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개주막 기담회 3 케이팩션
오윤희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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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0년에 연암이 함께 갔던 사행은 청나라의 황제인 건륭제의 칠순을 축하하기 위한 사절이었다. 정사로 연암의 삼종형 박명원이 임명되었기에 연암은 이 사행길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청나라로 여행을 다녀오며 듣게 될 기담들을 기억하기 위해 선노미를 데려가게 되었다.


1780년 5월 25일 출발하여 1780년 10월 27일에 도착하기까지 장장 6개월 정도의 기간 동안, 선노미는 다양한 기담들을 듣고 같이 슬퍼하고 안타까워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기담이란 행복하고 즐거운 이야기는 아닌데다, 의주에서 시작해서 책문을 지나고 성경을 지나 열하까지 그들의 여정은 덥고 질척이고 힘든 길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연암은 청나라의 발전상을 보기도 했고, 100년도 더 전에 있었던 병자호란으로 끌려 온 조선인들을 보며 가슴 아파하기도 했다. 더불어 볼모로 끌려왔던 소현세자와 세자빈 강씨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가장 가슴 아픈 이야기 중 하나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더 글로리>에서 보았던 재준이의 적녹색약이 여기도 적용될 줄이야... 


뱃사공의 이야기부터 열하로 가기 위해 강을 건널 때 휩쓸려서 가게 된 마을 '낙원'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모든 이야기에서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것을, 사람의 '말'이, 사람의 '편견'이 제일 무섭다는 것을 알게 된다.


뱃사공이 들려 준 죽은 이들을 안내하는 '안내자'는 살아 있을 적 삶이 너무 고단하여 죽은 줄도 모른 채 이승을 떠도는 불쌍한 영혼이었다. 신분제와 남존여비가 만든 부조리와 불합리는 능력 있는 사람들을 체념과 상실에 허우적거리도록 만들었고, 이는 사회의 불안으로 축적되었다. 그리하여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은 자신이 죽은 지도 모르고 이승에서 자신의 이름조차 잊은 채 그렇게 떠돌고 있는 것이다. 


돌아 온 탕아는 조선시대 때도 비켜갈 수 없었던 부동산 문제가 숨어있었다. 여가탈입(양반이나 관리가 백성들의 집을 빼앗는 일)으로 시작된 이야기에서 한 가족의 가슴 아픈 사연은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게 했다. 간 적도 없는 탕아가 돌아오면 그 집은 어떻게 될 것인가.


마마신이 찾은 마을은 신념을 가진 자가 얼마나 무서운지, 그 신념이 삐뚤어진 데다 이기적이기까지 하면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 지 알 수 있는 이야기였다. 인간은 자신에게 닥친 불행은 두렵지만, 타인에게 닥친 불행은 마음대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겁이 나서 순응하는 이들 사이에 모순과 불합리를 깨닫고 저항하는 이는 선구자가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배척당하고 만다. 이 이야기 역시 그러했다. 이기적이었던 춘삼과 용감했던 용주는 그렇게 같지만 다른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붉은 비단의 저주는 세자빈 강씨와 관련된 기이한 이야기였다. 인조의 질투로 억울하게 죽은 세자빈 강씨는 한참 후에나 복권되는데, 그녀가 죽게 되는 데 이유가 되었던 그 붉은 비단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정말로 그 비단에 얽힌 저주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사람들의 삿된 말과 임금의 죄의식에 합리화를 대신 해주려고 속살거린 탐욕스러운 인간들 때문이었을까. 


화피는 익히 알려진 이야기이다. <요재지이>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사람 가죽에 그림을 그려 뒤집어 쓰면 인간의 모습을 하게 되는 요괴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 역시 사람의 눈이, 선입견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려 주었다. 또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소중한 것을 얻지 못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처음에 아름다운 외모에 홀리지 않았더라면 잃지 않았을 것을. 하지만 잃은 대가로 또한 사물의 본질을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이 또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마지막 이야기는 낙원이다. 앞도 보이지 않고 과거도 기억나지 않은 채 마을에서 기계처럼 일하는 이들이 사는 마을의 이야기였다. 낙원이라는 말이 너무나 섬뜩하게 보일만큼 끔찍한 곳이었고, 사람의 탐욕이 또한 얼마나 참혹한 지 알 수 있었다. 어딜가나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건 만고의 진리가 틀림없다. 실제로 열하로 가는 길에 강물에 휩쓸렸던 연암의 사연이 들어간 이야기라 더 몰입해서 읽었더랬다. 선노미는 과연 자신의 어둠에서 돌아나올 수 있을까?


