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장원에 머리 하러 갈 때 들고 갔다. 읽히기야 술술 읽히는데 내가 삐딱해서인지 아니면 세상이 바뀐 건지 조금 뜨악하게 읽은 부분들이 있었다. 물론 이 분들 말씀이 이 분들이 살던 때의 문자라는 건 안다.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하면 되겠지만, 속세에 때가 잔뜩 묻은 채 씩씩거리며 사는 내가 감정이 이입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부처님의 말씀처럼 살기 쉽다면 모두가 부처가 됐겠지. 하지만 인간의 삶이란 생각보다 거칠고 어둡고 엉망진창인데 유혹적이다. 곳곳에 유혹이 도사리고 있다. 아아... 난 길을 지나가다가도 어디선가 어묵 국물 냄새가 나면 자동으로 돌아본다. 냄새의 유혹은... 거부하기 힘들다. 사실 깨닫기가 힘들기에 중생이 모두 깨달을 때까지 열반에 들지 않겠다던 지장보살님은 정말 대단하다로 끝내려고 시작한 이야기인데 결국 먹는 이야기가 튀어 나왔다. ㅎㅎㅎ

 

지난 주에 드디어 주짓수 파란띠를 달았다.

 

주짓수 도장에 발을 디딘 지 2년만이다. 여자에 작은 체구에 적지 않은 나이에 시작했는데, 의외로 재미가 있어서 꾸준히 다녔더니 어느새 2년이 지났고... 하얀 띠가 파란 띠로 바뀌었다. 관장님이 파란띠를 매 주는 데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뿌듯하지만 부끄럽기도 하고, 내가 받을 자격이 있나 그런 생각이 들고...

 

주짓수를 하고 부턴 부쩍 자신감이 늘었더랬다. 이제는 길을 가도 일단 도망은 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 상상 속에서는 나쁜 놈에게 암바를 걸고 초크로 기절시키고 이랬지만, 현실에서는 아마 도망만 쳐도 다행이겠지.

 

주짓수 도장을 다니면서 내가 얼마나 작은 지 알았다. 나는 키도 작지만 몸무게도 적게 나가서 늘 나보다 10키로에서 30키로 많은 사람들과 스파링을 하거나 연습을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보다 어리다. 어린 여자애들이 막 운동하는데 너무 귀엽고 좋아서 승부욕이 나질 않았다.ㅠㅠ 그러니 스파링을 할 때 결사항전의 마음으로 해야 하는데, 내가 얘한테 이겨서 뭐하나 이런 맘이니...

 

그래도 시간의 힘은 무서웠다. 이러다가 보라띠까지 가는 건 아니겠지... 그건 좀 무섭다. 파란띠까지야 그냥 단다고 해도 보라띠는...ㅠㅠ 하다보면 다는 건 아닐까...허허허

 

알라딘에 주짓수를 검색했더니

 

달랑 9건이 뜬다...

 

 

 

 

유도는 2천건이 넘고 태권도는 500건이 넘는데 주짓수는 달랑 9건...

 

주짓수 좋은데, 정말 좋은데...

 

오늘도 저녁에 도장 가서 열심히 해야지. 나는 나를 사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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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5-12 15: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너무 멋져요 꼬마요정님. 대박 멋지네요. 조용히 주짓수 하고 계셨군요! 책도 열심히 읽으시고 운동도 열심히 하시다니.. 세상 멋진 분 ♡
따세요 따세요 보라띠도 확 따버리세욧!! >.<

꼬마요정 2020-05-12 16:10   좋아요 0 | URL
하고 싶어서 했는데 파란띠가 되었어요!!! 좀 많이 기뻐요^^ 근데 체력이 심하게 달려서 책을 좀 못 읽었죠 ㅎㅎㅎ 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신체 나이는 속이기가 좀 힘드네요 ㅎㅎㅎ 그래도 재밌어요

제가 보라띠까지 갈 수 있을까요? 넘 어려운데요, 그 때까지 살아있겠죠? ㅎㅎㅎ

카스피 2020-05-12 15: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대단하십니다

꼬마요정 2020-05-12 16:1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대단하지는 않구요, 그냥 재미가 있어서요^^ 역시 좋고 재미난 일을 할 땐 장사가 없는 것 같아요 ㅎㅎ
 
눈보라 - 눈보라 휘몰아치는 밤, 뒤바뀐 사랑의 운명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심지은 옮김 / 녹색광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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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 나온 <벨킨이야기 스페이드 여왕>에 수록된 이야기들과 겹친다. 하지만 번역가가 다르고, 책이 너무 예뻐서 살 수 밖에... 둘 다 잘 읽혀서 번역은 잘 모르겠다. 이야기는 여전히 재미있고, 읽을 때마다 새롭다.

