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어 서점 마음산책 짧은 소설
김초엽 지음, 최인호 그림 / 마음산책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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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지구에 처음 물이 생기고 그 안에 미생물들이 자라서 각종 생명체가 되었다. 처음엔 말미잘 같은 형태였다면 조금 지나 물고기가 되고, 날개가 생겨 새가 되고, 악어 같은 파충류가 되고, 육지에 완전히 적응한 포유류가 되고, 어느 날 인류가 등장한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에렉투스, 네안테르탈인 등 인류도 진화했고, 신석기 시대가 지나 청동기 시대가 올 무렵, 인간들은 신화란 것을 만들어 낸다.


SF 소설도 그런 것이 아닐까. 이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무엇 때문에 만들어졌는지,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어떠한지 등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신화'가 나타난 것처럼, SF 소설은 과학이 어떻게 이 세상을 변화 시키고, 우주의 다른 생명체들을 찾아내고 맞이하는지를 상상하여 이야기로 풀어낸다.


이 책은 두 개의 장(章)으로 나뉜다. 첫 번째 장(章)은 '서로에게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이다. 서로에게 닿지 않는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선인장 끌어안기>에서 파히라는 수술 부작용으로 무엇이든 몸에 닿으면 고통을 호소하는 접촉 증후군에 시달린다. 인간이 살면서 어떻게 안 닿을 수가 있을까. 나는 이 글을 읽으며 자신이 만지는 모든 것이 황금으로 바뀌는 '미다스'가 생각났다. 파히라와 미다스는 사랑하는 대상을 만질 수 없다는 점에서 닮은 꼴이다. 파히라는 닿거나 만지면 고통스러워서 어떤 것도 만질 수 없고 닿을 수 없다. 미다스는 자신이 사랑하는 딸마저 황금으로 만들어버린 고통스러운 아버지이다. 미다스는 신에게 기도해 팍톨로스 강에 손을 씻음으로 황금손을 버렸지만, 파히라는 자신과 같은 접촉 증후군을 갖고 있는 소영을 잃고 과학으로도 씻어지지 않는 저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소영으로 인해 삶의 의미를 찾았으나 소영은 너무 일찍 떠나버렸다. 파히라를 보조하는 로봇들은 부서진 채 본사로 되돌아갔고, 온기를 원한 파히라는 선인장을 끌어안음으로 자신을 버리려고 한다. "그때 나는 불행히도 나에게 고통이 곧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어."(p.31)


<#cyborg_positive>는 인체의 일부를 기계로 대체하는 것을 꺼리지 말자는 '사이보그 긍정 캠페인'이다. 사이버네틱스 신체만이 지닐 수 있는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다나. 리지는 사고로 눈을 잃고 사이보그 눈을 장착했다. 기계 눈이라는 것이 싫어 더 아름다운 척, 신비로운 척 하면서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었는데, 아이보그 사에서 홍보 모델을 해 달라고 제안한 것이다. 리지는 그 제안을 받고 자신이 진심으로 사이보그 눈을 긍정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신화 속 인간이 눈을 잃으면 지혜를 얻거나 속죄를 하는데, 미래 속 인간은 기계 눈을 얻고 원래의 눈보다 아름답다고 자신을 세뇌한다. 테이레시아스나 오이디푸스는 두 눈을 잃었지만 인간성을 지켰다. 리지는 아름다운 기계 눈을 장착하고 무엇을 보는가.


<멜론장수와 바이올린 연주자>는 중첩된 세상에서 각각 존재하는 '나'를 보여준다. 얼마 전에 봤던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떠오르는 이야기였다. 신기하게도 존재감 없는 멜론 장수는 다른 세상의 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존재감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신화 속에서는 굴이나 다른 경로를 통해 신선들의 세계나 또 다른 도시로 갈 수 있는데 시간이 다르게 흐르곤 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또 다른 세상의 또 다른 나를 만난다. 모든 일에 소질 없다고 웃지만, 사실 가장 커다란 능력을 가진 것일지도 모른다. 가 보지 못한 길을 가고 있는 또 다른 '나'를 보는 기분은 어떠한가.


<데이지와 이상한 기계>는 세상과의 소통에 관한 이야기인 것일까. 우리는 사람끼리 대화를 해도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엄청 많다. 자연의 말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 우리가 가진 현실의 결이 다르다면, 모두는 각자의 현실 속에 살며 그 현실을 잇는 기계가 이상한 것이지는 않을테다. 


<행성어 서점>은 왠지 나만 알고 있는 혹은 누군가와 은밀히 공유하는 이야기를 담아둔 것 같아 재미있었다. 공용어라는 언어가 생기고 인류의 뇌에 수만개 은하 언어를 지원하는 범우주 통역 모듈이 설치된 시대라니. 언어 공부를 안 해도 온갖 책을 다 읽을 수 있고 말을 할 수 있다니 정말 경이롭다. 이 기술은 정말 나 갖고 싶다!! 창세기에 따르면 원래 세상은 하나의 언어를 가지고 있었는데 인간이 탐욕스럽게 혹은 또 다른 홍수를 대비해 탑을 높게 쌓는 바람에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도록 했다고 한다. 범우주 통역 모듈은 하나의 바벨탑이 아닐까. 하지만 이 모듈로도 읽을 수 없는 책들이 가득한 곳이 있으니, 바로 '행성어 서점'이다. 이 곳의 모든 책에는 모듈을 방해하는 미세 패턴이 새겨진 글자들이 가득하다. 그래서 행성어를 익히지 않으면 이 곳의 책은 단 한 권도 읽을 수 없다. 뭔가 사라져 가는 언어로 남겨진 책들이라니, 고대문자를 해독하는 역사학자들의 설렘이 이 교수의 마음이랑 같을까나.