그렇게 기담이라면서 귀신이나 요괴의 입을 빌어 하는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살면서 우리가 알든 모르든 짓게 되는 죄들을 나열한다. 생각없이 뱉은 말 한 마디가 누군가의 삶을 망쳐버릴 수 있다든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신의를 저버린다든지 하는 일들 말이다. 그리 거창하지도 의도하지도 않은 일들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상상하기 힘들다. 그러니 언제나 말을 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이고, 사람의 외모로만 판단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가장 어려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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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양장)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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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알고 싶지 않은 관계였다.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편지는 신기하면서도 아프기도 했고 위로가 되기도 했다. 로또 번호는 남기고 진실을 알았어야지라고 생각한 내가 너무 속물 같아서 부끄럽기도 했다. 어떤 세상이든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었다.

미래를 안다는 것은 어쩌면 그 미래에 자신을 가두는 것일지도 모른다. 은유는 편지를 주고받지 않았어도 같은 선택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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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딜 수 없는 사랑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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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어떤 극한 상황에 맞닥뜨리면 심장박동 수가 올라가고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면서 그 상황에 함께 있던 사람과 사랑에 빠지기 쉬워진다고 한다. 영화 <스피드>가 그러했고, 수많은 007 시리즈들이 그러했다. 물론 각각의 상황이 심박수나 호르몬 때문만은 아닐테지만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평범한 장소에서 만난 남녀보다 흔들다리 위에서 만난 남녀가 서로에게 느끼는 호감이 더 크다는 실험 결과가 말해주듯이 말이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아주 특이한 사건으로 시작한다. 심장박동 수와 아드레날린이 필요했던 것일까. 날씨도 좋고 연인과 행복한 소풍을 나왔던 그 순간, 하늘을 나는 기구가 안에 소년을 태우고 긴 끈들을 드리운 채 사람의 통제를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위험을 느낀 사람들이 각 방향에서 뛰어 와 그 끈들을 잡았고, 바람이 불었고, 누군가가 그 끈 중 하나를 놓았고, 한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끈을 놓았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을 매단 채 기구는 두둥실 하늘을 날았고, 들판에 그 한 사람을 떨구었다.


도움을 주기 위해 뛰어왔던 사람들에게, 그들과 같이 있던 사람들에게, 그 기구에 있던 소년과 할아버지에게 이 사건은 끔찍했고 견딜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이 이야기 어디에서 '사랑'을 느낄 수 있는걸까. 뜬금없이 '사랑'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서나 꽃 피울 수 있고, 어떤 역경 속에서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고 싶은걸까. 어쩌면 죄책감이 변질되어 '사랑'이라 불리게 된 것일까?


'드 클레랑보 증후군'이란 것이 있다. 자신보다 높은 경제적 위치 혹은 정치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는 것이 주 증상이며, 그 대상이랑 접점도 없고 아는 사이가 아님에도 그 대상이 자신에게 몰래 신호를 보낸다고 믿는다.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나를 알지 못한다)'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끊임없이 주위를 맴돌며 상황을 왜곡하고 망상에 빠지는데, 그러면서 스스로와 그 대상을 비극적 상황으로 내몰기도 한다.


사실 이 스토커 같은 드 클레랑보 증후군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심장박동 수나 아드레날린은 필요한 요소가 아니었던 것이다. 어떤 면에서 조의 지위가 높아보였던 것일까. 그 곳에 있던 수많은 사람 중에 하필 '조'여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하긴 이유가 있을까. 우리의 삶은 알 수 없는 이유들투성이가 아닌가.


패리는 조를 따라다니고, 조는 목숨의 위협까지 느낀다. 하지만 이 패리의 망상은 아무도 믿어주지 않고, 책을 읽는 나조차 조의 망상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석연찮은 부분들이 드러나고,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 미세한 금이 가고, 인간의 심리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것인지 보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가 만나는 사람들마다 각자의 사연을 들었다. 그들 중 로건의 아내인 진이 가장 안타까웠다. 빌어먹을 사랑 같으니라고. 사실 견딜 수 없는 사랑이니 빌어먹을 사랑이니 죽일 놈의 사랑이니 하는 말 따윈 다 소용없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란 이름의 폭력이다.


