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윤회양분세계
조현아 지음 / 읻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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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수많은 죽음을 보았다.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를 때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얼굴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함께 살았던 친할머니가 돌아가셨고, 몇 년 후 외할머니도 돌아가셨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화장장에서 화장이 시작될 때, 나랑 동생은 미친듯이 울었더랬다. 어린 시절, 나랑 동생을 키워주시다시피 하셨다. 사랑하고 사랑했다. 얼마나 사랑했냐면, 외할머니가 이상한 행동을 하셔도, 그게 더러워도 난 꾹 참을 정도였다. 사랑했으니까. 외할머니가 내 팔에 있는 흉터를 안쓰럽게 여겨 흉터를 없애는 비법이라며 아침에 눈 뜨자마자 침을 발라도 참았다. 물론 흉터는 전혀 없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괜찮았다. 


그 후 큰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친구 어머님이 사고로 돌아가시고, 정독실에서 함께 공부하던 후배가 죽었고,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함께 공부하던 또 다른 후배가 세상을 떠나고, 함께 공부하던 선배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대학원 지도교수님의 사모님이 돌아가셨다. 그 후로도 지인들의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등 주변에 조사는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반려동물도 여럿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길에서 밥을 챙겨주던 냥이들도 많이들 떠났다.


그렇게 죽음은 너무 가까이에 있었다.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은 슬프고 아팠지만 때론 이젠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을 거란 믿음도 있었다. 차안(此岸)의 세계에는 고통이 있지만 피안(彼岸)의 세계에는 고통 따위는 없겠지. 육신이 없으니 육체의 고통을 더 이상은 느끼지 않을테지란 위안이 말이다.


불교 재단 '연산윤회연구소'는 몇천 년의 인류 역사를 압축한 가상세계 sam4를 개발했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의 유지보수를 한국대 대학원에 맡겼다. 담당자가 자리를 비운 며칠 사이, 시스템에 손을 댄 이들이 있었고 문제를 해결하기도 전에 연구동은 정전됐다. 이제 sam4 속 세계 PYAYAN은 피안과 차안이 뒤섞여 아침이 와도 해가 뜨지 않았고, 나이가 들어도 병에 걸려도 심지어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죽지 않았다. 


죽음이 없는 세상을 꿈 꾼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가진 부와 권력을 동원하여 끊임없이 피안의 세계를 엿보았고 실패했다. 사람들은 그런 불사(不死)의 존재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뱀파이어는 대표적인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존재다. 그들은 해를 보지 못하지만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 특정한 상황만 피한다면 말이다. 그런데 이곳 sam4 속 세계 PYAYAN은 오류 및 오류로 인한 긴급저장의 가동으로 살아있는 것들은 죽지 못했다. 


물고기를 구워도 물고기들은 죽지 않았다. 심장병에 걸린 열여덟 살의 강아지도 죽지 않았다. 연명치료를 중단한 사람들도 죽지 않았다. 프로그램이 스스로 복구하려는 과정 속에서 간편식이 개발되는 바람에 sam4 속 사람들은 굶어죽을 수도 없게 되었다. 하지만 고통은 남았다. 살아있는 이상 반드시 죽음은 찾아 온다. 그건 어떻게 보면 축복이다. 고통을 끝낼 수 있는 축복. 이제 어떤 생명체도 죽지 않았고 그리하여 어떤 생명체도 태어나지 않았다. 


그런 저주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살아갔다. 공무원 중 자리를 지키며 계속 일을 하는 이들도 있었고, 주변에 간편식이나 필요한 물품들을 배달하며 사람들을 도우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뜨지 않는 해를 기다리고 태어나지 않는 생명을 기다리고 떠날 사람들을 생각하며 멈춰버린 세상이 다시 돌아가기를 기다렸다. 그런 희망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빛이 없는 세상에서도 사람들은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고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경험하고 이 고통이 지나갈 것을 꿈꾼다. 그들 역시 번뇌가 들끓는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또한 자신과 타인을 돕는 이들이다. 어쩌면 구원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한없이 맑고 깨끗한 것이 아니라 작은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더럽고 추악한 면들을 조금씩 정화시켜 나아가는 것 말이다. 그들이 원하는 건 단순히 컵라면을 먹고, 소주를 마시고, 좋아하는 웹툰을 보는 일상이다. 그리고 다시 일상을 회복하리라는 희망이 있기에 그들은 극단적인 선택들을 하지 않는다. 분노로 남을 해치지도, 절망으로 자신을 해치지도 않는다. 그들은 끊임없이 답을 찾으려 노력하며 그 과정을 결코 무시하지 않는다. 그렇게 삶은, 죽음은, 세상은 순환한다.


예전에 열심히 하던 게임이 있었다. 게임 속 고양이들을 돌보는 오락이었는데, 한동안 이 게임을 그만둘 수 없었다. 가상 세계임에도 내가 이 게임을 그만두면 이 고양이들의 밥과 물은 누가 챙겨주며, 장난감으로 놀아줄 이는 누구이며, 포근한 잠자리는 누가 깔아준단 말인가. 이 게임을 그만두고 죄책감에 시달렸고, 이런 류의 게임은 다시는 하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다. 가상 세계 속 이들은 이렇게 누군가 접속을 끊어버리면 어디로 가게 될까. 