<소망채집가>는 소망을 품은 이들의 바람 그 자체가 2030년이 되어버린 이야기이다. 2030년의 모습은 과연 어떠할까. 기후위기나 전쟁 등 여러 요인들 때문에 지구가 심각하게 훼손되었을까, 아니면 극적으로 인류가 화해하고 공존을 위해 협력하여 아름다운 지구(인간에게)를 만들어 나가고 있을까, 아니면 인류는 사라지고 지구는 고고하게 새로운 생명들을 키워나갈까. 내가 원하는 미래는 어떤 미래일까. 만약 내가 계속 살아간다면, 나 저 범우주까지는 아니더라도 범지구 통역 모듈이 있으면 좋겠다. 소망을 채집하는 존재는 마치 '판도라의 상자' 같다. 물론 소망은 역병이나 온갖 재앙을 담고 있지는 않겠지만, 저 밑바닥에 있는 '희망'이야말로 인간의 미래니까. 


<애절한 사랑 노래는 그만>은 왜 20년을 주기로 발라드 음악이 유행하는지를 알기 위해 미래에서 2003년으로 시간 여행을 한 시간 요원의 이야기이다. 음, 애절한 사랑 노래라면 오르페우스를 빼놓을 수는 없겠지. 아내인 에우리디케를 찾기 위해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눈에서 눈물도 뽑아낼만큼 애절한 노래를 불렀지. 그런 노래가 주기를 가지고 유행하는 건, 당연히 좋아하는 상대에게 분위기 있어 보이고 멋있어 보이기 위한 게 아니겠는가. 노래를 못해도 분위기를 잡으며 자기애에 취하는 것일지도. 뒤를 돌아 본 오르페우스의 속마음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포착되지 않는 풍경>은 신비로운 이야기이다.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별안개'는 그 순간을 남겨두지 못한다. 그 광경을 본 사람만이 별안개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 마치 서왕모의 서화 정원이나 -그 시대에는 사진기가 없으니까- 무릉도원 같은 곳이 아니려나. 우주 여행을 다니는 그런 시대에 과학으로 순간을 담을 수 없다면 고전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 밖에 없을테다. 별안개를 본 사람들이 그린 그림, 글 등은 남아서 많은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게 되겠지. 별안개는 사라져도 아름다웠던 순간이 있었음은 영원히 남게 될 것이다. 어딘가의 벽화 처럼.


두 번째 장(章)은 '다른 방식의 삶이 있음을'이다. 정말 말 그대로다. 마치 <지구 끝의 온실>을 보는 것처럼 외계 식물이 지구에 '대침투'하여 지구를 오염시킨다고 믿는 미래의 어느 날, 지구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이다. 외계 생명체는 알지 못하기에 두렵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들이 지구를 침략했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그저 본능대로 번식한다고 말한다. 옛날 유럽인들이 아메리칸 대륙을 침략하면서 각종 바이러스들을 퍼트려 원주민들에게 고통을 주었듯이, 외계 식물은 지구에 사는 인간을 미치게 하거나 죽음에 이르게 한다. <오염구역>에 파견된 라트나는 사람들의 몸에 기생하는 기이한 버섯들을 본다. 이 버섯들은 지구의 것인 듯 하며, 그들의 흰머리는 사실 모두를 연결하는 시냅스 같은 것이 아닐까. <늪지의 소년>이 늪에서 보았듯이, 뜻이 다르다고 '처분'된 오웬이 그 늪과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균사체들 말이다. 지구를 제대로 알지 못한 인간은 외계에서 낯선 종들이 지구에 오자 비로소 지구를 알아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인류를 위한답시고 인간을 실험하고, 조금만 다르면 배척하고, 뜻에 맞지 않으면 '처분'하는 등의 만행을 스스럼없이 저지른다. 과연 외계 생명체는 지구를 정복하고 인간을 노예로 만들기 위해 나타난 것일까. <우리 집 코코>의 코코라는 생명체는 과연 무엇일까. '코코'는 사람들을 홀려 누군가의 먹이로 던져주려는 것은 아닐까. 창귀가 호랑이에게 잡혀 사람들을 호랑이 먹이로 데려가듯이 말이다. 


혹은 <시몬을 떠나며> 같은 이야기도 있다. 시몬이라는 곳은 외계 기생충이 사람들의 얼굴에 붙어 가면을 만들었다. 시몬인들은 표정을 잃었다. 웃음도 울음도 어떤 것도 나타낼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그들은 솔직하게 말한다. 수많은 가면들이 떠 다니는 세계. 그 곳에는 아마 외모로 평가하는 일은 없겠지. 얼굴 표정을 보지 못하니 솔직하게 말로 표현할 수 밖에 없을테고. 얼굴을 보지 못하면 누구인지 어떻게 알아보는 걸까. 프시케가 얼굴을 가린 채 자신을 찾아오던 큐피트를 보려고 하다가 촛농을 떨어트려 헤어지게 된 것처럼 상대의 얼굴을 보고 싶어하는 건 당연한 것 같은데 말이다. 하지만 남의 얼굴은 커녕 자신의 얼굴조차 모르는데 각각의 표정이 어떤 감정을 나타내는지 그들은 모를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가면이 떨어져 나가면 오히려 일대 혼란이 올지도 모른다.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띄운 채 마음 속엔 칼을 품고 있다한들 알아챌 수 없으니.


