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돔 눈이랑 카프 눈이랑 너무 닮았다.... 


나랑 남편이 굴을 참 좋아하는데, 남편은 어째서인지 마트에서 굴을 사서 생으로 먹고 나면 화장실로 달려가는 것이다. 나는 멀쩡한데... 알고 보니 가열조리용을 사놓고 일부를 생으로 먹었으니 탈이 날만도 한 게지. 근데 왜 나는 괜찮지?? 노로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도 있다는데.... 그래서 오늘은 굴을 사서 나만 생으로 먹었다. ㅋㅋㅋ 그리고 나머지는 라면에 투척!! 아, 물론 내가 끓이지는 않았다. 내가 한 음식은 아무도 안 먹는다....



그저께 인터넷이 잘 안 되길래 A/S 요청을 했다. 기사님이 너무 친절하게도 공유기랑 다 새걸로 갈아주셨는데, 분명 와이파이가 잘 되는 걸 확인하고 나갔다가 퇴근하고 돌아오니 인터넷이 아예 안 되는 거였다!!! 6시가 한참 지났으니 기사님은 퇴근했고, ARS에 고장 접수를 했다. 그날 저녁과 다음날 아침까지 난 세상과 단절된 것만 같았다. 남편이랑 우스개소리로 정수기 물은 나와? 보일러는 돌아가? 인터넷이 안 될 뿐인데 모든 것이 안 되는 것 같았다. 화요일이 아닌 게 다행이라고나 할까. 화요일에는 내가 제일 사랑하는 <심야괴담회>가 하는 날이니까. ㅋㅋㅋㅋ 어제 낮부터 지금까지 인터넷 너무 잘 돼서 너무 좋다. 그래서 드라마 <연인>도 본방사수 할 수 있었다. 지금 이렇게 페이퍼도 쓸 수 있고. 당연하다 생각한 것이 사실은 고마운 것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김사량은 비운의 작가다. 이 책들을 읽으면서 아고타 크리스토퍼가 떠올랐다. 헝가리 사람이 프랑스 어로 글을 써야 했던, 프랑스 어를 적의 언어라고 표현했던 그녀. 김사량 역시 일제강점기 때 조선인이지만 일본어로 글을 썼다. 독립운동에 발도 담근 것 같고, 광복 후 고향인 평양으로 돌아갔고, 한국전쟁 때 종군기자로 남하했다가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한다. 친일, 친북으로 분류되어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인정받지 못했던 작가. 심지어 일본어로 <빛 속으로>를 써서 아쿠타가와 상 후보로 오르기도 했으나 조선인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일본을 비판하는 소설을 써서 그런지 일본에서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책들에서 그런 그가 보였다. 아고타 크리스토퍼의 소설이나 <문맹>에서 제대로 공감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이 책들에서는 공감할 수 있었다. 진짜 '적의 언어'로 글을 쓰는 이의 아픔, 죄책감, 어찌할 수 없는 모국의 현실, 모국어로 표현하고 싶은 말들... 이념을 떠나 <칠현금>에서 몸은 불구지만 글을 쓰는 윤동무에게서 김사량의 모습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나는 홍콩을 좋아한다. 정말 좋아하는 영화도 홍콩 영화이고, 홍콩에 갔을 때도 너무 좋았고, 그냥 홍콩이라는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홍콩에 대해 내가 너무 몰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환상을 사랑하고 있었던 거였다. 우리나라는 제국주의의 식민지였던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 시대는 비참했고, 제국주의에 수탈당했고, 그 청산되지 못한 역사가 여전히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다. 홍콩 역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곳이었다.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였고, 잠깐 일본의 지배를 받기도 했으며, 이제는 중화인민공화국에 반환되어 중국공산당의 지배(?)를 받기에 이르렀다. 홍콩의 정체성은 회색,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홍콩, 정치색이 없는 홍콩 이런 것인데 앞으로 홍콩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중국은 홍콩보다 선전을 더 밀고 있고, 이제 홍콩은 경제 투자처로의 매력도 잃어가고 있다. 환상 속의 홍콩은 자유로운 도시였으나, 실상은 엄청난 빈부격차, 차별, 극단적 실리주의가 지배하는 도시이기도 했다. 서글프다. 하지만 책은 맛있는 프렌치 토스트와 커피와 함께.

 

참 사진 못 찍는다....


 나는 뱀파이어 소설이 좋다. 뱀파이어가 나오면 일단 호감도 +1은 먹고 들어간다. 나에게 뱀파이어는 정해진 질서를 거스르는 존재, 의도치 않게 소중한 것을 빼앗긴 존재, 투명하고 멋지지만 비참한 존재이다. 그런 존재가 풀어나가는 이야기는 아름답지만 잔인하다. 