살아 있는 이상 죽음에 저항하지 못하는 순간은 분명 찾아온다. 죽어야 할 때 죽지 못하면 더는 인간으로 살 수 없게 된다. 주변을 지키는 이들도 서서히 인간이기를 포기한다. 사랑하는 존재가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독기 품은 저주를 내리고, 다시 고개 드는 죄책감에 울고. 산 사람이 살기 위해서 죽을 사람은 죽어야 한다. 그 경계에 지나치게 오래 머물면 삶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 P136

태양이 꺼져도 따뜻했던 까닭은 언니가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남은 자들이 어둠과 영생을 견디도록, 언니는 세계를 포용했다.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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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9-05 0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큰 재해가 일어난 뒤에도 산 사람은 살아가는 게 떠오르기도 하네요 죽음이 없어지면 사는 게 괴로울지, 아프지 않다면 좀 나을 텐데 아픈 건 그대로면 사는 게 힘들겠습니다 그런 세상에서도 사람은 살아가는군요 언젠가 좋아진다 믿고... 그렇게 되면 좋을 텐데...


희선

꼬마요정 2024-09-07 23:29   좋아요 1 | URL
이 책 읽다보면 그런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심장병에 걸린 강아지가 죽지 못해 고통 받는 걸 보다가 아파트에서 던지려고 했다는 이야기요. 하지만 그러고도 죽지 못하기에 더 고통 받을 수밖에 없다는 걸 사람들은 알지만 받아들이기 힘들어해요. 다행히 그 강아지는 ‘삭제‘라는 형태로 죽음을 맞이했지만, 마음이 아팠어요. 죽음이 좀 다르게 다가오더라구요.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페크pek0501 2024-09-05 1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은 굶어죽을 수도 없게 되었다.˝ - 저는 죽을 자유가 없는 세상이 끔찍하게 느껴집니다. 실제로 자살을 하지 않더라도 맘만 먹으면 고통을 한 순간에 끝낼 수 있다는 사실이 인간에게 위로를 준다고 여기기 때문이에요.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다면 그래서 고통이 계속된다면 그건 지옥이지요. 장수 시대가 꼭 좋지만은 않다고 생각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예요. 자신이 점점 노화되어 나중엔 남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살지 못하는 날이 온다면 그래서 기저귀를 차고 살아야 한다면 지옥에서 사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꼬마요정 2024-09-07 23:33   좋아요 1 | URL
안 그래도 건강 유튜브 보면 그러더군요. 우리의 목표는 아흔 살에도 스스로 걸을 수 있는 거라구요. 그래서 지금부터 근육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언제 죽을 지 모르지만, 사는 동안은 스스로 뭐든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어릴 땐 몰랐는데 점점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남의 도움 없이 가장 기본적인 일들을 해 내는 게 쉬운 게 아닐 수 있다는 걸요. 고통을 끝낼 수 있다는 건 축복인 것 같아요.
 
폐월; 초선전
박서련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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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4대 미녀를 일컫는 말이 있다. 침어낙안 폐월수화(沈魚落雁 閉月羞花). 춘추전국시대 오나라를 패망으로 이끈 서시, 흉노가 득세하던 시기에 한나라를 위해 흉노의 선우와 정략혼을 한 왕소군, 삼국지연의에 등장하여 동탁을 제거하는 데 일조했던 초선, 당 현종의 며느리이자 한 시대를 휘어잡았던 양귀비가 그 주인공들이다.(4대 미녀에 초선이 들어가고 조비연이 빠진 건 저 말이 너무 입에 달라붙어서일까.)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어버린 채 가라앉고, 하늘을 날던 기러기가 날갯짓을 잊어버려 떨어지고, 달이 창피해서 숨어버리고, 꽃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인다는 아름다움이란 어떤 것일까.  


사실 저 이야기들 중 실존인물이 아닌 이가 있다. 바로 초선이다. 초선은 뜬금없이 삼국지연의에서 왕윤의 가기(歌妓) 혹은 수양딸로 등장하는데, 빼어난 외모와 총명함, 뛰어난 연기로 동탁과 여포를 이간질하여 한 왕조의 문을 닫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녀의 처음과 끝은 지워진 듯 사라진 듯 없다. 마치 서시가 오나라를 망하게 한 뒤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어쩌면 쓸모가 다한 존재의 뒷 이야기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남은 건, 그저 한 나라를 무너뜨릴만큼 아름다웠다는 전설 뿐.


하지만 그런 여인들에게도 부모가, 어린 시절이, 고난이 있었다. 그녀들은 늙어죽을 수도 있었고, 행복할 수도 있었다. 박서련 작가는 그런 초선의 삶을 되살려냈다.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도 아니고, 아름답고 싶어 아름다워진 것도 아닌, 그저 살아있기에 살고자 했던 한 사람으로서의 초선을 말이다.


아주 어린 시절 '나'의 기억 속 부모는 기아에 허덕이다 옆집 아이와 '나'를 바꿨다. 잡아먹기 위해서였다. 옆집 아이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살기위해서였다. 그리고 다리 밑 거지 아이들과 함께 살게 되었고, 대장을 만났다. 때는 후한 말, 십상시도 난리고 황건적도 난리고 탐관오리들도 난리고 군웅들이 할거한다고 난리던 시절이었다. 난세는 기회라지만 거지 아이들에게 그런 것보다는 당장 한 끼 밥과 비를 피할 곳이 더 중요했다. 대장은 '나'에게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주었고, 구걸하기에 보다 쉬웠던 아이는 그렇게 어른이 되어갔다. 