<지구의 다른 거주자들>은 읽으면서 나랑 비슷하다, 공감했다. 요리를 정말 못하는 나는 뭔가 입에 안 맞으면 짜다고 한다고 한다. 맛 구분을 못하는 거다. 하여간 뭐만 먹으면 짜다고 하니, 생식을 하는거냐는 말도 들어보고... 어릴 때 먹는 걸로 하도 구박을 받아서 먹는 것이 싫으니 어쩌려나. 아니면 나도 지구인이 아닌 다른 행성인인걸까? 관광지랑 지구가 좌표가 비슷해서 나도 불시착을 했는데 기억을 잃은 건 아닐까? 아니겠지. 포슬포슬 구름을 먹는 듯한 느낌은 어떤걸까. 


그리고 마지막 <가장자리 너머>는 근신 처분을 받게 된 라트나에게 보내는 동료 연우의 메세지이다. 지구를 벗어나지 못하는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어떤 지구인들이 횡포를 부리는 것을 막고 싶어한다. 그리고 낯선 존재에 대해 지나치게 적대적인 태도를 바로잡고자 한다. 그래서 라트나는 버섯과 함께 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보다 부드럽게 표현하고 오웬을 삼킨 늪의 그 균사체를 연구하고자 한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도 많지만 또한 정의로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위해 자신을 던지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면서 지구는 균형을 맞추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상상력이야말로 우리의 미래를 좀 더 풍성하게 만들 기회를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개별적 개체성, 그게 인간일 때의 나를 가장 불행하게 만들고 외롭게 만들었어. 동시에 나를 살아가게 했지. 개별족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전체의 일부라는 건 모순이 아니야. 아니면 전체라는 건 애초에 없는 것일지도 모르지.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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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8-12 1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상하는 생각의 방향이 세상의 균형을 맞춰주는 것 같아요.~~
막아서기도 이끌어가기도 하면서...

꼬마요정 2022-08-12 16:20   좋아요 1 | URL
보다 공존하는 방향으로 균형이 맞아가면 좋겠어요. 선한 영향력을 기대해봅니다^^
 

1. 일요일이었던 8월 7일 저녁, 남편이 레안드로가 사망했다는 말을 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킹즈의 그 레안드로 로? 젊은데? 사고야? 진짜야? 레안드로 로는 주짓수 계의 전설이다. 킹즈 주짓수 도복의 '킹'이 레안드로라고 알고 있는데, 그만큼 세계대회에서 우승한 전적도 많고 세계적인 스타다, 주짓수 계에서. 어쨌든 이게 무슨 일인가 다들 브라질어, 영어, 에스파냐어 등등 으로 소식을 알리니 알 수가 있나. 어이없고 화가 난다길래 도대체 뭐야 뭐야 하는데, 알고 보니 클럽에서 시비가 붙어 가해자를 제압했는데, 그 가해자 놈이 비겁하게 총을 쐈다고... 심지어 가해자가 주짓수 보라띠, 즉 퍼플 벨트라고. 전설인 걸 알면서 쐈다는 건가. 진짜 잘 하고 멋진 선수인데 아쉽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사진출처 : 인스타그램 @mr_parker_jiujitsu)


2. 8월 8일은 세계 고양이의 날이다. 나야 늘 고양이의 날처럼 살지만, 그래도 특별히 고양이의 날이라길래 고양이 책을 읽어볼까 싶어 <두 고양이>를 들었다. 어질어질하다. <두 고양이>를 읽고 있는 것은 나인가, 나를 바라보는 고양이인가, 꿈인가, 생시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응? 슈뢰딩거의 상자가 원망스럽다. 왜 고양이일까. 고양이가 상자를 좋아해서? 왜 양자는 누가 보면 입자인 척 하고 누가 안 보면 파동인 척 하는가. 이중인격 아니 이중입자격(?)인가. 말장난이지만 마냥 장난으로만 다가오지 않는 어려운 말이다. 그걸 보는 나는 또 어떻게 존재하는가. 뚜껑을 열어보는 나와 열어보지 않는 나는 어디에 있는가. 이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이 책을 읽은 후의 나는 각각 존재하는가? 응?











3. 어제 서울, 인천, 경기도 등에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곳곳이 물에 잠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비가 전국에 골고루 긴 시간 동안 왔다면 피해가 덜했을텐데, 수도권에 띠를 두르고 있는 비의 전선이 안타까웠다. 부디 피해가 더 크지 않기를. 복구가 금방 되기를. 실종되신 분들 다 무사하기를. 친구들은 다행히 별 피해는 없다고 했다. 엘레베이터가 고장 나서 15층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정도야 뭐 이러면서. 이수역 지나는 데 진짜 무서웠어 이러고. 그런데 출근을 하라네? 난 외거노비야 슬퍼하고. 힘내라 친구들아!! (알라디너 분들도 부디 피해가 없었기를 바랍니다.)


4. 자연의 힘은 세고 무섭다. 인간은 정말 자연 앞에서 겸허해져야 하는 것 같다. 특히 '물'은 부드러운 듯 하면서도 아주 강한 대표적 자연인 것 같다. 뭔가 말이 이상하게 느껴지지만, 물은 자연이니까. 왜 어색한가 모르겠다. <레슨 인 케미스트리>에서 엘리자베스 조트는 물이 공유결합이라고 했다. 둘이 합쳐져서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수소와 산소가 만나 아름다워지는. 그 아름다운 결합이 이렇게 엄청난 재앙을 만들어내기도 하니 세상은 참 알 수가 없다. 또 예로부터 치수(治水)는 지도자의 덕목 중 아주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농경사회에서 물을 잘 활용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 우 임금이 치수(治水)를 잘해서 임금이 될 수 있었는데, 그 때나 지금이나 치수(治水)는 중요한 일이구나 생각해본다.