책을 덮은 후에도 여전히 난 그 이유에 죄책감과 합리화가 어느 정도 자리하고 있을 것이란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패리는 조의 눈에서 본 것이다. 자신이 먼저 손을 놓았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과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놓았을 것이고 떨어진 이가 내가 됐을 것이라는 합리화. 그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인간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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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6-07 15: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책 첫부분 읽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이야기 일거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사랑(?) 이야기가 진행되고 또 스릴러가 되고 추리소설이 되서 읽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너무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어서 약간 아쉬운 면도 있었습니다 ㅋ

저도 리뷰써야하는데 ㅜㅜ

꼬마요정 2023-06-08 17:05   좋아요 1 | URL
저도 죄책감에 시달릴 거라 생각했는데 이야기가 점점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가더라구요. 그래서 뭐지? 하면서 쭉 읽었네요. 읽고 나니 뭔가 찜찜하고… ㅎㅎㅎ 여튼 무서운 사랑입니다. 새파랑 님 리뷰 기대하겠습니다. 얼마나 잘 쓰실까 완전 기대용^^
 
우주섬 사비의 기묘한 탄도학 Untold Originals (언톨드 오리지널스)
배명훈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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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아닌 우주의 다른 곳의 물리학은 따라가기 어렵다. 자전 속도도 흐르는 시간도. 총을 쏘면 탄도가 내 상상을 넘어선다. 마치 영화 <원티드> 같다고나 할까. 총알이 여러 번 휘어서 돌아들어간다. 우주섬 사비는 백제를 떠올리지만 백제와는 상관없고, 젊은이들이 어른이 되는 과정을 <마탄의 사수>의 악마를 빌어 나타내기도. 젊을 땐 이리저리 휩쓸리며 꿈을 찾는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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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란 무엇일까?



얼마 전에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를 보면서 끝이 이렇게 끝나서 좋긴 한데, 원래 복수극이란 끝끝내 행복해지기 전에 끝나는 것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아는 복수극을 하나 하나 떠올려 봤는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복수극이다. 에드몽 당테스가 나폴레옹의 편지 때문에 여럿의 음모로 억울하게 감옥 생활을 하다가 보물이 숨겨진 곳을 아는 신부님을 만나 탈옥을 하고, 몬테크리스토 백작으로 신분 세탁을 하면서 복수를 해 나가는 과정이 정말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하지만 복수라는 게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니니 말이다. 에드몽 당테스는 결국 에두아르의 죽음 앞에서 복수의 이면을 깨닫고 만다. 자신이 지옥에서 고통 받아 복수를 다짐했는데, 그 고통을 아무 죄 없는 이에게 선사했으니 말이다. 복수는 복수를 부르고, 죄 없는 피를 보기 마련이다. 그래도 당테스는 나름 행복을 찾아 떠났다. 메르세데스보다 어리고 더 순종적인 여자인 하이데랑... 아, 짜증나... 사실 마지막이 로맨스로 끝나기엔 좀 멜로가 부족하긴 하다. 당테스가 행복하면 싶기도 하지만 하이데 입장에서는 안 되기도 했다. 당테스는 단명할텐데... 


작가가, 그 시대의 서양이 가진 동양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복수하면 사실 <햄릿>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 같다. 유약하다면 유약하게 보이고, 교활하다면 교활해 보이는 우유부단한 햄릿 말이다. 아버지의 유령이 나타나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복수를 해 달라고 하는데, 숙부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가로챈 게 사실일까? 숙부가 기도할 때 죽이지 않은 건 그가 천국으로 갈까봐인데, 햄릿이 머뭇거린 까닭에 애꿎은 오필리어가 죽었다. 레어티스도, 자기 자신도. 유령의 정체는 무엇일까? 역시 복수는 죄 없는 피를 부른다.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와 크리스타 볼프의 <메데이아>는 같은 인물의 이야기이지만 완전 다른 이야기이다. 복수에 걸맞는 인물은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인데, 이아손을 그리 나쁜 놈으로 그리지 않아서 짜증이 난다고나 할까. 앞서 단테스나 햄릿에게는 나름 복수하려는 이유가 있는데, 메데이아는 단순히 질투에 미친 여자가 된 것 같아서 크리스타 볼프의 <메데이아>를 함께 놓았다. 복수는 정말 자신의 살을 태우고 영혼을 갈아버리는 것 같다. 너무 참혹하다. 자식을 복수의 제물로 삼는 건 뒤에 나오는 탄탈로스부터 시작하는 일파들의 이야기도 그렇지만, 프로크네와 필로멜라 이야기도 그러하다. 어떻게 보면 모성애는 근대로 오면서 만들어진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 두 이야기는 이아손과 테레우스의 파렴치한 짓이 불러온 참상이다. 역시 죄 없는 이들의 피가 철철 흘러내린다...