그리고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다. 거지 아이들은 황건적에 합류했고, 관군에게 쫓겼다. '나'는 그 난리통에 뒤쳐졌고, 운명을 만났다. 왕윤은 '나'를 주웠고, '나'는 주워들은 대로 황건적들에게 가족을 잃은 귀족 행세를 했다. 그렇게 '나'는 왕윤의 양딸이 되었다.


처음으로 따뜻한 밥을 먹었고, 부드러운 이불을 덮었고, 고운 옷을 입었다. 하고 싶고 되고 싶은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은인인 왕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


"정말 여자는 관리가 될 수 없습니까?"

"여인으로서 관모에 손댈 수 있는 자는 오직 초선뿐이란다."

"그러면 저도 초선이 되겠습니다."(p.52)


초선관모는 담비(貂)털과 매미(蟬) 날개로 만들어져 망가지기 쉽기에 삼공이나 그 이상 가는 높은 관직에 오른 사람의 집에나 황제의 곁에만 그 관만을 모시고 손보는 여인을 둔다. 그런 여인을 초선이라 부른다. 그 때부터 나는 초선이 되었다. 


삼국지연의에서 말하지 않았던 초선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초선이 어떻게 왕윤의 수양딸이기도 하고 가기(歌妓)이기도 했는지, 어째서 초선이었는지, 왜 왕윤을 위해 자신의 몸을 바쳤는지 그녀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왕윤이 구해주기 전까지 어떤 기준도 없던 여자 아이가 자신을 구해 준 이에게 연정을 품고 서로를 이용하며 원하는 바를 이루려고 하기까지의 과정을 말이다. 


초선은 어쩌면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못났든 잘났든 상관없이 말이다. 그래서 자신을 구해 준 왕윤을 사랑했고, 자신에게 쾌락을 알려 준 여포에게 약간의 마음 한 자락을 내주기도 하고, 듣기 좋은 목소리를 가진 동탁을 마냥 혐오하지만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마지막에 사랑했던 이의 비겁하면서도 간절한 부탁을 거절할 수 있었겠지.    


그녀가 정말로 되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그저 한 사람으로 자유롭게 살아가다 늙고 병드는 것마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삶을 원했을까. 자신의 아름다운 머릿결이, 백옥같은 얼굴이, 짙고 풍성한 눈썹이, 하얗고 가지런한 이가 하얗게 세고, 누렇게 뜨고, 다 뽑혀 듬성듬성해지고, 다 빠져버려도 그저 웃는다. 


그녀는 살아남았고, 그녀가 이겼다. 

그러한 모든 순리는 허망한것이로되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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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9-03 20: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초선, 그이가 끝내 살아 훗날 늙어 자연사했기를 바랍니다. 왕윤, 여포, 동탁 같은 영웅 말고 그저 무지랭이 하나 만나 남은 평생 밭이나 갈다가 아이들 낳고 없는 살림 궁상 떨면서 그렇게, 그렇게 살다 갔기를. 그런데 아닐 거 같네요.

꼬마요정 2024-09-04 00:47   좋아요 2 | URL
아, 정말로 그렇게 늙어 죽기를 바랍니다... 킬킬 웃으며 한 때 천하를 호령하던 이들을 만났던 때를 우스개거리로 삼으면서 말입니다.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낳을 수 있으면 좋구요, 또 없으면 어떻습니까. 험난한 세상 홀로 자유롭게 살아가도 좋겠지요. 그렇게 아름답지 않더라도, 총명하지 않더라도 한 사람으로 살다 그렇게 가기를요... 그랬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서시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카스피 2024-09-04 01: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흠 일종의 삼국지 스핀오프 같은 소설이네요.위에서 말히신 중국 4대 미인중 저는 서신,초선,양귀비등은 자신의 의지로 역사를 바꾸려고 했거나 황제를 좌지우지하면서 호화로운 삶은 살았다면 왕소군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후궁들과 환관의 간계로 흉노에 끌려가 제일 비참하지 않았나 싶어요.

꼬마요정 2024-09-04 02:12   좋아요 1 | URL
말씀 듣고 보니 왕소군 너무 불쌍하네요. 서시나 초선은 스스로 영웅적인 역할을 하려 했고, 양귀비는 부와 권력을 손에 넣었지만 왕소군은 너무 비참했겠어요ㅠㅠ 결국 화공은 참수됐지만 왕소군은 혹독한 땅으로 떠나야했죠. 그 곳에서 행복하기라도 했으면 좋겠어요. 낯선 곳, 낯선 사람들 속에서 너무 외롭지 않았기를. 어쩜 이리도 뒷날의 삶을 살게 하고픈 이들이 많을까요ㅠㅠ

Falstaff 2024-09-04 05:58   좋아요 2 | URL
중국 미인들 가운데 제일 행복한 삶을 살았던 이가 왕소군 아닐까 싶습니다.
비록 오랑캐 땅으로 끌려가 춘래불사춘을 읊었지만, 뽀얀 피부의 왕비로 왕에게 사랑받고, 가죽옷을 입던 흉노 여인들에게 길쌈과 물레질을 가르쳐 죽을 때까지 그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합니다. 부정부패와 암투와 질투, 시기가 들끓었던 중국 황실, 귀족의 뒷방보다야 훨씬 낫지 않을까요.