삶은 아무리 힘들어도 한 줄기 빛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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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0-05-10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출판사에서 나온 책 너무 예뻐서 다 샀어요. 근데 표지 글자가 벗겨지니 조심하셔요. 귀하게 다뤄야 하는 책이더라구요 ㅠ

꼬마요정 2020-05-10 21:36   좋아요 0 | URL
아 정말요? 일단 책꽂이에 잘 꽂아두긴 했어요. 집에 냥이들이 다니는데 털도 잘 붙더라구요. 이쁜데 관리하기가... ㅠㅠ

북깨비 2020-05-11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표지가 너무 산뜻해요. 내용이고 나발이고 일단 장바구니에 넣고 리뷰를 찾아보고 있습니다.

꼬마요정 2020-05-11 09:38   좋아요 1 | URL
내용은 당연히 좋아요 ㅎㅎ 단편이지만 오래도록 곱씹게 되더라구요. 읽을 때마다 느낌도 달라서요. 삶이라는 게 힘들다가도 좋기도 하다가 그렇잖아요. 사셔도 후회 하지 않으실거에요^^
 
누구나 철학자가 되는 밤 - 인생은 왜 동화처럼 될 수 없을까? 문득 든 기묘하고 우아한 어떤 생각들
김한승 지음, 김지현 그림 / 추수밭(청림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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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 속에 짙게 배어있는 흔적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과연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까... 우리는 누구나 말로 하기 힘든 이야기들을 가지고,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들을 가지고 산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나 생각이 정리된 걸 보거나 듣게 되면 놀란다. 어떻게 저렇게 정리를 잘 하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지? 동경은 그럴 때 돋아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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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20-04-25 0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종종 제가 평소 생각하던 것들이 잘 정리된 에세이를 접하면 그 작가님 책은 다 찾아서 읽게 되요. 그 분의 글쓰기를 동경하게 되는 것 같아요.

꼬마요정 2020-04-25 18:54   좋아요 1 | URL
북깨비님 안녕하세요^^
맞아요 저도 그렇더라구요. 세상에는 글 잘 쓰는 분들, 이야기를 잘 풀어내는 분들 너무 많아요. 그래서 읽을 거리들이 넘쳐나네요. 언제 다 읽을 수 있을까요 ㅎㅎ
 

 

 

 

 

 

 

 

꽤 오랜 시간 책을 읽고도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그간 읽은 책이 많지는 않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한 번에 다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한 번에 정리는 안 될 것 같다.

 

앞에 읽은 책 내용도 다 까먹어버리니까.

 

 

나와 남편은 둘 다 무협을, 아니 정확히는 '김용'을 좋아한다. 특히 사조삼부곡은 둘 다 좋아하는데 나는 <의천도룡기>를 제일 좋아하고 남편은 <사조영웅전>을 좋아한다. 남편은 내가 좋아하는 <녹정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최근에 다시 읽더니 나이가 들어서인지 위소보 좋다면서 신기해 하는 중이고...

 

책으로만 읽으면 무술이라는 게 상상이 잘 안 가서 드라마나 영화로 보는 것도 좋아하는데 여기서도 나랑 남편은 달랐다.

 

나는 주구장창 1986년판 <의천도룡기>만 팠고, 남편은 주구장창 1994년판 <사조영웅전>을 팠다.

 

 

 

그런데 이번에 2017년 <사조영웅전>과 2019년 <의천도룡기>가 우리 부부의 마음에 꼭 들고 만 거다. 같은 감독이 찍었는데, 조연들은 좀 겹치기도 해서 더 반갑기도 하고 영상미나 연출이나 출연 배우들 연기나 너무 마음에 드는거다. 물론 <의천도룡기>의 경우 뒤로 갈수록 '조민'의 매력이 떨어지는 아주 커다란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둘이 발작적으로 사조삼부곡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드라마 보고, 책 보고 둘이서 대화 하고...