뱀파이어는 주로 서양에서 많이 다루는 소재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 좀비가 훨씬 많이 등장하는 것 같지만, 뱀파이어도 곧잘 나오는 듯하다. 한국형 뱀파이어는 서양보다 덜 비극적인 존재이긴 하지만 여전히 매혹적이고 잔인하다. 노동 착취를 당하는 소수자로 나오기도 하고. 



끝맺기 어려울 땐 고양이!!


모짜와 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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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10-28 03: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고양이가 갖고 노는 생선 인형이 정말 생선과 비슷하네요 어두운 곳에서 보면 깜짝 놀랄 만하겠습니다 고양이가 인형이 아닌 진짜 생선을 본다면 어떻게 할지... 저는 뭐든 그냥 먹는 건 안 좋아해요 달걀도 다 익혀야 합니다 생굴을 드시다니... 마트에서 파는 건 익혀 먹어야 하는 건데 꼬마요정 님은 괜찮다니... 사람에 따라 맞기도 하고 안 맞기도 할지도...

지금은 인터넷이 안 되면 뭔가 다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겠습니다 인공지능으로 되는 거 많은 집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집은 밤에 인터넷이 안 되면 아주 캄캄하겠네요 불이 들어와도 캄캄한 느낌이 들 것 같아요

김사량 작가는 힘들었겠네요 시대가 그러지 않았다면 좀 나았을 텐데...



희선

꼬마요정 2023-10-28 21:30   좋아요 2 | URL
저 생선 인형이나 당근 인형 같은 것들 밤에 밟고 깜짝 놀란답니다. ㅋㅋ 다음에 진짜 생선을 사올 일이 있으면 한 번 보여줘야겠어요. 신기하죠? 저랑 제 동생들 모두 그냥 마트 생굴 먹어도 괜찮거든요. 그런데 제부도 제 남편도 바로 화장실 반응이 오더라구요. 사람마다 다른가봐요.

인터넷 안 될 때 정말... 세상에서 고립된 느낌이었어요ㅠㅠ

김사량은 참... 마음이 아픕니다. 시대가 너무 불행했어요...

일교차가 심합니다. 희선 님 감기 조심하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책읽는나무 2023-10-28 08: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굴라면!!! 꿀꺽하고 싶네요. 침 넘어갑니다.^^
하지만 요즘 저도 굴을 먹었다 하면 알러지가 생기거나 화장실을 가야해서 못 먹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갑자기 나이들어 이렇게 되었어요.ㅜㅜ
암튼 굴라멘 같아 보입니다.
남편분은 굴떡국도 잘 끓이시겠어요.^^
중간은 맛난 음식과 책 이야기
처음과 끝은 냥이들 사진
조합이 좋네요.ㅋㅋ
카프는 재롱둥이네요.^^

꼬마요정 2023-10-28 21:40   좋아요 2 | URL
굴라면 정말 맛있게 먹었어요 ㅎㅎㅎ 남편이 요리를 참 잘해요. 그래서인지 제가 부엌에 있으면 안절부절 장난 아닙니다. ㅋㅋㅋ 보쌈도 만들어주고, 별별 요리를 다 만들어주는데 저는 신기할 따름이죠.
아무래도 알라딘에 글을 쓸 땐 책 이야기가 빠지면 안 될 것 같아서 저도 모르게...
카프는 개그냥이에요 ㅋㅋㅋ 너무 웃겨요. 거기다 비닐만 보면 좋아서 물고 물에 빠트리는데, 물고 총총총 뛰어가는 모습이 진짜 귀엽습니다. ㅋㅋㅋㅋㅋㅋ
일교차가 심한데 책나무 님 건강 유의하시고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서곡 2023-10-28 09: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홍콩에 못 가 봤는데 가봐야겠습니다 ! 잘 봤습니다 ㅎㅎ 주말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꼬마요정 2023-10-28 21:42   좋아요 2 | URL
저는 2014년에 다녀왔는데, 우산 혁명 이후 못 가겠더라구요. 그래서 너무 아쉽습니다. 그래도 홍콩은 여전할지 궁금하기도 하구요. 마카오도 좋았어요. 아마사원이랑 커피랑 진짜 좋았는데... 다시 가고 싶네요.
일교차 심한데 감기 조심하시구요,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3-10-28 11: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문맹은 저도 읽은 책... 타국어로 글을 쓴다는 게 얼마나 어려울지 상상이 갑니다.
일단 강대국이 되고 볼 일이에요. 자국을 보호하기 위해서요.
고양이의 마지막 사진은 정말 잘 찍으신 것 같아요. 고양이를 사랑하는 자만이 찍을 수 있는 사진이랄까요. 사랑스러운 고양이, 가 연출되었거든요.^^