꼬마요정 2024-09-04 13:07   좋아요 1 | URL
오오 그랬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고향이 그립긴 해도 그곳에서 행복하다면야 좋지요. 어느 시절이든 중국 황실 암투는 정말... 귀족의 뒷방이라도 가면 다행이고, 죽을 수도 있잖아요. 그게 아니라 정말 다행이에요.^^

유부만두 2024-09-04 0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반에 영 속도가 나질 않아서 포기했는데 또 궁금해지네요.

꼬마요정 2024-09-04 13:10   좋아요 0 | URL
재밌게 읽었어요. 무엇보다 초선이 스스로 삶을 개척해나가는 게 좋았구요. 마지막이 좋았습니다.^^

호시우행 2024-09-08 18: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선의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낸 작가님과 리뷰글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꼬마요정 2024-09-08 21:44   좋아요 0 | URL
초선의 삶이 누군가를 위한 삶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삶이라 좋았습니다. 인상깊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다른 사람의 시간을 빼앗아 마치 자기 시간인 것처럼 행동한다. 성공한 누군가가 경력을 쌓을 수 있도록 ‘뒷받침해준‘ 가족에게 감사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이는가족이 구성원 중 한 사람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시간적) 욕구를 포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계는 종종 불평등하고 불공정하다. 유명한 TV 진행자 클라우스 클레버 (Claus Kleber)는 65세가 되던 2020년에 어느 인터뷰에서 아내가 "(자신의) 경력에 대한 대가를대신 치렀다"고 인정했다. 의사인 아내는 남편 클레버의 직업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본인의 직업을 수행할 수 없었다. 3 이러한 자기 비판적 성찰을 하는 사람은 드물며, 과거를 돌이켜볼 때만 그러한 생각을 한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시간을 자기 시간으로 생각하거나 가치가 덜 하다고 여기는 것을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권력의 차이는 바로 이렇게 생겨난다.
우리의 시간은 항상 다른 사람의 시간과 연결되어 있는 상호적인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시간을 빼앗거나 그들의 시간을 우리 시간보다 덜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그들의 시간에 대해 아주 형편없는 보수를 지불한다면, 그 사람들은 우리보다 덜 자유롭다. 내가시간을 다루는 방식이 다른 사람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질문해야 한다. 시간 부족에서 벗어날 방법은 개인이나 협소한 집단에서찾을 수 없다. 그러기엔 우리의 시간은 서로 너무 밀접하고 다양한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시간으로 서로 얽힌 관계를 풀어헤쳐 소수가 아닌 다수를 위한 공통의 해결책을 찾아 시간을 재구성할 때, 우 - P46

리는 비로소 정의로운 시간 문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 P47

본문 여러 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소득 활동 중심으로 돌아가는 현재의 사회는 과도한 소득 활동이 저임금 노동자의 서비스에 의존하고 있으며, 하인을 부리는 것을 정상으로 취급하는 계급 사회를 만들어낸다. 『돌봄 선언』의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돌봄을 둘러싼 가장 큰 아이러니 중 하나는, 부유층이 보수를 지불해서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들을 고용하지만, 사실 그들에게 가장 많이 의존하는 사람들이 부유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 이러한 불공정한 분업은 저임금, 저숙련 서비스 직종에 지속적으로 머무르는 사람들이 있어야만 존속될 수 있다. 부유한 국가에서 이러한 일자리를얻으려는 사람들을 계속 공급하려면, 세계의 어느 지역이 영구적으로 위기 상태에 처해있거나 적어도 현저히 가난한 상태여야 한다. 전세계 모든 사람이 잘 살고, 교육받고, 직업을 택하고 그 여건을 형성하는 데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삶, 그것이 바로 제국주의적 삶의 방식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전 세계적 사회 정의와 세계 평화는 부유한국가의 일상적인 생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는 국가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즉 우리 자신의 습관을 바꾸거나 포기하며 새로운 공존 모델을 실현하고자 할 때 정의로운 시간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다. 어린이집, 사회복지 및 돌봄 분야 근로자가 더 나은 보수를 받게 하려면 세금 등을 통해 공공 예산을 재분배하거나 늘려야 한다. 사회 전체에 걸친 돌봄이 실현된 진정한 돌봄 공동체는 지금까지 무급 돌봄 노동을 피했던 사람들이 돌봄 활동을 더 많이 이행하고, 모든 사람이 돌봄 행위를 삶의 일부로 여길 때에만 공정하게 조직될 수 있다. 경제적 격차가 어떻게 사람들을 억 - P338

압하는지, 나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타인의 착취에 관여하고 있는지를 이해해야 비로소전 세계적으로든 가까운 관계에서든 평등이실현될 수 있다. - P338

노동자의 시간을 점점 더 많이 점령해가면서 삶의 질, 건강, 돌봄,
인간관계, 생태적 균형을 갉아먹는 경제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이러한 발전 중심 사고는 민주주의의 가치와 양립할 수 있을까? 인류학자 제이슨 히켈(Jason Hickel)은 "자본주의 반민주주의적 성향을가지고 있으며,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라고쓰고 있다. 그의 논지는 노조가 잘 조직되어 있는 부문의 근로자들이 근로시간 단축 등을 통해 기업 이윤의 상당 부분을 자신의 몫으로 얻는다는 사실을 통해 뒷받침된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들은 지속적으로 노동조합 설립을 막아서고 있다. - P336

