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있는 자의 눈 먼 질투는 많은 이들을 고통으로 내몬다. 그리하여 헤르미오네는 제우스의 책임 면피를 위한 희생양이 된 헬레나의 딸 이름을 따왔고, 페르디타는 버림받은 아기 오이디푸스나 디오니소스의 변주이며, 움직이는 석상은 피그말리온의 아내 갈라테이아이다. 레온테스는 질투로 망한 오셀로보다 좋은 사람들이 주위에 많았기에 운이 좋았다.
<덕터 후>의 닥터와 리버 송이 생각난다. 나의 처음이 당신에겐 마지막이고, 나의 마지막엔 당신이 없지. 모든 것이 정해진 것 같아도 ‘의지’는 또한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 ‘일어난 일은 일어나고’, ‘할아버지의 역설’은 없다. 캣을 지키려는 주도자(이름이 안 나온다)를 보면 미래에 있는 반대 세력의 명분이 그럴싸함에도 현재, 내가 지킬 수 있는 것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동료들도 소중할텐데 싶기도 하고. 세상을 지키는 것 같지만 묘하게도 반군과 정규군에게 번갈아 무기를 팔아대며 분란을 조장하는 미국의 모습이 보이기도.
망원동에 있다는 까페 홈즈. 실제로 있는 곳이라기에 더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까페 홈즈를 배경으로 네 가지 이야기가 펼쳐진다. 신원섭 작가의 <찻잔 속에 부는 바람>은 한 명의 작가와 작가가 되고 싶었던 한 노인의 이야기이다. 둘 다 이해가 가서 마음이 아팠다. 완벽한 글, 완벽한 이야기…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열망이 아닐까. 하지만 세상에 완벽이란 없고 모두의 마음에 드는 이야기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묵묵히 써 내려갈 뿐. 그러다보면 언젠가 좋은 글 한 편은 나오겠지. 정해연 작가의 <너여야만 해>는 말 그대로 너여야만 하는 이야기이다. 가끔 정해연 작가의 책을 읽다 보면 성악설이 맞는건가 싶다. 평범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악의는 평소에는 꽁꽁 숨겨져 있다가 어느 순간 터져 나온다. 그것도 자신이 제일 잘 아는 방법으로. 조영주 작가의 <죽은 이의 자화상>은 추리를 빙자한 사랑 이야기일까? 영화 <러브레터>를 보다보면 보는 우리는 알지만 이츠키는 모른다, 이츠키의 마음을. 아버지를 그렸다는 커트의 그 그림 속 인물의 눈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정명섭 작가의 <얼굴 없는 살인자>는 그림자들의 이야기이다. 누군가의 기대에 못 미친다고 가족과 절연 당한다든지, 아내가 죽었는데 범인으로 몰린다든지, 어떤 사연인지 몰라도 밑바닥에서 망원동을 지킨다든지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래서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는 성규는 아내를 죽인 살인자를 잡을 수 있을까. 아, 작가들이 즐겨 찾는다는 망원동 까페 홈즈에 가면? 정말 즐거울 것 같다. 이 이야기들의 흔적도 찾아볼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