꼬마요정 2023-10-28 21:45   좋아요 3 | URL
정말 강대국이 되고 볼 일이네요. 타국어로 글을 쓰는 게 얼마나 힘들면 ‘적의 언어‘라는 표현을 했을까요... 문맹 읽을 때는 그렇게 안 와닿았는데, 김사량의 책을 읽으니 그렇구나... 생각이 들더라구요. 가슴이 아픕니다.
고양이 귀엽지요? 사랑스러운 고양이로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너무 사랑스러운 냥이들이에요^^
일교차 심한데 건강 유의하시구요, 건강이 최고에요!!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공포, 집, 여성 - 여성 고딕 작가 작품선
엘리자베스 개스켈 외 지음, 장용준 옮김 / 고딕서가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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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타 다른 고딕 소설과 중복되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모르는 이야기도 있어서 즐겁게 읽었더랬다. 읽은 지는 제법 오래됐는데 리뷰도, 페이퍼도 아무것도 안 썼다는 사실을 발견해서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딕 소설은 음침해서 인간의 어두운 면을 닮았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이, 사람은 선한 면도 가지고 있지만 나쁜 면도 가지고 있기에 이런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나오는 것 같다. 


엘리자베스 개스캘의 <회색여인>은 가부장적 질서에서 빠져나온 여자들이 살아가려면 또 다른 가부장 남자에게 의탁하거나 남자가 되는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준다. 아망트는 인물 성격이 매우 극적으로 변하는데 지키고자 하는 대상이 생기면 그런 것일까, 살아남기 위해서일까. 신분이 뒤바뀌는 것 역시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하녀가 가부장을 담당하고 영주 부인이었던 마님은 보호받는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마님은 회색여인이 되어 기록을 남겼다. 


버넌 리의 <오키 오브 오키허스트, 팬텀 러버> 역시 <회색여인>과 마찬가지로 흄세로 이미 만났었다. 앨리스라는 여인, 대를 이어 온 저주 같은 사랑,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했던, 하지만 무기력했던 앨리스들. 기회가 오자 남장을 한 채 총을 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화가는 이야기를 눈에 담았다. 그리고 결국 파멸한 이는 영국 남성의 전형인 윌리엄 오키였다.


루이자 메이 올컷의 <비밀의 열쇠>는 출생의 비밀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한 남자가 두 여자와 결혼하여 두 여인과 각각의 자녀들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는 정형화된 이야기로 볼 수도 있겠다. 심지어 이 남자는 이 얽힌 실타래를 풀 방법으로 '자살'을 생각한다. 이런 무책임한 남자가 결혼을 두 번이나 하다니... 하지만 이 인연을 푼 것은 다름아닌 트레블린 부인에게서 은혜를 입은, 또 하나의 자녀인 헬렌의 사촌 폴이다. 폴은 의도를 가지고 트레블린 부인에게 접근했고, 사촌 헬렌의 신분을 회복시키려 했고, 트레블린 부인에게 입은 은혜 때문에 갈등하게 된다. 


메리 셸리의 <변신>은 마법 같은 이야기이다. 난쟁이와 몸이 바뀐 귀도는 바뀌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삶이 소중했음을 깨닫는다. 오만함으로 똘똘 뭉친 귀도는 재산을 탕진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자신을 받아 준 약혼녀 줄리엣마저 배신한다. 그리고 난쟁이와 몸을 바꾸고, 약속한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난쟁이를 저주한다. 도플갱어 단편선 <나의 더블>에 실렸어도 어울렸을 법한 작품이다. 귀도와 난쟁이 둘은 결국 도플갱어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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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방 부인 정탐기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1
정명섭 지음 / 언더라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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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다섯일까, 넷일까 고민했다. 별 다섯을 준 이유는 김금원과 <호동서락기>의 존재를 알려준 것과 오가작통법이 작동하는 방식이나 사형 집행 방식, 다모가 수사하는 방식을 여타 다른 소설보다 더 자세하게 알려줘서이다. 읽는 동안 관노인 다모 박순애의 활약과 '삼호정 시사'를 만든 김금원과 함께 시를 즐기는 이운초, 임혜랑, 박죽서의 기개와 재치가 멋졌다. 