시간 정의를 바로 세우는 정책에서는 ‘일‘이 무분별한 성장으로 다른 사람들의 삶의 기반과 미래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기여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우리에겐 아이와 돌봄 책임이 환영받는 시간 문화, 삶을 긍정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시간 문화가 필요하다. 이러한 시간 문화는 사람들이 앞으로 더 큰 돌봄 공동체 속에서 모이고, 돌봄을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참여하는 사회적과제로 조직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로 가는 길

시간은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원 중 하나다. 모든 사람에겐 일상적으로 해야 할 일 외에 자신에게 중요한 일에 대해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하고 고민할 시간이 없다는 것은 무언가를 바꿀 힘이 전혀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를지배하고 있는 시간 질서는 ‘살아 있는 민주주의‘라는 관념과 모순된다. 따라서 시간 정의 문제를 미루는 것은 정치적으로 태만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질서 속에서 우리 시간의 너무나 많은 부분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고, 평가 절하되며, 착취당하고 있다. - P339

아이와 노인, 일이 우리의 시간을 빼앗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시간이 늘 부족한 이유는 큰 책임을 져야 하거나 해야 할 일이 많을 때 우리가 서로를 충분히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은 결코 혼자서 통제할 수 없다. 단둘이서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책임에 대한 이러한 설계상의 결함을 언제든 고칠 수 있다. 서로 힘을 합치면 우리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 돌봄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건 자녀 혹은 다른 사람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일이며, 이는 분명 더 활기차고 사랑스럽고 미래 지향적인 일이다.
또한, 우리는 모두가 좋은 소득 활동을 하도록 할 수 있고, 꺼리는 일은 보다 공정하게 분배하고 나쁜 일자리가 애초에 만들어지지 않도록 할 수 있다. 녹초가 된 근로자가 집에서 홀로 자기를 돌보는것만으로는 노동 조건을 개선할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좋은 근무조건을 위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체계와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 P343

자녀를 가질 적절한 시기를 결정하는 것은 자녀를 가질 준비가 되었는지를 고려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 작가 톰스코카(Tom Scocca)는 ‘진정한 생물학적 시계(Real Biological Clock)를 부모가 된 후 이론적으로 자녀와 함께 보낼 수 있는 햇수로 설명했다. 스코카는 아이를 낳기에 적절한 시기를 찾기 위해 내가 죽어갈 때쯤이면 아이들은 몇 살 무렵일까?라는 어려운 질문을 던져볼것을 제안한다. "우리가 자녀의 삶에서 멀어지는 시기가 언제인지, 자녀의 삶의 어느 단계에 우리가 세상을 뜨게 될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가족과 사회의 가치에 대해 성찰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요인을 통해 자녀와 관계를 맺는지에 대해, 자녀에게 물질적으로 무언가를 제공하는 부모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 P253

자녀를 위해 많은 시간을보내는 것이 나에게 중요한가? 자녀와 함께 보내게 될 그 시간은 내인생의 어느 단계에 있는가? 나중에 내 자녀가 부모가 되면 나는 조부모가 되어 그들 곁에 있을 수 있을까? 자녀가 아직 대학을 다닐 때내가 그들의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 되지는 않을까? 등 다양한 문제를 고려할 수 있다.
톰 스코카는 자녀가 없는 삶보다는 가족을 구성해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내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 살면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시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고 얼마나 많은 것이 변하는지 알 수 있고, 이를 통해 우리의 시간 감각을 점검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아직 가정을 꾸리지 않은 사람들이나 자녀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돌봄 책임이 없는 시간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개인적인 자유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우리가 왜 지금까지 다른 사람을 돌보는 것과 자유를 함께 생각하지 못했는지를돌아보도록 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자녀가 없어야만 자유롭다면, 이는 무언가 단단히 잘못된 것이 아닐까?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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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잉 홈
문지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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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혁 작가의 책은 <고잉 홈>이 처음이다. 이 책을 사고 얼마 되지 않아 독립서점인 '우연한 서점'에 들렀다가 나이책을 샀다. 내 나이에 꽂혀 있던 책을 뽑아 들고 계산을 한 후 포장을 열었다. 문지혁 작가의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였다. 피식 웃음이 났더랬다.


<고잉 홈>은 책표지가 인상적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보라색이기도 하고, 무언가 아련해지는 기분이 들어 쓸쓸해졌다. 여러 단편들을 읽는데, 십여 년 전 내 모습이 떠올랐다. 노력 끝에 자격증을 땄는데 그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니. 예전에 수능 끝나고 대학만 가면 끝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대학 갔더니 앞이 막막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인생이 그런 것인지 끝은 없었다. 손에 쥔 자격증은 말 그대로 자격증일 뿐, 나는 또 다시 선택을 해야 했고, 경험을 쌓아야 했다. 정말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이었다. 동기들이 막말로 "꼬마요정도 개업하는데 누구든 못해" 라고 할 정도였으니. 


