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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식 없이 술술 양자물리
쥘리앙 보브로프 지음, 김희라 옮김, 이재일 감수 / 북스힐 / 2023년 4월
평점 :
나는 왜 이 책을 샀을까? 양자물리에 대해 알아서 뭐에 쓰려고? 사실은 정말로 이 책을 읽으면 수식 없이 술술 양자물리를 이해할 수 있을까 궁금해서 샀다. 그렇다. 나는 제목에 낚였다. 순진한 사람 같으니... 양자물리를 술술 이해할 수 있다면 세상에 양자물리를 모르는 사람이 없겠구만. 내가 '술술' 이란 단어의 뜻을 잘못 알고 있나 싶어 사전도 찾아봤다. 내가 알던 뜻이 맞았다. 막힘없이 잘 나오든, 풀리든 그렇다는 뜻이다.
하지만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었다. 이해는 못하겠는데 재미있는 그런 요상한 책이었다. 처음에 영화를 이야기 하다가 전자를 말한다. 전자는 희뿌연 구름 모양으로 보이지만 카메라로 찍으면 선명한 점을 볼 수 있다. 측정하기 전에는 희뿌연 구름 모양이지만 측정하는 순간 점 모양의 전자를 볼 수 있다. 계속 셔터를 누르면 위치는 바뀌어 있지만 점을 볼 수 있다. 이 사진들을 모두 겹치면 구름 모양을 볼 수 있다. 그러니 전자는 양자다.
여기까진 괜찮았다. '파동함수' 개념도 알고 있으니까. 슈뢰딩거의 고양이도 아니까. 그래서 웃으면서 이 정도면 나도 제법 잘 이해할 수 있겠는데 싶었다. 그런데 이게 겨우 1장의 내용이다. 그리고 2장에는 수식이 잠깐 나온다. 나는 알지 못하는 이 이상한 암호가 바로 슈뢰딩거 방정식이었다. 복잡한 수식을 통해 파동함수(ψ,프시)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다고. 아인슈타인은 보른에게 보낸 편지에서 "어쨌든 나는 신이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고 확신하네."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파동함수는 '모든 '것'을 예측할 수는 없고, 최종 단계인 측정에서 우연을 개입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자의 에너지 값을 정하고 입자가 어디 있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면 계산을 통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값을 얻을 수 있으며, 이 값은 이후 실험을 통해 완벽히 확인된다(p.43)고 한다. 얻고자 하는 것을 잘 선택한다면 정확한 값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전자나 원자 같은 양자적 개체는 측정되지 않는다면 파동처럼 움직인다. 이 입자 중 하나를 작은 상자에 몰아넣는다. 2022년 캘리포니아 대학교 윌슨 호 교수 연구팀은 이것을 실험했다. 금 원자를 검출해서 20개의 금 원자를 정렬해 서로 밀착시켰다. 물론 모든 과정은 극저온, 초고진공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이들이 만든 원자들의 나란한 줄은 완벽한 양자 상자다. 이 양자 상자 안에서 전자들의 속도를 측정했더니 측정치가 한정되어 있었다. 전자들은 파동처럼 생각해야 하고, 그것들은 특정한 형태만 취할 수 있으므로 특정한 속도만 가질 수 있다. 이것이 양자화(quantification)이다. 상자 안에 갇힌 양자 입자는 '양자화'되고, 정확하고 구별된 값의 에너지만 가질 수 있다고 한다. 즉 불연속적인 세계인 것이다. 이들 사이에 중간은 없다. 음악으로 치면 반음계가 없는 것이다.
4장은 원자를 그려보고자 한다. 처음엔 잘 따라갈 수 있었다. 수소 원자도 흐릿한 구름 형태로 그려지는 것을 이해했다. 하지만 그 뒤에 나오는 그림들은 입체파 그림들 같다. 피카소가 떠올랐다.
5장은 불확정성의 원리를 설명한다. 원자 차원의 크기를 가진 물질을 측정할 때 위치를 알면 속도를 알 수 없고 속도를 알면 위치를 알 수 없는 원리다. 이 원리에 따르면 측정 순서가 중요한데, 측정은 사건들의 시간 순서에 영향을 받는 듯 하다고 한다. 이 원리가 현실 세계에 작동하는 것들이 있는데, 천체물리학에서 태양에 적용될 수 있다고 한다. 태양은 생의 마지막에 온도가 낮아지고 중력이 우세해지면 스스로 붕괴할 것이고, 블랙홀이나 중성자별로 생을 끝낼 수도 있지만, 이 원리에 따르면 우리 태양의 경우 내부 압력이 충분해서(공간이 줄어들면 각 전자의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져 전자를 짓누르는 보이지 않는 벽을 밀어낼 정도는 된다고) 백색 왜성으로 진화할 것이다. 그리고 이 원리에 따르면 진공은 비어있지 않은 상태라고.
6장은 터널 효과를 설명한다. 입자가 에너지를 충분히 가지면 어려움 없이 장애물을 통과한다. 그런데 파동함수 일부는 장벽을 통과하고 일부는 튕겨 나온다. 파동함수가 둘로 나뉠 때 일부는 벽을 통과하고 일부는 튕겨 나오는데, 이는 입자가 둘로 나뉘는 게 아니라 입자는 측정되면 때로는 왼쪽에 때로는 오른쪽에 물질화되어 나타난다는 뜻이다. 그런데 양자 입자가 가볍고 바르면 뛰어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장애물을 통과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을 '터널 효과'라고 하는데, 이는 해리포터가 호그와트 마법 세계로 가기 위해 킹스크로스역 9번 플랫폼 벽을 향해 돌진하면 벽이 열리고 다른 세계로 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지만 양자 세계에서라면 해리가 한 번은 통과하지만 한 번은 벽에 부딪혀 내동댕이쳐질 수도 있다. 이 터널 효과를 적용한 사례 중 하나가 터널 효과 현미경이다. 원자를 직접 관찰할 수 있도록 만든 최초의 도구이다.