 

그동안 서로 김용 좋아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는 <의천도룡기> 얘기만 주구장창 하고, 남편은 <사조영웅전> 얘기만 주구장창 해서 그런갑다 했는데, 이제 신나게 <사조영웅전>과 <의천도룡기> 이야기를 나누는 거다.

 

물론 <신조협려>도 좋은데, 그건 드라마가 음... 그러니까.. 아... 그렇다.

 

둘이 해맑게 웃으며 누구 무공이 제일 뛰어날까, 개방의 사조는 누굴까, 의천도룡기로 세대가 내려오면서 무공 수준이 많이 떨어졌다, 황룡유회로 길거리 낙엽 다 쓸면 편하겠다 등등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드라마에서

 

나는 <사조영웅전>에서는 황용과 황약사가 제일 좋았고, <신조협려>에서는 곽정과 양과가, <의천도룡기>에서는 장무기와 조민, 양소, 장취산이 제일 좋았다.

 

남편은 <사조영웅전>에서는 황용과 홍칠공을 좋아했고, <신조협려>에서는 황용과 양과를, <의천도룡기>에서는 소소, 조민, 주지약을 좋아했다. 김용도 소소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소소의 어디가 좋은걸까. 마음을 얻지 못할지라도 따라다니면서 시녀처럼 챙겨주는 게 좋은걸까? 그런 여자가 어디 있나... 엄마도 그렇게 못할텐데.

 

어쨌든 그러다보니 어디 글을 쓸 틈이 없었다. 둘이서 예전에 버린 초판본 영웅문 아깝다, 아니 중고 가격이 너무하다, 그래도 사야 하나... 이러고 있다.

 

내공 쌓으면 코로나19 정도는 가볍게 물리칠 수 있을까, 역시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해, 아니야 구음진경은 차갑잖아, 고묘파 내공도 그렇고...

 

이렇게 대화가 이어지는 반려자를 만나서 행복하다.

 

아주 다른데, 찰떡 같이 맞는 구석이 있는 건 정말 오묘한 일이다.

 

사조영웅전이나 의천도룡기에 대해서는 아마 좀 더 있어야 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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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랑 2020-02-25 18: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찌찌뿡
밤 새워가며 읽었던 1인 여기 있어요.



꼬마요정 2020-02-26 11:49   좋아요 1 | URL
어릴 때 학교에서 수학책 밑에 영웅문 숨겨 놓고 읽다가 걸린 적 있어요 ㅎㅎㅎ 정말 재밌었어요. 영웅문 이후로 어떤 무협소설도 눈에 안 들어오더라구요^^

2020-02-25 2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26 1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25 2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26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27 0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4-07 1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4-07 1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클링스 2020-02-29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부작 다 읽고 소오강호 까지 읽고 나서 책의 흡인력이 대단하다는걸 느꼈습니다. 이제 천룡팔부가 최근에 나와서 그거 사서 읽어 보려고요... 소오강호에서 약간 천룡팔부 얘기가 나와 궁금하더군요^^

꼬마요정 2020-04-07 17:49   좋아요 0 | URL
너무 늦게 댓글을 달게 되었네요. 일상이 바빠 이제서야 들어와서 댓글 답니다.ㅠㅠ
천룡팔부부터 소오강호까지 김용의 강호는 매력적인 곳이죠 ㅎㅎㅎ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의천도룡기가 최고입니다^^ 하지만 영호충이란 인물이 멋있긴 해요. 죽음을 초탈했다는 점에서는 장무기랑 비슷하긴 하지만 또 다른 매력이 있네요.

후애(厚愛) 2020-04-10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겁고 행복한 주말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항상 건강하시고, 감기 조심하시구요.^^

꼬마요정 2020-05-13 13:33   좋아요 0 | URL
후애님~ 댓글을 너무 늦게 봤어요ㅠㅠ
언제나 건강하시구요. 행복한 5월 보내세요^^
 
신조협려 6 - 동방화촉
김용 지음, 이덕옥 옮김 / 김영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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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세상을 덮지만 곧 햇볕이 눈을 녹이고, 다시 눈이 오고 세상은 하얗게 반짝일 게다. 하지만 그 때의 눈과 지금의 눈은 다르다... 함께 보는 눈과 혼자 보는 눈...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이니 찰나 찰나를 온전히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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