그래서였을까. 안정을 찾아 미국으로 떠났으나 불안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특히 <나이트호크스>는 읽는 데 다른 의미로 마음이 아팠다. 줄어드는 통장 잔고 앞에서 병원에 가는 것이 무서워 약국으로 가자는 아내의 말을 수용하는 '비겁'해지는 마음이 말이다. 그 뿐인가, <뜰 안의 볕>의 늘봄처럼 이 선택이 맞는지 확신도 없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마음도 공감이 갔다.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비주류인 늘봄처럼 나 역시 내 업종에서는 그런 상태였으니. 내가 선택한 길이 맞는지, 잘 하고 있는지 늘 물음표를 가진 채 그렇게 지내왔다. 어떤 때는 뿌듯했지만 나 자신에게 실망스러울 때도 많았다. 나는 <골드 브라스 세탁소>의 영처럼 반듯한 길에서조차 길을 잃는 사람이었고, <고잉 홈>의 현처럼 나에게 일어날 사실이었으면 하는 일을 상상했다. 


<뷰잉>은 다른 의미로 나에게 다가왔는데 떠밀리듯 하게 되는 일들이 가끔 상처로 남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뷰잉은 일종의 장례식장이다. '나'는 그냥 맹 선생님이 들렀다 가야 한다 해서 가게 되었는데, 막상 관을 보고 떨게 된다. 시체를 본 적 없어서. 나는 이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나는 시체를 만져본 적도 있는데라고 말했다. 남편에게 "시체 만져본 적 있어? 진짜 냉기가 장난 아냐, 저세상 차가움이야."라고 했더니 남편이 "냉동고에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라고 답했다.


난 온기가 사라진 시체라서 그렇게 차가운 줄 알았는데, 어쩌면 냉동고에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그러다 다시 노아의 이야기를 보면서 나 역시 떠밀리듯 학원에서 강사 아르바이트를 했던 때가 기억났다. 교회 집사님이 원장선생님이었는데, 난 하루만에 짤렸다. 애들에게 신앙심을 흔드는 이야기를 했으니까. 내가 안 믿는다고 애들한테 그렇게 이야기할 건 아니었는데. 원장 선생님은 맹 선생님, 아니 심 선생님 같은 분이 아니었다. 그런 분이었다면 나는 달라졌을까.


<핑크 팰리스 러브>는 버리지 못한 미련과 하지 못한 이별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잘 만나고 얼마나 잘 헤어지고 있을까. 일로 만나든 사랑으로 만나든 어떤 이유로든 만나고 헤어지며 그 인연을 끝내기까지 어떤 사람으로 살고 있을까. 흔들리는 삶에서 과거를 마주할 때 비겁함과 우유부단함은 얼마나 큰 후회를 남기게 될까.


<크리스마스 캐러셀>과 <우리들의 파이널 컷>은 잃어버림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이를 잃어버리고 아버지를 잃어버린다. 입양아인 에밀리와 지적장애인인 아버지는 다르지만 이별을 잘 마무리했기에 사랑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동반 자살이라는 이름으로 자녀 살해는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에어 메이드 바이오그래피>는 장인어른을 만나러 가는 여정을 이야기한다. 미국으로 이민 온 이호철은 미국에서 산전수전 다 겪고, 입양한 딸 조이를 결혼시킨 후 한국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건강이 좋지 않아지자 조이와 사위는 비록 코로나 시기이지만 아버지와 장인어른을 만나기 위해 비행기에 오른다. 그 여정에서 사위는 이호철에 대해 생각한다. 그가 살아낸 세월은 험난했고, 그는 용감했다.   


그들에게 '홈'은 어떤 곳일까. 그곳은 미국에서 정착하여 안정적인 삶을 사는 것일 수도 있고, 한국일 수도 있다. 낯선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교회든 어디든 한인 공동체를 찾는다. 소속감이란 생존과 직결되니까.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쳐도 떠난 곳에 적응하지 못하여 돌아온다 하여 결코 실패한 건 아니다. 그저 또 다른 경험을 했을 뿐이고, 삶이라는 여행에서 여행지 하나를 추가한 것이다. 그러니 불안과 이별 안에서 너무 종종거리지도 아파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나 역시 그러했으면 좋겠다. 

게시물 사건 이후 수는 교회에서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에 그가 나타나지 않으리나는 건 영도 알고 있었지만, 그가 준 하드커버 원서 <The Book of Daniel>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수의 흔적이 집에 남아 있는 건 불결하게 느껴졌다. 돌려주려는 건 아니었다. 혹시라도 나타나면 책을 세로로 세워 그의 머리를 내려찍을 작정이었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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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4-09-02 11: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단편집 좋았는데 리뷰를 쓸 수 있을지 ㅎㅎ

꼬마요정 2024-09-02 22:30   좋아요 1 | URL
자목련 님 리뷰 완전 기대돼요💕👍🏽 리뷰 좋을 것 같아요!!! 아니 이미 좋아요 ㅎㅎ

희선 2024-09-05 0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지혁 작가 책을 처음 보고, 다른 곳에서 문지혁 작가 책을 사게 돼서 신기했겠습니다 소설은 제목과 반대일 때가 많은 것 같기도 합니다 소설 속에서는 안 좋다 해도 소설이 끝나고 나서는 좋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걸지도... 좋아질지 모르겠지만...


희선

꼬마요정 2024-09-07 23:36   좋아요 1 | URL
네!! 신기했어요. 문지혁 작가 책이 딱 나오니까 어멋 하게 되더라구요 ㅎㅎㅎ 소설 속에서는 안 좋아도 소설이 끝나고 나서는 좋아지면 좋겠어요. 이 책 재미있게 봤습니다. 우울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열심히 사는 인물들이 인상적이었어요. 불안하지만 답이 정해져 있으면 그것 또한 재미가 없겠지요. 삶은... 참 어렵습니다.
 