이 터널 효과를 이용한 도구의 쾌거를 알리기 위해 2017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가 세계 최초 나노 자동차 경주 대회를 조직했다. 이 대회에는 전세계에서 6개의 팀이 참가했다. 그들의 목표는 100나노키터 길이의 트랙을 가장 빨리 달리는 것이다. 이런 대회에 참가한 나라는 미국, 독일, 프랑스, 스위스, 일본, 오스트리아라고. 이 대회의 우승자는 스위스 바젤 대학교 팀이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우리나라도 이런 대회에 참가할 수 있으면 좋겠다. 기초 과학이 발전하고 과학자들이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 결국 모든 것은 기초에서 시작하니까.
그 뒤로 측정과 결잃음, 상태의 중첩, 얽힘을 설명하고 구별 불가능성을 설명한다. 그리고 페르미온 기체와 보손 기체를 설명하고 초전도성과 양자 컴퓨터를 설명한다.
양자 측정은 여전히 하나로 정의되지 않는 모양이다. 가장 유명한 이론이 코펜하겐 해석과 파일럿파 해석, 다세계 해석이라고. 과학의 목표는 무엇보다 사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하는 것이지 반드시 '왜'를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p.134)
파동은 두 구멍을 동시에 통과하며 중첩 상태를 유지하는데 측정하려고 하면 간섭무늬가 보이고 정확히 어디를 통과했는지 확률로만 알 수 있다. 중첩 상태를 보호하려면 측정하지 않아야 한다. 여기서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나온다. 내 생각에 이 고양이 너무 불쌍하다. 나는 이 실험 반대요!!(물론 직접 실험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말이다.)
전자 두 개를 준비하자. 두 전자의 스핀이 반대가 되도록(하나는 위로 하나는 아래로) 하면 두 스핀의 합은 0이고 두 전자가 연결되어 있는 한은 이 상태가 지속될 것이다. 이 둘의 운명은 얽혔다. 미래에 한 스핀이 위를 항하면 다른 스핀은 반드시 아래를 향한다. 이 두 전자가 분리되어 있어도 얽혀있다. 이 전자를 다른 두 지점으로 보낸 뒤 한 전자의 스핀이 아래를 향한 것을 보면 반드시 다른 스핀은 위를 향하게 된다. 이 양자 얽힘을 이해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많은 시도를 했고, 나는 길을 잃었다. 양자 얽힘은 진짜였고, 나는 차라리 둘이 텔레파시가 통한다고 말하는 게 더 이해하기 쉽다고 느꼈다.
아인슈타인은 두 입자가 멀리서 즉시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양자 얽힘은 실재했고, 아인슈타인이 틀렸다. 얽힘에 관한 실험은 양자물리학이 '국소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입자는 충분히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다른 입자의 영향을 즉시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구별 불가능성은 입자들을 구별할 수 없도록 한다.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는 불확정성의 원리 때문이다.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알 수 없으니 이 입자가 이 입자인지 저 입자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보손은 정수이고 대칭적이며 페르미온은 반정수이고 반대칭적이다. 보손은 모여 있기 좋아하고 페르미온은 혼자 있기를(배타 원리) 좋아한다. 수소 원자는 전자 1개와, 쿼크 3개로 이뤄진 양성자 1개를 포함한다. 1/2스핀인 입자가 총 4개인데, 스핀의 총합은 반드시 정수이다. 그러므로 수소는 보손이다. 질소 원자는 1/2스핀인 기본 입자가 49개이며, 스핀의 총합은 반정수이다. 그러므로 질소는 페르미온이다. 모든 자료를 주고 더하기만 하는 거라면 나도 보손인지 페르미온인지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놀랍다.
이제 거의 다왔다. 보손 기체와 페르미온 기체를 지나 초전도성까지 왔다. 그리고 이는 양자컴퓨터로 연결된다. 나는 이미 길을 잃었으므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초전도체가 어째서 나오기 힘든지 그게 상용화 된다면 얼마나 강력할 지는 알 수 있었다. 극저온이 아닌 상온에서 만들 수 있다면 말이다.
양자컴퓨터는 많은 정보를 처리할 수 있지만 그만큼 많은 복제가 필요해서 여전히 사용하기 힘들다는 것은 알았다.
나는 길을 잃었다. 차분히 계단을 밟아 올라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계단이 끊기고 공간을 날아야 했다. 나는 고체라 기체로 승화할 에너지가 없었다. 그렇다고 밑으로 떨어질 수도 없고 도로 내려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가상의 벽을 만들어 뚫기로 했다. 어떻게? 그냥 벽이 있다고 상상하기로 했다. 양자 세계라면 두 번에 한 번은 벽이 생기고, 두 번에 한 번은 벽을 뚫을 수 있겠지 싶어서.
양자물리학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엄청나다. 다만 우리가 몰라서 모를 뿐이다. 이 마법 같은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면 내가 사는 세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텐데. 어렵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이제 나도 조금은 양자물리학을 알지 않을까.
사실 내가 양자물리학에 반한 이유는 이 학문이 가장 소중한 것을 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여행으로의 초대‘다. 이 학문은 우리에게 특이한 산책을 제안한다. 마치 해리포터가 호그와트의 벽을 통과할 때 발견하는 마법 세계의 방식처럼 양자물리학은 모든 게 우리의 이해를 벗어나는 마력의 세계, 준엄하고 일관적이지만 완전히 엉뚱한 새로운 법칙의 지배를 받는 세계를 제시한다.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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