여기 나오는 두 가지 사건은 모두 조선 시대 때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모티브로 한 것이라고 한다. 역시 실제 사건이 가장 험악하고 잔인한 듯 하다. <사라진 신부>의 은월이 겪은 기가 막힌 사건이나, <며느리의 죽음>의 박아지가 죽은 사건은 모두 인간의 탐욕 때문이었다. 욕심이 얼마나 무서운 지, 사람의 인생을 파괴하거나 생명을 앗아가는 일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졌다. 그래도 인과응보, 일벌백계가 이루어진 것은 좋았으나, 또한 그 안에서도 희생된 이들이 있었다.


김금원이 금강산, 제천 의림지 등을 여행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면, 은월은 엄마가 돌아가시고 들어 온 새어머니의 핍박에 운신이 어려웠다. 여인의 몸가짐 운운하는 것도 은월을 힘들게 하는 것이었다. 박아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속적삼을 입은 채 죽어 있었기에 정말 친한 이의 소행으로 용의자가 좁혀지는데, 시집 온 지 얼마 안 되었기에 바깥 출입도 잘 하지 않았다고 했다. 밖에 나오면 행실이 좋지 않다고 소문난다고. 


그나마 이 때 여자에게도 재산이 상속된다는 것을 알게 되니 마음이 한결 나았다. 여자를 경시하고 여자의 활동을 싫어하는 사회였기에, 관노에게 수사권을 준 것 역시 이해가 되었다. 양반 여자가 권력을 가지는 게 싫었을 테니까. 심지어 경국 대전에는 '부녀로서 절에 올라가는 자, 사족 부녀로서 산천에서 놀이를 즐기는 자는 장 100대에 처한다'는 부녀자 여행 금지 법안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 초기에는 고려 시대의 영향으로 부녀자들이 외출을 곧잘 했다고 하는데, 세종 때 이래서는 안 된다고 법을 엄격하게 적용하게 되었다고. 이렇게 갑갑한 세상 속에서도 힘들지만 자신의 일을 하면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다모인 박순애도 김금원도 은월도 모두 그 시대를 열심히 살아낸 멋진 여자들이었다. 


"세상은 고용한데 죽음은 끊이지 않는군."(p.190)

 

그러니 삼호정 시사 다섯 여인과 박순애는 약자들의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모두를 구할 수는 없어도, 누군가를 구할 수 있으니. 그들을 응원하며 다음 권이 나오길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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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팅 - 영화관 소설집 꿈꾸는돌 34
조예은 외 지음 / 돌베개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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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빛깔의 다채로운 영화들을 본 느낌이다. 각자의 아픔과 추억을 간직한 채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사람들. 이래서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픔을 딛고 타인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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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 픽션 나이트
반고훈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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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 공포란 감정은 무엇일까. 무엇이 우리를 무섭고 두렵게 하는 것일까.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치솟는 금리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묻지 마 폭행 같은 것들이 있겠지. 그런 현실적인 문제들을 벗어나서 좀 더 비현실적인 눈으로 본다면 실체가 없는 존재들이 우리를 두렵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체가 없는 존재들은 말 그대로 실체가 없어서 무섭다. 내가 알지 못하니까. 인간은 잘 모르고 잘 알지 못하고 자신과 다르면 타자화해서 배척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 실체가 없는 존재- 귀신은 이전에는 인간이었다. 인간이 죽어 귀신이 된다고 생각하니까. 그러니 귀신의 행동은 살이있을 적 행동이랑 별 다를 게 없을 것이고, 오랜 시간 귀신으로 있었다면 명상이나 수행 같은 것을 했다면 성질 좀 바뀌어서 부드럽고 다정한 귀신으로 성장했을테고, 분노와 원한과 억울함에 사로잡혀 있다면 소위 말하는 악귀가 되어 있겠지. 아, 죽어서도 노력해야 하다니, 뭔가 서글프다. 우스개소리로 하는 말이 다 맞다니까. 멕시코 인들은 죽으면 영화 '코코'에 나오는 사후세계로 가고, 우리는 죽으면 영화 '신과 함께'의 사후세계로 간다고. 