판소리 에스에프 다섯 마당
곽재식 외 지음 / 구픽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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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열두 마당 중 다섯 마당을 소재로 하여 다섯 편의 재미난 이야기들이 나왔다. '마당'은 판소리 곡을 세는 단위로 열두 마당이라 하면 열두 곡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이 중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적벽가>, <수궁가> 이렇게 다섯 마당만 전해진다. 나머지 일곱 마당은 <배비장 타령>, <변강쇠 타령>, <강릉 매화 타령>, <옹고집 타령>, <장끼 타령>, <무숙이 타령>, <숙영낭자 타령>이라고 한다. 이 책은 <춘향가>, <변강쇠 타령>, <심청가>, <적벽가>, <옹고집 타령> 다섯 편을 새로운 작품으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첫 번째 이야기는 곽재식 작가의 <춘향가를 가장 재미있게 듣는 법>이다. 춘향가는 너무 잘 알려진 판소리이며, 춘향전은 너무나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단순하게 보면 선남선녀가 역경을 극복하고 사랑을 쟁취한다는 이야기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조선시대 사회의 모습이나 정치제제 등을 알 수 있는 대목이 많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신분 제도가 있고, 여성의 정절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남성의 성을 만족시켜 줄 기생이라는 존재도 있으며, 지방 관리가 있고, 권력의 힘으로 백성을 짓누를 수도 있다. 과거 제도가 있어 급제를 하면 지방을 감찰하는 관리인 암행어사가 될 수도 있다. 물론 불타는 이팔 청춘들은 연애도 한다. 


어느 날 인터넷 미디어 회사의 이차장이 나를 찾아온다. 방송시간 20분 정도 빈다고 그 시간을 채워 줄 원고를 청탁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소재를 찾다가 교육청 앞에서 시위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교육청에서 춘향가를 몰입 감상 방법으로 듣는 과정을 정규 교육 과정에서 제외시키려고 하자 반대하고 나섰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다른 판소리들보다 춘향가를 몰입 감상 방법으로 정규 교육에서 배웠을 때 사람들의 인성이 더 좋아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나는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듣게 된다. 결국 해답은 몰입 감상 방법이었는데, 굉장히 그럴싸해서 나도 그 방법으로 영화를 보거나 판소리를 듣고 싶어졌다. 그리고 대학원생은 정말 힘든 직업이구나 생각했다. 정말 미래의 어느 날, 사람들은 AI가 명창들의 장점만을 모아놓은 판소리를 듣고, AI가 하는 공연을 보면서 감동 받게 될까. 더 이상 전수 받는 사람이 없어 실전의 위기에 놓인 많은 전통 문화들이 이렇게라도 전승된다면 다행이지 않을까 싶기도.


두 번째 이야기는 김이삭 작가의 <낭인전>이다. <변강쇠 타령>은 옹녀가 맞이하는 신랑마다 죽어나가서 짝을 찾을 수가 없었는데 변강쇠를 만나 무사히 결혼을 하게 되고, 이 변강쇠가 마을 장승을 베어다가 땔감으로 쓰는 바람에 죽게 되자 그의 장례를 치르는 내용을 노래한 것이다. 성애의 장면이 많아 아주 야해서인지 노래가 전해내려오지는 않는다. 


이 이야기에서 변강쇠는 낭인이 되었다. 마을에서 쫓겨나거나 여차저차한 이유로 유랑하는 사람도 낭인, 늑대인간도 낭인이다. 장승들은 추노꾼처럼 낭인을 사냥하는 자들이다. 또 신랑을 잃은 옹녀는 마을에서 쫓겨나고, 장승들에게 쫓기던 변강쇠를 만났다. 운명의 남자였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는 보호받지 못하고, 기근이나 고리대로 터전을 잃은 사람들은 유랑하다 죽었다. 조선 후기, 하층민의 삶은 팍팍하다 못해 처참했으나 사람들은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였다. 괴력난신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었다. 원작은 장승을 땔깜으로 만들어서 변강쇠가 죽었는데, 이 이야기는 어떠할까. 이번에는 우리 변강쇠가 질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 왜냐? 옹녀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으니까. 


세 번째 이야기는 김청귤 작가의 <해사>이다. 심청이는 아버지를 위해 아니 정확하게는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해 준다는 스님에게 공양미 삼 백석을 바치기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졌다. 이 이야기나 효녀 지은 이야기가 효를 행하는 자식의 훌륭한 표본으로 전해내려 오는 것을 보면 좀 무섭기도 하다. 부모를 공양하기 위해 목숨을 내놓고 종이 되는 것이 정말 진정한 효일까?


심청은 그렇게 바다에 던져지고 행복했을까. 아버지의 눈이 떠지는 게 심청이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을까. 이 이야기에서는 당당하게 아니라고 말한다. 청이는 연구실에서 섹스를 하다가 약품이 눈에 들어가 눈이 먼 연구원 아버지 때문에 바다로 가게 되었다. 바다가 위험해진 지구는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이 좁아지고 있던 터라 식량이 급속도로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게 급했고, 넓어지고 있는 죽음의 바다를 연구하는 것이 급했다. 식량이 급속도로 자랄 수 있도록 하는 약품을 연구하던 청이의 아버지는 실패했고 빚더미에 올랐다. 그리고 그 빚을 갚기 위해 청이를 죽음의 바다로 내몰았다. 연우라는 연인을 두고 청이는 울며 겨자 먹기로 바다로 가는데...