5. 부산은 덥다. 흐리고 습도도 높고... 하지만 이 더위도 곧 지나갈 것이고, 언제 더웠냐는 듯 추워질테고, 다시 더워지겠지. 이 순환이 부디 가혹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마지막은 귀여운 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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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2-08-10 15: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양이의 날도 있군요. 츄르 하나 줘야겠어요.

꼬마요정 2022-08-10 15:56   좋아요 0 | URL
네네 츄르 꼭!! 세계 고양이의 날도 있고, 일본엔 자체로 고양이의 날이 있다는군요. 우리도 고양이의 날이 있다고 하고... 고양이의 날에 전 고양이 책을 읽고 잉크냄새님은 츄르를 주고.. 크으... 전 나쁜 집사에요ㅠㅠ
 
레슨 인 케미스트리 1
보니 가머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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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다. 엘리자베스 조트. 어떻게 그렇게 자기 주장을 할 수 있는지 부럽다. 나도 화학과 물리학을 공부해야 할까? 조정을 하는데 물리학이 도움이 되는 걸 보니, 주짓수 할 때도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공간감각이랑 방향감각이 없는 나는 뭘 배워야할까.

불합리와 부조리와 불법이 넘치는 세상에서 결혼 안 한 채 아이가 있는 비정규직 여자가 살아남기란 너무 어렵다. 거기다 예쁘기까지 하면 그 추문이란… 엄청난 능력이 있는데 그걸 안 보이는 척 하는 사람들도 정말 대.단.하.다. 질투와 자기합리화는 인간이 발명한 죄악 중 으뜸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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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2-08-06 1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디너 한 분이 제 서재에 이 책을 언급한 댓글을 남기셨어요. 과학과 관련된 책이라고 하셔서 읽어보겠다고 답변했는데, 그분이 제 독서 취향에 맞지 않는 로맨스 소설이라면서 말씀하시더군요. 그래서 일단 이 책을 읽겠다는 마음을 접었어요.. ㅎㅎㅎ

꼬마요정 2022-08-07 01:15   좋아요 0 | URL
제가 생각할 때 이 책은 sf 소설이 아닐까 해요.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한 화학자가 자신을 과학자로 인정해주는 과학자를 만나서 사랑을 하고, 편견에 가득 찬 세상을 과학적인 사고방식으로 헤쳐나가면서 가족애를 느낄 수 있게 된다고나 할까요. 판타지 같기도 하지만 어느 현실에서는 일어날 것만 같은 이야기이기도 하구요. cyrus님 리뷰 보고 싶어서 읽으셨으면 하는데 어떻게 느끼실 지는 모르겠어요^^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안전가옥 쇼-트 1
심너울 지음 / 안전가옥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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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네 개의 저주에 빠진 것 같다.


심너울 작가의 이야기들은 모두 훌륭했다. 그런데 왜 별을 네 개만 줬을까. 아마 마지막에 읽었던 <최고의 가축>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막상 별을 줬을 때의 느낌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래서 읽고 빠른 시간 내에 리뷰를 써야 하는데 생각대로 되지 않아 서글프다. 어쨌든 요즘 읽는 책마다 정말 좋으면 별 다섯, 정말 마음에 안 들면 별 셋, 마음에 들면 별 넷을 주는데, 별 네 개의 저주에 빠진 것 같다. 대부분이 별 넷이니까.


첫 번째 이야기인 <정적>은 정말 좋았다. 내가 알지 못했던 것, 미처 몰랐던 것, 알아야만 하는 것들을 알려줬다. 어느 날 서울 마포구와 서대문구 일대에는 이제껏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났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된 거다. 김보영 작가의 <다섯 번째 감각>도 생각났는데, 사람들은 마포구와 서대문구 일대에서는 어떤 소리도 듣지 못한다. 이 곳을 벗어나면 소리가 들리는데, 이 곳에서만 들리지 않는거다. 말을 할 때도 진동은 느껴지지만 소리는 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소리가 사라졌다.' 하지만 곧 이 일대에 있는 사람들이 듣지 못할 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소리는 있지만 들을 수 없는거다. 학교는 휴교를 했고, 사람들은 떠나기 시작했다. 자주 가던 까페도 문을 닫아 '나'는 정처없이 걷다가 한 까페를 발견한다. 필담으로 주문을 하던 게 익숙해져 '나'는 핸드폰에 원하는 메뉴를 적어 건냈고 까페 주인은 수화를 했다. 알고보니 이 까페는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봉사단체가 세운 비영리 수화 까페였다. '나'는 이 곳에서 청각장애인들을 알게 되고, 수화를 배우게 된다. 듣지 못하는 세상에서 청각장애인들은 자유로웠다. 이명도 들리지 않고, TV에서는 자막을 늘 제공했으며, 인공달팽이관을 건드리는 사람도, 장애인 편의 시설을 없애라고 시위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리가 돌아왔다. TV 자막은 사라졌고, 사람들도 돌아왔다. P씨의 이명도 돌아왔다. 그래도... 까페는 남았다.


두 번째 이야기인 <경의중앙선에서 마주치다>는 웃픈 이야기였다. 난 부산에 살기에 경기도민의 애환을 알지 못한다. 내가 부산 끝에서 부산 끝으로 갈 일은 별로 없으니까.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양산에 사는 친구를 자주 보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양산 사는 친구가 부산까지 매번 오기도, 내가 양산으로 매번 가기도, 번갈아 왔다갔다 하기도 참 번거로우니까. 물론, 친구에게 귀여운 자녀가 셋 또는 둘 있다는 게 함정이라고나 할까. 