내 마음 속에 미움과 시기와 질투가 자라면 내 마음이 지옥이 된다. 그런 마음은 나를 너무 힘들게 할 뿐이니 그런 마음이 없으면 좋겠지만, 그게 쉽지는 않겠지. 혹은 노력이 결실을 맺지 못해서 점점 고립되고 힘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술에 의존하기도 하고, 우울증에 걸려 힘들어 하기도 한다. 자포자기하여 삶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고 분노를 약자에게 표출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의 한 단편인 <과거로부터의 해방>이 안타깝지만 좋았다. 알콜 의존증인 '나'는 인생이 망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 기억 그대로 엄마의 뱃속으로 돌아갔다. 인생 2회차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로또를 사지도 않았고, 친구를 아주 많이 사귀지도 않았다. 인생을 크게 바꾸기보다는 내 인생에서 소중했던 것들을 좀 더 소중하게 여기는 길을 택했다고나 할까. 그래서 더 가슴이 아팠고, 작지만 따뜻하고 소중한 것들로 채워진 삶이 아름답게 보였다. 인생은 좋은 것들로만 채워질 수 없지만, 좋은 것들을 추억하고 소중하게 간직할 수는 있으니까. 


그래서 첫 번째 이야기인 <당신과 가까운 곳에>와 마지막 이야기 <귀신은 있다>가 더 안타까웠다. 소중한 걸 알아보고 소중하게 대해야 하는데, 사람은 너무나 가깝기 때문에 늘 같이 있을 거라고 착각한다. 집을 나설 때, 친한 이와 만나고 헤어질 때 웃는 얼굴로 인사를 나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설사 다투고 난 뒤라도 화해할 기회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미움은 후회를 낳고 후회는 미련을 남기니, 사랑하는 사람들을 대할 때는 좀 더 사랑을 담아야 할 것 같다.


<벽 너머의 소리>는 마치 평범한 영웅의 이야기를 보는 듯 했다. 평범함과 영웅이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사실 모두가 처음부터 용감하고 영웅이었던 것은 아니니까. 두렵지만 목소리를 내고, 그 용기를 본 누군가가 다시 용기를 내고, 그렇게 용기는 퍼져 나가게 된다면 이 사회는 약자를 위해 힘을 쓰는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 같다. 굳이 초능력이 없어도 용기는 낼 수 있으니까. 진아가 그랬던 것처럼. 드라마 <힘쎈 여자 도봉순>이 생각나는 이야기이다.


<시체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흥미진진한 스릴러이다. 사실 우연이 불러 온 결과라고 한다면 그렇겠지만, 또 그럴싸하지 않은가. 익명성이 가져 온 허세는 두 사람의 운명을 바꿨다. 학교에서도 버려진 건물 화장실, 그 곳은 드나드는 사람이 거의 없는 곳이었고, 두 사람은 싸인펜으로 벽에 글을 써 가며 대화를 나눈다.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어', '죽이면 되지', '죽였는데 시체를 어떻게 하지?', '토막내서 묻어' 이런 허세 가득한 대화 말이다.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상대의 말에 일주는 비웃으며 이러면 내가 쫄 줄 알고? 나도 스릴러나 추리물을 많이 봤다는 식으로 허세를 부린 것이다. 화장실 벽을 빼곡하게 채운 무시무시한 살인 방법이나 시체 처리의 방법들은 곧 일주를 두렵게 만들었고, 사건은 이상하게 흘러간다. 때때로 인생은 별 것 아닌 일로 시작해서 걷잡을 수 없는 비극으로 뒤덮이기도 한다. 


<검은 짐승들>은 옛날 사람들의 탐욕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늙지도 아프지도 죽지도 않는 상태가 좋은가 보다. 치러야 할 대가가 어마어마한데 말이다. 그렇게 누군가를 희생시켜 얻은 청춘은 아름다운가. 


<제3의 종>은 환경 오염으로 변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변이하는 것을 보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서는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서로 다른 종들끼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지 고민하게 하기도 한다. 우리가 버린 쓰레기는 결국 우리에게로 돌아올 것이고, 이미 다른 생명체들은 아주 많이 희생당했고 희생될 것이다. 


삶은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인간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뜻대로 하고 싶어하고, 흘러가는 시간을 잡고 싶어하고, 후회하며 돌이키고 싶어한다. 뜻대로 안 된다면 뜻을 바꾸기도 하고 흘러가는 시간을 가만히 쳐다보기도 하고 후회할 일들 사이 사이 좋았던 일들을 추억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지나간 시간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니.   

딱히 미래를 바꾸거나 하고 싶진 않았다. 최고는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해 살아왔던 인생이었기에 가능하면 내가 기억하는 모습대로 살아보고 싶었다. 설거지하면서 부르던 엄마의 노랫소리나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아빠의 방귀소리, 따뜻한 할머니 냄새와 상냥했던 담임 선생님의 얼굴, 친구들과 주고받았던 유치한 농담들 모두 그대로 간직하고 싶었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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