그렇게 간 바다에는 의외로 돌고래도 있었고, 거대한 해사도 있었다. 인간이 바다에 오면 돌고래도, 해사도 모두 위험해질 것이라 예상한 청이는 그들의 존재를 숨겼다. 로켓 같은 것이 몸에 박힌 해사는 청이에게 그 이물질을 제거해줄 것을 부탁했고, 청이는 그 청을 들어주고 로켓을 파괴하도록 하면서 둘은 친해졌다. 사람은 어디 있든 정서적 안정이 정말 중요하다. 빛도 없는 깊은 바다 속에서 홀로 고독하게 있으면 어떤 사람이든 미치지 않을까. 그래서 청아. 다행이야, 너가 행복해져서.


네 번째 이야기는 전혜진 작가의 <눈 딱 감고 적벽강에 다이브>이다. 적벽구에서 거의 30년을 국회의원으로 지낸 전설적인 인물이 있다. 바로 유장락. 그는 민한당이었고 민한당이 분열을 거듭한 끝에 몰락하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국위당의 동영탁과 신의당의 왕천봉을 제치고 당선되었다. 그리고 건강상의 이유로 은퇴를 선언했고 세상을 떠났다. 무주공산 이 곳에 누가 공천을 받아 올 것인가. 로사 언니는 동오당의 손권지영을 지지했지만 선거 알바는 국위당의 조아만 사무실에서 했다. 돈을 잘 준다는 이유였다. 유장락이 손에 쥐고 있던 이 곳에서 돈과 인플루언서의 힘으로 조아만의 지지율은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는데... 제갈영과 유현덕 변호사의 등장으로 선거판은 조금씩 흔들리게 되고, 연환계는 승기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게 되는데... 


정치인들의 권력 싸움이나 오판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고통받는 것은 백성들이다. 불타는 적벽에서 수없이 죽어나간 병사들은 자신들이 죽을만큼 큰 죄를 지었는지, 여기서 왜 죽어야 하는지 알았을까. 때로 역사는 비정했다.


다섯 번째 이야기는 박애진 작가의 <호수의 여신>이다. 옹고집 타령은 옹고집전과 내용이 유사할 것이라고 한다. 실전되어 전해내려오지는 않지만 옹고집전과 유사하다면 내용은 모두가 알고 있다. 옹고집이 욕심이 많고 고집이 너무 세서 화가 난 도승이 볏짚으로 가짜 옹고집을 만들어 그를 깨우쳐 착하게 만들었다는 것인데. 


박애진 작가는 그런 옹고집이 아니라 뚝심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듯하다. 레전드 가수인 호수는 팬들이 선물해 준 별 '호수'에 칩거한 채 가끔 콘서트만 열고 있다. 범우주항공국은 돈을 받고 별들을 팔았는데, 만약 구매한 별들 중 지성체가 있다면 소유권은 사라지고 환불도 못 받는다고 명시했었다. 다행히 호수의 별에는 지성체가 없었고 호수는 그 별을 소유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웜홀이 발견되었다. 웜홀은 우주 탐사에 큰 획을 그었는데, 행성 호수 근처에 두 번째 웜홀인 도스가 발견되었다. 범우주항공국이든 웜홀관리국이든 별을 팔 때는 언제고 이제는 사유지인 행성 호수에 우주선 정비소를 짓게 해 달라고 호수를 조르고 있는 판국이었다. 호수는 절대 거절을 시전 중이었고, 이 상황에서 교섭자로 제레미를 내세웠다.


제레미는 이 일을 맡아 진행하면서 호수에 대해 알게 되고, 호수의 팬인 안나를 알게 되었다. 가수와 팬은 서로에게 진실했고, 어느 면에서는 아주 닮아 있었다. 레전드 가수였던 호수는 세월이 지나면서 이제 아흔일곱 살이었고, 말 그대로 팬들이 떠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여기서 떠남은 죽음이었다. 그리고 500번 째 콘서트에서 앙콜을 외친 단 한 명의 팬이 103세의 안나였다.  


개발 논리는 막강하다. 하지만 그 이전에 사람들이 있었단 걸 기억하면 좋겠다. 사람들이 살던 터전이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에 사라지는 것이 당연하지는 않다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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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8-29 04: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판소리와 에스에프가 만났군요 이런 걸 쓰기도 하다니... 판소리는 잘 듣지 않기도 하네요 그런 것도 잘 들으면 재미있을지도 모를 텐데, 전승자가 사라질지도... 그걸 AI가 할까요 요즘은 죽은 사람 목소리를 재현하기도 하니, 죽은 사람뿐 아니라 산 사람도... 그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제 밤엔 좀 시원합니다 꼬마요정 님 팔월 남은 날 즐겁게 보내세요


희선

꼬마요정 2024-08-29 23:09   좋아요 2 | URL
예전에 티비에서 판소리 들은 적 있는데 저도 모르게 빠져들게 되더라구요. 심청가였는데 다 아는 내용인데도 재밌게 보고 들었어요. 아무래도 점점 사라질 것 같은데 그나마 AI가 보존해 준다면 좋겠어요.

죽은 사람 목소리를 재현하기도 하는군요. 그건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희선 님도 남은 팔월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세요^^ 밤이 시원하니 계절이 변하는 걸 느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