'나'는 절친한 친구가 일산에 책방을 열기로 했다는 소식에 인테리어도 돕고 구경도 할 겸 일산을 방문했다. 하루를 친구와 함께 술 마시고 놀다가 다음날 집에 가려고 백마역으로 가려는데, 친구가 '나'를 말렸다. 왜? '나'는 백마역에서 타고 한남역에서 내리면 될 것 같아 지하철을 타고 가기로 하고 연장을 챙겨준다는 친구를 뒤로 한 채 승강장으로 갔다. 그런데... 그 곳은 무슨 저주가 내렸는지 살아있는 시체들이 가득했다. 기차가 연착돼서 오도가도 못하게 된 사람들... 지하철역에 붙박이 정념이 된 듯한 그들을 보고 당황하고 있는데, 유명 웹툰 작가를 만나게 된다. 4년째 풀컬러 전일 연재라는 기적을 이루고 있는 그의 작업 비결은 바로... 이 곳이었다. 기차가 연착되어 오지 않는 곳에서 하염없이 '고도'를 기다리는 것처럼 기차를 기다리며 작업을 하니 연재가 밀리지 않는 거였다. 기자가 직업인 '나'는 작가인 성하리의 도움으로 겨우 그 곳을 빠져나올 수 있게 되었고, 경의중앙선에 대해 알린다. 코레일은 배차 시간을 줄여준다기보다 스크린도어에 시가 아닌 단편소설을 적어 넣겠다고 공모전을 하는 이상한 짓을 하긴 했지만 경의중앙선에 열차를 하나씩 더 배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성하리 작가가 6년 만에 하루 휴재를 예고했다. 출, 퇴근 시간에 극악한 대중교통의 실태를 아주 재미있게 풀어놔서 즐겁게 읽었다. 과연 즐겁게 읽어도 되는 걸까 싶지만.


세 번째 이야기는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이다. 금요일은 설레는 요일이다. 아무리 짧다지만 주말이 어김없이 온다는 것을 알려주는 요일이니까. 그래서일까, 근추동 행정복지센터 말단 주무관 김현은 금요일에 잠들면 금요일에 의식을 차린다. 아니, 일요일에 잠들어서 금요일에 눈을 뜨는 건 이해가 가는데 금요일에 잠들어서 금요일에 눈을 뜨는 건 좀 잔인하지 않나 싶었다. 하지만 김현은 이야기 한다. 어차피 평일은 죽느니만 못하다고, 숨 쉬는 게 고통이며, 노동으로 자아 개발 이런 건 다 헛소리라고. 의식론 연구소의 주니어 연구원 윤희랑은 피실험자들이 의식 없이 6일을 살게 되는 것에 묘한 죄책감을 느끼지만, 그들이 사람들의 이상한 민원과 화풀이에 스트레스 지수는 엽기적인 수치를 기록하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며 실험의 부작용에 동의했으며 어떻게 보면 썩은 동앗줄일지라도 구원일지도 모른다고 완벽하게 자기합리화를 이뤄낸다. 힘들 때 다른 대안이나 해결책이 있으면 좋을텐데 우리 사회는 그런 안전장치가 너무 없다. 세상엔 즐겁고 신나는 일들도 분명 있는데 그런 일을 즐길 만한 감정적 여유가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네 번째 이야기는 <신화의 해방자>이다. 이 이야기는 조금 잔인하기도 하고 가슴이 아프기도 하다. 하지만 살아남은 '용순'이가 너무 기특해서 박수를 쳐 주고 싶다. 정말 인간은 너무 잔인하다. 마법공학과 생물학을 복수 전공한 소현은 셀트린 연구소에 취직했다. 그 곳에서는 용아세포를 원하는 조직으로 분화시켜 쥐의 등에 이식해서 6개월 후에 성장한 조직을 채취했다. 물론 모든 조직이 원하는 상품성을 지닌 조직으로 성장하지 않았다. 상품성 없는 조직을 가진 쥐들은 그냥 폐기 처분 됐다. 끊임없이 쥐에게 세포를 이식하고, 끊임없이 쥐들을 잡아 죽이고... 소현은 그 곳에서 등에 있는 조직이 잘 자라는지 확인하고 선별하는 일을 했다. 소현은 동물을 좋아했기에 죽일 쥐를 선별해서 죽이는 일은 너무 무참했다. 하지만 취준생으로 2년을 살았던 소현은 실업자가 되지 않으려고 억지로 버텼다. 그나마 윤리 규정 때문에 버틸 수 있었는데, 이런 윤리 규정은 피실험체를 위한 게 아니라 실험자를 위한 것이라는 말이 와 닿았다. 어쨌든 그렇게 하루 하루 살아내던 소현은 기숙사에 돌아와 가방을 열고 그 안에서 흰 쥐가 튀어나온 걸 보고 기겁한다. 용아세포가 이식되어 마력을 가진 흰 쥐는 보라색 비늘을 가지고 있었다. 순간 이동을 할 줄 아는 이 쥐는 소현을 간택한 거였다. 소현은 그 쥐에게 용순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길렀다. 과연 둘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까. 셀트린은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둘까. 소현은 자신도 살고 용순이도 살리기 위해 용순이를 풀어 줄 계획을 세우지만 용의 마력을 내뿜는 용순이를 풀어주기는 너무 어려웠다. 그리고... 신화적인 존재는 신화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소현과 함께 자유를 찾았다고나 할까. 인간의 이기심은 어디까지 갈까. 모든 것을 버려야 바라는 하나를 가질 수 있는 걸까. 죽음에서 생명이 태어나리니.


