 글보고 샀어요 ㅎㅎㅎ
 

어릴 때 본 만화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스틱스 강'에 죽은 이가 빠지면 존재 자체가 소멸한다고.

 

살아있던 아킬레우스는 스틱스 강에 몸을 담가 아킬레스건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불멸이 되었는데, 죽은 이는 존재 자체가 소멸된다니... 그 강렬한 느낌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찾아 온 의문. 존재 자체가 소멸된다는 건 어떤걸까?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 경험한 일, 내가 맺어온 관계들... 나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나라는 인식 자체도 사라진다는 걸까? 아무리 의심하고 의심해도 내가 생각한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는,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고 했던 데카르트의 말조차도 허공 중에 재가 되어버리고 말 '그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존재 자체가 없다... 이건 또 '공(空)'과는 다른데 '무(無)'랑은 같은 걸까? 있던 존재가 없어진다는 건, 존재했다는 기억조차 사라진다는 걸까? 사실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고,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에서 잊혀지지만 영혼은 남아서 천국이든, 지옥이든, 도리천이든 어디든 있다고 생각했다. 귀신이 되어 이승을 떠 돌수도 있고, 천국에 갈 수도 있고, 극락에 갈 수도 있고... 이렇게 말이다. 주로 우리가 무서워하는 귀신들은 바로 이렇게 죽어 혼만 남은 존재니까, 잘은 모르지만 죽는게 끝은 아니라는 걸테다.

 

하지만... 소멸된다는 건, 무(無)가 된다는 건 어떤 걸까? 그 존재가 존재했다는 자체가 사라지는 건.. 그 존재 자체가 가지고 있는 기억, 의식 이런 것들이 모두 사라진다는 걸까? 그게 가능한 걸까? 분자, 원자 등 우리가 물질의 크기를 나타내는 용어를 총동원해서 가장 작은 입자를 말한다 한들, 그조차 사라진다는 건데, 그럴 수 있는걸까?

 

나는 내 존재가 없어지길 바라는걸까? '아무것도 아니다'와 '없음(無)'은 다른걸까?

 

그렇게 생각을 하던 와중에 웃었다. 이런 게 집착인 걸까. 아 모르겠다.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또 웃었다.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했다는데, 나는 그냥 내가 정말 모르는구나..를 알 뿐이다. 다행이네, 모른다는 걸 알아서.

 

그리고 이렇게 웃고 있는 나도, 모르는 나도, 알고 싶은 나도 모두 나이지만 또한 지나가는 나라는 걸. 그래서 이 느낌을 잊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적어본다는 걸. 하지만 글로 적은 이 느낌은 또한 내가 방금 느꼈던 그 느낌과는 다르다는 걸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되어 씁쓸해졌다.

 

나는 여전히 '나'라는 인간에 얽매여 있다. 내가 세운 기준에 미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그런 인간이 되려고 한다. 그런데 왜? 그런 인간이 되면 뭐가 좋은걸까? 내가 기분이 좋아지나? 떡이라도 생기나? 아니 아니 그런 걸 다 떠나서 그런 인간이 될 수는 있는건가?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걸까?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이라면 이 모든 것은 한낱 먼지인걸까?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 생각, 저 생각 떠다니다가 익숙하게 울리는 벨소리에 놀라 펄쩍 뛰었다. 아, 정말 놀랐다...

 

통화를 하고, 다시 생각하고 싶었는데 딱 저기까지만 생각나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갑자기 배가 고프고, 뭔가 먹고 싶고, 목이 마르고... 몸이 온 몸을 내던지며 나에게 원하는 바를 외쳤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위(胃)'를 다스려야 하나.. 였다. 무가 되든, 공이 되든 이 육신이 나를 부르는데 결국 난 존재가 없어진다거나, 공이 된다거나 하는 문제에 앞서 배고픔부터 달래기로 했다. 그게 사는 건가 보다. 이런 생리적인 현상들을 뛰어넘기엔 난 너무나 부족하니까.

 

시작은 참 커다랬는데... 마무리는 좁쌀만하네. 그래도 웃으며 끝내고 싶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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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저주토끼
정보라 지음 / 아작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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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세상과 관계를 맺고 산다. 운 좋게 좋은 부모 만나 건강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도 있지만, 태어나서부터 생존을 위해 격렬하게 싸워야 할 수도 있다. 이렇든 저렇든 결국 모든 것이 아프고 또 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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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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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생각했다. ‘무’와 ‘공’은 어떻게 다를까. 어떻게 하면 ‘고’가 사라질까. 잔잔한 만족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여전히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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