생각해보면 신화가 복수극의 원형이 아닐까 싶다. 가장 대표적인 이야기가 탄탈로스 가문 이야기가 아닐까. 신들의 분노를 산 탄탈로스부터 이피게네이아, 엘렉트라, 오레스테스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이야기는 막장 중에서도 막장으로 인정받을 것 같다. 배신은 기본이고 살인을 하고 자식을 먹고 딸을 강간하고... 세익스피어의 희곡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가 여기서 나왔나 싶을 정도다. 고트족 여왕 타모라가 자신의 부족과 가족을 도륙한 로마 장군 타이터스에게 복수하는 내용인데, 정말 잔인하고 참혹하다. 인간은 때론 허상에 집착하여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또 끔찍하게 대가를 치른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이란 말이 있다. 춘추 시절, 오나라 왕 합려는 월나라를 쳤다가 월나라 왕 구천에게 목숨을 잃게 되는데, 이 때 합려는 태자인 부차에게 복수를 유언으로 남겼다. 부차는 결국 유언을 지켰으나, 오자서의 말을 듣지 않은 탓에 구천을 살려주었다. 구천은 합려의 무덤을 지키고, 부차의 대변을 핥고, 장작 위에서 자고, 쓸개를 핥으며 복수를 다짐했다. 구천은 결국 부차에게 복수를 하지만, 그 와중에 또 수많은 이들이 희생됐다. 개인의 복수가 아닌 나라 간 전쟁으로 치달은 이 복수는 어쩌면 위의 이야기들보다 더 참혹할 것이다.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복수극 드라마는 <개와 늑대의 시간> 과 <상어>다. 사람의 인연이 얼마나 무섭고 잔인하게 얽혀 있는지, 탐욕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복수를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얼마나 철저하게 버려야 하는지, 사랑이 과연 어디까지 감싸안을 수 있는지 볼 수 있다. 그리고 권력 기관이나 거대 자본이 돕지 않으면 결코 개인은 복수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와중에 피해자는 당연히 힘들지만, 가해자의 선한 자녀들 역시 괴롭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가해자는 많은 이들에게 끔찍한 피해를 입혔는데 정작 자신의 자식 혹은 손녀에게는 선한 사람으로 남고 싶었나 보다. 타인의 피와 고통 위에 세워진 부(富)과 권력을 누리며 자손은 올바르게 자라길 바라는 건 지독한 이기심이고 탐욕이지 않은가.


피해자들은 결국 모든 것을 내던져야 했다. 자신의 기억도, 가족도, 사랑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얼굴마저도. 그러면서 겪는 내면의 고통 역시 가혹했다. 게다가 이들은 가해자 곁에서 정체를 숨기고 있으며 가해자를 알아가고, 어느 순간 인간적으로 반하기도 하고(개늑시), 손녀 때문에 복수를 망설이기도 한다(상어). 


가해자는 죄의식이 없고, 피해자는 피해자이기 때문에 도덕에서 우위를 차지하며 자신의 복수를 정당화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자신 안에 있는 불의나 부도덕을 감당하기 힘들다. 그것이 복수가 결코 성공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복수는 필연적으로 무고한 이에게 고통을 가하고, 그로 인해 복수의 정당성은 힘을 잃고 또 다른 복수를 불러오게 된다.


사적 복수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김은숙 작가의 말처럼, 돈이 많으면 피해자가 되어도 어떻게든 해 볼 수 있겠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도 권력도 없기 마련이고, 가해자는 돈도 권력도 있기 마련이니까. 그리하여 공적인 제도 안에서 가해자가 합당한 벌을 받지 않을 때,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일들이 누적되어 우리 사회 안에 화(火)가 많아지고 분노조절이 안 되고 약자를 괴롭히게 된 것은 아닐까. 정말로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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