마지막 이야기는 <최고의 가축>이다. 용이라는 신화적 존재조차도 가축으로 길들여버린 인간의 놀라운 재능이라니.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배부른 돼지가 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이스켄데룬은 생각한 것일까. 죽더라도 자유를 찾겠다는 의지는 온데간데 없고, 인간이 제공하는 안락함과 조롱 섞인 숭배를 받아들인 이 초월적 존재를 어떻게 봐야할까. 애초에 아이발리크와의 싸움에서 한 쪽 날개를 잃고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깊은 잠에 들었다가 과학 기술로 무장한 인간 세상에서 눈을 뜬다. 용아 세포를 제공하고 얻은 안락함은 좋았지만 자유를 원했던 이스켄데룬은 또 다시 날개를 잃고 만다. 합의된 계약 관계에 그들이 바치는 조공과 숭배에 만족하자고 길들여진, 인간이 길들인 가장 위대한 존재인 이스켄데룬은 언젠가 힘을 되찾아 자유를 향해 힘차게 날개짓 할 수 있을까? 과연 인간도 그렇게 자유를 찾아 갈 수 있을까, 용순이와 소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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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2-08-01 09: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을 좋아해요. 평일에 하지 못한 독서와 글쓰기를 이 시간에 하려고 하는데, 이때 몰입도가 높아져요. ^^

꼬마요정 2022-08-01 14:22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시간대를 좋아해요. 잠들기 싫은 밤이라고나 할까요. 다음날 늦게까지 푹 잘 수 있으니 자기 아깝더라구요. 토욜에는 꼭 cyrus님 서재를 방문할게요. 좋은 글 볼 거란 기대가 팍팍 샘솟습니다^^
 
우리가 다른 귀신을 불러오나니 - 여성 호러 단편선
김이삭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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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당한만큼 돌려주면 내 마음은 편안해질까.


이 책은 열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모두 독특하고 재밌었는데, 역시나 귀신보다는 사람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이야기는 남유하 작가의 <시어머니와의 티타임>이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시어머니는 영화 <올가미>를 떠오르게 했다. 그렇게나 아들이 사랑스러운데 왜 아들을 결혼 시켰을까. 남들처럼 혹은 남들보다 더 잘 살아야 어깨가 으슥해질테다. 그래서 결혼 시키기 싫음에도 결혼 하지 않은 남자는 하자 있어 보이니까 결혼 시켰겠지. 그럼 자연히 짝이라고 데려 온 여자는 꼴도 보기 싫겠지. 오롯이 혼자 사랑받고 싶었는데 아들의 아내라는 여자가 그 사랑을 훔쳐갔다고 생각할테다. 스토커 마냥 아들을 훔쳐보고, 아들을 속박하고, 아들을 독점하려 하는데 그 아들이 죽어버렸다. 이제 남은 건 그 아들을 공유한 두 여자 뿐. 그들은 한 집에 살지만 공유하는 것이 없다. 다만 한 시간 정도의 티타임만이 서로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일 뿐. 시어머니는 '나'와 티타임을 가지지만, 늘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 티타임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기존의 이야기 방식이라면 마지막에 '나'는 경찰에 신고하거나 그냥 도망쳤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그러지 않았다. 받은 만큼 아니 이자까지 쳐서 갚아준다. 통쾌한 면도 있지만 씁쓸하기도 한 이야기였다. 시어머니가 그렇게까지 아들을 사랑하게 만든 이 사회에도 책임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두 번째 이야기인 코코아드림 작가의 <무진도 탈출기 게임 환불 요구서>는 나도 이 게임을 하고 싶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내가 만약 하진이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지진으로 세상이 멸망한 것 같은 미래의 어느 날, 무진도라는 섬에는 '마키나'라는 인공의식이 사람들을 지배한다. 지진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하고 이 섬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공장에서 물자를 생산하도록 하는 '마키나'를 숭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하진은 의심한다. '마키나'를 의심하고 '구원'을 의심한다. 잘 통제된 사회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의심하기 시작한 사람은 절대로 순응하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출입금지구역에 들어갔다 근신 처분을 받은 하진은 우연히 '식물원'으로 가는 길을 묻는 여행객을 만나게 되고 그 동안 알던 것들이 전부 거짓이라는 사실 앞에서 혼란스러워한다. 그 상황에서 게임 유저는 선택을 할 때마다 하진의 시선을 느끼는데... 과연 게임일 뿐인걸까.


세 번째 이야기는 장아미 작가의 <큰언니>이다. 몽환적이고 고전적인 느낌이 가득한 이 소설은 술사가 요술을 부려 그린 살아있는 그림을 보는 듯한 이야기이다. 병에 걸린 엄마가 자식 셋을 두고 세상을 떠나야 한다면 그 자식에 대한 애착과 집착을 어떻게 끊어내야 할까. 거기다 맏이라고 동생들을 지켜야 하는 큰언니의 책임감은 또 얼마나 무거울까. 너무나 사랑하기에 자신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 미련을 실을 잘라내듯 잘라낼 수 있는 것 또한 커다란 용기일 것이다. 염과 원을 담아 만든 그 자수 속 세계는 어머니의 염원과 맏이의 염원이 합쳐져 그들을 지켜냈고,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그 자수 속 세계에서 다시 만나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네 번째 이야기는 전혜진 작가의 <창귀>이다. 창귀는 호랑이에게 물려죽은 사람의 혼을 말하는데, 창귀가 이름을 부르면 절대 대답을 해서는 안 된다. 세 번을 부르는데 대답을 하게 되면 창귀에게 홀려 호랑이밥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렇게 호랑이에게 혼을 잡혀 자신 대신 아는 사람을 먹이로 줘야 하니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창귀가 이렇게 오래도록 호랑이에게 붙잡혀 있으면 자신이 호랑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애초에는 희생자였으나 종국에는 압제자로 변질되는 것은 아닐까... 여자라서 화풀이 대상으로 죽임을 당하고, 폭행을 당하고, 폭언을 듣는 세상에서 윤서는 이유 없이 둔기로 머리를 맞는다. 운이 좋아 살았다는 윤서는 자신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가족들과 세상이 원망스럽다.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 나중에 보험을 들지 못한다는 둥 유난스럽다고 윤서의 엄마는 윤서를 나무라고, 이런 사건으로 휴학했는데 회사에서는 불성실한 사람으로 치부한다. 이런 이상한 세상에서 윤서는 사람들 몸에 붙어 있는 촉수나 내장 따위를 보게 된다. 그래, 이상한 세상이니까. 그런 와중에 만난 준상은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었다. 결혼을 허락받기 위해 준상의 어머니와 할머니와 고모를 만나러 간 윤서는 '창귀'를 만난다.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무수히 죽어나간 여아들, 여자들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집안의 각종 행사들, 그리고 처음에는 분개했을지라도 이제는 부조리 그 자체가 되어버린 할머니와 고모. 준상의 어머니는 진정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창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 다른 이를 희생시키면 자신은 편해질테지만 그 부조리를 깨 버린 준상의 어머니가 윤서에게도 용기를 주었을까.


다섯 번째 이야기는 배명은 작가의 <매혹>이다. 이 이야기는 들어봤음직한 옛날 이야기를 뼈대로 한다. 나도 늘 궁금했다. 화가 난 초자연적인 존재를 달래는 데 왜 늘 아이나 여자를 제물로 바치는 것인지. 정확히 누구인지 기억이 안 나는데 어느 고을에 부임한 원님인지 절제사인지 높은 양반이 마을에서 용신에게 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의식을 보고 용신을 만나고 오라고 무당도 못에 던지고 아전들도 던져 더 이상 제물을 바치는 일이 없도록 했다는 일화가 떠올랐다. 혹은 김녕사굴 전설도 생각났다. 서은은 사업을 하다 망해버린 남편을 따라 농업을 하기 위해 천룡리로 왔다. 잘 될 때는 허허 웃던 남편 정우는 사업이 실패하고 일이 잘 풀리지 않게 되자 서은의 탓을 하며 서은에게 화를 내고 서은을 때린다. 불행을 직시하지 못하고 회피하며 남의 탓을 하는 나약한 정우는 천룡리에서 농업으로 부자가 될 생각에 기분이 좋다. 서은은 이 마을 사람의 무시와 거리감 때문에 의아해 하다 마을 이장의 부인인 주화자에게 이끌려 이 마을의 천녀를 만난다. 천녀가 마을 사람들을 잘 살게 해준다는 말에 정우는 사이비 종교라고 화를 내며 천녀를 못 만나게 하고, 오히려 천녀의 실체를 까발려 망신을 주려 한다.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정우는 과연 천녀에게 어떻게 될까... 서은의 복수는 나름 통쾌했지만 이런 식이라면 언젠가는 무고한 이도 희생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글쎄, 과연 무고한 이가 희생될만큼 세상에 악한 이가 사라지긴 할까.


여섯 번째 이야기는 한켠 작가의 <너의 자리>이다. 선정 씨는 '나'의 전임이다. 11개월만에 잘린 계약직 직원이고, 나는 선정 씨의 후임으로 11개월짜리 계약직 직원이다. 회사에서 정직원은 전부 남자 뿐이다. 여자는 출산휴가를 써서, 아이 때문에 자주 자리를 비워서 등등의 이유로 정직원으로 채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 대리는 나와 선정 씨의 몸을 더듬고, 정 팀장은 나에게 점심밥을 짓게 하고 국을 끓여 오게 한다. 이 과장은 탕비실에서 추행을 일삼고, 박 차장은 삼촌이라고 생각하라고 딸이라고 생각하라고 하면서 밤을 보낼 생각을 한다. 선정 씨에게 물려받은 집에 있는 백골은 누구이며, '나'가 들고 다니는 엄지손가락들은 무엇일까. 들개들은 왜 들개가 되었을까. 어쩌면 가장 통쾌한 복수인 듯도 한 이 이야기를 보며 가슴이 아팠다.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삶, 안전한 삶, 다함께 행복한 삶을 살 수는 없을까. 첫 출근 때 죽어있던 비둘기는 누구일까.


일곱 번째 이야기는 김이삭 작가의 <성주 단지>이다. 성주신은 대들보 위에서 집을 지켜주는 신이다. 혼자 사는 여자들은 집에 들어갈 때 늘 조심해야 한다. 우습게도 가장 편안해야 할 곳에 가는 길은 험난하기 그지없다. 특히나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위해를 가한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너무나 끔찍하다. 나'는 결혼하려고 했던 그 회계사 남친으로부터 도망쳤다. 죽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지영이만 아는 곳에서 전공과는 상관없는 민속학 연구소에서 임시직으로 일하기로 한다. 집을 구하려는데 연구소장이 아는 친척이 소유한 고택에서 머물기를 제안했고, 나는 그 곳이 마음에 들었다. 곳곳에 CCTV도 달려있고 자물쇠도 비밀번호가 새로 생성되는 것이었고, 넓은 집에 지내는 사람은 '나'뿐이라 집 관리만 좀 해주면 월세도 싸고 좋은 조건이었다. 누군가 문을 열려고 하면 앱에 연락이 오는데, 어느 날 누군가 문을 열려고 하는지 덜컹거리며 알람이 왔다.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부르는 듯도 하고. '나'의 말처럼 귀신은 무섭지 않다, 사람이 무서울 뿐.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다고 문을 두드리며 행패를 부리던 전 남자친구는 '나'의 집 앞에서 여전히 행패를 부리다 옆집 사람에게 죽임을 당한다. '나'를 찾아 온 그가 해 준 말이다. 그리고 항아리를 깨는 바람에 항아리를 새로 사고, 또 좋은 마음으로 청소까지 해서인지 성주신이 도와준 것일까. 또다시 두려움에 떨지 않도록 말이다.


여덟 번째 이야기는 서계수 작가의 <산상 수훈>이다. 신약 성서에 기록된 예수의 가르침이다. 가르침대로만 산다면 참 좋은 세상이 올 것 같은데, 또 이 가르침을 왜곡하는 경우가 많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나쁜 짓을 하고도 합리화를 하기도 한다. 하은은 새인이 이교도라고 생각한다. 복음의 새순이라고, 나쁜 길로 꼬여내기 위해 온 아이라고. 그러면서 새인의 목을 조르게 되는데, 그 때 새인이 누군가의 목소리로 예언 같은 말을 하기에 그걸로 돈을 벌자고 한다. 하은은 새인이를 질투하고, 새인이를 이용하고, 새인이를 이단이라고 생각한다. 하은의 불행은 모두 새인이에게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의심까지... 하은의 인생이 뜻한 바와 다르게 흘러가는 것은 과연 누구 때문일까. 


아홉 번째 이야기는 사마란 작가의 <뷰티풀 라이프>이다. 이 이야기를 보는데 영화 <화차>가 떠올랐다. 인생을 훔치는 이야기. 영화 <화차>가 가슴 아팠다면, 이 이야기는 시원하면서도 씁쓸하다. 60평대 아파트, 잘 빠진 벤츠 e- 클래스, 수십 벌인 이태리 정장, 롤렉스 시계, 국내 최고 시설 골프장 VIP 회원권, 수입 골프채를 포기하지 못하는 명철은 영미의 비위를 맞추며 산다. 영미 아버지의 회사에서 임원으로 있으며 저런 것들을 누리며 살면서 언제나 불평과 불만이 가득하다. 영미 성격이 많이 까탈스러운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명철에게 집착하지는 않는다. 명철은 영미가 싫고 첫사랑인 유정이 좋다. 하지만 누리던 것들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영미는 아침을 차려 주지 않는데, 유정은 밥을 해 준다. 아니, 도대체 자신이 밥을 해 먹으면 죽어버리기라도 하는걸까. 명철의 뻔뻔함과 가식과 탐욕을 보고 있자니 구역질이 치민다. 남자가 여자보다 돈을 적게 벌면 그게 그렇게 아니꼬울까. 영미와 유정을 다 가지려던 그는 결국 유정의 정체를 알게 되고, 60평대 대리석 바닥은 참으로 반들거렸다.


마지막 열 번째 이야기는 유기농볼셰비키 작가의 <그를 사로잡는 단 하나의 마법>이다. 정말로 모든 불법 촬영 피해자분들께도 이런 용기가 마법처럼 생겨나면 좋겠다. 허락 없이 찍은 사진과 동영상으로 협박해서 돈을 뜯어내고, 이상한 영상을 찍게 만들고 더 나아가 폭력적인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매춘을 하도록 한 김성택은 희선의 직장 동료였다. 희선은 세련되고 다정한 김성택을 좋아해서 인스타에서 본 '마법의 물약'을 산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이뤘다는 후기가 가득한 그 물약을 사용하고 물약 덕분인지 김성택은 희선에게 잘 해주고 희선은 자신감을 가진다. 하지만 김성택은 단지 희선을 갖고 놀 목적이었다. 물론 돈도 뜯어낼 생각이었고. 희선은 당하다 못해 자살을 감행하지만, 김성택은 희선을 그냥 두지 않았다. 죽을 거라면 스너프 필름을 찍으라는... 외딴 곳에서 카메라를 켜고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 두시간 안에 죽게 해 주겠다는 김성택을 보는 희선은 그제서야 그 '마법의 물약'의 힘을 알게 된다. 드라마 <힘쎈 여자 도봉순>처럼 자신의 힘을 자각한 희선은 반격을 시도하고... 희선의 물리적 상처는 아물겠지만 마음의 상처는 어떨까. 마법처럼 희선이 해낸 일에 자신감을 가지고 더 굳건하게 살아갈 수 있길 바란다. 상처 받은 모든 이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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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7-26 19: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름엔 서늘한 귀신이야기지만, 밤에 혼자 있을 때 생각하면 무서워요.
귀신만 그런게 아니라 사람도 무서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잘읽었습니다.
오늘 날씨 많이 덥네요. 시원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꼬마요정 2022-07-26 23:37   좋아요 1 | URL
저는 귀신 이야기를 좋아해요. 귀신 보단 사람이 무서워서 그런가봐요. 날씨가 점점 더워지겠죠? 그러다 다시 찬바람이 불고 가을이 오겠죠. 점점 일출 시간도 늦어지고 일몰 시간은 빨라지니 조금만 더 견뎌 보아요. 시원한 꿈 꾸세요^^

서니데이 2022-07-31 16: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은 7월 마지막 날입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8월에도 좋은 시간 되세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꼬마요정 2022-07-31 17:38   좋아요 1 | URL
벌써 7월의 마지막 날이네요.
시간의 힘이 대단합니다. 여름도 곧 지나가겠지요?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